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23 나다나엘 무화과 나무 The 10 New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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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묵상]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 이야기) _홍익학당.윤홍식
[3분 묵상]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 이야기) _홍익학당.윤홍식


주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나다나엘의 무엇을 보셨을까 : 오피니언/칼럼 : 종교신문 1위 크리스천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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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나다나엘을 만나시는 장면입니다. 주님은 나다나엘을 반갑게 맞이하셨습니다. 주님은 그를 이미 잘 알고 있다는 듯 만나십니다. 그때 “진짜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칭찬을 하셨습니다.

    그 칭찬은 너무나 과해서 주변에서 듣기에 거북할 정도였습니다. 주님께서 나다나엘에게 하신 칭찬에는 깊은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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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3-51) 무화과 아래 있던 나다나엘 :: Bible become 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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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3-51) 무화과 아래 있던 나다나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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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3-51) 무화과 아래 있던 나다나엘 :: Bible become My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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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식물과 유대 전통의학 2 – “무화과 나무 아래서 나다나엘은 무엇을 했을까?”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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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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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무화과나무에서 나다나엘 :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입니다. 예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는 것을 믿느냐. 빌립과 다른 … 요한복음 1장 43절-50절 43-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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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걱정한 ‘민족주의’ : 오피니언 : 미주 종교신문1위 : 기독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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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걱정한 '민족주의' : 오피니언 : 미주 종교신문1위 : 기독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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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바람이 만나서 ::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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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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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과 바람이 만나서 ::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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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다나엘 무화과 나무 | [신구약중간사09]무화과나무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204 개의 베스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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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식물과 유대 전통의학 2 – “무화과 나무 아래서 나다나엘은 무엇을 했을까”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 아래서 걱정한 ‘민족주의’

나다니엘이 그리스도라 고백한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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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쁠라야펜션,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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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43-51) 무화과 아래 있던 나다나엘

빌립이 와서 메시야를 만났으니 가 보자고 했을 때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 했던 나다나엘은 사람을 메시야라고 만나보자는 빌립의 말을 좇아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은 육신의 어떠함이 선함이라는 가치관이다. 육신의 행실과 모양이 선의 근본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 가치관은 사람이 메시야라고 하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 사람의 추함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다나엘은 자신의 가치관을 넘어서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런 나다나엘의 모습을 예수님은 ‘간사함이 없다.’라고 하셨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네(나다나엘)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다.”라고 하신다. 그랬더니 나다나엘이 “언제 나를 봤단 말입니까?”라는 식의 의문을 가진 것이 아니라,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는 고백을 하게 된다. 그러자 한술 더 떠서 예수님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하시고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셨다.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요 1:47-51)

이 대화는 극적이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예수님은 정말로 대단한 능력을 가지셨나 보다, 그냥 한 마디만 하면 사람이 주님으로 고백하게 하시는구나!’로 읽으면 곤란하다. 물론 예수님의 능력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예수님의 능력이 사람이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굴복하게 하시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다나엘이 보여준 이 대화 속의 반응은 예수님의 능력에 자신의 의지가 제압당한 것이 아니다. 나다나엘의 속에서 무엇인가가 밖으로 표현된 것이다.(신앙이라는 것이 사람 안에서 변화가 일어나서 밖으로 표현되는 것이라는 것을 모르면 예수님의 능력도 사람의 의지와 무관하게 제압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무화과는 율법의 나무, 이스라엘의 나무이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상징하는 나무이기도 하고, 아담이 자신의 부끄러움을 감추려고 사용한 잎이 무화과 나뭇잎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무화과나무는 율법의 나무이다. 사람들이 율법을 지켜내면 육신의 부끄러움이 감추어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성경을 몸으로 지켜 행하면 인생이 가진 연약함과 추함이 가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같은 것이다.(인생이 추하고 연약한 것은 사람의 기준이지 하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고 하신 것은 나다나엘이 율법 아래 있었다는 것을 말씀하심이다. 그랬기 때문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고 말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들은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고 이스라엘의 임금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그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오늘 우리가 그 고백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어떤 면에서 보면 인식이다. 인정하고 시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천지창조에 있어 가장 먼저 빛을 만드신 것이다. 빛이 곧 인식이고, 빛이 있어야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다나엘은 자신이 무화과나무 곧 율법의 가치관 아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 사람이다. 이것을 성경에서 다른 말로 ‘자신의 죄를 시인’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나다나엘이 도적질과 같은 죄를 지었다는 것이 아니다. 무화과나무 밑은 인생이 거할 자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죄가 ‘자리를 벗어나다’라는 의미를 가진 ‘하말티아’가 원어인 것이다.

