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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주석 – 누가복음 – 예사랑 성경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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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강해설교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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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누가복음 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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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누가복음 2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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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누가복음 2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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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30(ì) âëê°ë³µì 2:1-20â/ ìì±: ê¹ì§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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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º¹À½ 2 Àå – ¹®Á¦¿Í ÇØ´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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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L NOCR – 메튜 헨리 주석, 누가복음 0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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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HANGL NOCR – 메튜 헨리 주석, 누가복음 02장 2:1 구유에 나신 메시야 (누가복음 2:1-7) “때가 차게”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시사,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하신 그 때가 온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HANGL NOCR – 메튜 헨리 주석, 누가복음 02장 2:1 구유에 나신 메시야 (누가복음 2:1-7) “때가 차게”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시사,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하신 그 때가 온 … 호크마 주석, 강해2:1 구유에 나신 메시야 (누가복음 2:1-7) “때가 차게”되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시사, “여인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하신 그 때가 온 것이다. 그리고 그는 베들레헴에서 나리라는 사실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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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예수님 말씀]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눅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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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누가복음 2장 예수님 말씀] 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눅 2:1-52) 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예언하기를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누가복음 2장에는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약에서 예언하기를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만삭이 된 마리아는 호적을 하러 베들레헴에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기혼샘은 예루살렘 성안으로 들어가는 생수였습니다. 복음의 생수가 흘러 넘치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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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탄생과 어린 시절(눅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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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장 주석
누가복음 제 2장
=====2:1
이때에 – 2장을 시작하는 이 말은 1:80의 언급을 염두에 둔 것으로서 새로운 사건
의 시작을 알림과 아울러 상황의 변화로 인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가이사 아구스도(K* A , 카이사로스 아우구스투) –
‘카이사로스’는 하나의 인명일 수도 있고 후대적 용법에서처럼 칭호일 수도 있다. 아
구스도는 원래 라틴어인데 헬라어로는 보통 ‘황제'(* , 세바스토스,
행 25:21, 25)로 번역되며 여기서는 인명으로 사용되었다. 아구스도 황제의 본명은 가
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이다. 그는 B.C. 27-A.D. 14까지 로마의 황제로 있
었고 그후 외증조부 율리우스 시이저의 이름을 따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시이저(Gaius
Julius Caesar)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옥타비아누스는 B.C. 27년에 로마 원로원으로
부터 ‘아우구스투스'(‘위대하고 고귀하며 지극히 숭배받는’ 이란 뜻)라는 칭호를 부여
받으며 그후 그는 시이저 아우구스투스로 명명되고 최고의 권위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탁월한 통치 능력과 현명하고 훌륭한 정치 및 행정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점령지에 대한 정책의 일환(一環)으로 점령지의 지방 자치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기도
하며 점령지의 문화와 종교, 생활 풍습등을 인정해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 나라의
법률까지도 로마법에 비추어 무리가 크게 없는 한 인정해 주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건축 등을 장려하기도 했으며 그 자신이 또한 위대한 건축가이기도 하였
다. 따라서 이러한 그의 정책과 통치로 인해 전에 없이 오랜 세월동안 평화가 지속되
었고 그는 ‘자비로운 정치가’, ‘로마의 대부'(代父)로까지 불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최고 승원장(Pontifex Maximus) 또는 대제사장(Highest Priest)이란 칭호를 받아
들여 모든 종교의 최고의 위치를 차지했다. 게다가 그는 피살(被殺)된 자신의 외증조
부 율리우스 시이저를 신격화하여 그를 기념하는 사원을 건립하여 그를 신으로 받들도
록 명령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그는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범하기도 하였다. 한편 탁월한 정치 지도자이며 행정가인 그가 자기에게 속한 나라들
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알고는 로마에 속한 모든나라들로 하여금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
록 명령했다. 따라서 그는 인구조사의 실시로 말미암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 5:2
의 예언을 성취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Hendriksen).
영(* , 도그마) –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는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며 ‘원
리’, ‘법령’ 등의 뜻이다. 동사로는 ‘법령을 제정하다’, ‘칙령을 공포하다’ 등의 의미
를 갖고 있다. 여기서는 황제의 포고령을 가리킨다.
천하 – 이는 원어상 ‘거주지’란 뜻이다. 고대 학자들은 이방인의 땅과 구별되는
의미로서의 헬라인의 거주지를 이 단어로써 나타냈으며 그 후에 ‘로마제국’이란 의미
로 사용되었다(행 11:28;17:6).
호적(戶籍) – 황제의 칙령은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실시하는 인구 조사에 관한 것
이었다. ‘호적’에 해당하는 원어 ‘아포그라포'(* )는 ‘등록하다’, ‘기
록하다'(2:3, 5;히 12:23)는 말로 세금 징수를 위한 파피루스로 된 공식기록부를 가리
키며, 이 기록부에는 성명, 직업, 재산, 친척관계를 기록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어
쨌든 이 인구 조사는 예수의 탄생을 세계역사의 맥락 속에 넣어 하나님이 그의 섭리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상의 통치자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2
구레뇨 -B.C. 12년에 마르마리대(Marmaridae)를 군사적으로 장악하여 집정관이 된
후 구레뇨는 갈라디아의 남쪽 접경에 있던 산적떼의 후손인 호모나덴세스
(Homonadenses) 족을 정복하였다. 그후 그는 A.D. 3-4년 가이우스 시이저(Gaius
Caesar)의 고문역을, A.D. 6-9년에는 시리아의 황제 파견관을 역임한 후 A.D. 21년에
죽었다.
수리아 – 시리아(수리아, :27)는 B.C. 64에 로마제국에 합병되었다. A.D. 70까지
유대는 별도로 자체의 행정부를 구성하고 있었지만 시리아에 복속되어 로마의 통치를
받고 있었다. 따라서 이 당시까지만 해도 시리아는 유대 지역까지 포함된 로마제국의
통치령이었다.
첫 번 한 것이라 – 제1차 인구 조사는 흔히 예수의 탄생보다 훨씬 이후인 A.D. 6년
경 구레뇨가 통치하던 시기에 실시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행 5:37과 요
세푸스의 저서(Antiq. , 26 . 1)에도 제1차 인구조사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누가가 A.D. 6년에 실시되었던 제1차 인구조사를 그 이전에 실
시되었던 것으로 혼동했다고 추측한다. 그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었지
만 다음 두 견해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첫째, 어떤 사본에는 구레뇨가 ‘두번째’로
‘시리이의 총독’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그 사본의 내용이 애매한점이
있기는 하지만 구레뇨는 예수가 태어날 당시와 그 후의 몇 년이 지난 뒤, 곧 두 차례
에 걸쳐 시리아의 총독 직위에 있었다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F.F. Bruce, Quirinius,
NBD, p.1069). 둘째, ‘첫 번’의 헬라어 ‘프로테'(* )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
에 ‘첫 번째의’라고 번역되었지만 그 단어는 그 의미보다 ‘이전의’ 또는 ‘앞의’를 뜻
할 수 있다. 만약 ‘첫 번’이라는 단어가 ‘이전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본절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 되기 이전에’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본
문의 기록의 역사성이 대해 회의를 표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만일 이 기록이 잘못된
것이라면 초대의 기독교 논박자들이 이를 지적하지 않았을리 없으며 또한 당대의 교양
있는 사람들에게 써보낸 누가의 기록 속에 터무니없는 내용이 수록되었을리도 없겠기
때문이다.
