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30 누가 복음 2 장 주석 All Ans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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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누가복음2장_구유에 뉘였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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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주석 – 누가복음 – 예사랑 성경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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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주석 - 누가복음 - 예사랑 성경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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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누가복음 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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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누가복음 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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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누가복음 2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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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누가복음 2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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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L NOCR – 메튜 헨리 주석, 누가복음 0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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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L NOCR - 메튜 헨리 주석, 누가복음 0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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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강해설교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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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강해설교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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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강해설교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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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 BIBL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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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본문

누가복음 2장 - BIBLE S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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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주석 – 누가복음 2:1~14 호크마 주석 ~ 족자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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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주석 - 누가복음 2:1~14 호크마 주석 ~ 족자 한국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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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복음 2 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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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복음 2 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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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주석

누가복음 제 2장

=====2:1

이때에 – 2장을 시작하는 이 말은 1:80의 언급을 염두에 둔 것으로서 새로운 사건

의 시작을 알림과 아울러 상황의 변화로 인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가이사 아구스도(K* A , 카이사로스 아우구스투) –

‘카이사로스’는 하나의 인명일 수도 있고 후대적 용법에서처럼 칭호일 수도 있다. 아

구스도는 원래 라틴어인데 헬라어로는 보통 ‘황제'(* , 세바스토스,

행 25:21, 25)로 번역되며 여기서는 인명으로 사용되었다. 아구스도 황제의 본명은 가

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이다. 그는 B.C. 27-A.D. 14까지 로마의 황제로 있

었고 그후 외증조부 율리우스 시이저의 이름을 따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시이저(Gaius

Julius Caesar)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옥타비아누스는 B.C. 27년에 로마 원로원으로

부터 ‘아우구스투스'(‘위대하고 고귀하며 지극히 숭배받는’ 이란 뜻)라는 칭호를 부여

받으며 그후 그는 시이저 아우구스투스로 명명되고 최고의 권위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탁월한 통치 능력과 현명하고 훌륭한 정치 및 행정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점령지에 대한 정책의 일환(一環)으로 점령지의 지방 자치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기도

하며 점령지의 문화와 종교, 생활 풍습등을 인정해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 나라의

법률까지도 로마법에 비추어 무리가 크게 없는 한 인정해 주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건축 등을 장려하기도 했으며 그 자신이 또한 위대한 건축가이기도 하였

다. 따라서 이러한 그의 정책과 통치로 인해 전에 없이 오랜 세월동안 평화가 지속되

었고 그는 ‘자비로운 정치가’, ‘로마의 대부'(代父)로까지 불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최고 승원장(Pontifex Maximus) 또는 대제사장(Highest Priest)이란 칭호를 받아

들여 모든 종교의 최고의 위치를 차지했다. 게다가 그는 피살(被殺)된 자신의 외증조

부 율리우스 시이저를 신격화하여 그를 기념하는 사원을 건립하여 그를 신으로 받들도

록 명령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그는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범하기도 하였다. 한편 탁월한 정치 지도자이며 행정가인 그가 자기에게 속한 나라들

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알고는 로마에 속한 모든나라들로 하여금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

록 명령했다. 따라서 그는 인구조사의 실시로 말미암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 5:2

의 예언을 성취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Hendriksen).

영(* , 도그마) –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는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며 ‘원

리’, ‘법령’ 등의 뜻이다. 동사로는 ‘법령을 제정하다’, ‘칙령을 공포하다’ 등의 의미

를 갖고 있다. 여기서는 황제의 포고령을 가리킨다.

천하 – 이는 원어상 ‘거주지’란 뜻이다. 고대 학자들은 이방인의 땅과 구별되는

의미로서의 헬라인의 거주지를 이 단어로써 나타냈으며 그 후에 ‘로마제국’이란 의미

로 사용되었다(행 11:28;17:6).

호적(戶籍) – 황제의 칙령은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실시하는 인구 조사에 관한 것

이었다. ‘호적’에 해당하는 원어 ‘아포그라포'(* )는 ‘등록하다’, ‘기

록하다'(2:3, 5;히 12:23)는 말로 세금 징수를 위한 파피루스로 된 공식기록부를 가리

키며, 이 기록부에는 성명, 직업, 재산, 친척관계를 기록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어

쨌든 이 인구 조사는 예수의 탄생을 세계역사의 맥락 속에 넣어 하나님이 그의 섭리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상의 통치자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2

구레뇨 -B.C. 12년에 마르마리대(Marmaridae)를 군사적으로 장악하여 집정관이 된

후 구레뇨는 갈라디아의 남쪽 접경에 있던 산적떼의 후손인 호모나덴세스

(Homonadenses) 족을 정복하였다. 그후 그는 A.D. 3-4년 가이우스 시이저(Gaius

Caesar)의 고문역을, A.D. 6-9년에는 시리아의 황제 파견관을 역임한 후 A.D. 21년에

죽었다.

수리아 – 시리아(수리아, :27)는 B.C. 64에 로마제국에 합병되었다. A.D. 70까지

유대는 별도로 자체의 행정부를 구성하고 있었지만 시리아에 복속되어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이 당시까지만 해도 시리아는 유대 지역까지 포함된 로마제국의

통치령이었다.

첫 번 한 것이라 – 제1차 인구 조사는 흔히 예수의 탄생보다 훨씬 이후인 A.D. 6년

경 구레뇨가 통치하던 시기에 실시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행 5:37과 요

세푸스의 저서(Antiq. , 26 . 1)에도 제1차 인구조사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누가가 A.D. 6년에 실시되었던 제1차 인구조사를 그 이전에 실

시되었던 것으로 혼동했다고 추측한다. 그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었지

만 다음 두 견해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첫째, 어떤 사본에는 구레뇨가 ‘두번째’로

‘시리이의 총독’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그 사본의 내용이 애매한점이

있기는 하지만 구레뇨는 예수가 태어날 당시와 그 후의 몇 년이 지난 뒤, 곧 두 차례

에 걸쳐 시리아의 총독 직위에 있었다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F.F. Bruce, Quirinius,

NBD, p.1069). 둘째, ‘첫 번’의 헬라어 ‘프로테'(* )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에 ‘첫 번째의’라고 번역되었지만 그 단어는 그 의미보다 ‘이전의’ 또는 ‘앞의’를 뜻

할 수 있다. 만약 ‘첫 번’이라는 단어가 ‘이전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본절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 되기 이전에’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본

문의 기록의 역사성이 대해 회의를 표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만일 이 기록이 잘못된

것이라면 초대의 기독교 논박자들이 이를 지적하지 않았을리 없으며 또한 당대의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 써보낸 누가의 기록 속에 터무니없는 내용이 수록되었을리도 없겠기

때문이다.

=====2:3

모든 사람이…고향으로 돌아가매 – 인구 조사는 각 사람의 고향에서 실시되는 것

이 관례였다. 이렇게 많은 불편을 감수하며 자기의 고향까지 가서 호적을 하는 것은

유대의 호적제도를 따르는 것이었다. 로마의 호적제도는 자신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인적 사항만을 기록하는 훨씬 더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이었다. 그런데도 유

대인들이 로마의 손쉬운 호적 제도를 따르지 않고 굳이 번거롭게 많은 어려움을 감수

하면서 자신들의 호적제도를 따르는 것은 이 호적명령이 로마의 명령으로 행해지는

것이지만 자신들의 독자적(獨自的)인 방법과 의사에 의해 행해지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최소한의 민족적 자존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모든 사실들을

자세히 미루어 살펴본(1:1-4) 누가가 실제로 시행되지 않았던 인구 조사를 강조하여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4

다윗의 집 족속…다윗의 동네로 – ‘집’은 단순한 문자적 의미보다는 좀 더 포괄적

인의미를 나타내어 ‘민족’, ‘족속’, ‘나라’ 등의 의미를 내포하며, ‘족속’은 문자 그

대로의 뜻을 나타내나 이 곳에서는 둘이 서로 동의어로 사용된 것 같다. 평행본문 마

1:6, 16에서도 요셉이 다윗의 후손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거니와 본절에서 다윗의 집

혹은 다윗의 동네라는 말이 거듭 언급되는 것은, 예수께서 육신상으로 다윗의 후손임

을 강조함과 아울러 다윗 왕가의 후손이자 만왕의 왕으로 오실 예수께서 일개초라한

시골민의 가정에서 태어남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내포한다. 삼상 20:6에서 베들레헴

은 ‘다윗 성’이라 불리운다. 다윗은 약 천년전 이곳에서 태어났고, 그가 양떼를 돌보

던(삼상 17:15) 곳도 이 마을 근처의 언덕이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7.2Km 떨어졌고 나사렛에서는 약 144Km 떰어진 곳이며 그것의 옛 이름은 에브라다이고

라헬이 장사된 곳이기도 하다(창 35:19). 이 마을 이름의 뜻은 ‘떡집’이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곳이 다윗이 자라난 곳이고 미 5:2에 나타난 대로 메시야가 출생한 곳

이라는데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태어난 아기가 다윗성에서 난 다윗

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2: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 누가는 요셉이 어느 시기에 베들레헴을 향해서 출발했

으며, 또한 그가 왜 마리아를 동반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얄는다.

추측컨대 아마 마리아의 고향에서 마리아에 대한 그릇된 소문이 퍼지고 있었을지도 모

르며 그 소문으로 인해서 마리아는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았을 것이므로 요셉은 인구

조사를 기회로 마리아를 데리고 고향을 떠났을 가능성도 있다. 요셉은 이미 그녀를 아

내로 맞이했다(마 1:24). 그러나 그들이 성령으로 잉태한 아이를 낳을 때 까지는 분명

히 약혼 관계에만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정혼’이라는 말을 유대적 배경에

서 이해해야만 한다. 유대적 개념에서 ‘정혼’은 결혼을 의미하고 절차상으로 신부를

신랑집으로 데려오는 일만 남은 것이다. 혼인서약은 대체로 정혼에 행해졌으며 이 정

혼은 항상 공식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은 후에는 신랑이 그의 신부를 데려가는

일에 있어서 어느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았다. 한편 요셉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여행하는 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산이 임박한 마리아가 그

장거리(약 144Km, 요단을 우회하여 돌아가는길)를 여행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

을 것이다. 이것은 산모와 태아에 치명적인 위험을 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여자도 호적해야할 의무가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고향에 가서

호적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함께 동행하는 것은 세인(世人)의 비난을 피하고자 한 요

셉의 배려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되어진 것으로 이해해야 한

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자신의 뜻대로 운행하는 주관자이시기 때문이다

(시 136:8-26).

=====2:6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 이 표현은 단순히 임신과 출산 사이에 일정한 기간이

지나야만 아이가 태어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도 무방하다. 임신 자체는 비록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지만 태중에서 아기가 자라나는 것은 일반적인 과정에 의했던 것이

다. 이는 예수께서 우리와 똑같은 성정(性情)을 가지고 똑같은 성장 과정을 거치며 모

든 인류를 대속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는 우리와 똑

같은 출생과 성장과정을 거쳤기에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다(히 4:15). 한편 이 구절에서 ‘해산할 날’이 현재대로 12월 25일인지는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회에서는 성탄절을 전승에 따라 보통 겨울로 잡는다.

이것이 3세기부터 문제시되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5월 20일을 제안했다.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킨 것은 336년부터였다. 서방에서 이날을 택한 것은 로마신인 ‘정

의의 태양'(Sol Invictus) 탄생일에 대치한 것이나 동방 교회에서는 주현제 즉 동방의

현자들이 도착했다고 하는 날(Epiphania manifestation, 1월 6일)에 예수의 수세를

기념하다가 4세기부터는 예수의 탄생도 연결시켰다. 그리고 5세기 중엽부터는 동방 교

회도 거의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켰으나 예루살렘 교회는 549년까지도 1월 6일을 크

리스마스날로 지킨다.

=====2:7

맏아들 – ‘외아들’이 아닌 ‘맏아들’이라는 표현은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뒤 계속해

서 자녀들을 낳았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에 계속해서 동정을

지키며 자녀를 낳지 않았다는 주장은 근거없는 이야기며 이는 마리아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와 경외심에서 나온 이야기라 하겠다. 그리고 예수의 여러형제와 여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는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8:19, 20;마 12:46, 47;13:55,

56;막 3:31, 32;요 2:12;7:3, 5, 10;행 1:14).

사관(舍館)(* , 카탈뤼마) – 이 단어는 흔히 ‘여관'(inn)이라고 번

역되었다. 이 단어는 최후의 만찬 때에 사용된(22:11) ‘객실'(guest room)을 의미하기

도 하는데 22:12에는 그 객실이 ‘다락방’으로 언급되었다. 또한 이 단어는 군인들의

숙소나 여관을 포함하여 숙박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

도 만난 사람을 데려갔던 ‘판도케이온'(* , ‘주막’, 헬라어에서

대체로 여관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단어)과는 다르다(10:34). 그런데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다가왔을 때 그 보잘것없는 가족에게 허락 되었던 장소는 가축우리있다고 누가는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곳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대로 곳간(cave)이었을 수도 있으

며, 또는 집이나 사관의 일부분이었을 수도 있다.

구유(* , 파트네) – 신약에서 이 ‘파트네’는 누가복음에서만 4회 나온다

(7, 12, 16절;13:15). 이 주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비천한 신

분으로 보잘것없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이세상에 오셨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구유는

세상 구속주의 비천한 탄생을 당시 세게의 주관자인 아구스도의 영광과 대조시키며(1,

11, 14절), 아무데도 머리둘 곳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자이신 예수의 겸손과 고

난을 상징한다(9:58). 어쨌든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구유는 갓난아이를 누이기에는 안

성 맞춤이었다. 그리고 마굿간밖에 내어 줄 수 없었던 여관 주인은 동정심이 전혀 없

어서 그러했다고 보이지 않으며 누가 역시 그러한 각도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 같다(H.

Hengel, TDNT. , 49-55).

=====2:8

목자들이 – 당시 유대 사회의 여러 가지 직업들 중에서 목자라는 직업은 아주 천시

되었다. 일반 사람들은 목자들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목자들

이 하는일이란 유대인의 규례(規例)에 의하면 부정한 일로 간주되었다. 이 이야기를

살펴볼 때 명백한것은 복음이 맨 먼저 그 당시에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던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이 사실을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하고 있

다. 뿐만 아니라, 이는 예수께서 양들을 위해 목숨마져 아끼지 않는 선한 목자처럼

인류를 위해 당신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이심을(마 20:18;요 1:29) 넌

지시 암시한다. 한편, 이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여호와께서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언

약하는 내용(삼하 7:8)을 상기해볼 수 있다. 그 내용 중에는 여호와께서 다윗을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메시야의 선조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나온다. 그리고

신구약에서 목자는 하나님 자신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자들을 상징적으

로 가리킨다(시 23:1;사 40:11;렘 23:1-4;히 13:20;벧전 2:25;5:2).

밤에…지키더니 – ‘지키더니’에 해당하는 ‘퓔라쏜테스’는 ‘파수하다’, ‘보호하다’

의 뜻인 ‘퓔라쏘'(* )의 복수 현재능동태형이다. 그리고 ‘밤에’에 해당

하는 ‘테스뉴토스’는 ‘밤 새워’란 뜻을 내포한다. 따라서 이 귀절은 밖에서 여러명이

교대로 밤을 새워 도둑이나 다른 들짐승들로부터 양떼를 지키며 보호하는 일련의 행동

을 묘사한다. 팔레스틴지방에서 목자들은 4월부터 11월까지 이런 식으로 양떼를 밖에

서 방목(放牧)하였으며 겨울철에도 날씨가 춥지 않을 때에는 종종 그렇게했다. 한편

본문상으로는 예수가 어느 철에 태어났는지에 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나 여

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어느 철에 태어나셨나 하는 점보다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

신 사실 그 자체이다.

=====2:9

주의 영광 – ‘영광'(* , 돝사)은 영원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양식 중 하

나이며 그분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독사’는 하나님과 그

리스도와의 관계를 묘사하는 표현 속에서도 흔히 등장한다(9절;9:31, 32;행 22:11;계

15:8).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영광에 의해 다시 살아나셨으며(롬 6:4) 영광 속으로

올리워 지셨고(딤전 3:16) 지금도 영광의 우편에 계신다(행 7:55). 또한 영광이 하나

님께 돌려지듯이 그에게도 돌려진다(2:14;히 13:21). 따라서 그는 영광의 주님이시다

(고전 2:8;약 2:1). 나아가 우리의 종말론적 소망(사 40:5)은 위대하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딛 2:13).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들이나 본 구절에서 그의 출생시에 영광이 드러난 것은

그가 하늘로부터 왔음을 진작부터 말해주는 것이며 요한복음에서도 또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언급하고 있다(요 1:14;2:11;11:40). 그리스도께서 영광에 들어가

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이다(요 13:31).

두루 비추매(* , 페리엘람프센) – 이 단어는 ‘페리'(*

, ‘주위에’)와 ‘람포'(* , ‘비취다’)의 합성어로서 ‘빛에 완전히 쌓인 상

태’를 뜻한다. 때때로 하나님의 영광은 찬란한 빛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하나

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대민족들 가운데서는 ‘세키나’로서 알려져 있다. 이는

매우 희고 밝게 빛나는 구름의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것으로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출 24:16;왕상 8:10;사 6:1-3;행 7:55).

=====2:10

온 백성 – 이 말이 가리키는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이다. 그러나 천사를 통해 전달

된 복음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적울타리를 넘어 세계 만민에게 개방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대 백성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이 먼저 전달된 것은 그들을 통

해 온인류에게 전해지게끔 하고자 함이었다. 이러한 소식은 이 복음의 메시지를 접할

대상이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14절)과 ‘이방'(32절)에로 확대(擴大)된다는 점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좋은 소식을…전하노라(* , 유앙겔리조마이) – 이 단어

는 ‘기쁜 소식을 전파하다’의 뜻이며 히브리어로는 ‘바사르'( )에 해당한다. 이

히브리어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다’는 뜻을 나타냄은 물론이나 승리의 기쁜 소식

을 전한다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된다(삼하 4:10;왕상 1:42). 이 용어는 특히 사 40장

이하에서 의미심장하게 사용되었으니 여기서 사자는 시온에 이르러 구원의 시대를 시

작하시는 하나님의 전세계적인 승리를 선포한다(사 40:9;41:27;52:7). 한편 본문에서

의 ‘좋은 소식’ 이란 곧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

신 사실 자체가 기쁜 소식이며,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곧 복음이라 할수 있었다.

=====2:11

다윗의 동네 – 베들레헴(4절 주석 참조). 메시야는 다윗의 동네 곧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리라 예언되었다. 여기서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

은 메시야의 오심과 관련된 모든 약속들을 기억나게하고 그와 관련된 예언의 성취를

암시하기 위함이다.

구주(* , 소테르) – 헬라어 ‘소테르’는 신약 성경에서 드물게 나타나며

그것도 누가와 바울에 의해서만 주로 사용된 표현이다(행 5:31;엡 5:23;딤후 1:10).

이는 하나님을 구원자로 표현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바(1:47;삼하 22:3;시 49:26),

예수께서 죄악에 찌들은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임을 뜻한다.

그리스도 주 – ‘그리스도’는 마 1:1 주석에서 설명된 바처럼 인류 구속의 대사명과

관련되는 주님의 직능적명칭이며, ‘주'(헬, 퀴리오스)는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한다.

예수는 영원전부터 그리스도와 주로 예정되었으며(엡 1:4;3:11;골 4:3), 본체상으로는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며,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자기 백성들을 위한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신 것이다.

=====2:12

강보에 싸여…표적이니라 –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는 긴 옷감으로 아기를 포근히

감 감싸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 태어난 아기를 따뜻하게 하고 병으로 부터 보호하

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기예수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놓여있다는 것은 특별한

표적이라고 언급된다. 그것은 다음 세가지 면에서 표적이 되었다. (1) 천사가 목자들

에게 예언한 시기의 장소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2) 그들에게 전달된 기쁜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3) 기름부음 받은 자 곧 그리스도로서의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지극히 비천한 자리에까지 낮아지셨다. 한편 겔 16:1-5에는 예루살렘이 이방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불쌍한 아기로 묘사되었거니와, 예수는 이와

같은 가련한 상태에 놓인 이스라엘과 나아가 온 인류를 구원하고 돌보시기 위해 스스

로 비천한 자리(구유)에 누이셨던 것이다.

=====2:13

허다한 천군이…찬송하여 – 두 세사람의 증거로도 어떤 사실의 진정성을 입증할

수 있었거니와(마 18:16) 여기서는 수많은 천군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

나님의 아들을 증거하고 있다. ‘천군’에 해당하는 ‘스트라티아'(* )는

구약 성경에서 종종 천체(henvenly bodies)를가리키나(느 9:6), 여기서는 일군(一群)

의 천사들을 가리킨다(시 103:21).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 이 이야기에서 절정을 이루는 내용이

다. 그리스도의 등장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유는, (1) 하나님의 영윈하신 신성과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히 거하고 또한 그를 통해 확연히 나타나기 때문이다(요

1:14).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를 본 자는 곧 하나님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요

14:9). (2)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찬양과 경배로써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고후 1:20). (3) 그리고 하나님이 그 영원하신

섭리에 따라 인생과 세상 만물을 향해 이루고자하신 계획을 그리스도를 통해 완수하시

게 되기 때문이다.

땅에서는…평화로다 – 그리스도의 오심이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인(and on earth peace to men on whom his favor rest, NIV) 것은, (1) 그리스도

의 중재와 대속으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들 간의 막혔던 장벽이 제거되고 화해가 이루

어지기 때문이다(엡 2:14).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서 하나

님과 원수 관계에 놓여있으므로 늘 불화의 다툼의 수렁에서 허덕이지만, 하나님과의

근본적 화해를 이룬 사람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평강을 선물로 소유하게 된다

(요 14:27). (2) 그리스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죄악이 제거되고 사람들간

에 화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엡 2:16-18). 여기 언급된 평화는 메시아의 도래와 관

련된 총체적 축복과 구원을 지칭한다고도 볼 수 있다. 예수는 평강의 왕으로서(히

7:2), 당신의 공생애를 백성들의 평강을 위해 보내셨으며(7:50;8:48) 그 평강을 위한

사역은 십자가상에서 절정에 달했다.

=====2:15

하늘로 올라가니 – 누가는 천사들이 단순히 사라졌다고 언급하지 않고 ‘하늘로 올

라갔다’고 말한다. 이는 공간적인 이동을 자세히 묘사한 누가의 독특한 표현이다

(24:51;행 1:10). 물론 우리는 본절을 문자적인 의미로만 해석하여 수직 상승의 뜻으

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천사의 처소 곧 하늘 나라는 이 우주속의 그 어느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의 승천

장면에 대한 묘사와 마찬가지로, 지각 가능 상태로부터 지각 초월 상태에로 변화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라 하겠다.

이제(* , 데) – 강조를 위한 접두사로서 특히 명령형 문장과 더불어 사용되며

여기서는 긴급성을 강조한다.

=====2:16

빨리 가서 –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을 만난 후 엘리사벱을 찾아 나선 장면을 연상

시킨다(1:39). 목자들은 자신들이 돌보던 양떼를 두고 마리아처럼 서둘러 찾아 나선

다. 목자들이 양떼를 다른 동료 목자들에게 맡기고 갔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보존에 맡겼는지 알 수가 없으나 아무튼 목자들은 즉각적(卽刻的)인 반응을 보여주고

아기 예수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양떼를 뒤로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와의 만남에는 결

단이 요구된다. 우리도 목자들과 같이 순수한 믿음과 겸손하고 완전한 섬김으로써 주

를 찾을 때에 주께서는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인도자 되신다.

찾아서(* , 아뉴란) – 원어상으로 ‘끊임없이'(부지런히) 탐색하여

찾다’라는 뜻이다.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계속해서 찾아다녔으며, 그렇게 노력하여 찾

던 끝에 정말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평강의 왕 아기 예수를 발견한 것을 말한다.

=====2:17

보고…말한 것을 고하니 –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처해 있었던 이

목자들이 최초로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이었고 또 최초로 복음을 전달한 사람들이었

다. 그런데 목자들이 그 아기에 관한 기쁜 소식을 누구에게 전해 주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 외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마굿간에 모여 있었으리라고 추

측해 볼 수도 있고, 목자들이 이웃 사람들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전했다고도 짐작된

다.

=====2:18

기이(奇異)히 여기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다우마조'(* )는 ‘이

상히 여기다’, ‘놀라다’는 뜻 외에 ‘찬양하다’는 뜻도 내포한다. 즉 이 말은 초자연적

적인 혹은 신적인사건과 접한 자의 외경스러운 감동을 시사한다. 누가는 메시아에 대

하여 선포하는 말을 들었던 이들이 그 말을 기이하게 생각했다고 여러번 언급하고 있

는데 본절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마리아와 요셉도 시므온이 예수께 대하여 하는 말을

듣고 기이하게 여겼으며(33절) 47절에 보면 성전에서 답변하는 어린 예수의 말을 들었

던 모든 이들이 예수의 말을 기이하게 여겼다. 또한 나사렛의 회당에서 예수가 사 61

장의 어떤 부분을 읽고 나서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곳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예수

의 말을 기이하게 여겼다(4:22;8:25;9:43;11:14, 38;20:26;24:12). 이외에도 사람들이

위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 것을 설명해주는 여러가지 어휘가 사용되었다(4:15,

36;5:26). 사실 예수 안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충만히 거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기이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롬 1:20).

=====2:19

지키어 생각하니라 – ‘지키어’에 해당하는 ‘쉬네테레이’는 원형’쉰테레오'(*

)의 미완료 시제로서 ‘보호하다’,(기억으로) ‘간직하다’의 뜻이며, ‘생각

하니라’에 해당하는 ‘쉼발루사’는 원형 ‘쉼발로'(* )의 주격 분사 현

재형으로 ‘숙고하다’, ‘생각하다’, ‘만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여기서 마리아는 사

건 전반을 기도하는 마음과 자세로 계속해서 생각하여 그 의미를 되새겼음을 알 수 있

다. 예수 탄생을 전후하여 천사로부터 전해진 메시지들이나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사

실 등은 마리아로 하여금 아기 예수의 신분과 사명에 대해 거듭 상고해 보게끔 하였을

것임에 분명하다.

=====2:20

목자가…찬송하며 돌아가니라 – ‘하나님께’라는 목적어를 받는 ‘영광을 돌리다’

(* , 돝사조)라는 표현이 누가복음에 자주 쓰인다

(5:25;7:16;13;17:15;18:43;23:47). 그리고 본절에서와 같이 어떤 이야기가 찬양으로

끝맺는 것은 누가복음의 특징중 하나이다(24:53). 목자들은 그들이 천사들로부터 들은

바와 실제로 본 것이 똑같음을 알고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린다. 사실 아기의

탄생 자체는 평범한 보통의 사건으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기 예수는 그 비슷한

시간에 태어난 많은 아기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들레헴의 말구

유에 오신 아기 예수는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성육하신 하나님이신 것이

다.

=====2:21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 성경에는 아기가 출생하기도 전에 이름이

먼저 지어진 예가 여러번 나온다. 이삭(창 17:19), 솔로몬(대상 22:9), 요시야(왕상

13:2, 왕하 22:1), 고레스(사 44:28-45:1), 세례요한(1:13,60-63), 예수(마 1:25)가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한편 예수라는 이름이 명명된것은 마리아나 요셉의 의도가

아니었다. 이것은 이미 아기 탄생 전에 천사가 지시한 바를 따른것 뿐이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견을 전혀 가미하지않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명령하신 그대로 수행했다고 하는 것은 이 일이 처음부터 성령의 역사

하심 가운데 진행되어온 일이라는것을 인정하며 앞으로의 일 역시 성령께서 진행시켜

나가실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2:22

결례(潔禮)의 날 – 유대의 모든 산모는 자녀를 낳은 후 율법에서 정한 기한이 지나

면 제사장에게로 가서 규례대로 예물을 드려 속죄를 받아야 했다. 그 이유는 자녀를

해산한 산모는 부정하게 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율법에서는 부정하게 된 산모

와 아이들을 위해서 정결케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율법이 명

시한대로 정결케 되는 기간이(남자 아이 40일, 여자 아이 80일) 찬(레12:1-5) 산모는

최종 정결 예식으로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야만 했다. 여기서 번제는 출산에 대한 감

사와 헌신의 마음을 표하기 위하여 드렸고 속죄제는 출산에 따른 부정(不淨)을 제거하

는 뜻에서 드렸다. 이때 각 예물은 번제로 양, 속죄제는 비둘기였으나 가난할 경우 번

제로 양 대신 비둘기 둘로 대치할 수 있었다(레 12:1-8). 본문에서 누가는 어머니의

정결 예식과 아기를 바치는 행위를 함께 묘사하고 있다(Marshall). 여기서 아기 예수

를 위해 제사장을 찾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만, 결국 이 예수는 우리를 위한 대

제사장이시다(히 3:1). 이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분이 아니

며 우리의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다.

=====2:23

주의 율법에…아기를 주께 드리고 – 율법은 처음 난 짐승의 새끼를 여호와께 드리

도록 규정하였다(출 13장;22:29;34:19;민 3:11-13;40-51;8:16-18;신 15:19).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첫 아기를 제물로 드리는 일을 대치시키기 위해 레위 지파를 성

별하셨는데 이때 이스라엘 장자의 수가 레위인의 슷자의 비율에 맞지 않을 때에는 이

스라엘 백성들의 장자 수만큼, 즉 한 사람당 다섯 세결씩을 속전으로 지불하도록 하셨

다. 이러한 율법에 근거하여 예수께서도 장자, 곧 거룩한자로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된

다. 그러나 예수는 비록 인간의 몸을 입으셨긴 하지만 전혀 무죄하시다(히 4:15). 따

라서 예수가 주께 바쳐진것은 그가 자신을 중보자로서 주께 드림을 상징한다(딤전

2:5). 실로 예수의 생애 자체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한 희생과 헌신의 연속

이었다.

=====2:24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斑鳩)둘로 제사하려 – 누가는 계속해서 산모의 정

결예식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반구는 산비둘기를 말한다. 이 구절은 예수께서 태어나

셨던 가정환경과 그 사회적 형편을 단적으로 나타내 준다. 앞서 기술했듯이 레 12장에

는 해산한 여인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물을 ‘양 한마리와 비둘기 한마리’로 규정하

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율법에 따라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으로서 그 양(量)과 방법들이 엄격하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극빈자의 경

우는 정한 제물의 양대로 바치지 못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종교적으로 갈등을 갖게

될 것이므로 그 양을 줄이는 것 역시 법으로 정하여 바치게 했다. “그 여인의 힘이 어

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들기 새끼 둘을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

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레 12:8). 이것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와 관심에서 이루어진 일들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부유한자나 가난한 자나 남녀노소할 것 없이 누구나가 하

나님을 경배하여 그에게 예배를 드려야 함을 암시한다. 당시 비둘기의 가격은 어린 양

의 약1/10정도에 해당하였다. 마리아와 요셉이 하나님의 율법을 신실하게 지키는 경건

한 사람들이었음에 비추어볼 때 그들이 극빈층에 속하였던것이 분명하다.

=====2:25

시므온 – 이러한 이름은 유대 사회에서는 매우 보편적이고 흔한 이름이었다. 그런

데 혹자들은 이 구절의 시므온은 잘 알려진 유대랍비 힐렐의 아들이요 가말리엘의 아

버지라고 주장하며 그가 A.D. 13년에 산헤드린의 회장이 되었다고 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막연한 추측일 뿐 정확한 자료나 확증이

없다. 어쨌든 시므온은 평생을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왔으며 더욱이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살아왔다. 메시야가 바로 그의 위로의 근원인 것이다. 이는 우리들에

게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며, 우리가 언제 재림하실지 알 수

없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경건된 삶을 준비하여야 함을 보여 주고 있다(마

25:1-13).

의롭고 경건하여 – 1:5, 6에서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스벱이 소개될 때처

럼 의로음과 경건함이 강조되고 있다. ‘의롭고’에 해당하는 ‘디카이오스'(*

)는 ‘공정한’, ‘정의로운’등의 뜻을 나타내며 하나님과 신정 사회(神政社會)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따라서 ‘의로운’자에게 있어서 무엇보

다도 우선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리고 ‘경건하여’에 해당하는 ‘율라베스’

(* )는 ‘경건한’, ‘독실한’ 등의 의미외에 ‘주의’, ‘신중함’ 혹은 ‘두려

워하다’, ‘경계하다’ 등을 뜻하며, 율법의 요구를 면밀하고 세심하게 충족시키고자 행

동거지를 주의하는 독실한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잘 사용된다. 따라서 시므온이

얼마나 율법을 공경하며 준수했는가를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위로 –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받는 위로를 가리킨다

(사 40-55장). 말라기선지 이후 약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영감받은 선지자가 나타

나지 않았는데, 시므온은 이러한 소위 오랜 침묵의 시대에 살면서도 메시야의 도래를

확신하며 끈기있게 기다리는 믿음을 소유한 자였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리스도

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다. 우리는 눈앞에 전개

되는 타락과 불신의 흐름에 휩쓸려갈 것이 아니라 역사의 끝까지 투시(透視)하는 신령

한 눈을 떠서 매일 매일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결단하고 인내하는 경건한 삶을 살아

야 할 것이다.

=====2:26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 ‘지시를 받았더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크레마티스메

논'(* )은 ‘사건을 다루다’, ‘계시를 전달하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본 구절에서 이 단어는 계시에 의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나타낸다. 메

시야를 대망하며 그의 도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경건한 생활의 한 부분

이었다. 시므온은 오랜 세월을 메시야의 도래를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은 계시의 전달자인 성령을 통해 의롭고 경건한 시므온에게 메시야께서 오실 것을 보

리라는 계시를 허락하셨다.

=====2:27

성령의 감동으로(* , 엔 토 프뉴마티) – 이 구절은 시므

온이 계속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결국 시므온이 성건에 들어오게

된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고 마리아 부처가 아기예수를 성전으로 데려올

때 그를 맞이하도록 시므온을 준비시킨 분도 바로 성령이셨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주도면밀(周到綿密)하고 정확하다. 오랜 세월을 기다림으로 보낸 나이먹은 시므온은

이제 계시의 말씀이 완성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부모 – 법적인 차원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부모였다.

=====2:28

성령의 감동으로(* , 엔 토 프뉴마티) – 이 구절은 시므

온이 계속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결국 시므온이 성건에 들어오게

된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고 마리아 부처가 아기예수를 성전으로 데려올

때 그를 맞이하도록 시므온을 준비시킨 분도 바로 성령이셨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주도면밀(周到綿密)하고 정확하다. 오랜 세월을 기다림으로 보낸 나이먹은 시므온은

이제 계시의 말씀이 완성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부모 – 법적인 차원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부모였다.

=====2: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 시므온은 히브리적 표현법을 사용하여 자신이

메시야를 보았다고 말하지 않고 자신의 눈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말한다. 이는

누가복음의 한 특징으로서 이미 나타난 바와 같이(1:69, 71, 77) 예수를 본다는 것은

예수 안에서 구원이 구체화된 것(embodied)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시므온이 예수로

말미암아 구현될 인간구원의 역사를 예견하였다는 의미이다. 사실 예수 탄생 자체가

이미 인류 구원을 위한 위대한 사역의 첫 발걸음이기 때문에 그 사역은 벌써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시므온은 구약시대 동안 계속해서 예언되었지만 아무도 보지못

했던 메시야를 맞이하는 구약시대를 마감하는 인물이요, 또 메시야를 맞이함으로 신약

시대를 열도록 길을 열어주는 서언적(序言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갓난아기

의 모습인 예수를 보고서 그토록 즐겁고 평안한 심정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정도

로 강력한 영향을 시므온이 받았다면, 구원의 실제적 내용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된 이 복음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얼마나 더 큰 기쁨과 확신을 나타내어야 하

겠는가!

=====2:31

만민 앞에 –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팔에 안고서 세상 끝에까지 미칠 그분의 영광과

은혜를 찬양하고 있다. 이는 구원의 복음이 이스라엘의 지경을 넘어 세게 만방에로

확장될 것임을 내다보는 예언자적 통찰력이다. 한편 이방인의 구원 혹은 복음의 보편

성이라는 주제는 누가복음에서 강조된 사실들 중 하나이며(15장), 구약 속에 이미 태

동되어 있던 구속사의 한 주제였었다(사 43:5,6;45:6;49:12;미 4:1,2;슥 8:20-23). 이

점에 관해서는 마8:1-17주제 강해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관계’를 보라.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 빛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또한 그의 온전히 의

로우신 성품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시 27:1;요 1:5;딤전 6:16) 또 하나님의 계시와

(시 34:5) 생명의(요 1:4) 상징으로서 언급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제

사장 나라로 삼으사 하나님 나라의 복된 소식을 이방에 전파할 ‘이방의 빛’으로 삼으

셨다고 되어있다(사 42:6). 이러한 말씀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성취를 보게 되었다. 예수는 그 가운데 조금의 어둠도 없으신 참빛로서 인종과 신분

등 모든 인간적 장벽(障壁)을 뛰어넘어 모든 이들에게 비추이신다(요 1:9). 그리고

예수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도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셨고(마 5:14) 그 빛을 사람들

앞에 비취게 하라고 명하셨다(마 5:16).

