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석하 | 2015.09.20
지난달 임상의학저널(Journal of Clinical Oncology)에는 ” Electroacupuncture Versus Gabapentin for Hot Flashes Among Breast Cancer Survivors: A Randomized Placebo-Controlled Trial ” 이라는 제목의 유방암 생존자의 상열감에 대해 전기침과 가바펜틴의 효과를 비교한 무작위배정 임상시험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미국 펜실베니아 주립대병원 의사인 준 마오(Jun J, Mao) 교수팀은 120명의 환자들을 4 그룹으로 무작위로 나누어 진짜 전기침, 가짜 전기침, 가바펜틴 복용, 위약(가짜약) 복용의 치료를 8주 동안 진행해고 효과를 평가했다. 그 결과 놀랍게도 전기침 치료가 약 복용에 비해 효과가 월등하고 부작용은 적다는 결론이 나왔다.
▲임상종양학저널에 발표된 전기침치료에 관한 논문
한의신문은 “유방암 환자의 상열감, 전기침의 부작용 없는 치료 효과 확인”이라는 제목으로 이 연구결과를 소개 했으며 최근 한의학 논쟁이 불붙었던 인터넷 커뮤니티 ‘MLBPARK’에는 한 네티즌이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다 효과없다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무언가 비판을 하려면 일단은 알고서, 조사후에 판단을 내려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인터넷 환경이 참 아쉽네요.”라며 한의학의 연구 성과라며 이 논문을 소개 해 1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며 한의학 옹호론자들과 비판론자들간에 설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연구는 침술 연구 중에서는 상당히 잘 설계된 편에 속하고 환자들이 자신이 받는 치료의 진위 여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까지 꼼꼼하게 살폈다는 점도 주목할만하다.
이렇게 잘 설계된 연구를 진행해 영향력이 큰 학술지에 전기침 치료가 약 복용에 비해 효과가 월등하고 부작용은 적다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연구에서 발견된 사실은 한의학의 손을 들어주는 결론이 아니라 한의사들을 좌절시키는 결론이다. 이 연구의 의미를 자세히 분석해보자.
약보다 침이 효과가 높고 부작용이 적은 이유는 실제 치료효과가 아닌 환자의 기대감 때문일 수 있다.
논문에는 임상 시험 참여자들 중에는 침 치료에 기대감을 갖는 환자들과 약물 치료에 거부감을 갖는 환자들이 많다는 점이 드러나있다. 연구팀은 처음에 498명의 환자들에게 임상시험을 제안했는데 이 중 26명은 침을 맞기 싫다는 이유로 거절했으며 약 세배가 넘는 수인 84명은 약을 복용하기 싫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에 비추어보면 임상시험에 응한 환자들도 대체로 약물에 대한 거부감이 침술에 비해 컸을 가능성이 높다.
가짜 전기침을 맞은 환자들은 3%만 부작용을 호소한 반면, 몸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가짜약을 복용한 환자들은 약 7배 인 20%가 부작용을 호소했다. 이는 위약효과(placebo effect)와는 반대의 경우로 노시보효과(nocebo effect)라고 하는데 어떤 처치가 해롭다고 믿는 환자들에게서 인체에 아무런 영향이 없는 처치에도 악영향이 발생하는 현상을 말한다. 또 어떤 환자들은 다른 원인이나 저절로 발생한 문제를 약물(실제로는 가짜약) 탓이라고 믿었을 수 있다.
진짜 전기침이나 가짜 전기침이나 효과의 차이가 미미하다다.
마지막 치료를 마친 8주째에 전기침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증상이 47.8% 개선됐다고 보고했고, 가짜 전기침 치료를 받은 그룹은 45.0% 개선됐다고 보고했다. 고작 2.8% 차이다. 치료가 끝나고 4개월 뒤에 환자들에게 다시 상열감을 보고받았는데 이때는 전기침 치료를 받은 환자들은 증상이 54.8% 개선됐다고 보고했고, 가짜 전기침 치료를 받은 그룹은 46.6% 개선됐다고 보고했다. 8.2% 차이다. 이렇게 차이가 작다는 점은 전기침의 효과가 실제 치료작용이 아닌 위약효과에 불과할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다.