=====2:3
모든 사람이…고향으로 돌아가매 – 인구 조사는 각 사람의 고향에서 실시되는 것
이 관례였다. 이렇게 많은 불편을 감수하며 자기의 고향까지 가서 호적을 하는 것은
유대의 호적제도를 따르는 것이었다. 로마의 호적제도는 자신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인적 사항만을 기록하는 훨씬 더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이었다. 그런데도 유
대인들이 로마의 손쉬운 호적 제도를 따르지 않고 굳이 번거롭게 많은 어려움을 감수
하면서 자신들의 호적제도를 따르는 것은 이 호적명령이 로마의 명령으로 행해지는
것이지만 자신들의 독자적(獨自的)인 방법과 의사에 의해 행해지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최소한의 민족적 자존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모든 사실들을
자세히 미루어 살펴본(1:1-4) 누가가 실제로 시행되지 않았던 인구 조사를 강조하여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2:4
다윗의 집 족속…다윗의 동네로 – ‘집’은 단순한 문자적 의미보다는 좀 더 포괄적
인의미를 나타내어 ‘민족’, ‘족속’, ‘나라’ 등의 의미를 내포하며, ‘족속’은 문자 그
대로의 뜻을 나타내나 이 곳에서는 둘이 서로 동의어로 사용된 것 같다. 평행본문 마
1:6, 16에서도 요셉이 다윗의 후손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거니와 본절에서 다윗의 집
혹은 다윗의 동네라는 말이 거듭 언급되는 것은, 예수께서 육신상으로 다윗의 후손임
을 강조함과 아울러 다윗 왕가의 후손이자 만왕의 왕으로 오실 예수께서 일개초라한
시골민의 가정에서 태어남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내포한다. 삼상 20:6에서 베들레헴
은 ‘다윗 성’이라 불리운다. 다윗은 약 천년전 이곳에서 태어났고, 그가 양떼를 돌보
던(삼상 17:15) 곳도 이 마을 근처의 언덕이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7.2Km 떨어졌고 나사렛에서는 약 144Km 떰어진 곳이며 그것의 옛 이름은 에브라다이고
라헬이 장사된 곳이기도 하다(창 35:19). 이 마을 이름의 뜻은 ‘떡집’이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곳이 다윗이 자라난 곳이고 미 5:2에 나타난 대로 메시야가 출생한 곳
이라는데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태어난 아기가 다윗성에서 난 다윗
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2:5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 누가는 요셉이 어느 시기에 베들레헴을 향해서 출발했
으며, 또한 그가 왜 마리아를 동반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얄는다.
추측컨대 아마 마리아의 고향에서 마리아에 대한 그릇된 소문이 퍼지고 있었을지도 모
르며 그 소문으로 인해서 마리아는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았을 것이므로 요셉은 인구
조사를 기회로 마리아를 데리고 고향을 떠났을 가능성도 있다. 요셉은 이미 그녀를 아
내로 맞이했다(마 1:24). 그러나 그들이 성령으로 잉태한 아이를 낳을 때 까지는 분명
히 약혼 관계에만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정혼’이라는 말을 유대적 배경에
서 이해해야만 한다. 유대적 개념에서 ‘정혼’은 결혼을 의미하고 절차상으로 신부를
신랑집으로 데려오는 일만 남은 것이다. 혼인서약은 대체로 정혼에 행해졌으며 이 정
혼은 항상 공식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은 후에는 신랑이 그의 신부를 데려가는
일에 있어서 어느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았다. 한편 요셉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여행하는 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산이 임박한 마리아가 그
장거리(약 144Km, 요단을 우회하여 돌아가는길)를 여행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
을 것이다. 이것은 산모와 태아에 치명적인 위험을 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여자도 호적해야할 의무가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고향에 가서
호적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함께 동행하는 것은 세인(世人)의 비난을 피하고자 한 요
셉의 배려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되어진 것으로 이해해야 한
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자신의 뜻대로 운행하는 주관자이시기 때문이다
(시 136:8-26).
=====2:6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 이 표현은 단순히 임신과 출산 사이에 일정한 기간이
지나야만 아이가 태어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도 무방하다. 임신 자체는 비록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지만 태중에서 아기가 자라나는 것은 일반적인 과정에 의했던 것이
다. 이는 예수께서 우리와 똑같은 성정(性情)을 가지고 똑같은 성장 과정을 거치며 모
든 인류를 대속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는 우리와 똑
같은 출생과 성장과정을 거쳤기에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다(히 4:15). 한편 이 구절에서 ‘해산할 날’이 현재대로 12월 25일인지는
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회에서는 성탄절을 전승에 따라 보통 겨울로 잡는다.
이것이 3세기부터 문제시되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5월 20일을 제안했다.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킨 것은 336년부터였다. 서방에서 이날을 택한 것은 로마신인 ‘정
의의 태양'(Sol Invictus) 탄생일에 대치한 것이나 동방 교회에서는 주현제 즉 동방의
현자들이 도착했다고 하는 날(Epiphania manifestation, 1월 6일)에 예수의 수세를
기념하다가 4세기부터는 예수의 탄생도 연결시켰다. 그리고 5세기 중엽부터는 동방 교
회도 거의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켰으나 예루살렘 교회는 549년까지도 1월 6일을 크
리스마스날로 지킨다.
=====2:7
맏아들 – ‘외아들’이 아닌 ‘맏아들’이라는 표현은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뒤 계속해
서 자녀들을 낳았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에 계속해서 동정을
지키며 자녀를 낳지 않았다는 주장은 근거없는 이야기며 이는 마리아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와 경외심에서 나온 이야기라 하겠다. 그리고 예수의 여러형제와 여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는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8:19, 20;마 12:46, 47;13:55,
56;막 3:31, 32;요 2:12;7:3, 5, 10;행 1:14).
사관(舍館)(* , 카탈뤼마) – 이 단어는 흔히 ‘여관'(inn)이라고 번
역되었다. 이 단어는 최후의 만찬 때에 사용된(22:11) ‘객실'(guest room)을 의미하기
도 하는데 22:12에는 그 객실이 ‘다락방’으로 언급되었다. 또한 이 단어는 군인들의
숙소나 여관을 포함하여 숙박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
도 만난 사람을 데려갔던 ‘판도케이온'(* , ‘주막’, 헬라어에서
대체로 여관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단어)과는 다르다(10:34). 그런데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다가왔을 때 그 보잘것없는 가족에게 허락 되었던 장소는 가축우리있다고 누가는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곳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대로 곳간(cave)이었을 수도 있으
며, 또는 집이나 사관의 일부분이었을 수도 있다.
구유(* , 파트네) – 신약에서 이 ‘파트네’는 누가복음에서만 4회 나온다
(7, 12, 16절;13:15). 이 주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비천한 신
분으로 보잘것없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이세상에 오셨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구유는
세상 구속주의 비천한 탄생을 당시 세게의 주관자인 아구스도의 영광과 대조시키며(1,
11, 14절), 아무데도 머리둘 곳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자이신 예수의 겸손과 고
난을 상징한다(9:58). 어쨌든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구유는 갓난아이를 누이기에는 안
성 맞춤이었다. 그리고 마굿간밖에 내어 줄 수 없었던 여관 주인은 동정심이 전혀 없
어서 그러했다고 보이지 않으며 누가 역시 그러한 각도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 같다(H.