주의 백성…영광이니이다 – 예수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다. 왜냐하면 온

세게 만민을 위한 구원의 길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를 통해 열렸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이스라엘은 이방세력의 지배 하에서 민족적 자존심을 잃은 상태였는데, 이

제 메시야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면모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특권을 바로 깨닫기는 커녕 오히려 메

시야를 배척하고 마침내 십자가 형틀에로 내몰아 버렸다.

=====2:33

기이히 여기더라 – 마리아와 요셉이 기이히 여기며 놀란 것은 단지 시므온의 찬송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보다는 천사들, 목자들, 동방박사들, 엘리사벱,

사가랴 그리고 시므온 등 사방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아기 예수에 관한 증거가 나타났

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증거들을 접하게 됨으로써 마리아 부처는 애초 그

들에게 임했던 천사들의 계시를 거듭 상고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자신들의 이해를

보다 깊게 다져 나갔을 것이다.

=====2:34

많은 사람의…세움을 입었고 – 이 구절은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도 하는 반면 하

나님의 집을 세우는데 기초석이 되기도 하는 돌(사 8:14;28:16)에 관한 사상을 반영한

다. 예수를 배반하고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예수께서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거게 하며

멸망에 이르게하실 것이요 또 그를 따르는 자들은 세움을 입고 하나님 나라의 초석(礎

石)이 되게 하실 것이다. 또한 예수는 백성의 구원자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박

해와 곤욕을 치러야만 될 것으로 예언되었다. 이는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부

터 받으셨던 각종 모욕과 비방(4:29;22:63-65;23:11, 34-39)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

라 영원 전부터 예정된 것(시 32:6-8;사 50:6;53:4-12)임을 증거해 준다. 시므온의 이

러한 예언은 엘리사벱의 노래나(:42-45) 사가랴의 예언(1:68-79) 그리고 천사들의 찬

송과는(2:10-14) 반대로 예수께 드리워질 어두운 면을 증거한다. 예수의 영광에 관한

기쁨의 증거와 더불어 이러한 비탄스러운 증거는 앞으로 전개될 메시야적 사역의 진면

목이 어떠한지를 암시해 준다.

=====2:35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 ‘칼’을 나타내는 헬라어 ‘롬파이아(*

)는 드라키아인들의 대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통 큰 칼을 의미한다. 여기서 마리아

는 ‘여인 중에 가장 복이 있는 자'(1:42) 곧 메시야의 어머니라는 영광과는 또 달리

‘슬픔의 어머니'(Mater dolorosa)로 묘사되고 있다. 한 어머니로서의 마리아는 예수께

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나사렛에서 함께 보낸 소년 시절과 청년시절이 가장 행복된

나날이었을 것이다.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됨과 그의 때를 같이하여 대두한 유대교 지

도가들의 핍박은 날이 갈수록 심각성을 띠어갔으며, 이로 인해 혈육의 정을 떨칠 수

없었던 마리아로서는 예수의 장래에 대한 불길한 예감으로 노심초사(勞心焦思)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엄청난 고통을 받을 때 큰

칼이 찌르는 것보다 더한 찢어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었을 것이다.

드러내려 함이니 – 여기서 헬라어 ‘아포칼뤼프도신'(*

)은 ‘베일이 벗겨지는’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을 행한다고 하는 자들의 위선과 허위가 드러나지 않은 채 그대로 숨기워 있었

지만 이제는 예수를 통해 사실 그대로 드러날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사역과 더불어

그를 섬기는 자들과 대적하는 자들이 명확하게 구분될 것이다.

=====2:36

아셀 지파 비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 – 시므온의 소개와는 달리 안나의 경우

는 지파명까기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시므온의 경우는 구체적인 신분을 확인할 수

가 없었으나 안나는 삶의 배경이 기술되었다. 아셀은 야곱의 여덟번째 아들이었다(창

30:13). 예수 탄생 당시는 이스라엘 민족이 주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로 구성되어

있어 나머지 10지파의 행방은 불투명했다. 이는 바벧론 포로지로부터 귀환(歸還)한 자

들 중 거의가 이 두 지파에 속한사람들이었던 연유도 있겠는데, 안나도 바로 다른 지

파에 속한 소수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이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자

신들의 족보를 보관하고 그 잃어버린 지파백성의 후손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한편 ‘바

누엘’은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고

그 곳에 붙인 ‘브니엘’ 이라는(창 32:30) 지명에서 나온 이름이다. 따라서 히브리식으

로는 ‘브니엘’이며 그 뜻은 ‘하나님의 얼굴’이다. 그리고 ‘안나’는 히브리어의 ‘한나’

( )에 해당한다(삼상 1:2). 즉 이 이름은 사사이며 제사장이고 선지자였던 사무

엘의 어머니 한나의 이름과 동일하다. 그녀는 구약 성경의 드보라(삿 4:4)와 훌다(왕

하 22:14)와 같이 휼릉한 여성 예언자였다.

=====2:37

과부 된 지 팔십 사 년이라…기도함으로 섬기더니 – 당시 유대 사회의 조혼 풍습

에 비추어 볼 때 안나는 14세를 전후하여 결혼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안나의 나

이는 14+7+84=105세 쯤 되는 셈이다. 이처럼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긴’여인이었다. 이는 그녀가 철저한 헌신의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이스라엘의 소망 곧 메시야를 대망하며 기도했던 여인임을

나타내준다. 아마 그녀는 오직 메시야만이 그녀와 이스라엘의 가슴에 수십년 동안 맺

혀있던 응어리를 풀어주고 위로해주실 수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한편, 안나는 성전

에서 시므온의 송가(頌歌)를 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송가를 통해서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그 아기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확신하였다.

=====2:38

하나님께 감사하고 – ‘감사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도몰로게이토'(*

)’는 ‘찬양하다’, ‘감사하다’ 등의 뜻외에 ‘단호하게 신앙을 고뱄하

다’, ‘무엇인가를 믿음으로 고백하다’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안나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신앙 고백적인 믿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안나의

감사는 순종 및 메시지의 선포와 결합되고 있다.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 이 구절은 사가랴가 이스라엘의 속량

(1:68)을 노래하고, 시므온이 이스라엘의 위로(25절)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사 52:9에 나타난 메시야의 예루살렘 구원에 대한 대망의 연장선상

에서 이해된다. 사실 ‘구속’은 예수께서 이룩하실 신적구원 개념을 나타내는 말이다

(롬 3:24;엡 1:7;골 1:14).

=====2:39

주의 율법을 좇아 – 누가는 예수의 부모들이 율법이 명하는 바를 열심히 준수하였

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본장 내에서만 하더라도 예수의 부모들이 얼마나 철저

하게 율법을 준수했었는가 여러차례 강조되고 있다. 22절(모세의 법대로), 23절(주의

율법에 쓴 바), 24절(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27절(율법의 전례대로 미루어 보건

대 마리아 부처는 경건한 삶을 사는 유대인의 전형(典型)이었다. 본절은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율법의 마침이 되시고(롬 10:4) 율법 아래 있는 모든자들을 구속하시

기 위하여(갈4:4) 친히 율법을 지키셨음을 시사한다.

갈릴리로…나사렛에 이르니라 – 누가는 마태복음 2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동방 박

사의 방문이나 애굽으로의 피난 기사를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그것은 누가가 마태의

기사를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마태는 또 하나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실례를 들기 위해서 그 기사의 내용을 넣었겠지만 이방인을 포함한 전 인류를 구원하

시기위해 사람의 몸을 빌어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에 대해서 기술하려고

하는 누가에게는 그러한 내용이 그다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가는 예

수의 부모가 율법을 충실히 지키고 예수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사람들에게 귀여움

을 받고 정상적인 어린 아이로 성장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40, 52).

=====2:40

아기가 자라며…그 위에 있더라 – 이 구절은 세례 요한의 어릴적 성장 모습을 묘

사한 1:80의 내용과 비교된다. 그리고 52절은 이 구절에 대한 보충 내용이다. 이것은

예수가 12살이 되기(42절) 이전의 이야기이다. ‘자라며 강하여지고’라는 표현은 신체

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범한 아이와 같이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음

을 말한다. 그리고 ‘지혜가 충족하며’라는 표현은 정신적 성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는 표현은 영적 성장을 뜻하는 것으로 예수께서 어릴 때부터

지혜와 은혜를 가진 인물로 세례요한보다도 훨씬 탁월했음을 의미한다.

=====2:41

그 부모가 해마다…예루살렘으로 가더니 – 예수의 부모가 율법을 성실히 이행하는

경건한 유대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당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 의식은

온갖 위선과 타락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구약적 차원에서 지켜야 할 율법 의식들은 여

전히 중요한 구속력(拘束力)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경건한 자들이 그러한 의식에

맞춰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는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본분이었다. 율법에는 유대 성인

남자들이 연례 행사로서 삼대 주요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장막절)을 예루살

렘을 방문하여 지키도록 명시되어 있다(신 16:16). 그러나 바벧론 포로 시대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각처로 흩어지게 되어 이행사에 매년 모두 참석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렵

게 되었다. 그렇지만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은 적어도 유월절 행사에만은 꼭 참석하려

고 노력하였다. 한편 모세의 율법에는 이 행사에 남자들만 참석하도록 명시하고 있으

나 유대 랍비 힐렐(Hillel)은 여자들도 축제에 참석하도록 권고하여 그렇게 지켜졌다.

한편 우리는 여기서 어린 예수가 자란 가정의 신앙적 배경을 살필수가 있다. 어린 예

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영적 및 인격적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며 어려서

부터 의롭고 경건한 삶에 훈련되어져 갔던 것이다.

=====2:43

그 날들을 마치고 – 유월절과 무교절은 모두 7일 동안 계속되었다(출 12:15;레

23:6-8;신 16:3). 그리고 이 절기를 위해 예루살렘을 찾은 순례자들은 적어도 이틀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아이 예수는…알지 못하고 – 예수는 그의 부모들보다 예루살렘에 더 오래 머물러

있었다. 당시 열 두 살의 나이는 결코 어리게만 간주되지 않았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예

수의 부모는 예수의 움직임을 일일이 살피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모들은 그 사실을 모

르는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 어중간한 나이였던 예수는 여인들과 어린 아이

들의 행렬이나 남자 어른들과 제법 나이가 든 소년들의 행렬중 어느 한 곳에 끼여 여

행했을 것이다. 이 행렬이 이처럼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면 요셉은 예수가 마리아

와 함께 여행하고 있을것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마리아는 예수가 요셉과 함께 여행하

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서로가 착각한 사이에 하루가 끝나갈 무

렵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한편 예수는 그의 부모들이 찾고 있을 시간에 성전에서

최고 석학(碩學)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일과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

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은 그를 게속해서 엉뚱한 곳에서 찾아 해맨다.

만일 그의 부모들이 예수의 메시야성을 게속해서 염두에두고 그의 신성을 깨닫고 있었

다면 그들은 예수가 보이지 않았을 때 바로 성전에 가서 찾았을 것이다. 왜야하면,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 그의 아버지의 집은 바로 성전이었기 때문이다.

=====2:44

동행 중에…아는 자 중에서 찾되 – 성전 절기 준수를 위해 성전으로 모이는 여행

자 무리는 같은 마을 이웃들과 친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매일 저

녁 때 이 무리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함께 모여 유숙하고 여행 일정 등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예수의 부모는 예수가 일행 중에 있을 줄로 알고 신경쓰고 있지 않았으나 저

녁 식사 때 혹은 잠자리에 들려 할 때 그가 없음을 알고 아는 사람들 속에서 그를 찾

아 나섰다.

=====2:45

찾으면서 – 헬라어 ‘아나제툰테스'(* )는 현재 분사형으로

서, 마리아 부처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며 줄곧 예수의 행방을 수소문하였음을 뜻한

다.

=====2: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 마리아와 요셉은 하룻길을 여행하고 나서 예수의 행

방이 묘연해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44절). 이튿날 그들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며 예수

를 찾는데 하루가 걸렸을 것이다(45절). 그리고 그 다음날 곧 ‘사흘 후에’ 그들은 예

수를 성전에서 만났다.

선생들 중에 앉으사…묻기도 하시니 – 성전 안에는 이방인의 뜰과 이스라엘인의

뜰과 안뜰의 동남부 등 이렇게 세 곳에 회당이 있었다고 탈무드(Talmud)는 전한다. 대

체로 랍비들은 바로 이 안뜰의 동남부에 있는 회당에서 율법을 강론(講論)했다고 한

다. 당시 생존해있던 저명한 율법 학자들은 ‘힐렐'(Hillel), ‘샴마이'(Shammai), ‘가

말리엘'(Gamaliel), ‘요나단'(Jonathan), ‘시므온'(Simeon), ‘니고데모'(Nicodemus)

등으로 짐작된다. 추측해 보건대 이러한 유명한 학자들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중 적

어도 한 사람 정도는 예수와의 토론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외경 ‘도마 복음

서'(Gospel of Thomas)에서는 이때 예수께서 율법과 선지자들의 난제들을 해결하고 또

어려운 질문을 제기하고 답하며 천문학, 의학, 물리학, 철학 등에 관한 이야기 등도

논의되었다고하나 정확한 증거 자료는 없다. 아무튼 어린예수께서 당대 최고 석학들과

함께 율법을 이야기하며 토론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2:47

듣는 자가 다…기이히 여기더라 – ‘기이히 여기더라'(* , 여시

스탄토)는 미완료 중간태 직설법으로서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놀라움을 나타내며, 그

원형 ‘에크시스테미’는 거의 기절(faint)할 정도로 놀랐다는 뜻이다. 즉 예수의 이야

기를 듣는 사람이 계속하여 반복해서 그 질문과 답변에 매우 놀라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놀라움은 어린 소년의 입에서 그토록 영특한 이야기가 넘쳐나온 사실로 말미암은

바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입에서 나온 지혜의 말씀 자체의 탁월성에 기인한 것임에

분명하다. ‘지혜’에 해당하는 ‘쉬네세이'(* )는 ‘이해’라는 뜻이다. 여

기서 이 이해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하나님의 지혜를 가리킨다. 예수의 답변과

하나님의 지혜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는 하나님께 속한 모든 신령

(神靈)한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취어 있기 때문이다(골 2:3).

=====2: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너를 찾았노라 – 누가는 예수의 부모가 예수를 발견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들의 처음 가졌던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불과

12세에 불과한 소년이 당대의 석학들과 당당하게 토론하는 장면은 그들에게도 놀라움

으로 먼저 다가왔다. 물론 그들은 예수의 탄생에 얽힌 신비스러운 일들이나 차츰 성장

하면서 보여준 특출한 지혜와 인격에 대해 남다른 경험을 한 바 있었을 것이다. 그러

나 그들 역시 경험한 바 계시에대한 이해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낼 수밖에 없는 한 인

간이었기 때문에 예수의 신분이나 사역의 본질적 의의를 정확히 깨닫지는 못한 상태였

다. 이어서 마리아가 예수께 책망조로 탓한 사실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마리아는

어디까지나 잃어버린 아들로 인해 노심초사했던 어머니로서의 걱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속상한 감정을 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예수의 대답은(49절) 마리아 부처로

하여금 예수의 신분에더해 다시금 깊이 숙고해 보게 하였을 것이다.

=====2:49

어찌하여…알지 못하셨나이까 – 본서에 나오는 예수의 첫 말씀이다. 이는 혈육상

의 모친인 마리아에게 하신 삼가는 투의 공손한 말씀이지만 자신의 존재 의의를 분명

히 천명(闡明)하신 단호한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몇 사항을 상고해 볼 수 있

다. (1) 혈육상의 모친에 대한 순종과 하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 순종 사이의 긴장

관계가 나타난다. 예수께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한 가정의 아들로 탄생하셨기 때문에

그 부모에 대한 임무에 충실하셨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사로운 일에 얽매일

여념이 없을 엄청난 사명, 곧 온 인류에게 구원의 산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막중한 사

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지상에서 수행해야 할 인간에 대한 모든 임무는 하

나님의 계명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만 수행될 수 있을 뿐이며 우선 순위는 절대적으

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일에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18:29;신 33:9;마 6:33). (2) 예

수는 자신의 전생애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전개되어감을 분명히 인식하고 계셨음을 보

여준다. 특히 ‘있어야 될 줄을’이란 표현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는 당위성(I

must be…)을 강조해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인간에

대한 의무의 우선 순위 문제, 그리고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욕망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

하는 마음 간의 양자 택일 문제를 놓고 믿음의 용단(勇斷)을 내릴 수 있어야 하겠다.

내 아버지 집에 – 예수께서 하나님을 독특하고 유일한 의미에서 자신의 아버지로

부른 최초의 언급이며(22:29;23:46;마 11:25;막 14:36;요 5:17), 자신의 신성(神性)을

증거한 것이다. 이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은 ‘내 아버지의 일'(My Father’s

business)로도 번역된다. New KJV는 본절 하반절을 ‘내가 내 아버지의 일에 열심을

내야 할 것을 모르셨나이까'(Did you not know that I must be about My Father’s

business ?)라고 옮겼다. 이는 ‘집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토이스’가 중성 복수로

‘일’ 또는 ‘사물’의 개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일’이라 번역하든 ‘집’이라 번역하든

이 구절의 의미를 크게 바꾸어 놓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는 그의 전생애를 하나님

의 일을 실천해 나가면서 살았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일이 있는 곳에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이 있는 곳이 그가 머물 자리이고 그의 집이었던 것이다.

=====2:50

양친이…깨닫지 못하더라 – 마리아에 임한 예수 탄생에 관한 계시를 생각해 보면

이 구절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즉 예수께서 메시야임을 알고 있었다면

이 정도의 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부의 깨닫지 못

함이 훨씬더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48절에서도 나타내었듯이, 설령 그들이 예수께 얽

힌 여러 신비로운 계시를 접했다고 해도 그 의미를 확연히 깨달을만한 영적 수준에는

도달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51

예수께서…순종하여 받드시더라 – 누가는 예수의 신성에 관해서 언급하고나서 한

가정의 자녀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인자이신 예수의 모습을 묘사한다. 예수는 이후 세

례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으실 때까지(3:21) 18년 동안 갈릴리 나사렛에서 그의 부모와

동생들과 함께 지내셨다. 그곳에서 주님은 아버지 요셉의 가업인 목수직을 이어 동생

들을 보살피고 어머니 마리아를 봉양했다(막 6:3). 요셉에 관한 기록은 더 이상 언급

되지 않고 있다. 추측컨대 이 18년 어간에 요셉이 죽은 것으로 여겨진다. 요셉이 죽

자, 장남인 예수가 그의 가족을 부양(扶養)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모친은…마음에 두니라 – 1장의 주석 서두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누가는 이 복음

서의 내용 중 일부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마리아에게서 얻은 듯하다. 그녀는 여

기 언급된 세부 내용들을 얘기할 수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

든 말’이란 본장의 사건 전반에 걸쳐 나타난 말들을 지칭한다.

=====2:52

예수는…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 외경의 복음서들은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

작하시기 전에도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기도 하고 비상한 능력을 나타내기도 하셨다고

전하지만 그 증거는 불확실하다. 본문이 거듭 밝히는 바는(40절 주석 참조), 예수께서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셨다는 사실이다. 예수의 지혜와 키가 자라갔다고 하는 것

이 예수의 신성(deity)을 도외시하는 뜻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을 뿐이기 때문이다(빌 2:6, 7). 한편 ‘키’에 해당하

는 헬라어 ‘헬리키아'(* )는 ‘키'(stature, NIV) 또는 ‘나이’로 번역된다.

이를 어떻게 번역하든 별반 차이가 없지만 ‘키’로 보는 것이 적합한 듯하다. 왜냐하

면 ‘나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먹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부연하여

설명할 필요가 없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자는 그 의미를 신체적인 성장이나 인격적

인 성장으로 보기도 한다.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착실한 성장은 모든 이의 귀감(龜

鑑)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에 순종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이웃을

아끼며 도와주는 그의 생활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

의 이런 칭송은 후에 초대 교회의 사람들이 받았던 칭송으로 이어졌다(행 2:47).

헬라어 누가복음 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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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네토 데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에케이나이스 엨셀덴 도그마 파라 카이사로스 아우구스투 아포그라페스다이 파산 텐 오이쿠메넨

개역개정,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새번역,1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말성경,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전 로마 통치 지역은 호적 등록을 하게 됐습니다.

가톨릭성경,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영어NIV,1 In those days Caesar Augustus issued a decree that a census should be taken of the entire Roman world.

영어NASB,1 Now in those days a decree went out from Caesar Augustus, that a census be taken of all the inhabited earth.

영어MSG,1 About that time Caesar Augustus ordered a census to be taken throughout the Empire.

영어NRSV,1 In those days a decree went out from Emperor Augustus that all the world should be registered.

헬라어신약Stephanos,1 εγενετο δε εν ταις ημεραις εκειναις εξηλθεν δογμα παρα καισαρος αυγουστου απογραφεσθαι πασαν την οικουμενην

라틴어Vulgate,1 factum est autem in diebus illis exiit edictum a Caesare Augusto ut describeretur universus orbis

히브리어Modern,1 ויהי בימים ההם ותצא דת מאת הקיסר אוגוסטוס לספר את כל ישבי תבל׃

성 경: [눅2:1]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 이때에 – 2장을 시작하는 이 말은 1:80의 언급을 염두에 둔 것으로서 새로운 사건의 시작을 알림과 아울러 상황의 변화로 인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 가이사 아구스도(K* A , 카이사로스 아우구스투) – ‘카이사로스’는 하나의 인명일 수도 있고 후대적 용법에서처럼 칭호일 수도 있다. 아구스도는 원래 라틴어인데 헬라어로는 보통 ‘황제'(*, 세바스토스, 행 25:21, 25)로 번역되며 여기서는 인명으로 사용되었다. 아구스도 황제의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이다. 그는 B.C. 27-A.D. 14까지 로마의 황제로 있었고 그후 외증조부 율리우스 시이저의 이름을 따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시이저(Gaius Julius Caesar)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옥타비아누스는 B.C. 27년에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위대하고 고귀하며 지극히 숭배받는’ 이란 뜻)라는 칭호를 부여받으며 그후 그는 시이저 아우구스투스로 명명되고 최고의 권위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탁월한 통치 능력과 현명하고 훌륭한 정치 및 행정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점령지에 대한 정책의 일환(一環)으로 점령지의 지방 자치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기도 하며 점령지의 문화와 종교, 생활 풍습등을 인정해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 나라의 법률까지도 로마법에 비추어 무리가 크게 없는 한 인정해 주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건축 등을 장려하기도 했으며 그 자신이 또한 위대한 건축가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그의 정책과 통치로 인해 전에 없이 오랜 세월동안 평화가 지속되었고 그는 ‘자비로운 정치가’, ‘로마의 대부'(代父)로까지 불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최고 승원장(Pontifex Maximus) 또는 대제사장(Highest Priest)이란 칭호를 받아들여 모든 종교의 최고의 위치를 차지했다. 게다가 그는 피살(被殺)된 자신의 외증조부 율리우스 시이저를 신격화하여 그를 기념하는 사원을 건립하여 그를 신으로 받들도록 명령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그는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범하기도 하였다. 한편 탁월한 정치 지도자이며 행정가인 그가 자기에게 속한 나라들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알고는 로마에 속한 모든나라들로 하여금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록 명령했다. 따라서 그는 인구조사의 실시로 말미암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 5:2의 예언을 성취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Hendriksen).

󰃨 영(*, 도그마) –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는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며 ‘원리’, ‘법령’ 등의 뜻이다. 동사로는 ‘법령을 제정하다’, ‘칙령을 공포하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는 황제의 포고령을 가리킨다.

󰃨 천하 – 이는 원어상 ‘거주지’란 뜻이다. 고대 학자들은 이방인의 땅과 구별되는 의미로서의 헬라인의 거주지를 이 단어로써 나타냈으며 그 후에 ‘로마제국’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행 11:28;17:6).

󰃨 호적(戶籍) – 황제의 칙령은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실시하는 인구 조사에 관한 것이었다. ‘호적’에 해당하는 원어 ‘아포그라포'(*)는 ‘등록하다’, ‘기록하다'(2:3, 5;히 12:23)는 말로 세금 징수를 위한 파피루스로 된 공식기록부를 가리키며, 이 기록부에는 성명, 직업, 재산, 친척관계를 기록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인구 조사는 예수의 탄생을 세계 역사의 맥락 속에 넣어 하나님이 그의 섭리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상의 통치자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우테 아포그라페 프로테 에게네토 헤게모뉴온토스 테스 쉬리아스 퀴레니우

개역개정,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새번역,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우리말성경,2 이것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실시된 첫 번째 호적 등록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영어NIV,2 (This was the first census that took place while Quirinius was governor of Syria.)

영어NASB,2 This was the first census taken while Quirinius was governor of Syria.

영어MSG,2 This was the first census when Quirinius was governor of Syria.

영어NRSV,2 This was the first registration and was taken while Quirinius was governor of Syria.

헬라어신약Stephanos,2 αυτη η απογραφη πρωτη εγενετο ηγεμονευοντος της συριας κυρηνιου

라틴어Vulgate,2 haec descriptio prima facta est praeside Syriae Cyrino

히브리어Modern,2 וזה המפקד היה הראשון בהיות קוריניוס שליט בסוריא׃

성 경: [눅2:2]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 구레뇨 -B.C. 12년에 마르마리대(Marmaridae)를 군사적으로 장악하여 집정관이 된 후 구레뇨는 갈라디아의 남쪽 접경에 있던 산적떼의 후손인 호모나덴세스(Homonadenses) 족을 정복하였다. 그후 그는 A.D. 3-4년 가이우스 시이저(Gaius Caesar)의 고문역을, A.D. 6-9년에는 시리아의 황제 파견관을 역임한 후 A.D. 21년에 죽었다.

󰃨 수리아 – 시리아(수리아, :27)는 B.C. 64에 로마제국에 합병되었다. A.D. 70까지 유대는 별도로 자체의 행정부를 구성하고 있었지만 시리아에 복속되어 로마의 통치를받고 있었다. 따라서 이 당시까지만 해도 시리아는 유대 지역까지 포함된 로마제국의 통치령이었다.

󰃨 첫 번 한 것이라 – 제1차 인구 조사는 흔히 예수의 탄생보다 훨씬 이후인 A.D. 6년경 구레뇨가 통치하던 시기에 실시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행 5:37과 요세푸스의 저서(Antiq. , 26.1)에도 제1차 인구조사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누가가 A.D. 6년에 실시되었던 제1차 인구조사를 그 이전에 실시되었던 것으로 혼동했다고 추측한다. 그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었지만 다음 두 견해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첫째, 어떤 사본에는 구레뇨가 ‘두번째’로 ‘시리이의 총독’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그 사본의 내용이 애매한점이 있기는 하지만 구레뇨는 예수가 태어날 당시와 그 후의 몇 년이 지난 뒤, 곧 두 차례에 걸쳐 시리아의 총독 직위에 있었다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F.F. Bruce, Quirinius, NBD, p.1069). 둘째, ‘첫 번’의 헬라어 ‘프로테'(*)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첫 번째의’라고 번역되었지만 그 단어는 그 의미보다 ‘이전의’ 또는 ‘앞의’를 뜻할 수 있다. 만약 ‘첫 번’이라는 단어가 ‘이전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본절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 되기 이전에’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본문의 기록의 역사성이 대해 회의를 표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만일 이 기록이 잘못된 것이라면 초대의 기독교 논박자들이 이를 지적하지 않았을리 없으며 또한 당대의 교양있는 사람들에게 써보낸 누가의 기록 속에 터무니없는 내용이 수록되었을리도 없겠기 때문이다.

카이 에포류온토 판테스 아포그라페스다이 헤카스토스 에이스 텐 헤아우투 폴린

개역개정,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새번역,3 모든 사람이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

우리말성경,3 그래서 모든 사람은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 각각 자기 고향으로 갔습니다.

가톨릭성경,3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영어NIV,3 And everyone went to his own town to register.

영어NASB,3 And everyone was on his way to register for the census, each to his own city.

영어MSG,3 Everyone had to travel to his own ancestral hometown to be accounted for.

영어NRSV,3 All went to their own towns to be registered.

헬라어신약Stephanos,3 και επορευοντο παντες απογραφεσθαι εκαστος εις την ιδιαν πολιν

라틴어Vulgate,3 et ibant omnes ut profiterentur singuli in suam civitatem

히브리어Modern,3 וילכו כלם להתפקד איש לעירו׃

성 경: [눅2:3]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 모든 사람이…고향으로 돌아가매 – 인구 조사는 각 사람의 고향에서 실시되는 것이 관례였다. 이렇게 많은 불편을 감수하며 자기의 고향까지 가서 호적을 하는 것은 유대의 호적제도를 따르는 것이었다. 로마의 호적제도는 자신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인적 사항만을 기록하는 훨씬 더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이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로마의 손쉬운 호적 제도를 따르지 않고 굳이 번거롭게 많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자신들의 호적제도를 따르는 것은 이 호적명령이 로마의 명령으로 행해지는 것이지만 자신들의 독자적(獨自的)인 방법과 의사에 의해 행해지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최소한의 민족적 자존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모든 사실들을 자세히 미루어 살펴본(1:1-4) 누가가 실제로 시행되지 않았던 인구 조사를 강조하여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네베 데 카이 요세프 아포 테스 갈릴라이아스 에크 폴레오스 나자렏 에이스 텐 유다이안 에이스 폴린 다윋 헤티스 칼레이타이 베들레엠 디아 토 에이나이 아우톤 엨스 오이투 카이 파트리아스 다윋

개역개정,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새번역,4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로,

우리말성경,4 요셉도 갈릴리 나사렛 마을을 떠나 다윗의 마을인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올라갔습니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직계 혈통이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영어NIV,4 So Joseph also went up from the town of Nazareth in Galilee to Judea, to Bethlehem the town of David, because he belonged to the house and line of David.

영어NASB,4 Joseph also went up from Galilee, from the city of Nazareth, to Judea, to the city of David which is called Bethlehem, because he was of the house and family of David,

영어MSG,4 So Joseph went from the Galilean town of Nazareth up to Bethlehem in Judah, David’s town, for the census. As a descendant of David, he had to go there.

영어NRSV,4 Joseph also went from the town of Nazareth in Galilee to Judea, to the city of David called Bethlehem, because he was descended from the house and family of David.

헬라어신약Stephanos,4 ανεβη δε και ιωσηφ απο της γαλιλαιας εκ πολεως ναζαρετ εις την ιουδαιαν εις πολιν δαβιδ ητις καλειται βηθλεεμ δια το ειναι αυτον εξ οικου και πατριας δαβιδ

라틴어Vulgate,4 ascendit autem et Ioseph a Galilaea de civitate Nazareth in Iudaeam civitatem David quae vocatur Bethleem eo quod esset de domo et familia David

히브리어Modern,4 ויעל גם יוסף מן הגליל מעיר נצרת אל יהודה לעיר דוד הנקראה בית לחם כי היה מבית דוד וממשפחתו׃

성 경: [눅2:4]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 다윗의 집 족속…다윗의 동네로 – ‘집’은 단순한 문자적 의미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나타내어 ‘민족’, ‘족속’, ‘나라’ 등의 의미를 내포하며, ‘족속’은 문자 그대로의 뜻을 나타내나 이 곳에서는 둘이 서로 동의어로 사용된 것 같다. 평행본문 마 1:6, 16에서도 요셉이 다윗의 후손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거니와 본절에서 다윗의 집 혹은 다윗의 동네라는 말이 거듭 언급되는 것은, 예수께서 육신상으로 다윗의 후손임을 강조함과 아울러 다윗 왕가의 후손이자 만왕의 왕으로 오실 예수께서 일개초라한 시골민의 가정에서 태어남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내포한다. 삼상 20:6에서 베들레헴은 ‘다윗 성’이라 불리운다. 다윗은 약 천년전 이곳에서 태어났고, 그가 양떼를 돌보던(삼상 17:15) 곳도 이 마을 근처의 언덕이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7.2Km 떨어졌고 나사렛에서는 약 144Km 떰어진 곳이며 그것의 옛 이름은 에브라다이고 라헬이 장사된 곳이기도 하다(창 35:19). 이 마을 이름의 뜻은 ‘떡집’이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곳이 다윗이 자라난 곳이고 미 5:2에 나타난 대로 메시야가 출생한 곳이라는데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태어난 아기가 다윗성에서 난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아포그랖사스다이 쉰 마리암 테 엠네스튜메네 아우토 우세 엥퀴오

개역개정,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새번역,5 자기의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올라갔다. 그 때에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는데,

우리말성경,5 그는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을 등록하러 그곳에 갔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영어NIV,5 He went there to register with Mary, who was pledged to be married to him and was expecting a child.

영어NASB,5 in order to register along with Mary, who was engaged to him, and was with child.

영어MSG,5 He went with Mary, his fianc?, who was pregnant.

영어NRSV,5 He went to be registered with Mary, to whom he was engaged and who was expecting a child.

헬라어신약Stephanos,5 απογραψασθαι συν μαριαμ τη μεμνηστευμενη αυτω γυναικι ουση εγκυω

라틴어Vulgate,5 ut profiteretur cum Maria desponsata sibi uxore praegnate

히브리어Modern,5 להתפקד עם מרים המארשה לו והיא הרה׃

성 경: [눅2:5]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 누가는 요셉이 어느 시기에 베들레헴을 향해서 출발했으며, 또한 그가 왜 마리아를 동반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추측컨대 아마 마리아의 고향에서 마리아에 대한 그릇된 소문이 퍼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며 그 소문으로 인해서 마리아는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았을 것이므로 요셉은 인구 조사를 기회로 마리아를 데리고 고향을 떠났을 가능성도 있다. 요셉은 이미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다(마 1:24). 그러나 그들이 성령으로 잉태한 아이를 낳을 때 까지는 분명히 약혼 관계에만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정혼’이라는 말을 유대적 배경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유대적 개념에서 ‘정혼’은 결혼을 의미하고 절차상으로 신부를 신랑집으로 데려오는 일만 남은 것이다. 혼인서약은 대체로 정혼에 행해졌으며 이 정혼은 항상 공식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은 후에는 신랑이 그의 신부를 데려가는 일에 있어서 어느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았다. 한편 요셉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여행하는 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산이 임박한 마리아가 그 장거리(약 144Km, 요단을 우회하여 돌아가는 길)를 여행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산모와 태아에 치명적인 위험을 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여자도 호적해야할 의무가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고향에 가서 호적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함께 동행하는 것은 세인(世人)의 비난을 피하고자 한 요셉의 배려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되어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자신의 뜻대로 운행하는 주관자이시기 때문이다(시 136:8-26).

에게네토 데 엔 토 에이나이 아우투스 에케이 에플레스데산 하이 헤메라이 투 테케인 아우텐

개역개정,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새번역,6 그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되었다.

우리말성경,6 그들이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해산할 때가 돼

가톨릭성경,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영어NIV,6 While they were there, the time came for the baby to be born,

영어NASB,6 While they were there, the days were completed for her to give birth.

영어MSG,6 While they were there, the time came for her to give birth.

영어NRSV,6 While they were there, the time came for her to deliver her child.

헬라어신약Stephanos,6 εγενετο δε εν τω ειναι αυτους εκει επλησθησαν αι ημεραι του τεκειν αυτην

라틴어Vulgate,6 factum est autem cum essent ibi impleti sunt dies ut pareret

히브리어Modern,6 ויהי בהיותם שם וימלאו ימיה ללדת׃

성 경: [눅2:6]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 이 표현은 단순히 임신과 출산 사이에 일정한 기간이 지나야만 아이가 태어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도 무방하다. 임신 자체는 비록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지만 태중에서 아기가 자라나는 것은 일반적인 과정에 의했던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우리와 똑같은 성정(性情)을 가지고 똑같은 성장 과정을 거치며 모든 인류를 대속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는 우리와 똑같은 출생과 성장과정을 거쳤기에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다(히 4:15). 한편 이 구절에서 ‘해산할 날’이 현재대로 12월 25일인지는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회에서는 성탄절을 전승에 따라 보통 겨울로 잡는다. 이것이 3세기부터 문제시되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5월 20일을 제안했다. 12월25일을 성탄일로 지킨 것은 336년부터였다. 서방에서 이날을 택한 것은 로마신인 ‘정의의 태양'(Sol Invictus) 탄생일에 대치한 것이나 동방 교회에서는 주현제 즉 동방의 현자들이 도착했다고 하는 날(Epiphania manifestation, 1월 6일)에 예수의 수세를 기념하다가 4세기부터는 예수의 탄생도 연결시켰다. 그리고 5세기 중엽부터는 동방 교회도 거의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켰으나 예루살렘 교회는 549년까지도 1월 6일을 크리스마스날로 지킨다.

카이 에테켄 톤 휘온 아우테스 톤 프로토토콘 카이 에스파르가노센 아우톤 카이 아네클리넨 아우톤 엔 파트네 디오티 우크 엔 아우토이스 토포스 엔 토 카탈뤼마티

개역개정,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새번역,7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7 마리아는 첫아들을 낳고는 아기를 천으로 싸서 구유에 눕혔습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빈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영어NIV,7 and she gave birth to her firstborn, a son. She wrapped him in cloths and place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room for them in the inn.

영어NASB,7 And she gave birth to her first-born son; and she wrapped Him in cloths, and lai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room for them in the inn.

영어MSG,7 She gave birth to a son, her firstborn. She wrapped him in a blanket and lai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room in the hostel.

영어NRSV,7 And she gave birth to her firstborn son and wrapped him in bands of cloth, and lai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place for them in the inn.