▲전기침 시술
이 연구의 설계에는 맹검(blinding)에 허점이 있다.
치료효과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위해서는 환자 스스로가 진짜 치료를 받았는지, 가짜 치료를 받았는지 몰라야 한다. 기대감이 결과에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짜 침과 가짜 침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자신이 받은 침 치료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낌새를 챘다. 진짜 침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51.7%가 자신이 받은 치료가 진짜라고 생각했고, 가짜 침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36.7%만이 자신의 치료가 진짜라고 생각했다. 진짜 침 치료를 받은 사람 중 자신이 가짜 치료를 받았다고 믿은 비율은 13.8%였고, 가까 침 치료를 받은 사람 중 진짜 치료를 받았다고 믿은 비율은 23.3%였다.
또한 치료를 하고 결과를 평가하는 쪽에서도 자신이 하는 치료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몰라야 한다. 치료사가 진위여부를 미리 알면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생기고 은연중에 환자에게 진짜 치료인지 가짜 치료인지 암시를 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결과를 평가할 때에는 어느 환자가 가짜 치료를 받았는지 알면 연구자가 의도한 결과가 나오게 해석에 왜곡이 생길 수 있다. 이 연구에서는 결과를 해석하는 쪽에서는 맹검이 이루어졌지만 침술사는 자기가 놓는 침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고 있었다.
진짜침과 가짜침은 자극의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가짜침은 진짜침과 대등한 대조군이 되지 못한다.
진짜 전기침은 침을 환자가 특별한 자극(De Qi, 得氣)을 느낄 때까지 피부에 삽입하고 전기 자극을 준다. 가짜 전기침은 경혈이 아닌 부위에 놓는데 피부에 박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침이 피부를 뚫지 않고 손잡이 쪽으로 숨으며 실제로는 전기 자극이 가해지지 않지만 전기자극기가 작동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불빛이 깜빡거린다. 즉, 진짜 전기침을 맞은 환자는 피부 속 깊이 찌르는 자극과 전기 자극을 느끼지만 가짜 전기침을 맞은 환자는 잠깐 피부에 닿는 감촉만 느낀다.
왜 가짜 침도 효과가 좋을까?
가짜든 진짜든 전기침 치료를 받은 사람들은 진짜약(가바펜틴) 또는 가짜약을 복용한 환자들에 비해 더욱 증상이 좋아졌다고 보고했다. (8주째: 진짜침 47.8%, 가짜침 45.0%, 진짜약 39.4%, 가짜약 22.3%; 치료 후 4달 뒤: 진짜침 54.8%, 가짜침 46.6%, 진짜약 21.2%, 가짜약 30.3%)
가짜 침에도 진짜 침 못지않은 큰 효과가 나타난 이유로는 임상시험에 참여한 환자들이 침술에 대한 기대감과 약물 치료에 거부감을 가진 경우가 많기 때문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가바펜틴의 효과 보다도 더욱 큰 위약효과가 나타난 것이다.
어쩌면 진짜 침을 맞은 사람들과의 공통된 조건도 원인으로 작용했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침을 맞으러 병원을 규칙적으로 다니는 행위, 침술사와의 접촉에서 얻는 안정감 등 치료 외적인 부분의 영향도 있을지 모른다.