Hengel, TDNT. , 49-55).
=====2:8
목자들이 – 당시 유대 사회의 여러 가지 직업들 중에서 목자라는 직업은 아주 천시
되었다. 일반 사람들은 목자들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목자들
이 하는일이란 유대인의 규례(規例)에 의하면 부정한 일로 간주되었다. 이 이야기를
살펴볼 때 명백한것은 복음이 맨 먼저 그 당시에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던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이 사실을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하고 있
다. 뿐만 아니라, 이는 예수께서 양들을 위해 목숨마져 아끼지 않는 선한 목자처럼
인류를 위해 당신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이심을(마 20:18;요 1:29) 넌
지시 암시한다. 한편, 이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여호와께서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언
약하는 내용(삼하 7:8)을 상기해볼 수 있다. 그 내용 중에는 여호와께서 다윗을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메시야의 선조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나온다. 그리고
신구약에서 목자는 하나님 자신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자들을 상징적으
로 가리킨다(시 23:1;사 40:11;렘 23:1-4;히 13:20;벧전 2:25;5:2).
밤에…지키더니 – ‘지키더니’에 해당하는 ‘퓔라쏜테스’는 ‘파수하다’, ‘보호하다’
의 뜻인 ‘퓔라쏘'(* )의 복수 현재능동태형이다. 그리고 ‘밤에’에 해당
하는 ‘테스뉴토스’는 ‘밤 새워’란 뜻을 내포한다. 따라서 이 귀절은 밖에서 여러명이
교대로 밤을 새워 도둑이나 다른 들짐승들로부터 양떼를 지키며 보호하는 일련의 행동
을 묘사한다. 팔레스틴지방에서 목자들은 4월부터 11월까지 이런 식으로 양떼를 밖에
서 방목(放牧)하였으며 겨울철에도 날씨가 춥지 않을 때에는 종종 그렇게했다. 한편
본문상으로는 예수가 어느 철에 태어났는지에 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나 여
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어느 철에 태어나셨나 하는 점보다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
신 사실 그 자체이다.
=====2:9
주의 영광 – ‘영광'(* , 돝사)은 영원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양식 중 하
나이며 그분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독사’는 하나님과 그
리스도와의 관계를 묘사하는 표현 속에서도 흔히 등장한다(9절;9:31, 32;행 22:11;계
15:8).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영광에 의해 다시 살아나셨으며(롬 6:4) 영광 속으로
올리워 지셨고(딤전 3:16) 지금도 영광의 우편에 계신다(행 7:55). 또한 영광이 하나
님께 돌려지듯이 그에게도 돌려진다(2:14;히 13:21). 따라서 그는 영광의 주님이시다
(고전 2:8;약 2:1). 나아가 우리의 종말론적 소망(사 40:5)은 위대하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딛 2:13).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들이나 본 구절에서 그의 출생시에 영광이 드러난 것은
그가 하늘로부터 왔음을 진작부터 말해주는 것이며 요한복음에서도 또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언급하고 있다(요 1:14;2:11;11:40). 그리스도께서 영광에 들어가
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이다(요 13:31).
두루 비추매(* , 페리엘람프센) – 이 단어는 ‘페리'(*
, ‘주위에’)와 ‘람포'(* , ‘비취다’)의 합성어로서 ‘빛에 완전히 쌓인 상
태’를 뜻한다. 때때로 하나님의 영광은 찬란한 빛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하나
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대민족들 가운데서는 ‘세키나’로서 알려져 있다. 이는
매우 희고 밝게 빛나는 구름의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것으로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출 24:16;왕상 8:10;사 6:1-3;행 7:55).
=====2:10
온 백성 – 이 말이 가리키는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이다. 그러나 천사를 통해 전달
된 복음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적울타리를 넘어 세계 만민에게 개방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대 백성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이 먼저 전달된 것은 그들을 통
해 온인류에게 전해지게끔 하고자 함이었다. 이러한 소식은 이 복음의 메시지를 접할
대상이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14절)과 ‘이방'(32절)에로 확대(擴大)된다는 점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좋은 소식을…전하노라(* , 유앙겔리조마이) – 이 단어
는 ‘기쁜 소식을 전파하다’의 뜻이며 히브리어로는 ‘바사르'( )에 해당한다. 이
히브리어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다’는 뜻을 나타냄은 물론이나 승리의 기쁜 소식
을 전한다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된다(삼하 4:10;왕상 1:42). 이 용어는 특히 사 40장
이하에서 의미심장하게 사용되었으니 여기서 사자는 시온에 이르러 구원의 시대를 시
작하시는 하나님의 전세계적인 승리를 선포한다(사 40:9;41:27;52:7). 한편 본문에서
의 ‘좋은 소식’ 이란 곧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
신 사실 자체가 기쁜 소식이며,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곧 복음이라 할수 있었다.
=====2:11
다윗의 동네 – 베들레헴(4절 주석 참조). 메시야는 다윗의 동네 곧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리라 예언되었다. 여기서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
은 메시야의 오심과 관련된 모든 약속들을 기억나게하고 그와 관련된 예언의 성취를
암시하기 위함이다.
구주(* , 소테르) – 헬라어 ‘소테르’는 신약 성경에서 드물게 나타나며
그것도 누가와 바울에 의해서만 주로 사용된 표현이다(행 5:31;엡 5:23;딤후 1:10).
이는 하나님을 구원자로 표현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바(1:47;삼하 22:3;시 49:26),
예수께서 죄악에 찌들은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임을 뜻한다.
그리스도 주 – ‘그리스도’는 마 1:1 주석에서 설명된 바처럼 인류 구속의 대사명과
관련되는 주님의 직능적명칭이며, ‘주'(헬, 퀴리오스)는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한다.
예수는 영원전부터 그리스도와 주로 예정되었으며(엡 1:4;3:11;골 4:3), 본체상으로는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며,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자기 백성들을 위한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신 것이다.
=====2:12
강보에 싸여…표적이니라 –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는 긴 옷감으로 아기를 포근히
감 감싸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 태어난 아기를 따뜻하게 하고 병으로 부터 보호하
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기예수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놓여있다는 것은 특별한
표적이라고 언급된다. 그것은 다음 세가지 면에서 표적이 되었다. (1) 천사가 목자들
에게 예언한 시기의 장소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2) 그들에게 전달된 기쁜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3) 기름부음 받은 자 곧 그리스도로서의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지극히 비천한 자리에까지 낮아지셨다. 한편 겔 16:1-5에는 예루살렘이 이방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불쌍한 아기로 묘사되었거니와, 예수는 이와
같은 가련한 상태에 놓인 이스라엘과 나아가 온 인류를 구원하고 돌보시기 위해 스스
로 비천한 자리(구유)에 누이셨던 것이다.
=====2:13
허다한 천군이…찬송하여 – 두 세사람의 증거로도 어떤 사실의 진정성을 입증할
수 있었거니와(마 18:16) 여기서는 수많은 천군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
나님의 아들을 증거하고 있다. ‘천군’에 해당하는 ‘스트라티아'(* )는
구약 성경에서 종종 천체(henvenly bodies)를가리키나(느 9:6), 여기서는 일군(一群)
의 천사들을 가리킨다(시 103:21).
