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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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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편 & 성경주석 – BIBL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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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편 & 성경주석 - BIBL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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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5(수) “시편 2:1-12” / 작성: 정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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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4/25(수) “시편 2:1-12” / 작성: 정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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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편]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 시편강해 (1) :: The Bible is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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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시편 2편]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 시편강해 (1) :: The Bible is True 시편 2편은 예수님 재림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부제도 없고 누가 지었는지, 또 언제 지어졌는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시편이 다윗의 작품이기 때문에 이 역시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시편 2편]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 시편강해 (1) :: The Bible is True 시편 2편은 예수님 재림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부제도 없고 누가 지었는지, 또 언제 지어졌는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시편이 다윗의 작품이기 때문에 이 역시 … 시편 2편은 예수님 재림에 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부제도 없고 누가 지었는지, 또 언제 지어졌는지도 모르지만, 대부분의 시편이 다윗의 작품이기 때문에 이 역시 다윗의 작품이라고 추측할 따름입니다."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 2:I-12) 이 말씀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세상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지만,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에 가장 적중되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분노하는 열방"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시 2:1-3)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역사의 배후에는 조종자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잘 알 수 없고 또 눈에 보이지도 않지만, 이 세상을 조종하고 뒤에서 움직이는 것은 사탄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세상의 모든 일들이 다 정상인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지금 여러 나라에서는 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개방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세계 평화의 걸림돌이 되어 왔던 공산주의도 사라져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현상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제 곧 살기 좋은 평화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는 착각을 하게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장차 아마겟돈 전쟁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모든 전쟁의 배후에는 사탄의 조종이 있습니다. 열방이 분노하는 것은 물론 전쟁 당사자간이나 또는 사상적, 정책적으로 대립 관계에 있는 국가, 정당, 단체간에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분노는 하나님을 향한 분노입니다. 사탄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 자신이 멸망 받을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사탄의 분노가 여러 나라의 정책을 통해서 표출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에도 귀신 들린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막 1:24)하고 말한 것을 성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에 보면 여인의 후손이 나면 뱀의 후손을 멸망시킨다는 예언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자세히 살펴보면 어떻게 해서든지 예수님의 탄생을 막으려는 계획이 계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중에는 헤롯을 통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지금 열방이 분노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 거의 끝마무리 되어 가는 이 시점에 사탄이 가장 악랄하게 온 세상 나라들을 앞세워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의 배후에는 사탄의 계획이 있고, 그 마지막 분노가 나라들을 통해서 표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과 태도가 좀 달라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기름부음 받은 삶구약시대에는 왕이나 제사장이나 선지자들이 기름부음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예수님의 직함으로서 기름부음을 받으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선지자의 사명, 제사장의 사명, 왕의 사명을 위해서 기름부음을 받으셨다는 뜻이 됩니다. 다니엘 9장 24절에 보면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부음을 받으리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왕으로 오실 주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탄은 이 주님을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대적해 오고 있습니다. 25절에도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그리고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라는 26절의 말씀은 선지자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실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재 주님은 기름부음을 받으셔서 제사장으로 계시는 분이십니다. 요한복음 3장 34절에 보면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침례 받고 올라오실 때에도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심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지만 서른 살이 되실 때까지는 특별한 일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침례 받고 올라오시면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신 다음에 일을 시작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이 아니면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성령의 기름부음에 의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나는 성령의 기름부음이 없으니까 하나님의 일을 못 하겠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내가 구원받은 것이 성령의 기름부음이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두 가지 생각 모두 맞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도 처음에는 아무일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즉,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기 전까지는 일을 안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일하신 것은 바로 성령의 기름부음이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은 이와 같이 기름이 부어졌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들은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난 경험은 있지만 기름부음의 경험은 없는데 어떻게 주님의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시작될 때에 기름부음의 역사가 있었기 때문에 이 교회 안에 함께 연결되어 있으면 그 기름부음의 역사 속에 함께 사는 것입니다. 교회와 함께 살고 움직여 나가면 개인적으로 따로 기름부음이 없다 하더라도 이 안에서 함께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일에 쓰임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떨어져 나가면 기름부음이 있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가서 울타리 밖에 있게 됩니다. 