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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전서 10장 주석 – 바울서신 – 예사랑 성경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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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고린도전서 10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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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학 – 고린도전서10장주석. 고전10:1-33 우상숭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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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L NOCR – 메튜 헨리 주석, 고린도전서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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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튜헨리주석1071-고린도 전서 10장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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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장. 그리스도인 생활의 원리 – 벧샬롬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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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10장 강해설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시다(고전 10: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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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삽시다”(고전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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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 22 고린도전서 10장 주석 Trust The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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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전서 10장 주석
헬라어 고린도전서 10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메튜 헨리 주석 고린도전서 10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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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별설교] 고린도전서 10장 일어선 자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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ê³ ë¦°ëì ì ê°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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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 전서 10장 주석
고린도전서 제 10장
=====10:1
헬라어 본문에는 접속사 ‘가르'(* , 왜냐하면)가 있어서 앞 문단의 내용과 본
장의 내용이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형제들아 – 바울은 이방인인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형제’라는 말을 사용함으로
써 교회 전체를 하나의 몸(body)으로 이해하였다. 또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이스라
엘의 출애굽 사건과 연결시킴으로써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에 기독교 교회의 근원이 있
음을 시사하였다. 롬 4장과 11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이라는 원 줄기에서 교회가 접목
되었음을 말하였다. 그러한 영적 관계의 맥락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이 교회
구성원들의 조상이 될 수 있다.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출애굽 사
건을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다. 바울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그들이 출애굽 사건이
지닌 참된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할까하는 염려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다 – 여기에서 ‘다'(* , 판테스)라는 말이 강조되어 2, 3, 4
절에서 5번에 걸쳐 반복된다. 이처럼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멸망
하였다(5절)는 사실을 더욱 강조하기 위함이다.
구름 아래 있고 – ‘아래’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 )는 공간적으로 구름 아
래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아 출애굽하여 구원받았다는 사실
을 말한다. 여기서 구름은 하나님의 인도를 의미한다(출 13:21, 22;14:19, 24등).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확실히 체험하였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받았다. 따라서 고린도 교인들도 끊임없
는 경건과 영적인 각성(覺醒) 없이는 멸망받은 이스라엘 조상들과 같은 전철(前轍)을
밟게 될 것이다. 본절에서 바울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통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하고 있다.
=====10:2
모세에게 속하여 – 홍해를 건너는 위기의 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롤 굳게
믿음으로써 모세와 하나로 결합되었음을 의미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연합체를 이루는 것이다(롬 6
:3-5).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 혹자는 구름과 바다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인들
과 공간적으로 차단해 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해주는 역할이었고 동시에 모세의 권위를 높여주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제자
가 되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구름과 바다가 그리스도인
들의 세례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한다(Lenski). 그러나 이에 대한 보다 심층적
인 의미를 분석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기둥을 통해 인도
함을 받고 홍해 바다를 건너는 체험을 함으로써 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초자연적 능력을 극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은 하나님께
서 택하신 거룩한 백성이라는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을 갖게 해주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구름 기둥과 홍해 바다’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 곧
‘구원 받은 백성’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구름과 바다’는 구원
의 도구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인의 ‘물세례’를 상징한다(롬 6:3).
=====10:3
신령한 식물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콘 브로마'(* )
에서 ‘식물’을 뜻하는 ‘브로마'(* )는 단순히 ‘고기’만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
고 전반적인 음식물을 나타낸다. 본문은 ‘만나’를 가리키는 것임이 분명하다(출 16:
4, 14-18). 그런데 이 ‘만나’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이 다양하다. (1) 유형론적(類型論
的, typical) 해석을 하는 자들의 견해로, 이에 따르면 ‘신령한 식물’은 보다 고상하
고 미래적인 것의 모형으로서 물질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
나 이것은 성경에서 쓰여진 ‘신령한’이라는 단어의 사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2) 혹자
는 이를 ‘영혼을 위한 식물’이었다고 해석한다. 즉 만나는 신 뿐만 아니라 영혼을 위
해서도 주어진 음식이라는 견해이다(Calvin). 이 견해에 따르면 ‘만나’는 곧 성만찬
때 예수님께서 나누어 주신 떡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소
무리한 해석이다. 왜냐하면 만나는 평상적인 주식물(主食物)로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
이다(느 9 : 15). 또한 예수님께서는 만나가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인 효력이 없음을
말씀하시고 예수 자신만이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참 떡이심을 가르쳤다(요 6:49-58).
(3) 혹자는 만나를 ‘성령으로부터 유래된'(procceding from the Divine Spirit) 것으
로 보는데 이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창 1:2; 시 33:6).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
물 가운데에서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만나는 자연적이고 일상적인 음식이 아니라 성령
의 역사로 공급된 초자연적인 양식이었다.
=====10:4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 – ‘따르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콜루두세스'(*
)는 미완료형으로서 계속적으로 뒤따랐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
로 몇몇 주석가들은 바울이 랍비들 사이에서 전해져오는 우화를 인용하였다고 주장한
다(Ruckert, Baur, de Wette, Meyer). 그 우화에 의하면 14피트 높이의 바위 덩어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다니며 물을 뿜어냈다고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러한 전
설을 근거로 해서 교회를 가르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반석’에 해당하는 헬라
어 ‘페트라스'(* )는 움직일 수 있는 바윗 덩어리를 가리키는 ‘페트로스'(*
)와는 달리 움직일 수 없는 고정된 암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절에서 바
울은 물질적인 바위 배후에 그 물의 참된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주
지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마셨으매 – 앞 문장에서의 ‘마셨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온'(* )은 부
정 과거로 마신 것이 과거 사실이라는 점에 역점을 두는 반면, 본 구절에서의 ‘마셨으
매'(* , 에피논)는 미완료 시제로 사용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해서 마셨
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적인 방법을 통하여 메마른 광야에서
계속 물을 공급받았으며 그 공급의 근원은 바로 그리스도였다. 바울은 구약 시대에나
신약 시대에나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생명의 떡이며 물이심을 강조하
고 있다(요 6 : 31, 32). 주께서는 배고픔과 갈증으로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시급했던 음식과 물을 제공 하셨다(요 7 : 37-39). 마찬가지로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신령한 음료’와 ‘신령한 식물’의 근원이
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바울은 주지시킨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 바울이 그리스도를 반석에 비유한 것과 같이 신 32 :
4, 15, 18등에서는 하나님을 반석에 비유하고 있다. 이사야는 여호와를 ‘능력의 반
석’, ‘영원한 반석’ 등으로 표현하는데(사 17 : 10 ; 26:4) 이는 그리스도에 관한 것
임이 분명하고(요 12:41) 본 구절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이미 선재(先在)
하셨음을 뒷받침하는 구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의 신령한 반석이셨던 여호와가 바로 그리스도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들과
동행하셨으며 그들의 구원자였다.
=====10:5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령한
음식인 만나보다는 애굽의 고기를 더 좋아하는 등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고 원망하는 죄를 범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
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멸망당하는 운명에 처할 수 밖에 없었다(민 26:65).
멸망을 받았느니라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테스트로데산'(* )
은 ‘카타스트론뉘미'(* )의 부정과거 수동태로 씨앗 등이 흩뿌려져
‘표면을 뒤덮다’ 또는 폭풍으로 말미암아 ‘쓰러지다’의 뜻이 있다. 본절은 민 14 : 16
을 인용한 것으로서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비참하게 멸망받은 모습을
생생히 표현해 주고 있다. 바울이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예로 든 이유는 비록 그들이
성찬에 유추(類推, analogy)될 수 있는 ‘신령한 식물과 음료’를 먹고 마셨을지라도 하
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할 때에는 멸망받았던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성찬’에
참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할 때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음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10:6
거울이 되어 – ‘거울’에 해당하는 헬라어 ‘튀포이'(* )는 ‘튀프토'(*
,’치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타격을 가한 흔적’이라는 뜻이었다가 후에는
‘표상’, ‘윤곽’ 등의 뉘앙스를 가진 ‘형식’을 의미하였다. 또한 신약에서 이 단어는
‘표상'(롬 5:14), ‘식양'(행 7:44), 본받아야 할 ‘모범'(살전 1:7;살후 3:9;딤전
4:12;벧전 5:3) 등의 의미를 가졌다. 본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하나의 흔적으로 새겨놓으라는 강한 의미
를 담고 있다.
악을 즐겨하는 자 – ‘즐겨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뒤메산'(* )
은 ‘뒤모스'(* , ‘영혼’)와 전치사 ‘에피'(* , ‘…쪽으로’)의 합성어로
사람의 마음이 뭔가를 하고자 하여 한쪽으로 쏠려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민 11:4, 5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을 갈망했었다. 그들이 애굽에서 먹던 고기와 야채를 간
절히 사모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채워주시기는 하셨으나 그들의 탐욕에 대
해서는 진노로 큰 재앙을 내리셨다(민 11:33, 34).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에 대한 갈
망은 곧 그들의 불신앙의 증거였다. 바울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전제로 고린도 교
인들이 이교도들의 희생 제물 축제에 참여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10:7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데 에이돌롤라
트라이 기네스데'(* )의 문자적인 의미는 ‘우상 숭배
자가 되기를 멈추라’는 뜻으로 바울의 이러한 표현은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가 이미
우상 숭배를 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스라엘 백성 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숭배한 것(출 32 :4ff.)같이 이교도들의 관습, 즉 우상의 신전에서 열리는 연
회에 참가함으로써 우상 숭배의 행동을 범하였다. 바울은 8장에서 우상 제물에 대한
문제를 이미 다루었고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와 고린도 교인의 우상 숭
배를 비교하고 있다.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경배한 후 불경
스러운 향연을 벌인 모습을 묘사한다(출 32:6).
뛰논다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이제인'(* , ‘어린아이 같이 놀
다’)은 특별히 춤추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어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가운데 놓고 놀며 춤추던 것을 묘사할 때로 사용되었다(출 32:6).
=====10: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또하나의 범죄는 ‘간
음’이었다. ‘간음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르뉴오멘'(* )은 일반적으
로 성적인 부정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된 용어로서 5장에서 사용된 용어들과 어원이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을 지날 때 그곳에 있는 모압 여인들에게 이스라엘 젊은
청년들이 유혹을 받아 바알브올 우상을 경배하였다. 바알브올을 섬기는 제사 행위는
처녀들과의 음행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민 25 : 1-9). 따라서 우상 숭배와 간음은 불가
분의 관계가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 당시의 고린도 지역도 종교적인 매춘 행위
가 성행하던 도시로 이름이 높았다. 고린도 교인들은 여신 ‘비너스’를 섬겼으며 비너
스 신전에서 열리는 우상의 축제에는 바알브올을 섬길 때 행해지던 음행이 그대로 재
현(再現)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절의 내용을 통하여 우상 숭배와 간음죄는 하나님
께 큰 죄악이므로 그러한 유혹에 빠지지 말 것을 간곡하게 권면하고 있다.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브올 우상을 섬기며 그곳 여인
들과 음란한 교제를 나눌 때 하나님께서는 징벌로 전염병이 돌게 하셨으며 그 일로 이
만 삼천 명이나 죽음을 당해야만 했다(민 25 : 1-9). 한편 그 당시 죽은 사람의 숫자
가 민 25 : 9 (70인역), 필로(Philo), 요세푸스이(Josephus) 등에 의해 2만4천 명으로
제시되어 천명의 차이가 생긴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민 25:9의 내용이 환난의 전 기
간(이틀) 동안의 희생자를 언급한 데 반하여 본절에서는 당일 하루만 계산한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10:9
시험하다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페이라조멘'(* )은
하나님의 선하심, 능력, 지혜 등을 그릇된 동기에서 알아보려는 인간의 생각을 가리키
는 동사이다(마 4:7;행 5:9;히 3:9).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관용을 시험하고 구원의 능력을 시험하였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죄 중에서 가장 큰 죄이다.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였던 것처
럼 고린도 교인들도 주를 시험하는 죄를 범하였다. 그들은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그리
스도인의 자유를 사용함에 있어서 그 한계(限界)를 벗어났다. 즉 이교도들의 우상 축
제에 참여함으로 주를 시험하였던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우상
숭배의 죄에 빠지지 않도록 구원하실 수 있는지를 시험하였으며 설사 그러한 죄를 범
했다고 할지라도 용서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관용이 있는지를 시험하였다. 바울
은 고린도 교인들의 이런 상태를 경고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의미로 2인칭 복수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로써 주를 시험할 가능성이 바울을 포함한 모두에게 있음을 시사한
다.
=====10:10
원망하다가 – 본절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네번째 잘못을 언급하고 있
다. 이것은 모세와 아론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이었다. 본절은 고라의 반역과
그를 따르는 일만 사천 칠백 명이 염병으로 멸망한 사건을 가리키는 듯하다(민 16:41,
49).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이 9장에도 나오는데 본절이 가나안 정탐군의 보고를 듣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향해 원망을 발했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언급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 없었으
므로 전자의 경우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Godet).
멸망시키는 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올로드류투'(* )는 히브리
어 ‘함마쉬히트'(* )의 인용으로(출 12:23)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기
위해 온 멸망 시키는 하나님의 ‘천사’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다가 치명적인 염병(plague)으로 멸망을 받았다(민 16:48). 바울은 이 ‘염병’을
출 12 :23 의 내용에 근거하여 ‘멸망시키는 자’로 해석했을 것이다(Godet). 고린도 교
인들 중에 바울을 반대하여 우상 축제에 참여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
울의 가르침에 따라 우상 축세 참여에 반대하는 그들의 지도자들에 대하여 원망과 불
평을 하였다. 바울은 그러한 불평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예를 들어 경고를 하고 있
다.
=====10:11
말세를 만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 텔레 톤 아이오논'(* )
은 문자적으로 ‘세대들의 끝’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유대인 시대의 끝을 뜻하기도
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하기도 한다(Hendriksen, 마 13:39;히 1:2). 또한 ‘메시
야 시대’ 자체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Godet). 그러나 바울이 긴 세월의 ‘완성’을
뜻하는 단어 ‘운텔레이아'(* )를 사용하지 않고, 한 세월의 ‘끝’을 뜻
하는 ‘타 텔레'(* )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창조 이래 지나간 모든 시대의
‘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Lenski). 즉 그리스도가 이땅에 옴으로써 유대 민족이
율법을 통한 제한적인 구원의 길로 인도되었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
는 구원의 시대가 열렸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히 9:26).
우리의 경계로 – ‘경계’에 해당하는 헬라어 ‘누데시안'(* )은 ‘권고하
다’ 혹은 ‘교정하다’는 뜻을 갖는 단어로(살전 5:12, 14)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당
시 고린도 교인들에게 필수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10:12
그런즉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테'(* )는 ‘그러므로’라는 뜻으로, 바울
이 앞에서 열거한 예증을 근거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충고하려는 의도를 나타내는
접속사이다.
선 줄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스타나이'(* )는 현재 서있는 모습을
표현하는 말로, 신앙이 아무런 흠없이 온전하다는 뜻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의 복
음에 대한 지식과 생활이 흠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넘어질까 조심하라 –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선택된 민족이며 ‘만군의 주 여
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결코 이방의 침략을 받지 않을 것이
라고 장담하였었다(겔 12:22). 이와 마찬가지로 고린도 교인들 중에도 자신들이 이미
예수의 피로 깨끗함을 입었기 때문에 우상의 제사에 참석하고 그 제물을 먹어도 아무
런 해가 없다고 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수많
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형벌로 죽은 사실을 지적하면서(5, 8절) 믿음 가운데
있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10:13
시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스모스'(* )는 종교적인 의미
로 주로 사용되었고 의학적으로는 실험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신약에서는 주로
‘유혹'(temptation)이나 ‘시련'(trial)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유혹’이라는 것은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고(마 6:13;눅 11:4;계 2:10) ‘시
련’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연단하기 위하여 허락하시는 것을
의미한다(마 5:4, 10;약 1:12;벧전 4:12).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 ‘미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토스'(* )는
‘신실(信實)하다’는 말로서 ‘믿을 수 있다’는 뜻이다. 즉 고린도 교인들이 가지고 있
었던 복음에 대한 지식이나 그들이 자처하는 경건의 생활로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써만 그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었다
(Hendriksen).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 본절에서 나오는 ‘시험 당
함’의 의미를 ‘유혹'(temptation)과 ‘시련'(trial)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나누어 양
자 택일의 개념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의미가 복합된 일원론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Grosheide). 약 1 : 14의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 됨이니’라는 말씀과 같이 비록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고 시련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러한 시련을 통하여
그들을 연단하시고 훈계하신다.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 이 말씀을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
시험이 임할 때 우리에게 회할 길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다는 의미로 하나님은 시
험과는 무관한 분이심을 전제한다. (2)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실 때 피할 길도 함
께 예비하신다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시는 주관자이심을 전제한다
(Hendriksen). 그런데 본절에서는 ‘즈음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쉰'(* ,’…와
함께’)이 사용되어 후자의 해석이 더욱 타당함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허락지 않으시며 또한 직면한 시험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공
급해 주시는 신실한 분이시다.
=====10:14
그런즉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오페르'(* )는 앞구절과 매우 밀접하
게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서술임을 나타낸다. 바울은 지금까지 말한 사실들로부터 결론
을 도출해내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보기로 고린도 교회의 상황, 즉 우상
숭배 축제의 참여에 적용 시킨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 바울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뜨거운 애정을 표현하면서 바른
태도를 취할 것을 급박하게 권면하고 있다(Lenski, Morris).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 ‘피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퓨게테'(* )
는 KJV에는 ‘달아나라'(flee)로 번역되어 있다. 죄를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도
망하여 멀리 있는 것이다. 희생 제사의 축연이 곧 우상 숭배는 아니었으나 그것은 우
상 승배의 경계선까지 가는 행위였으며 또한 충분히 우상 숭배에 빠지도록 할 가능성
이 있었다(Godet). 그러기에 바울은 여기서 단순히 우상 숭배만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일조차도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10:15
지혜 있는 자들에게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니모이스'(* )
는 1:19에서 언급된 ‘지혜있는'(* , 소포스)과는 달리 ‘지각있는’, ‘총명한’
등을 의미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지각있고 총명한 자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권
면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양심을 속여가며 제물의 고기를 먹고 동시에 그리
스도의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분별(分別)하라고 촉구한다.
스스로 판단하라 – 고린도 교인들이 실제로 지혜가 있었는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
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가정하였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에는 고린도 교인들이 자
신의 말을 이해하고 수용하기를 바라는 심정이 포함된다.
=====10:16
본절부터는 ‘성만찬’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신약 시대의 성만찬은 구약 시대의 화
목제사 뒤에 있었던 ‘축제’와 상응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린 후 그의 가
족들과 함께 성전 뜰에서 신성한 축제를 가졌다. 거기에는 제사장도 같이 참여하였다.