=====2: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 이 이야기에서 절정을 이루는 내용이
다. 그리스도의 등장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유는, (1) 하나님의 영윈하신 신성과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히 거하고 또한 그를 통해 확연히 나타나기 때문이다(요
1:14).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를 본 자는 곧 하나님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요
14:9). (2)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찬양과 경배로써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고후 1:20). (3) 그리고 하나님이 그 영원하신
섭리에 따라 인생과 세상 만물을 향해 이루고자하신 계획을 그리스도를 통해 완수하시
게 되기 때문이다.
땅에서는…평화로다 – 그리스도의 오심이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인(and on earth peace to men on whom his favor rest, NIV) 것은, (1) 그리스도
의 중재와 대속으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들 간의 막혔던 장벽이 제거되고 화해가 이루
어지기 때문이다(엡 2:14).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서 하나
님과 원수 관계에 놓여있으므로 늘 불화의 다툼의 수렁에서 허덕이지만, 하나님과의
근본적 화해를 이룬 사람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평강을 선물로 소유하게 된다
(요 14:27). (2) 그리스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죄악이 제거되고 사람들간
에 화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엡 2:16-18). 여기 언급된 평화는 메시아의 도래와 관
련된 총체적 축복과 구원을 지칭한다고도 볼 수 있다. 예수는 평강의 왕으로서(히
7:2), 당신의 공생애를 백성들의 평강을 위해 보내셨으며(7:50;8:48) 그 평강을 위한
사역은 십자가상에서 절정에 달했다.
=====2:15
하늘로 올라가니 – 누가는 천사들이 단순히 사라졌다고 언급하지 않고 ‘하늘로 올
라갔다’고 말한다. 이는 공간적인 이동을 자세히 묘사한 누가의 독특한 표현이다
(24:51;행 1:10). 물론 우리는 본절을 문자적인 의미로만 해석하여 수직 상승의 뜻으
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천사의 처소 곧 하늘 나라는 이 우주속의 그 어느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의 승천
장면에 대한 묘사와 마찬가지로, 지각 가능 상태로부터 지각 초월 상태에로 변화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라 하겠다.
이제(* , 데) – 강조를 위한 접두사로서 특히 명령형 문장과 더불어 사용되며
여기서는 긴급성을 강조한다.
=====2:16
빨리 가서 –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을 만난 후 엘리사벱을 찾아 나선 장면을 연상
시킨다(1:39). 목자들은 자신들이 돌보던 양떼를 두고 마리아처럼 서둘러 찾아 나선
다. 목자들이 양떼를 다른 동료 목자들에게 맡기고 갔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보존에 맡겼는지 알 수가 없으나 아무튼 목자들은 즉각적(卽刻的)인 반응을 보여주고
아기 예수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양떼를 뒤로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와의 만남에는 결
단이 요구된다. 우리도 목자들과 같이 순수한 믿음과 겸손하고 완전한 섬김으로써 주
를 찾을 때에 주께서는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인도자 되신다.
찾아서(* , 아뉴란) – 원어상으로 ‘끊임없이'(부지런히) 탐색하여
찾다’라는 뜻이다.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계속해서 찾아다녔으며, 그렇게 노력하여 찾
던 끝에 정말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평강의 왕 아기 예수를 발견한 것을 말한다.
=====2:17
보고…말한 것을 고하니 –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처해 있었던 이
목자들이 최초로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이었고 또 최초로 복음을 전달한 사람들이었
다. 그런데 목자들이 그 아기에 관한 기쁜 소식을 누구에게 전해 주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 외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마굿간에 모여 있었으리라고 추
측해 볼 수도 있고, 목자들이 이웃 사람들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전했다고도 짐작된
다.
=====2:18
기이(奇異)히 여기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다우마조'(* )는 ‘이
상히 여기다’, ‘놀라다’는 뜻 외에 ‘찬양하다’는 뜻도 내포한다. 즉 이 말은 초자연적
적인 혹은 신적인사건과 접한 자의 외경스러운 감동을 시사한다. 누가는 메시아에 대
하여 선포하는 말을 들었던 이들이 그 말을 기이하게 생각했다고 여러번 언급하고 있
는데 본절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마리아와 요셉도 시므온이 예수께 대하여 하는 말을
듣고 기이하게 여겼으며(33절) 47절에 보면 성전에서 답변하는 어린 예수의 말을 들었
던 모든 이들이 예수의 말을 기이하게 여겼다. 또한 나사렛의 회당에서 예수가 사 61
장의 어떤 부분을 읽고 나서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곳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예수
의 말을 기이하게 여겼다(4:22;8:25;9:43;11:14, 38;20:26;24:12). 이외에도 사람들이
위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 것을 설명해주는 여러가지 어휘가 사용되었다(4:15,
36;5:26). 사실 예수 안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충만히 거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기이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롬 1:20).
=====2:19
지키어 생각하니라 – ‘지키어’에 해당하는 ‘쉬네테레이’는 원형’쉰테레오'(*
)의 미완료 시제로서 ‘보호하다’,(기억으로) ‘간직하다’의 뜻이며, ‘생각
하니라’에 해당하는 ‘쉼발루사’는 원형 ‘쉼발로'(* )의 주격 분사 현
재형으로 ‘숙고하다’, ‘생각하다’, ‘만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여기서 마리아는 사
건 전반을 기도하는 마음과 자세로 계속해서 생각하여 그 의미를 되새겼음을 알 수 있
다. 예수 탄생을 전후하여 천사로부터 전해진 메시지들이나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사
실 등은 마리아로 하여금 아기 예수의 신분과 사명에 대해 거듭 상고해 보게끔 하였을
것임에 분명하다.
=====2:20
목자가…찬송하며 돌아가니라 – ‘하나님께’라는 목적어를 받는 ‘영광을 돌리다’
(* , 돝사조)라는 표현이 누가복음에 자주 쓰인다
(5:25;7:16;13;17:15;18:43;23:47). 그리고 본절에서와 같이 어떤 이야기가 찬양으로
끝맺는 것은 누가복음의 특징중 하나이다(24:53). 목자들은 그들이 천사들로부터 들은
바와 실제로 본 것이 똑같음을 알고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린다. 사실 아기의
탄생 자체는 평범한 보통의 사건으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기 예수는 그 비슷한
시간에 태어난 많은 아기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들레헴의 말구
유에 오신 아기 예수는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성육하신 하나님이신 것이
다.
=====2:21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 성경에는 아기가 출생하기도 전에 이름이
먼저 지어진 예가 여러번 나온다. 이삭(창 17:19), 솔로몬(대상 22:9), 요시야(왕상
13:2, 왕하 22:1), 고레스(사 44:28-45:1), 세례요한(1:13,60-63), 예수(마 1:25)가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한편 예수라는 이름이 명명된것은 마리아나 요셉의 의도가
아니었다. 이것은 이미 아기 탄생 전에 천사가 지시한 바를 따른것 뿐이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견을 전혀 가미하지않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명령하신 그대로 수행했다고 하는 것은 이 일이 처음부터 성령의 역사
하심 가운데 진행되어온 일이라는것을 인정하며 앞으로의 일 역시 성령께서 진행시켜
나가실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2:22
결례(潔禮)의 날 – 유대의 모든 산모는 자녀를 낳은 후 율법에서 정한 기한이 지나
면 제사장에게로 가서 규례대로 예물을 드려 속죄를 받아야 했다. 그 이유는 자녀를
해산한 산모는 부정하게 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율법에서는 부정하게 된 산모
와 아이들을 위해서 정결케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율법이 명
시한대로 정결케 되는 기간이(남자 아이 40일, 여자 아이 80일) 찬(레12:1-5) 산모는
최종 정결 예식으로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야만 했다. 여기서 번제는 출산에 대한 감
사와 헌신의 마음을 표하기 위하여 드렸고 속죄제는 출산에 따른 부정(不淨)을 제거하
는 뜻에서 드렸다. 이때 각 예물은 번제로 양, 속죄제는 비둘기였으나 가난할 경우 번
제로 양 대신 비둘기 둘로 대치할 수 있었다(레 12:1-8). 본문에서 누가는 어머니의
정결 예식과 아기를 바치는 행위를 함께 묘사하고 있다(Marshall). 여기서 아기 예수
를 위해 제사장을 찾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만, 결국 이 예수는 우리를 위한 대
제사장이시다(히 3:1). 이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분이 아니
며 우리의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다.