무화과 아래에 있었다는 것은 선악과를 먹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 선과 악에 대한 판단 기준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아담의 범죄다. 그래서 무화과 나뭇잎으로 자신이 가진 선악의 기준으로 볼 때 부끄러운 인간의 정체성을 가리려 한 것이다. 율법으로 사람의 연약함을 가리려 하는 것이 그것이다. 나다나엘이 무화과 아래에 있었다는 것은 무화과의 가치관, 곧 선악과를 먹은 가치관의 지배 아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다나엘이 스스로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할 때, 자신이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존재였다는 것을 인정한 것이다.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오겠느냐?’하는 그 가치관을 고수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당연히 빌립을 따라 예수님께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기 가치관을 넘어서서 예수님을 만났고, 그 예수님께서 자신의 자리가 하나님이 정하신 자리가 아니라 선악의 가치관을 가진 무화과나무 아래, 곧 사람이 행위로 의롭게 된다는 율법의 기준을 자기 의로 가진 자리에 있었다고 할 때 그것이 인정이 된 것이다. 그야말로 죄를 자복한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회개, 돌아섬이 있는 것이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다는 것은 사람을 보고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무화과나무 아래 있는 사람은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사렛과 같은 천한 동네에서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람은 추하므로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을 보고, 그것도 나사렛 출신에 비슷한 동네인 갈릴리에서 살고 있는 예수님을 보고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는 것은 대단한 반전인 것이다. 무화과 잎으로 가리고 싶은 모습을 가진 사람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율법 아래 있었다는 것,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다는 것, 성경을 행동으로 지켜내려는 사람이었다는 것,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모습을 자기가 가진 선과 악의 기준으로 추하고 연약한 것으로 보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인정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런 고백이 없었는데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모든 믿음은 하나님을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소유와 공로의 신으로 모독하고 있는 것을 신앙이라 착각하는 사람일 뿐이다.

반면에 그런 고백이 있는 사람은 하늘이 열린다고 하셨다. 이 고백이 바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는 아들 삼으심을 믿는 고백이다. 그 고백, 그 믿음이 있다는 것은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을 때와는 다른 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늘이 열리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시작을 개천절이라고 하듯이 하늘이 열렸다는 것은 새로운 세계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곧 하나님의 세계가 창조되고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요한 사도가 앞에서 말한 세상에 비친 빛이 나다나엘에게 또 그 고백이 있는 사람에게 비취었다는 것이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 그것은 주기도문에서 ‘하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고 하신 말씀과 같은 것이다. 하나님의 뜻, 하늘의 뜻은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늘이 열린다는 것은 사람을 만났는데 사람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하는 것이 하늘이 열리는 것이고, 하늘의 뜻이 땅(사람)에게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성서식물과 유대 전통의학 2 – “무화과 나무 아래서 나다나엘은 무엇을 했을까?”

<성서 식물과 유대 전통 의학>

“무화과 나무 아래서 나다나엘은 무엇을 했을까?”

무화과 나무아래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나다나엘이 가로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가로되 와 보라 하니라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가라사대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이 가로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요 1장 45절 ~ 49절)

‘무화과 나무 아래’에서 나다나엘은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낮잠? 무화과 따 먹기?

빌립의 전도를 통해 예수님께 나아온 나다나엘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는가?’하는 의구심이 가득한 채로 마지못해 빌립의 요수에 응했다. 나다나엘을 보신 예수님은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라며 최고의 찬사를 하셨고, 나다나엘은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은 참으로 선문답처럼 들린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우리에게는 전혀 수수께끼처럼 들리는 이 말씀을 듣고 나다나엘은 곧바로 메시아의 고백이 터져나왔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반신반의하던 나다나엘의 모든 의구심을 일거에 날려버린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나다나엘의 심령에 비수처럼 꽃힌 것이다. 과연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무엇을 하다가 들킨(?) 것일까? 그 밑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을까? 아니면 입을 벌리고 누워서 무화과 열매가 떨어지기를 기다리고 있었을까?