제단에 드려지지 않고 남은 재물은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먹었는데 재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주시는 은총과 화해의 보증이 되는 행위였다(Godet). 마찬
가지로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졌다는 화해의 표
식이 된다. 신약의 교회에서는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때에 시행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
한 것으로 성찬이 시행되었으며, 이러한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된 몸임을 확인
한다. 즉 주님의 살과 피로 상징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
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하며 주님과 교제를 나눈다는 의미를 갖는다. 뿐
만 아니라 다른 신자들과 서로 하나 된 지체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축복의 잔은 – ‘축복'(* , 율로기아스) 이라는 말은 ‘찬사’나 ‘복을
비는 것’을 뜻한다. 유대인들 술잔을 들 때 복을 기원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
월절에 마셔야 하는 네 잔 가운데 세 번째 잔이 ‘축복의 잔'(*
, 토 포테리온 테스 율로기아스)이었다.
참예함이 – ‘참예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니아'(* )는 ‘교제’
(communion)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의 떡과 잔을 받아 먹고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떼는 떡은 – 여기에서 바울은 성만찬의 원래 순서와는 달리 ‘떡’보다 ‘잔’
을 먼저 언급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을 강조하려는 의도인 것 같
다. 잔과 떡은 그리스도의 피와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것을 먹고 마시는 것은 그리
스도와 살과 피를 먹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10:17
본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그들이 떼어 먹는 떡이 한 덩어리인 것처럼 비록 많은 사
람들이 모여있다고 할지라도 실상 그리스도인들은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한몸이니 – 이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혹자는 ‘한 몸'(* , 헨
소마)이란 ‘그리스도의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의 유기적인 단일체'(the
organic unity of the congregation)를 뜻한다고 한다(Grosheide). 그러나 본절에서는
성도와의 연합의 관점에서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뜻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Meyer, Godet, Osiander).
왜냐하면 16, 17절에서 한 떡을 떼므로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
이다. 따라서 본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한 덩어리의 떡을 떼는 의
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모든 교인들이 하나의 신비한 영체(靈體)를 이루게 된
다고 말한 것이다(엡 5:23;골 1:18).
=====10: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 – 이것은 혈통(血統)에 의한 민족적인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된 ‘영적인 이스라엘'(*
, 이스라엘 카타 프뉴마)과 상반된다. 이로써 앞구절에서 언
급한 성찬의식을 유대인의 의식과 대조하려 하고 있다.
제물을 먹는 자들이…아니냐 –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제단 위에 태워서 드리고 남은 고기를 제사장과 제물을 드리는 자들이 성전 뜰에서 나
누어 먹었다(레 7 : 15). 바울은 여기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주의를 다시 구약으로 돌
려서 옛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물을 먹은 것과 고린도 교인들이 우
상 축제에 참여하여 제물을 먹는 것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 – 제물은 제단 위에 드려지는 것이므로 제물을 먹는 것은 제
단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또한 제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그러므로 결
국 이스라엘 백성이 제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의 행위가 되었다
(Hendriksen). 바울은 이에 비추어 이방 신전에서 열리는 우상의 축제에 고린도 교인
들이 참여하여 같이 제물을 먹는 것은 곧 이방의 신(神)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10:19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 어떤 사본에는 ‘우상의 제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돌로뒤톤'(* )과 ‘우상’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돌론'(* )의 위치를 바꾸어 그 강조점에 차이를 두었다. 바울은 이러한
질문을 통해 ‘우상’이든 ‘우상의 제물’이든 모두가 거짓임을 강조한다. 우상은 실재
(實在)하지 않는 것이며(고전 8 : 4) 우상의 제물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이방인들의 제사는 여전히 우상 숭배였으며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다.
=====10:20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 앞구절에서 우상의 허구성을 지적
하고 본절에서는 그 우상 배후에 영적인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귀신임을 시사한다. 당
시 헬라인들이 섬기던 신들은 쥬피터(Jupiter), 아폴로(Apollo), 비너스(Venus) 등
신화에 근거해 의인화된 신들로 실재(實在)하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신화적 존재들의 배후에는 사악한 힘, 곧 사단의 세력이 역사하고 있음을 바울은 지적
한다(Godet). 우상 자체는 결코 신(神)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배후에는 살아서 활동하는 영적인 존재들이 있다(엡 2 : 3 ;6 : 12). ‘귀신’에 해당하
는 헬라어 ‘다이모니오이스'(* )는 ‘하급의 신’, ‘잡신’ 등을 의미하는
‘다이몬'(* )에서 나온 파생어로서 바울서신에서는 본절과 딤전 4 : 1에서
만 나온다. 본절은 신 32:17을 그대로 바울이 인용한 것이다(시 96:5;106:37).
귀신과 교제하는 자 – ‘교제’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누스'(‘ )는
‘친교'(communion), 혹은 ‘협동'(fellowship)의 뜻으로 16절의 그리스도와 교제한다는
문맥에서도 ‘참예함’이라 번역되어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본절에서는 우상 그 자체와
친교를 갖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둠의 세력과 결탁된 악한 영들과 짝이 된다는 뜻
이다(Grosheide).
=====10:21
주의 잔과 귀신의 잔 – 바울이 17절에서는 ‘떡’을 앞에 두어 강조하고 있는 반면
본절에서는 ‘잔’에 강조를 두어 ‘잔’을 앞에 두었다. 이렇게 하여 ‘잔’과 ‘떡’이 모두
중요함을 균형있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주의 잔’을 ‘귀신의 잔’과 대비시킴으로
명백하게 구분짓고 있다. 당시에 헬라인들은 자기들의 신전에서 향연을 베풀 때 첫번
째 술잔은 ‘쥬피터'(Jupiter)에게 두번째는 쥬피터와 ‘님프'(Nymphs)에게, 세번째는
‘쥬피터 소터'(Jupiter Soter)에게 바쳤다(Godet). 또한 술과 고기 등 모든 음식은 우
상의 이름으로 축복되고 봉헌되었다(삼상 9:12, 13). 이러한 술잔을 드는 것은 곧 악
령의 세력에 굴복하는 것이고 복의 근원이 우상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그러나 성찬에서 주의 잔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임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주의 상과 귀신의 상 – ‘주의 상’에서는 주님께서 주인이시고 그에 참예한 자들은
그의 손님이 된다. ‘귀신의 상’에서는 귀신이 주인이 되고 참석자들은 귀신의 객(客)
이 된다(Hendriksen). ‘주의 상’과 ‘귀신의 상’은 ‘잔’과 마찬가지로 서로 배타적이
다. 그러므로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듯이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동시에 참여할
수 없다(고후 6:14-18).
=====10:22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 ‘노여워하시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젤루멘’
(* )은 ‘질투하게 하다'(to provoke to jealousy)는 뜻으로 ‘질투하
다’에 해당하는 ‘젤로오'(* )와 ‘곁에’라는 의미의 전치사 ‘파라'(* )의
합성어이다. ‘젤로오’는 좋은 의미로는 ‘부러워하다’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어서
(TDNT) 하나님의 열심에 대해 묘사하기도 한다(겔 39 : 25). 이 ‘질투’는 사랑과 신
뢰에 대한 배신을 당하여 유발되는 감정으로 인간이 갖는 분노 중에 가장 강렬한 것이
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드러내시는 분노를 표현하
는데 있어서 가장 적절하다(Hendriksen). 구약 시편에서도 ‘질투 하다’에 해당하는
‘카나'(* )가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으며(시
78:58), 신 32:16, 21에서는 다른 신으로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키게 하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 본절은 앞 구절과 마찬가지로 수사적 의문문을 사용하
여 반어적 표현으로 당연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은 절대적이므로 그
어떠한 것보다도 강하시고 그 무엇도 그분을 굴복시킬 수 없다. 본절의 질문은 둘 중
에 하나를 택하여야 한다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고린도 교인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단정하고 질문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이 이미 정한 마음을 거슬려서 어떤 것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
이다(Grosheide). 바울의 이러한 질문을 통해 고린도 교인들은 이미 결정한 것을 확고
히 하고 그들이 지은 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10:23
모든 것이 가하나 – 본절의 논의는 바울이 이미 6 : 12에서 언급한 내용의 반복
이다. 본절에서는 개인적인 차원의 자유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자유의 개
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울은 이미 8장에서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한 개인적인 자유가 교회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
게 될 때 그것은 제약(制約)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절에
서 두 가지를 제시하여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분명한 원칙 가운데 시행되는 것임을 보
여준다.
유익한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쉼페레이'(* )는 개인의 영적인 유익
을 말하는 것으로(Godet) ‘이익이 되는'(beneficial)이라 번역할 수 있다(NIV).이에
대한 자세한 주석은 6 : 12을 참조하라.
덕을 세우는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도메이'(* )는 특별
히 이웃들의 유익을 위한다는 의미의 ‘건설적인'(constructive)으로 번역할 수 있다
(NIV). 바울은 본절을 통하여 기독교인은 우상의 제물을 능히 먹올 수 있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는 자신의 영적인 유익과 이웃들의 신앙적 유익을 위하여 제한되어야
함을 가르친다.
=====10:24
남의 유익을 구하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참된
자유와 사랑의 실천 원리를 제시한다.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삶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
앙 안에서 가능하며 모든 이기적인 욕심을 배척하여 구원을 완성하는 삶이다. 타인을
위하여 자유를 사용하는 것(롬 14: 7; 15: 2; 고전 13 : 5 ;갈 6:2)은 공동체를 위해
지켜야 할 원리이자 그리스도인이 덕을 세우는 방법이다. 인간에게 귀중한 자유가 타
인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며 그러한 유익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그 사회는 참
으로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요일 1 : 7).
=====10:25
시장에서 파는 것 – 당시 로마와 소(小) 아시아 지방에서는 ‘황제 숭배’와 ‘우상
숭배’가 성행하였기 때문에 상점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음식들은 일단 제물로 바쳐졌
던 것이었다. 즉 제사에 사용되었던 제물은 신전(神殿)에 바쳐졌으며 나머지는 제사장
이나 예배자들에게 제공되었는데 제사장들은 보통 많은 양의 고기를 할당받았으므로
쓰고 남은 대부분의 음식은 일반인들에게 판매되었다. 따라서 시장에 나와 있는 음식
들이 제물로 쓰여졌는지 아닌지를 가리기란 어려웠다.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 이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여기에서의 ‘양심’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와 같이 믿음이 약한자의 양심을
말한다는 견해이다. 강한 자는 고기를 먹더라도 자유함으로 인하여 양심의 거리낌을
받지 아니한다. 따라서 이것은 약한 자의 양심을 가리킨 것이다(Holsten, Godet). (2)
이 말은 특별히 믿음이 약한 자들을 의식하여 한 말이 아니고 전반적인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한 말로서, 일단 시장에 나온 고기는 양심의 거리낌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으
므로 그 고기가 제물인지 아닌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견해이다(Hendriksen).
(3) 나중에 제물인 것을 알게 되더라도 양심의 부담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는 것이다(Chrysostom, Erasmus). 이와같은 세 가지 견해 중에서 (1)의 견
해가 가장 자연스럽게 문맥과 연결된다. 이는 29절의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라는 언급과 잘 연결된다. 시장에서 파는 고기가 우상의 제물임
을 알게 되었을 때 믿음이 강한 자들은 개의치 않고 사먹을 수 있겠으나 믿음이 약한
자들은 우상 제물이 신비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여겨서 사먹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하였다.
=====10:26
본절은 시 24:1의 인용으로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식사 전에 드리는 감사 기도의
형식이다. 이것은 만물의 창조주가 하나님이며 그분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분임을 인
정하는 고백이었다.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 ‘충만한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로마'(*
)는 땅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
고기도 우상의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 제물 자체는 더러운
것이 아니다. 또한 우상 제물로 쓰여진 고기를 먹는다 해도 그 음식이 본래 의도된 목
적대로 사용된 것이므로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다.
=====10:27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먹으라 – 본절에서는 식사에 초청받는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시장에서 팔리게 되는 우상의 제물들은 이미 그 종교적인 의미를 상실한
것이므로 단순한 음식으로서의 의미 밖에는 없다. 따라서 음식을 먹을 때 양심의 가책
을 받을 필요 없이 자유롭게 먹을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나 이교도들에게
초청을 받을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교도의 형제나 친척들이 있을 수 있
으며 바울은 그런 자들과의 교제를 금하지 않았다(5: 9, 10).
=====10:28
알게 한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 그들은 상 위에 놓여진 음식은 어떤 것
이든지 양심의 가책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어떤 약한 그리스도인
이 특정한 음식이 제물이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면 성도는 그것을 알게 한 자와 자
신의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 말을 듣고도 그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
이 제물임을 가르쳐준 사람은 그 약한 믿음이 그 일로 인해 성처받아 실족할 것이며
그에 대한 책임은 제물을 먹는 자에게 있다.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이 그것을 보고
우상과 교류해도 괜찮은 것이 아닌가 또는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이 우상 숭배자가 아닌
가 하는 등의 오해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10: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 바울이 지금까지 말한 것은 믿음이 약한
자의 양심을 위한 것이었다. 믿음이 강한 자는 제물을 양심의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
었으므로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약한 자들이었다.
어찌하여 내 자유가…판단을 받으리요 – 이에 대해 혹자는 본절을 ‘다른 사람들의
판단으로 인해 너희 자유가 제약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므로 너희가 옳다고 생
각되는 한 너희의 자유함을 온전히 유지하라’는 의미로 이해한다(Meyer, de Wette).
그러나 28절의 문맥과 연결시켜 볼 때 보다 적합한 해석은 ‘너희의 자유함이 다른 사
람들의 비방을 듣는다면 유익한 것이 무엇이냐’라는 것이다. 즉 나의 자유가 남을 죄
짓게 하는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Godet, Hendriksen).
=====10: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비방을 받으리요 – ‘감사함’에 해당하
는 헬라어 ‘카리티'(* )는 본래 ‘은혜'(grace)라는 의미인데 ‘감사함’의 뜻
으로도 쓰인다(딤전 1:12). 본절에서는 음식에 대한 축사로 사용된 용어로 보인다
(TDNT). 바울은 기독교인이 이교도의 집에 초청받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될 때 그것
을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먹는다면 윈리적(原理的)으로는 합당
한 것으로 비방받을 일이 못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믿음이
약한 형제들이 상처를 받는다면 음식을 먹음에 있어서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유익을 위해 나의 권리와 자유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자유와 권리를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최대한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롬 14:21).
=====10:31
먹든지 마시든지…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이제 바울은 ‘우상의 제물’
이라는 문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결론적인 권면을 하고 있다. 본절에서 제시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인의 전반적인 삶을 지배하는 기본 원리이다(골 3 : 17).
즉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행동은 그것이 먹는 것이든 마시는 것이든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벧전 4 : 11).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
여 행하라는 말 속에는 바울이 이제까지 말하였던 ‘타인의 유익’에 대한 언급이 포함
되어 있다(시 133:1-3).
=====10:32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프로스코포이…기네스데'(*
… )는 ‘거침돌이 되어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지 않
는’의 뜻을 갖는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행동 원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
요 두번째 원리는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하는 일을 피하는 것이다.
=====10:33
나와 같이…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 바울은 자신의 행동을 본보기로 고린도 교
인들에게 권면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
의 환경에 적응시켰다(9 : 18-22). 특히 그는 9:22에 기록된 대로 약한 자들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 약한 자가 되었다. 바울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단순히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함이 아니었다(갈 1:10). 즉 바울은 복음이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
함으로 전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Grosheide) 스스로를 순응시키는 겸손함을
통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다. 본절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을 본받아 살면 결코 그릇된 길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
이기도 하다. 바울은 자신의 중심에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살아가고 있
었기 때문에 담대하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갈 2 : 20).
헬라어 고린도전서 10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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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델로 가르 휘마스 아그노에인 아델포이 호티 호이 파테레스 헤몬 판테스 휘포 텐 네펠렌 에산 카이 판테스 디아 테스 달라쎄스 디엘돈
개역개정,1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새번역,1 ㉠형제자매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의 보호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를 지나갔습니다. / ㉠그, ‘형제들’
우리말성경,1 형제들이여,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을 알기를 원합니다. 우리 조상들이 모두 구름 아래 있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났고
가톨릭성경,1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이 이 사실도 알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모두 구름 아래 있었으며 모두 바다를 건넜습니다.
영어NIV,1 For I do not want you to be ignorant of the fact, brothers, that our forefathers were all under the cloud and that they all passed through the sea.
영어NASB,1 For I do not want you to be unaware, brethren, that our fathers were all under the cloud, and all passed through the sea;
영어MSG,1 Remember our history, friends, and be warned. All our ancestors were led by the providential Cloud and taken miraculously through the Sea.
영어NRSV,1 I do not want you to be unaware, brothers and sisters, that our ancestors were all under the cloud, and all passed through the sea,
헬라어신약Stephanos,1 ου θελω δε υμας αγνοειν αδελφοι οτι οι πατερες ημων παντες υπο την νεφελην ησαν και παντες δια της θαλασσης διηλθον
라틴어Vulgate,1 nolo enim vos ignorare fratres quoniam patres nostri omnes sub nube fuerunt et omnes mare transierunt
히브리어Modern,1 ולא אכחד מכם אחי אשר אבותינו היו כלם תחת הענן וכלם עברו בתוך הים׃
성 경: [고전10:1]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패역한 이스라엘]
헬라어 본문에는 접속사 ‘가르'(*, 왜냐하면)가 있어서 앞 문단의 내용과 본장의 내용이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음을 나타낸다.
형제들아 – 바울은 이방인인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형제’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교회 전체를 하나의 몸(body)으로 이해하였다. 또한 고린도 교회의 상황을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과 연결시킴으로써 고대 이스라엘 공동체에 기독교 교회의 근원이 있음을 시사하였다. 롬 4장과 11장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이라는 원 줄기에서 교회가 접목되었음을 말하였다. 그러한 영적 관계의 맥락 속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조상들이 교회구성원들의 조상이 될 수 있다.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 이것은 고린도 교인들이 출애굽 사건을 모른다는 의미가 아니다. 바울이 이러한 말을 하는 것은 그들이 출애굽 사건이 지닌 참된 의미를 충분히 파악하지 못할까하는 염려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이 다 – 여기에서 ‘다'(*, 판테스)라는 말이 강조되어 2, 3, 4절에서 5번에 걸쳐 반복된다. 이처럼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멸망하였다(5절)는 사실을 더욱 강조하기 위함이다.
구름 아래 있고 – ‘아래’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포'(*)는 공간적으로 구름 아래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를 받아 출애굽하여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말한다. 여기서 구름은 하나님의 인도를 의미한다(출 13:21, 22;14:19, 24등).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확실히 체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받았다. 따라서 고린도 교인들도 끊임없는 경건과 영적인 각성(覺醒) 없이는 멸망받은 이스라엘 조상들과 같은 전철(前轍)을 밟게 될 것이다. 본절에서 바울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통하여 고린도 교인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하고 있다.
카이 판테스 에이스 톤 모위센 에밮티스데산 엔 테 네펠레 카이 엔 테 달라쎄
개역개정,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새번역,2 이렇게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 ㉡또는 ‘침례’
우리말성경,2 모두가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모세와 연합했습니다.