그 울타리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간혹, 혼자 떨어져 나간 사람에게서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난다 할지라도 성령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일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따로 기름부음 받은 경험은 없지만 교회 안에서 함께 구원받아 교제하고 살아가는 그 자체가 기름부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기름부음이 있는 곳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에 주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와 함께 움직여 가는 그 자체가 아주 중요한 것입니다.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시 2:2-3)하는 것도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방해하고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한 운동입니다. 현재 이 세상의 많은 일이 그러한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유럽이 개방 정책과 통합 운동의 물결 속에 유럽 합중국이 형성되는 과정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그것은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대항하기 위해 666이 정권을 잡기 위한 운동의 일환입니다. 바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대적하기 위해 꾸며지고 있는 운동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유럽만 아니라 온 세계가 적그리스도의 통치 아래 들어갈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는 온통 자유의 물결, 민주주의 물결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즘의 젊은 세대에게는 민주화라는 말이 거의 절대적인 단어처럼 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민주화 바람이 어디까지 불어갈 것 같습니까? 인간의 마음은 부패해 있고 속에는 죄가 꽉 들어차 있습니다. 이렇게 속이 썩어 있고 죄와 악이 가득 차 있는 인간들이 어떻게 정당한 민주주의를 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누구나 다 개인적인 욕망이 있고 사리사욕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앞세운다 할지라도 다 어떻게 하면 자기 개인이 손해를 보지 않고 자신만을 위해 살까 하는 생각뿐입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고 하는 민주주의도 현실에 맞지 않는 점이 많습니다. 가령 열 사람이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리더쉽이 강하고 생각이 아주 건전하며 모든 것을 다 알고 매사에 흠이 없는 훌륭한 사람이라면 전체의 행복과 발전을 위해 그 한 사람의 뜻으로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이 현명한 처사일 것입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위해 결함이 많은 아홉 사람이 원하는 대로 일을 처리한다면 필경 전체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결과를 가져오고야 말 것입니다. 민주주의를 아무리 해도 되지 않을 때, 민주주의라는 것을 앞세워 마지막에 666이라는 독재가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서는 민주주의라는 것도 사실은 인간의 힘을 앞세워 주님을 대항하기 위한 운동인 것을 알아야만 합니다. 우리 중의 1/3은 구원을 받았으나 2/3가 구원을 받지 않았다고 가정할 때, 만일 민주주의의 원칙대로라면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성령의 말씀을 아는 사람들이 구원도 모르고 하나님도 모르는 2/3의 힘에 의해서 끌려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힘으로, 인간이 주인 노릇하자는 사상입니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하나님 없이 인간의 힘으로 살자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하나님을 도전하는 이성의 힘"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시 2:4) 아무리 세상 사람들이 자기 딴에는 잘난 척하고, 아는 척하고 힘 있는 척하지만 하나님이 보실때에는 우스운 것입니다. 누가복음 10장 21절부터 24절을 읽어 보면 예수님 당시에 제일 공부 많이 하고 똑똑했던 사람들, 서기관이나 율법학자들, 제사장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몰라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의 이성과 지능 중 혼의 능력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아담이 타락했을 때 잃은 것은 영적 생명을 잃은 것이었지 이성적인 능력까지 잃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담은 타락의 결과로 말미암아 양심이 어두워졌습니다. 그 대신 이성은 아주 발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너무 지나치게 이성적인 면만 발달하면 영적으로 퇴보를 하고 자기 이성의 힘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현대는 완전히 인간의 이성에 의해서만 발전해가는 세상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도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시대는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앉으며, 다니엘서 12장에 있는 말씀대로 빨리 왕래하고 지식이 더해가는 시대, 지식의 힘으로 인간이 앞길을 개척해가는 시대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신학이라는 학문까지도 생겨 참으로 양심에서 하나님을 알기보다는 인간의 학문, 논리를 가지고 이러쿵, 저러쿵 논하고 있습니다. 컴퓨터, 666, 사람의 이마나 손에 표를 하는 문제 등 모두가 인간의 이성, 두뇌 활동의 산물이며, 결국 그 결과로써 하나님을 대적하는 시대를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실 때에 웃음거리밖에 안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자기의 이성의 힘과 판단력 만 의존하면 신앙의 깊은 사실을 알 수가 없습니다. 머리로만 움직이면 마음이 움직여지질 않습니다. 교회는 인간의 머리나 이성에 의해 움직이지 않습니다. 때로 교회가 나아가는 방향이나 방법 등은 사람들의 생각과 잘 맞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교회는 내 생각과는 관계 없이 성령이 이끌어 가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에 실패하는 이유가 바로 자기의 이성적인 판단에 비추어 맞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무엇인가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을 때에는 내 생각이나 이성적인 판단에 따르지 말고 양심을 한 번 더듬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만일 양심에 평안이 없고 마음이 즐겁지 않다면 그것이 바로 죄에 걸려 있다는 증거입니다. 내 생각과 맞지 않아 불쾌하고, 화나고 하는 것들은 다 죄입니다. 성령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내 생각에 맞는다 할지라도 내 마음이 함께하지 못하는 사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머리로 따지며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함께하며 나아가는 것입니다. 마음이 따로 떨어져 있거나 불쾌하거나 힘이 없으면 따라가질 않습니다. 우리는 자칫 세상의 방식대로 머리로 판단하고 계획하고 처리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은 절대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성 없는 짐승처럼 행동해서도 안됩니다. 마음이 앞서면 이성은 그 뒤를 따라가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어딘가 생각은 맞지 않지만 마음이 먼저 앞서고 함께 하고 싶으면 문제 없이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들이 부모님이 하는 일을 다 알고 따라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믿고 따라가는 것이지요. 이 세상은 지금 머리(두뇌)가 주인 노릇하고 머리가 왕 노릇하는 세상에서 달려가고 있습니다. 마침내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하는 세상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헛된 일에 분요한 인생과 예수님의 재림"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시 2:5-6) 이는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 재림하십니다. 거기가 시온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면 이 세상 모든 것은 다 멸망합니다. 지금 유럽에는 자유와 평화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지만 조금 있으면 이마나 손에 표를 받고, 그 다음에 666이 나타나 세계를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새로운 질서에 따라 희망찬 설계를 하지만 인간들이 계획하고 꿈꾸던 그 모든 것들이 완전히 한꺼번에 백지화되어 버리고 말 것입니다. 그때 그들의 얼굴에 얼마만한 실망이 나타나겠습니까? 땅이 꺼지도록 탄식하며 통곡한다 할지라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구원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헛된 일에 너무 분주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만일 주님이 오신다면 내가 하고 있던 일, 꿈꾸고 계획하는 일, 가족을 위해서, 세상을 위해서 계획하던 그 모든 일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면 교회에서 행하는 일도 다 마찬가지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꼭 어떤 결과를 보기 위해 모여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손에 손 잡고 서로 부딪치면서 무엇인가를 배워가고, 양보해 가고, 자신이 꺾여져가고 하면서 사랑을 알아가고 훈련 받아가는 소중한 체험 때문에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어떤 목적 때문에 일을 한다면 그것은 주님 오시는 날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가령 우리가 예배당을 짓는다고 합시다. 