물레방앗간에… 무화과 나무아래…

한국 성도들 입장에서 성경을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의외로 간단한데, 이는 2000년이 지난 ‘시간적’ 갭(GAP)과 함께,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이스라엘과 한국이라고 하는 ‘공간적’ 갭을 메우는 작업이 그리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 차이로 인해, 부모는 자식들이 쓰는 그들만의 표현과 은어를 이해할 수 없고, 자식도 부모 세대의 그것을 이해하기 어렵다. 특히 요즘처럼 컴퓨터 시대에는 자식들이 사용하는 채팅 용어들은 부모 세대들에게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문’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한 세대만 시간이 지나도 그들만의 문화와 표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세대를 살아간다고 해도 공간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끼리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자란 아이들과 미국에서 자란 교포 아이들의 표현은 서로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해서는 이처럼 시간적, 그리고 공간적 갭을 메우려는 시도가 선행되어야 한다. 성경을 2000년이 지난 한국 사람의 눈으로 이해하지 않고, 1세기 유대인들의 눈으로 이해하려는 시도가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과연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보았다’는 표현이 1세기 유대인 나다나엘에게도 선문답이나 수수께끼처럼 들렸을까? 물론 그렇지 않다. ‘무화과나무 아래 있다’는 말은 1세기 유대인들이 보편적으로 쓰던 숙어와 같은 표현이었다. 예를 들어, ‘나는 철수, 네가 어젯밤 영숙이와 물레방앗간에서 한 짓을 알고 있다’고 말할 때, 부모 세대는 ‘물레방앗간에서’ 영숙이와 철수가 무슨 짓(?)을 했는지 떠올리겠지만 자식 세대에서는 뚱딴지처럼 들릴 것이다.

무화과 나무 아래 : 토라를 공부하는 최적의 장소

성서 시대에 이스라엘에서 토라를 소유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 아니었다. 두루마리 성경인 토라는 당시 1년 치 봉급을 모아야 겨우 살 수 있는 귀중품 중의 귀중품이었다. 늘 다음 끼니를 걱정하는 소작농이 대부분이던 성서시대 이스라엘에서, 토라는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마을의 회당에나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회당을 지을 규모가 되는 마을의 회당에나 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회당을 지을 정도의 사람이 없는 작은 시골 마을에서는 토라를 공부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당시 랍비 문헌에 보면, 회당이 없는 작은 마을에서 토라를 공부하는 최적의 장소로 추천된 곳이 바로 ‘무화과나무 아래’였다.

이스라엘의 건기(여름)는 한국보다 훨씬 덥지만 무척이나 건조하다. 그래서 햇빛 아래에서는 호흡조차 힘들 정도이지만 그늘에 들어가면 무척 선선하다. 6개월간 지속되는 이스라엘의 여름 날씨에서, 잎이 넓어 좋은 그늘을 제공하는 ‘무화과나무 아래’는 유명한 랍비와 함께 토라를 공부하고 토론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추천된 것이다. 아울러 넓은 그늘과 함께 여름 내내 쉼 없이 열매를 맺는 무화과의 향기는 뇌의 왕성한 기억력을 돕는 청량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진리를 찾던 구도자, 나다나엘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열심히 토라를 공부하고 진리를 찾던 구도자였다. 진리에 대한 목마름으로 뜨거운 여름 햇살을 피해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토라를 묵상하던 나다나엘을 예수님은 이미 보셨을 것이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다’ 이 말씀은 나사렛 출신 랍비인 예수에 대한 그의 선입견을 일거에 날려버렸으며 그의 입에서 메시아 고백이 터져 나온 것이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예수님의 말씀과 이에 대한 나다나엘의 메시아 고백을 오늘날에 적용할 때 가장 유사한 예는 이와 같을 것이다. 어떤 성도가 100일 작정 특별 새벽기도를 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고 그분의 음성을 듣고자 갈급함 가운데 울부짖었다고 하자. 그러나 100일 기도가 끝났어도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는 보이지 않았고 음성은 들리지 않아 실의에 빠졌다. 이런 그에게 예수님이 찾아오셔서 ‘네가 특별 새벽기도를 하면서 간절히 나를 찾을 때에 내가 이미 너를 보았다’고 말씀하신다면, 그 성도의 입에서는 하나님을 만난 감격에 이런 고백이 터져 나올 것이다. ‘당신은 나의 하나님 이십니다.’

첫 범죄와 무화과나무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 3장 7절)

에덴동산에서의 첫 범죄 사건에 대한 기록에 무화과나무가 나오는 것을 보면, 분명 무화과나무는 성지 이스라엘에 자생하는 대표적인 나무였을 것이다. 선악과를 따 먹고 범죄 한 아담과 하와에게 나타난 첫 번째 반응은 자신들의 벗었음에 대한 자각이었다. 이들은 얼른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 부끄러운 부위를 가렸다. 그러면 왜 굳이 무화과나무 잎으로 가렸을까? 물론 이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이 있겠지만 가장 설득력 있는 것은 무화과나무의 잎이 크고 넓어 부끄러운 부위를 가리기에 안성마춤(?)이었다는 것이다. 만약 올리브나무 잎처럼 작은 잎으로 가렸다면 상당히 ‘민망한’ 사태가 발생할 것이기 때문이다.