헬라어신약Stephanos,7 και ετεκεν τον υιον αυτης τον πρωτοτοκον και εσπαργανωσεν αυτον και ανεκλινεν αυτον εν τη φατνη διοτι ουκ ην αυτοις τοπος εν τω καταλυματι

라틴어Vulgate,7 et peperit filium suum primogenitum et pannis eum involvit et reclinavit eum in praesepio quia non erat eis locus in diversorio

히브리어Modern,7 ותלד את בנה הבכור ותחתלהו ותשכיבהו באבוס כי לא היה להם מקום במלון׃

성 경: [눅2:7]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 맏아들 – ‘외아들’이 아닌 ‘맏아들’이라는 표현은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뒤 계속해서 자녀들을 낳았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에 계속해서 동정을 지키며 자녀를 낳지 않았다는 주장은 근거없는 이야기며 이는 마리아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와 경외심에서 나온 이야기라 하겠다. 그리고 예수의 여러 형제와 여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는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8:19, 20;마 12:46, 47;13:55, 56;막 3:31, 32;요 2:12;7:3, 5, 10;행 1:14).

󰃨 사관(舍館)(*, 카탈뤼마) – 이 단어는 흔히 ‘여관'(inn)이라고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최후의 만찬 때에 사용된(22:11) ‘객실'(guest room)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22:12에는 그 객실이 ‘다락방’으로 언급되었다. 또한 이 단어는 군인들의 숙소나 여관을 포함하여 숙박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데려갔던 ‘판도케이온'(*, ‘주막’, 헬라어에서 대체로 여관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단어)과는 다르다(10:34). 그런데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다가왔을 때 그 보잘 것없는 가족에게 허락되었던 장소는 가축우리 있다고 누가는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곳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대로 곳간(cave)이었을 수도 있으며, 또는 집이나 사관의 일부분이었을 수도 있다.

󰃨 구유(*, 파트네) – 신약에서 이 ‘파트네’는 누가복음에서만 4회 나온다(7, 12, 16절;13:15). 이 주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비천한 신분으로 보잘것없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이 세상에 오셨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구유는 세상 구속주의 비천한 탄생을 당시 세계의 주관자인 아구스도의 영광과 대조시키며(1, 11, 14절), 아무데도 머리둘 곳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자이신 예수의 겸손과 고난을 상징한다(9:58). 어쨌든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구유는 갓난아이를 누이기에는 안성 맞춤이었다. 그리고 마굿간밖에 내어 줄 수 없었던 여관 주인은 동정심이 전혀 없어서 그러했다고 보이지 않으며 누가 역시 그러한 각도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 같다(H. Hengel, TDNT. , 49-55).

카이 포이메네스 에산 엔 테 코라 테 아우테 아그라울룬테스 카이 퓔라쏜테스 퓔라카스 테스 뉰토스 에피 텐 포임넨 아우톤

개역개정,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새번역,8 그 지역에서 목자들이 밤에 들에서 지내며 그들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말성경,8 한편 목자들은 바로 그 지역 들판에서 살며 밤에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영어NIV,8 And there were shepherds living out in the fields nearby, keeping watch over their flocks at night.

영어NASB,8 In the same region there were some shepherds staying out in the fields and keeping watch over their flock by night.

영어MSG,8 There were sheepherders camping in the neighborhood. They had set night watches over their sheep.

영어NRSV,8 In that region there were shepherds living in the fields, keeping watch over their flock by night.

헬라어신약Stephanos,8 και ποιμενες ησαν εν τη χωρα τη αυτη αγραυλουντες και φυλασσοντες φυλακας της νυκτος επι την ποιμνην αυτων

라틴어Vulgate,8 et pastores erant in regione eadem vigilantes et custodientes vigilias noctis supra gregem suum

히브리어Modern,8 ורעים היו בארץ ההיא לנים בשדה ושמרים את משמרות הלילה בעדרם׃

성 경: [눅2:8]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천사들의 찬송]

󰃨 목자들이 – 당시 유대 사회의 여러 가지 직업들 중에서 목자라는 직업은 아주 천시되었다. 일반 사람들은 목자들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목자들이 하는일이란 유대인의 규례(規例)에 의하면 부정한 일로 간주되었다. 이 이야기를 살펴볼 때 명백한것은 복음이 맨 먼저 그 당시에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던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이 사실을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예수께서 양들을 위해 목숨마져 아끼지 않는 선한 목자처럼 인류를 위해 당신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이심을(마 20:18;요 1:29) 넌지시 암시한다. 한편, 이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여호와께서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언약하는 내용(삼하 7:8)을 상기해볼 수 있다. 그 내용 중에는 여호와께서 다윗을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메시야의 선조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나온다. 그리고 신구약에서 목자는 하나님 자신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자들을 상징적으로 가리킨다(시 23:1;사 40:11;렘 23:1-4;히 13:20;벧전 2:25;5:2).

󰃨 밤에…지키더니 – ‘지키더니’에 해당하는 ‘퓔라쏜테스’는 ‘파수하다’, ‘보호하다’의 뜻인 ‘퓔라쏘'(*)의 복수 현재능동태형이다. 그리고 ‘밤에’에 해당하는 ‘테스뉴토스’는 ‘밤 새워’란 뜻을 내포한다. 따라서 이 귀절은 밖에서 여러명이 교대로 밤을 새워 도둑이나 다른 들짐승들로부터 양떼를 지키며 보호하는 일련의 행동을 묘사한다. 팔레스틴 지방에서 목자들은 4월부터 11월까지 이런 식으로 양떼를 밖에서 방목(放牧)하였으며 겨울철에도 날씨가 춥지 않을 때에는 종종 그렇게했다. 한편 본문상으로는 예수가 어느 철에 태어났는지에 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어느 철에 태어나셨나 하는 점보다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사실 그 자체이다.

카이 앙겔로스 퀴리우 에페스테 아우토이스 카이 돜사 퀴리우 페리엘람프센 아우투스 카이 에포베데산 포본 메간

개역개정,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새번역,9 그런데 주님의 한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고, 주님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니,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우리말성경,9 주의 천사가 그들 앞에 나타났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환하게 둘러 비춰서 그들은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가톨릭성경,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영어NIV,9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to them, and the glory of the Lord shone around them, and they were terrified.

영어NASB,9 And an angel of the Lord suddenly stood before them, and the glory of the Lord shone around them; and they were terribly frightened.

영어MSG,9 Suddenly, God’s angel stood among them and God’s glory blazed around them. They were terrified.

영어NRSV,9 Then an angel of the Lord stood before them, and the glory of the Lord shone around them, and they were terrified.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ι ιδου αγγελος κυριου επεστη αυτοις και δοξα κυριου περιελαμψεν αυτους και εφοβηθησαν φοβον μεγαν

라틴어Vulgate,9 et ecce angelus Domini stetit iuxta illos et claritas Dei circumfulsit illos et timuerunt timore magno

히브리어Modern,9 והנה מלאך יהוה נצב עליהם וכבוד יהוה הופיע עליהם מסביב וייראו יראה גדולה׃

성 경: [눅2:9]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천사들의 찬송]

󰃨 주의 영광 – ‘영광'(*, 돝사)은 영원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양식 중 하나이며 그분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독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묘사하는 표현 속에서도 흔히 등장한다(9절;9:31, 32;행 22:11;계 15:8).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영광에 의해 다시 살아나셨으며(롬 6:4) 영광 속으로 올리워 지셨고(딤전 3:16) 지금도 영광의 우편에 계신다(행 7:55). 또한 영광이 하나님께 돌려지듯이 그에게도 돌려진다(2:14;히 13:21). 따라서 그는 영광의 주님이시다(고전 2:8;약 2:1). 나아가 우리의 종말론적 소망(사 40:5)은 위대하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딛 2:13).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들이나 본 구절에서 그의 출생시에 영광이 드러난 것은 그가 하늘로부터 왔음을 진작부터 말해주는 것이며 요한복음에서도 또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언급하고 있다(요 1:14;2:11;11:40). 그리스도께서 영광에 들어가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이다(요 13:31).

󰃨 두루 비추매(*, 페리엘람프센) – 이 단어는 ‘페리'(*, ‘주위에’)와 ‘람포'(*, ‘비취다’)의 합성어로서 ‘빛에 완전히 쌓인 상태’를 뜻한다. 때때로 하나님의 영광은 찬란한 빛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대 민족들 가운데서는 ‘세키나’로서 알려져 있다. 이는 매우 희고 밝게 빛나는 구름의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것으로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출 24:16;왕상 8:10;사 6:1-3;행 7:55).

카이 에이펜 아우토이스 호 앙겔로스 메 포베이스데 이두 가르 유앙겔리조마이 휘민 카란 메갈렌 헤티스 에스타이 판티 토 라오

개역개정,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새번역,10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여 준다.

우리말성경,10 천사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아라. 내가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알려 준다.

가톨릭성경,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영어NIV,10 But the angel said to them, “Do not be afraid. I bring you good news of great joy that will be for all the people.

영어NASB,10 But the angel said to them, ” Do not be afraid; for behold, I bring you good news of great joy which will be for all the people;

영어MSG,10 The angel said, “Don’t be afraid. I’m here to announce a great and joyful event that is meant for everybody, worldwide:

영어NRSV,10 But the angel said to them, “Do not be afraid; for see–I am bringing you good news of great joy for all the people:

헬라어신약Stephanos,10 και ειπεν αυτοις ο αγγελος μη φοβεισθε ιδου γαρ ευαγγελιζομαι υμιν χαραν μεγαλην ητις εσται παντι τω λαω

라틴어Vulgate,10 et dixit illis angelus nolite timere ecce enim evangelizo vobis gaudium magnum quod erit omni populo

히브리어Modern,10 ויאמר אליהם המלאך אל תיראו כי הנני מבשר אתכם שמחה גדולה אשר תהיה לכל העם׃

성 경: [눅2:10]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천사들의 찬송]

󰃨 온 백성 – 이 말이 가리키는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이다. 그러나 천사를 통해 전달된 복음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적 울타리를 넘어 세계 만민에게 개방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대 백성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이 먼저 전달된 것은 그들을 통해 온인류에게 전해지게끔 하고자 함이었다. 이러한 소식은 이 복음의 메시지를 접할 대상이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14절)과 ‘이방'(32절)에로 확대(擴大)된다는 점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 좋은 소식을…전하노라(*, 유앙겔리조마이) – 이 단어는 ‘기쁜 소식을 전파하다’의 뜻이며 히브리어로는 ‘바사르'(*)에 해당한다. 이 히브리어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다’는 뜻을 나타냄은 물론이나 승리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된다(삼하 4:10;왕상 1:42). 이 용어는 특히 사 40장 이하에서 의미심장하게 사용되었으니 여기서 사자는 시온에 이르러 구원의 시대를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전세계적인 승리를 선포한다(사 40:9; 41:27;52:7). 한편 본문에서의 ‘좋은 소식’ 이란 곧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사실 자체가 기쁜 소식이며,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곧 복음이라 할수 있었다.

호티 에텤데 휘민 세메론 소테르 호스 에스틴 크리스토스 퀴리오스 엔 폴레이 다윋

개역개정,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새번역,11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 ㉠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다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함

우리말성경,11 오늘 구주이신 주 그리스도가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나셨다.

가톨릭성경,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영어NIV,11 Today in the town of David a Savior has been born to you; he is Christ the Lord.

영어NASB,11 for today in the city of David there has been born for you a Savior, who is Christ the Lord.

영어MSG,11 A Savior has just been born in David’s town, a Savior who is Messiah and Master.

영어NRSV,11 to you is born this day in the city of David a Savior, who is the Messiah, the Lord.

헬라어신약Stephanos,11 οτι ετεχθη υμιν σημερον σωτηρ ος εστιν χριστος κυριος εν πολει δαβιδ

라틴어Vulgate,11 quia natus est vobis hodie salvator qui est Christus Dominus in civitate David

히브리어Modern,11 כי היום ילד לכם בעיר דוד מושיע אשר הוא המשיח האדון׃

성 경: [눅2:11]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천사들의 찬송]

󰃨 다윗의 동네 – 베들레헴(4절 주석 참조). 메시야는 다윗의 동네 곧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리라 예언되었다. 여기서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은 메시야의 오심과 관련된 모든 약속들을 기억나게하고 그와 관련된 예언의 성취를 암시하기 위함이다.

󰃨 구주(*, 소테르) – 헬라어 ‘소테르’는 신약 성경에서 드물게 나타나며 그것도 누가와 바울에 의해서만 주로 사용된 표현이다(행 5:31;엡 5:23;딤후 1:10). 이는 하나님을 구원자로 표현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바(1:47;삼하 22:3;시 49:26), 예수께서 죄악에 찌들은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임을 뜻한다.

󰃨 그리스도 주 – ‘그리스도’는 마 1:1 주석에서 설명된 바처럼 인류 구속의 대사명과 관련되는 주님의 직능적 명칭이며, ‘주'(헬, 퀴리오스)는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한다. 예수는 영원전부터 그리스도와 주로 예정되었으며(엡 1:4;3:11;골 4:3), 본체상으로는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며,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자기 백성들을 위한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신 것이다.

카이 투토 휘민 토 세메이온 휴레세테 브레포스 에스파르가노메논 카이 케이메논 엔 파트네

개역개정,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새번역,12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

우리말성경,12 너희가 천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것인데 그것이 너희에게 표적이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영어NIV,12 This will be a sign to you: You will find a baby wrapped in cloths and lying in a manger.”

영어NASB,12 “This will be a sign for you: you will find a baby wrapped in cloths and lying in a manger.”

영어MSG,12 This is what you’re to look for: a baby wrapped in a blanket and lying in a manger.”

영어NRSV,12 This will be a sign for you: you will find a child wrapped in bands of cloth and lying in a manger.”

헬라어신약Stephanos,12 και τουτο υμιν το σημειον ευρησετε βρεφος εσπαργανωμενον κειμενον εν τη φατνη

라틴어Vulgate,12 et hoc vobis signum invenietis infantem pannis involutum et positum in praesepio

히브리어Modern,12 וזה לכם האות תמצאון ילד מחתל ומנח באבוס׃

성 경: [눅2:12]

주제1: [8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천사들의 찬송]

󰃨 강보에 싸여…표적이니라 –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는 긴 옷감으로 아기를 포근히 감싸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 태어난 아기를 따뜻하게 하고 병으로부터 보호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기예수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놓여있다는 것은 특별한 표적이라고 언급된다. 그것은 다음 세가지 면에서 표적이 되었다. (1)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언한 시기의 장소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2) 그들에게 전달된 기쁜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3) 기름부음 받은 자 곧 그리스도로서의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기위해 지극히 비천한 자리에까지 낮아지셨다. 한편 겔 16:1-5에는 예루살렘이 이방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불쌍한 아기로 묘사되었거니와, 예수는 이와 같은 가련한 상태에 놓인 이스라엘과 나아가 온 인류를 구원하고 돌보시기 위해 스스로 비천한 자리(구유)에 누이셨던 것이다.

카이 엨사이프네스 에게네토 쉰 토 앙겔로 플레도스 스트라티아스 우라니우 아이눈톤 톤 데온 카이 레곤톤

개역개정,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새번역,13 갑자기 그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우리말성경,13 갑자기 그 천사와 함께 하늘의 군대가 큰 무리를 이루며 나타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영어NIV,13 Suddenly a great company of the heavenly host appeared with the angel, praising God and saying,

영어NASB,13 And suddenly there appeared with the angel a multitude of the heavenly host praising God and saying,

영어MSG,13 At once the angel was joined by a huge angelic choir singing God’s praises:

영어NRSV,13 And suddenly there was with the angel a multitude of the heavenly host, praising God and saying,

헬라어신약Stephanos,13 και εξαιφνης εγενετο συν τω αγγελω πληθος στρατιας ουρανιου αινουντων τον θεον και λεγοντων

라틴어Vulgate,13 et subito facta est cum angelo multitudo militiae caelestis laudantium Deum et dicentium

히브리어Modern,13 ויהי פתאם אצל המלאך המון צבא השמים והם משבחים את האלהים ואמרים׃

성 경: [눅2:13]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천사들의 찬송]

󰃨 허다한 천군이…찬송하여 – 두 세사람의 증거로도 어떤 사실의 진정성을 입증할 수 있었거니와(마 18:16) 여기서는 수많은 천군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하고 있다. ‘천군’에 해당하는 ‘스트라티아'(*)는 구약 성경에서 종종 천체(henvenly bodies)를 가리키나(느 9:6), 여기서는 일군(一群)의 천사들을 가리킨다(시 103:21).

돜사 엔 휲시스토이스 데오 카이 에피 게스 에이레네 엔 안드로포이스 유도키아스

개역개정,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새번역,14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우리말성경,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가톨릭성경,14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영어NIV,14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to men on whom his favor rests.”

영어NASB,14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among men with whom He is pleased.”

영어MSG,14 Glory to God in the heavenly heights, Peace to all men and women on earth who please him.

영어NRSV,14 “Glory to God in the highest heaven, and on earth peace among those whom he favors!”

헬라어신약Stephanos,14 δοξα εν υψιστοις θεω και επι γης ειρηνη εν ανθρωποις ευδοκια

라틴어Vulgate,14 gloria in altissimis Deo et in terra pax in hominibus bonae voluntatis

히브리어Modern,14 כבוד במרומים לאלהים ובארץ שלום בבני אדם רצונו׃

성 경: [눅2:14]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천사들의 찬송]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 이 이야기에서 절정을 이루는 내용이다. 그리스도의 등장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유는, (1) 하나님의 영윈하신 신성과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히 거하고 또한 그를 통해 확연히 나타나기 때문이다(요 1:14).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를 본 자는 곧 하나님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요 14:9). (2)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찬양과 경배로써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고후 1:20). (3) 그리고 하나님이 그 영원하신 섭리에 따라 인생과 세상 만물을 향해 이루고자하신 계획을 그리스도를 통해 완수하시게 되기 때문이다.

󰃨 땅에서는…평화로다 – 그리스도의 오심이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인(and on earth peace to men on whom his favor rest, NIV) 것은, (1) 그리스도의 중재와 대속으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들 간의 막혔던 장벽이 제거되고 화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엡 2:14).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서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놓여있으므로 늘 불화의 다툼의 수렁에서 허덕이지만, 하나님과의 근본적 화해를 이룬 사람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평강을 선물로 소유하게 된다(요 14:27). (2) 그리스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죄악이 제거되고 사람들간에 화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엡 2:16-18). 여기 언급된 평화는 메시아의 도래와 관련된 총체적 축복과 구원을 지칭한다고도 볼 수 있다. 예수는 평강의 왕으로서(히 7:2), 당신의 공생애를 백성들의 평강을 위해 보내셨으며(7:50;8:48) 그 평강을 위한 사역은 십자가상에서 절정에 달했다.

카이 에게네토 호스 아펠돈 앞 아우톤 에이스 톤 우라논 호이 앙겔로이 호이 포이메네스 엘랄룬 프로스 알렐루스 디엘도멘 데 헤오스 베들레엠 카이 이도멘 토 레마 투토 토 게고노스 호 호 퀴리오스 에그노리센 헤민

개역개정,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새번역,15 천사들이 목자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간 뒤에, 목자들이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바, 일어난 그 일을 봅시다.”

우리말성경,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자 목자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 일이 정말 일어났는지 보자.”

가톨릭성경,15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영어NIV,15 When the angels had left them and gone into heaven, the shepherds said to one another, “Let’s go to Bethlehem and see this thing that has happened, which the Lord has told us about.”

영어NASB,15 When the angels had gone away from them into heaven, the shepherds began saying to one another, “Let us go straight to Bethlehem then, and see this thing that has happened which the Lord has made known to us.”

영어MSG,15 As the angel choir withdrew into heaven, the sheepherders talked it over. “Let’s get over to Bethlehem as fast as we can and see for ourselves what God has revealed to us.”

영어NRSV,15 When the angels had left them and gone into heaven, the shepherds said to one another, “Let us go now to Bethlehem and see this thing that has taken place, which the Lord has made known to us.”

헬라어신약Stephanos,15 και εγενετο ως απηλθον απ αυτων εις τον ουρανον οι αγγελοι και οι ανθρωποι οι ποιμενες ειπον προς αλληλους διελθωμεν δη εως βηθλεεμ και ιδωμεν το ρημα τουτο το γεγονος ο ο κυριος εγνωρισεν ημιν

라틴어Vulgate,15 et factum est ut discesserunt ab eis angeli in caelum pastores loquebantur ad invicem transeamus usque Bethleem et videamus hoc verbum quod factum est quod fecit Dominus et ostendit nobis

히브리어Modern,15 ויהי כאשר עלו מעליהם המלאכים השמימה ויאמרו הרעים איש אל רעהו נעברה נא עד בית לחם ונראה המעשה הזה אשר הודיענו יהוה׃

성 경: [눅2:15]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목자들의 경배]

󰃨 하늘로 올라가니 – 누가는 천사들이 단순히 사라졌다고 언급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한다. 이는 공간적인 이동을 자세히 묘사한 누가의 독특한 표현이다(24:51;행 1:10). 물론 우리는 본절을 문자적인 의미로만 해석하여 수직 상승의 뜻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천사의 처소 곧 하늘 나라는 이 우주속의 그 어느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의 승천장면에 대한 묘사와 마찬가지로, 지각 가능 상태로부터 지각 초월 상태에로 변화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라 하겠다.

󰃨 이제(*, 데) – 강조를 위한 접두사로서 특히 명령형 문장과 더불어 사용되며 여기서는 긴급성을 강조한다.

카이 엘단 스퓨산테스 카이 아뉴란 텐 테 마리암 카이 톤 요세프 카이 토 브레포스 케이메논 엔 테 파트네

개역개정,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새번역,16 그리고 그들은 급히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냈다.

우리말성경,16 그래서 그들은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습니다. 과연 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16 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영어NIV,16 So they hurried off and found Mary and Joseph, and the baby, who was lying in the manger.

영어NASB,16 So they came in a hurry and found their way to Mary and Joseph, and the baby as He lay in the manger.

영어MSG,16 They left, running, and found Mary and Joseph, and the baby lying in the manger.

영어NRSV,16 So they went with haste and found Mary and Joseph, and the child lying in the manger.

헬라어신약Stephanos,16 και ηλθον σπευσαντες και ανευρον την τε μαριαμ και τον ιωσηφ και το βρεφος κειμενον εν τη φατνη

라틴어Vulgate,16 et venerunt festinantes et invenerunt Mariam et Ioseph et infantem positum in praesepio

히브리어Modern,16 וימהרו לבוא וימצאו את מרים ואת יוסף ואת הילד שכב באבוס׃

성 경: [눅2:16]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목자들의 경배]

󰃨 빨리 가서 –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을 만난 후 엘리사벳을 찾아 나선 장면을 연상시킨다(1:39). 목자들은 자신들이 돌보던 양떼를 두고 마리아처럼 서둘러 찾아 나선다. 목자들이 양떼를 다른 동료 목자들에게 맡기고 갔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보존에 맡겼는지 알 수가 없으나 아무튼 목자들은 즉각적(卽刻的)인 반응을 보여주고 아기 예수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양떼를 뒤로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와의 만남에는 결단이 요구된다. 우리도 목자들과 같이 순수한 믿음과 겸손하고 완전한 섬김으로써 주를 찾을 때에 주께서는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인도자 되신다.

󰃨 찾아서(*, 아뉴란) – 원어상으로 ‘끊임없이'(부지런히) 탐색하여 찾다’라는 뜻이다.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계속해서 찾아다녔으며, 그렇게 노력하여 찾던 끝에 정말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평강의 왕 아기 예수를 발견한 것을 말한다.

이돈테스 데 에그노리산 페리 투 레마토스 투 랄레덴토스 아우토이스 페리 투 파이디우 투투

개역개정,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새번역,17 그들은 이것을 보고 나서, 이 아기에 관하여 자기들이 들은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우리말성경,17 그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이에 관해 들은 말을 알려 주었고

가톨릭성경,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영어NIV,17 When they had seen him, they spread the word concerning what had been told them about this child,

영어NASB,17 When they had seen this, they made known the statement which had been told them about this Child.

영어MSG,17 Seeing was believing. They told everyone they met what the angels had said about this child.

영어NRSV,17 When they saw this, they made known what had been told them about this child;

헬라어신약Stephanos,17 ιδοντες δε διεγνωρισαν περι του ρηματος του λαληθεντος αυτοις περι του παιδιου τουτου

라틴어Vulgate,17 videntes autem cognoverunt de verbo quod dictum erat illis de puero hoc

히브리어Modern,17 ויראו וישמיעו את הדבר הנאמר אליהם על הגער הזה׃

성 경: [눅2:17]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목자들의 경배]

󰃨 보고…말한 것을 고하니 –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처해 있었던 이 목자들이 최초로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이었고 또 최초로 복음을 전달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목자들이 그 아기에 관한 기쁜 소식을 누구에게 전해 주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 외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마굿간에 모여 있었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고, 목자들이 이웃 사람들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전했다고도 짐작된다.

카이 판테스 호이 아쿠산테스 에다우마산 페리 톤 랄레덴톤 휘포 톤 포이메논 프로스 아우투스

개역개정,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새번역,18 이것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목자들이 그들에게 전해준 말을 이상히 여겼다.

우리말성경,18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은 목자들이 한 말에 놀랐습니다.

가톨릭성경,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영어NIV,18 and all who heard it were amazed at what the shepherds said to them.

영어NASB,18 And all who heard it wondered at the things which were told them by the shepherds.

영어MSG,18 All who heard the sheepherders were impressed.

영어NRSV,18 and all who heard it were amazed at what the shepherds told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8 και παντες οι ακουσαντες εθαυμασαν περι των λαληθεντων υπο των ποιμενων προς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18 et omnes qui audierunt mirati sunt et de his quae dicta erant a pastoribus ad ipsos

히브리어Modern,18 וכל השמעים תמהו על הדברים אשר דברו אליהם הרעים׃

성 경: [눅2:18]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목자들의 경배]

󰃨 기이(奇異)히 여기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다우마조'(*)는 ‘이상히 여기다’, ‘놀라다’는 뜻 외에 ‘찬양하다’는 뜻도 내포한다. 즉 이 말은 초자연적인 혹은 신적인 사건과 접한 자의 외경스러운 감동을 시사한다. 누가는 메시아에 대하여 선포하는 말을 들었던 이들이 그 말을 기이하게 생각했다고 여러번 언급하고 있는데 본절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마리아와 요셉도 시므온이 예수께 대하여 하는 말을 듣고 기이하게 여겼으며(33절) 47절에 보면 성전에서 답변하는 어린 예수의 말을 들었던 모든 이들이 예수의 말을 기이하게 여겼다. 또한 나사렛의 회당에서 예수가 사 61장의 어떤 부분을 읽고 나서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곳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예수의 말을 기이하게 여겼다(4:22;8:25;9:43;11:14, 38;20:26;24:12). 이외에도 사람들이 위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 것을 설명해주는 여러가지 어휘가 사용되었다(4:15, 36;5:26). 사실 예수 안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충만히 거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기이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롬 1:20).

헤 데 마리암 판타 쉬네테레이 타 레마타 타우타 쉼발루사 엔 테 카르디아 아우테스

개역개정,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새번역,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고이 간직하고, 마음 속에 곰곰이 되새겼다.

우리말성경,19 그러나 마리아만은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습니다.

가톨릭성경,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영어NIV,19 But Mary treasured up all these things and pondered them in her heart.

영어NASB,19 But Mary treasured all these things, pondering them in her heart.

영어MSG,19 Mary kept all these things to herself, holding them dear, deep within herself.

영어NRSV,19 But Mary treasured all these words and pondered them in her heart.

헬라어신약Stephanos,19 η δε μαριαμ παντα συνετηρει τα ρηματα ταυτα συμβαλλουσα εν τη καρδια αυτης

라틴어Vulgate,19 Maria autem conservabat omnia verba haec conferens in corde suo

히브리어Modern,19 ומרים שמרה את הדברים האלה ותחשבם בלבה׃

성 경: [눅2:19]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목자들의 경배]

󰃨 지키어 생각하니라 – ‘지키어’에 해당하는 ‘쉬네테레이’는 원형 ‘쉰테레오'(*)의 미완료 시제로서 ‘보호하다’,(기억으로) ‘간직하다’의 뜻이며, ‘생각하니라’에 해당하는 ‘쉼발루사’는 원형 ‘쉼발로'(*)의 주격 분사 현재형으로 ‘숙고하다’, ‘생각하다’, ‘만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여기서 마리아는 사건 전반을 기도하는 마음과 자세로 계속해서 생각하여 그 의미를 되새겼음을 알 수 있다. 예수 탄생을 전후하여 천사로부터 전해진 메시지들이나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사실 등은 마리아로 하여금 아기 예수의 신분과 사명에 대해 거듭 상고해 보게끔 하였을 것임에 분명하다.

카이 휘페스트렢산 호이 포이메네스 옼사존테스 카이 아이눈테스 톤 데온 에피 파신 호이스 에쿠산 캉키 에이돈 카도스 엘랄레데 프로스 아우투스

개역개정,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새번역,20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본 모든 일이 자기들에게 일러주신 그대로임을 알고, 돌아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찬미하였다.

우리말성경,20 목자들은 자기들이 보고 들은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찬양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듣고 본 모든 일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영어NIV,20 The shepherds returned, glorifying and praising God for all the things they had heard and seen, which were just as they had been told.

영어NASB,20 The shepherds went back, glorifying and praising God for all that they had heard and seen, just as had been told them.

영어MSG,20 The sheepherders returned and let loose, glorifying and praising God for everything they had heard and seen. It turned out exactly the way they’d been told!

영어NRSV,20 The shepherds returned, glorifying and praising God for all they had heard and seen, as it had been told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20 και επεστρεψαν οι ποιμενες δοξαζοντες και αινουντες τον θεον επι πασιν οις ηκουσαν και ειδον καθως ελαληθη προς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20 et reversi sunt pastores glorificantes et laudantes Deum in omnibus quae audierant et viderant sicut dictum est ad illos

히브리어Modern,20 וישובו הרעים מהללים ומשבחים את האלהים על כל אשר שמעו וראו כפי אשר נאמר אליהם׃

성 경: [눅2:20]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목자들의 경배]

󰃨 목자가…찬송하며 돌아가니라 – ‘하나님께’라는 목적어를 받는 ‘영광을 돌리다'(*, 돝사조)라는 표현이 누가복음에 자주 쓰인다(5:25;7:16;13;17:15; 18:43;23:47). 그리고 본절에서와 같이 어떤 이야기가 찬양으로 끝맺는 것은 누가복음의 특징중 하나이다(24:53). 목자들은 그들이 천사들로부터 들은 바와 실제로 본 것이 똑같음을 알고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린다. 사실 아기의 탄생 자체는 평범한 보통의 사건으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기 예수는 그 비슷한 시간에 태어난 많은 아기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는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성육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카이 호테 에플레스데산 헤메라이 옼토 투 페리테메인 아우톤 카이 에클레데 토 오노마 아우투 예수스 토 클레덴 휘포 투 앙겔루 프로 투 쉴렘프데나이 아우톤 엔 테 코일리아

개역개정,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새번역,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행할 때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수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준 이름이다.

우리말성경,21 8일째 되는 날 할례 할 때가 되자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대로 그 이름을 ‘예수’라 지었습니다.

가톨릭성경,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영어NIV,21 On the eighth day, when it was time to circumcise him, he was named Jesus, the name the angel had given him before he had been conceived.

영어NASB,21 And when eight days had passed, before His circumcision, His name was then called Jesus, the name given by the angel before He was conceived in the womb.

영어MSG,21 When the eighth day arrived, the day of circumcision, the child was named Jesus, the name given by the angel before he was conceived.

영어NRSV,21 After eight days had passed, it was time to circumcise the child; and he was called Jesus, the name given by the angel before he was conceived in the womb.

헬라어신약Stephanos,21 και οτε επλησθησαν ημεραι οκτω του περιτεμειν το παιδιον και εκληθη το ονομα αυτου ιησους το κληθεν υπο του αγγελου προ του συλληφθηναι αυτον εν τη κοιλια

라틴어Vulgate,21 et postquam consummati sunt dies octo ut circumcideretur vocatum est nomen eius Iesus quod vocatum est ab angelo priusquam in utero conciperetur

히브리어Modern,21 ויהי במלאת לנער שמנה ימים וימול ויקרא שמו ישוע כשם אשר קרא לו המלאך בטרם הרה בבטן׃

성 경: [눅2:21]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할례와 헌신례]

󰃨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 성경에는 아기가 출생하기도 전에 이름이 먼저 지어진 예가 여러번 나온다. 이삭(창 17:19), 솔로몬(대상 22:9), 요시야(왕상 13:2, 왕하 22:1), 고레스(사 44:28-45:1), 세례요한(1:13,60-63), 예수(마 1:25)가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한편 예수라는 이름이 명명된것은 마리아나 요셉의 의도가 아니었다. 이것은 이미 아기 탄생 전에 천사가 지시한 바를 따른것 뿐이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견을 전혀 가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명령하신 그대로 수행했다고 하는 것은 이 일이 처음부터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진행되어온 일이라는것을 인정하며 앞으로의 일 역시 성령께서 진행시켜 나가실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카이 호테 에플레스데산 하이 헤메라이 투 카다리스무 아우톤 카타 톤 노몬 모위세오스 아네가곤 아우톤 에이스 히에로솔뤼마 파라스테사이 토 퀴리오

개역개정,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새번역,22 모세의 법대로 그들이 정결하게 되는 날이 차서, 그들은 아기를 주님께 드리려고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우리말성경,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 의식을 치를 때가 되자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가톨릭성경,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영어NIV,22 When the time of their purification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had been completed, Joseph and Mary took him to Jerusalem to present him to the Lord

영어NASB,22 And when the days for their purification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were completed, they brought Him up to Jerusalem to present Him to the Lord

영어MSG,22 Then when the days stipulated by Moses for purification were complete, they took him up to Jerusalem to offer him to God

영어NRSV,22 When the time came for their purification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they brought him up to Jerusalem to present him to the Lord

헬라어신약Stephanos,22 και οτε επλησθησαν αι ημεραι του καθαρισμου αυτων κατα τον νομον μωσεως ανηγαγον αυτον εις ιεροσολυμα παραστησαι τω κυριω

라틴어Vulgate,22 et postquam impleti sunt dies purgationis eius secundum legem Mosi tulerunt illum in Hierusalem ut sisterent eum Domino

히브리어Modern,22 וימלאו ימי טהרה לפי תורת משה ויעלהו לירושלים להעמידו לפני יהוה׃

성 경: [눅2:22]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할례와 헌신례]

󰃨 결례(潔禮)의 날 – 유대의 모든 산모는 자녀를 낳은 후 율법에서 정한 기한이 지나면 제사장에게로 가서 규례대로 예물을 드려 속죄를 받아야 했다. 그 이유는 자녀를 해산한 산모는 부정하게 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율법에서는 부정하게 된 산모와 아이들을 위해서 정결케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율법이 명시한대로 정결케 되는 기간이(남자 아이 40일, 여자 아이 80일) 찬(레12:1-5) 산모는 최종 정결 예식으로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야만 했다. 여기서 번제는 출산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마음을 표하기 위하여 드렸고 속죄제는 출산에 따른 부정(不淨)을 제거하는 뜻에서 드렸다. 이때 각 예물은 번제로 양, 속죄제는 비둘기였으나 가난할 경우 번제로 양 대신 비둘기 둘로 대치할 수 있었다(레 12:1-8). 본문에서 누가는 어머니의 정결 예식과 아기를 바치는 행위를 함께 묘사하고 있다(Marshall). 여기서 아기 예수를 위해 제사장을 찾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만, 결국 이 예수는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시다(히 3:1). 이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분이 아니며 우리의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다.

카도스 게그랖타이 엔 노모 퀴리우 호티 판 아르센 디아노이곤 메트란 하기온 토 퀴리오 클레데세타이

개역개정,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새번역,23 그것은 주님의 율법에 기록된 바 ㉡”어머니의 태를 처음 여는 사내아이마다, 주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 한 대로 한 것이요, / ㉡출 13:2; 12

우리말성경,23 이것은 주의 율법에 “첫 번째 태어나는 모든 남자 아기는 하나님께 거룩한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출13:2;출13:12

가톨릭성경,23 주님의 율법에 “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영어NIV,23 (as it is written in the Law of the Lord, “Every firstborn male is to be consecrated to the Lord”),

영어NASB,23 (as it is written in the Law of the Lord, ” EVERY firstborn MALE THAT OPENS THE WOMB SHALL BE CALLED HOLY TO THE LORD”),

영어MSG,23 as commanded in God’s Law: “Every male who opens the womb shall be a holy offering to God,”

영어NRSV,23 (as it is written in the law of the Lord, “Every firstborn male shall be designated as holy to the Lord”),

헬라어신약Stephanos,23 καθως γεγραπται εν νομω κυριου οτι παν αρσεν διανοιγον μητραν αγιον τω κυριω κληθησεται

라틴어Vulgate,23 sicut scriptum est in lege Domini quia omne masculinum adaperiens vulvam sanctum Domino vocabitur

히브리어Modern,23 כאשר כתוב בתורת יהוה כל זכר פטר רחם יקרא קדש ליהוה׃

성 경: [눅2:23]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할례와 헌신례]

󰃨 주의 율법에…아기를 주께 드리고 – 율법은 처음 난 짐승의 새끼를 여호와께 드리도록 규정하였다(출 13장;22:29;34:19;민 3:11-13;40-51;8:16-18;신 15:19).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첫 아기를 제물로 드리는 일을 대치시키기 위해 레위 지파를 성별하셨는데 이때 이스라엘 장자의 수가 레위인의 슷자의 비율에 맞지 않을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 수만큼, 즉 한 사람당 다섯 세겔씩을 속전으로 지불하도록 하셨다. 이러한 율법에 근거하여 예수께서도 장자, 곧 거룩한 자로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된다. 그러나 예수는 비록 인간의 몸을 입으셨긴 하지만 전혀 무죄하시다(히 4:15). 따라서 예수가 주께 바쳐진 것은 그가 자신을 중보자로서 주께 드림을 상징한다(딤전 2:5). 실로 예수의 생애 자체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한 희생과 헌신의 연속이었다.