가톨릭성경,2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침례를 받아 모세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영어NIV,2 They were all baptized into Moses in the cloud and in the sea.
영어NASB,2 and all were baptized into Moses in the cloud and in the sea;
영어MSG,2 They went through the waters, in a baptism like ours, as Moses led them from enslaving death to salvation life.
영어NRSV,2 and all were baptized into Moses in the cloud and in the sea,
헬라어신약Stephanos,2 και παντες εις τον μωσην εβαπτισαντο εν τη νεφελη και εν τη θαλασση
라틴어Vulgate,2 et omnes in Mose baptizati sunt in nube et in mari
히브리어Modern,2 וכלם נטבלו למשה בענן ובים׃
성 경: [고전10:2]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패역한 이스라엘]
모세에게 속하여 – 홍해를 건너는 위기의 순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롤 굳게 믿음으로써 모세와 하나로 결합되었음을 의미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연합체를 이루는 것이다(롬 6:3-5).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 혹자는 구름과 바다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인들과 공간적으로 차단해 주는 역할을 하였는데 그것은 곧 하나님의 백성을 세상으로부터 구별해주는 역할이었고 동시에 모세의 권위를 높여주어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의 제자가 되게 하는데 기여했다고 한다. 그들은 이러한 관점에서 구름과 바다가 그리스도인들의 세례와 같은 의미를 갖는다고 해석한다(Lenski). 그러나 이에 대한 보다 심층적인 의미를 분석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름 기둥을 통해 인도함을 받고 홍해 바다를 건너는 체험을 함으로써 그들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과초자연적 능력을 극적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거룩한 백성이라는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을 갖게 해주는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구름 기둥과 홍해 바다’의 경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 곧’구원 받은 백성’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구름과 바다’는 구원의 도구가 되었으며 그리스도인의 ‘물세례’를 상징한다(롬 6:3).
카이 판테스 토 아우토 프뉴마티콘 브로마 에파곤
개역개정,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새번역,3 그들은 모두 똑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고,
우리말성경,3 그들은 모두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었고
가톨릭성경,3 모두 똑같은 영적 양식을 먹고,
영어NIV,3 They all ate the same spiritual food
영어NASB,3 and all ate the same spiritual food;
영어MSG,3 They all ate
영어NRSV,3 and all ate the same spiritual food,
헬라어신약Stephanos,3 και παντες το αυτο βρωμα πνευματικον εφαγον
라틴어Vulgate,3 et omnes eandem escam spiritalem manducaverunt
히브리어Modern,3 וכלם אכלם מאכל אחד רוחני׃
성 경: [고전10:3]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패역한 이스라엘]
신령한 식물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뉴마티콘 브로마'(*)에서 ‘식물’을 뜻하는 ‘브로마'(*)는 단순히 ‘고기’만을 나타내는 말이 아니고 전반적인 음식물을 나타낸다. 본문은 ‘만나’를 가리키는 것임이 분명하다(출 16:4, 14-18). 그런데 이 ‘만나’에 대한 학자들의 해석이 다양하다. (1) 유형론적(類型論的, typical) 해석을 하는 자들의 견해로, 이에 따르면 ‘신령한 식물’은 보다 고상하고 미래적인 것의 모형으로서 물질적인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서 쓰여진 ‘신령한’이라는 단어의 사용과 일치하지 않는다. (2) 혹자는 이를 ‘영혼을 위한 식물’이었다고 해석한다. 즉 만나는 신 뿐만 아니라 영혼을 위해서도 주어진 음식이라는 견해이다(Calvin). 이 견해에 따르면 ‘만나’는 곧 성만찬때 예수님께서 나누어 주신 떡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다소 무리한 해석이다. 왜냐하면 만나는 평상적인 주식물(主食物)로 주어진 것이었기 때문이다(느 9:15). 또한 예수님께서는 만나가 영혼을 구원하는 영적인 효력이 없음을 말씀하시고 예수 자신만이 사람에게 생명을 주는 참 떡이심을 가르쳤다(요 6:49-58).(3) 혹자는 만나를 ‘성령으로부터 유래된'(procceding from the Divine Spirit) 것으로 보는데 이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창 1:2; 시 33:6).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 가운데에서 성령으로 역사하신다. 만나는 자연적이고 일상적인 음식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공급된 초자연적인 양식이었다.
카이 판테스 토 아우토 프뉴마티콘 에피온 포마 에피논 가르 에크 프튜마티케스 아콜루두세스 페트라스 헤 페트라 데 엔 호 크리스토스
개역개정,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새번역,4 모두 똑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동행하는 신령한 바위에서 물을 마신 것입니다. 그 바위는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말성경,4 모두 같은 신령한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과 동행한 신령한 반석에서 나는 것을 마셨는데 그 반석은 그리스도셨습니다.
가톨릭성경,4 모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을 따라오는 영적 바위에서 솟는 물을 마셨는데, 그 바위가 곧 그리스도이셨습니다.
영어NIV,4 and drank the same spiritual drink; for they drank from the spiritual rock that accompanied them, and that rock was Christ.
영어NASB,4 and all drank the same spiritual drink, for they were drinking from a spiritual rock which followed them; and the rock was Christ.
영어MSG,4 and drank identical food and drink, meals provided daily by God. They drank from the Rock, God’s fountain for them that stayed with them wherever they were. And the Rock was Christ.
영어NRSV,4 and all drank the same spiritual drink. For they drank from the spiritual rock that followed them, and the rock was Christ.
헬라어신약Stephanos,4 και παντες το αυτο πομα πνευματικον επιον επινον γαρ εκ πνευματικης ακολουθουσης πετρας η δε πετρα ην ο χριστος
라틴어Vulgate,4 et omnes eundem potum spiritalem biberunt bibebant autem de spiritali consequenti eos petra petra autem erat Christus
히브리어Modern,4 וכלם שתו משקה אחד רוחני כי שתו מן הצור הרוחני ההלך עמהם והצור ההוא היה המשיח׃
성 경: [고전10:4]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패역한 이스라엘]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 – ‘따르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콜루두세스'(*)는 미완료형으로서 계속적으로 뒤따랐다는 의미를 갖는다. 그러므로 몇몇 주석가들은 바울이 랍비들 사이에서 전해져오는 우화를 인용하였다고 주장한다(Ruckert, Baur, de Wette, Meyer). 그 우화에 의하면 14피트 높이의 바위 덩어리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따라다니며 물을 뿜어냈다고 한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그러한 전설을 근거로 해서 교회를 가르쳤다고 보기는 어렵다. 더욱이 ‘반석’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트라스'(*)는 움직일 수 있는 바윗 덩어리를 가리키는 ‘페트로스'(*)와는 달리 움직일 수 없는 고정된 암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본절에서 바울은 물질적인 바위 배후에 그 물의 참된 근원인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주지시키고자 하였던 것이다.
마셨으매 – 앞 문장에서의 ‘마셨으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온'(*)은 부정 과거로 마신 것이 과거 사실이라는 점에 역점을 두는 반면, 본 구절에서의 ‘마셨으매'(*, 에피논)는 미완료 시제로 사용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해서 마셨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적인 방법을 통하여 메마른 광야에서 계속 물을 공급받았으며 그 공급의 근원은 바로 그리스도였다. 바울은 구약 시대에나 신약 시대에나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는 생명의 떡이며 물이심을 강조하고 있다(요 6:31, 32). 주께서는 배고픔과 갈증으로 헤매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시급했던 음식과 물을 제공 하셨다(요 7:37-39). 마찬가지로 영적 이스라엘 백성인 고린도 교인들에게 가장 절실히 필요한 것은 ‘신령한 음료’와 ‘신령한 식물’의 근원이되시는 그리스도이심을 바울은 주지시킨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 바울이 그리스도를 반석에 비유한 것과 같이 신 32 :4, 15, 18등에서는 하나님을 반석에 비유하고 있다. 이사야는 여호와를 ‘능력의 반석’, ‘영원한 반석’ 등으로 표현하는데(사 17:10 ; 26:4) 이는 그리스도에 관한 것임이 분명하고(요 12:41) 본 구절은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기 전에 이미 선재(先在)하셨음을 뒷받침하는 구절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하는 동안 이스라엘백성의 신령한 반석이셨던 여호와가 바로 그리스도였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들과 동행하셨으며 그들의 구원자였다.
알 우크 엔 토이스 플레이오신 아우톤 유도케센 호 데오스 카테스트로데산 가르 엔 테 에레모
개역개정,5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새번역,5 그러나 그들의 대다수를 하나님께서는 좋아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말성경,5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 대부분을 기뻐하지 않으시므로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당하고 말았습니다.
가톨릭성경,5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 대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셨습니다. 사실 그들은 광야에서 죽어 널브러졌습니다.
영어NIV,5 Nevertheless, God was not pleased with most of them; their bodies were scattered over the desert.
영어NASB,5 Nevertheless, with most of them God was not well-pleased; for they were laid low in the wilderness.
영어MSG,5 But just experiencing God’s wonder and grace didn’t seem to mean much–most of them were defeated by temptation during the hard times in the desert, and God was not pleased.
영어NRSV,5 Nevertheless, God was not pleased with most of them, and they were struck down in the wilderness.
헬라어신약Stephanos,5 αλλ ουκ εν τοις πλειοσιν αυτων ευδοκησεν ο θεος κατεστρωθησαν γαρ εν τη ερημω
라틴어Vulgate,5 sed non in pluribus eorum beneplacitum est Deo nam prostrati sunt in deserto
히브리어Modern,5 אבל ברבם לא רצה האלהים ופגריהם נפלו במדבר׃
성 경: [고전10:5]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패역한 이스라엘]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하고 신령한 음식인 만나보다는 애굽의 고기를 더 좋아하는 등 하나님께 많은 은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고 원망하는 죄를 범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멸망당하는 운명에 처할 수 밖에 없었다(민 26:65).
멸망을 받았느니라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테스트로데산'(*)은 ‘카타스트론뉘미'(*)의 부정과거 수동태로 씨앗 등이 흩뿌려져 ‘표면을 뒤덮다’ 또는 폭풍으로 말미암아 ‘쓰러지다’의 뜻이 있다. 본절은 민 14:16을 인용한 것으로서 불순종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비참하게 멸망받은 모습을생생히 표현해 주고 있다. 바울이 이같은 역사적 사실을 예로 든 이유는 비록 그들이 성찬에 유추(類推, analogy)될 수 있는 ‘신령한 식물과 음료’를 먹고 마셨을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할 때에는 멸망받았던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성찬’에 참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할 때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없음을 가르치기 위함이었다.
타우타 데 튀포이 헤몬 에게네데산 에이스 토 메 에이나이 헤마스 에피뒤메타스 카콘 카도스 카케이노이 에페뒤메산
개역개정,6 이러한 일은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그들이 악을 즐겨 한 것 같이 즐겨 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새번역,6 이런 일들은, 우리 조상들이 악을 좋아한 것과 같이 우리가 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우리말성경,6 이런 일들은 그들처럼 우리도 악을 즐기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고 우리에게 본보기가 된 것입니다.
가톨릭성경,6 이 일들은 우리를 위한 본보기로 일어났습니다. 그들이 악을 탐냈던 것처럼 우리는 악을 탐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영어NIV,6 Now these things occurred as examples to keep us from setting our hearts on evil things as they did.
영어NASB,6 Now these things happened as examples for us, that we should not crave evil things, as they also craved.
영어MSG,6 The same thing could happen to us. We must be on guard so that we never get caught up in wanting our own way as they did.
영어NRSV,6 Now these things occurred as examples for us, so that we might not desire evil as they did.
헬라어신약Stephanos,6 ταυτα δε τυποι ημων εγενηθησαν εις το μη ειναι ημας επιθυμητας κακων καθως κακεινοι επεθυμησαν
라틴어Vulgate,6 haec autem in figura facta sunt nostri ut non simus concupiscentes malorum sicut et illi concupierunt
히브리어Modern,6 וכל זאת היתה לנו למופת לבלתי התאות לרעה כאשר התאוו גם המה׃
성 경: [고전10:6]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패역한 이스라엘]
거울이 되어 – ‘거울’에 해당하는 헬라어 ‘튀포이'(*)는 ‘튀프토'(*, ‘치다’)에서 파생된 단어로 ‘타격을 가한 흔적’이라는 뜻이었다가 후에는’표상’, ‘윤곽’ 등의 뉘앙스를 가진 ‘형식’을 의미하였다. 또한 신약에서 이 단어는’표상'(롬 5:14), ‘식양'(행 7:44), 본받아야 할 ‘모범'(살전 1:7;살후 3:9;딤전4:12;벧전 5:3) 등의 의미를 가졌다. 본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를 교훈으로 삼아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에 지워지지 않을 하나의 흔적으로 새겨놓으라는 강한 의미를 담고 있다.
악을 즐겨하는 자 – ‘즐겨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페뒤메산'(*)은 ‘뒤모스'(*, ‘영혼’)와 전치사 ‘에피'(*, ‘…쪽으로’)의 합성어로 사람의 마음이 뭔가를 하고자 하여 한쪽으로 쏠려있는 상태를 나타낸다. 민 11:4, 5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악을 갈망했었다. 그들이 애굽에서 먹던 고기와 야채를 간절히 사모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요구를 채워주시기는 하셨으나 그들의 탐욕에 대해서는 진노로 큰 재앙을 내리셨다(민 11:33, 34).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에 대한 갈망은 곧 그들의 불신앙의 증거였다. 바울은 이러한 역사적인 사실을 전제로 고린도 교인들이 이교도들의 희생 제물 축제에 참여하지 말 것을 경고하고 있다.
메데 에이돌롤라트라이 기네스데 카도스 티네스 아우톤 호스페르 게그랖타이 에카디센 호 라오스 파게인 카이 페인 카이 아네스테산 파이제인
개역개정,7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 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새번역,7 그들 가운데 얼마는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백성들이 앉아서 먹고 마셨으며, 일어서서 춤을 추었다”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그들과 같이 우상 숭배자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 ㉢출 32:6(칠십인역)
우리말성경,7 여러분은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처럼 우상 숭배자가 되지 마십시오. 기록되기를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 춤을 추었다” 라고 했습니다. 출32:6
가톨릭성경,7 성경에 “백성은 앉아서 먹고 마시고 일어나 흥청거리며 놀았다.” 고 기록되어 있듯이, 여러분은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처럼 우상 숭배자가 되지 마십시오.
영어NIV,7 Do not be idolaters, as some of them were; as it is written: “The people sat down to eat and drink and got up to indulge in pagan revelry.”
영어NASB,7 And do not be idolaters, as some of them were; as it is written, ” THE PEOPLE SAT DOWN TO EAT AND DRINK, AND STOOD UP TO PLAY. ”
영어MSG,7 And we must not turn our religion into a circus as they did–“First the people partied, then they threw a dance.”
영어NRSV,7 Do not become idolaters as some of them did; as it is written, “The people sat down to eat and drink, and they rose up to play.”
헬라어신약Stephanos,7 μηδε ειδωλολατραι γινεσθε καθως τινες αυτων ως γεγραπται εκαθισεν ο λαος φαγειν και πιειν και ανεστησαν παιζειν
라틴어Vulgate,7 neque idolorum cultores efficiamini sicut quidam ex ipsis quemadmodum scriptum est sedit populus manducare et bibere et surrexerunt ludere
히브리어Modern,7 ולא תהיו עבדי אלילים כאשר היו מקצתם כמו שכתוב וישב העם לאכל ושתו ויקמו לצחק׃
성 경: [고전10:7]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패역한 이스라엘]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메데 에이돌롤라트라이 기네스데'(*)의 문자적인 의미는 ‘우상 숭배자가 되기를 멈추라’는 뜻으로 바울의 이러한 표현은 고린도 교인들 중 일부가 이미 우상 숭배를 하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우상을 숭배한 것(출 32 :4ff.)같이 이교도들의 관습, 즉 우상의 신전에서 열리는 연회에 참가함으로써 우상 숭배의 행동을 범하였다. 바울은 8장에서 우상 제물에 대한 문제를 이미 다루었고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 숭배와 고린도 교인의 우상 숭배를 비교하고 있다.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경배한 후 불경스러운 향연을 벌인 모습을 묘사한다(출 32:6).
뛰논다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이제인'(*, ‘어린아이 같이 놀다’)은 특별히 춤추는 것을 표현할 때 사용되는 단어로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가운데 놓고 놀며 춤추던 것을 묘사할 때로 사용되었다(출 32:6).
메데 포르뉴오멘 카도스 티네스 아우톤 에포르튜산 카이 에페산 미아 헤메라 에이코시 트레이스 킬리아데스
개역개정,8 그들 중의 어떤 사람들이 음행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음행하지 말자
새번역,8 간음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얼마가 간음을 하였고,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나 쓰러져 죽었습니다.
우리말성경,8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음행하다가 하루에 2만 3,000명이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음행하지 맙시다.
가톨릭성경,8 또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불륜을 저지른 것처럼 우리는 불륜을 저지르지 맙시다. 그들은 하루에 이만삼천 명이 죽어 넘어졌습니다.
영어NIV,8 We should not commit sexual immorality, as some of them did–and in one day twenty-three thousand of them died.
영어NASB,8 Nor let us act immorally, as some of them did, and twenty-three thousand fell in one day.
영어MSG,8 We must not be sexually promiscuous–they paid for that, remember, with twenty-three thousand deaths in one day!
영어NRSV,8 We must not indulge in sexual immorality as some of them did, and twenty-three thousand fell in a single day.
헬라어신약Stephanos,8 μηδε πορνευωμεν καθως τινες αυτων επορνευσαν και επεσον εν μια ημερα εικοσιτρεις χιλιαδες
라틴어Vulgate,8 neque fornicemur sicut quidam ex ipsis fornicati sunt et ceciderunt una die viginti tria milia
히브리어Modern,8 ולא נהיה זנים כאשר זנו מקצתם ויפלו ביום אחד שלשה ועשרים אלף איש׃
성 경: [고전10:8]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패역한 이스라엘]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 이스라엘 백성이 저지른 또하나의 범죄는 ‘간음’이었다. ‘간음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포르뉴오멘'(*)은 일반적으로 성적인 부정 행위를 나타낼 때 사용된 용어로서 5장에서 사용된 용어들과 어원이 같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압을 지날 때 그곳에 있는 모압 여인들에게 이스라엘 젊은 청년들이 유혹을 받아 바알브올 우상을 경배하였다. 바알브올을 섬기는 제사 행위는 처녀들과의 음행을 통하여 이루어졌다(민 25:1-9). 따라서 우상 숭배와 간음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바울 당시의 고린도 지역도 종교적인 매춘 행위가 성행하던 도시로 이름이 높았다. 고린도 교인들은 여신 ‘비너스’를 섬겼으며 비너스 신전에서 열리는 우상의 축제에는 바알브올을 섬길 때 행해지던 음행이 그대로 재현(再現)되었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절의 내용을 통하여 우상 숭배와 간음죄는 하나님께 큰 죄악이므로 그러한 유혹에 빠지지 말 것을 간곡하게 권면하고 있다.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알브올 우상을 섬기며 그곳 여인들과 음란한 교제를 나눌 때 하나님께서는 징벌로 전염병이 돌게 하셨으며 그 일로 이만 삼천 명이나 죽음을 당해야만 했다(민 25:1-9). 한편 그 당시 죽은 사람의 숫자가 민 25:9 (70인역), 필로(Philo), 요세푸스이(Josephus) 등에 의해 2만4천 명으로제시되어 천명의 차이가 생긴다. 그러나 이런 차이는 민 25:9의 내용이 환난의 전 기간(이틀) 동안의 희생자를 언급한 데 반하여 본절에서는 당일 하루만 계산한 것으로해석될 수도 있다.