=====2:23
주의 율법에…아기를 주께 드리고 – 율법은 처음 난 짐승의 새끼를 여호와께 드리
도록 규정하였다(출 13장;22:29;34:19;민 3:11-13;40-51;8:16-18;신 15:19).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첫 아기를 제물로 드리는 일을 대치시키기 위해 레위 지파를 성
별하셨는데 이때 이스라엘 장자의 수가 레위인의 슷자의 비율에 맞지 않을 때에는 이
스라엘 백성들의 장자 수만큼, 즉 한 사람당 다섯 세결씩을 속전으로 지불하도록 하셨
다. 이러한 율법에 근거하여 예수께서도 장자, 곧 거룩한자로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된
다. 그러나 예수는 비록 인간의 몸을 입으셨긴 하지만 전혀 무죄하시다(히 4:15). 따
라서 예수가 주께 바쳐진것은 그가 자신을 중보자로서 주께 드림을 상징한다(딤전
2:5). 실로 예수의 생애 자체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한 희생과 헌신의 연속
이었다.
=====2:24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斑鳩)둘로 제사하려 – 누가는 계속해서 산모의 정
결예식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반구는 산비둘기를 말한다. 이 구절은 예수께서 태어나
셨던 가정환경과 그 사회적 형편을 단적으로 나타내 준다. 앞서 기술했듯이 레 12장에
는 해산한 여인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물을 ‘양 한마리와 비둘기 한마리’로 규정하
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율법에 따라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으로서 그 양(量)과 방법들이 엄격하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극빈자의 경
우는 정한 제물의 양대로 바치지 못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종교적으로 갈등을 갖게
될 것이므로 그 양을 줄이는 것 역시 법으로 정하여 바치게 했다. “그 여인의 힘이 어
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들기 새끼 둘을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
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
(레 12:8). 이것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와 관심에서 이루어진 일들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부유한자나 가난한 자나 남녀노소할 것 없이 누구나가 하
나님을 경배하여 그에게 예배를 드려야 함을 암시한다. 당시 비둘기의 가격은 어린 양
의 약1/10정도에 해당하였다. 마리아와 요셉이 하나님의 율법을 신실하게 지키는 경건
한 사람들이었음에 비추어볼 때 그들이 극빈층에 속하였던것이 분명하다.
=====2:25
시므온 – 이러한 이름은 유대 사회에서는 매우 보편적이고 흔한 이름이었다. 그런
데 혹자들은 이 구절의 시므온은 잘 알려진 유대랍비 힐렐의 아들이요 가말리엘의 아
버지라고 주장하며 그가 A.D. 13년에 산헤드린의 회장이 되었다고 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막연한 추측일 뿐 정확한 자료나 확증이
없다. 어쨌든 시므온은 평생을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왔으며 더욱이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살아왔다. 메시야가 바로 그의 위로의 근원인 것이다. 이는 우리들에
게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며, 우리가 언제 재림하실지 알 수
없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경건된 삶을 준비하여야 함을 보여 주고 있다(마
25:1-13).
의롭고 경건하여 – 1:5, 6에서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스벱이 소개될 때처
럼 의로음과 경건함이 강조되고 있다. ‘의롭고’에 해당하는 ‘디카이오스'(*
)는 ‘공정한’, ‘정의로운’등의 뜻을 나타내며 하나님과 신정 사회(神政社會)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따라서 ‘의로운’자에게 있어서 무엇보
다도 우선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리고 ‘경건하여’에 해당하는 ‘율라베스’
(* )는 ‘경건한’, ‘독실한’ 등의 의미외에 ‘주의’, ‘신중함’ 혹은 ‘두려
워하다’, ‘경계하다’ 등을 뜻하며, 율법의 요구를 면밀하고 세심하게 충족시키고자 행
동거지를 주의하는 독실한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잘 사용된다. 따라서 시므온이
얼마나 율법을 공경하며 준수했는가를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위로 –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받는 위로를 가리킨다
(사 40-55장). 말라기선지 이후 약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영감받은 선지자가 나타
나지 않았는데, 시므온은 이러한 소위 오랜 침묵의 시대에 살면서도 메시야의 도래를
확신하며 끈기있게 기다리는 믿음을 소유한 자였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리스도
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다. 우리는 눈앞에 전개
되는 타락과 불신의 흐름에 휩쓸려갈 것이 아니라 역사의 끝까지 투시(透視)하는 신령
한 눈을 떠서 매일 매일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결단하고 인내하는 경건한 삶을 살아
야 할 것이다.
=====2:26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 ‘지시를 받았더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크레마티스메
논'(* )은 ‘사건을 다루다’, ‘계시를 전달하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본 구절에서 이 단어는 계시에 의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나타낸다. 메
시야를 대망하며 그의 도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경건한 생활의 한 부분
이었다. 시므온은 오랜 세월을 메시야의 도래를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은 계시의 전달자인 성령을 통해 의롭고 경건한 시므온에게 메시야께서 오실 것을 보
리라는 계시를 허락하셨다.
=====2:27
성령의 감동으로(* , 엔 토 프뉴마티) – 이 구절은 시므
온이 계속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결국 시므온이 성건에 들어오게
된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고 마리아 부처가 아기예수를 성전으로 데려올
때 그를 맞이하도록 시므온을 준비시킨 분도 바로 성령이셨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주도면밀(周到綿密)하고 정확하다. 오랜 세월을 기다림으로 보낸 나이먹은 시므온은
이제 계시의 말씀이 완성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부모 – 법적인 차원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부모였다.
=====2:28
성령의 감동으로(* , 엔 토 프뉴마티) – 이 구절은 시므
온이 계속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결국 시므온이 성건에 들어오게
된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고 마리아 부처가 아기예수를 성전으로 데려올
때 그를 맞이하도록 시므온을 준비시킨 분도 바로 성령이셨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주도면밀(周到綿密)하고 정확하다. 오랜 세월을 기다림으로 보낸 나이먹은 시므온은
이제 계시의 말씀이 완성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부모 – 법적인 차원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부모였다.
=====2: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 시므온은 히브리적 표현법을 사용하여 자신이
메시야를 보았다고 말하지 않고 자신의 눈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말한다. 이는
누가복음의 한 특징으로서 이미 나타난 바와 같이(1:69, 71, 77) 예수를 본다는 것은
예수 안에서 구원이 구체화된 것(embodied)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시므온이 예수로
말미암아 구현될 인간구원의 역사를 예견하였다는 의미이다. 사실 예수 탄생 자체가
이미 인류 구원을 위한 위대한 사역의 첫 발걸음이기 때문에 그 사역은 벌써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시므온은 구약시대 동안 계속해서 예언되었지만 아무도 보지못
했던 메시야를 맞이하는 구약시대를 마감하는 인물이요, 또 메시야를 맞이함으로 신약
시대를 열도록 길을 열어주는 서언적(序言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갓난아기
의 모습인 예수를 보고서 그토록 즐겁고 평안한 심정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정도
로 강력한 영향을 시므온이 받았다면, 구원의 실제적 내용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된 이 복음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얼마나 더 큰 기쁨과 확신을 나타내어야 하
겠는가!