카이 투 두나이 뒤시안 카타 토 에이레메논 엔 토 노모 퀴리우 쥬고스 트뤼고논 에 뒤오 노쑤스 페리스테론

개역개정,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새번역,24 또 주님의 율법에 이르신 바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드려야 한다” 한 대로,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 ㉢레 12:8

우리말성경,24 또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라고 한 주의 율법을 지켜 희생제물을 드리려는 것이었습니다. 레12:8

가톨릭성경,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영어NIV,24 and to offer a sacrifice in keeping with what is said in the Law of the Lord: “a pair of doves or two young pigeons.”

영어NASB,24 and to offer a sacrifice according to what was said in the Law of the Lord, “A PAIR OF TURTLEDOVES OR TWO YOUNG PIGEONS.”

영어MSG,24 and also to sacrifice the “pair of doves or two young pigeons” prescribed in God’s Law.

영어NRSV,24 and they offered a sacrifice according to what is stated in the law of the Lord, “a pair of turtledoves or two young pigeons.”

헬라어신약Stephanos,24 και του δουναι θυσιαν κατα το ειρημενον εν νομω κυριου ζευγος τρυγονων η δυο νεοσσους περιστερων

라틴어Vulgate,24 et ut darent hostiam secundum quod dictum est in lege Domini par turturum aut duos pullos columbarum

히브리어Modern,24 ולתת קרבן כאמור בתורת יהוה שתי תרים או שני בני יונה׃

성 경: [눅2:24]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할례와 헌신례]

󰃨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斑鳩)둘로 제사하려 – 누가는 계속해서 산모의 정결예식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반구는 산비둘기를 말한다. 이 구절은 예수께서 태어나셨던 가정환경과 그 사회적 형편을 단적으로 나타내 준다. 앞서 기술했듯이 레 12장에는 해산한 여인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물을 ‘양 한마리와 비둘기 한마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율법에 따라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으로서 그 양(量)과 방법들이 엄격하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극빈자의 경우는 정한 제물의 양대로 바치지 못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종교적으로 갈등을 갖게 될 것이므로 그 양을 줄이는 것 역시 법으로 정하여 바치게 했다. “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들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레 12:8). 이것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와 관심에서 이루어진 일들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부유한자나 가난한 자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가 하나님을 경배하여 그에게 예배를 드려야 함을 암시한다. 당시 비둘기의 가격은 어린 양의 약1/10정도에 해당하였다. 마리아와 요셉이 하나님의 율법을 신실하게 지키는 경건한 사람들이었음에 비추어볼 때 그들이 극빈층에 속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카이 이두 안드로포스 엔 엔 예루살렘 호 오노마 쉬메온 카이 호 안드로포스 후토스 디카이오스 카이 율라베스 프로스데코메노스 파라클레신 투 이스라엘 카이 프뉴마 엔 하기온 엪 아우톤

개역개정,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새번역,25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다.

우리말성경,25 당시 예루살렘에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로하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시므온에게 머물러 계셨습니다.

가톨릭성경,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영어NIV,25 Now there was a man in Jerusalem called Simeon, who was righteous and devout. He was waiting for the consolation of Israel, and the Holy Spirit was upon him.

영어NASB,25 And there was a man in Jerusalem whose name was Simeon; and this man was righteous and devout, looking for the consolation of Israel; and the Holy Spirit was upon him.

영어MSG,25 In Jerusalem at the time, there was a man, Simeon by name, a good man, a man who lived in the prayerful expectancy of help for Israel. And the Holy Spirit was on him.

영어NRSV,25 Now there was a man in Jerusalem whose name was Simeon; this man was righteous and devout, looking forward to the consolation of Israel, and the Holy Spirit rested on him.

헬라어신약Stephanos,25 και ιδου ην ανθρωπος εν ιερουσαλημ ω ονομα συμεων και ο ανθρωπος ουτος δικαιος και ευλαβης προσδεχομενος παρακλησιν του ισραηλ και πνευμα αγιον ην επ αυτον

라틴어Vulgate,25 et ecce homo erat in Hierusalem cui nomen Symeon et homo iste iustus et timoratus expectans consolationem Israhel et Spiritus Sanctus erat in eo

히브리어Modern,25 והנה איש היה בירושלים ושמו שמעון והוא איש צדיק וחסיד מחכה לנחמת ישראל ורוח הקדש היה עליו׃

성 경: [눅2:25]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 시므온 – 이러한 이름은 유대 사회에서는 매우 보편적이고 흔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혹자들은 이 구절의 시므온은 잘 알려진 유대랍비 힐렐의 아들이요 가말리엘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며 그가 A.D. 13년에 산헤드린의 회장이 되었다고 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막연한 추측일 뿐 정확한 자료나 확증이 없다. 어쨌든 시므온은 평생을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왔으며 더욱이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살아왔다. 메시야가 바로 그의 위로의 근원인 것이다. 이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며, 우리가 언제 재림하실지 알 수 없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경건된 삶을 준비하여야 함을 보여 주고 있다(마 25:1-13).

󰃨 의롭고 경건하여 – 1:5, 6에서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스벱이 소개될 때처럼 의로음과 경건함이 강조되고 있다. ‘의롭고’에 해당하는 ‘디카이오스'(*)는 ‘공정한’, ‘정의로운’등의 뜻을 나타내며 하나님과 신정 사회(神政社會)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따라서 ‘의로운’ 자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리고 ‘경건하여’에 해당하는 ‘율라베스'(*)는 ‘경건한’, ‘독실한’ 등의 의미외에 ‘주의’, ‘신중함’ 혹은 ‘두려워하다’, ‘경계하다’ 등을 뜻하며, 율법의 요구를 면밀하고 세심하게 충족시키고자 행동거지를 주의하는 독실한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잘 사용된다. 따라서 시므온이 얼마나 율법을 공경하며 준수했는가를 알 수 있다.

󰃨 이스라엘의 위로 –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받는 위로를 가리킨다(사 40-55장). 말라기선지 이후 약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영감받은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시므온은 이러한 소위 오랜 침묵의 시대에 살면서도 메시야의 도래를 확신하며 끈기있게 기다리는 믿음을 소유한 자였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다. 우리는 눈앞에 전개되는 타락과 불신의 흐름에 휩쓸려갈 것이 아니라 역사의 끝까지 투시(透視)하는 신령한 눈을 떠서 매일 매일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결단하고 인내하는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카이 엔 아우토 케크레마티스메논 휘포 투 프뉴마토스 투 하기우 메 이데인 다나톤 프린 에 안 이데 톤 크리스톤 퀴리우

개역개정,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새번역,26 그는 주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 ㉣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다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함

우리말성경,26 그에게는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영어NIV,26 It had been revealed to him by the Holy Spirit that he would not die before he had seen the Lord’s Christ.

영어NASB,26 And it had been revealed to him by the Holy Spirit that he would not see death before he had seen the Lord’s Christ.

영어MSG,26 The Holy Spirit had shown him that he would see the Messiah of God before he died.

영어NRSV,26 It had been revealed to him by the Holy Spirit that he would not see death before he had seen the Lord’s Messiah.

헬라어신약Stephanos,26 και ην αυτω κεχρηματισμενον υπο του πνευματος του αγιου μη ιδειν θανατον πριν η ιδη τον χριστον κυριου

라틴어Vulgate,26 et responsum acceperat ab Spiritu Sancto non visurum se mortem nisi prius videret Christum Domini

히브리어Modern,26 ולו נגלה ברוח הקדש כי לא יראה מות עד ראותו את משיח יהוה׃

성 경: [눅2:26]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 ‘지시를 받았더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크레마티스메논'(*)은 ‘사건을 다루다’, ‘계시를 전달하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본 구절에서 이 단어는 계시에 의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나타낸다. 메시야를 대망하며 그의 도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경건한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시므온은 오랜 세월을 메시야의 도래를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계시의 전달자인 성령을 통해 의롭고 경건한 시므온에게 메시야께서 오실 것을 보리라는 계시를 허락하셨다.

카이 엘덴 엔 토 프뉴마티 에이스 토 히에론 카이 엔 토 에이사가게인 투스 고네이스 토 파이디온 예순 투 포이에사이 아우투스 카타 토 에이디스메논 투 노무 페리 아우투

개역개정,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새번역,27 그가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마침 아기의 부모가 율법이 정한 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우리말성경,27 시므온이 성령에 이끌려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갈 때 아기의 부모가 율법의 규정대로 행하기 위해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가톨릭성경,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영어NIV,27 Moved by the Spirit, he went into the temple courts. When the parents brought in the child Jesus to do for him what the custom of the Law required,

영어NASB,27 And he came in the Spirit into the temple; and when the parents brought in the child Jesus, to carry out for Him the custom of the Law,

영어MSG,27 Led by the Spirit, he entered the Temple. As the parents of the child Jesus brought him in to carry out the rituals of the Law,

영어NRSV,27 Guided by the Spirit, Simeon came into the temple; and when the parents brought in the child Jesus, to do for him what was customary under the law,

헬라어신약Stephanos,27 και ηλθεν εν τω πνευματι εις το ιερον και εν τω εισαγαγειν τους γονεις το παιδιον ιησουν του ποιησαι αυτους κατα το ειθισμενον του νομου περ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27 et venit in Spiritu in templum et cum inducerent puerum Iesum parentes eius ut facerent secundum consuetudinem legis pro eo

히브리어Modern,27 ויבא ברוח אל המקדש ויהי כאשר הביאו הוריו את הנער ישוע לעשות עליו כמשפט התורה׃

성 경: [눅2:27]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 성령의 감동으로(*, 엔 토 프뉴마티) – 이 구절은 시므온이 계속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결국 시므온이 성건에 들어오게 된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고 마리아 부처가 아기예수를 성전으로 데려올 때 그를 맞이하도록 시므온을 준비시킨 분도 바로 성령이셨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주도면밀(周到綿密)하고 정확하다. 오랜 세월을 기다림으로 보낸 나이먹은 시므온은 이제 계시의 말씀이 완성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 부모 – 법적인 차원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부모였다.

카이 아우토스 에뎈사토 아우토 에이스 타스 앙칼라스 카이 율로게센 톤 데온 카이 에이펜

개역개정,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새번역,28 시므온이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우리말성경,28 그러자 시므온이 아기를 팔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영어NIV,28 Simeon took him in his arms and praised God, saying:

영어NASB,28 then he took Him into his arms, and blessed God, and said,

영어MSG,28 Simeon took him into his arms and blessed God:

영어NRSV,28 Simeon took him in his arms and praised God, saying,

헬라어신약Stephanos,28 και αυτος εδεξατο αυτο εις τας αγκαλας αυτου και ευλογησεν τον θεον και ειπεν

라틴어Vulgate,28 et ipse accepit eum in ulnas suas et benedixit Deum et dixit

히브리어Modern,28 ויקחהו על זרעותיו ויברך את האלהים ויאמר׃

성 경: [눅2:28]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 찬송하여 – 아기 예수가 나타났을 때 시므온은 그를 알아보고 안아 하나님께 찬양드렸다. 시므온은 율법에 따라 결례와 번제와 속전을 드리러오는 많은 사람, 많은 아이 가운데(그 중에는 품위있고 고상해 보이는 부모들이 데리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시골 출신의 요셉과 마리아가 데리고 있는 예수를 보자 곧 그가 메시야임을 알게되었다. 이는 오직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임에 분명하다. ‘찬송하여’에 해당하는 ‘율로게센'(*)은 ‘좋게 이야기 하다’, ‘축복하다'(bless, KJV) 등의 뜻을 나타낸다.

뉜 아폴뤼에이스 톤 둘론 수 데스포타 카타 토 레마 수 엔 에이레네

개역개정,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새번역,29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

우리말성경,29 “다스리시는 주여, 이제 주께서는 주의 종이 평안히 가게 해 주십니다.

가톨릭성경,29 “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영어NIV,29 “Sovereign Lord, as you have promised, you now dismiss your servant in peace.

영어NASB,29 “Now Lord, You are releasing Your bond-servant to depart in peace, According to Your word;

영어MSG,29 God, you can now release your servant; release me in peace as you promised.

영어NRSV,29 “Master, now you are dismissing your servant in peace, according to your word;

헬라어신약Stephanos,29 νυν απολυεις τον δουλον σου δεσποτα κατα το ρημα σου εν ειρηνη

라틴어Vulgate,29 nunc dimittis servum tuum Domine secundum verbum tuum in pace

히브리어Modern,29 עתה תפטר את עבדך כדברך אדני בשלום׃

호티 에이돈 호이 옾달모이 무 투 소테리온 수

개역개정,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새번역,30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우리말성경,30 제 두 눈으로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가톨릭성경,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영어NIV,30 For my eyes have seen your salvation,

영어NASB,30 For my eyes have seen Your salvation,

영어MSG,30 With my own eyes I’ve seen your salvation;

영어NRSV,30 for my eyes have seen your salvation,

헬라어신약Stephanos,30 οτι ειδον οι οφθαλμοι μου το σωτηριον σου

라틴어Vulgate,30 quia viderunt oculi mei salutare tuum

히브리어Modern,30 כי ראו עיני את ישועתך׃

성 경: [눅2:30]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 시므온은 히브리적 표현법을 사용하여 자신이 메시야를 보았다고 말하지 않고 자신의 눈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말한다. 이는 누가복음의 한 특징으로서 이미 나타난 바와 같이(1:69,71,77) 예수를 본다는 것은 예수 안에서 구원이 구체화된 것(embodied)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시므온이 예수로 말미암아 구현될 인간구원의 역사를 예견하였다는 의미이다. 사실 예수 탄생 자체가 이미 인류 구원을 위한 위대한 사역의 첫 발걸음이기 때문에 그 사역은 벌써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시므온은 구약시대 동안 계속해서 예언되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던 메시야를 맞이하는 구약시대를 마감하는 인물이요, 또 메시야를 맞이함으로 신약시대를 열도록 길을 열어주는 서언적(序言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갓난아기의 모습인 예수를 보고서 그토록 즐겁고 평안한 심정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정도로 강력한 영향을 시므온이 받았다면, 구원의 실제적 내용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된 이 복음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얼마나 더 큰 기쁨과 확신을 나타내어야 하겠는가!

호 헤토이마사스 카타 프로소폰 판톤 톤 라온

개역개정,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새번역,31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우리말성경,31 이 구원은 주께서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신 것으로

가톨릭성경,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영어NIV,31 which you have prepared in the sight of all people,

영어NASB,31 Which You have prepared in the presence of all peoples,

영어MSG,31 it’s now out in the open for everyone to see:

영어NRSV,31 which you have prepared in the presence of all peoples,

헬라어신약Stephanos,31 ο ητοιμασας κατα προσωπον παντων των λαων

라틴어Vulgate,31 quod parasti ante faciem omnium populorum

히브리어Modern,31 אשר הכינות לפני כל העמים׃

성 경: [눅2:31]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 만민 앞에 –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팔에 안고서 세상 끝에까지 미칠 그분의 영광과 은혜를 찬양하고 있다. 이는 구원의 복음이 이스라엘의 지경을 넘어 세게 만방에로 확장될 것임을 내다보는 예언자적 통찰력이다. 한편 이방인의 구원 혹은 복음의 보편성이라는 주제는 누가복음에서 강조된 사실들 중 하나이며(15장), 구약 속에 이미 태동되어 있던 구속사의 한 주제였었다(사 43:5,6;45:6;49:12;미 4:1,2;슥 8:20-23). 이점에 관해서는 마8:1-17주제 강해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관계’를 보라.

포스 에이스 아포칼륖신 에드논 카이 돜산 라우 수 이스라엘

개역개정,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새번역,32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우리말성경,32 이방 사람에게는 계시의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가톨릭성경,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영어NIV,32 a light for revelation to the Gentiles and for glory to your people Israel.”

영어NASB,32 A LIGHT OF REVELATION TO THE GENTILES, And the glory of Your people Israel.”

영어MSG,32 A God-revealing light to the non-Jewish nations, and of glory for your people Israel.

영어NRSV,32 a light for revelation to the Gentiles and for glory to your people Israel.”

헬라어신약Stephanos,32 φως εις αποκαλυψιν εθνων και δοξαν λαου σου ισραηλ

라틴어Vulgate,32 lumen ad revelationem gentium et gloriam plebis tuae Israhel

히브리어Modern,32 אור לגלות עיני הגוים ותפארת ישראל עמך׃

성 경: [눅2:32]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 빛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또한 그의 온전히 의로우신 성품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시 27:1;요 1:5;딤전 6:16) 또 하나님의 계시와(시 34:5) 생명의(요 1:4) 상징으로서 언급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사 하나님 나라의 복된 소식을 이방에 전파할 ‘이방의 빛’으로 삼으셨다고 되어있다(사 42:6). 이러한 말씀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성취를 보게 되었다. 예수는 그 가운데 조금의 어둠도 없으신 참빛로서 인종과 신분 등 모든 인간적 장벽(障壁)을 뛰어넘어 모든 이들에게 비추이신다(요 1:9). 그리고 예수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도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셨고(마 5:14) 그 빛을 사람들 앞에 비취게 하라고 명하셨다(마 5:16).

󰃨 주의 백성…영광이니이다 – 예수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다. 왜냐하면 온 세계 만민을 위한 구원의 길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를 통해 열렸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이스라엘은 이방세력의 지배 하에서 민족적 자존심을 잃은 상태였는데, 이제 메시야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면모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특권을 바로 깨닫기는 커녕 오히려 메시야를 배척하고 마침내 십자가 형틀에로 내몰아 버렸다.

카이 엔 호 파테르 아우투 카이 헤 메테르 다우마존테스 에피 토이스 랄루메노이스 페리 아우투

개역개정,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새번역,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므온이 아기에 대하여 하는 이 말을 듣고서, 이상하게 여겼다.

우리말성경,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에 대한 이 말에 무척 놀랐습니다.

가톨릭성경,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영어NIV,33 The child’s father and mother marveled at what was said about him.

영어NASB,33 And His father and mother were amazed at the things which were being said about Him.

영어MSG,33 Jesus’ father and mother were speechless with surprise at these words.

영어NRSV,33 And the child’s father and mother were amazed at what was being said about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3 και ην ιωσηφ και η μητηρ αυτου θαυμαζοντες επι τοις λαλουμενοις περ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33 et erat pater eius et mater mirantes super his quae dicebantur de illo

히브리어Modern,33 ויוסף ואמו תמהים על הדברים הנאמרים עליו׃

성 경: [눅2:33]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 기이히 여기더라 – 마리아와 요셉이 기이히 여기며 놀란 것은 단지 시므온의 찬송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보다는 천사들, 목자들, 동방박사들, 엘리사벳, 사가랴 그리고 시므온 등 사방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아기 예수에 관한 증거가 나타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증거들을 접하게 됨으로써 마리아 부처는 애초 그들에게 임했던 천사들의 계시를 거듭 상고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자신들의 이해를 보다 깊게 다져 나갔을 것이다.

카이 율로게센 아우투스 쉬메온 카이 에이펜 프로스 마리암 텐 메테라 아우투 이두 후토스 케이타이 에이스 프토신 카이 아나스타신 폴론 엔 토 이스라엘 카이 에이스 세메이온 안틸레고메논

개역개정,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새번역,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므온이 아기에 대하여 하는 이 말을 듣고서, 이상하게 여겼다.

우리말성경,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에 대한 이 말에 무척 놀랐습니다.

가톨릭성경,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영어NIV,33 The child’s father and mother marveled at what was said about him.

영어NASB,33 And His father and mother were amazed at the things which were being said about Him.

영어MSG,33 Jesus’ father and mother were speechless with surprise at these words.

영어NRSV,33 And the child’s father and mother were amazed at what was being said about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3 και ην ιωσηφ και η μητηρ αυτου θαυμαζοντες επι τοις λαλουμενοις περ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33 et erat pater eius et mater mirantes super his quae dicebantur de illo

히브리어Modern,33 ויוסף ואמו תמהים על הדברים הנאמרים עליו׃

성 경: [눅2:34]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 많은 사람의…세움을 입었고 – 이 구절은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도 하는 반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데 기초석이 되기도 하는 돌(사 8:14;28:16)에 관한 사상을 반영한다. 예수를 배반하고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예수께서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게 하며 멸망에 이르게하실 것이요 또 그를 따르는 자들은 세움을 입고 하나님 나라의 초석(礎石)이 되게 하실 것이다. 또한 예수는 백성의 구원자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박해와 곤욕을 치러야만 될 것으로 예언되었다. 이는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부터 받으셨던 각종 모욕과 비방(4:29;22:63-65;23:11, 34-39)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예정된 것(시 32:6-8;사 50:6;53:4-12)임을 증거해 준다. 시므온의 이러한 예언은 엘리사벳의 노래나(:42-45) 사가랴의 예언(1:68-79) 그리고 천사들의 찬송과는(2:10-14) 반대로 예수께 드리워질 어두운 면을 증거한다. 예수의 영광에 관한 기쁨의 증거와 더불어 이러한 비탄스러운 증거는 앞으로 전개될 메시야적 사역의 진면목이 어떠한지를 암시해 준다.

카이 수 데 아우테스 텐 프쉬켄 디엘류세타이 롬파이아 호포스 안 아포칼륖도신 에크 폴론 카르디온 디알로기스모이

개역개정,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새번역,35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말성경,35 칼이 당신의 마음도 찌를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영어NIV,35 so that the thoughts of many hearts will be revealed. And a sword will pierce your own soul too.”

영어NASB,35 and a sword will pierce even your own soul–to the end that thoughts from many hearts may be revealed.”

영어MSG,35 the pain of a sword-thrust through you– But the rejection will force honesty, as God reveals who they really are.

영어NRSV,35 so that the inner thoughts of many will be revealed–and a sword will pierce your own soul too.”

헬라어신약Stephanos,35 και σου δε αυτης την ψυχην διελευσεται ρομφαια οπως αν αποκαλυφθωσιν εκ πολλων καρδιων διαλογισμοι

라틴어Vulgate,35 et tuam ipsius animam pertransiet gladius ut revelentur ex multis cordibus cogitationes

히브리어Modern,35 וגם בנפשך תחתר חרב למען תגלינה מחשבות לבב רבים׃

성 경: [눅2:35]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 ‘칼’을 나타내는 헬라어 ‘롬파이아(*)는 드라키아인들의 대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통 큰 칼을 의미한다. 여기서 마리아는 ‘여인 중에 가장 복이 있는 자'(1:42) 곧 메시야의 어머니라는 영광과는 또 달리 ‘슬픔의 어머니'(Mater dolorosa)로 묘사되고 있다. 한 어머니로서의 마리아는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나사렛에서 함께 보낸 소년 시절과 청년시절이 가장 행복된 나날이었을 것이다.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됨과 그의 때를 같이하여 대두한 유대교 지도가들의 핍박은 날이 갈수록 심각성을 띠어 갔으며, 이로 인해 혈육의 정을 떨칠 수 없었던 마리아로서는 예수의 장래에 대한 불길한 예감으로 노심초사(勞心焦思)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엄청난 고통을 받을 때 큰 칼이 찌르는 것보다 더한 찢어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었을 것이다.

󰃨 드러내려 함이니 – 여기서 헬라어 ‘아포칼뤼프도신'(*)은 ‘베일이 벗겨지는’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을 행한다고 하는 자들의 위선과 허위가 드러나지 않은 채 그대로 숨기워 있었지만 이제는 예수를 통해 사실 그대로 드러날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사역과 더불어 그를 섬기는 자들과 대적하는 자들이 명확하게 구분될 것이다.

카이 엔 한나 프로페티스 뒤가테르 파누엘 에크 퓔레스 아세르 하우테 프로베베퀴이아 엔 헤메라이스 폴라이스 제사사 메타 안드로스 에테 헾타 아포 테스 파르데니아스 아우테스

개역개정,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새번역,36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로 ㉤안나라는 여예언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많았다. 그는 처녀 시절을 끝내고 일곱 해를 남편과 함께 살고, / ㉤그, ‘한나’

우리말성경,36 또 아셀 지파의 바누엘의 딸인 안나라는 여자 예언자도 있었습니다. 안나는 나이가 많았는데 결혼해서 남편과 7년 동안 살다가

가톨릭성경,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영어NIV,36 There was also a prophetess, Anna, the daughter of Phanuel, of the tribe of Asher. She was very old; she had lived with her husband seven years after her marriage,

영어NASB,36 And there was a prophetess, Anna the daughter of Phanuel, of the tribe of Asher. She was advanced in years and had lived with her husband seven years after her marriage,

영어MSG,36 Anna the prophetess was also there, a daughter of Phanuel from the tribe of Asher. She was by now a very old woman. She had been married seven years

영어NRSV,36 There was also a prophet, Anna the daughter of Phanuel, of the tribe of Asher. She was of a great age, having lived with her husband seven years after her marriage,

헬라어신약Stephanos,36 και ην αννα προφητις θυγατηρ φανουηλ εκ φυλης ασηρ αυτη προβεβηκυια εν ημεραις πολλαις ζησασα ετη μετα ανδρος επτα απο της παρθενιας αυτης

라틴어Vulgate,36 et erat Anna prophetissa filia Phanuhel de tribu Aser haec processerat in diebus multis et vixerat cum viro suo annis septem a virginitate sua

히브리어Modern,36 ותהי שם חנה אשה נביאה בת פנואל משבט אשר והיא באה בימים וחיתה עם בעלה שבע שנים אחרי בתוליה׃

성 경: [눅2:36]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안나의 예언]

󰃨 아셀 지파 비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 – 시므온의 소개와는 달리 안나의 경우는 지파명까기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시므온의 경우는 구체적인 신분을 확인할 수가 없었으나 안나는 삶의 배경이 기술되었다. 아셀은 야곱의 여덟번째 아들이었다(창 30:13). 예수 탄생 당시는 이스라엘 민족이 주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로 구성되어 있어 나머지 10지파의 행방은 불투명했다. 이는 바벧론 포로지로부터 귀환(歸還)한 자들 중 거의가 이 두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었던 연유도 있겠는데, 안나도 바로 다른 지파에 속한 소수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이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자신들의 족보를 보관하고 그 잃어버린 지파 백성의 후손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한편 ‘바누엘’은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고 그 곳에 붙인 ‘브니엘’ 이라는(창 32:30) 지명에서 나온 이름이다. 따라서 히브리식으로는 ‘브니엘’이며 그 뜻은 ‘하나님의 얼굴’이다. 그리고 ‘안나’는 히브리어의 ‘한나'(*)에 해당한다(삼상 1:2). 즉 이 이름은 사사이며 제사장이고 선지자였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이름과 동일하다. 그녀는 구약 성경의 드보라(삿 4:4)와 훌다(왕하 22:14)와 같이 휼릉한 여성 예언자였다.

카이 아우테 케라 헤오스 에톤 옥도에콘타 테싸론 헤 우크 아피스타토 투 히에루 네스테이아이스 카이 데에세신 라트류우사 뉰타 카이 헤메란

개역개정,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새번역,37 과부가 되어서,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왔다.

우리말성경,37 그 후 84세가 되도록 과부로 지냈습니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가톨릭성경,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영어NIV,37 and then was a widow until she was eighty-four. She never left the temple but worshiped night and day, fasting and praying.

영어NASB,37 and then as a widow to the age of eighty-four. She never left the temple, serving night and day with fastings and prayers.

영어MSG,37 and a widow for eighty-four. She never left the Temple area, worshiping night and day with her fastings and prayers.

영어NRSV,37 then as a widow to the age of eighty-four. She never left the temple but worshiped there with fasting and prayer night and day.

헬라어신약Stephanos,37 και αυτη χηρα ως ετων ογδοηκοντατεσσαρων η ουκ αφιστατο απο του ιερου νηστειαις και δεησεσιν λατρευουσα νυκτα και ημεραν

라틴어Vulgate,37 et haec vidua usque ad annos octoginta quattuor quae non discedebat de templo ieiuniis et obsecrationibus serviens nocte ac die

히브리어Modern,37 והיא אלמנה כארבע ושמנים שנה ולא משה מן המקדש ובצום ובתחנונים עבדה את האלהים לילה ויום׃

성 경: [눅2:37]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안나의 예언]

󰃨 과부 된 지 팔십 사 년이라…기도함으로 섬기더니 – 당시 유대 사회의 조혼 풍습에 비추어 볼 때 안나는 14세를 전후하여 결혼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안나의 나이는 14+7+84=105세 쯤 되는 셈이다. 이처럼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긴’여인이었다. 이는 그녀가 철저한 헌신의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이스라엘의 소망 곧 메시야를 대망하며 기도했던 여인임을 나타내준다. 아마 그녀는 오직 메시야만이 그녀와 이스라엘의 가슴에 수십년 동안 맺혀있던 응어리를 풀어주고 위로해주실 수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한편, 안나는 성전에서 시므온의 송가(頌歌)를 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송가를 통해서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그 아기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확신하였다.

카이 아우테 테 호라 에피스타사 안도몰로게이토 토 데오 카이 엘랄레이 페리 아우투 파신 토이스 프로스데코메노이스 뤼트로신 예루살렘

개역개정,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새번역,38 바로 이 때에 그가 다가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다.

우리말성경,38 바로 그때 안나가 그들에게 다가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간절히 고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아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가톨릭성경,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영어NIV,38 Coming up to them at that very moment, she gave thanks to God and spoke about the child to all who were looking forward to the redemption of Jerusalem.

영어NASB,38 At that very moment she came up and began giving thanks to God, and continued to speak of Him to all those who were looking for the redemption of Jerusalem.

영어MSG,38 At the very time Simeon was praying, she showed up, broke into an anthem of praise to God, and talked about the child to all who were waiting expectantly for the freeing of Jerusalem.

영어NRSV,38 At that moment she came, and began to praise God and to speak about the child to all who were looking for the redemption of Jerusalem.

헬라어신약Stephanos,38 και αυτη αυτη τη ωρα επιστασα ανθωμολογειτο τω κυριω και ελαλει περι αυτου πασιν τοις προσδεχομενοις λυτρωσιν εν ιερουσαλημ

라틴어Vulgate,38 et haec ipsa hora superveniens confitebatur Domino et loquebatur de illo omnibus qui expectabant redemptionem Hierusalem

히브리어Modern,38 ותקם בשעה ההיא ותגש להדות ליהוה ותדבר עליו באזני כל המחכים לגאלה בירושלים׃

성 경: [눅2:38]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안나의 예언]

󰃨 하나님께 감사하고 – ‘감사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도몰로게이토'(*)’는 ‘찬양하다’, ‘감사하다’ 등의 뜻외에 ‘단호하게 신앙을 고백하다’, ‘무엇인가를 믿음으로 고백하다’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안나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신앙 고백적인 믿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안나의 감사는 순종 및 메시지의 선포와 결합되고 있다.

󰃨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 이 구절은 사가랴가 이스라엘의 속량(1:68)을 노래하고, 시므온이 이스라엘의 위로(25절)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사 52:9에 나타난 메시야의 예루살렘 구원에 대한 대망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사실 ‘구속’은 예수께서 이룩하실 신적구원 개념을 나타내는 말이다(롬 3:24;엡 1:7;골 1:14).

카이 호스 에펠레산 판타 타 카타 톤 노몬 퀴리우 에페스트렢산 에이스 텐 갈릴라이안 에이스 폴린 헤아우톤 나자렏

개역개정,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새번역,39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에 규정된 모든 일을 마친 뒤에, 갈릴리의 자기네 고향 동네 나사렛에 돌아왔다.

우리말성경,39 요셉과 마리아는 주의 율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난 뒤 갈릴리에 있는 자기 마을 나사렛으로 돌아왔습니다.

가톨릭성경,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영어NIV,39 When Joseph and Mary had done everything required by the Law of the Lord, they returned to Galilee to their own town of Nazareth.

영어NASB,39 When they had performed everything according to the Law of the Lord, they returned to Galilee, to their own city of Nazareth.

영어MSG,39 When they finished everything required by God in the Law, they returned to Galilee and their own town, Nazareth.

영어NRSV,39 When they had finished everything required by the law of the Lord, they returned to Galilee, to their own town of Nazareth.

헬라어신약Stephanos,39 και ως ετελεσαν απαντα τα κατα τον νομον κυριου υπεστρεψαν εις την γαλιλαιαν εις την πολιν αυτων ναζαρετ

라틴어Vulgate,39 et ut perfecerunt omnia secundum legem Domini reversi sunt in Galilaeam in civitatem suam Nazareth

히브리어Modern,39 ויכלו את הכל כפי תורת יהוה וישובו הגלילה אל נצרת עירם׃

성 경: [눅2:39]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안나의 예언]

󰃨 주의 율법을 좇아 – 누가는 예수의 부모들이 율법이 명하는 바를 열심히 준수하였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본장 내에서만 하더라도 예수의 부모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했었는가 여러차례 강조되고 있다. 22절(모세의 법대로), 23절(주의 율법에 쓴 바), 24절(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27절(율법의 전례대로 미루어 보건대 마리아 부처는 경건한 삶을 사는 유대인의 전형(典型)이었다. 본절은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율법의 마침이 되시고(롬 10:4) 율법 아래 있는 모든 자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갈4:4) 친히 율법을 지키셨음을 시사한다.

󰃨 갈릴리로…나사렛에 이르니라 – 누가는 마태복음 2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동방 박사의 방문이나 애굽으로의 피난 기사를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그것은 누가가 마태의 기사를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마태는 또 하나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실례를 들기 위해서 그 기사의 내용을 넣었겠지만 이방인을 포함한 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빌어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에 대해서 기술하려고 하는 누가에게는 그러한 내용이 그다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가는 예수의 부모가 율법을 충실히 지키고 예수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고 정상적인 어린 아이로 성장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40, 52).

토 데 파이디온 에윜사넨 카이 에크라타이우토 플레루메논 소피아 카이 카리스 데우 엔 엪 아우토

개역개정,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새번역,40 아기는 자라나면서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 차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하였다.

우리말성경,40 아이는 점점 자라 가며 강해지고 지혜가 충만했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영어NIV,40 And the child grew and became strong; he was filled with wisdom, and the grace of God was upon him.

영어NASB,40 The Child continued to grow and become strong, increasing in wisdom; and the grace of God was upon Him.

영어MSG,40 There the child grew strong in body and wise in spirit. And the grace of God was on him.

영어NRSV,40 The child grew and became strong, filled with wisdom; and the favor of God was upon him.

헬라어신약Stephanos,40 το δε παιδιον ηυξανεν και εκραταιουτο πνευματι πληρουμενον σοφιας και χαρις θεου ην επ αυτο

라틴어Vulgate,40 puer autem crescebat et confortabatur plenus sapientia et gratia Dei erat in illo

히브리어Modern,40 ויגדל הנער ויחזק ברוח וימלא חכמה וחסד אלהים עמו׃

성 경: [눅2:40]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안나의 예언]

󰃨 아기가 자라며…그 위에 있더라 – 이 구절은 세례 요한의 어릴적 성장 모습을 묘사한 1:80의 내용과 비교된다. 그리고 52절은 이 구절에 대한 보충 내용이다. 이것은 예수가 12살이 되기(42절) 이전의 이야기이다. ‘자라며 강하여지고’라는 표현은 신체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범한 아이와 같이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지혜가 충족하며’라는 표현은 정신적 성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는 표현은 영적 성장을 뜻하는 것으로 예수께서 어릴 때부터 지혜와 은혜를 가진 인물로 세례요한보다도 훨씬 탁월했음을 의미한다.

카이 에포류온토 호이 고네이스 아우투 캍 에토스 에이스 예루살렘 테 헤오르테 투 파스카

개역개정,4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새번역,41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갔다. / ㉥출 12:13; 21-28을 볼 것

우리말성경,41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수의 부모는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가톨릭성경,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영어NIV,41 Every year his parents went to Jerusalem for the Feast of the Passover.

영어NASB,41 Now His parents went to Jerusalem every year at the Feast of the Passover.

영어MSG,41 Every year Jesus’ parents traveled to Jerusalem for the Feast of Passover.

영어NRSV,41 Now every year his parents went to Jerusalem for the festival of the Passover.