경혈을 자극해 막힌 기혈을 뚫어 병을 치료한다는 한의학(중의학) 원리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진짜 침이나 가짜 침이나 효과가 도토리 키재기라는 점(2.8~8.2% 차이)을 보면 전기침 치료 효과의 95% 정도는 위약효과에 해당한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리 작더라도 차이가 있으니 중의학 원리가 작용한다는 증거가 되지 않느냐고 속단할 수도 있다. 그 전에 먼저 진짜 침이 가짜 침보다 미묘하게 효능이 좋았던 이유를 따져보아야 한다. 이 미묘한 차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원인일 수 있는데 몇 가지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1. 경혈을 자극해 막힌 기를 뚫는 침술의 신묘한 효과 (한의학 원리)
2. 근육을 찌르는 행위
3. 피부 속에 가해지는 전기 자극
4. 침술사가 맹검이 안 되어 끼친 영향
5. 근육이 찔리고 전기가 찌릿한 느낌으로 인해 더 커진 위약효과
6. 환자들이 자신의 치료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눈치를 채 진짜치료를 받는다고 믿는 비율이 15% 차이가 났다는 점 (진짜침 그룹 51.7%, 가짜침 그룹 36.7%)
7. 우연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정확히 똑같은 정도씩 증상이 개선될 가능성은 없으므로)
그런데 일단 1번의 효과는 잘해야 5% 남짓이고, 이 임상시험 설계에서는 그 5%가 1~7번 중 어디서 나왔는지 가려낼 수 없다. 개인적으로는 1번을 뺀 나머지 요인들이 더 설득력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진짜와 가짜 침 치료의 차이를 가르는 여러 요인들을 대충 균등하게 나누더라도 전기침 치료를 받고 환자들이 좋아진 원인에는 한의학적 원리가 기껏해야 1%도 못 들어갈 형편이다. 각 집단의 숫자가 30명 정도밖에 안 되고, 게다가 효능 평가는 객관적 측정이 아닌 환자의 주관적 평가라는 점을 보면 경혈을 뚫는 침술의 한의학적 원리는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정리하자면, 침 치료로 얻은 효과 중에 한의학 원리가 끼어들 틈은 1%도 안 된다. 논문에서 저자들이 내린 최종 결론도 “결론적으로, 침술은 유방암 생존자들의 상열감에 대해 약 복용보다 위약효과가 크고 노시보효과가 적다.”였다.
환자에게 가장 좋은 치료는 가짜 전기침이다.
진짜침은 가짜침과 효과는 비슷했지만 부작용은 5배나 높았다(진짜침 16.7%, 가짜침 3.1%). 따라서 효과는 거의 차이가 없고 부작용은 크게 덜한 가짜 전기침이야말로 유방암 완치 환자의 상열감에 가장 권할만한 치료법이다.
침 치료의 윤리문제가 드러나다.
가짜 전기침 치료는 치료가 아니라 치료를 하는 척 하는 연기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에 한의사의 능력이 필요하지도 않고 한의사의 면허 범위로 제한되는 의료행위도 아니다. 그러므로 의한방 협진 따위를 하지 않더라도, 환자를 속이는 데 대한 윤리적 문제만 접어둔다면 의사들도 가짜침 치료로 환자의 증상을 개선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큰 윤리적 문제가 제기된다. 한의사들의 의료행위는 어떤가? 현재까지 의학계에서 평가가 이루어진 침술의 효과는 대부분 위약효과에 불과하다는 결론이거나 위약효과보이상이라고 보기에는 근거가 부족하다는 결론이다. 한의사들의 한의학을 믿는 환자들에게 하고 있는 의료행위는 실상은 치료하는 척 하는 연기와 아무런 차이가 없는 짓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환자를 위해 가짜침이 실제로는 위약효과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가짜침 시술을 한다면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있을까? 한의사가 과학적 근거와는 반대로 자신의 침 치료가 효과가 있다고 믿으며 환자들에게 시술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있는 행위인가?
침술의 원리인 기와 경혈을 뒷받침하는 과학적 근거는 희박하지만 침술의 효능을 확인하기 위한 연구는 수십 년 전부터 서양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실시됐다.
방대한 연구들이 가리키는 바를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침술은 통증이나 메스꺼움 등의 주관적 증상에 대해서는 다소 효과가 있다. 그런데 정교하고 규모가 큰 연구일수록 침술의 효과는 플라시보 효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이 많이 나온다.