한참 지어 올라가다 주님이 오신다면 다 내버리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짓는 것일까요? 우리는 현재 일을 하고 있는 이 순간 순간에 서로 서로 배워가고, 자기를 훈련시켜가고, 자기가 깨져가는 데 소중한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현재 내가 하고 있는 그 일을 통하여 신앙적인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을 배우는 데에 있지 결코 일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그 결과로써 얻어질 것에 뜻을 두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거기에는 형제자매 사이의 대화, 친밀한 관계, 또 때로는 서로 다투는 문제 등이 발생하지 않겠습니까? 그런 속에서 무엇인가를 배워가고 단련 받아 가는 것, 자신을 낮추어 가는 것, 서로 돌보아 가는 자체에 의미가 있지만 그래도 주님이 오시면 모두 놀랄 것입니다. 더구나 잘못 살다가 주님을 맞게 되는 사람은 엄청나게 놀라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일단 주님이 오시면 세상 모든 일은 완전히 의미없는 일로 재가 되어서 날아가 버릴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헛된 일에 분요하며 살지 말아야 됩니다.주님의 말씀에 다스림을 받는 생활"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하시도다"(시 2:7-9) 여기에서 ‘철장’은 말씀을 뜻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11절부터 16절까지를 보면 그때에는 주님이 말씀으로 세상을 통치하신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죽은 자도 일어나고 바다와 풍랑도 잔잔해집니다.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시기 때문에 주님이 말씀하시면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집니다. 주님은 재림하신 이후에도 말씀으로 통치를 하십니다. 그런데 말씀으로 구원을 받은 우리 마음속에는 이 말씀을 도전하는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배반하고 말씀을 거스리는 힘입니다. 로마서에서 말한 대로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의 대립입니다. 그러나 어떤 말씀이 마음에 한번 스치게 되면 우리는 그 말씀이 나를 다스려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신앙생활이라는 것은 주님의 말씀에 의해 다스림을 받는 생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영적 경험이 많이 있다 하더라도 육신이 있을 때까지는 완전히 말씀에 이끌려 사는 생활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말씀이 마음을 스쳐가면 기꺼이 말씀에 순종하고 말씀에 의해 다스림을 받을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곤란이나 시련을 통한 훈련의 과정을 겪지 않은 상태에서는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그 말씀이 히브리서 2장에 있는 말씀대로 믿음으로 화합되지 않습니다. 듣기만 하고 실지로 그 말씀이 내 마음에 머물지 않으므로 나를 다스려가는 힘이 약합니다. 그것이 우리 신앙생활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내 마음의 상태가 주님의 말씀과 대립되고 있는가, 말씀에 의해 잘 다스려지고 있는가를 항상 생각해야만 합니다. 만일 잘 안되고 있다면 그 문제의 근원을 따져서 그것과 더불어 씨름해야 합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기 때문에 이 세상을 다스리는 것도 말씀으로 하십니다. ‘ 철장’이라는 것도 말씀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에 보면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2 —3)고 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하나님이 창조주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주님이 창조주입니다. 하나님은 계획하시는 분이고, 주님은 실천하신 분입니다. 구원의 계획을 하신 것은 하나님이시지만 몸으로 오셔서 구원을 실천하신 분은 주님입니다. 이처럼 주님은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기 때문에 재림하시면 완벽하게 그 말씀으로 성취하시는 것입니다. 만물의 법칙을 보면 매우 세밀하고 빈틈이 없습니다. 이런 법칙도 주님의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의해서 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현상이 다 주님의 법칙이잖습니까? 주님은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셨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주님을 생명의 주로만 알고 있기가 쉬운데 앞으로는 주님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아가야 할 것입니다. 주님은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분이고 말씀으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0장 35절에 보면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사람들을 신이라 하셨거든"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요 5:25)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왔을 때에 나는 말씀대로 정말 살아났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런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상고할 뿐만 아니라 그 말씀에 의해 우리 마음이 다스려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고 듣는 태도는 이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그 마음의 태도가 바로 주님을 기다리는 태도입니다. 주님이 오시면 말씀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실텐데 그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런 태도로 기다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즐거운 마음으로 주님을 경외하는 삶"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시 2:10-11) 욥기 28장 28절에 "주를 경외함이 곧 지혜요 악을 떠남이 명철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즐거운 마음으로 경외하고 섬길 수 있다면 이 세상의 어떤 금은 보화와도 바꿀 수 없는 참으로 엄청난 행복일 것입니다. 교회 안에는 함께 일하고 참여는 하지만 주님께 참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감사를 드리고 기뻐하는 생활이 없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함께 모여 찬송 부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진심으로 우러나오는 예배와 주님을 경외하는 생활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그냥 우연히 생기지 않습니다. 반드시 어떤 말씀에서 공급을 받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장 30절에 "예수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셨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주님 자체가 지혜이심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주님을 경외함으로 섬기고 떤다는 말은 두려워 떠는 것이 아니고 경외하는 마음 때문에, 존경하는 마음 때문에 떤다는 뜻입니다.주님과의 입맞춤"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시 2:12) ‘적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다’는 말이 잠언 24장 26절에도 있습니다. 어떤 때 우리가 말씀을 읽다가 마음으로 진정 아멘하고 화답이 되는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아들에게 입맞추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말로 화답이 되면 그것이 주님께 입맞추는 것이 됩니다. 성경은사실이다,권신찬,기독교복음침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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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편]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 시편강해 (1) :: The Bible is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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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편 주석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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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설교문 –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2:1-12) – 숭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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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시편 설교문 –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2:1-12) – 숭실교회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본문말씀: 시편2편 1-12 아주 많은 것을 이루고 무엇 하나 아쉬운 것이 없는 사람이 어느 호텔에 투숙하게 …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본문말씀: 시편2편 1-12 아주 많은 것을 이루고 무엇 하나 아쉬운 것이 없는 사람이 어느 호텔에 투숙하게 되었습니다. 