헬라어신약Stephanos,41 και επορευοντο οι γονεις αυτου κατ ετος εις ιερουσαλημ τη εορτη του πασχα

라틴어Vulgate,41 et ibant parentes eius per omnes annos in Hierusalem in die sollemni paschae

히브리어Modern,41 ועלו הוריו ירושלים שנה בשנה לחג הפסח׃

성 경: [눅2:41]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 그 부모가 해마다…예루살렘으로 가더니 – 예수의 부모가 율법을 성실히 이행하는 경건한 유대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당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 의식은 온갖 위선과 타락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구약적 차원에서 지켜야 할 율법 의식들은 여전히 중요한 구속력(拘束力)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경건한 자들이 그러한 의식에 맞춰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는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본분이었다. 율법에는 유대 성인 남자들이 연례 행사로서 삼대 주요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장막절)을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지키도록 명시되어 있다(신 16:16). 그러나 바벧론 포로 시대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각처로 흩어지게 되어 이행사에 매년 모두 참석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은 적어도 유월절 행사에만은 꼭 참석하려고 노력하였다. 한편 모세의 율법에는 이 행사에 남자들만 참석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나 유대 랍비 힐렐(Hillel)은 여자들도 축제에 참석하도록 권고하여 그렇게 지켜졌다. 한편 우리는 여기서 어린 예수가 자란 가정의 신앙적 배경을 살필수가 있다. 어린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영적 및 인격적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며 어려서부터 의롭고 경건한 삶에 훈련되어져 갔던 것이다.

카이 호테 에게네토 에톤 도데카 아나바이논톤 아우톤 카타 토 에도스 테스 헤오르테스

개역개정,42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새번역,42 예수가 열두 살이 되는 해에도, 그들은 절기 관습을 따라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 ㉦출 12:13; 21-28을 볼 것

우리말성경,42 예수께서 열두 살이 되던 해에도 그들은 관례에 따라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가톨릭성경,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영어NIV,42 When he was twelve years old, they went up to the Feast, according to the custom.

영어NASB,42 And when He became twelve, they went up there according to the custom of the Feast;

영어MSG,42 When he was twelve years old, they went up as they always did for the Feast.

영어NRSV,42 And when he was twelve years old, they went up as usual for the festival.

헬라어신약Stephanos,42 και οτε εγενετο ετων δωδεκα αναβαντων αυτων εις ιεροσολυμα κατα το εθος της εορτης

라틴어Vulgate,42 et cum factus esset annorum duodecim ascendentibus illis in Hierosolymam secundum consuetudinem diei festi

히브리어Modern,42 ויהי בהיותו בן שתים עשרה שנה ויעלו ירושלים כמשפט החג׃

카이 텔레이오산톤 타스 헤메라스 엔 토 휘포스트레페인 아우투스 휘페메이넨 예수스 호 파이스 엔 예루살렘 카이 우크 에그노산 호이 고네이스 아우투

개역개정,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새번역,43 그런데 그들이 절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의 부모는 이것을 모르고,

우리말성경,43 기간이 끝나 그 부모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가톨릭성경,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영어NIV,43 After the Feast was over, while his parents were returning home, the boy Jesus stayed behind in Jerusalem, but they were unaware of it.

영어NASB,43 and as they were returning, after spending the full number of days, the boy Jesus stayed behind in Jerusalem. But His parents were unaware of it,

영어MSG,43 When it was over and they left for home, the child Jesus stayed behind in Jerusalem, but his parents didn’t know it.

영어NRSV,43 When the festival was ended and they started to return, the boy Jesus stayed behind in Jerusalem, but his parents did not know it.

헬라어신약Stephanos,43 και τελειωσαντων τας ημερας εν τω υποστρεφειν αυτους υπεμεινεν ιησους ο παις εν ιερουσαλημ και ουκ εγνω ιωσηφ και η μητηρ αυτου

라틴어Vulgate,43 consummatisque diebus cum redirent remansit puer Iesus in Hierusalem et non cognoverunt parentes eius

히브리어Modern,43 וימלאו את הימים וישובו ויותר ישוע הנער בירושלים ויוסף ואמו לא ידעו׃

성 경: [눅2:43]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 그 날들을 마치고 – 유월절과 무교절은 모두 7일 동안 계속되었다(출 12:15;레 23:6-8;신 16:3). 그리고 이 절기를 위해 예루살렘을 찾은 순례자들은 적어도 이틀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 아이 예수는…알지 못하고 – 예수는 그의 부모들보다 예루살렘에 더 오래 머물러 있었다. 당시 열 두 살의 나이는 결코 어리게만 간주되지 않았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부모는 예수의 움직임을 일일이 살피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모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 어중간한 나이였던 예수는 여인들과 어린 아이들의 행렬이나 남자 어른들과 제법 나이가 든 소년들의 행렬중 어느 한 곳에 끼여 여행했을 것이다. 이 행렬이 이처럼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면 요셉은 예수가 마리아와 함께 여행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마리아는 예수가 요셉과 함께 여행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서로가 착각한 사이에 하루가 끝나갈 무렵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한편 예수는 그의 부모들이 찾고 있을 시간에 성전에서 최고 석학(碩學)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일과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은 그를 게속해서 엉뚱한 곳에서 찾아 해맨다. 만일 그의 부모들이 예수의 메시야성을 계속해서 염두에두고 그의 신성을 깨닫고 있었다면 그들은 예수가 보이지 않았을 때 바로 성전에 가서 찾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 그의 아버지의 집은 바로 성전이었기 때문이다.

노미산테스 데 아우톤 에이나이 엔 테 쉬노디아 엘돈 헤메라스 호돈 카이 아네케툰 아우톤 엔 토이스 슁게뉴신 카이 토이스 그노스토이스

개역개정,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새번역,44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생각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 뒤에 비로소 그들의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그를 찾았으나,

우리말성경,44 그들은 예수가 일행 속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하룻길을 가다가 그제야 친척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예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성경,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영어NIV,44 Thinking he was in their company, they traveled on for a day. Then they began looking for him among their relatives and friends.

영어NASB,44 but supposed Him to be in the caravan, and went a day’s journey; and they began looking for Him among their relatives and acquaintances.

영어MSG,44 Thinking he was somewhere in the company of pilgrims, they journeyed for a whole day and then began looking for him among relatives and neighbors.

영어NRSV,44 Assuming that he was in the group of travelers, they went a day’s journey. Then they started to look for him among their relatives and friends.

헬라어신약Stephanos,44 νομισαντες δε αυτον εν τη συνοδια ειναι ηλθον ημερας οδον και ανεζητουν αυτον εν τοις συγγενεσιν και εν τοις γνωστοις

라틴어Vulgate,44 existimantes autem illum esse in comitatu venerunt iter diei et requirebant eum inter cognatos et notos

히브리어Modern,44 ויחשבו כי עם חבל הארחים הוא וילכו כדרך יום ויבקשהו בין הקרובים והמידעים׃

성 경: [눅2:44]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 동행 중에…아는 자 중에서 찾되 – 성전 절기 준수를 위해 성전으로 모이는 여행자 무리는 같은 마을 이웃들과 친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매일 저녁 때 이 무리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함께 모여 유숙하고 여행 일정 등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예수의 부모는 예수가 일행 중에 있을 줄로 알고 신경쓰고 있지 않았으나 저녁 식사 때 혹은 잠자리에 들려 할 때 그가 없음을 알고 아는 사람들 속에서 그를 찾아 나섰다.

카이 메 휴론테스 휘페스트렢산 에이스 예루살렘 아나제툰테스 아우톤

개역개정,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새번역,45 찾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찾아다녔다.

우리말성경,45 그러나 찾지 못하자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예수를 찾았습니다.

가톨릭성경,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영어NIV,45 When they did not find him, they went back to Jerusalem to look for him.

영어NASB,45 When they did not find Him, they returned to Jerusalem looking for Him.

영어MSG,45 When they didn’t find him, they went back to Jerusalem looking for him.

영어NRSV,45 When they did not find him, they returned to Jerusalem to search for him.

헬라어신약Stephanos,45 και μη ευροντες αυτον υπεστρεψαν εις ιερουσαλημ ζητουντες αυτον

라틴어Vulgate,45 et non invenientes regressi sunt in Hierusalem requirentes eum

히브리어Modern,45 ולא מצאהו וישבו ירושלים לבקשו׃

성 경: [눅2:45]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 찾으면서 – 헬라어 ‘아나제툰테스'(*)는 현재 분사형으로서, 마리아 부처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며 줄곧 예수의 행방을 수소문하였음을 뜻한다.

카이 에게네토 메타 헤메라스 트레이스 휴론 아우톤 엔 토 히에로 카데조메논 엔 메소 톤 디다스칼론 카이 아쿠온타 아우톤 카이 에페로톤타 아우투스

개역개정,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새번역,46 사흘 뒤에야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를 찾아냈는데, 그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우리말성경,46 3일이 지나서야 그들은 성전 뜰에서 예수를 찾게 됐습니다. 그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영어NIV,46 After three days they found him in the temple courts, sitting among the teachers, listening to them and asking them questions.

영어NASB,46 Then, after three days they found Him in the temple, sitting in the midst of the teachers, both listening to them and asking them questions.

영어MSG,46 The next day they found him in the Temple seated among the teachers, listening to them and asking questions.

영어NRSV,46 After three days they found him in the temple, sitting among the teachers, listening to them and asking them questions.

헬라어신약Stephanos,46 και εγενετο μεθ ημερας τρεις ευρον αυτον εν τω ιερω καθεζομενον εν μεσω των διδασκαλων και ακουοντα αυτων και επερωτωντα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46 et factum est post triduum invenerunt illum in templo sedentem in medio doctorum audientem illos et interrogantem

히브리어Modern,46 ויהי אחרי שלשת ימים וימצאהו במקדש ישב בתוך המורים שמע אליהם ושאל אתם׃

성 경: [눅2:46]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 마리아와 요셉은 하룻길을 여행하고 나서 예수의 행방이 묘연해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44절). 이튿날 그들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며 예수를 찾는데 하루가 걸렸을 것이다(45절). 그리고 그 다음날 곧 ‘사흘 후에’ 그들은 예수를 성전에서 만났다.

󰃨 선생들 중에 앉으사…묻기도 하시니 – 성전 안에는 이방인의 뜰과 이스라엘인의 뜰과 안뜰의 동남부 등 이렇게 세 곳에 회당이 있었다고 탈무드(Talmud)는 전한다. 대체로 랍비들은 바로 이 안뜰의 동남부에 있는 회당에서 율법을 강론(講論)했다고 한다. 당시 생존해있던 저명한 율법 학자들은 ‘힐렐'(Hillel), ‘샴마이'(Shammai), ‘가말리엘'(Gamaliel), ‘요나단'(Jonathan), ‘시므온'(Simeon), ‘니고데모'(Nicodemus) 등으로 짐작된다. 추측해 보건대 이러한 유명한 학자들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중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예수와의 토론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외경 ‘도마 복음서'(Gospel of Thomas)에서는 이때 예수께서 율법과 선지자들의 난제들을 해결하고 또 어려운 질문을 제기하고 답하며 천문학, 의학, 물리학, 철학 등에 관한 이야기 등도 논의되었다고하나 정확한 증거 자료는 없다. 아무튼 어린 예수께서 당대 최고 석학들과 함께 율법을 이야기하며 토론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엨시스탄토 데 판테스 호이 아쿠온테스 아우투 에피 테 쉬네세이 카이 타이스 아포크리세신 아우투

개역개정,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새번역,47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하였다.

우리말성경,47 예수의 말을 들은 사람들마다 그가 깨닫고 대답하는 것에 몹시 감탄했습니다.

가톨릭성경,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영어NIV,47 Everyone who heard him was amazed at his understanding and his answers.

영어NASB,47 And all who heard Him were amazed at His understanding and His answers.

영어MSG,47 The teachers were all quite taken with him, impressed with the sharpness of his answers.

영어NRSV,47 And all who heard him were amazed at his understanding and his answers.

헬라어신약Stephanos,47 εξισταντο δε παντες οι ακουοντες αυτου επι τη συνεσει και ταις αποκρισεσι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47 stupebant autem omnes qui eum audiebant super prudentia et responsis eius

히브리어Modern,47 וכל השמעים אליו השתוממו על שכלו ועל תשובתיו׃

성 경: [눅2:47]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 듣는 자가 다…기이히 여기더라 – ‘기이히 여기더라'(*, 여시스탄토)는 미완료 중간태 직설법으로서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놀라움을 나타내며, 그 원형 ‘에크시스테미’는 거의 기절(faint)할 정도로 놀랐다는 뜻이다. 즉 예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계속하여 반복해서 그 질문과 답변에 매우 놀라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놀라움은 어린 소년의 입에서 그토록 영특한 이야기가 넘쳐나온 사실로 말미암은 바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입에서 나온 지혜의 말씀 자체의 탁월성에 기인한 것임에 분명하다. ‘지혜’에 해당하는 ‘쉬네세이'(*)는 ‘이해’라는 뜻이다. 여기서 이 이해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하나님의 지혜를 가리킨다. 예수의 답변과 하나님의 지혜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는 하나님께 속한 모든 신령(神靈)한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취어 있기 때문이다(골 2:3).

카이 이돈테스 아우톤 엨세플라게산 카이 에이펜 프로스 아우톤 헤 메테르 아우투 테크논 티 에포이에사스 헤민 후토스 이두 호 파테르 수 카고 오뒤노메노이 에제투멘 세

개역개정,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새번역,48 그 부모는 예수를 보고 놀라서,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였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우리말성경,48 그 부모는 예수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왜 우리에게 이렇게 했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걱정하며 찾았는지 모른다.”

가톨릭성경,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영어NIV,48 When his parents saw him, they were astonished. His mother said to him, “Son, why have you treated us like this? Your father and I have been anxiously searching for you.”

영어NASB,48 When they saw Him, they were astonished; and His mother said to Him, “Son, why have You treated us this way? Behold, Your father and I have been anxiously looking for You.”

영어MSG,48 But his parents were not impressed; they were upset and hurt. His mother said, “Young man, why have you done this to us? Your father and I have been half out of our minds looking for you.”

영어NRSV,48 When his parents saw him they were astonished; and his mother said to him, “Child, why have you treated us like this? Look, your father and I have been searching for you in great anxiety.”

헬라어신약Stephanos,48 και ιδοντες αυτον εξεπλαγησαν και προς αυτον η μητηρ αυτου ειπεν τεκνον τι εποιησας ημιν ουτως ιδου ο πατηρ σου καγω οδυνωμενοι εζητουμεν σε

라틴어Vulgate,48 et videntes admirati sunt et dixit mater eius ad illum fili quid fecisti nobis sic ecce pater tuus et ego dolentes quaerebamus te

히브리어Modern,48 ויהי כראותם אתו ויחרדו ותאמר אליו אמו בני מדוע ככה עשית לנו הנה אביך ואנכי בעצבת לב בקשנוך׃

성 경: [눅2:48]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너를 찾았노라 – 누가는 예수의 부모가 예수를 발견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들의 처음 가졌던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불과 12세에 불과한 소년이 당대의 석학들과 당당하게 토론하는 장면은 그들에게도 놀라움으로 먼저 다가왔다. 물론 그들은 예수의 탄생에 얽힌 신비스러운 일들이나 차츰 성장하면서 보여준 특출한 지혜와 인격에 대해 남다른 경험을 한 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경험한 바 계시에대한 이해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낼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예수의 신분이나 사역의 본질적 의의를 정확히 깨닫지는 못한 상태였다. 이어서 마리아가 예수께 책망조로 탓한 사실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마리아는 어디까지나 잃어버린 아들로 인해 노심초사했던 어머니로서의 걱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속상한 감정을 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예수의 대답은(49절) 마리아 부처로 하여금 예수의 신분에 대해 다시금 깊이 숙고해 보게 하였을 것이다.

카이 에이펜 프로스 아우투스 티 호티 에제테이테 메 우크 에데이테 호티 엔 토이스 투 파트로스 무 데이 에이나이 메

개역개정,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새번역,49 예수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우리말성경,49 그러자 예수가 말했습니다.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마땅히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 모르셨습니까?”

가톨릭성경,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영어NIV,49 “Why were you searching for me?” he asked. “Didn’t you know I had to be in my Father’s house?”

영어NASB,49 And He said to them, “Why is it that you were looking for Me? Did you not know that I had to be in My Father’s house?”

영어MSG,49 He said, “Why were you looking for me? Didn’t you know that I had to be here, dealing with the things of my Father?”

영어NRSV,49 He said to them, “Why were you searching for me? Did you not know that I must be in my Father’s house?”

헬라어신약Stephanos,49 και ειπεν προς αυτους τι οτι εζητειτε με ουκ ηδειτε οτι εν τοις του πατρος μου δει ειναι με

라틴어Vulgate,49 et ait ad illos quid est quod me quaerebatis nesciebatis quia in his quae Patris mei sunt oportet me esse

히브리어Modern,49 ויאמר אליהם למה זה בקשתם אתי הלא ידעתם כי עלי להיות באשר לאבי׃

성 경: [눅2:49]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 어찌하여…알지 못하셨나이까 – 본서에 나오는 예수의 첫 말씀이다. 이는 혈육상의 모친인 마리아에게 하신 삼가는 투의 공손한 말씀이지만 자신의 존재 의의를 분명히 천명(闡明)하신 단호한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몇 사항을 상고해 볼 수 있다. (1) 혈육상의 모친에 대한 순종과 하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 순종 사이의 긴장 관계가 나타난다. 예수께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한 가정의 아들로 탄생하셨기 때문에 그 부모에 대한 임무에 충실하셨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사로운 일에 얽매일여념이 없을 엄청난 사명, 곧 온 인류에게 구원의 산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지상에서 수행해야 할 인간에 대한 모든 임무는 하나님의 계명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만 수행될 수 있을 뿐이며 우선 순위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일에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18:29;신 33:9;마 6:33). (2) 예수는 자신의 전생애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전개되어감을 분명히 인식하고 계셨음을 보여준다. 특히 ‘있어야 될 줄을’이란 표현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는 당위성(I must be…)을 강조해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인간에 대한 의무의 우선 순위 문제, 그리고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욕망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 간의 양자 택일 문제를 놓고 믿음의 용단(勇斷)을 내릴 수 있어야 하겠다.

󰃨 내 아버지 집에 – 예수께서 하나님을 독특하고 유일한 의미에서 자신의 아버지로 부른 최초의 언급이며(22:29;23:46;마 11:25;막 14:36;요 5:17), 자신의 신성(神性)을 증거한 것이다. 이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은 ‘내 아버지의 일'(My Father’s business)로도 번역된다. New KJV는 본절 하반절을 ‘내가 내 아버지의 일에 열심을 내야 할 것을 모르셨나이까'(Did you not know that I must be about My Father’s business ?)라고 옮겼다. 이는 ‘집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토이스’가 중성 복수로 ‘일’ 또는 ‘사물’의 개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일’이라 번역하든 ‘집’이라 번역하든 이 구절의 의미를 크게 바꾸어 놓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는 그의 전생애를 하나님의 일을 실천해 나가면서 살았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일이 있는 곳에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이 있는 곳이 그가 머물 자리이고 그의 집이었던 것이다.

카이 아우토이 우 쉬네칸 토 레마 호 엘랄레센 아우토이스

개역개정,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새번역,50 그러나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우리말성경,50 그러나 그들은 예수가 하는 말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가톨릭성경,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영어NIV,50 But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he was saying to them.

영어NASB,50 But they did not understand the statement which He had made to them.

영어MSG,50 But they had no idea what he was talking about.

영어NRSV,50 But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he said to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50 και αυτοι ου συνηκαν το ρημα ο ελαλησεν αυτοις

라틴어Vulgate,50 et ipsi non intellexerunt verbum quod locutus est ad illos

히브리어Modern,50 והם לא הבינו את הדבר אשר דבר אליהם׃

성 경: [눅2:50]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 양친이…깨닫지 못하더라 – 마리아에 임한 예수 탄생에 관한 계시를 생각해 보면이 구절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즉 예수께서 메시야임을 알고 있었다면 이 정도의 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부의 깨닫지 못함이 훨씬더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48절에서도 나타내었듯이, 설령 그들이 예수께 얽힌 여러 신비로운 계시를 접했다고 해도 그 의미를 확연히 깨달을만한 영적 수준에는 도달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이 카테베 멭 아우톤 카이 엘덴 에이스 나자렏 카이 엔 휘포타쏘메노스 아우토이스 카이 헤 메테르 아우투 디에테레이 판타 타 레마타 엔 테 카르디아 아우테스

개역개정,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새번역,51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면서 지냈다. 예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우리말성경,51 그러고 나서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순종하며 지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가톨릭성경,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영어NIV,51 Then he went down to Nazareth with them and was obedient to them. But his mother treasured all these things in her heart.

영어NASB,51 And He went down with them and came to Nazareth, and He continued in subjection to them; and His mother treasured all these things in her heart.

영어MSG,51 So he went back to Nazareth with them, and lived obediently with them. His mother held these things dearly, deep within herself.

영어NRSV,51 Then he went down with them and came to Nazareth, and was obedient to them. His mother treasured all these things in her heart.

헬라어신약Stephanos,51 και κατεβη μετ αυτων και ηλθεν εις ναζαρετ και ην υποτασσομενος αυτοις και η μητηρ αυτου διετηρει παντα τα ρηματα ταυτα εν τη καρδια αυτης

라틴어Vulgate,51 et descendit cum eis et venit Nazareth et erat subditus illis et mater eius conservabat omnia verba haec in corde suo

히브리어Modern,51 וירד אתם ויבא אל נצרת ויכנע להם ואמו שמרה בלבה את כל הדברים האלה׃

성 경: [눅2:51]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 예수께서…순종하여 받드시더라 – 누가는 예수의 신성에 관해서 언급하고나서 한 가정의 자녀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인자이신 예수의 모습을 묘사한다. 예수는 이후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으실 때까지(3:21) 18년 동안 갈릴리 나사렛에서 그의 부모와 동생들과 함께 지내셨다. 그곳에서 주님은 아버지 요셉의 가업인 목수직을 이어 동생들을 보살피고 어머니 마리아를 봉양했다(막 6:3). 요셉에 관한 기록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있다. 추측컨대 이 18년 어간에 요셉이 죽은 것으로 여겨진다. 요셉이 죽자, 장남인 예수가 그의 가족을 부양(扶養)한 것으로 생각된다.

󰃨 그 모친은…마음에 두니라 – 1장의 주석 서두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누가는 이 복음서의 내용 중 일부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마리아에게서 얻은 듯하다. 그녀는 여기 언급된 세부 내용들을 얘기할 수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말’이란 본장의 사건 전반에 걸쳐 나타난 말들을 지칭한다.

카이 예수스 프로에콮텐 엔 테 소피아 카이 헬리키아 카이 카리티 파라 데오 카이 안드로포이스

개역개정,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새번역,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우리말성경,52 그리고 예수는 지혜와 키가 점점 더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톨릭성경,52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영어NIV,52 And Jesus grew in wisdom and stature, and in favor with God and men.

영어NASB,52 And Jesus kept increasing in wisdom and stature, and in favor with God and men.

영어MSG,52 And Jesus matured, growing up in both body and spirit, blessed by both God and people.

영어NRSV,52 And Jesus increased in wisdom and in years, and in divine and human favor.

헬라어신약Stephanos,52 και ιησους προεκοπτεν σοφια και ηλικια και χαριτι παρα θεω και ανθρωποις

라틴어Vulgate,52 et Iesus proficiebat sapientia aetate et gratia apud Deum et homines

히브리어Modern,52 וישוע הלך וגדל בחכמה ומקומה ובחן עם אלהים ועם אנשים׃

성 경: [눅2:52]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 예수는…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 외경의 복음서들은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도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기도 하고 비상한 능력을 나타내기도 하셨다고 전하지만 그 증거는 불확실하다. 본문이 거듭 밝히는 바는(40절 주석 참조), 예수께서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셨다는 사실이다. 예수의 지혜와 키가 자라갔다고 하는 것이 예수의 신성(deity)을 도외시하는 뜻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을 뿐이기 때문이다(빌 2:6, 7). 한편 ‘키’에 해당하는 헬라어 ‘헬리키아'(*)는 ‘키'(stature, NIV) 또는 ‘나이’로 번역된다. 이를 어떻게 번역하든 별반 차이가 없지만 ‘키’로 보는 것이 적합한 듯하다. 왜냐하면 ‘나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먹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부연하여 설명할 필요가 없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자는 그 의미를 신체적인 성장이나 인격적인 성장으로 보기도 한다.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착실한 성장은 모든 이의 귀감(龜鑑)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에 순종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이웃을 아끼며 도와주는 그의 생활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의 이런 칭송은 후에 초대 교회의 사람들이 받았던 칭송으로 이어졌다(행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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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튜 헨리 주석, 누가복음 02장

2:1 구유에 나신 메시야 (누가복음 2:1-7) “때가 차게”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시사,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하신 그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베들레헴에서 나리라는 사실이 예고되어 있었다. 이제 여기서는 그 출생의 시기, 장소, 방식을 살펴보자. Ⅰ. 우리 주 예수께서 출생하신 때를 보자. 이 대목이 우리에게 시사해 주고 있는 바를 종합하면, 그 때는 “적당한 때”였다는 점을 알 수 있다. 1. 그가 태어난 때는 “제 4의 군주 국가”가 최고도에 달했을 때이다. 즉 이전의 3 군주 국가보다 이 제4의 군주 국가야말로 “세계적인 국가”가 이제 막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구스도 황제 “시대에” 태어났다. 그 때는 로마 제국이 그 어느 때보다는 영토를 확장해서, 한쪽으로는 페르샤와 다른 한쪽으로는 영국에까지 그 힘이 뻗쳤을 때이다. 따라서 당시의 로마는 Terrarum orbis imperium – 온 지상의 제국이라고 불리웠다. 그래서 여기서도 로마를 “온 세계”라고 칭했다(1절). 왜냐하면 로마에 부속되어 있는 나라를 빼놓고는 문명이 개화된 곳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어제 다니엘의 예언에 따르면, 지금이야말로 메시야가 탄생할 시기인 것이다(단 2:44). “이 왕들의 시대에,” 즉 제4의 군주 국가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결코 파괴되지 않을 나라를 세우시리라”고 했다.

2. 그는 유대가 제국의 한 도(道)요 부속국으로 되어 버린때에 탄생했다. 따라서 로마 제국 전체가 국세 조사를 받을 때에 유대인들도 역시 국세 조사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예루살렘은 로마의 장군 폼페이(Pompey)에 이해서, 이 일이 있기 전 약 60년 전에 점령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나서 교회의 치리권은 힐가누스(대제사장)에게 맡겼다. 그러나 국가의 치리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대 국가의 치리권은 점점 약화되어, 마침내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유대는 수리아의 로마인 총독 구레뇨가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2절). 바로 이 때야말로 메시야가 탄생해야 될 시기였다. 야곱의 유언 예언이 바로 그렇게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실로가 오실 터인데, 그가 오시면, “홀(왕권의 상징)이 유다를 떠나지 않으며, 율법 수여자가 그의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창 49:10). 그가 태어난 때는 “제 4의 군주 국가”가 최고도에 달했을 때이다. 즉 이전의 3 군주 국가보다 이 제4의 군주 국가야말로 “세계적인 국가”가 이제 막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아구스도 황제 “시대에” 태어났다. 그 때는 로마 제국이 그 어느 때보다는 영토를 확장해서, 한쪽으로는 페르샤와 다른 한쪽으로는 영국에까지 그 힘이 뻗쳤을 때이다. 따라서 당시의 로마는 Terrarum orbis imperium – 온 지상의 제국이라고 불리웠다. 그래서 여기서도 로마를 “온 세계”라고 칭했다(1절). 왜냐하면 로마에 부속되어 있는 나라를 빼놓고는 문명이 개화된 곳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어제 다니엘의 예언에 따르면, 지금이야말로 메시야가 탄생할 시기인 것이다(단 2:44). “이 왕들의 시대에,” 즉 제4의 군주 국가 시대에, “하늘의 하나님께서 결코 파괴되지 않을 나라를 세우시리라”고 했다.그는 유대가 제국의 한 도(道)요 부속국으로 되어 버린때에 탄생했다. 따라서 로마 제국 전체가 국세 조사를 받을 때에 유대인들도 역시 국세 조사를 받은 것이 분명하다. 예루살렘은 로마의 장군 폼페이(Pompey)에 이해서, 이 일이 있기 전 약 60년 전에 점령되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나서 교회의 치리권은 힐가누스(대제사장)에게 맡겼다. 그러나 국가의 치리권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유대 국가의 치리권은 점점 약화되어, 마침내는 거의 사라지고 말았다. 왜냐하면 유대는 수리아의 로마인 총독 구레뇨가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2절). 바로 이 때야말로 메시야가 탄생해야 될 시기였다. 야곱의 유언 예언이 바로 그렇게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실로가 오실 터인데, 그가 오시면, “홀(왕권의 상징)이 유다를 떠나지 않으며, 율법 수여자가 그의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했다(창 49:10). 이 호적 조사는 유대에 “처음 있는 호적”이었는데, 그것은 그들의 노예성을 말해 주는 첫 신호였다. 그러므로 이제 실로가 와서 자기의 나라를 세워야 된다. 3. 그 시기에 대한 또 다른 사정이 엿보인다. 그것은 로마의 시민 전체가 등록을 했다는 사실인데, 그것은 그 제국에 현재로서는 세계적인 평화가 존립해 있다는 뜻이다. 야누스의 성전은 이제 닫혔는데, 지금까지는 어떤 전쟁이 발발했더라도 결코 문이 닫힌 적이 없던 성전이다. 그리고 이제 “검을 쳐 쟁기를 만들어야 할” 때를 초래할 평화의 임금이 나실 적합한 시기가 된 것이다. 그 시기에 대한 또 다른 사정이 엿보인다. 그것은 로마의 시민 전체가 등록을 했다는 사실인데, 그것은 그 제국에 현재로서는 세계적인 평화가 존립해 있다는 뜻이다. 야누스의 성전은 이제 닫혔는데, 지금까지는 어떤 전쟁이 발발했더라도 결코 문이 닫힌 적이 없던 성전이다. 그리고 이제 “검을 쳐 쟁기를 만들어야 할” 때를 초래할 평화의 임금이 나실 적합한 시기가 된 것이다. Ⅱ. 우리 주 예수의 탄생 장소는 매우 주목할 만하다. 그는 “베들레헴”에서 탄생했다. 그렇게 예언되어 있었다(미 5:2). 서기관들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었다(마 2:5, 6). 또 일반인들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요 7:42). 그 지명에는 의미 있는 뜻이 들어 있다. 베들레헴이란 “떡집”이란 뜻이다. 그러므로 생명의 떡, “하늘로부터 내려온” 떡이신 분이 출생하기엔 아주 적합한 곳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베들레헴은 다윗 성이었다. 즉 그가 태어난 곳이요, 따라서 “다윗의 자손”인 “그”는 거기서 출생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시온도 역시 “다윗 성”이라고 불렸다(삼하 5:7). 그러나 그리스도는 거기서 탄생하시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가 비천한 모습으로 하나의 “목자”로서 태어난 그 다윗 성은 베들레헴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우리의 구주는 그가 스스로 겸비해지셨을 때, 자기의 출생지를 그곳으로 정하셨던 것이다. 출생지는 시온이 아니었다. 시온은 그가 권능과 번영을 누리며 통치하던 곳이요, 그리스도의 교회를 상징하는 모형이 될 곳, 곧 “시온 산”이었다. 동정녀 마리아는 임신했을 때, 해산의 때가 가까워 오자. 섭리자는 황제로부터 발령된 명령을 통해서 그런 일을 명령하시사, “로마 황제”의 치하에 있는 모든 백성들에게 “호적 하게”하였다. 즉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이름을” 정해진 관서에다 가족별로 “등록하고” “기록해야”했다. 그런데 여기에 사용된 단어의 의미는 매우 적합하다. 그들이 “호적을 올리”는 일은 부차적인 일이었다. 그 국세조사는 그들로 하여금 로마 제국에서 신하로서의 고백을 하게 할 목적이었다. 즉 어떤 정해진 짧은 공식문을 통해서나 최소한 어떤 소작료와 같은 자기들의 충성의 표시로서 작은 공물을 바치게 함으로써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등록된 종이 되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탓으로 돌리게 되었을 것이다. 이 “영(令)”에 따라서(자기들의 가문이나 족보를 자랑하던)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이름이 등록되게 될 때 특별한 신경을 써서 족보나 가문이 잘 보존되도록 대비했다. 이와 같이 어리석게도 저들은 “본체”를 잃고 나서도, “그림자”라고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다 썼던 것이다. 아구스도의 계획은 자기 백성의 숫자를 알아서 그것을 세상에 공포하는 것을 “자랑”하고픈 교만심에서 나왔었든가, “정책”적으로 했을 것이다. 즉 자기의 권세를 보강하고, 자기의 정권이 더욱 막강하게 보이도록 하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섭리자는 그 일을 통해서 다른 것을 계획하셨다. 요셉과 마리아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호적”하느라고 고생을 겪어야 했다. 이리하여 그들은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의 베들레헴으로 올라와야 했다. 그들은 “다윗 집 족속”이었기 때문이었다(4,5절). 그리고 아마 그들은 가난하고 지위가 낮은 자들이었으므로, 자기들의 혈통이 왕손이라는 사실을 자랑으로보다는 부담과 비용이 드는 일로 여겼으리라. 왜냐하면, (남자는 물론이나 여자도) 모든 유대인은 자기들의 선조들이 살던 성읍에 가야 했고, 지금으로서는 자기들의 지파의 경계를 지키고 있지도 않으면서, 거기에서 호적을 해야 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황제는 “다윗 족속”에게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에게 특별한 명령을 내렸으며, 그 족속에게는 아주 정확성이 기해졌을 것으로 추측할 수도 있다. 다윗 족속은 왕족이었고, 지금까지도 그들이 왕이 되려 한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그래서 황제는 그들의 숫자와 힘을 알아보고 싶었을 것이다. 이리하여 하나님의 섭리의 여러 가지 목적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1. 이로써 “이미 잉태하고”있던 동정녀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다. 예언에 따라서 거기서 아기를 “낳게끔”되어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아이를 낳으려 계획했던 것이다. 실로 “계획은 인간이 하나 그 성사(成事)는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자. 또한 섭리자는 만물을 성서의 말씀을 이루시도록 명령하시며, 인간들이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세운 계획까지도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섭리자 자신의 뜻을 이루는 데에 이용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2. 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에 속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무엇이 그의 모친을 베들레헴으로 가게 했겠는가? 그녀가 “다윗의 집 족속이었다”는 사실밖에 무엇이 또 있겠는가” 이로써 “이미 잉태하고”있던 동정녀 마리아는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다. 예언에 따라서 거기서 아기를 “낳게끔”되어 있었던 것이다. 반면에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아이를 낳으려 계획했던 것이다. 실로 “계획은 인간이 하나 그 성사(成事)는 하나님께 있음”을 기억하자. 또한 섭리자는 만물을 성서의 말씀을 이루시도록 명령하시며, 인간들이 자기들의 목적을 위해 세운 계획까지도 본인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섭리자 자신의 뜻을 이루는 데에 이용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자.이로써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자손”에 속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이제 무엇이 그의 모친을 베들레헴으로 가게 했겠는가? 그녀가 “다윗의 집 족속이었다”는 사실밖에 무엇이 또 있겠는가” 이것은 입증되어야 할 실질적인 일이요, 이와 같이 신빙성 있는 증거를 요구하는 문제였다. 기독교 신앙을 위한 가장 초기의 대변자들이 저스틴 마터(Justin Martyr)와 터툴리안(Tertulliam)은 (그리스도의 혈통이 다윗家에 속해 있다는 사실을 위해서) “로마 제국”의 호적 또는 “기록”을 들었다. 3. 이것을 통해서 그리스도도 “율법 아래” 있는 자임이 밝혀졌다. 그는 나자마자 로마 제국의 신하, 곧 “관원들의 종”(사 49:7)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을 통해서 그리스도도 “율법 아래” 있는 자임이 밝혀졌다. 그는 나자마자 로마 제국의 신하, 곧 “관원들의 종”(사 49:7)이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는 국세 조사 기간 중에 출생했으므로, 그의 부모와 같이 호적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그는 “스스로 아무런 명예도 취하지 아니하며,” “종의 형체를 취하였다”는 점을 보여 줄 수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왕들의 그에게 공물을 바쳤어야 하는데, 그 대신 그가 세상에 왔을 때는 친히 공물을 바치는 자(종)가 되었다. Ⅲ. 그의 탄생의 주위 사정을 보자. 그것은 지극히 비천했고, 온갖 멸시의 표지가 다 붙어 있었다. 그는 실로 “장자”였다. 그러나 마리아와 같이 그렇게 초라한 여인의 장자가 되는 것은 아무런 영예가 못되었다. 그녀에게는 장자가 될 자에게 물려줄 유산이 없었다. 단지 “선천적인” 것밖에는 없었다. 1. 그는 다른 아이들처럼 일반으로 당하는 비천한 모습을 지녔다. “그는 강보에 싸였다.” 그것은 다른 아이들도 갓 태어났을 때는 그런 법이다. 마치 그리스도를 단단히 지켜야 하고 또 그래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듯이었다. 암흑 에”바다를 싸매는 강보로” 삼았던 바로 그분이 이제 “강보에” 싸이게 된 것이다(욥 38:9). 그는 다른 아이들처럼 일반으로 당하는 비천한 모습을 지녔다. “그는 강보에 싸였다.” 그것은 다른 아이들도 갓 태어났을 때는 그런 법이다. 마치 그리스도를 단단히 지켜야 하고 또 그래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듯이었다. 암흑 에”바다를 싸매는 강보로” 삼았던 바로 그분이 이제 “강보에” 싸이게 된 것이다(욥 38:9). 저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시간의 아기가 되셨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 영원에 기원을 두고 있는 분을 보고, “우리는 그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알고 있다(요 7:27)고 했다. 상제(上帝·날들의 태고)께서 잠시 동안의 시간의 어린아이가 되셨다. 2. 그에게는 특유하게 비천한 면이 있었다.