경혈을 찌른 경우와 경혈이 아닌 곳을 찌른 경우를 비교하거나 피부를 관통하지 않는 가짜침 대조군을 이용한 임상시험에서는 대부분 침 치료의 효과가 대조군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거나 차이가 작다. 침술은 강력한 플라시보 효과를 낸다는 점은 인정받고 있으나, 그 이상의 진정한 효과가 있는지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최근 에 발표된 하버드대 연구팀의 임상시험 결과도 이런 경향성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연구팀은 정량적감각측정검사(quantitative sensory testing, QST)를 이용해 침을 꽂고 동시에 전기자극을 주는 전기침(electroacupuncture)과 가짜침이 말초신경의 감각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 차이가 있는지 평가했다. 실험에는 목이나 허리 통증 환자 및 환자가 아닌 사람들이 참여했다. 연구팀은 부수적으로 전기침, 가짜침, 침을 맞지 않은 환자들 간에 증상 완화 효과에 차이가 있는지도 평가했다.
연구의 주 목적인 QST 평가 결과에서는 전기침과 가짜침 사이에 차이가 없었다. 침을 꽂으면 신경생리학적 변화가 유발된다는 기초 연구들이 있지만, 사람에게 침을 찌르고 전기 자극을 주었을 때나 가짜침을 사용했을 때 말초신경의 감각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는 차이가 없다는 의미다.
환자들의 증상 개선에는 애매한 결과가 나왔다. 전기침 그룹은 침 치료를 받지 않은 대조군과 비교했을 때 통증 감소에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있었다. 가짜침 그룹은 침 치료를 받지 않은 대조군과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기침이 가짜침과는 달리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픽/윤세호기자 [email protected]ⓒ의협신문
그런데 전기침과 가짜침 그룹을 비교하면 통계적으로 유의한 차이가 없었다. 가짜침 그룹이 보고한 통증 완화 효과는 전기침 그룹에 비해 크기가 작아서 양쪽 그룹 모두와 통계적 유의성이 없는 것이다.
이런 식의 결과들로 인해서 어떤 학자들은 침 치료가 진정한 효과를 어느 정도는 지니고 있다고 여기고, 어떤 학자들은 약간의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두 그룹 간에 피험자들이 느끼는 자극의 강도나 맹검(blind) 처리 등 통제되지 않은 요인으로 인한 것이라고 여긴다.
작년 에는 통증 환자에게 침 치료를 권해야 하는지에 대해 찬성과 반대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의 의견이 동시에 실리기도 했다.
침술에 대한 더 이상의 연구조차도 무의미하다는 의견도 있다. 과학중심의학(science-based medicine)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침술은 비과학적 원리를 바탕으로 하며, 이미 수천 건의 임상시험을 했음에도 효능을 입증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이상의 연구는 자원 낭비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근거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이 모든 질환에 대한 침 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효과가 입증된 치료를 필요한 환자들에게 제공해야 할 건강보험 재원이 수많은 연구에도 효과를 입증하지 못한 치료법을 조장하는데 사용되는 셈이다.
국내에서는 학계의 동향이 전혀 반영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외국 상황이 왜곡돼 전달된다. 미국 대형 암센터들의 보완의학 부서에서 침술사들 2∼3 명이 마사지사들과 동급으로 일부 환자들에게 침을 놓는 현실이 “미국에서 암 환자에게 한방 치료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는 식으로 보도된다.
미국에서 침술사면허 등 자격을 갖추면 한약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영양보조 목적을 넘어 암 같은 질병을 치료해준다며 돈을 받아 챙기면 교도소에 간다는 사실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2003년에 한의약육성법이 제정됐다. 지난해는 서울시, 올해는 경기도에서 한의약 육성 조례안이 통과됐다. 우리나라 밖에서 벌어지는 연구 동향에 눈을 뜨고 전문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인다면 한의약 육성이 아닌 한의약 폐기가 국민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조치임이 명백한데, 법률과 조례를 입법하는 의원들이 언제쯤 진실을 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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