메데 에크페이라조멘 톤 크리스톤 카도스 티네스 아우톤 에페이라산 카이 휘포 톤 오페온 아폴륀토
개역개정,9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그들과 같이 시험하지 말자
새번역,9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맙시다. 그들 가운데 얼마는 그리스도를 시험하였고, 뱀에게 물려서 죽었습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주님을’
우리말성경,9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시험하지 맙시다.
가톨릭성경,9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주님을 시험한 것처럼 우리는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맙시다. 그들은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영어NIV,9 We should not test the Lord, as some of them did–and were killed by snakes.
영어NASB,9 Nor let us try the Lord, as some of them did, and were destroyed by the serpents.
영어MSG,9 We must never try to get Christ to serve us instead of us serving him; they tried it, and God launched an epidemic of poisonous snakes.
영어NRSV,9 We must not put Christ to the test, as some of them did, and were destroyed by serpents.
헬라어신약Stephanos,9 μηδε εκπειραζωμεν τον χριστον καθως και τινες αυτων επειρασαν και υπο των οφεων απωλοντο
라틴어Vulgate,9 neque temptemus Christum sicut quidam eorum temptaverunt et a serpentibus perierunt
히브리어Modern,9 ולא ננסה את המשיח כאשר נסוהו מקצתם ויאבדום הנחשים׃
성 경: [고전10:9]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패역한 이스라엘]
시험하다가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페이라조멘'(*)은 하나님의 선하심, 능력, 지혜 등을 그릇된 동기에서 알아보려는 인간의 생각을 가리키는 동사이다(마 4:7;행 5:9;히 3:9).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관용을 시험하고 구원의 능력을 시험하였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은 인간이 범할 수있는 인간이 범할 수 있는 죄 중에서 가장 큰 죄이다.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였던 것처럼 고린도 교인들도 주를 시험하는 죄를 범하였다. 그들은 율법으로부터 해방된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사용함에 있어서 그 한계(限界)를 벗어났다. 즉 이교도들의 우상 축제에 참여함으로 주를 시험하였던 것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우상숭배의 죄에 빠지지 않도록 구원하실 수 있는지를 시험하였으며 설사 그러한 죄를 범했다고 할지라도 용서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관용이 있는지를 시험하였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이런 상태를 경고하면서 자신을 포함한 의미로 2인칭 복수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 이로써 주를 시험할 가능성이 바울을 포함한 모두에게 있음을 시사한다.
메데 공귀제테 카다페르 티네스 아우톤 에공귀산 카이 아폴론토 휘포 투 올로드류투
개역개정,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새번역,10 그들 가운데 얼마가 불평한 것과 같이 불평하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멸시키는 이에게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말성경,10 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원망하다가 파멸시키는 이에게 멸망당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처럼 원망하지 마십시오.
가톨릭성경,10 그리고 그들 가운데 어떤 자들이 투덜거린 것처럼 여러분은 투덜거리지 마십시오. 그들은 파괴자의 손에 죽었습니다.
영어NIV,10 And do not grumble, as some of them did–and were killed by the destroying angel.
영어NASB,10 Nor grumble, as some of them did, and were destroyed by the destroyer.
영어MSG,10 We must be careful not to stir up discontent; discontent destroyed them.
영어NRSV,10 And do not complain as some of them did, and were destroyed by the destroyer.
헬라어신약Stephanos,10 μηδε γογγυζετε καθως και τινες αυτων εγογγυσαν και απωλοντο υπο του ολοθρευτου
라틴어Vulgate,10 neque murmuraveritis sicut quidam eorum murmuraverunt et perierunt ab exterminatore
히브리어Modern,10 גם לא תלינו כאשר הלינו מקצתם וימותו ביד המשחית׃
성 경: [고전10:10]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패역한 이스라엘]
원망하다가 – 본절에서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은 네번째 잘못을 언급하고 있다. 이것은 모세와 아론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이었다. 본절은 고라의 반역과 그를 따르는 일만 사천 칠백 명이 염병으로 멸망한 사건을 가리키는 듯하다(민 16:41,49). 이스라엘 백성의 원망이 9장에도 나오는데 본절이 가나안 정탐군의 보고를 듣고 가데스 바네아에서 하나님을 향해 원망을 발했던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언급이라고 볼수도 있다. 그러나 그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즉각적인 심판이 없었으므로 전자의 경우로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Godet).
멸망시키는 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올로드류투'(*)는 히브리어 ‘함마쉬히트'(*)의 인용으로(출 12:23) 하나님의 심판을 수행하기위해 온 멸망 시키는 하나님의 ‘천사’를 가리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을원망하다가 치명적인 염병(plague)으로 멸망을 받았다(민 16:48). 바울은 이 ‘염병’을 출 12:23의 내용에 근거하여 ‘멸망시키는 자’로 해석했을 것이다(Godet). 고린도 교인들 중에 바울을 반대하여 우상 축제에 참여하는 일단의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울의 가르침에 따라 우상 축세 참여에 반대하는 그들의 지도자들에 대하여 원망과 불평을 하였다. 바울은 그러한 불평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예를 들어 경고를 하고 있다.
타우타 데 튀피코스 쉬네바이넨 에케이노이스 에그라페 데 프로스 누데시안 헤몬 에이스 후스 타 텔레 토 아이오논 카텐테켄
개역개정,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새번역,11 이런 일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것은 본보기가 되게 하려는 것이며, 그것들이 기록된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에게 경고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1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들은 본보기로서 말세를 만난 우리를 위해 경고로 기록된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1 이 일들은 본보기로 그들에게 일어난 것인데, 세상 종말에 다다른 우리에게 경고가 되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영어NIV,11 These things happened to them as examples and were written down as warnings for us, on whom the fulfillment of the ages has come.
영어NASB,11 Now these things happened to them as an example, and they were written for our instruction, upon whom the ends of the ages have come.
영어MSG,11 These are all warning markers–DANGER!–in our history books, written down so that we don’t repeat their mistakes. Our positions in the story are parallel–they at the beginning, we at the end–and we are just as capable of messing it up as they were.
영어NRSV,11 These things happened to them to serve as an example, and they were written down to instruct us, on whom the ends of the ages have come.
헬라어신약Stephanos,11 ταυτα δε παντα τυποι συνεβαινον εκεινοις εγραφη δε προς νουθεσιαν ημων εις ους τα τελη των αιωνων κατηντησεν
라틴어Vulgate,11 haec autem omnia in figura contingebant illis scripta sunt autem ad correptionem nostram in quos fines saeculorum devenerunt
히브리어Modern,11 כל זאת מצאתם להיות למופת ותכתב למוסר לנו אשר הגיעו אלינו קצי העולמים׃
성 경: [고전10:11]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패역한 이스라엘]
말세를 만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타 텔레 톤 아이오논'(*)은 문자적으로 ‘세대들의 끝’이라는 의미이다. 이 말은 유대인 시대의 끝을 뜻하기도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의미하기도 한다(Hendriksen, 마 13:39;히 1:2). 또한 ‘메시야 시대’ 자체를 의미한다고도 볼 수 있다(Godet). 그러나 바울이 긴 세월의 ‘완성’을 뜻하는 단어 ‘운텔레이아'(*)를 사용하지 않고, 한 세월의 ‘끝’을 뜻하는 ‘타 텔레'(*)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창조 이래 지나간 모든 시대의’끝’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Lenski). 즉 그리스도가 이땅에 옴으로써 유대 민족이 율법을 통한 제한적인 구원의 길로 인도되었던 시대가 막을 내리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시대가 열렸음을 뜻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히 9:26).
우리의 경계로 – ‘경계’에 해당하는 헬라어 ‘누데시안'(*)은 ‘권고하다’ 혹은 ‘교정하다’는 뜻을 갖는 단어로(살전 5:12, 14) 앞에서 언급한 내용들이 당시 고린도 교인들에게 필수적인 것임을 강조한다.
호스테 호 도콘 헤스타나이 블레페토 메 페세
개역개정,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새번역,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우리말성경,12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가톨릭성경,12 그러므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영어NIV,12 So, if you think you are standing firm, be careful that you don’t fall!
영어NASB,12 Therefore let him who thinks he stands take heed that he does not fall.
영어MSG,12 Don’t be so naive and self-confident. You’re not exempt. You could fall flat on your face as easily as anyone else. Forget about self-confidence; it’s useless. Cultivate God-confidence.
영어NRSV,12 So if you think you are standing, watch out that you do not fall.
헬라어신약Stephanos,12 ωστε ο δοκων εσταναι βλεπετω μη πεση
라틴어Vulgate,12 itaque qui se existimat stare videat ne cadat
히브리어Modern,12 לכן החשב שהוא נצב ירא פן יפול׃
성 경: [고전10:12]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패역한 이스라엘]
그런즉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스테'(*)는 ‘그러므로’라는 뜻으로, 바울이 앞에서 열거한 예증을 근거로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충고하려는 의도를 나타내는 접속사이다.
선 줄로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스타나이'(*)는 현재 서있는 모습을표현하는 말로, 신앙이 아무런 흠없이 온전하다는 뜻이다. 고린도 교인들은 그들의 복음에 대한 지식과 생활이 흠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넘어질까 조심하라 –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선택된 민족이며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에 결코 이방의 침략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였었다(겔 12:22). 이와 마찬가지로 고린도 교인들 중에도 자신들이 이미 예수의 피로 깨끗함을 입었기 때문에 우상의 제사에 참석하고 그 제물을 먹어도 아무런 해가 없다고 하는 자들이 있었다. 이에 대해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형벌로 죽은 사실을 지적하면서(5, 8절) 믿음 가운데 있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페이라스모스 휘마스 우크 에일레펜 에이 메 안드로피노스 피스토스 데 호 데오스 호스 우크 에아세이 휘마스 페이라스데나이 휘페르 호 뒤나스데 알라 포이에세이 쉰 토 페이라스모 카이 텐 에크바신 투 뒤나스다이 휘페넹케인
개역개정,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새번역,13 여러분은 사람이 흔히 겪는 시련 밖에 다른 시련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는 것을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 수 있게 해주십니다.
우리말성경,13 여러분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을 당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여러분이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않으시며 시험을 당할 때도 피할 길을 마련해 주셔서 여러분이 능히 감당할 수 있게 하십니다.
가톨릭성경,13 여러분에게 닥친 시련은 인간으로서 이겨 내지 못할 시련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성실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여러분에게 능력 이상으로 시련을 겪게 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시련과 함께 그것을 벗어날 길도 마련해 주십니다.
영어NIV,13 No temptation has seized you except what is common to man. And God is faithful; he will not let you be tempted beyond what you can bear. But when you are tempted, he will also provide a way out so that you can stand up under it.
영어NASB,13 No temptation has overtaken you but such as is common to man; and God is faithful, who will not allow you to be tempted beyond what you are able, but with the temptation will provide the way of escape also, that you may be able to endure it.
영어MSG,13 No test or temptation that comes your way is beyond the course of what others have had to face. All you need to remember is that God will never let you down; he’ll never let you be pushed past your limit; he’ll always be there to help you come through it.
영어NRSV,13 No testing has overtaken you that is not common to everyone. God is faithful, and he will not let you be tested beyond your strength, but with the testing he will also provide the way out so that you may be able to endure it.
헬라어신약Stephanos,13 πειρασμος υμας ουκ ειληφεν ει μη ανθρωπινος πιστος δε ο θεος ος ουκ εασει υμας πειρασθηναι υπερ ο δυνασθε αλλα ποιησει συν τω πειρασμω και την εκβασιν του δυνασθαι υμας υπενεγκειν
라틴어Vulgate,13 temptatio vos non adprehendat nisi humana fidelis autem Deus qui non patietur vos temptari super id quod potestis sed faciet cum temptatione etiam proventum ut possitis sustinere
히브리어Modern,13 עדין לא בא עליכם נסיון אחר בלתי אם נסיון בני אדם כי נאמן הוא האלהים אשר לא יניח לנסות אתכם למעלה מיכלתכם כי אם יתן עם הנסיון גם תוצאתיו כדי שתוכלו שאת׃
성 경: [고전10:13]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패역한 이스라엘]
시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페이라스모스'(*)는 종교적인 의미로 주로 사용되었고 의학적으로는 실험한다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신약에서는 주로 ‘유혹'(temptation)이나 ‘시련'(trial)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유혹’이라는 것은 사단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죄에 빠지도록 하는 것이고(마 6:13;눅 11:4;계 2:10) ‘시련’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연단하기 위하여 허락하시는 것을 의미한다(마 5:4, 10;약 1:12;벧전 4:12).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 ‘미쁘사’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토스'(*)는’신실(信實)하다’는 말로서 ‘믿을 수 있다’는 뜻이다. 즉 고린도 교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복음에 대한 지식이나 그들이 자처하는 경건의 생활로 모든 시험을 이길 수 있는것이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써만 그들의 안전이 보장되는 것이었다(Hendriksen).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 본절에서 나오는 ‘시험 당함’의 의미를 ‘유혹'(temptation)과 ‘시련'(trial)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나누어 양자 택일의 개념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두 가지 의미가 복합된 일원론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Grosheide). 약 1:14의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 됨이니’라는 말씀과 같이 비록 하나님의 자녀들이 자신들의 욕심에 끌려 유혹을 받고 시련을 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러한 시련을 통하여 그들을 연단하시고 훈계하신다.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 이 말씀을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1)시험이 임할 때 우리에게 회할 길을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다는 의미로 하나님은 시험과는 무관한 분이심을 전제한다. (2)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실 때 피할 길도 함께 예비하신다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시는 주관자이심을 전제한다(Hendriksen). 그런데 본절에서는 ‘즈음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쉰'(*,’…와 함께’)이 사용되어 후자의 해석이 더욱 타당함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감당할 수 없는 시험은 허락지 않으시며 또한 직면한 시험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을 공급해 주시는 신실한 분이시다.
디오페르 아가페토이 무 퓨게테 아포 테스 에이돌롤라트리아스
개역개정,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새번역,14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여러분, 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
우리말성경,14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상숭배를 피하십시오.
가톨릭성경,14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
영어NIV,14 Therefore, my dear friends, flee from idolatry.
영어NASB,14 Therefore, my beloved, flee from idolatry.
영어MSG,14 So, my very dear friends, when you see people reducing God to something they can use or control, get out of their company as fast as you can.
영어NRSV,14 Therefore, my dear friends, flee from the worship of idols.
헬라어신약Stephanos,14 διοπερ αγαπητοι μου φευγετε απο της ειδωλολατρειας
라틴어Vulgate,14 propter quod carissimi mihi fugite ab idolorum cultura
히브리어Modern,14 על כן חביבי נוסו מעבודת אלילים׃
성 경: [고전10:14]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
그런즉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오페르'(*)는 앞구절과 매우 밀접하게 논리적으로 연결되는 서술임을 나타낸다. 바울은 지금까지 말한 사실들로부터 결론을 도출해내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보기로 고린도 교회의 상황, 즉 우상숭배 축제의 참여에 적용 시킨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 바울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뜨거운 애정을 표현하면서 바른태도를 취할 것을 급박하게 권면하고 있다(Lenski, Morris).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 ‘피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퓨게테'(*)는 KJV에는 ‘달아나라'(flee)로 번역되어 있다. 죄를 피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도망하여 멀리 있는 것이다. 희생 제사의 축연이 곧 우상 숭배는 아니었으나 그것은 우상 승배의 경계선까지 가는 행위였으며 또한 충분히 우상 숭배에 빠지도록 할 가능성이 있었다(Godet). 그러기에 바울은 여기서 단순히 우상 숭배만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일조차도 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호스 프로니모이스 레고 크리나테 휘메이스 호 페미
개역개정,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새번역,15 나는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판단하십시오.
우리말성경,15 내가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듯이 말하니 여러분은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판단해 보십시오.
가톨릭성경,15 나는 여러분을 슬기로운 사람으로 여겨 말합니다. 내가 하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영어NIV,15 I speak to sensible people; judge for yourselves what I say.
영어NASB,15 I speak as to wise men; you judge what I say.
영어MSG,15 I assume I’m addressing believers now who are mature. Draw your own conclusions:
영어NRSV,15 I speak as to sensible people; judge for yourselves what I say.
헬라어신약Stephanos,15 ως φρονιμοις λεγω κρινατε υμεις ο φημι
라틴어Vulgate,15 ut prudentibus loquor vos iudicate quod dico
히브리어Modern,15 כמו אל נבונים מדבר אנכי ושפטו אתם את אשר אמר׃
성 경: [고전10:15]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
지혜 있는 자들에게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니모이스'(*)는 1:19에서 언급된 ‘지혜있는'(*, 소포스)과는 달리 ‘지각있는’, ‘총명한’등을 의미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지각있고 총명한 자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권면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양심을 속여가며 제물의 고기를 먹고 동시에 그리스도의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분별(分別)하라고 촉구한다.
스스로 판단하라 – 고린도 교인들이 실제로 지혜가 있었는지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가정하였다. 그가 그렇게 말한 것에는 고린도 교인들이 자신의 말을 이해하고 수용하기를 바라는 심정이 포함된다.
토 포테리온 테스 율로기아스 호 율로구멘 우키 코이노니아 에스틴 투 하이마토스 투 크리스투 톤 아르톤 혼 클로멘 오키 코이노니아 투 소마토스 투 크리스투 에스틴
개역개정,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새번역,16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닙니까?
우리말성경,16 우리가 감사드리며 마시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눠 마시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눠 먹는 것이 아닙니까?
가톨릭성경,16 우리가 축복하는 그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우리가 떼는 빵은 그리스도의 몸에 동참하는 것이 아닙니까?
영어NIV,16 Is not the cup of thanksgiving for which we give thanks a participation in the blood of Christ? And is not the bread that we break a participation in the body of Christ?
영어NASB,16 Is not the cup of blessing which we bless a sharing in the blood of Christ? Is not the bread which we break a sharing in the body of Christ?
영어MSG,16 When we drink the cup of blessing, aren’t we taking into ourselves the blood, the very life, of Christ? And isn’t it the same with the loaf of bread we break and eat? Don’t we take into ourselves the body, the very life, of Christ?
영어NRSV,16 The cup of blessing that we bless, is it not a sharing in the blood of Christ? The bread that we break, is it not a sharing in the body of Christ?