(1) 그는 “사관(舍館)에서” 났다. 아버지의 집에서 영광을 누리던 다윗의 아들에게 그가 주장할 만한 유산이 없었다. 다윗 성에서도 없었고, 곤경에 처한 그의 모친을 데려다가 높히는 편의를 제공할 친구도 하나 없었다. 그리스도가 “사관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그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관(여인숙)에 들르는 것처럼 잠시 동안 체류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일이요, 또한 우리도 그렇게 살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에게는 특유하게 비천한 면이 있었다.그는 “사관(舍館)에서” 났다. 아버지의 집에서 영광을 누리던 다윗의 아들에게 그가 주장할 만한 유산이 없었다. 다윗 성에서도 없었고, 곤경에 처한 그의 모친을 데려다가 높히는 편의를 제공할 친구도 하나 없었다. 그리스도가 “사관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그가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관(여인숙)에 들르는 것처럼 잠시 동안 체류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말해 주는 일이요, 또한 우리도 그렇게 살 것을 가르쳐 주는 것이다. 여인숙은 오는 사람 모두를 받는다.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다. 그는 사랑의 깃발을 자기의 상징으로 내걸었고, 자기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결코 박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는 “돈 없이 값없이” 오는 자들을 환영한다는 점이다. 모두가 무료이다.

(2) 그는 “구유에서” 났다. “구유”로 번역된 원어는 가축이 들어가서 먹이를 먹는 장소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사관에는 방이 없었기” 때문에, 또는 시설이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요람에 눕게 되는 대신에 “구유에” 눕게 된 것이다. 그는 “구유에서” 났다. “구유”로 번역된 원어는 가축이 들어가서 먹이를 먹는 장소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사관에는 방이 없었기” 때문에, 또는 시설이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요람에 눕게 되는 대신에 “구유에” 눕게 된 것이다. “강보”라고 번역된 원어는 “찢다”란 뜻을 지니고 있는 말에서 나왔다. 그렇다면 그 말은 그리스도에게는 아기들이 입는 고운 의복 따위는 전혀 없었고, 단지 그의 강보는 넝마 조각이나 헤어진 옷 조각이었다는 말이다. 그가 구유에서 났다는 것은

[1] 그의 부모의 극빈성을 예시해 준다. 그들이 부자였더라면, 방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했기 때문에, 그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전진해야”했다.

[2] 그것은 또한 그 당시인들의 도덕이 부패했음을 말해 준다. 그래서 그렇게 덕과 영예로 존경받는 여인이 그토록 가혹한 처분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만일 상식적인 인간미라고 있었더라면, 여인을 구유로 보내는 고생은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

[3] 그것은 우리 주 예수의 겸비를 나타낸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버림을 받고 절망에 처해 있으며, 고독에 빠져 있는 젖먹이 같이 되었다. 이제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꼴이 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모세, 곧 저 위대한 구약 성서의 예언자요, 율법수여자인 모세가 보여 준 모형을 이루려 하신 것이다. 모세는 젖먹이었을 때 갈대 상자 속에 버려졌었고, 이제 그리스도도 “구유에” 버려 것이다. 이로써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을 멸시하고자 했고, 우리들도 그것을 중시하지 않도록 가르치시고자 하셨다. “그의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우리도 영접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자.

그의 부모의 극빈성을 예시해 준다. 그들이 부자였더라면, 방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난했기 때문에, 그들은 “할 수 있는” 대로 “전진해야”했다.그것은 또한 그 당시인들의 도덕이 부패했음을 말해 준다. 그래서 그렇게 덕과 영예로 존경받는 여인이 그토록 가혹한 처분을 받아야 했던 것이다. 만일 상식적인 인간미라고 있었더라면, 여인을 구유로 보내는 고생은 시키지 않았을 것이다.그것은 우리 주 예수의 겸비를 나타낸다. 우리는 죄로 인하여 버림을 받고 절망에 처해 있으며, 고독에 빠져 있는 젖먹이 같이 되었다. 이제 그리스도가 바로 그런 꼴이 되었다. 이리하여 그는 모세, 곧 저 위대한 구약 성서의 예언자요, 율법수여자인 모세가 보여 준 모형을 이루려 하신 것이다. 모세는 젖먹이었을 때 갈대 상자 속에 버려졌었고, 이제 그리스도도 “구유에” 버려 것이다. 이로써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모든 영광을 멸시하고자 했고, 우리들도 그것을 중시하지 않도록 가르치시고자 하셨다. “그의 백성이 그를 영접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이 “우리도 영접하지 않더라도” 그것을 이상히 여기지 말자.

2:8 목자와 천사의 방문 (누가복음 2:8-20) 그리스도의 겸비에 따른 가장 비천한 사정에는 모두 그의 영광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여건들이 동반되었고, 그 영광은 그 비천함을 상쇄하는 것이요, 그 굴욕을 제거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을 낮추고 있었지만, 바로 그 4에도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를 굳게 하려 했고, 그가 장차 높이 들리우게 되리라는 전조를 보여 주셨다. 우리는 그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눕게” 된 것을 보면, “분명히 이는 하나님의 아들일 수가 없다”고 말하고픈 유혹을 받는다. 그러나 여기에서 보는 대로, 그의 출생에는 천사의 합창이 동반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러면 우리는 “분명히 그는 하나님의 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실 때에는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이 그에게 경배한다고 했다”(히 1:6). 마태복음에는 이 사실, 이 하늘의 임금의 도래가 이방인들인 현자들에게도 별을 통해서 알려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는 그 사건이 천사 통해서 유대 목자들에게 알려진 사실을 보게 된다. 그들 각자에게 하나님은 그들이 제일 잘 아는 언어를 선택하여서 말씀해 주신 것이다. Ⅰ. 어떻게 이 목자들이 개입되었는지를 보자. 그들은 베들레헴 근방에 있는 “들에서 유하면서,” “밤에 양떼를 지키고” 있었다(8절). 그 천사는 대제사장들이나 장로들(그들은 이 소식을 받을 준비를 못하고 있었다)에게로 가지 않고, 야곱과 같이 “장막에 거하는 평민들”이요, 에서와 같이 “교활한 사냥꾼들”인 초라한 목자들의 무리에게로 보내졌다. 적장들도 목자들이었다. 모세와 다윗은 특별한 의미에서 양을 치다가 하나님의 백성을 지도하라는 소명을 받은 자들이다. 따라서 하나님은 지금도 저 순결한 직업을 가진 자들에게 은총을 베풀고 계신다는 사실을 보여 주신 것이다. 모세가 양을 치고 있을 때에,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해방하라는 소식이 모세에게 전해졌다. 그리고 아마 지극히 경건했을 이 목자들에게 “큰 구원”의 소식이 전해졌다. 다음 사실을 살펴보자. 1. 이 소식이 전해지던 그 때에, 그들은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비록 많은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하늘의 지식을 받기는 하지만). 그들은 “들에서 유하면서 지키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 자들은 “자신들을 깨우고” 있어야 한다. 이 소식이 전해지던 그 때에, 그들은 침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비록 많은 사람들이 “잠자리에서” 하늘의 지식을 받기는 하지만). 그들은 “들에서 유하면서 지키고” 있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싶은 자들은 “자신들을 깨우고” 있어야 한다. 그들은 바짝 깨어 있었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보고 듣는 것을 잘 못 알아서 졸고 있는 자들처럼 기만을 당할 수는 없었다. 2. 이제 그들은 쓰임을 받았다. 그러나 예배 행위가 아니라 자기들의 직업을 이행해 나가고 있는 중에 받았다. 즉 그들은 “자기들의 양떼를 지키면서,” 도적이나 죽음의 밥이 되지 않도록 감시하면서 있었다. 아마 여름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날처럼 양떼들을 우리에 가두지 않고 밤새도록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정직한 직업에 열중하고 있는 그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유한다만, 우리에게 오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길은 결코 막히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이제 그들은 쓰임을 받았다. 그러나 예배 행위가 아니라 자기들의 직업을 이행해 나가고 있는 중에 받았다. 즉 그들은 “자기들의 양떼를 지키면서,” 도적이나 죽음의 밥이 되지 않도록 감시하면서 있었다. 아마 여름철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늘날처럼 양떼들을 우리에 가두지 않고 밤새도록 지키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정직한 직업에 열중하고 있는 그 직업을 통해서 하나님과 함께 유한다만, 우리에게 오시는 하나님의 은총의 길은 결코 막히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자. Ⅱ. 그들은 천사의 출현에 놀랐다는 것을 알 수 있다(9절). “보라. 주의 천사가” 홀연히 “그들 위에 임했도다” 즉 evpe,sth – 그들 위에 섰도다. 아마 하늘로부터 직접 내려와서, 그들의 머리 위 공중에 나타났을 가능성이 지극히 크다. (영어) 성경에는 “그 천사”라고 했으므로, 앞에서(1장) 나왔던 천사가 다시 한 번 나타난 것처럼 보인다. 즉 “가브리엘 천사”가 급속히 날아온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은 불확실하다. 천사가 “그들에게 임했다”(곁에 섰다-한글)는 것은, 그들이 그런 일을 거의 생각하거나 기대하지 못했다는 것을 나타낸다. 왜냐하면 하늘로부터 은총이 우리에게 내려오는 길은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것보다 “앞선” 길을 통해서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 천사가 하늘에서 온 천사라는 것을 알아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들 주위에 주의 영광이 둘러”있음을 보고 들었기 때문이리라. 그것은 밤을 낮과 같이 밝게 하는 영광이요, 하나님의 현현에 동반되곤 하던 영광이요, “하늘의 영광” 즉 “지극히 큰 영광”이요, 눈이 부셔서 쳐다볼 수 없는 그런 밝은 영광이었다. 이리하여 그들은 “크게 무서워하게”되었다. 마치 어떤 불길한 소식을 듣고 놀라듯이 겁에 질리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죄책 의식이 그 만큼 분명하면, 하늘로부터 오는 모든 징조는 진노의 사자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의당 느끼게 된다. Ⅲ. 천사가 그 목자들에게 전해 준 전갈은 무엇이었는가?(10-12절). 1. 천사는 그들의 “두려움”을 “중지하라는 영장”을 가져왔다 – “두려워 말라. 너희들에게 겁을 줄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의 원수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또한 너희의 친구들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2. 그는 그들에게 풍요한 기쁨의 제목을 주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 내가 엄숙히 선언하노라. 너희에게는 그것을 영접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느니라. 그 소식은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만 기쁨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소식이란, 너희에게 오늘, 이 시간에 오랫동안 기다려 오던 구원주, 그리스도 주이신 구주가 다윗 성에 나셨다는 것이니라”(11절). 예수는 그리스도, 곧 메시야(구세주)요, 기름부음 받은 자이다. 그는 “주”시다. 만민의 주이시다. 그는 절대 주권을 지니신 임금이시다. 아니 그는 하나님이시다. 구약 성서에서는 “주”가 “여호와”를 가리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영어 성경은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서 하나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주”라고 했으나, 우리 성경은 “여호와”로 나옴 -역주). 그는 구주이시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주로 영접하는 자들에게만 구주가 되실 것이다. 천사는 그들의 “두려움”을 “중지하라는 영장”을 가져왔다 – “두려워 말라. 너희들에게 겁을 줄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너희는 너희의 원수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또한 너희의 친구들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그는 그들에게 풍요한 기쁨의 제목을 주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노라. 내가 엄숙히 선언하노라. 너희에게는 그것을 영접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느니라. 그 소식은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에게만 기쁨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소식이란, 너희에게 오늘, 이 시간에 오랫동안 기다려 오던 구원주, 그리스도 주이신 구주가 다윗 성에 나셨다는 것이니라”(11절). 예수는 그리스도, 곧 메시야(구세주)요, 기름부음 받은 자이다. 그는 “주”시다. 만민의 주이시다. 그는 절대 주권을 지니신 임금이시다. 아니 그는 하나님이시다. 구약 성서에서는 “주”가 “여호와”를 가리키는 말이었기 때문이다(영어 성경은 유대인의 관습을 따라서 하나님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고 “주”라고 했으나, 우리 성경은 “여호와”로 나옴 -역주). 그는 구주이시다. 그리고 그는 자기를 주로 영접하는 자들에게만 구주가 되실 것이다. “구주가 탄생하셨다. 그는 오늘 나셨다. 그리고 그것이 온 백성에 큰 기쁨의 제목이 되므로, 비밀로 간직할 것이 아니라, 이 소식을 선포해야 하며, 너희가 원하는 자들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그는 미리 예고된 곳, 곧 다윗 성에 나셨다. 그리고 그는 너희에게 나셨다. 너희 유대인에게 그가 먼저 보내지셨으니, 너희들, 곧 비록 세상에서는 천하고 가난하지만 너희 목자들을 축복하기 위해서 보내지셨다.” 이것은 이사야서 9장 6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즉 “우리에게 한 아기가 났고, 한 아들을 주셨도다”고 했다. “너희 인간들에게이지, 우리 천사들에게 나신 것이 아니다. 그는 천사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으셨다. 이 사실은 실로 모든 사람들에게 큰 기쁨의 제목이다. 오랫동안 기다리던 분이 마침내 오신 것이다. 하늘과 땅이여, 이 주님 앞에서 즐거워하라. 그가 오시기 때문이니라.” 3. 천사는 이 사실을 그들이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한 증거를 보여 주셨다. “우리가 어떻게 베들레헴에 있는 이 아기를 찾을 수 있나이까? 지금 베들레헴에는 다윗의 후손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천사는 이 사실을 그들이 믿을 수 있게 하기 위해 한 증거를 보여 주셨다. “우리가 어떻게 베들레헴에 있는 이 아기를 찾을 수 있나이까? 지금 베들레헴에는 다윗의 후손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너희는 이 표적을 보고 찾으라. 그는 구유에 누워 있느니라. 구유에는 분명코 다른 어떤 갓난아기도 눕혀 있지 않느니라.” 그들은 아마 “너희는, 그가 비록 어린아기이지만 법의를 입고, 그 동네에서 제일 멋 있는 집에 위풍 당당히 누워 있으며, 부자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 아기를 보리라”는 말이 나올 줄로 기대했을 것이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너희는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이를 보게 되리라.” 그리스도가 이 지상에 오셨을 때는, 그가 자신을 스스로 구별하셨다. 눈에 현저히 드러나게 하셨다. 그러나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가 겸비함을 보여줌으로써였다. Ⅳ. 천사는 이 엄숙한 시기를 맞이하여 하나님께 “찬송(doxology)”을 드리고, 사람들에게 “축하”를 보냈다(13, 14절). 그 전갈이 한 천사의 입에 의해서 전해지자마자(이 소식이야말로 아주 급속히 전해졌다). 갑자기 “하늘의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했다. 분명히 그 목자들이 들은 것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합창” 소리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노래는 “아무 사람도 배울 수 없는” 저 노래(계 14:3)와는 달랐을 것이다. 이 노래는 우리 모두가 배워야 하는 노래였기 때문이다. 1. 이 역사(役事)를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 “지극히 높은 데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로다.” 메시야를 보내심으로써 나타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크게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지극히 높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은 자기들이 비록 직접 이 사건에 개입하시지는 않았지만 – 그 사건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송축할 것이다(계 5:11, 12). 이러한 은혜를 정하신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 또 하나님의 한 속성이 다른 한 속성을 희생시키지 않고 오히려 모든 속성의 영광이 실질적으로 더욱 확실히 되고 더욱 뛰어나게 되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 사건을 만드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영광이로다.” 하나님의 다른 여러 작품(솜씨)은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을 구속(救贖)하심은 “지극히 높은 그의 영광”을 위함이다.

2. 사람들이여, 그것을 기뻐하자. “땅 위에는 평화요, 사람들에게는 자비(good-will)로다”(한글과는 후반부가 다소 다름-역주). 메시야를 보내심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가 이 낮은 세상에 평화를 도입했고, 그 사이에 평화로운 왕래를 개설하였다. 하나님께서 평화로이 우리에게 함께 하신다면, 모든 평화가 거기서 유래되어 나온다. 즉, 양심의 평화, 천사들과의 평화,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평화가 온다. 이 역사(役事)를 하나님께 영광 돌리자. “지극히 높은 데 계신 하나님께 영광이로다.” 메시야를 보내심으로써 나타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는 하나님께 대한 찬양을 크게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지극히 높은 하늘에 있는 천사들은 자기들이 비록 직접 이 사건에 개입하시지는 않았지만 – 그 사건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송축할 것이다(계 5:11, 12). 이러한 은혜를 정하신 자비와 사랑의 하나님, 또 하나님의 한 속성이 다른 한 속성을 희생시키지 않고 오히려 모든 속성의 영광이 실질적으로 더욱 확실히 되고 더욱 뛰어나게 되는 이러한 방식으로 이 사건을 만드신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영광이로다.” 하나님의 다른 여러 작품(솜씨)은 그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을 구속(救贖)하심은 “지극히 높은 그의 영광”을 위함이다.사람들이여, 그것을 기뻐하자. “땅 위에는 평화요, 사람들에게는 자비(good-will)로다”(한글과는 후반부가 다소 다름-역주). 메시야를 보내심으로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가 이 낮은 세상에 평화를 도입했고, 그 사이에 평화로운 왕래를 개설하였다. 하나님께서 평화로이 우리에게 함께 하신다면, 모든 평화가 거기서 유래되어 나온다. 즉, 양심의 평화, 천사들과의 평화, 유대인과 이방인과의 평화가 온다. 여기에서의 평화란 “모든 선”을 뜻한다. 즉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으로부터 우리에게 넘쳐 나오는 모든 선이다. 우리가 가지고 있거나 희망하고 있는 모든 “선”은 하나님의 “선한 의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 자비의 위안을 누리고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것에 대한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과 부조화되는 길에서는 어떤 “평화”도 “선”도 기대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모든 죄악의 길에도, 또 중보자에 의하지 아니하는 모든 길에도 평화나 선은 없다. 여기에 보면, 지극히 엄숙하게 “선포된 평화”가 있다. 원하는 모든 자는 와서 그 평화를 향유하게 하라. 땅 위에 평화가 있는 것은 “선의(善意)의 사람”(어떤 사본은 그렇게 되었다)에게이다 ─ evn avnqrw,poij라고 했다. 또한 “하나님께 대해 선의를” 가지고 있는 자요, 기꺼이 화해되고자 하는 자들에게 평화가 있다. 또는 하나님의 자비의 그릇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선의를 가지신 그들에게이다. 천사들이 사람에게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으며, 사람들의 복지와 행복을 얼마나 귀히 여기고 있는가를 보라. 그리스도는 비록 천사들의 성질을 벗어버리고 오셨지만,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을 얼마나 기뻐하는가를 보라. 그렇다면, 우리들이야말로 이 사건으로 크게 감동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땅에는 평화로다”하는 이것은 “신실한 말”이요, 무수한 천사들의 무리가 실증한 바요, “모두가 받아들일 가치가 있는” 말이다. Ⅴ. 목자들이 갓난 구주를 방문했다. 1. 그들은 의논을 했다(15절). 천사들이 찬송을 부르고 있는 동안은, 그들은 오직 거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사들이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자”(천사들은 나타나서 결코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의 용무를 마치면 즉시 돌아간다), “목자들은 서로 ‘베들레헴으로 가자’고 이야기했다.” 그들은 의논을 했다(15절). 천사들이 찬송을 부르고 있는 동안은, 그들은 오직 거기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나 “천사들이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자”(천사들은 나타나서 결코 오래 머물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의 용무를 마치면 즉시 돌아간다), “목자들은 서로 ‘베들레헴으로 가자’고 이야기했다.” 윗 세상에서 온 특별한 전갈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을 때에는, 이미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갈로 스스로 노력하여 우리의 신앙을 돈독히 하고,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지속하도록 그것을 이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그리고 관찰과 경험으로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는 그 전갈(메시지)을 확증한다는 것은, 결코 천사들의 증언이나 거룩한 증언 그 자체에 대한 모독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목자들은 의심쩍은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주목하자. 즉 “가서 정말인지 아닌지 알아봅시다.”라고 말하지 않고, 오히려 확신을 가지고 “가서 이루어진 이 일을 봅시다”라고 말했다. “주께서” 그렇게 “그것을 그들에게 알리셨거늘,” 거기에 또 무슨 의심의 여지가 있겠는가? “천사들에 의해서 되어진 말은 견고하고” 틀림없는 진실이다. 2. 그들은 즉시 방문했다(16절). 지체없이 그 장소로 “빨리 갔다.” 아마 천사가 성경에 기록된 것(사관의 구유로 가라는 따위) 이상으로 그들에게 자세히 일러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마리아와 요셉을,” 그리고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냈다.” 그들이 찾아낸 “그리스도 주”의 빈한하고 초라한 모습이 그들의 신앙에 자극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아주 가난하고 빈천한 처지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안락한 생활을 직접 체험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즉시 방문했다(16절). 지체없이 그 장소로 “빨리 갔다.” 아마 천사가 성경에 기록된 것(사관의 구유로 가라는 따위) 이상으로 그들에게 자세히 일러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서 “마리아와 요셉을,” 그리고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냈다.” 그들이 찾아낸 “그리스도 주”의 빈한하고 초라한 모습이 그들의 신앙에 자극을 주지 않았다. 그들은 아주 가난하고 빈천한 처지에서도 하나님과 교제하는 안락한 생활을 직접 체험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목자들은 요셉과 마리아에게 자기들이 보았던 천사들의 환상을 이야기해 주었을 것이고, 자기들이 들은 천사들의 노래도 말해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그것이야말로 그들에게는 큰 용기를 주었던 것이었다. 그 동네에서 제일가는 귀부인이 찾아오는 것 이상의 격려가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한 요셉과 마리아는 자기들이 그 아이에 관해서 보았던 환상들을 들려주었을 것이다. 그래서 자기들의 경험을 서로 나눔으로써, 그들은 서로의 신앙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Ⅵ. 목자들은 이 보도를 퍼뜨리려고 애썼다(17절). “그들이 그것을 보고” 즉 “그리스도 주”라는 것을 믿을 만한 것을 그 아기에게서 아무 것도 보지 못했지만, 그들은 지극히 만족했다. 그 아기의 사정이 비록 자기들처럼 초라했지만, 천사들이 자기들에게 일러 준 사실과 일치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마치 문둥이들이 주장했듯이(왕하 7:9 에 보면, “오늘은 좋은 소식의 날이로다. 우리가 침묵을 지켜서는 안 되리라”). 그들은 “자기들에게 들려진” 이야기의 전모를 “널리 알렸다.” 즉 “천사”와 요셉과 마리아가 “이 아기에 관하여” 알려 준 것, 곧 그가 구주요, “그리스도 주”라는 사실, 그리고 그에게는 “땅의 평화”가 있고, 그는 “성령의 권능으로 잉태되었던” 자요,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 등을 알렸다. 그들은 이 소식을 모든 자들에게 고했고, 그것에 대한 그들의 증언은 서로 일치했다. 그리고 지금 그가 “세상에 와” 있는 이 때에도, 세상이 비록 그를 모르고 있다면, 그것은 “그들 자신의 잘못”이다. 왜냐하면 세상에 충분한 통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사실은 사람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는가? 진실로 왜 “사람들 모두가 목자들이 말하는 것을 듣고 기이히 여겼는가?”말이다(18줄어들). 목자들은 솔직담백하고 “정직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감히 남을 속이리라는 의심을 받을 위인들이 못된다. 그러므로 그들의 말은 믿을 만하며, 그들의 말이 참이라면, 메시야가 왕궁이 아니라, “말구유에”났다는 사실을 듣는 자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천사들이 그 소식을 그렇게 “초라한 목자들”에게 알려 주면서 대제사장에게는 알리지 않은 사실도 의아하게 여겼을 것이 틀림없다. 그들은 이상히 여겼다. 그러나 구주와 구주에 대한 자기들의 의무, 또는 그로 인해 얻을 자기들의 유익에 대해서 “더 이상 묻지”않았다. 오히려 그 사건을 “9일간의 기사(奇事)”처럼 방울져 떨어지게 했다. 오. 그 세대들의 경이로운 어리석음이여 ! 그들이 그토록 고의적으로 “자기들의 눈을 담아버렸으니,” 그때 그들의 평화에 속하는 일이 그들에 논에 숨겨졌다”는 것은 정당한 일이었다. Ⅶ. 그들의 말을 믿고, 그것을 이용하고 그들의 인상을 받아들인 자들도 있다. 1. 동정녀 마리아는 그들의 말을 자기의 “개인적인 명상”의 제목으로 삼았다. 그녀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고 생각했다”(19절). 그녀는 증거를 종합하고 소중히 생가하며, 그녀에게 앞으로 닥쳐올 새로운 사실들과 비교하려 했다. 그녀의 자기의 정절이 의심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정절을 밝혀 주기를 바라고 침묵하고 기다렸듯이, 이제는 자기의 영예로 드러났지만, 역시 하나님께서 영예를 공표하기를 맡기고 침묵을 지켰다. 자기가 해산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천사들만 알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도 충분한 만족이었다. 동정녀 마리아는 그들의 말을 자기의 “개인적인 명상”의 제목으로 삼았다. 그녀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고 생각했다”(19절). 그녀는 증거를 종합하고 소중히 생가하며, 그녀에게 앞으로 닥쳐올 새로운 사실들과 비교하려 했다. 그녀의 자기의 정절이 의심을 받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자기의 정절을 밝혀 주기를 바라고 침묵하고 기다렸듯이, 이제는 자기의 영예로 드러났지만, 역시 하나님께서 영예를 공표하기를 맡기고 침묵을 지켰다. 자기가 해산했다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고 천사들만 알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도 충분한 만족이었다.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들은 간직할 값어치가 있고, 그것을 안전히 지키는 길은 “그것을 깊이 생각하는” 것임을 명심하자. 명상이란 기억을 돕는 최선의 도움이 된다. 2. 목자들은 그 사실들을 자기들의 보다 더 “공개적인 찬양”의 제목으로 삼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일에 감동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들 자신은 달랐다. 그들은 거룩한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20절). 그들이 알려 준 보도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무관심했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께 돌린 감사를 기쁘게 받으셨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천사에게 “들은 것”으로 인하여, 또 “구유에 있는” 아기를 “그들이 본” 사실로 인하여, 그리고 자기들이 막 들었을 때 듣던 바대로 그 아기가 “강보에 싸여” 있음을 본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 ─ 비록 그는 극단의 겸비의 상태에 있었지만 ─를 본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 후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그의 “구유”가 어떤 자들에게는 “어리석음”이요 “걸림돌”이나, 또 어떤 자들에게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감탄과 찬송을 보낸다. 목자들은 그 사실들을 자기들의 보다 더 “공개적인 찬양”의 제목으로 삼았다. 다른 사람들은 그 일에 감동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그들 자신은 달랐다. 그들은 거룩한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갔다”20절). 그들이 알려 준 보도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무관심했을지 모르나, 하나님은 그들이 하나님께 돌린 감사를 기쁘게 받으셨을 것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천사에게 “들은 것”으로 인하여, 또 “구유에 있는” 아기를 “그들이 본” 사실로 인하여, 그리고 자기들이 막 들었을 때 듣던 바대로 그 아기가 “강보에 싸여” 있음을 본 것으로 인해서, 하나님께 찬송을 드렸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리스도 ─ 비록 그는 극단의 겸비의 상태에 있었지만 ─를 본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이 후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그의 “구유”가 어떤 자들에게는 “어리석음”이요 “걸림돌”이나, 또 어떤 자들에게는 그 안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 감탄과 찬송을 보낸다.

2:21 성전에 현신(現身)한 그리스도 (누가복음 2:21-24) 우리 주 예수는 “여자에게서 낳으므로” “율법 아래 있게” 되었다(갈 4:4). 그는 아담의 딸의 아들이므로 “모세”의 율법 아래 있게 되었다. 그는 자기의 목에 그 멍에를 메었다. 그러나 그것은 실로 무거운 멍에였고, “장차 올 선한 것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었다. 또한 율법의 제도는 사도 바울의 말대로 “약하고 천한 세상의 초등 학문”(갈 4:9)이지만, 그리스도는 거기에 복종하셨으니, 그것은 그가 더 좋은 은총을 가지고 그것을 취소시켜, 우리에게서 제거하려 함이었다. 이제 여기서 우리는 그가 저 “율법 아래 있게” 되시고 거기에 순복한 모습을 두 가지 볼 수 있다. Ⅰ. 그는 율법이 지정한 날에 “할례를 받았다”(21절). 곧 “제 8일이 다 되었을 때”, 곧 그가 난 지 7 밤이 지난 그날에 그들은 그에게 “할례를 행했다.” 1. 그 의식은 “고통스런” 수술이었다(“필경 당신의 피의<잔인한> 남편이니이다.” 출 4:25). 그러나 그는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감수하셨을 것이다. 아니 “그러므로” 그는 거기에 순복하사, 그의 초기의 복종, 곧 피 흘리기까지 견디는 복종을 보여 주신 것이다. 이 때 그는 방울방울 자기의 피를 흘렸다. 그러나 후에도 그는 그 피를 붉은 시냇물처럼 흘렸다.

2. 그 할례는 본래 “이방인”을 전제로 하고, 그를 하나님과의 계약에 받아들여지게 하는 의식이었으나, 그는 항상 그의 “사랑 받는 아들”이었다. 아니 그것은 “죄인”을 상대로 하는 의식이지만 ─ 죄인의 그 의식으로 그의 더러움을 제거해야 된다 ─ 그에게는 잘라버려야 할 아무런 불순함이 조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복종했다. 아니 “그러므로” 그는 거기에 복종했다. 즉 “육체”의 모양뿐만 아니라 “죄 있는 육체”의 모양을 가지고자 하셨기 때문이다(롬 8:3).

3. 그렇게 하면 그는 스스로 “율법 전체에 빚진 자”가 되지만(갈 9:3), 그는 복종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복종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은 자유인으로 태어났지만 종의 형체를 지고 싶어서였다. 그 의식은 “고통스런” 수술이었다(“필경 당신의 피의 남편이니이다.” 출 4:25). 그러나 그는 우리를 위하여 그것을 감수하셨을 것이다. 아니 “그러므로” 그는 거기에 순복하사, 그의 초기의 복종, 곧 피 흘리기까지 견디는 복종을 보여 주신 것이다. 이 때 그는 방울방울 자기의 피를 흘렸다. 그러나 후에도 그는 그 피를 붉은 시냇물처럼 흘렸다.그 할례는 본래 “이방인”을 전제로 하고, 그를 하나님과의 계약에 받아들여지게 하는 의식이었으나, 그는 항상 그의 “사랑 받는 아들”이었다. 아니 그것은 “죄인”을 상대로 하는 의식이지만 ─ 죄인의 그 의식으로 그의 더러움을 제거해야 된다 ─ 그에게는 잘라버려야 할 아무런 불순함이 조금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복종했다. 아니 “그러므로” 그는 거기에 복종했다. 즉 “육체”의 모양뿐만 아니라 “죄 있는 육체”의 모양을 가지고자 하셨기 때문이다(롬 8:3).그렇게 하면 그는 스스로 “율법 전체에 빚진 자”가 되지만(갈 9:3), 그는 복종했다. 아니 “그렇기 때문에” 복종했다. 그것은 그가 자신은 자유인으로 태어났지만 종의 형체를 지고 싶어서였다. 그리스도가 할례를 받은 이유는 이렇다.

(1) 자기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인정하고, “육체로는 그리스도가” 그 민족의 “태생임”을 입증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을 친히 붙들어 주려” 함에서였다(히 2:16).

(2) 그가 친히 우리들의 죄의 담보물이 되어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자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구드윈(Goodwin) 박사의 말에 의하면, 할례는 우리의 “끈”인데, 그것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이 “율법에 빚진 자”임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자기가 할례를 받음으로써, 말하자면 자기의 손을 할례에 대시고, “우리를 위한 죄(속죄제물)가 되셨다.” 자기 자신이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인정하고, “육체로는 그리스도가” 그 민족의 “태생임”을 입증하고, “아브라함의 자손을 친히 붙들어 주려” 함에서였다(히 2:16).그가 친히 우리들의 죄의 담보물이 되어 우리의 안전을 지키는 자가 되고자 했기 때문이었다. 구드윈(Goodwin) 박사의 말에 의하면, 할례는 우리의 “끈”인데, 그것으로써 우리는 우리 자신이 “율법에 빚진 자”임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자기가 할례를 받음으로써, 말하자면 자기의 손을 할례에 대시고, “우리를 위한 죄(속죄제물)가 되셨다.” 의식(儀式)의 율법이 제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로써 그리스도는 소나 염소의 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피를 바칠 수 있게 끔 한 것이다. 제물은 미리 할례를 받지 않고는 바쳐질 수 없는 법이다.

(3) 그는 교회의 어린 자손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정당화시킴과 동시에 존귀히 여기기 위해서였다. 이 규례는 계약의 인을 치는 제도요, 할례와 마찬가지요(롬 4:11), 오늘날의 세례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의해서 생기는 의에 인을 치는 제도이다. 그리고 분명히 그가 제 8일에 할례를 받음은 그가 30세에 세례를 받음으로써 믿음 있는 자들의 자녀들의 세례를 그들이 성장하기까지 미루어 두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믿음 있는 자들은 자기 자식들을 유아기에 세례를 받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헌신케 하는 것을 중요한 일로 보게 하는 것이다. 의식의 변화가 실체를 바꾸지는 않는다. 그는 교회의 어린 자손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정당화시킴과 동시에 존귀히 여기기 위해서였다. 이 규례는 계약의 인을 치는 제도요, 할례와 마찬가지요(롬 4:11), 오늘날의 세례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의해서 생기는 의에 인을 치는 제도이다. 그리고 분명히 그가 제 8일에 할례를 받음은 그가 30세에 세례를 받음으로써 믿음 있는 자들의 자녀들의 세례를 그들이 성장하기까지 미루어 두게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믿음 있는 자들은 자기 자식들을 유아기에 세례를 받게 함으로써 하나님께 헌신케 하는 것을 중요한 일로 보게 하는 것이다. 의식의 변화가 실체를 바꾸지는 않는다. 관례에 따라 그가 세례를 받을 때에 명명식이 있었다. 그는 “예수” 혹은 “요수아”로 호칭되었다. “그가 모태에 있기 전에”(1:31) “그 천사가”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그렇게 이름지어 준”것이다. 그리고 천사는 나중에, 상정된 아버지 요셉에게도 말해 주었었다(마 1:21).

[1] 그것은 요한이란 이름처럼(골 4:11)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흔한 이름”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도 그는 “자기 형제들과 동등 됨”을 취하시고자 하셨다.

[2] 그것은 구약 성서에서 그를 상징해 주는 위대한 두 인물의 이름이었다. 즉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와 같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령관이었고, 가나안 정복자였다. 또한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이름이다. 그는 대제사장이므로 관을 쓰기에 적합했고 “자기의 보좌에 앉은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던 것이다(슥 6:11, 13).