이 사람은 호텔 직원에게 그 호텔에서 가장 싼 방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호텔 직원도 알 정도로 아주 유명한 부자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호텔 직원은 그 사람에게 왜 당신 같은 분이 제일 싼 방을 찾느냐고 물었습니다. 덧붙여서 당신 아들도 그 호텔을 찾으면 가장 좋은 방을 찾는데 당신은 어떻게 해서 제일 싼 방부터 찾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호텔 직원에게 이렇게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자기 아들에게는 자기 같은 부자 아버지가 있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그런 아버지가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나 이룬 것으로 보면 당연히 이 사람은 아들보다 더 좋은 방을 구해야 마땅합니다. 하지만 정작 좋은 방을 구한 사람은 이 사람을 아버지로 둔 아들이고 정작 이 사람은 가장 싼 방을 구했습니다. 저는 이 짧은 이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요즘 많은 분들이 행복하기 위해서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 물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면 맞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물질이 필요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당장 굶어 죽는 사람은 행복할 수 없습니다. 건강도 필요하고, 자기가 하는 일에 보람도 느끼면 좀 더 행복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런데 앞의 짧은 이야기에서 말해주는 보다 중요한 행복의 요건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왜 부자는 정작 비싼 방을 얻지 못하고 가장 값싼 방을 구하는데, 그 아들은 가장 비싼 방에 머물 수 있었던 것일까요? 자신이 그렇게 해도 걱정이 없게 해주는 믿고 의지할 사람, 부자인 아버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믿고 의지할 대상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렇습니다. 언젠가 뉴스를 보았는데요. 복권에 당첨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해주었습니다.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생각하면, 엄청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공부할 때에 너무 어려운 때가 있어서, 복권을 사본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이 복권 당첨되면, 저만을 위해서 쓰지 않고요. 좋은 일에도 많이 쓰겠습니다.” 그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고는 결과를 기다리는데 당첨될 생각을 하니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하루에도 수없이 당첨이 되면 이것을 해야 되겠다, 혹은 저것을 해야 되겠다고 꿈을 꾸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을까요? 당연히 당첨되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잘못 될까봐 하나님이 생각도 하지 마라.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복권에 당첨된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떻게 되었을까요? 행복했을까요? 아닙니다. 거의 10에 9는 다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흥청망청 쓰다가 망한 사람이 있고요. 돈이 많으니까, 엉뚱하게도 좋지 않은 일에 손을 대었다가 망한 사람도 있고요. 더 불행하게는 돈 때문에 싸우다가 부부가 이혼을 합니다. 심지어는 가족 간에 살인사건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어떻게 되냐면요? 복권에 당첨되는 사람들에게는 믿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완전히 고립되어 사는 겁니다. 주변에 믿고 의지할 사람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겁니다. 돈이 그렇게 만들어 버린 겁니다. 이런 일을 생각해보면, 믿고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 일이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하나님이,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가 믿고 의지할 대상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인생들을 하나도 믿지 못하게 될 때에도, 여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대상이 되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설교문에서 함께 생각할 시편 2편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 바로 이런 행복입니다. 마지막 절에서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선언합니다. “피한다.”는 말이 “믿고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복이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시편 2편을 통하여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 말씀을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제가 시편 1편을 함께 나눌 때에, 시편은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가?” 그 교훈을 우리에게 들려준다고 적었습니다. 특히 시편 1편과 2편은 시편 150편의 서론과 같은 말씀이고, 두 시편에서 시편전체 행복론의 핵심을 말해주고 있다고도 적었습니다. 시편 1편 1절이 “복 있는 사람은, 혹은 행복한 사람은”으로 시작되고, 시편 2편 마지막 12절이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이 복이 있도다. 행복하도다.”라고 말씀하는 데서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시편 1편은 인생에는 두 가지 종류의 인생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한쪽에는 행복한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불행한 사람이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은 악한 길을 걸어가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이고요. 반면에, 불행한 사람은 하나님을 멀리하며, 그분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인생입니다. 이렇게 시편 1편은 두 종류의 사람을 대조하면서,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 그리고 누가 불행한 사람인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시편 2편 역시 1편과 유사하게 대조법을 통하여, 행복하게 사는 인생과 불행하게 사는 인생을 우리에게 교훈하여 줍니다. 먼저 1절에서 3절을 보십시다. 이 3개의 절에서 시편기자는 어떤 사람이 불행한 사람인가를 말합니다.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버리자 하는도다.” 원어를 보면, “어찌하여?”라는 굉장히 강조되고 있습니다. 원어에서도, 그리고 우리 개역성경도 “어찌하여”라는 말이 한 번 밖에 기록되지 않았지만, 주석서를 보면 사실 “어찌하여”라는 말은 “1절에서 3절까지 모두 적힌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래서 4번 이상 기록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어찌하여”라는 단어가 강조되고 있다는 뜻입니다. 보통 성경에서 “어찌하여”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탄식을 의미합니다. 대표적으로 시편 22편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치면서 탄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십자가에서 다윗이 부르짖은 이 말씀을 인용하셔서,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마27:46)”라고 아버지 하나님을 향하여 탄식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편 2편에 기록된 “어찌하여”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향한 탄식의 외침이 아닙니다. 시편 2편에서 “어찌하여”는 시편기자의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을 표현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습니다. 시편기자가 왜 안타깝고 답답해 하는 것일까요? 지금 시편기자가 보기에 불행한 길을 걷고 있으면서도, 그 길이 불행한 길임을 모르고 오히려 행복한 길이라고 믿고 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들을 바라보니까 정말로 안타깝고 답답한 겁니다. 이 사람들이 누구냐면요? 1절과 2절에 나와 있는 이방 사람들, 세상에 권세 잡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름 부으신 자를 향하여 대적하고 있습니다. 왜 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인생의 행복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3절 말씀이 이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인데요.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라고 말씀합니다.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벗어나고자 하는 매인 것, 결박은 무슨 감옥에 갇혀 있거나, 올무에 묶여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금 후에 말씀을 드리겠으나, 4절에 보면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라고 말씀하지요. 이 말씀은 하늘보좌에 계시는 하나님을 상징적으로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다스리시는 진짜 왕이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그런데 세상에 권세 잡은 악한 자들이 이것을 인정하기 싫은 겁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고 싶지가 않은 겁니다. 