선악과는 어떤 나무일까?

동산 중앙에 덩그러니 서 있던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의 정체에 대해 서양에서는 보편적으로 사과나무로 보는 듯 하다. 그러나 사과는 중동에서 자생하는 나무가 아니기 때문에. 다분히 서양의 문화에서 탄생한 선악과일 뿐이다. 그러면 성서의 공간적 배경이 펼쳐진 이스라엘의 유대인들은 선악과로 가능한 나무의 후보로 무엇을 생각했을까? 가장 근접한 후보는 바로 쥐엄나무이다. 쥐엄열매는 히브리어로 ‘하루브’(בורח)인데 이는 멸망을 뜻하는 ‘마하리브’(בירחמ)와 그 어원이 같기 때문이다.

또 다른 선악과의 후보는 무화과나무이다. 이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자마자 바로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었다는 다분히 정황적 근거에 기초한 판단 때문이다. 선악과 열매를 따먹자마자 벗었음을 느끼고 곧바로 무화과 잎으로 치마를 엮기 위해서는, 무화과나무가 선악과에서 무척 가까운 곳에 위치했던지 아니면 무화과나무 자체가 선악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유대인들의 생각이다.

* 출처 : 이스라엘 투데이 December. 2008. no. 26

요한복음 1장 43절-50절

43-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이번 말씀에서는 나다나엘을 눈여겨 본다.

예수님과 나다나엘의 대화를 보면 선문답처럼 둘이서만 통하는 대화를 하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나다나엘은 ”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다고?”

라며 의문을 제기한다. 이때 빌립은 말한다. “와서 직접 보면 알아.”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듯이. 예수님에게서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없는 신적 아우라가 있었을 것이다.

나다나엘이 오는 것을 본 예수님은 이미 나다나엘의 인간적 품성을 아셨고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

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가슴에 콕 찌르면서 아프다.

나다나엘은 하나님 앞에 이미 인정받은 사람이었다는 것은 알겠는데 다음에

이어지는 대화를 보면 뭔가 아리송하다.

예수: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나다나엘: 어떻게 나를 아십니까

예수: 빌립이 너를 부르기도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 봤다.

나다나엘 :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입니다.

예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는 것을 믿느냐

빌립과 다른 제자들은 이 대화의 의미를 눈치채었을까?

예전에

‘예수’ 영화를 본 적이 있었는데 영화에서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었다.

‘나다나엘은 홀로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있다가 눈을 들어 무화과 나무 잎 사이로 하나님의 형상 같은 빛을 본다. 나다나엘은 그 빛이 하나님임을 깨닫게 되는데 마침 빌립이 와서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한다.

나다나엘은 빌립을 따라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이 무화과나무에 나타났던 그 하나님임을 알게 된다’

나는 그전에 ‘무화과나무에서 보았다’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꽤 궁금하였었다.

누군가는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무화과나무에서 기도하는 것을 그전에 지나다가 본 것이라 하였으나 문맥적으로 맞지 않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영화에서의 해석이 적절하다고 느꼈다.

나다나엘은 선한 사람이었고 또 예수님이 메시아로 오실 것을 알고 있던 사람이다.(45절)

그러므로 무화과나무 아래서 혼자 다시 오실 하나님을 묵상하거나 아니면 기도 중이었을 것이다.

그때 그는 영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거나 빛 같은 형상을 마주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났을 때 한치의 의심도 없이 그분이 하나님 이심을 알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님은 체험하는 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것이고 개인마다 다르다.

그래서 예수께서 손가락을 한 개 드시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불립문자인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부터 하나님은 그분의 자녀들 각자에게 나타나시며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끝없이 보이셨음을 알게 한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 진실임을 인간의 체험으로도 끝없이 깨닫게 해 주신 것이다.

과학이 이토록 발전한 세상에서도.

하나님은 아직도 그분의 자녀들에게 나타나셔서 힘을 얻게 하시고 또 소망을 품게 하신다.

나다나엘처럼 마음에 선함을 품고

무화과나무 아래 한적한 곳에 나아가 하나님을 묵상하는 시간이 많으면 하나님을 또 순간 마주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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