헬라어신약Stephanos,16 το ποτηριον της ευλογιας ο ευλογουμεν ουχι κοινωνια του αιματος του χριστου εστιν τον αρτον ον κλωμεν ουχι κοινωνια του σωματος του χριστου εστιν
라틴어Vulgate,16 calicem benedictionis cui benedicimus nonne communicatio sanguinis Christi est et panis quem frangimus nonne participatio corporis Domini est
히브리어Modern,16 כוס הברכה אשר אנחנו מברכים הלא היא התחברות דם המשיח והלחם אשר אנחנו בצעים הלא הוא התחברות גוף המשיח׃
성 경: [고전10:16]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
본절부터는 ‘성만찬’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 신약 시대의 성만찬은 구약 시대의 화목제사 뒤에 있었던 ‘축제’와 상응하는 것이었다. 유대인들은 제사를 드린 후 그의 가족들과 함께 성전 뜰에서 신성한 축제를 가졌다. 거기에는 제사장도 같이 참여하였다. 제단에 드려지지 않고 남은 재물은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먹었는데 재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주시는 은총과 화해의 보증이 되는 행위였다(Godet). 마찬가지로 성만찬에 참여하는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화목이 이루어졌다는 화해의 표식이 된다. 신약의 교회에서는 주님께서 최후의 만찬때에 시행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성찬이 시행되었으며, 이러한 성찬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된 몸임을 확인한다. 즉 주님의 살과 피로 상징되는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와 한 몸임을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피에 참예하며 주님과 교제를 나눈다는 의미를 갖는다. 뿐만 아니라 다른 신자들과 서로 하나 된 지체임을 확인하는 것이다.
축복의 잔은 – ‘축복'(*, 율로기아스) 이라는 말은 ‘찬사’나 ‘복을 비는 것’을 뜻한다. 유대인들 술잔을 들 때 복을 기원하는 관습을 가지고 있었으며 유월절에 마셔야 하는 네 잔 가운데 세 번째 잔이 ‘축복의 잔'(*, 토 포테리온 테스 율로기아스)이었다.
참예함이 – ‘참예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니아'(*)는 ‘교제'(communion)를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성만찬의 떡과 잔을 받아 먹고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진다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가 떼는 떡은 – 여기에서 바울은 성만찬의 원래 순서와는 달리 ‘떡’보다 ‘잔’을 먼저 언급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보혈을 강조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잔과 떡은 그리스도의 피와 몸을 상징하는 것으로 그것을 먹고 마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살과 피를 먹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호티 헤이스 아르토스 헨 소마 호이 폴로이 에스멘 호이 가르 판테스 에크 투 헤노스 아르투 메테코멘
개역개정,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새번역,17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가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모두 그 한 덩이 빵을 함께 나누어 먹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17 빵이 하나므로 우리가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눠 먹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7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 우리 모두 한 빵을 함께 나누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7 Because there is one loaf, we, who are many, are one body, for we all partake of the one loaf.
영어NASB,17 Since there is one bread, we who are many are one body; for we all partake of the one bread.
영어MSG,17 Because there is one loaf, our many-ness becomes one-ness–Christ doesn’t become fragmented in us. Rather, we become unified in him. We don’t reduce Christ to what we are; he raises us to what he is.
영어NRSV,17 Because there is one bread, we who are many are one body, for we all partake of the one bread.
헬라어신약Stephanos,17 οτι εις αρτος εν σωμα οι πολλοι εσμεν οι γαρ παντες εκ του ενος αρτου μετεχομεν
라틴어Vulgate,17 quoniam unus panis unum corpus multi sumus omnes quidem de uno pane participamur
히브리어Modern,17 כי לחם אחד הוא לכן גם נוף אחד אנחנו הרבים באשר לכלנו חלק בלחם האחד׃
성 경: [고전10:17]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
본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그들이 떼어 먹는 떡이 한 덩어리인 것처럼 비록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다고 할지라도 실상 그리스도인들은 한 몸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한몸이니 – 이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혹자는 ‘한 몸'(*, 헨소마)이란 ‘그리스도의 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의 유기적인 단일체'(theorganic unity of the congregation)를 뜻한다고 한다(Grosheide). 그러나 본절에서는 성도와의 연합의 관점에서 언급하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공동체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뜻하는 것에 집중되어 있다(Meyer, Godet, Osiander). 왜냐하면 16, 17절에서 한 떡을 떼므로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을 상징하는 한 덩어리의 떡을 떼는 의식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더불어 모든 교인들이 하나의 신비한 영체(靈體)를 이루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엡 5:23;골 1:18).
블레페테 톤 이스라엘 카타 사르카 우크 호이 에스디온테스 타스 뒤시아스 코이노노이 투 뒤시아스테리우 에이신
개역개정,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새번역,18 ㉤육신상의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제물을 먹는 사람들은, 그 제단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닙니까? / ㉤그, ‘육신을 따라서 태어난 이스라엘 백성을’
우리말성경,18 이스라엘 백성의 관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제물을 먹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제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가톨릭성경,18 저 이스라엘 백성을 보십시오. 희생 제물을 먹는 이들은 모두 제단에 동참하는 이들이 아닙니까?
영어NIV,18 Consider the people of Israel: Do not those who eat the sacrifices participate in the altar?
영어NASB,18 Look at the nation Israel; are not those who eat the sacrifices sharers in the altar?
영어MSG,18 That’s basically what happened even in old Israel–those who ate the sacrifices offered on God’s altar entered into God’s action at the altar.
영어NRSV,18 Consider the people of Israel; are not those who eat the sacrifices partners in the altar?
헬라어신약Stephanos,18 βλεπετε τον ισραηλ κατα σαρκα ουχι οι εσθιοντες τας θυσιας κοινωνοι του θυσιαστηριου εισιν
라틴어Vulgate,18 videte Israhel secundum carnem nonne qui edunt hostias participes sunt altaris
히브리어Modern,18 ראו את ישראל לפי הבשר הלא אכלי הזבחים חברי המזבח המה׃
성 경: [고전10:18]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 – 이것은 혈통(血統)에 의한 민족적인 이스라엘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참된 백성이 된 ‘영적인 이스라엘'(*, 이스라엘 카타 프뉴마)과 상반된다. 이로써 앞구절에서 언급한 성찬의식을 유대인의 의식과 대조하려 하고 있다.
제물을 먹는 자들이…아니냐 –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제단 위에 태워서 드리고 남은 고기를 제사장과 제물을 드리는 자들이 성전 뜰에서 나누어 먹었다(레 7:15). 바울은 여기에서 고린도 교인들의 주의를 다시 구약으로 돌려서 옛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물을 먹은 것과 고린도 교인들이 우상 축제에 참여하여 제물을 먹는 것과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다.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 – 제물은 제단 위에 드려지는 것이므로 제물을 먹는 것은 제단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또한 제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곳이다. 그러므로 결국 이스라엘 백성이 제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하나의 행위가 되었다(Hendriksen). 바울은 이에 비추어 이방 신전에서 열리는 우상의 축제에 고린도 교인들이 참여하여 같이 제물을 먹는 것은 곧 이방의 신(神)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티 운 페미 호티 에이돌로뒤톤 티 에스틴 에 호티 에이돌론 티 에스틴
개역개정,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새번역,19 그러니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 것입니까? 우상은 무엇이고, 우상에게 바친 제물은 무엇입니까?
우리말성경,19 그러므로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또 우상은 무엇입니까?
가톨릭성경,19 그러니 내가 말하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우상이 무엇이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영어NIV,19 Do I mean then that a sacrifice offered to an idol is anything, or that an idol is anything?
영어NASB,19 What do I mean then? That a thing sacrificed to idols is anything, or that an idol is anything?
영어MSG,19 Do you see the difference? Sacrifices offered to idols are offered to nothing, for what’s the idol but a nothing?
영어NRSV,19 What do I imply then? That food sacrificed to idols is anything, or that an idol is anything?
헬라어신약Stephanos,19 τι ουν φημι οτι ειδωλον τι εστιν η οτι ειδωλοθυτον τι εστιν
라틴어Vulgate,19 quid ergo dico quod idolis immolatum sit aliquid aut quod idolum sit aliquid
히브리어Modern,19 ועתה מה אמר היש ממש באליל אם יש ממש בזבחי אלילים׃
성 경: [고전10:19]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 어떤 사본에는 ‘우상의 제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이돌로뒤톤'(*)과 ‘우상’에 해당하는 헬라어’에이돌론'(*)의 위치를 바꾸어 그 강조점에 차이를 두었다. 바울은 이러한질문을 통해 ‘우상’이든 ‘우상의 제물’이든 모두가 거짓임을 강조한다. 우상은 실재(實在)하지 않는 것이며(고전 8:4) 우상의 제물 역시 아무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방인들의 제사는 여전히 우상 숭배였으며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을 위태롭게 하는 것이었다.
알 호티 하 뒤우신 다이모니오이스 카이 우 데오 뒤우신 우 델로 데 휘마스 코이노누스 톤 다이모니온 기네스다이
개역개정,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새번역,20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방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귀신에게 바치는 것이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귀신과 친교를 가지는 사람이 되는 것을 나는 바라지 않습니다. / ㉥신 32:17(칠십인역)
우리말성경,20 다만 제물로 바치는 것은 귀신에게 바치는 것이지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러분이 귀신들과 교제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가톨릭성경,20 아닙니다. 사람들이 바치는 제물은 하느님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바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귀들과 상종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영어NIV,20 No, but the sacrifices of pagans are offered to demons, not to God, and I do not want you to be participants with demons.
영어NASB,20 No, but I say that the things which the Gentiles sacrifice, they sacrifice to demons, and not to God; and I do not want you to become sharers in demons.
영어MSG,20 Or worse than nothing, a minus, a demon! I don’t want you to become part of something that reduces you to less than yourself.
영어NRSV,20 No, I imply that what pagans sacrifice, they sacrifice to demons and not to God. I do not want you to be partners with demons.
헬라어신약Stephanos,20 αλλ οτι α θυει τα εθνη δαιμονιοις θυει και ου θεω ου θελω δε υμας κοινωνους των δαιμονιων γινεσθαι
라틴어Vulgate,20 sed quae immolant gentes daemoniis immolant et non Deo nolo autem vos socios fieri daemoniorum non potestis calicem Domini bibere et calicem daemoniorum
히브리어Modern,20 אלא את אשר יזבחו הגוים לשדים הם זבחים ולא לאלהים ואני לא אחפץ היתכם חברים לשדים׃
성 경: [고전10:20]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 앞구절에서 우상의 허구성을 지적하고 본절에서는 그 우상 배후에 영적인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귀신임을 시사한다. 당시 헬라인들이 섬기던 신들은 쥬피터(Jupiter), 아폴로(Apollo), 비너스(Venus) 등 신화에 근거해 의인화된 신들로 실재(實在)하는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모든 신화적 존재들의 배후에는 사악한 힘, 곧 사단의 세력이 역사하고 있음을 바울은 지적한다(Godet). 우상 자체는 결코 신(神)적인 존재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배후에는 살아서 활동하는 영적인 존재들이 있다(엡 2:3 ;6:12). ‘귀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다이모니오이스'(*)는 ‘하급의 신’, ‘잡신’ 등을 의미하는’다이몬'(*)에서 나온 파생어로서 바울서신에서는 본절과 딤전 4:1에서만 나온다. 본절은 신 32:17을 그대로 바울이 인용한 것이다(시 96:5;106:37).
귀신과 교제하는 자 – ‘교제’에 해당하는 헬라어 ‘코이노누스'(*)는 ‘친교'(communion), 혹은 ‘협동'(fellowship)의 뜻으로 16절의 그리스도와 교제한다는 문맥에서도 ‘참예함’이라 번역되어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본절에서는 우상 그 자체와 친교를 갖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어둠의 세력과 결탁된 악한 영들과 짝이 된다는 뜻이다(Grosheide).
우 뒤나스데 포테리온 퀴리우 피네인 카이 포테리온 다이모니온 우 뒤나스데 트라페제스 퀴리우 메테케인 카이 트라페제스 다이모니온
개역개정,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새번역,21 여러분은, 주님의 잔을 마시고, 아울러 귀신들의 잔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고, 아울러 귀신들의 식탁에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말성경,21 여러분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동시에 마실 수 없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동시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가톨릭성경,21 여러분이 주님의 잔도 마시고 마귀들의 잔도 마실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주님의 식탁에도 참여하고 마귀들의 식탁에도 참여할 수는 없습니다.
영어NIV,21 You cannot drink the cup of the Lord and the cup of demons too; you cannot have a part in both the Lord’s table and the table of demons.
영어NASB,21 You cannot drink the cup of the Lord and the cup of demons; you cannot partake of the table of the Lord and the table of demons.
영어MSG,21 And you can’t have it both ways, banqueting with the Master one day and slumming with demons the next.
영어NRSV,21 You cannot drink the cup of the Lord and the cup of demons. You cannot partake of the table of the Lord and the table of demons.
헬라어신약Stephanos,21 ου δυνασθε ποτηριον κυριου πινειν και ποτηριον δαιμονιων ου δυνασθε τραπεζης κυριου μετεχειν και τραπεζης δαιμονιων
라틴어Vulgate,21 non potestis mensae Domini participes esse et mensae daemoniorum
히브리어Modern,21 לא תוכלו לשתות יחד כוס אדנינו וגם כוס השדים ולא תוכלו להתחבר אל שלחן אדנינו וגם אל שלחן השדים׃
성 경: [고전10:21]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
주의 잔과 귀신의 잔 – 바울이 17절에서는 ‘떡’을 앞에 두어 강조하고 있는 반면 본절에서는 ‘잔’에 강조를 두어 ‘잔’을 앞에 두었다. 이렇게 하여 ‘잔’과 ‘떡’이 모두 중요함을 균형있게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주의 잔’을 ‘귀신의 잔’과 대비시킴으로 명백하게 구분짓고 있다. 당시에 헬라인들은 자기들의 신전에서 향연을 베풀 때 첫번째 술잔은 ‘쥬피터'(Jupiter)에게 두번째는 쥬피터와 ‘님프'(Nymphs)에게, 세번째는’쥬피터 소터'(Jupiter Soter)에게 바쳤다(Godet). 또한 술과 고기 등 모든 음식은 우상의 이름으로 축복되고 봉헌되었다(삼상 9:12, 13). 이러한 술잔을 드는 것은 곧 악령의 세력에 굴복하는 것이고 복의 근원이 우상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행위이다.그러나 성찬에서 주의 잔을 받는 것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임을 인정하는 행위이다.
주의 상과 귀신의 상 – ‘주의 상’에서는 주님께서 주인이시고 그에 참예한 자들은 그의 손님이 된다. ‘귀신의 상’에서는 귀신이 주인이 되고 참석자들은 귀신의 객(客)이 된다(Hendriksen). ‘주의 상’과 ‘귀신의 상’은 ‘잔’과 마찬가지로 서로 배타적이다. 그러므로 두 주인을 동시에 섬길 수 없듯이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동시에 참여할 수 없다(고후 6:14-18).
에 파라젤루멘 톤 퀴리온 메 이스퀴로테로이 아우투 에스멘
개역개정,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새번역,22 우리가 주님을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보다 더 힘이 세다는 말입니까?
우리말성경,22 우리가 주를 분노하시게 하겠습니까? 우리가 그분보다 더 강합니까?
가톨릭성경,22 우리가 주님을 질투하시게 하려는 것입니까? 우리가 주님보다 강하다는 말입니까?
영어NIV,22 Are we trying to arouse the Lord’s jealousy? Are we stronger than he?
영어NASB,22 Or do we provoke the Lord to jealousy? We are not stronger than He, are we?
영어MSG,22 Besides, the Master won’t put up with it. He wants us–all or nothing. Do you think you can get off with anything less?
영어NRSV,22 Or are we provoking the Lord to jealousy? Are we stronger than he?
헬라어신약Stephanos,22 η παραζηλουμεν τον κυριον μη ισχυροτεροι αυτου εσμεν
라틴어Vulgate,22 an aemulamur Dominum numquid fortiores illo sumus omnia licent sed non omnia expediunt
히브리어Modern,22 הנעז להקניא את אדנינו הכי חזקים אנחנו ממנו׃
성 경: [고전10:22]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 ‘노여워하시게’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젤루멘'(*)은 ‘질투하게 하다'(to provoke to jealousy)는 뜻으로 ‘질투하다’에 해당하는 ‘젤로오'(*)와 ‘곁에’라는 의미의 전치사 ‘파라'(*)의합성어이다. ‘젤로오’는 좋은 의미로는 ‘부러워하다’라는 뉘앙스를 가지고 있어서(TDNT) 하나님의 열심에 대해 묘사하기도 한다(겔 39:25). 이 ‘질투’는 사랑과 신뢰에 대한 배신을 당하여 유발되는 감정으로 인간이 갖는 분노 중에 가장 강렬한 것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드러내시는 분노를 표현하는데 있어서 가장 적절하다(Hendriksen). 구약 시편에서도 ‘질투하다’에 해당하는’카나'(*)가 우상 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감정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으며(시78:58), 신 32:16, 21에서는 다른 신으로 하나님의 질투를 일으키게 하는 이스라엘의 상태를 묘사할 때 사용되었다.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 본절은 앞 구절과 마찬가지로 수사적 의문문을 사용하여 반어적 표현으로 당연한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능력은 절대적이므로 그어떠한 것보다도 강하시고 그 무엇도 그분을 굴복시킬 수 없다. 본절의 질문은 둘 중에 하나를 택하여야 한다는 것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고린도 교인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속성을 인정하고 있음을 단정하고 질문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이 이미 정한 마음을 거슬려서 어떤 것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려는 것이다(Grosheide). 바울의 이러한 질문을 통해 고린도 교인들은 이미 결정한 것을 확고히 하고 그들이 지은 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이었는가를 깨닫게 될 것이다.
판타 엨세스틴 알 우 판타 쉼페레이 판타 엨세스틴 알 우 판타 오이코도메이
개역개정,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새번역,23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다 허용된다’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모든 것이 다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말성경,23 모든 것이 허용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것이 허용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닙니다.
가톨릭성경,23 “모든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습니다. “모든 것이 허용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영어NIV,23 “Everything is permissible”–but not everything is beneficial. “Everything is permissible”–but not everything is constructive.
영어NASB,23 All things are lawful, but not all things are profitable. All things are lawful, but not all things edify.
영어MSG,23 Looking at it one way, you could say, “Anything goes. Because of God’s immense generosity and grace, we don’t have to dissect and scrutinize every action to see if it will pass muster.” But the point is not to just get by.
영어NRSV,23 “All things are lawful,” but not all things are beneficial. “All things are lawful,” but not all things build up.