하나님의 다스리심이 오히려 그들을 옭아매는 것과 같고, 그들을 결박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다스림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자유요,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지금 이방의 백성들과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생각하는 행복은 하나님이 없는 행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벗어나는 행복입니다. 그래서 누구의 간섭도 없이 자신 마음대로,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겁니다. 그것이 참 자유와 행복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자녀들이 때때로 그렇습니다. 사춘기의 자녀들이 “간섭하지 마세요. 내 마음대로 할 겁니다.”라고 부모님들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 자신들 마음대로 자유를 누릴 수 있을 것 같고, 그렇게 되면 진짜 행복할 줄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착각입니다. 대부분 이런 자녀들은 행복의 길이 아니라, 오히려 탈선의 길을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부모님의 사랑과 돌봄이 없이는 우리의 자녀들은 행복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가 그것을 잘 보여줍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의 집이 답답합니다. 자신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받을 유산을 미리 받아가지고, 아버지에게서 멀리 떠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삽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다하면서, 삽니다. 처음에는 행복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가진 것을 다 탕진하였습니다. 돼지가 먹는 열매로 배를 채웠습니다. 그러다가 깨닫습니다. “내 아버지의 집에 참된 행복이 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면 시편 2편에 나오는 권세 잡은 자들처럼 하나님이 없는 것이 참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수많은 인생이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진행되면서 수많은 인생들이 교회를 비난합니다. 그 이면에 무엇이 있나요? 교회가 필요 없다. 하나님이 필요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수많은 인생들이 하나님 없이 살아갑니다. 자신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그것이 자유요, 행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착각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없이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시편기자가 고백하듯이, 하나님이 우리 행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시편 2편 기자는 이어지는 말씀에서 하나님이 없는 인생이 왜 행복할 수 없는가를 알려줍니다. 좀 전에 읽었던 4절을 보시면,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로다.”라고 말씀합니다. 조금 전에 적었듯이 “하늘에 계신 이”는 세상을 다스리는 진짜 왕이신 하나님을 말씀합니다. 그분이 자신에 대적하고 있는 세상의 권세자들을 향하여, 하늘에서 보시고 비웃고 계십니다. 자신을 향하여 대적하는 악한 권세자들에 대하여 “가소롭도다.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자들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렇지요? 이방의 백성들과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아무리 힘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대적할만한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한낱 인간에 지나지 않는 그들이 어찌 대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 가소롭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리고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다스리심과 통치를 부정하려고 할지라도 하나님이 온 세상의 통치자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로부터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 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권세 잡은 자들이 악하게 하나님의 통치를 부정하며 하나님께 대적하면 일어나느냐면요? 5절에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이라고 말씀하고, 9절에 “네가(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 믿음의 백성)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라고 말씀하며, 마지막으로 12절 전반절에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대적하는 무리들. 악한 권세들에 향하여 하나님은 무섭게 진노하십니다. 그 진노로 인하여, 악한 자들의 최후는 “망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그들은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힘이 있어도,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나님을 대적하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는 행복할 수 없습니다. 왜 그런가요? 결국 그런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하나님의 심판 앞에 멸망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결코 행복할 수 없고, 오히려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불행한 인생입니다. 그러면 누가 행복한 사람인가요? 먼저 10절을 보십시오. “그런즉 군왕들이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얻을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시편기자가 하나님이 없이 살려는 세상의 권세 잡은 자들에게 “지혜를 얻으며 교훈을 얻으라.”고 권면하는 겁니다. 어떤 지혜와 교훈을 얻으라고 하는 것일까요?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세상에서 권세를 잡았다고,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무시하여 대적하고 하나님 없이 사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것, 이것이 잘못된 것이고 착각이라는 지혜와 교훈을 깨달으라 그 말씀이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다면 진짜 행복의 길은 무엇인가? 그 지혜와 교훈을 알려줄테니 깨달으라는 말씀입니다. 진짜 행복을 주는 교훈은 무엇일가요? 11절에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 거룩한 두려움을 품고 그분을 섬기며 즐거워하는 일. 이것이 인생에게 행복을 주는 길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세상의 악한 자들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진짜 세상을 다스리시는 왕인 것을 인정하고, 그 다스리심을 수용하는 인생. 그리하여 왕 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그분의 다스리심을 기뻐하는 인생에게 참 된 행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12절 후반절에는 이 말씀을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라고 요약하여 줍니다. 서두에서 말씀드렸듯이 “피한다.”는 말은 “의지한다.”는 뜻입니다. 누구를 의지할 수 있나요? 믿고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왕이시고 통치자 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러한 인생을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 여러분. 시편 전체에서 결국 말씀하는 인생이 맛볼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 어디에 있냐면요? 바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사는 인생들을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시편 2편이 우리에게 주는 행복에 관한 지혜요 교훈입니다. 시편 112편 1절로 3절 말씀을 읽으면서 이 설교문을 끝내겠습니다. “할렐루야,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계명을 크게 즐거워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의 후손이 땅에서 강성함이여 정직한 자들의 후손에게 복이 있으리로다.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음이여 그의 공의가 영구히 서 있으리로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경외하고 자신의 말씀을 즐거이 순종하는 자에게 후손대대로 이어지는 복과 행복을 약속하십니다. 이 말씀 붙잡고, 인생의 최고 행복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일이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하시고 그 길에서 떠나지 않게 하소서! (2) 하나님 없이 오늘도 살아가는 세상의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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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설교문 –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2:1-12) – 숭실교회
시편 설교문 – 여호와께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2:1-12) – 숭실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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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1)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시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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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2편