=====2:31
만민 앞에 –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팔에 안고서 세상 끝에까지 미칠 그분의 영광과
은혜를 찬양하고 있다. 이는 구원의 복음이 이스라엘의 지경을 넘어 세게 만방에로
확장될 것임을 내다보는 예언자적 통찰력이다. 한편 이방인의 구원 혹은 복음의 보편
성이라는 주제는 누가복음에서 강조된 사실들 중 하나이며(15장), 구약 속에 이미 태
동되어 있던 구속사의 한 주제였었다(사 43:5,6;45:6;49:12;미 4:1,2;슥 8:20-23). 이
점에 관해서는 마8:1-17주제 강해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관계’를 보라.
=====2: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 빛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또한 그의 온전히 의
로우신 성품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시 27:1;요 1:5;딤전 6:16) 또 하나님의 계시와
(시 34:5) 생명의(요 1:4) 상징으로서 언급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제
사장 나라로 삼으사 하나님 나라의 복된 소식을 이방에 전파할 ‘이방의 빛’으로 삼으
셨다고 되어있다(사 42:6). 이러한 말씀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성취를 보게 되었다. 예수는 그 가운데 조금의 어둠도 없으신 참빛로서 인종과 신분
등 모든 인간적 장벽(障壁)을 뛰어넘어 모든 이들에게 비추이신다(요 1:9). 그리고
예수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도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셨고(마 5:14) 그 빛을 사람들
앞에 비취게 하라고 명하셨다(마 5:16).
주의 백성…영광이니이다 – 예수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다. 왜냐하면 온
세게 만민을 위한 구원의 길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를 통해 열렸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이스라엘은 이방세력의 지배 하에서 민족적 자존심을 잃은 상태였는데, 이
제 메시야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면모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특권을 바로 깨닫기는 커녕 오히려 메
시야를 배척하고 마침내 십자가 형틀에로 내몰아 버렸다.
=====2:33
기이히 여기더라 – 마리아와 요셉이 기이히 여기며 놀란 것은 단지 시므온의 찬송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보다는 천사들, 목자들, 동방박사들, 엘리사벱,
사가랴 그리고 시므온 등 사방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아기 예수에 관한 증거가 나타났
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증거들을 접하게 됨으로써 마리아 부처는 애초 그
들에게 임했던 천사들의 계시를 거듭 상고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자신들의 이해를
보다 깊게 다져 나갔을 것이다.
=====2:34
많은 사람의…세움을 입었고 – 이 구절은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도 하는 반면 하
나님의 집을 세우는데 기초석이 되기도 하는 돌(사 8:14;28:16)에 관한 사상을 반영한
다. 예수를 배반하고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예수께서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거게 하며
멸망에 이르게하실 것이요 또 그를 따르는 자들은 세움을 입고 하나님 나라의 초석(礎
石)이 되게 하실 것이다. 또한 예수는 백성의 구원자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박
해와 곤욕을 치러야만 될 것으로 예언되었다. 이는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부
터 받으셨던 각종 모욕과 비방(4:29;22:63-65;23:11, 34-39)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
라 영원 전부터 예정된 것(시 32:6-8;사 50:6;53:4-12)임을 증거해 준다. 시므온의 이
러한 예언은 엘리사벱의 노래나(:42-45) 사가랴의 예언(1:68-79) 그리고 천사들의 찬
송과는(2:10-14) 반대로 예수께 드리워질 어두운 면을 증거한다. 예수의 영광에 관한
기쁨의 증거와 더불어 이러한 비탄스러운 증거는 앞으로 전개될 메시야적 사역의 진면
목이 어떠한지를 암시해 준다.
=====2:35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 ‘칼’을 나타내는 헬라어 ‘롬파이아(*
)는 드라키아인들의 대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통 큰 칼을 의미한다. 여기서 마리아
는 ‘여인 중에 가장 복이 있는 자'(1:42) 곧 메시야의 어머니라는 영광과는 또 달리
‘슬픔의 어머니'(Mater dolorosa)로 묘사되고 있다. 한 어머니로서의 마리아는 예수께
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나사렛에서 함께 보낸 소년 시절과 청년시절이 가장 행복된
나날이었을 것이다.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됨과 그의 때를 같이하여 대두한 유대교 지
도가들의 핍박은 날이 갈수록 심각성을 띠어갔으며, 이로 인해 혈육의 정을 떨칠 수
없었던 마리아로서는 예수의 장래에 대한 불길한 예감으로 노심초사(勞心焦思)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엄청난 고통을 받을 때 큰
칼이 찌르는 것보다 더한 찢어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었을 것이다.
드러내려 함이니 – 여기서 헬라어 ‘아포칼뤼프도신'(*
)은 ‘베일이 벗겨지는’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을 행한다고 하는 자들의 위선과 허위가 드러나지 않은 채 그대로 숨기워 있었
지만 이제는 예수를 통해 사실 그대로 드러날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사역과 더불어
그를 섬기는 자들과 대적하는 자들이 명확하게 구분될 것이다.
=====2:36
아셀 지파 비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 – 시므온의 소개와는 달리 안나의 경우
는 지파명까기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시므온의 경우는 구체적인 신분을 확인할 수
가 없었으나 안나는 삶의 배경이 기술되었다. 아셀은 야곱의 여덟번째 아들이었다(창
30:13). 예수 탄생 당시는 이스라엘 민족이 주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로 구성되어
있어 나머지 10지파의 행방은 불투명했다. 이는 바벧론 포로지로부터 귀환(歸還)한 자
들 중 거의가 이 두 지파에 속한사람들이었던 연유도 있겠는데, 안나도 바로 다른 지
파에 속한 소수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이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자
신들의 족보를 보관하고 그 잃어버린 지파백성의 후손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한편 ‘바
누엘’은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고
그 곳에 붙인 ‘브니엘’ 이라는(창 32:30) 지명에서 나온 이름이다. 따라서 히브리식으
로는 ‘브니엘’이며 그 뜻은 ‘하나님의 얼굴’이다. 그리고 ‘안나’는 히브리어의 ‘한나’
( )에 해당한다(삼상 1:2). 즉 이 이름은 사사이며 제사장이고 선지자였던 사무
엘의 어머니 한나의 이름과 동일하다. 그녀는 구약 성경의 드보라(삿 4:4)와 훌다(왕
하 22:14)와 같이 휼릉한 여성 예언자였다.
=====2:37
과부 된 지 팔십 사 년이라…기도함으로 섬기더니 – 당시 유대 사회의 조혼 풍습
에 비추어 볼 때 안나는 14세를 전후하여 결혼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안나의 나
이는 14+7+84=105세 쯤 되는 셈이다. 이처럼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긴’여인이었다. 이는 그녀가 철저한 헌신의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이스라엘의 소망 곧 메시야를 대망하며 기도했던 여인임을
나타내준다. 아마 그녀는 오직 메시야만이 그녀와 이스라엘의 가슴에 수십년 동안 맺
혀있던 응어리를 풀어주고 위로해주실 수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한편, 안나는 성전
에서 시므온의 송가(頌歌)를 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송가를 통해서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그 아기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확신하였다.