헬라어신약Stephanos,23 παντα μοι εξεστιν αλλ ου παντα συμφερει παντα μοι εξεστιν αλλ ου παντα οικοδομει
라틴어Vulgate,23 omnia licent sed non omnia aedificant
히브리어Modern,23 הכל ברשותי אבל אין הכל מועיל הכל ברשותי אבל אין הכל בנה׃
성 경: [고전10:23]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그리스도인의 자유]
모든 것이 가하나 – 본절의 논의는 바울이 이미 6:12에서 언급한 내용의 반복이다. 본절에서는 개인적인 차원의 자유보다는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자유의 개념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바울은 이미 8장에서 우상에게 드려진 제물을 먹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한 개인적인 자유가 교회 공동체에 해악을 끼치게 될 때 그것은 제약(制約)을 받을 수 밖에 없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본절에서 두 가지를 제시하여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분명한 원칙 가운데 시행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유익한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쉼페레이'(*)는 개인의 영적인 유익을 말하는 것으로(Godet) ‘이익이 되는'(beneficial)이라 번역할 수 있다(NIV). 이에 대한 자세한 주석은 6:12을 참조하라.
덕을 세우는 것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오이코도메이'(*)는 특별히 이웃들의 유익을 위한다는 의미의 ‘건설적인'(constructive)으로 번역할 수 있다(NIV). 바울은 본절을 통하여 기독교인은 우상의 제물을 능히 먹올 수 있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는 자신의 영적인 유익과 이웃들의 신앙적 유익을 위하여 제한되어야함을 가르친다.
메데이스 토 헤아우투 제테이토 알라 토 투 헤테루
개역개정,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새번역,24 아무도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추구하십시오.
우리말성경,24 누구든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십시오.
가톨릭성경,24 누구나 자기 좋은 것을 찾지 말고 남에게 좋은 것을 찾으십시오.
영어NIV,24 Nobody should seek his own good, but the good of others.
영어NASB,24 Let no one seek his own good, but that of his neighbor.
영어MSG,24 We want to live well, but our foremost efforts should be to help others live well.
영어NRSV,24 Do not seek your own advantage, but that of the other.
헬라어신약Stephanos,24 μηδεις το εαυτου ζητειτω αλλα το του ετερου εκαστος
라틴어Vulgate,24 nemo quod suum est quaerat sed quod alterius
히브리어Modern,24 איש איש אל יבקש את תועלת עצמו כי אם את תועלת רעהו׃
성 경: [고전10:24]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그리스도인의 자유]
남의 유익을 구하라 –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가진 참된 자유와 사랑의 실천 원리를 제시한다.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삶은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안에서 가능하며 모든 이기적인 욕심을 배척하여 구원을 완성하는 삶이다. 타인을 위하여 자유를 사용하는 것(롬 14: 7; 15: 2; 고전 13:5 ;갈 6:2)은 공동체를 위해지켜야 할 원리이자 그리스도인이 덕을 세우는 방법이다. 인간에게 귀중한 자유가 타인의 유익을 위해 사용되며 그러한 유익을 주고받는 사람들이 많아질 때 그 사회는 참으로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요일 1:7).
판 토 엔 마켈로 폴루메논 에스디에테 메덴 아나크리논테스 디아 텐 쉬네이데신
개역개정,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새번역,25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한다고 하여 그 출처를 묻지 말고, 무엇이든지 다 먹으십시오. / ㉦그, ‘양심을 위하여’. 25절을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다. “시장에서 파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양심을 위하여, 그 출처를 묻지 말고 먹으십시오.”
우리말성경,25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어떤 것이든 양심에 거리낌이 생기지 않도록 묻지 말고 드십시오.
가톨릭성경,25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따져 보지 말고 무엇이든지 먹으십시오.
영어NIV,25 Eat anything sold in the meat market without raising questions of conscience,
영어NASB,25 Eat anything that is sold in the meat market, without asking questions for conscience’ sake;
영어MSG,25 With that as a base to work from, common sense can take you the rest of the way. Eat anything sold at the butcher shop, for instance; you don’t have to run an “idolatry test” on every item.
영어NRSV,25 Eat whatever is sold in the meat market without raising any question on the ground of conscience,
헬라어신약Stephanos,25 παν το εν μακελλω πωλουμενον εσθιετε μηδεν ανακρινοντες δια την συνειδησιν
라틴어Vulgate,25 omne quod in macello venit manducate nihil interrogantes propter conscientiam
히브리어Modern,25 כל הנמכר במקולין אתו תאכלו ואל תחקרו מפני מכשל הלב׃
성 경: [고전10:25]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그리스도인의 자유]
시장에서 파는 것 – 당시 로마와 소(小) 아시아 지방에서는 ‘황제 숭배’와 ‘우상 숭배’가 성행하였기 때문에 상점에서 판매되는 대부분의 음식들은 일단 제물로 바쳐졌던 것이었다. 즉 제사에 사용되었던 제물은 신전(神殿)에 바쳐졌으며 나머지는 제사장이나 예배자들에게 제공되었는데 제사장들은 보통 많은 양의 고기를 할당받았으므로 쓰고 남은 대부분의 음식은 일반인들에게 판매되었다. 따라서 시장에 나와 있는 음식들이 제물로 쓰여졌는지 아닌지를 가리기란 어려웠다.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 이에 대한 학자들의 견해를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여기에서의 ‘양심’은 성경의 다른 곳에서와 같이 믿음이 약한 자의 양심을 말한다는 견해이다. 강한 자는 고기를 먹더라도 자유함으로 인하여 양심의 거리낌을 받지 아니한다. 따라서 이것은 약한 자의 양심을 가리킨 것이다(Holsten, Godet). (2)이 말은 특별히 믿음이 약한 자들을 의식하여 한 말이 아니고 전반적인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한 말로서, 일단 시장에 나온 고기는 양심의 거리낌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으므로 그 고기가 제물인지 아닌지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견해이다(Hendriksen).(3) 나중에 제물인 것을 알게 되더라도 양심의 부담을 갖지 않게 하기 위하여 묻지말고 먹으라는 것이다(Chrysostom, Erasmus). 이와같은 세 가지 견해 중에서 (1)의 견해가 가장 자연스럽게 문맥과 연결된다. 이는 29절의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라는 언급과 잘 연결된다. 시장에서 파는 고기가 우상의 제물임을 알게 되었을 때 믿음이 강한 자들은 개의치 않고 사먹을 수 있겠으나 믿음이 약한 자들은 우상 제물이 신비한 능력을 가진 것처럼 여겨서 사먹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바울은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하였다.
투 퀴리우 가르 헤 게 카이 토 플레로마 아우테스
개역개정,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새번역,26 ㉧’땅과 거기에 가득 찬 것들이 다 주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 ㉧시 24:1
우리말성경,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다 주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24:1
가톨릭성경,26 “세상과 그 안에 가득 찬 것들이 주님의 것” 이기 때문입니다.
영어NIV,26 for, “The earth is the Lord’s, and everything in it.”
영어NASB,26 FOR THE EARTH IS THE Lord’s, AND ALL IT CONTAINS.
영어MSG,26 “The earth,” after all, “is God’s, and everything in it.” That “everything” certainly includes the leg of lamb in the butcher shop.
영어NRSV,26 for “the earth and its fullness are the Lord’s.”
헬라어신약Stephanos,26 του γαρ κυριου η γη και το πληρωμα αυτης
라틴어Vulgate,26 Domini est terra et plenitudo eius
히브리어Modern,26 כי ליהוה הארץ ומלואה׃
성 경: [고전10:26]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그리스도인의 자유]
본절은 시 24:1의 인용으로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식사 전에 드리는 감사 기도의 형식이다. 이것은 만물의 창조주가 하나님이며 그분이 모든 것을 다스리는 분임을 인정하는 고백이었다.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 – ‘충만한 것’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로마'(*)는 땅을 채우고 있는 모든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제물로 바쳐진 동물의고기도 우상의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하나님의 것이기에 그 제물 자체는 더러운 것이 아니다. 또한 우상 제물로 쓰여진 고기를 먹는다 해도 그 음식이 본래 의도된 목적대로 사용된 것이므로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다.
에이 티스 칼레이 휘마스 톤 아피스톤 카이 델레테 포류에스다이 판 토 파라티데메논 휘민 에스디에테 메덴 아나크리논테스 디아 텐 쉬네이데신
개역개정,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새번역,27 불신자들 가운데서 누가 여러분을 초대하여, 거기에 가고 싶으면, 여러분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나, ㉨양심을 위한다고 하여 묻지 말고, 드십시오. / ㉨그, ‘양심을 위하여’. 25절을 이렇게 번역할 수도 있다. “시장에서 파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양심을 위하여, 그 출처를 묻지 말고 먹으십시오.”
우리말성경,27 만일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여러분을 초대했는데 여러분이 가기를 원한다면 여러분 앞에 차려진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에 거리낌이 생기지 않도록 묻지 말고 드십시오.
가톨릭성경,27 불신자 가운데 누가 여러분을 초대하여 여러분이 가고자 한다면, 양심을 따져 보지 말고 여러분 앞에 차려 놓는 것은 무엇이든지 먹으십시오.
영어NIV,27 If some unbeliever invites you to a meal and you want to go, eat whatever is put before you without raising questions of conscience.
영어NASB,27 If one of the unbelievers invites you, and you wish to go, eat anything that is set before you, without asking questions for conscience’ sake.
영어MSG,27 If a nonbeliever invites you to dinner and you feel like going, go ahead and enjoy yourself; eat everything placed before you. It would be both bad manners and bad spirituality to cross-examine your host on the ethical purity of each course as it is served.
영어NRSV,27 If an unbeliever invites you to a meal and you are disposed to go, eat whatever is set before you without raising any question on the ground of conscience.
헬라어신약Stephanos,27 ει δε τις καλει υμας των απιστων και θελετε πορευεσθαι παν το παρατιθεμενον υμιν εσθιετε μηδεν ανακρινοντες δια την συνειδησιν
라틴어Vulgate,27 si quis vocat vos infidelium et vultis ire omne quod vobis adponitur manducate nihil interrogantes propter conscientiam
히브리어Modern,27 ואם יקרא אתכם איש מאשר אינם מאמינים ותרצו ללכת אליו אכול תאכלו מכל אשר ישימו לפניכם ואל תחקרו מפני מכשול הלב׃
성 경: [고전10:27]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그리스도인의 자유]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먹으라 – 본절에서는 식사에 초청받는 문제에 대해 다루고 있다. 시장에서 팔리게 되는 우상의 제물들은 이미 그 종교적인 의미를 상실한 것이므로 단순한 음식으로서의 의미 밖에는 없다. 따라서 음식을 먹을 때 양심의 가책을 받을 필요 없이 자유롭게 먹을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나 이교도들에게 초청을 받을 수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교도의 형제나 친척들이 있을 수 있으며 바울은 그런 자들과의 교제를 금하지 않았다(5: 9, 10).
에안 데 티스 휘민 에이페 투토 이에로뒤톤 에스틴 메 에스디에테 디 에케이논 톤 메뉘산타 카이 텐 쉬네이데신
개역개정,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새번역,28 그러나 어떤 사람이 “이것은 제사에 올린 음식입니다” 하고 여러분에게 말해 주거든, 그렇게 알려 준 사람과 그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마십시오.
우리말성경,28 그러나 만일 누가 여러분에게 “이것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입니다”라고 한다면 말해 준 사람과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마십시오.
가톨릭성경,28 그러나 누가 여러분에게 “이것은 제물로 바쳤던 것입니다.” 하고 말하거든, 그것을 알린 사람과 그 양심을 생각하여 먹지 마십시오.
영어NIV,28 But if anyone says to you, “This has been offered in sacrifice,” then do not eat it, both for the sake of the man who told you and for conscience’ sake–
영어NASB,28 But if anyone should say to you, “This is meat sacrificed to idols,” do not eat it, for the sake of the one who informed you, and for conscience’ sake;
영어MSG,28 On the other hand, if he goes out of his way to tell you that this or that was sacrificed to god or goddess so-and-so, you should pass. Even though you may be indifferent as to where it came from, he isn’t, and you don’t want to send mixed messages to him about who you are worshiping.
영어NRSV,28 But if someone says to you, “This has been offered in sacrifice,” then do not eat it, out of consideration for the one who informed you, and for the sake of conscience–
헬라어신약Stephanos,28 εαν δε τις υμιν ειπη τουτο ειδωλοθυτον εστιν μη εσθιετε δι εκεινον τον μηνυσαντα και την συνειδησιν του γαρ κυριου η γη και το πληρωμα αυτης
라틴어Vulgate,28 si quis autem dixerit hoc immolaticium est idolis nolite manducare propter illum qui indicavit et propter conscientiam
히브리어Modern,28 ואיש כי יאמר אליכם זה הוא זבח אלילים אל תאכלו בעבור המודיע ומפני מכשול הלב כי ליהוה הארץ ולמואה׃
성 경: [고전10:28]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그리스도인의 자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 그들은 상 위에 놓여진 음식은 어떤 것이든지 양심의 가책없이 마음껏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중에 어떤 약한 그리스도인이 특정한 음식이 제물이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면 성도는 그것을 알게 한 자와 자신의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아야 한다. 만일 그 말을 듣고도 그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이 제물임을 가르쳐준 사람은 그 약한 믿음이 그 일로 인해 성처받아 실족할 것이며 그에 대한 책임은 제물을 먹는 자에게 있다. 믿음이 약한 그리스도인이 그것을 보고 우상과 교류해도 괜찮은 것이 아닌가 또는 그 음식을 먹는 사람이 우상 숭배자가 아닌가 하는 등의 오해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쉬네이데신 데 레고 우키 텐 헤아우투 알라 텐 투 헤테루 히나티 가르 헤 엘류데리아 무 크리네타이 휘포 알레스 쉬네이데세오스
개역개정,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새번역,29 내가 여기에서 양심이라고 말하는 것은, 내 양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입니다.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의 비판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말성경,29 내가 지금 말하는 양심은 당신 자신의 양심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입니다. “왜 내 자유가 남의 양심에 의해 판단을 받아야 합니까?
가톨릭성경,29 내가 말하는 양심은 여러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양심입니다. 사실 무엇 때문에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판단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영어NIV,29 the other man’s conscience, I mean, not yours. For why should my freedom be judged by another’s conscience?
영어NASB,29 I mean not your own conscience, but the other man’s; for why is my freedom judged by another’s conscience?
영어MSG,29 But, except for these special cases, I’m not going to walk around on eggshells worrying about what small-minded people might say; I’m going to stride free and easy, knowing what our large-minded Master has already said.
영어NRSV,29 I mean the other’s conscience, not your own. For why should my liberty be subject to the judgment of someone else’s conscience?
헬라어신약Stephanos,29 συνειδησιν δε λεγω ουχι την εαυτου αλλα την του ετερου ινα τι γαρ η ελευθερια μου κρινεται υπο αλλης συνειδησεως
라틴어Vulgate,29 conscientiam autem dico non tuam sed alterius ut quid enim libertas mea iudicatur ab alia conscientia
히브리어Modern,29 והלב אשר אני אמר לא לבך כי אם לב רעך כי למה זה תשפט חרותי על ידי לב האחר׃
성 경: [고전10:29]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그리스도인의 자유]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 바울이 지금까지 말한 것은 믿음이 약한 자의 양심을 위한 것이었다. 믿음이 강한 자는 제물을 양심의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었으므로 그들의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약한 자들이었다.
어찌하여 내 자유가…판단을 받으리요 – 이에 대해 혹자는 본절을 ‘다른 사람들의 판단으로 인해 너희 자유가 제약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으므로 너희가 옳다고 생각되는 한 너희의 자유함을 온전히 유지하라’는 의미로 이해한다(Meyer, de Wette). 그러나 28절의 문맥과 연결시켜 볼 때 보다 적합한 해석은 ‘너희의 자유함이 다른 사람들의 비방을 듣는다면 유익한 것이 무엇이냐’라는 것이다. 즉 나의 자유가 남을 죄짓게 하는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Godet, Hendriksen).
에이 에고 카리티 메테코 티 블라스페무마이 휘페르 후 에고 유카리스토
개역개정,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새번역,30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하면, 내가 감사하는 그 음식 때문에 비방을 받을 까닭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말성경,30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에 참여한다면 왜 감사하는 것으로 인해 내가 비난을 받아야 합니까?”라고 반문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가톨릭성경,30 내가 감사하는 마음으로 식사를 함께 하면, 내가 감사하는 그 음식 때문에 비난받을 까닭이 어디 있겠습니까?
영어NIV,30 If I take part in the meal with thankfulness, why am I denounced because of something I thank God for?
영어NASB,30 If I partake with thankfulness, why am I slandered concerning that for which I give thanks?
영어MSG,30 If I eat what is served to me, grateful to God for what is on the table, how can I worry about what someone will say? I thanked God for it and he blessed it!
영어NRSV,30 If I partake with thankfulness, why should I be denounced because of that for which I give thanks?
헬라어신약Stephanos,30 ει δε εγω χαριτι μετεχω τι βλασφημουμαι υπερ ου εγω ευχαριστω
라틴어Vulgate,30 si ego cum gratia participo quid blasphemor pro eo quod gratias ago
히브리어Modern,30 ואם אכל אני בתודה למה אהיה מגדף על הדבר אשר אני מודה עליו׃
성 경: [고전10:30]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그리스도인의 자유]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비방을 받으리요 – ‘감사함’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리티'(*)는 본래 ‘은혜'(grace)라는 의미인데 ‘감사함’의 뜻으로도 쓰인다(딤전 1:12). 본절에서는 음식에 대한 축사로 사용된 용어로 보인다(TDNT). 바울은 기독교인이 이교도의 집에 초청받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될 때 그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으로 생각하고 감사하며 먹는다면 윈리적(原理的)으로는 합당한 것으로 비방받을 일이 못된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그러한 행동으로 인해 믿음이 약한 형제들이 상처를 받는다면 음식을 먹음에 있어서 자제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타인의 유익을 위해 나의 권리와 자유를 포기한다면 그것은 자유와 권리를 잃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들을 최대한 사용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롬 14:21).
에이테 운 에스디에테 에이테 피네테 에이테 티 포이에이테 판타 에이스 돜산 데우 포이에이테
개역개정,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새번역,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우리말성경,31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행하든지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십시오.
가톨릭성경,31 그러므로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
영어NIV,31 So whether you eat or drink or whatever you do, do it all for the glory of God.
영어NASB,31 Whether, then, you eat or drink or whatever you do, do all to the glory of God.
영어MSG,31 So eat your meals heartily, not worrying about what others say about you–you’re eating to God’s glory, after all, not to please them. As a matter of fact, do everything that way, heartily and freely to God’s glory.
영어NRSV,31 So, whether you eat or drink, or whatever you do, do everything for the glory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31 ειτε ουν εσθιετε ειτε πινετε ειτε τι ποιειτε παντα εις δοξαν θεου ποιειτε
라틴어Vulgate,31 sive ergo manducatis sive bibitis vel aliud quid facitis omnia in gloriam Dei facite
히브리어Modern,31 לכן אם תאכלו או אם תשתו או כל אשר תעשו את הכל עשו לכבוד אלהים׃
성 경: [고전10:31]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그리스도인의 자유]
먹든지 마시든지…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 이제 바울은 ‘우상의 제물’이라는 문제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결론적인 권면을 하고 있다. 본절에서 제시하는 ‘하나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인의 전반적인 삶을 지배하는 기본 원리이다(골 3:17). 즉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행동은 그것이 먹는 것이든 마시는 것이든 결국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벧전 4:11). 그런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라는 말 속에는 바울이 이제까지 말하였던 ‘타인의 유익’에 대한 언급이 포함되어 있다(시 133:1-3).