본문 읽기

2: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2: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2: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2: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2: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2: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2: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2:9 네가 철장으로 그들을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2: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재판관들아 너희는 교훈을 받을지어다

2: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2:12 그의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의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도다

시편2편 주해

구조

시편2편은 여호와께서 시온산에 아들을 왕으로 세우시고 통치하겠다는 선언으로 메시야 시편에 속합니다. 저는 시편2편 구조를 아래와 같이 구분했습니다.

1-3절 열왕들의 모반

4-6절 하나님의 조소(嘲笑)와 선언(宣言)

7-9절 아들을 왕으로 세우심

10-12 아들과 화해하라

1. 1-3절 열왕들의 모반

시편 2편은 하나님의 놀람으로 시작한다. ‘어찌하여’는 이해할 수 없는 이방 나라와 열왕들의 행동에 대해 하나님께서 놀라신다는 문학적 표현이다. ‘이방 나라’ ‘민족들’ ‘세상의 군왕들’ ‘관원들’은 모두 ‘헛된 일’을 꾸미는 자들이다. 이들은 ‘서로 꾀하’고, ‘우리’라고 부른다. 한 통속이 되어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2절)를 대적한다. 하나님은 이들의 반항에 어이없어 하시고, 황당해 하신다. 그들은 대적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으며, 그들 자신이 얼마나 악하고 어리석인지도 모른다. ‘그들의 맨 것’과 ‘그의 결박’은 하나님의 통치, 또는 계명을 말한다. 1부는 땅의 일이다. 이제 시인의 눈은 하늘로 옮겨간다.

2. 4-6절 하나님의 조소(嘲笑)와 선언(宣言)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며 ‘그들은’ 땅에 있다. 그들이 분을 발했지만(1절),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해 분노하신다. 하나님은 선언하신다.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신다. ‘내가’가 강조된다. 그들은 반역하고 거역하지만 결국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진다.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2절)가 드러난다. 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시온의 ‘왕’(6절)이다. ‘그들은’ 무력하고 헛된 일을 꾸몄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2부는 천상에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의 선언이다.

3. 7-9절 아들을 왕으로 세우심

‘내가’(7절)는 시온의 왕이다. 그가 여호와께 받은 것을 선포한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선언한다. 고대 왕들은 신들의 아들이다. 항상 자신을 ‘~의 신의 아들’(Divi filius)로 자신을 소개했다. 땅의 왕은 하늘의 하나님을 대리한다. 그는 신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통치한다.

‘이방 나라’(8절)는 그의 유업이다. 아마도 이것 때문에 ‘이방 나라’(1절)은 분노했을 것이다. 그들은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의 통치를 거절한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 시온의 왕은 그 소유가 ‘땅 끝가지’(8절) 이르기 때문이다. 즉 모든 나라, 모든 족속, 모든 방언, 모든 민족들에게 통치권이 행사된다. 시편19편은 이 부분을 이렇게 표현한다.

[시편 19:1-6] 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2 날은 날에게 말하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니 3 언어도 없고 말씀도 없으며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4 그의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이르도다 하나님이 해를 위하여 하늘에 장막을 베푸셨도다 5 해는 그의 신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의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6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그의 열기에서 피할 자가 없도다

시온 왕의 통치는 곧 말씀의 통치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온 우주를 통치하듯 시온의 왕의 통치 영역도 무한하다. 철장과 질그릇은 시온의 왕이 능력을 드러낸다. 요한은 이 구절을 두아디라교회에 적용시킨다.

[요한계시록 2:26-27] 26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27 그가 철장을 가지고 그들을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말씀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 그것이 시온 왕의 통치 방법이다. 이제 4부로 넘어가 반항자들이 어떻게 해야 지혜로워지는가를 알려 준다.

4. 10-12 아들과 화해하라

‘그런즉’(10절)은 명백한 사실과 결론이다. 이미 답은 내려졌고, 승패를 끝이났다. 시인의 권면이 이어진다. ‘군왕들아!’는 다정하게 또는 엄위하게 경고 또는 권면일 수 있다. 지혜를 얻어야 한다. 무엇이 진정 자신을 위한 일인지를. 결국 ‘여호와를 경외함’(11절)이 지혜이다. ‘그의 아들’(12절) 여호와가 기름부은 자이며, ‘시온의 왕’이다. 진정한 복은 ‘여호와께 피하는 자’(12절)다. ‘다’는 예외 없음으로 여호와는 비록 반항하고 거역한 자라도 하나님께 돌아온 자들을 용서하시고 받아 주심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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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편 & 성경주석

<시편 2편 서론>

시편의 메시야 시편 중 첫 번째인 시 2편은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의 노래”라는 그에 걸맞는 이름으로 불려 왔다. 시 1편과 2편은 서로 보완적인 관계에 있다. 시 1편이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는 삶을 사는 선인의 행복과 악인의 궁극적인 멸망을 공표하는 것처럼, 시 2편도 여호와께 대한 열방의 반역이 헛되다는 것과 하나님의 아들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행복을 보여 준다. 시 1편은 개인들이 가는 두 길을 묘사하고 있는 반면에, 시 2편은 민족들이 가는 두 길을 묘사한다. 시 1편은 복으로 시작하는 반면에, 시 2편은 복으로 끝을 맺는다. “사람은 시도하고 하나님은 처리한다.”라는 말이 시 2편에 나타나 있는 주제인 듯 보인다.

구조적으로는 이 시가 네 연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연이 거의 동일한 수의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연(1~3절)은 우주의 통치자와 메시야에게 도전하고 있는 이 땅의 권력자들의 모습을 제시한다. 둘째 연(4~6절)은 이와 대조적인 모습, 곧 여호와께서 그들의 도전을 무시해 버리시고 메시야를 시온산에 왕으로 세우시는 모습을 보여 준다. 셋째 연(7~9절)은 하나님의 아들이 자신을 세상의 합법적인 소유주로 선포하는 명령에 대하여 깊이 숙고하고 있는 모습을 묘사한다. 넷째 연(10~12절)은 여호와의 기름부음받은 자에게 굴복할 것을 권고한다. 이 시는 복에 대한 언급과 더불어 끝을 맺는다(12절).