=====2:38
하나님께 감사하고 – ‘감사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도몰로게이토'(*
)’는 ‘찬양하다’, ‘감사하다’ 등의 뜻외에 ‘단호하게 신앙을 고뱄하
다’, ‘무엇인가를 믿음으로 고백하다’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안나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신앙 고백적인 믿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안나의
감사는 순종 및 메시지의 선포와 결합되고 있다.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 이 구절은 사가랴가 이스라엘의 속량
(1:68)을 노래하고, 시므온이 이스라엘의 위로(25절)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사 52:9에 나타난 메시야의 예루살렘 구원에 대한 대망의 연장선상
에서 이해된다. 사실 ‘구속’은 예수께서 이룩하실 신적구원 개념을 나타내는 말이다
(롬 3:24;엡 1:7;골 1:14).
=====2:39
주의 율법을 좇아 – 누가는 예수의 부모들이 율법이 명하는 바를 열심히 준수하였
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본장 내에서만 하더라도 예수의 부모들이 얼마나 철저
하게 율법을 준수했었는가 여러차례 강조되고 있다. 22절(모세의 법대로), 23절(주의
율법에 쓴 바), 24절(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27절(율법의 전례대로 미루어 보건
대 마리아 부처는 경건한 삶을 사는 유대인의 전형(典型)이었다. 본절은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율법의 마침이 되시고(롬 10:4) 율법 아래 있는 모든자들을 구속하시
기 위하여(갈4:4) 친히 율법을 지키셨음을 시사한다.
갈릴리로…나사렛에 이르니라 – 누가는 마태복음 2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동방 박
사의 방문이나 애굽으로의 피난 기사를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그것은 누가가 마태의
기사를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마태는 또 하나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실례를 들기 위해서 그 기사의 내용을 넣었겠지만 이방인을 포함한 전 인류를 구원하
시기위해 사람의 몸을 빌어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에 대해서 기술하려고
하는 누가에게는 그러한 내용이 그다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가는 예
수의 부모가 율법을 충실히 지키고 예수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사람들에게 귀여움
을 받고 정상적인 어린 아이로 성장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40, 52).
=====2:40
아기가 자라며…그 위에 있더라 – 이 구절은 세례 요한의 어릴적 성장 모습을 묘
사한 1:80의 내용과 비교된다. 그리고 52절은 이 구절에 대한 보충 내용이다. 이것은
예수가 12살이 되기(42절) 이전의 이야기이다. ‘자라며 강하여지고’라는 표현은 신체
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범한 아이와 같이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음
을 말한다. 그리고 ‘지혜가 충족하며’라는 표현은 정신적 성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는 표현은 영적 성장을 뜻하는 것으로 예수께서 어릴 때부터
지혜와 은혜를 가진 인물로 세례요한보다도 훨씬 탁월했음을 의미한다.
=====2:41
그 부모가 해마다…예루살렘으로 가더니 – 예수의 부모가 율법을 성실히 이행하는
경건한 유대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당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 의식은
온갖 위선과 타락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구약적 차원에서 지켜야 할 율법 의식들은 여
전히 중요한 구속력(拘束力)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경건한 자들이 그러한 의식에
맞춰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는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본분이었다. 율법에는 유대 성인
남자들이 연례 행사로서 삼대 주요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장막절)을 예루살
렘을 방문하여 지키도록 명시되어 있다(신 16:16). 그러나 바벧론 포로 시대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각처로 흩어지게 되어 이행사에 매년 모두 참석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렵
게 되었다. 그렇지만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은 적어도 유월절 행사에만은 꼭 참석하려
고 노력하였다. 한편 모세의 율법에는 이 행사에 남자들만 참석하도록 명시하고 있으
나 유대 랍비 힐렐(Hillel)은 여자들도 축제에 참석하도록 권고하여 그렇게 지켜졌다.
한편 우리는 여기서 어린 예수가 자란 가정의 신앙적 배경을 살필수가 있다. 어린 예
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영적 및 인격적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며 어려서
부터 의롭고 경건한 삶에 훈련되어져 갔던 것이다.
=====2:43
그 날들을 마치고 – 유월절과 무교절은 모두 7일 동안 계속되었다(출 12:15;레
23:6-8;신 16:3). 그리고 이 절기를 위해 예루살렘을 찾은 순례자들은 적어도 이틀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아이 예수는…알지 못하고 – 예수는 그의 부모들보다 예루살렘에 더 오래 머물러
있었다. 당시 열 두 살의 나이는 결코 어리게만 간주되지 않았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예
수의 부모는 예수의 움직임을 일일이 살피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모들은 그 사실을 모
르는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 어중간한 나이였던 예수는 여인들과 어린 아이
들의 행렬이나 남자 어른들과 제법 나이가 든 소년들의 행렬중 어느 한 곳에 끼여 여
행했을 것이다. 이 행렬이 이처럼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면 요셉은 예수가 마리아
와 함께 여행하고 있을것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마리아는 예수가 요셉과 함께 여행하
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서로가 착각한 사이에 하루가 끝나갈 무
렵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한편 예수는 그의 부모들이 찾고 있을 시간에 성전에서
최고 석학(碩學)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일과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
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은 그를 게속해서 엉뚱한 곳에서 찾아 해맨다.
만일 그의 부모들이 예수의 메시야성을 게속해서 염두에두고 그의 신성을 깨닫고 있었
다면 그들은 예수가 보이지 않았을 때 바로 성전에 가서 찾았을 것이다. 왜야하면,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 그의 아버지의 집은 바로 성전이었기 때문이다.
=====2:44
동행 중에…아는 자 중에서 찾되 – 성전 절기 준수를 위해 성전으로 모이는 여행
자 무리는 같은 마을 이웃들과 친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매일 저
녁 때 이 무리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함께 모여 유숙하고 여행 일정 등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예수의 부모는 예수가 일행 중에 있을 줄로 알고 신경쓰고 있지 않았으나 저
녁 식사 때 혹은 잠자리에 들려 할 때 그가 없음을 알고 아는 사람들 속에서 그를 찾
아 나섰다.
=====2:45
찾으면서 – 헬라어 ‘아나제툰테스'(* )는 현재 분사형으로
서, 마리아 부처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며 줄곧 예수의 행방을 수소문하였음을 뜻한
다.
=====2: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 마리아와 요셉은 하룻길을 여행하고 나서 예수의 행
방이 묘연해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44절). 이튿날 그들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며 예수
를 찾는데 하루가 걸렸을 것이다(45절). 그리고 그 다음날 곧 ‘사흘 후에’ 그들은 예
수를 성전에서 만났다.