아프로스코포이 카이 유다이오이스 기네스데 카이 헬레신 카이 테 엨클레시아 투 데우
개역개정,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새번역,32 여러분은 유대 사람에게도, 그리스 사람에게도, 하나님의 교회에도, 걸림돌이 되지 마십시오.
우리말성경,32 여러분은 유대 사람에게든지 그리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의 교회에든지 걸려 넘어지게 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가톨릭성경,32 유다인에게도 그리스인에게도 하느님의 교회에도 방해를 놓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영어NIV,32 Do not cause anyone to stumble, whether Jews, Greeks or the church of God–
영어NASB,32 Give no offense either to Jews or to Greeks or to the church of God;
영어MSG,32 At the same time, don’t be callous in your exercise of freedom, thoughtlessly stepping on the toes of those who aren’t as free as you are.
영어NRSV,32 Give no offense to Jews or to Greeks or to the church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32 απροσκοποι γινεσθε και ιουδαιοις και ελλησιν και τη εκκλησια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32 sine offensione estote Iudaeis et gentilibus et ecclesiae Dei
히브리어Modern,32 ואל תתנו מכשול לא ליהודים ולא ליונים ולא לקהלת אלהים׃
성 경: [고전10:32]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그리스도인의 자유]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 여기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프로스코포이…기네스데'(*)는 ‘거침돌이 되어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지 않는’의 뜻을 갖는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행동 원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요 두번째 원리는 다른 사람들을 실족케 하는 일을 피하는 것이다.
카도스 카고 판타 파신 아레스코 메 제톤 토 에마우투 쉼포론 알라 토 톤 폴론 히나 소도신
개역개정,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새번역,33 나도 모든 일을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것은, 내가 내 이로움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이로움을 추구하여,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33 나도 모든 일에 모두를 기쁘게 하며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합니다. 이는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33 무슨 일을 하든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쓰는 나처럼 하십시오. 나는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내가 아니라 그들에게 유익한 것을 찾습니다.
영어NIV,33 even as I try to please everybody in every way. For I am not seeking my own good but the good of many, so that they may be saved.
영어NASB,33 just as I also please all men in all things, not seeking my own profit, but the profit of the many, that they may be saved.
영어MSG,33 I try my best to be considerate of everyone’s feelings in all these matters; I hope you will be, too.
영어NRSV,33 just as I try to please everyone in everything I do, not seeking my own advantage, but that of many, so that they may be saved.
헬라어신약Stephanos,33 καθως καγω παντα πασιν αρεσκω μη ζητων το εμαυτου συμφερον αλλα το των πολλων ινα σωθωσιν
라틴어Vulgate,33 sicut et ego per omnia omnibus placeo non quaerens quod mihi utile est sed quod multis ut salvi fiant
히브리어Modern,33 כאשר גם אנכי מבקש להיות רצוי לכל בכל ולא אבקש תועלת עצמי כי אם של הרבים למען יושעו׃
성 경: [고전10:33]
주제1: [이스라엘의 역사와 우상 숭배]
주제2: [그리스도인의 자유]
나와 같이…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 – 바울은 자신의 행동을 본보기로 고린도 교인들에게 권면하였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의 환경에 적응시켰다(9:18-22). 특히 그는 9:22에 기록된 대로 약한 자들을 얻기위하여 스스로 약한 자가 되었다. 바울이 그렇게 행동한 것은 단순히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함이 아니었다(갈 1:10). 즉 바울은 복음이 말로만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전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Grosheide) 스스로를 순응시키는 겸손함을 통하여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다. 본절은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구하시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자신을 본받아 살면 결코 그릇된 길로 가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바울은 자신의 중심에 자기가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담대하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었다(갈 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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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헨리 주석, 고린도전서 10장
10:1 유대인의 역사적 교훈(고린도 전서 10:1-5) 고린도 교인들이 우상과 교제하지 않으며 나쁜 죄의 길에서 안주하지 않도록 바울은 유대인의 보기와 구약의 교회를 제시한다. 그들은 특권을 향유하였으나 무서운 죄를 범하여 벌을 받아 쓸어졌다. 여기에서 바울은 우리의 은혜와 같은 유대인들의 특별한 은혜를 열거한다. Ⅰ. 바울은 먼저 주목과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일에 대하여 너희가 무지하기를 원치 아니한다. 너희가 알고 주의해야 할 일이다. 그것은 교훈적이며 훈계가 되는 역사이다.” 유대교는 베일에 쌓인 기독교이며 모형과 어두운 암시에 덮여 있는 것이다. 복음이 그들에게 율법적인 의식과 희생의 형태로써 전하여졌다. 그들에게 대한 하나님의 섭리나 사건들이 우리에게 경고가 되어야 한다. Ⅱ. 바울은 그들의 특권을 상술한다. 1. 애굽으로부터 구원. “우리 조상들이 즉 우리 유대인들의 선조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두가 하나님의 보호와 행위 아래에 있었다.” 구름은 두 가지로 봉사하였다. 때때로 구름 기둥이 되어 한편에는 빛으로써 길을 인도하고 다른 한편에는 어두워서 추적하지 못하였다. 때때로는 이스라엘 백성 위에 덮여져서 사막의 작열하는 태양을 가리워 주었다(시 105:39). 그들은 기적적으로 홍해를 지났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장사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길이요, 애굽 사람들에게는 공동 묘지의 길이었다. 하나님과 우리의 적을 타도하여 우리를 구원시키는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의 좋은 모형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은총 가운데 있었으며 하나님은 기적과 인도와 보호로써 그들을 구원하였다.
2. 유대인들도 우리와 같이 성찬을 가졌다.
(1)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2절) 모세에게 세례를 받고 즉 모세의 율법과 계약 아래에서 세례를 받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율법과 계약 아래에서 세례를 받는다. 그들에게는 모형적인 세례이다.
(2) 우리와 같이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그들이 먹은 만나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 즉 먹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의 모형이다. 그들의 음료는 광야의 여행 중에 그들을 동반한 바위로부터 나오는 흐름이었다. 이 바위는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는 교회가 설 반석이다.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생수를 마시고 모든 신자들은 새롭게 된다. 모든 유대인들은 이 신령한 고기를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 이것이 그들의 특권이었다. 이것이 그들을 구원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다. 신령한 고기를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시는 모든 사람들은 거룩하고 하나님에게 용납되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5절). 다음을 주목하자.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많을 특권을 누릴 수가 있으나 그러나 영생은 취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적에 의하여 확인된 신령한 사명을 믿었으나 광야에서 쓸어졌고 약속된 땅을 보지 못했다. 누구도 자기의 특별한 은혜나 진리에 대한 고백을 뽐내지 말도록 하라. 우리안에 일의 뿌리가 없다면 천국의 행복도 지상의 심판도 면할 수가 없다.
애굽으로부터 구원. “우리 조상들이 즉 우리 유대인들의 선조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두가 하나님의 보호와 행위 아래에 있었다.” 구름은 두 가지로 봉사하였다. 때때로 구름 기둥이 되어 한편에는 빛으로써 길을 인도하고 다른 한편에는 어두워서 추적하지 못하였다. 때때로는 이스라엘 백성 위에 덮여져서 사막의 작열하는 태양을 가리워 주었다(시 105:39). 그들은 기적적으로 홍해를 지났다. 그러나 애굽 사람들은 장사되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길이요, 애굽 사람들에게는 공동 묘지의 길이었다. 하나님과 우리의 적을 타도하여 우리를 구원시키는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의 좋은 모형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은총 가운데 있었으며 하나님은 기적과 인도와 보호로써 그들을 구원하였다.유대인들도 우리와 같이 성찬을 가졌다.”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2절) 모세에게 세례를 받고 즉 모세의 율법과 계약 아래에서 세례를 받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율법과 계약 아래에서 세례를 받는다. 그들에게는 모형적인 세례이다.우리와 같이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그들이 먹은 만나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 즉 먹는 사람마다 영생을 얻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의 모형이다. 그들의 음료는 광야의 여행 중에 그들을 동반한 바위로부터 나오는 흐름이었다. 이 바위는 그리스도였다. 그리스도는 교회가 설 반석이다. 그리스도에게서 나오는 생수를 마시고 모든 신자들은 새롭게 된다. 모든 유대인들은 이 신령한 고기를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 이것이 그들의 특권이었다. 이것이 그들을 구원했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다. 신령한 고기를 먹고 신령한 음료를 마시는 모든 사람들은 거룩하고 하나님에게 용납되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5절). 다음을 주목하자.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많을 특권을 누릴 수가 있으나 그러나 영생은 취하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이 기적에 의하여 확인된 신령한 사명을 믿었으나 광야에서 쓸어졌고 약속된 땅을 보지 못했다. 누구도 자기의 특별한 은혜나 진리에 대한 고백을 뽐내지 말도록 하라. 우리안에 일의 뿌리가 없다면 천국의 행복도 지상의 심판도 면할 수가 없다.
10:6 우리의 거울(고린도 전서 10:6-14) 사도 바울은 유대인들의 특권을 서술하고서 그들의 결점과 형벌과 죄와 패역을 설명한다. 이것들은 우리의 거울이 되도록 기록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그들이 당한 형벌을 피하려고 한다면 그들이 행한 죄를 피하여야 한다. Ⅰ. 유대인들의 몇 가지 죄가 우리에게 경고가 된다. 1. 우리는 육욕적인 것들을 피하여야 한다.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악을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함이니”(6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로 먹이셨으나 그들은 고기를 먹어야 했다(민 11:4). 그들은 양식의 공급을 받았으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의 욕심을 따라서 고기를 구했다(시 106:14). 육욕은 질길 수록 고개를 든다. 그러므로 시초에 억제해야 한다. 육욕이 왕성해지면 우리를 휩쓸어 알지 못하는 곳으로 끌고 간다. 이 경고가 앞에 나와 있다. 왜냐하면 탐닉한 육욕은 많은 죄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2. 바울은 우상에 대하여 경고한다(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금송아지의 죄가 언급된다(출 32:6). 그들은 제물을 우상에게 드리고 그 제물을 먹고 그리고 그 우상 앞에서 춤을 췄다. 다만 먹고 마시는 것만이 언급되었으나 제물도 가정된다. 비록 자신들이 제물을 우상에게 바치지는 않았더라도 이방인의 제물을 먹고 즐기는 고린도 교인들의 경우를 바울은 언급한다. 우상 앞에서 제물을 먹고 마시면 그것은 우상 숭배이기에 이것을 피하도록 경고한다.
3. 바울은 간음에 대하여 경고한다. 이 죄는 고린도 사람들이 빠졌던 특별한 죄이다. 그들은 비너스(정욕을 가진다는 뜻) 신에게 바친 신전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천명이 넘는 공창인 여자 사제가 있었다. 이와 같이 부패한 도시에 살며 타락한 생할에 익숙하며 우상 숭배에 유혹을 받는 이들에게 간음에 대한 충고가 얼마나 필요했던가! 정신적인 간음은 육체적인 음행으로 나간다. 이방인이 섬기는 대부분의 신은 음란하다. 이방신을 숭배하는 과정에서 음행이 행해졌다. 많을 유대 작가들이나 많을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예배가 바알브올에게 행해졌다고 생각한다. 우상을 숭배하는 중에서 모압의 딸들과 음행이 이뤄졌다. 그들은 이 여자에 의하여 영적이며 육체적인 음행을 하도록 유혹을 받았다. 짐승과 같은 행동은 하지 않더라도 우상 앞에서 제물을 먹고 그리고 몸을 더럽히었다(민 25). 염병이 일어나서 하루에 2만 3천 명이 죽었다. 정의의 칼날에 죽은 자도 많았다. 다음을 주목하자. 어떠한 관계나 특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은 음행하는 자를 심판하신다. 이스라엘의 염병을 피하려 그들의 죄를 피하자.
4. 그리스도를 시험하지 않도록 경고한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9절) 혹은 그를 노여워하게 만들었다(22절). 주는 광야에 있는 교회에 계셨고 그들 앞에서 행한 계약을 주시는 천사였다. 그러나 그는 여러 가지 일로 슬퍼했고 노여워하게 되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민 21:5, 6)이 이유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불뱀을 보내셨고 많은 사람이 물려 죽었다. 오늘에도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사람들은 옛 불뱀에게 넘겨진다.
5. 바울은 원망에 대하여 경고한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10절). 하나님의 복수의 집행자인 멸망시키는 천사에 의하여 멸망되었다. 어떠한 어려움이 그들에게 닥칠 때에 그들의 목자인 모세에게 원망하고 하나님과 다투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서 실망을 할 때마다 지도자들에게 달려가서 그들을 대치하고 그들이 선택한 지도자들에 의하여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이와 같은 사례가 고린도 교인들의 일이었다. 그들은 바울에게 원망하고 그리스도에게 대항하며 다른 교사들을 세우고 자기들에게 맞으며 우상에게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방인들의 비난과 악의를 받기보다 우상의 제물을 먹도록 지도했다. 그러한 일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증스러운 일이고 빠른 파멸을 부르고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사람의 경우와 같았다(민 14:37). 원망이 신령한 명령과 처분에 반대해서 비신앙과 배교가 될 때에는 무서운 죄가 된다. 우리는 육욕적인 것들을 피하여야 한다.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악을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함이니”(6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만나로 먹이셨으나 그들은 고기를 먹어야 했다(민 11:4). 그들은 양식의 공급을 받았으나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의 욕심을 따라서 고기를 구했다(시 106:14). 육욕은 질길 수록 고개를 든다. 그러므로 시초에 억제해야 한다. 육욕이 왕성해지면 우리를 휩쓸어 알지 못하는 곳으로 끌고 간다. 이 경고가 앞에 나와 있다. 왜냐하면 탐닉한 육욕은 많은 죄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바울은 우상에 대하여 경고한다(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금송아지의 죄가 언급된다(출 32:6). 그들은 제물을 우상에게 드리고 그 제물을 먹고 그리고 그 우상 앞에서 춤을 췄다. 다만 먹고 마시는 것만이 언급되었으나 제물도 가정된다. 비록 자신들이 제물을 우상에게 바치지는 않았더라도 이방인의 제물을 먹고 즐기는 고린도 교인들의 경우를 바울은 언급한다. 우상 앞에서 제물을 먹고 마시면 그것은 우상 숭배이기에 이것을 피하도록 경고한다.바울은 간음에 대하여 경고한다. 이 죄는 고린도 사람들이 빠졌던 특별한 죄이다. 그들은 비너스(정욕을 가진다는 뜻) 신에게 바친 신전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서 천명이 넘는 공창인 여자 사제가 있었다. 이와 같이 부패한 도시에 살며 타락한 생할에 익숙하며 우상 숭배에 유혹을 받는 이들에게 간음에 대한 충고가 얼마나 필요했던가! 정신적인 간음은 육체적인 음행으로 나간다. 이방인이 섬기는 대부분의 신은 음란하다. 이방신을 숭배하는 과정에서 음행이 행해졌다. 많을 유대 작가들이나 많을 그리스도인들이 그러한 예배가 바알브올에게 행해졌다고 생각한다. 우상을 숭배하는 중에서 모압의 딸들과 음행이 이뤄졌다. 그들은 이 여자에 의하여 영적이며 육체적인 음행을 하도록 유혹을 받았다. 짐승과 같은 행동은 하지 않더라도 우상 앞에서 제물을 먹고 그리고 몸을 더럽히었다(민 25). 염병이 일어나서 하루에 2만 3천 명이 죽었다. 정의의 칼날에 죽은 자도 많았다. 다음을 주목하자. 어떠한 관계나 특권을 가지고 있더라도 하나님은 음행하는 자를 심판하신다. 이스라엘의 염병을 피하려 그들의 죄를 피하자.그리스도를 시험하지 않도록 경고한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9절) 혹은 그를 노여워하게 만들었다(22절). 주는 광야에 있는 교회에 계셨고 그들 앞에서 행한 계약을 주시는 천사였다. 그러나 그는 여러 가지 일로 슬퍼했고 노여워하게 되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올려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민 21:5, 6)이 이유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불뱀을 보내셨고 많은 사람이 물려 죽었다. 오늘에도 그리스도를 시험하는 사람들은 옛 불뱀에게 넘겨진다.바울은 원망에 대하여 경고한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10절). 하나님의 복수의 집행자인 멸망시키는 천사에 의하여 멸망되었다. 어떠한 어려움이 그들에게 닥칠 때에 그들의 목자인 모세에게 원망하고 하나님과 다투었다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서 실망을 할 때마다 지도자들에게 달려가서 그들을 대치하고 그들이 선택한 지도자들에 의하여 애굽으로 돌아가기를 원했다. 이와 같은 사례가 고린도 교인들의 일이었다. 그들은 바울에게 원망하고 그리스도에게 대항하며 다른 교사들을 세우고 자기들에게 맞으며 우상에게 돌아가는 것을 허용하는 것을 좋아했다. 이방인들의 비난과 악의를 받기보다 우상의 제물을 먹도록 지도했다. 그러한 일이 하나님에 대하여 가증스러운 일이고 빠른 파멸을 부르고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 사람의 경우와 같았다(민 14:37). 원망이 신령한 명령과 처분에 반대해서 비신앙과 배교가 될 때에는 무서운 죄가 된다. Ⅱ. 바울은 특이한 주의에 일반적인 주의을 첨가시킨다(11절).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의 율법과 규례뿐만 아니라 그들에 때한 하나님의 섭리가 다 모형이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죄나 믿음의 후퇴가 복음 아래에 있는 많은 불경건한 사람들의 모형이다.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오늘날 영적인 심판의 모형이다.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함은 불신앙 때문에 하늘 나라에 못들어가는 모형이다. 그들의 역사는 오늘날 교회의 충고자가 된다. 인간의 마지막 때를 당한 우리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다음을 주목하자. 성경의 기록이 무용인 것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은혜 중에서 유대인의 역사를 남겨 두셨다. 그 역사에서 교훈을 얻는 것이 우리의 의무요 지혜이다. 여기에서 바울은 경고를 한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다른 사람이 당한 해가 우리에게 경고가 된다.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을 가지고 안심하지 말고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우리의 능력을 믿고 안심하여 방심할 때에 가장 잘 넘어진다. 자기를 불신하고 경계하고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이 죄를 막는 가장 안전한 길이다. 넘어짐을 주의하지 않으면 자기의 걸음을 삼가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살피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을 약속하시지 않았다. 하나님의 보호는 우리 자신의 주의를 먼저 필요로 한다. Ⅲ. 경고의 말씀 위에 위로의 말씀을 첨가한다(13절). 우리가 교만한 것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지만 우리가 실망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않는다. 전자가 죄라면 후자가 죄없지 않다. 비록 우리가 경외하고 넘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지만 공포에 질려서도 안 된다. 우리의 시험이 우리의 힘에 적응되던지 시험에 따라서 우리에게 능력이 주어진다. 우리는 큰 위로를 가지고 있다. 1.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즉 인간적인 시험, 이방인들이 당하는 그런 시험이다. 혹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그런 시험이다. 인간의 결심과 정신이 견디어나갈 수 있는 그런 시험이다. 그리스도인의 시험은 보통의 시험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시험을 당한다. 남들이 견디어나가는 시험을 우리도 견디어 나갈 수가 있다.