<시편 2편 개역한글>

1.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 맨 것을 끊고 그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도다

4. 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저희를 놀래어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9.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하시도다

10. 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11.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12. 그 아들에게 입맞추라 그렇지 아니하면 진노하심으로 너희가 길에서 망하리니 그 진노가 급하심이라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다 복이 있도다

<시편 2편 성경주석>

2:1 어찌하여 열방이.

이 시는 격렬한 혼돈 상태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돌연히 시작한다(「개역한글판」에서 “열방”으로 번역된 단어가 「제임스왕역」에는 “이방”[heathen]으로 되어 있음-역자 주). 여기에서 “이방”으로 번역된 단어의 본래 의미는 “나라들”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던 우상을 숭배하는 나라들을 일컫는 용어였다. 루터는 시인의 이 질문을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의역하였다. “여호와와 그의 그리스도께 대적하는 자들이 어찌 형통할 수 있겠느냐?”

2:1 분노하며.

히브리어 라가쉬(ragas∨). 이 단어는 오직 여기에만 나오는 것으로(아람어 형태는 단 6:6, 11, 15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의미는 “격정에 사로잡히다”, “흥분하다”이다.

2:1 민족들.

히브리어의 대구법 원칙에 따르면 이 단어는 “열방”과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이다.

2:1 경영하는고.

히브리어 하가(hagah). 참조 시 1:2 주석. 이 죄인들은 지금 자신들이 결코 성취할 수 없는 어떤 일을 꾀하고 있다. 하나님 정부에 대적하고자 하는 그들의 모든 의도는 결국 실패로 결말지어질 것임이 분명하다.

2:2 세상의 군왕들이.

2절은 1절의 일반적인 진술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한다. “군왕들”은 6절의 “나의 왕”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다. “나서며”는 결연한 저항의 태도를 나타낸다.

2:2 기름받은 자.

히브리어 마쉬아흐(mas∨iah.). 이 단어에서 “메시야”가 파생되었다. 문자적으로 “기름부음받은 자”를 의미한다. 마쉬아흐는 두 번 “메시야”로 번역되었다(단 9:25, 26). 고대 관습에 따르면 제사장들과 왕들은 자신들의 직무를 위해 위임되는 때에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았다(참조 출 28:41; 삼상 10:1). 다윗은 종종 사울을 “여호와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일컬었다(삼상 24:6, 10; 26:9 등). 이 시가 메시야적 의미를 담고 있음이 행 4:25~27을 통해서 입증된다. 참조 마 26:63; 요 1:49; 행 13:33; 롬 1:4; 골 1:18; 히 1:2~5.

2:3 그 맨 것을 끊고.

하나님께 반역하는 자들이 여호와의 권위에 의해 부과된 속박을 끊고자 하는 자신들의 갈망을 공공연히 이야기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기서 시인이 묘사하는 것은 반역자들의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들의 의도를 방자하게 선포하고 있는 모습이다.

2:4 웃으심이여.

열방의 떠들썩한 모습과는 대조적으로 여호와는 하늘에서 반역자들의 헛된 시도를 보고 웃으시며 조용하면서도 차분하게 앉아 계신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참조 교육, 173; 치료봉사, 417). 모든 것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는 부패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계획을 방해하며 또한 그들의 행동노선을 우매한 것으로 돌려놓는다(참조 삼하 15:31). 여기서 하나님은 인간의 속성들을 지닌 존재로 묘사되고 있다. 즉 그는 “웃으신다”(참조 시 37:13; 59:8 등). 탈무드에 “토라(율법)는 인간의 언어로 말한다”라는 말이 기록되어 있다. 영감받은 저자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특성들과 속성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것들을 사람의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엘렌 G. 화잇이 “가나안의 언어”를 쓸 줄 몰라서 하늘의 영광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였던 것과 비교하라(초기문집, 19). “웃으시다”의 의미가 “비웃으시다”, “분을 발하시다”, “진노하시다”(4, 5절)라는 단어들에 의해 더 확대 표현되고 있다. 이것들은 모두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경멸을 나타내는 단어들이다.

2:5 그때에…이르시기를.

언뜻 보기에는 하나님이 이 일에 무관심하신 듯하다. 하지만 그의 이 같은 태도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그때에”라는 단어가 하나님이 마침내 자신의 결심을 선포하실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2:6 내가 나의 왕을…세웠다.

(「제임스왕역」에는 이 문장에 “이미”[yet]가 첨가되어 있음-역자 주). “이미”(yet)는 보통 “그리고”(and)로 번역되는 히브리어 접속사를 번역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 단어는 인용문을 소개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다. 이 문장에서 대명사 “나”가 강조되어 있는데, 이 “나”는 여호와를 대적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자들을 일컫는 “저희”(5절)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2:6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참조 시 48:2. 시온은 본래 예루살렘 성읍 안에 있는 남쪽 언덕 이름인데, 후에 예루살렘에 대한 시적 명칭이 되었다.

2:7 내가 영을 전하노라.

이제는 기름부음받은 자이며, 말씀이며, 하나님의 대변자인 예수가 자신이 아들 됨에 관한 하나님의 큰 선포에 대하여 설명한다. 그의 직분은 다른 어떤 존재에게서 빼앗아 온 것이 아니다. 그의 메시야 직분은 아버지의 명령에 근거한 것이다. 이 명령에는 (1)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과 (2) 그가 온 세상의 통치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8, 9절; 참조 겔 21:27).

2:7 내 아들.

참조 히 1:2, 5; 마 14:33; 16:16; 행 8:37; 요일 4:15.

2:7 너를 낳았도다.