[3] 그 이름은 그의 과업에 대해 중대한 의미를 주었다. 예수는 “구원자”를 의미한다. 그는 그의 신성의 영광으로부터가 아니라 그의 은혜로운 작정으로부터 중보자가 되기로 지명된 자였다. 그는 “구원을 가져온다.” 그것은 요한이란 이름처럼(골 4:11)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흔한 이름”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도 그는 “자기 형제들과 동등 됨”을 취하시고자 하셨다.그것은 구약 성서에서 그를 상징해 주는 위대한 두 인물의 이름이었다. 즉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와 같다. 그는 이스라엘의 사령관이었고, 가나안 정복자였다. 또한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이름이다. 그는 대제사장이므로 관을 쓰기에 적합했고 “자기의 보좌에 앉은 제사장”으로서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던 것이다(슥 6:11, 13).그 이름은 그의 과업에 대해 중대한 의미를 주었다. 예수는 “구원자”를 의미한다. 그는 그의 신성의 영광으로부터가 아니라 그의 은혜로운 작정으로부터 중보자가 되기로 지명된 자였다. 그는 “구원을 가져온다.” Ⅱ. 그는 정전에 “현신(現身)되었다.” 이것은 “그녀의 결례의 날이 찼을 때”(22절), 율법을 염두에 두고, 또 율법이 지정한 시기에, 그가 난 지 40일이 되는 날에 있었다. 많은 사본들과 신빙성 있는 사본들은 auvth/j를 auvtw/n으로 읽어서, “그들의 결례 날” 곧 어머니와 아기의 결례 날로 읽는다. 왜냐하면 율법의 원리가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는 씻어야 할 불순함이 없었지만, 할례를 받았듯이 결례식도 받았다. 그것은 그가 “우리를 위한 제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할례”로 ─ 우리가 그와 연합하여 교제하는 밀을 빌어 또 “손으로 만들어지지 않은”(골 2:11) 영적 할례로 ─ 우리가 “할례 받게” 되듯이, 역시 그리스도의 “정결함”을 통해서 우리도 우리가 세상에 나올 때 가지고 들어온 더러움과 부패에서 “영적으로 정결함”을 받게 된다. 이제 율법에 따라서, 1. 아기 예수는 장자이므로 “주께 드려졌다”(현신되었다). 즉 성전의 한 뜰에서 바쳐졌다. 그 율법이 여기에 인용되어 있다. “첫 해에 난 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칭하여야 하리라”(23절). 멸망시키는 천사가 애굽의 첫 태생을 죽일 때, 이스라엘의 첫 태생들은 특별히 보호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도 첫 해에 난자이므로, 그는 아론의 집의 후손 이상으로 확실한 권한에 의해서 제사장이었다. 아기 예수는 장자이므로 “주께 드려졌다”(현신되었다). 즉 성전의 한 뜰에서 바쳐졌다. 그 율법이 여기에 인용되어 있다. “첫 해에 난 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칭하여야 하리라”(23절). 멸망시키는 천사가 애굽의 첫 태생을 죽일 때, 이스라엘의 첫 태생들은 특별히 보호로 인하여 구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리스도도 첫 해에 난자이므로, 그는 아론의 집의 후손 이상으로 확실한 권한에 의해서 제사장이었다. 그리스도는 많은 형제들 중의 “장자”요, “주께 거룩한 자라고 칭함” 받는다. 다른 사람들은 결코 그런 적이 없다. 그러나 그는 다른 장자들처럼, “주께 드려졌다.” 비록 그는 이제 막 아버지의 품에서 떠나 왔지만, 제사장의 손으로 아버지에게 “드려졌다.” 제사장이 그 아버지에게 소개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제 그가 “주께 바쳐졌다”는 사실은 그가 자신을 중보자로서 주께 “드림”을 상징해 주는 것이다. 그때 그는 “주께로 이끌리고 나아가게” 된다(렘 30:21). 그러나 그는 율법에 따라 “대속을 보았다”(민 18:15). “처음 난 남자는 대속함을 받아야 하리니.” 그 값은 “5 세겔”이었다(레 27:6; 민 18:16) 그러나 가난한 자의 경우에는 제사장이 값을 감해 주든가 안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여기에 속전(贖錢)에 대한 말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주께 드려졌다.” 그것은 그가 “되돌아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의 “귀”는 평생토록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하나님의 “문설주”에 대고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그는 사무엘처럼 거기서 섬기기 위해 성전에 남아 있지는 않았지만, 사무엘처럼 “그가 사는 날 동안” “주께 바쳐졌다”. 또 “손으로 만들지 않은” 참된 성전에서 하나님을 섬겼다. 2. 그 어머니는 자기의 예물을 바쳤다(24절). 그녀가 장차 대(大) 제물이 될 자기의 아들을 주께 드렸으니, 다른 예물은 드리지 않아도 변명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지금은 효력이 없지만) “율법에 쓴 바대로”, 그녀는 “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비둘기들”을 바쳐야 했다. 능력이 있었더라면, 그녀는 “번제물로 어린양을 드리고, “속제물로 비둘기”를 바쳐야 한다. 그러나 가난하다면, 그래서 어린양을 살 돈이 없다면, 그녀는 “번제와 속죄제”를 위해 각각 한 마리씩 “두 마리의 비둘기”를 드려야 한다(레 12:6, 8). 그것은 우리가 언제나 특별한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그에게 대해 죄를 졌을 경우에는 슬픔과 수치를 감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그 두 경우에 모두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또 우리에게 언제나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감사나 죄로 인한 슬픔, 그 두 가지의 근거가 결여되어 있은 적이 없다. 그 어머니는 자기의 예물을 바쳤다(24절). 그녀가 장차 대(大) 제물이 될 자기의 아들을 주께 드렸으니, 다른 예물은 드리지 않아도 변명이 될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지금은 효력이 없지만) “율법에 쓴 바대로”, 그녀는 “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비둘기들”을 바쳐야 했다. 능력이 있었더라면, 그녀는 “번제물로 어린양을 드리고, “속제물로 비둘기”를 바쳐야 한다. 그러나 가난하다면, 그래서 어린양을 살 돈이 없다면, 그녀는 “번제와 속죄제”를 위해 각각 한 마리씩 “두 마리의 비둘기”를 드려야 한다(레 12:6, 8). 그것은 우리가 언제나 특별한 경우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자비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그에게 대해 죄를 졌을 경우에는 슬픔과 수치를 감지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기 위함이다. 그 두 경우에 모두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또 우리에게 언제나 하나님의 자비에 대한 감사나 죄로 인한 슬픔, 그 두 가지의 근거가 결여되어 있은 적이 없다. 그리스도는 우리와 같이 죄 속에서 “잉태되고” “출생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그의 사정은 우리들의 사정과 같지 않다. 그러나 그는 율법 아래 있게 되었으므로, 율법에 동의한 셈이다. “그리하여 그것이 그에게 모든 의를 이룸이 되었다.” 죄의 고백에 연합한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일이다. 그러므로 “누가 ‘내가 나의 마음을 깨끗케 하였노라’고 말할 수 있으리요?”

2:25 그리스도를 맞은 시므온과 안나 (누가복음 2:25-40) 그리스도가 자신을 낮춘 때에도, 그 겸비의 수치를 상쇄할 만한 영예를 여전히 받았다. “그의 태생의 비천함” 때문에 우리로 걸려 넘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먼저번에는 “천사들”이 그에게 찬양을 돌렸다. 그리고 지금은 그가 죄에서 출생한 다른 아기들처럼 성전에 바쳐진 것을 보고 우리로 불쾌히 여기지 못하게 하기 위해 시므온과 안나가 성령의 감동을 받아 그에게 찬양을 돌리고 있다. 성전에 있는 그리스도에게는 어떤 남다른 엄숙한 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오직 침묵을 지키고 다른 아이들과 숲에 그냥 있었던 것이다. Ⅰ. 시므온은 그에게 아주 영예로운 증언을 보냈다. 그 증언은 그 아기에게는 명예가 되었고, 그 부모에게는 격려가 되었다. 그것은 또한 제사장들이 구주를 알게 되는 행복한 서두가 될 수 있는 말이었다. 만일 “파수꾼”들이 눈이 멀지만 않았더라면, 이제 살펴 볼 것이 있다. 1. 시므온 혹은 시몬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기록이 있다. 그는 당시 예루살렘에 거주했고, 그의 경건심과 하나님과의 교제 때문에 이름난 자였다. 유대 학자들과 오랫동안 교제해 오던 어떤 학자들은, 이 때에 예루살렘에는 유명한 시므온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가 헬렐의 아들이요, 유대인들이 “라반” ─ 학자들에게 붙여 주는 최고의 칭호 ─ 이란 호칭을 최초로 받게 된 자라고 한다(그리고 그 칭호는 7명에게만 주어졌다고 한다). 그는 자기 아버지를 계승하여, 아버지가 세운 학교의 교장을 지냈고, 대(大) 산헤드린의 한회원이었다고 한다. 시므온 혹은 시몬에 대해 우리에게 말해 주고 있는 기록이 있다. 그는 당시 예루살렘에 거주했고, 그의 경건심과 하나님과의 교제 때문에 이름난 자였다. 유대 학자들과 오랫동안 교제해 오던 어떤 학자들은, 이 때에 예루살렘에는 유명한 시므온이 한 사람 있었는데, 그가 헬렐의 아들이요, 유대인들이 “라반” ─ 학자들에게 붙여 주는 최고의 칭호 ─ 이란 호칭을 최초로 받게 된 자라고 한다(그리고 그 칭호는 7명에게만 주어졌다고 한다). 그는 자기 아버지를 계승하여, 아버지가 세운 학교의 교장을 지냈고, 대(大) 산헤드린의 한회원이었다고 한다. 유대인들은 말하기를, 그는 “예언자의” 영을 받은 자요, 더욱이 메시야의 현세적 왕국에 대해서 유대인들이 일반적으로 품고 있던 견해와는 반대되는 증언을 했기 때문에 지위를 빼앗겼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그의 전승을 실은 책 미슈냐에는 시므온에 대한 언급이 없음을 그들은 지적한다. 그것은 그가 그들의 어리석은 행위를 지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거부하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이 당시에 그의 아버지 힐렐이 생존해 있었고, 더구나 유대 역사에 나타난 바에 의하면, 시므온 자신이 이 사건 훨씬 후대까지 살았다고 하는 점이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서는, 여기에 나온 시므온이 나이 많았다는 말이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의 말, “주의 종을 이제 평안히 하소서”는 그가 “지금” 죽어도 좋다는 뜻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가 그런 말을 했기 때문에 빨리 죽었다는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법이다. 사도 바울도 자기의 죽음이 “가까이”왔다고 말해 놓고도 여러 해를 더 살았다(행 20:25). 그 생각에 대한 또 하나의 이의는, 시므온의 아들은 바리새인인 가말리엘이고, 기독교의 적대자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 점에 대해서도,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신앙심 깊은 자가 바리새인 아들을 낳는다는 것은 생소한 일이 아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본문에 나타난 대로 하면,

(1)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자이다. 곧 인간에 대해서는 “의롭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경건했던” 자이다. 이 둘은 항상 병행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상대방의 좋은 친구가 된다. 그러나 하나가 다른 하나의 결함을 보충해 줄 수는 없다.

(2)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다.” 즉 메시야의 도래를 기다린 것인데, 오직 그분 안에서만 지금 학대받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은 위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에게 위로를 주는 위로의 저작자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위로”의 대상이요 근원이다. 그가 오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 그가 오리라는 것을 믿는 자들은 그의 도래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소망하며,” “인내하면서 희망한다.” 나는 다소 “성급한” 기다림 때문에 그것이 오기 전에 말을 해버릴 뻔 했도다. 시므온은 “의롭고” “경건한”자이다. 곧 인간에 대해서는 “의롭고” 하나님께 대해서는 “경건했던” 자이다. 이 둘은 항상 병행해야 한다. 그리고 서로 상대방의 좋은 친구가 된다. 그러나 하나가 다른 하나의 결함을 보충해 줄 수는 없다.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렸다.” 즉 메시야의 도래를 기다린 것인데, 오직 그분 안에서만 지금 학대받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은 위로를 찾을 수 있었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에게 위로를 주는 위로의 저작자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위로”의 대상이요 근원이다. 그가 오기까지는 긴 시간이 걸린다. 그가 오리라는 것을 믿는 자들은 그의 도래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소망하며,” “인내하면서 희망한다.” 나는 다소 “성급한” 기다림 때문에 그것이 오기 전에 말을 해버릴 뻔 했도다. 시므온은, 다니엘처럼. “책을 보고 깨달았다.” 즉 그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므로 이제 그 어느 때보다 큰 대망 중에 기다리고 있었다. 이미 오신 자를 아직도 기다리고 있는 불신 유대인들은 “이제껏 나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보기를 희망하노라”라는 말을 맹세나 엄숙한 주장으로 사용한다. 이스라엘의 위로는 기다려야 되는 것임을 기억하자, 또 기다릴 값어치가 있다는 것, 그리고 “기다린” 자들에게, 계속 기다리는 그 기다림에 큰 기쁨을 주리라는 것을 명심하자.

(3) “성령께”서 그에게 임했다. 성결의 영으로서 뿐만 아니라 예언의 영으로서 임한 것이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해졌다.” 그래서 그 자신이 위의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4) 성령은 그에게 은혜로운 약속을 주었다. 즉 그가 죽기 전에 메시야를 목격하리라고 했다(26절). 그는 구약 성서의 예언자들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상징했던 “그 시기”를 알아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가까이 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신탁”(원문의 뜻은 그렇다)을 받았다. 즉 메시야, 곧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는 신탁이다. “성령께”서 그에게 임했다. 성결의 영으로서 뿐만 아니라 예언의 영으로서 임한 것이다. 그는 “성령으로 충만해졌다.” 그래서 그 자신이 위의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성령은 그에게 은혜로운 약속을 주었다. 즉 그가 죽기 전에 메시야를 목격하리라고 했다(26절). 그는 구약 성서의 예언자들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상징했던 “그 시기”를 알아내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제 가까이 온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이 신탁”(원문의 뜻은 그렇다)을 받았다. 즉 메시야, 곧 “주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는 신탁이다. 신앙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눈으로 보는 자들, 그리고 그들만이 “죽음을” 용감하게, 두려움이 없이 “볼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그리스도가 성전에 바쳐져 있을 그 때에, 때맞추어 시므온이 들어왔다(27절). 바로 그때에, 요셉과 마리아가, 말하자면, 아기를 교회에 있는 장자의 명부에 등록시키려고 데리고 들어왔던 그때에, “성령의” 인도로 시므온이 성전으로 들어간 것이다. 시므온의 희망을 지원해 주던 바로 그 성령이 이제 그의 기쁨을 절정에 달하게 해줄 것이다. 그의 귀에 속삭임이 있었다. “이제 곧 성전으로 가라. 오랫동안 기다리던 자를 보게 되리라.” 그리스도가 성전에 바쳐져 있을 그 때에, 때맞추어 시므온이 들어왔다(27절). 바로 그때에, 요셉과 마리아가, 말하자면, 아기를 교회에 있는 장자의 명부에 등록시키려고 데리고 들어왔던 그때에, “성령의” 인도로 시므온이 성전으로 들어간 것이다. 시므온의 희망을 지원해 주던 바로 그 성령이 이제 그의 기쁨을 절정에 달하게 해줄 것이다. 그의 귀에 속삭임이 있었다. “이제 곧 성전으로 가라. 오랫동안 기다리던 자를 보게 되리라.” 그리스도를 보고 싶은 사람들은 그의 성전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거기에 가면 “너희가 찾고 있는 주”께서 홀연히 다가와서 “너희를 만나”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너희는 거기서 “그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3. 그는 이 사실을 목격함으로써 충만한 기쁨을 가졌다. “시므온이 그 아기를 안았다”(28절). 즉 그는 최대의 애정을 가지고 아기를 “포용했고,” 자기의 품에 안았으니, 최대로 자기의 심장 가까이로 끌어안았고, 이것이야말로 기쁨이 충만했던 일이다. 그는 “아기를 안고” 그 아기를 주께 드렸다고 어떤 자는 생각한다. 또 그것은 제사장의 역할이었든가 부모를 대신한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옛 사본들은 시므온 자신이 한 제사장이었다고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사실을 목격함으로써 충만한 기쁨을 가졌다. “시므온이 그 아기를 안았다”(28절). 즉 그는 최대의 애정을 가지고 아기를 “포용했고,” 자기의 품에 안았으니, 최대로 자기의 심장 가까이로 끌어안았고, 이것이야말로 기쁨이 충만했던 일이다. 그는 “아기를 안고” 그 아기를 주께 드렸다고 어떤 자는 생각한다. 또 그것은 제사장의 역할이었든가 부모를 대신한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러 옛 사본들은 시므온 자신이 한 제사장이었다고 말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가 우리에게 준 그리스도에 관한 기록을 우리가 산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리스도에게 대해 복음이 우리에게 주는 은혜를 사랑과 겸손으로 받아들일 때, 그때 우리는 “그리스도를 안는” 것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볼 자에게 약속된 것이다. 그러나 “약속” 것보다는 “실현된” 것이 더 위대하다. 그는 자기의 팔로 그리스도를 안았다. 4. 시므온은 이에 엄숙한 선언을 했다. “그는 하나님을 찬송했다.” 그래서 “주여, 이제 주의 종을 편안히 놓아주옵소서”라고 했다(29-32절).

(1)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기쁨에 넘치는 전망을 했다. 그리고 생에 대한 사랑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초월하게 되었다(이것은 큰 수확이다). 아니, 생을 경건히 경멸할 수 있게 되었고, 죽음을 소망하게까지 되었다. “주여, 당신의 종을 떠나게 하옵소서. 나의 눈이 죽기 전에 보리라고 약속된 그 구원을 보았기 때문이니이다.”

[1] 여기에 하나님은 “그의 말에 신실한” 분임에 대한 인정이 있다. 솔로몬도 고백했듯이(왕상 8:56), 하나님의 선한 약속은 한 조각도 실패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다 희망을 걸었던 사람치고 그 희망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

[2] 그 사실에 대한 감사가 있다. 그는 많은 예언자들과 왕들이 보기를 원했으나 보지 못한 그 구원을 자기의 팔에 안아 보게 된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했다.”

[3] 신앙의 고백이 있다. 즉 자기의 품에 안긴 이 아기는 “구원자”, 곧 “구원” 자체임을 고백했다. 그는 “당신(우리 성경에는 ‘주’)의 구원”, 당신이 지시하신 구원, 즉 깊은 계획으로 “당신이 예비하신 그” 구원이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원이 “오기”까지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렸으나, 그것은 아직도 “예비”되는 중임을 고백했다.

[4] 그것은 이 세상에 대한 작별이다. “이제 주의 종을 떠나게 하옵소서. 이제 나의 눈이 이 광경을 보는 축복을 받았사오니, 눈을 감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세상의 것을 더 이상이 보지 않게 하옵소서.” 눈은 “그리스도를 보기”까지는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전 1:8). 그런데 지금이 그 만족을 찾은 때이다. 그리스도를 품에 안고 있고, 그 눈으로 구원을 보는 자에게야 이 세상이란 얼마나 초라해 보일까 ! 이제 나의 모든 친구, 친척들, 이 세상에서의 나의 모든 즐거움과 직업, 심지어는 성전까지라도 작별을 고하리라는 것이다.

[5] 그것은 죽음에 대한 환영이다. “이제 주의 종을 떠나게 하소서.” 죽음이란 작별이란 것, 즉 영혼이 몸을 벗어나고, 이 감각의 세계를 떠나 여의 세례로 가는 작별이란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임을 명하기까지는 우리는 떠날 수 없다. 우리는 그의 “종”이므로,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다 채우기 전에는 그의 일을 그만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시므온은 이에 엄숙한 선언을 했다. “그는 하나님을 찬송했다.” 그래서 “주여, 이제 주의 종을 편안히 놓아주옵소서”라고 했다(29-32절).그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기쁨에 넘치는 전망을 했다. 그리고 생에 대한 사랑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초월하게 되었다(이것은 큰 수확이다). 아니, 생을 경건히 경멸할 수 있게 되었고, 죽음을 소망하게까지 되었다. “주여, 당신의 종을 떠나게 하옵소서. 나의 눈이 죽기 전에 보리라고 약속된 그 구원을 보았기 때문이니이다.”여기에 하나님은 “그의 말에 신실한” 분임에 대한 인정이 있다. 솔로몬도 고백했듯이(왕상 8:56), 하나님의 선한 약속은 한 조각도 실패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에다 희망을 걸었던 사람치고 그 희망을 부끄럽게 여기게 되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는 것을 명심하자.그 사실에 대한 감사가 있다. 그는 많은 예언자들과 왕들이 보기를 원했으나 보지 못한 그 구원을 자기의 팔에 안아 보게 된 사실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했다.”신앙의 고백이 있다. 즉 자기의 품에 안긴 이 아기는 “구원자”, 곧 “구원” 자체임을 고백했다. 그는 “당신(우리 성경에는 ‘주’)의 구원”, 당신이 지시하신 구원, 즉 깊은 계획으로 “당신이 예비하신 그” 구원이니다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원이 “오기”까지에는 그렇게 긴 시간이 걸렸으나, 그것은 아직도 “예비”되는 중임을 고백했다.그것은 이 세상에 대한 작별이다. “이제 주의 종을 떠나게 하옵소서. 이제 나의 눈이 이 광경을 보는 축복을 받았사오니, 눈을 감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이 세상의 것을 더 이상이 보지 않게 하옵소서.” 눈은 “그리스도를 보기”까지는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한다(전 1:8). 그런데 지금이 그 만족을 찾은 때이다. 그리스도를 품에 안고 있고, 그 눈으로 구원을 보는 자에게야 이 세상이란 얼마나 초라해 보일까 ! 이제 나의 모든 친구, 친척들, 이 세상에서의 나의 모든 즐거움과 직업, 심지어는 성전까지라도 작별을 고하리라는 것이다.그것은 죽음에 대한 환영이다. “이제 주의 종을 떠나게 하소서.” 죽음이란 작별이란 것, 즉 영혼이 몸을 벗어나고, 이 감각의 세계를 떠나 여의 세례로 가는 작별이란 것을 명심하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해임을 명하기까지는 우리는 떠날 수 없다. 우리는 그의 “종”이므로, 우리가 우리의 시간을 다 채우기 전에는 그의 일을 그만 둘 수 없기 때문이다. 모세에게는 가나안을 보리라는 약속이 있었고, 그것을 보게 되면 “죽으리라”고 했다. 그러나 그는 그 말씀을 변경시켜 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신 3:24, 25). 시므온에게는, 그가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는 약속이 있었다. 그는 그 말이 겉으로 표현된 것을 넘어서서, 자기가 그리스도를 보게 되면 죽게 되리라고 암시적으로 해석했을 것이다. “주여, 이제 되었습니다. 나를(세상을) 떠나게 하소서”라고 그는 말했다. 여기서 살펴 볼 것이 있다. 첫째, 선한 사람에게 죽음이란 얼마나 “위안을 주는” 것인가.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자격을 그대로 가지고) 수고로운 곳을 떠나 쉬는 곳으로 떠난다. 그는 “평안히” 떠난다. 즉 하나님과의 평화(화목), 자신의 양심과의 평화를 누리면서 떠난다. 또한 죽음과의 “평화” 속에서, 죽음과 잘 화목하고서, 그것을 잘 알고서 떠난다는 것이다. 그는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에 따라 떠났듯이(신 34:5),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떠난다. 하나님의 계율의 말씀은, “올라가라, 그리고 죽으라”는 것이었다(모세의 경우). 그런데 약속의 말씀은 “내가 다시 와서 너를 내게로 영접하리라”는 것이다. 둘째, 이러한 위안의 근거는 무엇인가? “나의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기 때문이니라.” 이것은 야곱이 “이제 나를 죽게 하옵소서. 내가 주의 얼굴을 뵈었음이니이다”라고 말했듯이, 그 광경에 대한 큰 만족감, 그 이상의 것을 뜻해 준다.(시므온의) 말은 죽음 저편에 있는 행복상에 대해 믿음에 찬 대망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는 지금 이 구원을 통해서 그 광경을 보았던 것이며, 그것 때문에 죽음에 대한 공포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죽음을 “유익하게” 만들었다(빌 1:21).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들은 죽음도 기쁨으로 맞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2) 그는 교회와 세상에 대해 아름다운 전망을 했다. 이 구원은,

[1] 세상에 축복이 될 것이었다. 그 구원은 한 쪽 구석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민의 얼굴 앞에 예비(준비)되어” 있는 것이요, 알려질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흑암에 앉아 있는 “이방인들을 비추는 빛”이 될 구원이었다. 그리하여 그들도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되고, 그를 통하여 저 세상을 알게 된다. 이 본문은 “내가 너를 이방인들에게 빛으로 주리라”는 이사야 49장 6절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촛대의 초가 아니라 세상의 빛으로, “의의 태양”으로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

[2] 그것은 교회에도 축복이 된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했다. 메시야가 자기들의 지파 중에서 연원되었고, 그들 중에서 났고, 살았다는 사실이 유대 민족의 영광이었다. 그는 참으로 영적으로 이스라엘인인 사람들의 “영광”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그러할 것이다(사 60:19). 그들은 그분 안에서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 “주안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의롭게 되고 영화롭게 되리라”(사 45:25). 그는 교회와 세상에 대해 아름다운 전망을 했다. 이 구원은,세상에 축복이 될 것이었다. 그 구원은 한 쪽 구석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만민의 얼굴 앞에 예비(준비)되어” 있는 것이요, 알려질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흑암에 앉아 있는 “이방인들을 비추는 빛”이 될 구원이었다. 그리하여 그들도 그리스도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가지게 되고, 그를 통하여 저 세상을 알게 된다. 이 본문은 “내가 너를 이방인들에게 빛으로 주리라”는 이사야 49장 6절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유대인들의 촛대의 초가 아니라 세상의 빛으로, “의의 태양”으로 오신 분이기 때문이다.그것은 교회에도 축복이 된다.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했다. 메시야가 자기들의 지파 중에서 연원되었고, 그들 중에서 났고, 살았다는 사실이 유대 민족의 영광이었다. 그는 참으로 영적으로 이스라엘인인 사람들의 “영광”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토록 그러할 것이다(사 60:19). 그들은 그분 안에서 “영광을” 누리게 되리라. “주안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자손이 의롭게 되고 영화롭게 되리라”(사 45:25).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명령하심으로써, 그는 “이방인들을 비추는 빛”이 친히 되셨다. 그리고 그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신 그 때에, 그는 친히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 되셨다. 5. 그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찬양을 보냄으로써, 그 아기에 관한 예언을 했다. 그들은 이 아기에 관해서 그가 아주 자세하고도 명백한 말로 한 “모든 말들을 기이히 여겼다”(53절). 그는 요셉과 마리아에게 찬양을 보냄으로써, 그 아기에 관한 예언을 했다. 그들은 이 아기에 관해서 그가 아주 자세하고도 명백한 말로 한 “모든 말들을 기이히 여겼다”(53절). 그리고 그들은 자기들에게 들려진 그 말에 감동을 받았고, 그것으로써 자기들의 신앙을 더욱 돈독히 했으므로, 여기에 그들에 대한 말이 나온다.

(1) 시므온은 그들이 왜 즐거워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그들을 축복했다”(34절)고 했으므로, 그는 이 아기와 관계를 맺는 영광을 누린 자들에게, 그리고 그를 양육할 책임을 받은 자들에게 축복을 선언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해 줍시사”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축복해 주기를 바랐다. 시므온은 그들이 왜 즐거워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가르쳐 주었다. “그는 그들을 축복했다”(34절)고 했으므로, 그는 이 아기와 관계를 맺는 영광을 누린 자들에게, 그리고 그를 양육할 책임을 받은 자들에게 축복을 선언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해 줍시사”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축복해 주기를 바랐다. 그들은 이 아기가 자기들에게 위로와 영광이 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축복이 될 자이기 때문에, 기뻐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 아기는 “이스라엘 중에서 다시 일어나는 많은 자들을 위해” 세움을 입었다. 즉 죄에서 죽어 매장되었던 많은 자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박해받고 슬픔과 절망 속에 빠져 있는 많은 자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 왔다. 그는 또한 “다시 흥하는(일어나는)” 자들에게와 똑같이 “패하는” 많은 자들을 위해서 세움을 입었다. 그는 eivj ptw/sin kai. avna,stasin ─ “그들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서, 그들의 패함이 되고자 하여” 세움을 입었다. 그들을 낮추고 비열하게 하고, 자신(自信)에서 이탈시키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의지함으로써 굳게 되게 하고자 함이다. 따라서 그가 상처를 입히시고 다시 고치시며, 바울은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난다.

(2) 시므온은 또한 그들이 왜 “두려워하면서 기뻐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메시야의 나라를 두고 옛부터 전해오던 충고에 따른 것이다(시 2:11). 요셉과 특히 마리아가, 이 풍성한 계시 때문에 “자고(自高)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기에 그들을 위한 “육체의 가시,” 그들의 기쁨에 대한 완화제가 있다.

[1] 그리스도가 이스라엘에게 축복이 될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넘어지는(패하는) 자들을 위해 세우심을 받았으므로,” 이스라엘 중에는 넘어질 자들도 있다. 그들의 타락이 그를 자극시키고 괴롭히고 분노하게 되어, 그들의 죄와 패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해서 더욱 악화될 것이다. 길르앗의 향료로 자기들에게 유해한 독을 제조하고, 구원의 반석에다 자기들의 영혼을 메어치는 많은 자들에게는 이 진귀한 주춧돌이 “걸림돌”이 되고 말 것이다. 시므온은 또한 그들이 왜 “두려워하면서 기뻐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그것은 메시야의 나라를 두고 옛부터 전해오던 충고에 따른 것이다(시 2:11). 요셉과 특히 마리아가, 이 풍성한 계시 때문에 “자고(自高)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여기에 그들을 위한 “육체의 가시,” 그들의 기쁨에 대한 완화제가 있다.그리스도가 이스라엘에게 축복이 될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넘어지는(패하는) 자들을 위해 세우심을 받았으므로,” 이스라엘 중에는 넘어질 자들도 있다. 그들의 타락이 그를 자극시키고 괴롭히고 분노하게 되어, 그들의 죄와 패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의해서 더욱 악화될 것이다. 길르앗의 향료로 자기들에게 유해한 독을 제조하고, 구원의 반석에다 자기들의 영혼을 메어치는 많은 자들에게는 이 진귀한 주춧돌이 “걸림돌”이 되고 말 것이다. 이것은 저 예언을 가리키는 말이다(사 8:14, 15). 즉 “그는 어떤 사람에게는 피난처가 되나 어떤 자들에게는 덫이 된다”고 했다(벧전 2:7, 8).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이 자기들에게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될 자들이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즐겁듯이, 그와 그의 복음이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향기가 되는 자들도 많다는 것을 생각하면 애석한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그는 “하나의 표적(a sign)”으로, 즉 어떤 자에게는 경탄의 대상으로, 또 어떤 많은 사람들에게는 비방의 대상으로 세워졌다. 그의 공적 사역 중에는 많은 “눈이 그를”보았고, 그는 표적이었다. 그러나 그를 “거스르는 혀”가 많이 있었다. 즉 죄인들의 박해와 비난이 있었다. 그는 끊임없이 트집잡히고, 욕을 먹었다. 그리고 이 결과로 많은 사람들의 속생각이 밝혀지고 만다(35절). 즉 이 일 때문에 사람들은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를 밝히 폭로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가까이함으로써 자기들의 은밀하고 착한 마음씨를 드러내게 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일이 없으면 전혀 드러나지 않을지도 모르겠으나, 그리스도에게 적대심을 가지며, 그에게 분노함으로서 자기들의 은밀한 타락과 악한 마음씨를 드러내게 된다. 사람들은 그들의 속마음, 즉 그리스도에 대한 자기들의 생각에 의해서 판단을 받게 되리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그의 “대적자들”인가? 이것이 판단의 기준이 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의도”를 분별하는 분별자요, 그것으로써 우리는 우리를 알게 되고, 후에는 그것에 의해서 심판을 받게 된다.

[2] 그리스도가 그의 어머니에게 위안이 될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나치게 자랑하지 말지니, “그대의 심령을 칼이 찌르리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또한 수난 받는 예수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그의 어머니에게 위안이 될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을 지나치게 자랑하지 말지니, “그대의 심령을 칼이 찌르리라”는 사실 때문이다. 그는 또한 수난 받는 예수이다. 그리고, 첫째, “너(마리아)는 그의 다른 어떤 친구들보다도 그와 더불어 고난을 받으리다. 그것은 네가 그에게 깊은 동정심을 가지고 있고 인간 관계가 가깝고, 강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니라.” 그가 학대를 받는 때가 그녀에게는 “골수에 칼”이 다니다. 그녀가 그의 십자가 곁에 서서 그의 죽음을 지켜보고 있던 그 때에, 그녀의 내적 비탄은 너무나 커서, “칼이 내 마음을 찔렀도다”라고 진실로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너는 “그를 인하여 고난을 받으리라.” 많은 사람들은 이 말을 마리아의 순교에 대한 예언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어떤 옛 학자들은 그녀의 순교로써 이 말이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인간의 가장 큰 희열과 이 세상에서의 출세, 그 한가운데 인간을 속박하는 고난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좋을 것이다. Ⅱ. “안나” 혹은 “안”이라고 하는 “여(女)예언자”가 그(예수)를 알아보았다. “남자”나 “여자”나 그를 믿기로 초대받은 자들은 그를 증거 할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다음 사실을 관찰해 보자. 1. 이 안나란 여인에 대해서 나온 본문의 기사를 보자.

(1) 그녀는 “여(女)예언자”였다. 이제 예언의 영이 소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3백년 이상이나 예언의 영이 끊어졌었다. 아마 이 구절은, 그녀가 다른 여인들보다 성경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젊은 여인들”에게 하나님께 속한 일을 가르치는 것으로 업을 삼았다는 것을 의미해 주는 말일 것이다. 교회가 아무리 타락한 시절이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증언이 없이” 세상을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

(2) 그녀는 “바누엘의 딸”이었다. 그로티우스(Grotius)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아버지의 이름은 야곱의 “바누엘” 혹은 “브누엘”(창 32:30)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즉 그 말의 신비가 이제, 말하자면 우리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게 된 이때에도 우리의 목숨이 보존되었으니, 지금에서야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은혜로운”이란 뜻이다.

(3) 그녀는 “아셀 지파”의 출신이었다. 아셀 지파는 갈릴리에서 살았다. 그래서 어떤 자는 이 사실을 “갈릴리에서는 예언자가 나온 일이 없다”는 말에 대한 논박으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갈릴리에서야말로 예언이 다시 소생되자마자 즉시 예언자가 난 셈이다.

(4) 그녀는 “나이가 많았다.” 84년을 과부로 살았다. 혹자는 그녀가 84년을 과부로 지낸 것을 보아, 그녀는 젖어도 100세가 넘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다른 자들은, 여인이 안나 처럼 나이가 많으면 안나와 같은 금식기도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녀의 나이는 실상 84세이고, 긴 기간을 과부로 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녀는 결혼한 지 7년만에 젊은 과부가 되었지만, 재혼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그냥 과부로 지냈다. 이 사실은 그녀를 칭찬하기 위해 언급된 것이다.

(5) 그녀는 항상 성전 “안에서”, 적어도 “성전”에서 수종을 들며 살았다. “혹자는, 그녀가 기숙을 했다고 한다. 즉 성전 뜰의 구빈원에 살면서 성전의 자선으로 연명했거나, 여(女)예언자로서 거기에 거처를 정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곳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는 자들과 상의하고 충고를 받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은, 그녀가 예배 시간에만은 항상 성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선한 사업을 할 필요가 생기면, 그는 언제나 그 일에 도움을 주곤 했다는 것이다. 이 안나란 여인에 대해서 나온 본문의 기사를 보자.그녀는 “여(女)예언자”였다. 이제 예언의 영이 소생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까지 3백년 이상이나 예언의 영이 끊어졌었다. 아마 이 구절은, 그녀가 다른 여인들보다 성경을 잘 이해하고 있어서 “젊은 여인들”에게 하나님께 속한 일을 가르치는 것으로 업을 삼았다는 것을 의미해 주는 말일 것이다. 교회가 아무리 타락한 시절이라도, 하나님은 “당신의 증언이 없이” 세상을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그녀는 “바누엘의 딸”이었다. 그로티우스(Grotius)의 말에 의하면, 그녀의 아버지의 이름은 야곱의 “바누엘” 혹은 “브누엘”(창 32:30)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즉 그 말의 신비가 이제, 말하자면 우리가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을 맞대고 보게 된 이때에도 우리의 목숨이 보존되었으니, 지금에서야 밝혀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름은 “은혜로운”이란 뜻이다.그녀는 “아셀 지파”의 출신이었다. 아셀 지파는 갈릴리에서 살았다. 그래서 어떤 자는 이 사실을 “갈릴리에서는 예언자가 나온 일이 없다”는 말에 대한 논박으로 제시한다. 그렇다면 갈릴리에서야말로 예언이 다시 소생되자마자 즉시 예언자가 난 셈이다.그녀는 “나이가 많았다.” 84년을 과부로 살았다. 혹자는 그녀가 84년을 과부로 지낸 것을 보아, 그녀는 젖어도 100세가 넘었으리라고 본다. 그러나 다른 자들은, 여인이 안나 처럼 나이가 많으면 안나와 같은 금식기도를 할 수 없다고 생각하여, 그녀의 나이는 실상 84세이고, 긴 기간을 과부로 살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녀는 결혼한 지 7년만에 젊은 과부가 되었지만, 재혼하지 않고 죽는 날까지 그냥 과부로 지냈다. 이 사실은 그녀를 칭찬하기 위해 언급된 것이다.그녀는 항상 성전 “안에서”, 적어도 “성전”에서 수종을 들며 살았다. “혹자는, 그녀가 기숙을 했다고 한다. 즉 성전 뜰의 구빈원에 살면서 성전의 자선으로 연명했거나, 여(女)예언자로서 거기에 거처를 정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그곳이야말로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는 자들과 상의하고 충고를 받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녀가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은, 그녀가 예배 시간에만은 항상 성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어떤 선한 사업을 할 필요가 생기면, 그는 언제나 그 일에 도움을 주곤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전의 외곽 건물 중의 어느 하나에 그녀의 방을 마련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가장 크다. 그리고 공중 예배에 그녀는 빠짐 없이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경건 생활도 많이 가졌다. 왜냐하면, 그녀가 “주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했기 때문이다. 그녀에게는 그녀가 해야 할 세속의 일이 없었거나 다 마쳤으므로, 온전히 경건 생활에만 자신을 바쳤다. 그리고 “일 주일에 두 번씩”만이 아니라 항상 고행적인 생활을 살았고, 남들이 먹고 마시고 잠자는 데 보내는 시간을 그녀는 종교적 실행에 다 바쳤다. 또 그녀는 “기도의 시간”을 준수했을 뿐만 아니라, “주야로” 기도했다. 항상 기도하는 정신으로 살았고, 기도의 생활을 했으며, 자신을 기도에 바쳤고, 종종 절규했고, 대부분은 엄숙한 기도를 드렸으며, 중재 기도를 특히 열심히 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서 그녀는 하나님을 “섬겼다.” 그리고 그녀의 모든 행동을 값있게 하고 훌륭하게 만드는 점이 바로 이 사실이다. 바리새인들은 “이따금씩 금식한다.” 그리고 “긴 기도”를 드린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자신들을 섬기고, 금식과 기도로 자기들의 교만심과 탐욕을 섬긴다. 그러나 이 착은 여인은 착한 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 착한 정신에 입각해서 했고, 착한 목적을 두고 했다. 즉 그녀는 “하나님을 섬겼다.” 그리고 “금식과 기도” 중에 하나님의 영광을 목표로 삼았다. 명심해 둘 것이 있다.