2.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사탄은 사기자이나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인간과 세상은 거짓되어도 하나님은 신실하시어 우리의 능력과 안전은 그의 안에 있다. 하나님은 자기의 계약을 지키시고 자녀들의 희망과 신뢰를 실망시키시지 않는다.
3.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현명하시다. 그래서 우리의 짐을 우리의 능력에 맞도록 만드신다.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험을 조정하시거나 우리의 능력을 조정하신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게 하신다. 우리가 그를 의지하며 그에게 성실하다면 우리가 정복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돌보신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신다면 인생 길에 있어서 어려움에 당황하여서는 안 된다.
4. 특히 유종의 미가 되도록 역사하신다.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즉 시험 자체나 시험이 주는 재난을 면케 하신다.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못할 어두운 골짜기도 없고 하나님이 막지 못할 너무 슬픈 괴로움도 없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사 유익하게 되도록 도우신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즉 인간적인 시험, 이방인들이 당하는 그런 시험이다. 혹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흔히 있는 그런 시험이다. 인간의 결심과 정신이 견디어나갈 수 있는 그런 시험이다. 그리스도인의 시험은 보통의 시험이다. 다른 사람들도 그런 시험을 당한다. 남들이 견디어나가는 시험을 우리도 견디어 나갈 수가 있다.”하나님은 신실하시다.” 사탄은 사기자이나 하나님은 진실하시다. 인간과 세상은 거짓되어도 하나님은 신실하시어 우리의 능력과 안전은 그의 안에 있다. 하나님은 자기의 계약을 지키시고 자녀들의 희망과 신뢰를 실망시키시지 않는다.하나님은 신실하시며 현명하시다. 그래서 우리의 짐을 우리의 능력에 맞도록 만드신다. “우리가 감당치 못할 시험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우리가 무엇을 감당할 수 있는가를 아신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험을 조정하시거나 우리의 능력을 조정하신다. 그래서 문제를 해결하게 하신다. 우리가 그를 의지하며 그에게 성실하다면 우리가 정복당하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돌보신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감당할 시험만 허락하신다면 인생 길에 있어서 어려움에 당황하여서는 안 된다.특히 유종의 미가 되도록 역사하신다.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즉 시험 자체나 시험이 주는 재난을 면케 하신다. 하나님이 인도하시지 못할 어두운 골짜기도 없고 하나님이 막지 못할 너무 슬픈 괴로움도 없고 우리에게 능력을 주시사 유익하게 되도록 도우신다. Ⅳ. 여기에서 바울은 우상 숭배에 다른 주의를 준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다음을 관찰하자. 1. 말하는 태도.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이 충고를 함은 깊은 애정에서 나왔다.
2. 충고의 내용.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즉 모든 접근을 피하라. 우상 숭배는 하나님에게 행하는 무서운 죄요 도전이다. 경배와 존경을 적에게 바치는 일이다.
3. 충고의 기초. “하나님을 믿으며 신실하여야 할 격려를 받았으니 자신을 증명하여 흔들리지 말고 적이 주는 실망에 빠지지 말라. 하나님께서 구하시고 도우시니 우상의 추종을 금하라.” 우리는 세상에서 죄를 피하며 하나님에게 대해서 성실해야 할 격려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붙어 있으면 유혹으로 넘어지지 않는다. 말하는 태도.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이 충고를 함은 깊은 애정에서 나왔다.충고의 내용.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즉 모든 접근을 피하라. 우상 숭배는 하나님에게 행하는 무서운 죄요 도전이다. 경배와 존경을 적에게 바치는 일이다.충고의 기초. “하나님을 믿으며 신실하여야 할 격려를 받았으니 자신을 증명하여 흔들리지 말고 적이 주는 실망에 빠지지 말라. 하나님께서 구하시고 도우시니 우상의 추종을 금하라.” 우리는 세상에서 죄를 피하며 하나님에게 대해서 성실해야 할 격려를 가지고 있다. 우리가 하나님에게 붙어 있으면 유혹으로 넘어지지 않는다.
10:15 주의 성찬에 대하여(고린도 전서 10:15-22) 이 절에서 바울은 우상 숭배에 대하여 일반적인 주의를 주고 이방인들이 제물을 바친 우상에게 존경과 종교적인 생각으로 제물을 먹는 것에 경고한다. Ⅰ. 바울은 그들의 이성과 판단에 호소하면서 그의 주장을 전개한다. “나는 지혜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15절). 너희들은 날카로운 이성과 토론을 하면서 지혜로운 자로 자랑한다. 내가 온당하게 말하는지 너희 이성과 양심으로 판단하라.” 다음을 주목하자. 청중의 이성과 양심에 호소하여 진리를 증거하는 것이 영감을 받은 교사에게 불명예스럽거나 불리하지 않다. 확신으로 주어질 때 더 강하게 역사할 수가 있다. 영감을 받은 바울은 어떤 경우에는 자기의 가르침이 그들의 이성의 빛과 지각에 일치하지 않는가 스스로 판단하라고 한다. Ⅱ. 바울은 주의 만찬에서 자기의 주장을 결론짓는다.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의 참예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예함이 아니냐.” 이 신성한 예식이 하나님과 교통함이 아니냐. 하나님과 친구와 같이 교제함이 아니냐. 우리의 죄의 용서와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하여 살을 찢으시고 피를 흘리신 그리스도와 교제함이 아니냐. 그에게 우리가 헌신하지 않고 하나님 그리스도와 교제할 수 있겠는가. 간단히 말하여 주의 만찬은 우리 주의 희생된 몸과 피에 대한 잔치이다(epulum exoblatis). 잔치에 참예하는 것은 그의 희생에 참예하여 희생에 초대되어 우정을 나타내게 된다. 주의 식탁에 참예함은 그의 손님과 계약의 백성이 됨을 고백하는 일이다. 이것이 상징적인 먹음과 마심의 의향이요, 목적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며 특별한 은혜에 참여하며 그리스도의 죽음과 희생에서 나오는 의무를 수락함이다. 여기에서 전 그리스도인이 연합된다.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17절). 이렇게 번역하면 더 좋을 것이다. “하늘에서 내려온 유일의 참 떡인 구주의 찢어진 떡의 상징인 떡을 떼어서 한 몸에 연합하고 서로 서로가 지체가 된다.” 믿음으로 참예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교제하며 서로서로 교제하게 된다. 외부적인 물질을 먹은 사람은 하나님에게 속하여 그의 백성과 형제와 연합하게 된다. 이것이 거룩한 의식의 의미이다. Ⅲ. 바울은 유대인의 예배와 관습에서 이 주장을 확정한다.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은 자들이 제단에 참예하는 자들이 아니냐.” 즉 제단에 바쳐진 제물이다. 제물을 먹은 사람은 제물에 참예하여 거룩하게 되고 하나님을 경배하고 그와 연합하게 된다. 이것은 하나님과 교제하는 상징이요 표시이다. Ⅳ. 바울은 이 이론을 적용하여 우상 숭배자들과 함께 제물을 먹는 사람은 우상 숭배자가 된다고 한다. 1.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그들의 주장을 인정한다. 우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안에 신성이 없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도 아무것이 아니고 변함이 없으며 일반적인 음식이 된다. 그들은 우상과 그 제물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이 없이 먹는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바울도 우상에게 바친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변함없이 일반 음식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2. 이방인의 제물로써 먹는 것은 다르다.
(1) 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다.” 이방인이 바친 제물은 귀신에게 바친 것이고 그 제물을 먹는 것은 교제하며 귀신을 경배하는 일이다. 이것은 주의 만찬에 참예하는 자는 주의 희생에 참여하고 유대인의 제물을 먹는 사람은 그 제물에 참예함과 같은 일이다. 이방인들은 귀신에게 제물을 바쳤다. “그러므로 그들의 제물을 먹지 말라. 먹으면 제물이 바쳐진 마귀와 교제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2) 그것은 기독교를 실제로 포기하는 일이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21절). 그리스도인의 식탁에 참예함을 그리스도와 교제이다. 우상에게 바쳐지고 그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과 교제함이다. 모순되는 일이며 용납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와 우상과의 교제와 동시에 이뤄질 수가 없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사람은 우상과의 교제를 끊어야 한다. 우상과 교제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교제를 끊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식탁과 우상의 식탁에 서로서로 참예함이 얼마나 큰 모순인가!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고 하나님과 사탄을 동시에 교제할 수 없다. 귀신과 교통하는 사람은 실제상 그리스도를 버린 것이다. 탐욕과 음주로 귀신의 식탁에서 즐기는 사람은 고의적인 사악과 귀신과의 교제를 함으로써 주의 식탁에 참예할 수 없다. 사탄과 교제하면서 그리스도를 교회에 섬길 수가 없다. 우리가 주의 식탁에 임할 때에 모든 죄와 우상을 버려야 함이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 우상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그들의 주장을 인정한다. 우상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 안에 신성이 없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도 아무것이 아니고 변함이 없으며 일반적인 음식이 된다. 그들은 우상과 그 제물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이 없이 먹는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바울도 우상에게 바친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변함없이 일반 음식이 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이방인의 제물로써 먹는 것은 다르다.우상 숭배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다.” 이방인이 바친 제물은 귀신에게 바친 것이고 그 제물을 먹는 것은 교제하며 귀신을 경배하는 일이다. 이것은 주의 만찬에 참예하는 자는 주의 희생에 참여하고 유대인의 제물을 먹는 사람은 그 제물에 참예함과 같은 일이다. 이방인들은 귀신에게 제물을 바쳤다. “그러므로 그들의 제물을 먹지 말라. 먹으면 제물이 바쳐진 마귀와 교제하는 것이다.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그것은 기독교를 실제로 포기하는 일이다.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예치 못하리라(21절). 그리스도인의 식탁에 참예함을 그리스도와 교제이다. 우상에게 바쳐지고 그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은 우상과 교제함이다. 모순되는 일이며 용납할 수가 없다. 그리스도와 우상과의 교제와 동시에 이뤄질 수가 없다. 하나를 취하면 하나를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와 교제하는 사람은 우상과의 교제를 끊어야 한다. 우상과 교제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교제를 끊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식탁과 우상의 식탁에 서로서로 참예함이 얼마나 큰 모순인가! 하나님과 맘몬을 동시에 섬길 수 없고 하나님과 사탄을 동시에 교제할 수 없다. 귀신과 교통하는 사람은 실제상 그리스도를 버린 것이다. 탐욕과 음주로 귀신의 식탁에서 즐기는 사람은 고의적인 사악과 귀신과의 교제를 함으로써 주의 식탁에 참예할 수 없다. 사탄과 교제하면서 그리스도를 교회에 섬길 수가 없다. 우리가 주의 식탁에 임할 때에 모든 죄와 우상을 버려야 함이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 Ⅴ. 바울은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우상에 대해서 경고한다(22절).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많은 고린도 교인들이 이방인들의 식탁에 앉는 것을 예사로 생각하고 아무런 해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울은 주의하라고 명한다. 제 이 계명이 강조되는 이유는 “나는 질투하는 신이다”이다. 하나님은 경배에 있어서 경쟁자를 허용하시지 않는다. 자기의 영광을 양보하실 수가 없다. 다른 신을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노엽게 한다(신 32:16). 이런 일을 하기 전에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강한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그의 능력을 감당할 수 없다면 하나님을 노엽게 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누가 능히 그 분노하신 앞에 서며”(나 1:6) 이 사실은 그리스도와 교제하면서 죄와 연합하여 즐기는 모든 사람이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의 질투와 분노를 일으키지 않도록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은 우리가 그의 질투와 분노를 일으키지 않도록 깨우쳐야 한다. 하나님을 대적할 것인가, 그의 능력을 저항하며 조종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채찍을 자초할 것인가, 그의 능력을 두려워하고 노엽게 함을 피하도록 주목하자.
10:23 모든 것이 가하나(고린도 전서 10:23-33) 여기에서 바울은 어떠한 경우에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을 먹을 수 있는가를 보여 준다. 종교적인 의식이나 우상의 제물임을 알고 신전에서 잔치에 참여할 수는 없으나 우상에게 바쳐진 것도 죄없이 먹을 수 있는 경우를 말한다. Ⅰ. 바울은 먼저 합법적인 일에 있어서도 우리의 자유를 남용하지 않도록 주의한다. 유익하지 않고 덕을 세우지 못하는 일도 가할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무엇이 가한가를 생각할 뿐만 아니라 무엇이 유익하며 덕을 세우는가도 생각해야 한다. 개인의 생활도 이 원칙에서 벗어나지는 않는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이웃을 해치지 않고 그의 유익을 높이도록 주의해야 한다. 남을 도와서 거룩함과 위로와 구원에 방해가 안 되도록 행동해야 한다. 가한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 우연히 악을 행하여 남에게 피해를 준다. 자체가 합법적인일도 합법적으로 수행되지 못하는 예가 있다. 형편이 죄 아닌 것을 죄로 만든다. 행하기 전에 유익과 덕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우리가 일을 잘 하려면 우리 자신의 유익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유익도 고려해야 한다. Ⅱ. 바울을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 말한다. 이방인의 제물은 제관을 통하여 시장으로 나왔다. 시장의 고기 파는 사람에게 그것이 제물인가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곳에서는 일반 음식물로 팔리니 그것으로 사서 사용하여야 한다.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니라”(26절). 이 땅의 모든 열매와 산물은 대 주인인 주의 것이며 인간의 사용을 위하여 예비되어 있고 특히 하나님의 자녀와 종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딤전 4:4, 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딛 1:15) 비록 어떤 음식을 우상적인 방법으로 사용하면 죄이나 보통으로 용도와 거룩한 방법으로 쓰면 가하다. Ⅲ. 만약 이방인 친지로부터 초대를 받았다면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무엇이든지 차려 놓은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27절). 비록 그들이 우상에 바쳐진 것이 차려졌으며 시장에서 팔려지는 것을 알더라도 문제가 아니다. 바울은 불신자의 초대에 가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이방인이나 불경건한 사람에게도 해야할 예의가 있다. 기독교는 우리와 아무리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더라도 인간의 제도나 그들을 무시하거나 무례하게 행동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불신자의 잔치에 앉았을 때에는 묻지 말고 앞에 있는 음식을 먹어야 한다. 불필요한 질문은 마음과 양심을 당황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피해야 한다. 일반 열회석에 있는 어떤 음식도 먹을 수 있다. 제물에 바친 것인지 아닌지 물을 필요가 없다. 그것은 일반 잔치이며 종교적인 잔치가 아니다. 이방인들은 우상 숭배를 하고서 잔치를 열었는데 바울은 이것을 정죄하였다. 보통의 연회석에서는 일반의 음식을 기대하고 양심의 가책을 일으킬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의무를 알고 깨닫도록 주의하여야 하지만 불필요한 질문으로 자신을 당황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Ⅳ. 그러한 연회석에서도 어떤 사람이 그것이 제물이라고 말하면 삼가해야 한다.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주인이나 손님이나 공공연하게나 비밀리나 불신자나 연약한 그리스도인이나 누가 말하여도 삼가하라. 양심을 위하여서 삼가하라. 전과 같이 이론을 전개한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주의 것이다.” 주님에 의하여 제공된 식물이 많이 있다. 이것을 가책없이 먹을수 있다. 같은 교리가 적용된다. 이 땅은 주의 것이다. 그러므로 보통 음식으로 주어진 무엇이나 양심의 가책없이 먹을 수 있다. 이 땅은 주의 것이기 때문에 남에게 걸림이 되는 것은 먹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을 우상으로 인도하고 가하지 않는 것을 먹도록 유혹하고 죄를 짓고 상처를 입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남의 양심을 아프게 하고 그들의 권위를 손상시킬 것을 주의해서 금해야 함을 주목하자. Ⅴ. 비록 제물이었던 것을 일반 식물로 제공할 때에 먹어도 가하나 남을 넘어지게 하는 일은 삼가하라고 말한다. “다른 사람의 양심이 우리의 행위에 척도는 아니다. 그가 불법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나에게도 불법이 되지는 않는다. 계속해서 자유에 속한 일이다. 하나님을 식물의 제공자로 고백하고 그에게 감사를 드리면 음식을 사용함에 대하여 비난할 수가 없다. 이것은 위에서 언급한 상황에서 먹음으로 생긴 비난에 대한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이해하기도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자유를 사용하여 나를 욕할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겠는가.” 바울의 충고에 의하면(롬 14:16)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그리스도인은 남을 해롭게 하거나 자기가 비난을 받도록 자기의 자유를 사용해서는 안 됨을 명심하자. Ⅵ. 바울은 이 경우를 이용하여 그리스도인의 행동에 대한 일반적인 규칙을 정하고 특별한 경우에 적용한다(31,32절). 즉 먹든지 마시든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삼고 그를 기쁘시고 명예롭게 해야한다. 이것이 실제적인 경건의 근본적인 원리이다. 모든 실제적인 신앙의 목표가 특별한 규칙이 없는 곳에 적용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에 배치되는 일은 할 수 없다. 이웃의 유익을 해치는 일을 금해야 한다. 어떠한 사람도 넘어지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32절) 우상을 그렇게나 혐오하여 우상에 바친 모든 것은 불결하며 그것을 먹는 사람도 죄가 있다고 믿는 유대인을 불필요하게 근심스럽게 만들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행위가 우상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서 이방인들의 우상 숭배를 지지해 주는 결과가 되어도 안 된다. 이방 종교에서 개종한 연약한 신자들이 그들이 버린 우상 숭배를 계속해서 하도록 해도 안 된다. 교회의 어떠한 성도들의 신앙을 잘못 인도해도 안 된다. 우리의 기질과 기호와 우리의 행동을 결정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의 유익과 덕이 결정해야 한다. 우리 자신의 흥미나 쾌락을 생각하지 말고 천국의 확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게 헌신한 사람이며 공적인 정신을 가져야 한다. Ⅶ. 바울은 자기의 본보기를 말한다.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며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라”(33절). 설교자는 자기의 본보기로 강조할 때에 더욱 권위있게 충고할 수 있다. 스스로 실천하는 일은 가장 감동을 줄 수 있다. 목사가 청중의 구원을 위하여 자기의 이익을 도외시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이것은 그의 기능에 알맞는 정신이다. 좁은 마음이나 이기심으로써는 할 수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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