이 말을 아들의 최초 탄생을 의미하는 말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에게는 원래부터 있고 빌려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파생되지 않은 생명이 있다”(시대의 소망, 530). 성경에 대한 가장 좋은 해석자는 성경 그 자체이다. 영감받은 저자들은 구약의 예언들을 정확하게 적용하였을 것임이 틀림없다. 다른 모든 적용은 인간의 견해에 근거한 것으로, 이것들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신” 것들이 아니다(참조 신 18:15 주석). 이 본문의 예언에 대한 영감받은 사도의 주석에 근거해 볼 때, 시인의 이 말은 예수의 부활에 대한 예언임이 분명하다(행 13:30~33). 예수가 죽음에서 부활함으로 결코 모방할 수 없는 방법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선포되었다(롬 1:4).

2:8 내게 구하라.

여호와와 메시야의 관계는 아들의 어떤 요구라도 다 들어주시는 그런 관계이다. 기름부음받은 자의 정부를 전복하려는 반역자들의 모든 시도가 완전히 허사가 되었음이 강조되고 있다. 아들은 후사로서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는다. 따라서 그는 그와 함께 후사가 된 우리와 그 유업을 나눌 수 있다(참조 롬 8:17 주석).

2:9 철장.

통치자의 권위에 대한 상징. 메시야의 원수들은 철저한 패배를 맛보게 될 것이다.

2:9 부수리라.

참조 계 2:27:12:5; 19:15.

2:10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반역자들 앞에 두 길이 놓여 있다. 그들은 계속 반역하여 멸망에 이르는 길로 나아갈 수도 있고, 아니면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여 영원한 행복에 이를 수도 있다. 시인은 동료들을 위해 탄원하는 그들의 형제로서 반역의 지도자들에게 하나님께 굴복할 것을 엄숙히 권고한다. 반역은 어리석은 일이다.

2:10 교훈을 받을지어다.

문자적으로 “충고를 받으라”, “훈계를 받으라.” 시인이 지도자들에게 여호와와 메시야에 대한 자신들의 의무를 깨닫고 또한 깨달은 의무를 권장하는 데 자신들의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충고하고 있다.

2:11 경외함으로.

이 말과 “떨며”라는 말에는 겸손히 하나님을 숭배하는 것이 암시되어 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뜻에 반역한 결과가 얼마나 무서운 것이지를 깨달은 데서 오는 두려움도 포함되어 있다. “즐거워할지어다”라는 말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일에는 기쁨이 뒤따른다는 것을 보여 준다.

2:12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즉 여호와가 당신의 아들로 선포한 메시야를 경배하라. “입 맞추라”라는 말은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존경심을 표하는 동방의 관습을 연상시킨다(참조 삼상 10:1). 시인은 메시야에게 반역하려는 자들에게 그를 왕으로 인정하고 그의 통치에 굴복하라고 충고한다(참조 요 5:23).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라는 번역이 히브리어 본문을 아주 자연스럽게 번역한 것임에도 고대와 현대의 번역판들에서 이와 상이한 다양한 번역들을 찾아볼 수 있다. 「70인역」에는 이 구절이 “교훈을 붙잡으라”로 번역되어 있다. 또한 「불가타역」에도 이와 동일하게 번역되어 있다. 이 번역판들은 여기에서 “아들”로 번역된 단어에 대한 유대교의 설명에 그 근거를 두고 있는 듯하다. 이 설명에 따르면 여기에서 “아들”로 번역된 단어는 히브리어 벤(ben)이 아닌 아람어 바르(bar)이다. 유대인들은 바벨론 유수 이후 이 바르(bar)라는 단어를 토라(Torah)의 훈계를 나타내는 말로도 사용하였다. “입 맞추다”로 번역된 나샤크(nas∨aq)라는 단어는 “결합하다”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나샤크가 “부딪히다”로 번역되어 있는 겔 3:13을 참조하라). 「70인역」의 번역은 이 두 의미를 결합한 것이다. “입 맞추다” 대신 “경의를 표하다”로 쓰인 번역판들도 여럿이 있다(「모팻역」, 「레이(Ray)역」, 미국 유대 출판 협회역). “경의를 표하다”는 “입 맞추다”로 번역된 단어에 대하여 설명을 곁들여서 번역한 것에 불과하다.

초기교회가 다윗을 시 2편의 저자로 인정하였음에도(행 4:25) 비판적인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이 시를 바벨론 유수 이후 작품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둘 모두 “아들”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히브리어 벤과 아람어 바르가 시편에서 서로 호환적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자신들의 주장의 근거로 제시한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이미 그 타당성을 상실하였다. 이 두 단어가 BC 14세기에 기록된 한 우가릿 문헌에서 서로 호환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를 통해서 성경의 어떤 책에 아람어 단어들이 나온다고 해서 그것이 그 책이 후기에 쓰였음을 보여 주는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의 발에 입 맞추라”라는 「개정표준역」의 번역은 글자 수의 재배열을 포함한 히브리어 본문의 재구성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 본래의 히브리어 본문은 번역하기에도 용이하고 또한 그 번역이 문맥상으로도 전혀 무리가 없다. 따라서 원문의 의미에서 동떨어져 있는 「개정표준역」의 번역은 거부되는 것이 마땅하다. 이 본문의 번역상의 문제점에 대한 전체적 논의에 관해서는 성경 번역 상의 문제들(Problems in Bible Translation), 144~147을 참조하라.

2:12 길에서 망하리니.

무한한 사랑(요 3:16)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결국은 죄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발하여지며 또한 그 진노가 메시야를 영접하지 않는 사람들을 삼켜 버릴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마음으로 이스라엘이 구원받기를 열망하신다(참조 겔 18:30, 31). 그는 죄인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32절).

2:12 다 복이 있도다.

이 시는 여호와의 왕을 신뢰하는 모든 이에게 복을 선언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 사람은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모두가 다 죄를 범하였으며 따라서 모두가 다 구세주를 필요로 한다. 자신들의 필요를 깨닫고 메시야를 신뢰하는 자들은 복이 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아들인 예수의 통치에 복종하도록 그들에게 호소해야만 하는 엄숙한 의무가 지워져 있다. 시 2편은 메시야의 선교 찬양으로 불리고 있다.

출처 :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성경주석」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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