[1] 경건 생활이란 우리가 항상 해야 할 일이다. 다른 의무는 때를 따라 이따금씩 한다. 그러나 “기도는 항상” 해야 한다.

[2] 경건한 행실에 전념하는 연로한 그리스도인을 본다는 것은 즐거운 광경이다. 그들은 “선을 행하기에 싫증” 내지 않으며, 자기들이 그러한 행실 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것은 “다 마쳤다”고 생각지 않고, 갈수록 그런 일을 즐거워하며 그 필요성을 느끼고, 마침내 하늘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는 자들과 같다.

[3] 지금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빛과 방편을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이용하는 자들은 그것을 더 많이 받고 또 발견하게 된다. 안나 그녀는 성전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보상을 이제 마침내 풍성히 받은 셈이다.

2. 그녀는 우리 주 예수께 증언을 했다(38절). 아기가 바쳐져 있을 때에, “그녀는 마침 그 때에 나아왔다.” 또 그때는 시므온이 아기에 대해 말을 하고 있는 때였다. “항상” 성전에 있던 그녀가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1) 그녀는 시므온과 마찬가지로, 아마 시므온과 같이 이제 평안히 세상을 떠나기를 소원하면서, “주께 역시 감사를 드렸다.” 그리스도가 “알려진 바 된” 자들은 그 큰 은혜로 인하여 “주께 감사를 드려야” 마땅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는 남이 찬송과 감사를 드리는 것을 보면 분발하여 우리도 그 의무를 행해야 한다. 그들은 물론이요, 우리도 “역시 감사를 드려야”하지 않겠는가? 경건 생활이란 우리가 항상 해야 할 일이다. 다른 의무는 때를 따라 이따금씩 한다. 그러나 “기도는 항상” 해야 한다.경건한 행실에 전념하는 연로한 그리스도인을 본다는 것은 즐거운 광경이다. 그들은 “선을 행하기에 싫증” 내지 않으며, 자기들이 그러한 행실 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것은 “다 마쳤다”고 생각지 않고, 갈수록 그런 일을 즐거워하며 그 필요성을 느끼고, 마침내 하늘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는 자들과 같다.지금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빛과 방편을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이용하는 자들은 그것을 더 많이 받고 또 발견하게 된다. 안나 그녀는 성전에서 오랫동안 일해 온 보상을 이제 마침내 풍성히 받은 셈이다.그녀는 우리 주 예수께 증언을 했다(38절). 아기가 바쳐져 있을 때에, “그녀는 마침 그 때에 나아왔다.” 또 그때는 시므온이 아기에 대해 말을 하고 있는 때였다. “항상” 성전에 있던 그녀가 그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그녀는 시므온과 마찬가지로, 아마 시므온과 같이 이제 평안히 세상을 떠나기를 소원하면서, “주께 역시 감사를 드렸다.” 그리스도가 “알려진 바 된” 자들은 그 큰 은혜로 인하여 “주께 감사를 드려야” 마땅하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리고 우리는 남이 찬송과 감사를 드리는 것을 보면 분발하여 우리도 그 의무를 행해야 한다. 그들은 물론이요, 우리도 “역시 감사를 드려야”하지 않겠는가? 안나는 시므온과 조화를 맞추었다. “그녀는 주께 고백했다”(이렇게 읽을 수도 있다). 즉 그녀는 이 아기에 대한 자기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고백한 것이다.

(2) 그녀는 여(女)예언자로서 남들에게도 그에 대해서 가르쳤다. 그녀는 메시야가 오리라는 것은 믿었고, 그와 더불어 “예루살렘의 구속을 기다리던” 모든 자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했다. 구속(救贖)이란 필요하고, 기다리던 일이요, 바라던 일이다. “주의 말씀이 발해졌던”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렸다(사 2:3). 예루살렘에는 “구속을 기다리던”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였다. 왜냐하면 안나가 그들을 모두 알고 있었고, 그들은 분명 그녀와 합심하여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나는 그들이 어디에 가면 있는지를 알았고, 그들은 안나의 소재지를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가 주를 보았다는 사실, 곧 좋은 소식을 그들 모두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의 출생에 관한 이 소식과 나중에 있을 그의 부활에 관한 소식은 실로 위대한 새 소식이었다.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는 자들은 “직접” 다른 “사람들도” 그를 잘 알 수 있도록 자가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녀는 여(女)예언자로서 남들에게도 그에 대해서 가르쳤다. 그녀는 메시야가 오리라는 것은 믿었고, 그와 더불어 “예루살렘의 구속을 기다리던” 모든 자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했다. 구속(救贖)이란 필요하고, 기다리던 일이요, 바라던 일이다. “주의 말씀이 발해졌던”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렸다(사 2:3). 예루살렘에는 “구속을 기다리던”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였다. 왜냐하면 안나가 그들을 모두 알고 있었고, 그들은 분명 그녀와 합심하여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안나는 그들이 어디에 가면 있는지를 알았고, 그들은 안나의 소재지를 알았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가 주를 보았다는 사실, 곧 좋은 소식을 그들 모두에게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의 출생에 관한 이 소식과 나중에 있을 그의 부활에 관한 소식은 실로 위대한 새 소식이었다. 그리스도를 잘 알고 있는 자들은 “직접” 다른 “사람들도” 그를 잘 알 수 있도록 자가들에게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끝으로, 여기에 우리 주 예수의 유아기와 어린 시절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가 나와 있다. 1. 그는 “어디에서” 그 시절을 보냈는가?(39절) 아기를 바치는 의식과 그 어머니를 정결케 하는 의식이 모두 끝나자, 그들은 “갈릴리로 돌아갔다.” 누가는 그들이 갈릴리로 돌아가기까지의 이야기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의하면(2장),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돌아갔고, 거기서 동방의 현인들을 만났으며, 헤롯의 잔인한 영아 학살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신하라는 지시가 있기까지는 베들레헴에 머물었다. 그리고 헤롯이 죽자 애굽에서 돌아와, 나사렛 정든 마을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았으므로, 그들은 오랫동안 나사렛을 떠나 있었던 걸로 되어 있다. 그는 “어디에서” 그 시절을 보냈는가?(39절) 아기를 바치는 의식과 그 어머니를 정결케 하는 의식이 모두 끝나자, 그들은 “갈릴리로 돌아갔다.” 누가는 그들이 갈릴리로 돌아가기까지의 이야기를 더 이상 언급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태복음에 의하면(2장), 그들은 예루살렘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돌아갔고, 거기서 동방의 현인들을 만났으며, 헤롯의 잔인한 영아 학살을 피하여 애굽으로 피신하라는 지시가 있기까지는 베들레헴에 머물었다. 그리고 헤롯이 죽자 애굽에서 돌아와, 나사렛 정든 마을로 돌아가라는 지시를 받았으므로, 그들은 오랫동안 나사렛을 떠나 있었던 걸로 되어 있다. 본문에는 나사렛을 “그들의 본(本)동네”라고 했다. 그들이 거기서 오래 살았고, 그들의 친척들도 거기에 살았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명령이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나라와 제사장직은 유대교회나 국가의 현 정권들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모욕을 받던 그런 고장으로 보내졌다. 다른 점에서도 그렇지만 이 점에 있어서, 그는 자신을 낮추셔야 했고, “자신에게는 아무런 명성도 지니지” 말아야 했던 것이다. 2. “어떻게” 그 시절을 보냈는가?(40절) 모든 면에서 “그는 자기 형제들과 동등함을 취하셨다.” 그러므로 그도 다른 아기들처럼 유아기와 소년기를 거쳤다. 그러나 죄는 짓지 않았다. 아니 그에게는 하나님의 본심이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그의 몸은 “자랐다.” 그리고 그의 인격적 영혼 속에서는 이해력(총명)이 증가되어 갔다. 그러므로 그의 “자연적” 몸은 그의 “신비한” 몸 ─ 그것 완전한 영에 의해서 원기를 받으나 그 몸은 “완전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성장한다”(엡 4:13, 16) ─ 의 한 표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

(1) 다른 아이들은 이해력과 결단력이 약함에 반해서, 그는 “영(정신)에 있어서 강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그의 인간적 영혼은 비상한 활력을 공급받았고, 그의 모든 신체 기능은 비상하게 그 직능을 다했다. 그는 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판단은 사물을 투시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떻게” 그 시절을 보냈는가?(40절) 모든 면에서 “그는 자기 형제들과 동등함을 취하셨다.” 그러므로 그도 다른 아기들처럼 유아기와 소년기를 거쳤다. 그러나 죄는 짓지 않았다. 아니 그에게는 하나님의 본심이 뚜렷이 나타나 있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그의 몸은 “자랐다.” 그리고 그의 인격적 영혼 속에서는 이해력(총명)이 증가되어 갔다. 그러므로 그의 “자연적” 몸은 그의 “신비한” 몸 ─ 그것 완전한 영에 의해서 원기를 받으나 그 몸은 “완전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성장한다”(엡 4:13, 16) ─ 의 한 표상이 될 수 있었다. 그러나,다른 아이들은 이해력과 결단력이 약함에 반해서, 그는 “영(정신)에 있어서 강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해서, 그의 인간적 영혼은 비상한 활력을 공급받았고, 그의 모든 신체 기능은 비상하게 그 직능을 다했다. 그는 강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었고, 그 판단은 사물을 투시하는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920 다른 아이들은 “그 마음에 어리석음”을 지니고 있지만 ─ 그것은 그들의 말과 행실에서 나타난다 ─ 그는 “지혜로 충만했다.” 교육의 덕분으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성령의 작용하심 덕분으로 그렇게 되었다. 그의 언행 모두는 그의 나이 이상으로 슬기로왔다.

(3) 다른 아이들은 자기들의 부패된 본성을 드러냈고, “죄의 가라지”가 “이성(理性)의 밀”과 더불어 자라났지만, 그는 그런 점을 드러내지 않았다. 단지 “그 위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있었다”(그 밀은 가라지 없이 자라났다). 더구나 다른 아이들은 전래적으로 진노의 아들이지만, 그는 “지극히 사랑 받는” 자요, 하나님의 호의를 극진히 받는 자였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고 귀여워했고, 특별히 보살펴 주었기 때문이다.

다른 아이들은 자기들의 부패된 본성을 드러냈고, “죄의 가라지”가 “이성(理性)의 밀”과 더불어 자라났지만, 그는 그런 점을 드러내지 않았다. 단지 “그 위에는 하나님의 은총이 있었다”(그 밀은 가라지 없이 자라났다). 더구나 다른 아이들은 전래적으로 진노의 아들이지만, 그는 “지극히 사랑 받는” 자요, 하나님의 호의를 극진히 받는 자였다.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고 귀여워했고, 특별히 보살펴 주었기 때문이다.

2:41 소년 시절의 예수 (누가복음 2:41-52) 우리의 복되신 구주의 유아 시절에서부터 29세가 되어 이스라엘에게 자기를 드러내기까지, 그 어간에 관해 기록된 유일한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야기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려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 이상의 것을 알려고 해 봐야 헛일이기 때문이다. Ⅰ. 그리스도는 “그의 부모와 함께” 유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41, 42절). 나사렛에서 예루살렘까지는 비록 긴 여행이고, 그들은 가난했으므로 크게 절약해 살지 않고는 거기까지 갈비용도 부담하기 어려웠겠지만, 그들은 율법에 따라 규칙적으로 예루살렘 유월절에 참여했다. 공중 규례는 종종 있어야 하며, 우리는 “어떤 사람들처럼 모이기를 폐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세상적인 일은 영적 관심사에 양보해야 한다. 요셉과 마리아는 같은 집에서 아들과 같이 지냈다. 그래서 그들은 예루살렘의 모든 랍비들 이상으로 영적인 일을 잘 가르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로, “절기의 전례(前例)를 떠나서 올라갔다.” “주는 야곱의 모든 거처들보다도 시온의 문들을 더 사랑한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래야 한다. 아마 “오순절”과 “초막절”에도 역시 요셉과 마리아는 올라갔을 것이다. 모든 남자들은 “일년에 3번 성전에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마리아는 “유월절”에만 거기에 나타났는데, 그 절기는 3대 절기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절기이며, 복음을 가장 많이 간직하고 있는 절기이다. 2. 어린 예수가 “열 두 살 때”에 그들과 함께 올라갔다. 유대 학자들에 말에 의하면, 열두 살 된 어린이는 때때로 금식하는 것을 시작하여, 속죄일에 금식하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13세가 되면 어린이는 “계명의 아들”이 되기 시작한다. 즉 교회 어른들의 의무를 감당하게 된다. 그는 이미 유아기 때부터 할례에 의하여 “계약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린 예수가 “열 두 살 때”에 그들과 함께 올라갔다. 유대 학자들에 말에 의하면, 열두 살 된 어린이는 때때로 금식하는 것을 시작하여, 속죄일에 금식하는 훈련을 쌓아야 한다. 그리고 13세가 되면 어린이는 “계명의 아들”이 되기 시작한다. 즉 교회 어른들의 의무를 감당하게 된다. 그는 이미 유아기 때부터 할례에 의하여 “계약의 아들”이 되었기 때문이다. 본문에는 예수가 절기 때에 예배 보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이 이번이 “처음”이란 말이 없다. 아마 여러 해 전부터 그랬을 것이다. 그의 지혜와 정신이 그 나이에 비해 강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총명으로 들을 수 있는” 모든 자들은 공중 예배에 참여해야 한다(느 8:2). 다른 면에서 남보다 앞선 어린이는 신앙에서도 남보다 앞서야 한다. 어린이들이 공중 예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는 어린이들이 공중 예배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리스도는 어린이들의 호산나 찬송을 기뻐하신 다는 사실은 그리스도의 영예에 속하는 일이다. 그리고 어린 유아 시절에 하나님께 봉헌된 어린이들은 어른들이 되었을 때에는, “복음의 유월절’에, 곧 주의 만찬에 초대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들이 자기들의 행동으로 스스로 주님과 연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Ⅱ. 그리스도는 “그의 부모들 뒤에 예루살렘에 머물렀다.” 부모들은 그것을 몰랐다. 이것으로써 그리스도는 자기가 무엇을 위해 있는 지 그 초기의 전조를 보이려 하셨던 것이다. 1. 그의 부모들은 “그 날들을 마치기”까지는 돌아가지 않았다. 즉 유월절 기간 중의 첫 이틀이 지나면 ─ 그때 많은 자들이 빚으로 돌아간다 ─ 꼭 머물러 있어야 하는 의무가 없었지만, 그들은 그 절기가 계속되는 7일 간을 줄곧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의 부모들은 “그 날들을 마치기”까지는 돌아가지 않았다. 즉 유월절 기간 중의 첫 이틀이 지나면 ─ 그때 많은 자들이 빚으로 돌아간다 ─ 꼭 머물러 있어야 하는 의무가 없었지만, 그들은 그 절기가 계속되는 7일 간을 줄곧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여기가 좋사오니”라고 말한 자들처럼, 규례가 끝날 때까지 머물러 있는 것이 좋은 일이다. 그리고 도엑처럼 “주님 앞에 억류된” 사람같이 서둘러 가지 않는 것이 좋다(삼상 21:7 참조). 2. 그 어린이는 “예루살렘에 남아서 머물렀다.” 집에 가기가 싫어서가 아니다. 또 부모와 동행하기가 부끄러워서도 아니다. 거기에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며, 그는 “그들”에게 보다는 그 아버지의 말씀에 더욱 “복종”해야 된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셨다. 그러나 한편 “그분”에 대한 그의 관계가 “그분들”에 대한 그의 무관계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 어린이는 “예루살렘에 남아서 머물렀다.” 집에 가기가 싫어서가 아니다. 또 부모와 동행하기가 부끄러워서도 아니다. 거기에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자기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모시고 있으며, 그는 “그들”에게 보다는 그 아버지의 말씀에 더욱 “복종”해야 된다는 것을 알리고자 하셨다. 그러나 한편 “그분”에 대한 그의 관계가 “그분들”에 대한 그의 무관계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어떤 이들은, 그가 성전에 남은 것은, 경건한 유대인들이 집으로 가는 날 아침에 먼저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경배하던 습관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 가서 “뒤에 머물렀고,” 그들이 다시 그를 찾기까지 거기서 재미있게 지냈다. 아니면 아마 그는 부모들의 하숙하던 집, 또는 어떤 자는 친구의 집에 머물렀다고 본다(예수와 같은 어린이는 그를 아는 모든 사람들의 귀염둥이일 수밖에 없고, 모든 사람이 그의 친구가 되려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예배 시간이 되자 성전으로 갔다. 그러나 그 때는 이미 혼자서 남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든 “주의 집에 거하기”를 즐거워하는 젊은이를 본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들은 이 때의 그리스도와 같은 자들이다. 3. 그의 부모는 어린 예수를 뒤에 두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하룻길의 여행”을 갔다. 그들은 “그가 동행중에 있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었다(44절). 이 때에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특히 첫 날의 여행길은 사람들로 붐볐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 그가 자기들의 이웃 사람들과 섞여서 오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내려가다가 길에서 “친족과 아는 자들 중에서 그를 찾았다.” 당신은 혹 우리 아들을 못 보셨습니까? 당신은 그를 보았습니까? 마치 결혼한 자들의 질문같이, “그대는 내 영혼이 사랑하는 자를 보았느뇨?”라고 물었다. 그의 부모는 어린 예수를 뒤에 두고, 아무런 의심도 없이 “하룻길의 여행”을 갔다. 그들은 “그가 동행중에 있는 줄로 알았기” 때문이었다(44절). 이 때에는 대단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특히 첫 날의 여행길은 사람들로 붐볐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아마 그가 자기들의 이웃 사람들과 섞여서 오고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내려가다가 길에서 “친족과 아는 자들 중에서 그를 찾았다.” 당신은 혹 우리 아들을 못 보셨습니까? 당신은 그를 보았습니까? 마치 결혼한 자들의 질문같이, “그대는 내 영혼이 사랑하는 자를 보았느뇨?”라고 물었다. 이 사람은 찾을 만한 가치가 있는 보석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그의 동행이 되려 하는 것을 알고 있었고, 특히 어린 예수는 “자기 친족과 아는 자들”중에서 자비를 베풀기를 좋아하고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는 만나지 못했다”(45절). 우리에게는 우리가 피할 수 없이 교제해야 할 친족과 지인(知人)들이 많이 있고, 너무나도 많이 있지만, 그들 중에서 그리스도에 관한 것이라곤 거의 아무 것도 찾아 볼 없다. 그들은 시골로 내려가는 그 길에서 이 사람 저 사람들에게 물어 보았으나 예수에 대한 것은 아무 것도 듣지 못하게 되자, 자기들이 지난밤에 유숙하던 그 곳에 가면 필경 그를 만나게 되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그러나 “거기서”도 그들은 그에 관한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이 구절과 요한복음 23장 8, 9절을 비교해 보라. 4. 그들은 지난밤의 숙소에서 그를 찾지 못하자, 다음날 아침 “예루살렘으로 그를 찾아 되돌아갔다.” 그들은 지난밤의 숙소에서 그를 찾지 못하자, 다음날 아침 “예루살렘으로 그를 찾아 되돌아갔다.” 그리스도를 만나려는 자들은 “만날 때까지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왜냐하면, 마침내는 그리스도를 찾는 자에게는 그가 만나질 것이요, 풍부한 상급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던 위안을 잃어버린 자들, 그리고 그와의 관계성을 상실한 자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자기를 되돌아보고, 자기들이 그것을 누렸던 그 마지막 지점까지 “되돌아가야” 한다. 즉 “그들이 언제 넘어졌고, 회개했느냐를 기억하고, 처음 일을 다시 하여”,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야” 한다(계 2:4, 5). 그리스도와의 친근성을 잃었다가 다시 회복하고픈 자들은 예루살렘, 곧 “우리의 절기의 성읍,” 그가 “자기 이름을 거기 두시기로 택하신” 그 곳까지 가야 한다. 그리고 그의 규례, 그의 복음을 통해서 그에게 나아가야 한다. 그래야 그를 만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5. 그들은 “제 3 일”에 “성전에서,” 즉 성전에 속한 어떤 부속건물에서 그를 만났다. 그 곳은 율법 학자들이 ─ 법정이 아니라 ─ 회의 장소나 논쟁 교실로 삼던 곳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율법 학자들) 한가운데 앉아 있는” 예수를 보았다. 그 때 예수는 그들의 교훈을 듣고 시험을 받는 “학생”으로서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그에게서 상당한 지식과 지혜를 보았기 때문에, 자기들과 같은 부류로 치고 자기들 중에 앉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제 3 일”에 “성전에서,” 즉 성전에 속한 어떤 부속건물에서 그를 만났다. 그 곳은 율법 학자들이 ─ 법정이 아니라 ─ 회의 장소나 논쟁 교실로 삼던 곳이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율법 학자들) 한가운데 앉아 있는” 예수를 보았다. 그 때 예수는 그들의 교훈을 듣고 시험을 받는 “학생”으로서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이미 그에게서 상당한 지식과 지혜를 보았기 때문에, 자기들과 같은 부류로 치고 자기들 중에 앉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가 “지혜로 충만했다”(40절)는 사실뿐만 아니라, 그가 그 지혜를 증가시키고 서로 그것을 주고받기를 바라는 자임을 보여 주는 실례이다. 이 점에서 그는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한 모범이다. 젊은이는 자기들에게 맞는 자들의 동료가 되어 기쁨으로 그리스도를 배워야 하고, 놀고 잇는 자들이 아니라 학자들 “한가운데 앉기”를 선택해야 한다. 그들에게 “12세 때”부터 혹은 그 이전부터라고 지식을 추구하고, 자기들에게 교훈을 줄 만한 사람을 사귀게 하자. 젊은이가 교훈을 바란다면, 그것은 희망적이고 약속 있는 전조이다. 이 때에 그리스도와 같은 나이의 많은 어린이들이 “성전에서 다른 어린이들”과 함께 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성전의 학자들”고 더불어 앉아 있었다.

(1) 그는 그들의 말을 들었다. “배우기”를 원하는 자들은 “듣기”를 계속해야 한다.

(2) 그는 “그들에게 물었다.” 선생으로서(그는 그렇게 물을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또는 배우는 자로서(그는 그렇게 물을 만큼 겸손했다). 혹은 진리를 추구하는 협동 구도자의 자세로 물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진리는 서로 우호적인 질문을 통해서 탐구되어야 한다.

(3) 그는 그들에게 “대답”을 했다. 그의 대담은 매우 놀라웁고 만족한 것이었다(47절). 그리고 그의 질문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대답에서도 지혜와 “총명”이 드러났으므로, 그의 말을 듣는 모든 자들이 “기이히 여겼다.” 그들은 그렇게 어린 사람, 아니 아무리 위대한 학자들에게서라도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윗과 같이, 그는 “그의 모든 선생보다 총명이 뛰어났다.” 아니 “노인들보다도 승했다”(시 119:99, 100). 그는 그들의 말을 들었다. “배우기”를 원하는 자들은 “듣기”를 계속해야 한다.그는 “그들에게 물었다.” 선생으로서(그는 그렇게 물을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또는 배우는 자로서(그는 그렇게 물을 만큼 겸손했다). 혹은 진리를 추구하는 협동 구도자의 자세로 물었는지, 그것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진리는 서로 우호적인 질문을 통해서 탐구되어야 한다.그는 그들에게 “대답”을 했다. 그의 대담은 매우 놀라웁고 만족한 것이었다(47절). 그리고 그의 질문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대답에서도 지혜와 “총명”이 드러났으므로, 그의 말을 듣는 모든 자들이 “기이히 여겼다.” 그들은 그렇게 어린 사람, 아니 아무리 위대한 학자들에게서라도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을 들어본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윗과 같이, 그는 “그의 모든 선생보다 총명이 뛰어났다.” 아니 “노인들보다도 승했다”(시 119:99, 100). 이제 그리스도는 자기의 영광의 빛줄기를 다소 보인 셈이다. 그는(칼빈의 말대로) “그들에게 맛을 주었다.” 곧 그이 신성한 지혜와 지식을 맛보여 주었다. 내 생각으로는, 그리스도가 성전에서 공공연히 선생의 모습을 드러낸 것은 모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처음에 시도했던 그 시도와 같다. 스데반은 이 사건을 가리켜 해석하기를, “그는 자기 형제들이 이해하는 줄로 알았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의 손에 의해서 그들을 어떻게 구원할 것”을 아는 줄로 알았다고 했다(행 7:24, 25). 그들은 그 당시에 어떤 암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여기에서(내 생각으로는) 그리스도로 하여금 그의 사업을 지금 곧 시작하도록 하실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단지 그들은 “기이히 여겼을” 뿐 그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그러므로 모세와 같이 그는 다시금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물러났고, 그들은 여러 해가 지나기까지 그에 대해 더 들을 수 없게 된 것이다. 6. 그의 어머니는 그 일에 대해서 그와 조용히 이야기했다. 일단 그 무리들이 해산하자, 그녀는 그를 따로 불러서, 부드러운 애정을 가지고 그 일에 대해서 그에게 물었다(48절). 그의 어머니는 그 일에 대해서 그와 조용히 이야기했다. 일단 그 무리들이 해산하자, 그녀는 그를 따로 불러서, 부드러운 애정을 가지고 그 일에 대해서 그에게 물었다(48절). 요셉과 마리아는 그를 거기서 만났다는 사실, 그리고 그가 크게 존경을 받아 “학자들 중에 끼어 앉을” 수 있는 허락을 받았고, 또 그들의 주목을 끌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놀라워했다.” 그의 아버지는 자기가 명목뿐인 아버지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말도 안 했다. 그러나

(1) 그의 어머니는 자기들이 고생했다는 것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아들아,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대하느냐? 왜 네가 우리를 이렇게 놀라게 만드느냐?” 그들은 야곱이 요셉에게 하듯, “사나운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어떤 무서운 원수의 손에 걸려들었을 것이다. 그 무서운 원수가 헤롯이 몇 해 전에 찾던 그 어린 생명을 마침내 찾아낸 모양이다”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아마 그들은 수천 가지의 상상을 했을 것이고, 갈수록 무서운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의 어머니는 자기들이 고생했다는 것을 그에게 알려 주었다. “아들아,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대하느냐? 왜 네가 우리를 이렇게 놀라게 만드느냐?” 그들은 야곱이 요셉에게 하듯, “사나운 짐승이 그를 잡아 먹었도다. 그렇지 않으면, 그는 어떤 무서운 원수의 손에 걸려들었을 것이다. 그 무서운 원수가 헤롯이 몇 해 전에 찾던 그 어린 생명을 마침내 찾아낸 모양이다”라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아마 그들은 수천 가지의 상상을 했을 것이고, 갈수록 무서운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얘야, 왜 너는 우리에게 이런 무서운 일을 겪게 하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근심하며 찾았는지 아느냐? 너를 잃어버린 줄 알고 걱정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너를 잘 살펴서 데리고 가지 못한 우리 자신들 때문에 얼마나 화가 났는지 아느냐?” 그리스도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하는 자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자기들의 손해를 원망할 자격이 있는 자임을 기억하자. 그러나 그들의 눈물은 “씨뿌림”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들은 근심한 나머지 절망에 싸여 앉아 있지 않고, 근신하며 “찾았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만나려면, 우리는 “근심하면서,” 즉 우리가 그를 잃어버린 사실을 근심하며, 그를 떠나게 해 버린 우리의 죄를 근심하며, 또 더 빨리 찾으러 나서지 않은 우리 자신에 대해 근심하며 찾아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자. 그를 근심하며 찾는 자들은 마침내 그를 만나서 보다 더 큰 즐거움을 맞게 되리라.

(2) 그는 그들이 자기에게 대해서 평상시 이상으로 조급하게 생각한 사실을 얌전하게 비난한다(49절).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여기서 용무를 마치면 당신들을 따라 집으로 갔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어야 하셨을 겁니다. 난 결코 예루살렘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내가 evn toi/j tsu/ patro,j me ─나의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것을 모르셨나이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도 해석한다. “영원토록 집에 머무는 아들, 내가 그밖에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이겠습니까?”

[1] “내 아버지의 염려와 보호 아래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내게 대한 염려는 그분께 맡기시고, 스스로들 괴로워 마옵소서.” 그는 그들이 자기에게 대해서 평상시 이상으로 조급하게 생각한 사실을 얌전하게 비난한다(49절).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여기서 용무를 마치면 당신들을 따라 집으로 갔을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어야 하셨을 겁니다. 난 결코 예루살렘에서 길을 잃어버리지 않을 겁니다. 당신은 내가 evn toi/j tsu/ patro,j me ─나의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것을 모르셨나이까?”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도 해석한다. “영원토록 집에 머무는 아들, 내가 그밖에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이겠습니까?””내 아버지의 염려와 보호 아래입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은 내게 대한 염려는 그분께 맡기시고, 스스로들 괴로워 마옵소서.” 그리스도는 아버지의 화살통에 재빨리 숨었다(사 49:2). 이와 같이 그는 자기의 교회를 보살핀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의 안전에 대해서 절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

[2] “내 아버지의 일에(영어 성경 KJV는 그렇게 읽었다) 참여해야 합니다. 나는 나의 아버지의 일에 관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처럼 속히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생각지 못했습니까? 아직도 내게 대하여 모르셨습니까? 즉 나는 이미 나를 신앙의 사업에 바쳤고, 따라서 신앙의 문제에 관한 일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집에서 그는 우리들에게 한 모범을 보이셨다. 그리스도를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들의 하늘 아버지의 일에 참여하고, 다른 모든 일은 거기에 우선권을 양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내 아버지의 일에(영어 성경 KJV는 그렇게 읽었다) 참여해야 합니다. 나는 나의 아버지의 일에 관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처럼 속히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아닙니까? 생각지 못했습니까? 아직도 내게 대하여 모르셨습니까? 즉 나는 이미 나를 신앙의 사업에 바쳤고, 따라서 신앙의 문제에 관한 일에 임해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이 집에서 그는 우리들에게 한 모범을 보이셨다. 그리스도를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자기들의 하늘 아버지의 일에 참여하고, 다른 모든 일은 거기에 우선권을 양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우리는 잘 이해하고 있다고 지금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가 자기의 언행으로 그것을 해명하셨기 때문이다. 그가 이 세상에 온 것, 이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것은 그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고 그분의 일을 마치기 위함이다. 그러나 이 당시에 그이 부모들은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50절). 그들은 이 당시 그가 자기 아버지를 위해서 성전에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몰랐다. 그들은 그가 앞으로 메시야가 될 것을 믿었다. 그래서 그가 장차 그의 아버지 다윗의 왕좌를 차지하리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왕궁에서 할 일이지 성전에서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그의 예언자적 직능을 “깨닫지 못했다” ─ 그러나 그에게는 예언자적 직능으로 해야 할 일이 많았다. 마지막으로, 그들은 나사렛으로 돌아갔다. 그의 영광의 이러한 섬광은 순간적이었다. 이제 그 빛은 사라졌다. 그는 부모들에게 예루살렘에 이사와서 살자거나 자기만이라도 거기에 정착하겠다고 간청하지 않았다(그 곳은 교육과 출세의 도성이었고, 자기의 지혜를 과시할 수 있는 최적의 고장이기는 했지만). 오히려 나사렛으로 잠적하여 빛 없이 살기를 좋아했다. 말하자면 여러 해 동안 그는 거기에서 묻혀 살았다. 의심할 것도 없이, 그는 1년에 3번씩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절기 예배를 드렸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성전에 다시 들어가서 학자들과 논쟁을 벌였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다. 그가 그런 일을 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이렇다. 1. 그는 “부모에게 복종했다.” 비록 한 때는 자기가 “단순한 사람 이상”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부모를 떠나서 하늘 아버지의 일에 참여하고 있은 적이 있었지만, 아직은 그 일을 자기의 계속적인 업으로 삼지 않았고, 그 몇 해 후에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오직 “그들에게 복종하여,” 그들의 명령을 지키고, 그들의 지시대로 오고 갔다. 그리고 그는 자기 아버지와 더불어 복수의 일에 종사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는 “부모에게 복종했다.” 비록 한 때는 자기가 “단순한 사람 이상”이라는 것을 보이기 위해 부모를 떠나서 하늘 아버지의 일에 참여하고 있은 적이 있었지만, 아직은 그 일을 자기의 계속적인 업으로 삼지 않았고, 그 몇 해 후에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다. 오직 “그들에게 복종하여,” 그들의 명령을 지키고, 그들의 지시대로 오고 갔다. 그리고 그는 자기 아버지와 더불어 복수의 일에 종사했을 것이 분명하다. 이 점에서 그는 주(主) 안에서 부모에게 의무를 다하고 복종해야 한다는 것을 어린이들에게 본으로 보이셨다. 그는 “여자에게서 난 사람”인고로, 제 5 계명 아래서 났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신실한 자들의 “자손”들은 또한 스스로 신실한 자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셨다. 그의 아버지는 가난하고 비천했고, 또 그의 아버지는 “명목상”의 아버지(2:23 의 참조)였지만, 그는 “그들에게 복종했다.” 그는 “심령이 강하고””지혜로 충만해” 있었고, 나아가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그는 자기(육신)의 부모에게 순복했다. 그렇다면, 우매하며 연약하면서도 부모에게 불복종하는 “그들”은 어떻게 응답될 것인가? 2. 그의 어머니는 그 아들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모든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 훗날에는 그 모든 말씀이 그녀에게 이해되리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 때만 그 말씀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말씀의 유용성도 알게 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남들의 말이 모호하다 하여서 그 말을 무시하기도 한다(Si non vis intelligi debes negligi─이해될 수 없는 것은 가치가 없다). 그렇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처음에는 애매하여, 그 말씀을 응용할 줄 몰랐던 말이라도 나중에는 아주 명백히 이해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중을 위해서 “그 말씀을 간직해야” 한다(요 2:22 참조). 지금 당장은 우리가 그 쓸모를 모르던 말씀도 언젠가는 그 쓸모를 깨닫게 되리라. 그의 어머니는 그 아들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그 모든 말씀을 마음에 두었다.” 훗날에는 그 모든 말씀이 그녀에게 이해되리라는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고, 그 때만 그 말씀을 완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그 말씀의 유용성도 알게 되리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남들의 말이 모호하다 하여서 그 말을 무시하기도 한다(Si non vis intelligi debes negligi─이해될 수 없는 것은 가치가 없다). 그렇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는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처음에는 애매하여, 그 말씀을 응용할 줄 몰랐던 말이라도 나중에는 아주 명백히 이해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중을 위해서 “그 말씀을 간직해야” 한다(요 2:22 참조). 지금 당장은 우리가 그 쓸모를 모르던 말씀도 언젠가는 그 쓸모를 깨닫게 되리라. “학생들”은 당장에 쓸모를 모르면서도 문법의 법칙들을 암기해 두는데, 그 이유는 나중에는 쓸모 있게 되리라는 이야기를 듣기 때문이다. 우리도 그리스도의 말씀에서 그런 것을 발견하게 되리라. 3. 예수는 계속 발전하여 감탄할 만큼 되었다(52절). “그는 지혜와 키가 자라 나갔다”고 했다. 그의 신성(神性)의 완벽성에서 보면 더 이상의 성장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의 인성(人性), 즉 그의 “키”와 “체구” 등의 몸집이 성장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는 성장하는 연령층을 맞이하여서는 성장했다. 또 한편 그의 영혼이 “지혜에서” 그리고 인간 영혼의 재능이란 면에서 자랐다. 예수는 계속 발전하여 감탄할 만큼 되었다(52절). “그는 지혜와 키가 자라 나갔다”고 했다. 그의 신성(神性)의 완벽성에서 보면 더 이상의 성장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그의 인성(人性), 즉 그의 “키”와 “체구” 등의 몸집이 성장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는 성장하는 연령층을 맞이하여서는 성장했다. 또 한편 그의 영혼이 “지혜에서” 그리고 인간 영혼의 재능이란 면에서 자랐다. 영원한 말씀이 비록 그가 잉태되었을 때부터 그의 영혼에 연합되어 있었지만, 그분 안에 거한 신성은 점차적으로, ad modum recipientis ─ 그의 역량에 비례하여 그의 인성에 발현되었다. 그의 인간적 영혼의 기능은 점차적으로 완전해져 갔듯이, 그의 영혼이 인성으로부터 받은 은사는 점차적으로 잘 소통되어 갔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점점 더 “사랑스러워 갔다.” 즉 그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도록 해 주는 모든 은총(장점)이 더해갔다는 것이다. 이 점에서 볼 때, 그리스도는 자신을 자기의 겸비한 처지에 조화시킨 것이다. 즉 그는 하나의 유아로, 어린이로, 청년으로 되기까지 낮아지셨듯이, 하나님의 형상은 그가 “유아”와 “어린 아이”였던 시절에서보다는 청년이 되기까지 자라났을 때에 그(예수) 안에서 더욱 밝게 빛나게 된 것이다. 젊은이는 키가 자람에 따라서 지혜도 자라야 하고, 지혜가 자람에 따라 또한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더욱 귀여움을 받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명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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