선생들 중에 앉으사…묻기도 하시니 – 성전 안에는 이방인의 뜰과 이스라엘인의
뜰과 안뜰의 동남부 등 이렇게 세 곳에 회당이 있었다고 탈무드(Talmud)는 전한다. 대
체로 랍비들은 바로 이 안뜰의 동남부에 있는 회당에서 율법을 강론(講論)했다고 한
다. 당시 생존해있던 저명한 율법 학자들은 ‘힐렐'(Hillel), ‘샴마이'(Shammai), ‘가
말리엘'(Gamaliel), ‘요나단'(Jonathan), ‘시므온'(Simeon), ‘니고데모'(Nicodemus)
등으로 짐작된다. 추측해 보건대 이러한 유명한 학자들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중 적
어도 한 사람 정도는 예수와의 토론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외경 ‘도마 복음
서'(Gospel of Thomas)에서는 이때 예수께서 율법과 선지자들의 난제들을 해결하고 또
어려운 질문을 제기하고 답하며 천문학, 의학, 물리학, 철학 등에 관한 이야기 등도
논의되었다고하나 정확한 증거 자료는 없다. 아무튼 어린예수께서 당대 최고 석학들과
함께 율법을 이야기하며 토론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2:47
듣는 자가 다…기이히 여기더라 – ‘기이히 여기더라'(* , 여시
스탄토)는 미완료 중간태 직설법으로서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놀라움을 나타내며, 그
원형 ‘에크시스테미’는 거의 기절(faint)할 정도로 놀랐다는 뜻이다. 즉 예수의 이야
기를 듣는 사람이 계속하여 반복해서 그 질문과 답변에 매우 놀라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놀라움은 어린 소년의 입에서 그토록 영특한 이야기가 넘쳐나온 사실로 말미암은
바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입에서 나온 지혜의 말씀 자체의 탁월성에 기인한 것임에
분명하다. ‘지혜’에 해당하는 ‘쉬네세이'(* )는 ‘이해’라는 뜻이다. 여
기서 이 이해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하나님의 지혜를 가리킨다. 예수의 답변과
하나님의 지혜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는 하나님께 속한 모든 신령
(神靈)한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취어 있기 때문이다(골 2:3).
=====2:48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너를 찾았노라 – 누가는 예수의 부모가 예수를 발견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들의 처음 가졌던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불과
12세에 불과한 소년이 당대의 석학들과 당당하게 토론하는 장면은 그들에게도 놀라움
으로 먼저 다가왔다. 물론 그들은 예수의 탄생에 얽힌 신비스러운 일들이나 차츰 성장
하면서 보여준 특출한 지혜와 인격에 대해 남다른 경험을 한 바 있었을 것이다. 그러
나 그들 역시 경험한 바 계시에대한 이해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낼 수밖에 없는 한 인
간이었기 때문에 예수의 신분이나 사역의 본질적 의의를 정확히 깨닫지는 못한 상태였
다. 이어서 마리아가 예수께 책망조로 탓한 사실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마리아는
어디까지나 잃어버린 아들로 인해 노심초사했던 어머니로서의 걱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속상한 감정을 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예수의 대답은(49절) 마리아 부처로
하여금 예수의 신분에더해 다시금 깊이 숙고해 보게 하였을 것이다.
=====2:49
어찌하여…알지 못하셨나이까 – 본서에 나오는 예수의 첫 말씀이다. 이는 혈육상
의 모친인 마리아에게 하신 삼가는 투의 공손한 말씀이지만 자신의 존재 의의를 분명
히 천명(闡明)하신 단호한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몇 사항을 상고해 볼 수 있
다. (1) 혈육상의 모친에 대한 순종과 하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 순종 사이의 긴장
관계가 나타난다. 예수께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한 가정의 아들로 탄생하셨기 때문에
그 부모에 대한 임무에 충실하셨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사로운 일에 얽매일
여념이 없을 엄청난 사명, 곧 온 인류에게 구원의 산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막중한 사
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지상에서 수행해야 할 인간에 대한 모든 임무는 하
나님의 계명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만 수행될 수 있을 뿐이며 우선 순위는 절대적으
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일에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18:29;신 33:9;마 6:33). (2) 예
수는 자신의 전생애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전개되어감을 분명히 인식하고 계셨음을 보
여준다. 특히 ‘있어야 될 줄을’이란 표현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는 당위성(I
must be…)을 강조해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인간에
대한 의무의 우선 순위 문제, 그리고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욕망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
하는 마음 간의 양자 택일 문제를 놓고 믿음의 용단(勇斷)을 내릴 수 있어야 하겠다.
내 아버지 집에 – 예수께서 하나님을 독특하고 유일한 의미에서 자신의 아버지로
부른 최초의 언급이며(22:29;23:46;마 11:25;막 14:36;요 5:17), 자신의 신성(神性)을
증거한 것이다. 이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은 ‘내 아버지의 일'(My Father’s
business)로도 번역된다. New KJV는 본절 하반절을 ‘내가 내 아버지의 일에 열심을
내야 할 것을 모르셨나이까'(Did you not know that I must be about My Father’s
business ?)라고 옮겼다. 이는 ‘집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토이스’가 중성 복수로
‘일’ 또는 ‘사물’의 개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일’이라 번역하든 ‘집’이라 번역하든
이 구절의 의미를 크게 바꾸어 놓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는 그의 전생애를 하나님
의 일을 실천해 나가면서 살았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일이 있는 곳에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이 있는 곳이 그가 머물 자리이고 그의 집이었던 것이다.
=====2:50
양친이…깨닫지 못하더라 – 마리아에 임한 예수 탄생에 관한 계시를 생각해 보면
이 구절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즉 예수께서 메시야임을 알고 있었다면
이 정도의 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부의 깨닫지 못
함이 훨씬더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48절에서도 나타내었듯이, 설령 그들이 예수께 얽
힌 여러 신비로운 계시를 접했다고 해도 그 의미를 확연히 깨달을만한 영적 수준에는
도달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51
예수께서…순종하여 받드시더라 – 누가는 예수의 신성에 관해서 언급하고나서 한
가정의 자녀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인자이신 예수의 모습을 묘사한다. 예수는 이후 세
례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으실 때까지(3:21) 18년 동안 갈릴리 나사렛에서 그의 부모와
동생들과 함께 지내셨다. 그곳에서 주님은 아버지 요셉의 가업인 목수직을 이어 동생
들을 보살피고 어머니 마리아를 봉양했다(막 6:3). 요셉에 관한 기록은 더 이상 언급
되지 않고 있다. 추측컨대 이 18년 어간에 요셉이 죽은 것으로 여겨진다. 요셉이 죽
자, 장남인 예수가 그의 가족을 부양(扶養)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모친은…마음에 두니라 – 1장의 주석 서두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누가는 이 복음
서의 내용 중 일부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마리아에게서 얻은 듯하다. 그녀는 여
기 언급된 세부 내용들을 얘기할 수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
든 말’이란 본장의 사건 전반에 걸쳐 나타난 말들을 지칭한다.
=====2:52
예수는…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 외경의 복음서들은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
작하시기 전에도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기도 하고 비상한 능력을 나타내기도 하셨다고
전하지만 그 증거는 불확실하다. 본문이 거듭 밝히는 바는(40절 주석 참조), 예수께서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셨다는 사실이다. 예수의 지혜와 키가 자라갔다고 하는 것
이 예수의 신성(deity)을 도외시하는 뜻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을 뿐이기 때문이다(빌 2:6, 7). 한편 ‘키’에 해당하
는 헬라어 ‘헬리키아'(* )는 ‘키'(stature, NIV) 또는 ‘나이’로 번역된다.
이를 어떻게 번역하든 별반 차이가 없지만 ‘키’로 보는 것이 적합한 듯하다. 왜냐하
면 ‘나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먹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부연하여
설명할 필요가 없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자는 그 의미를 신체적인 성장이나 인격적
인 성장으로 보기도 한다.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착실한 성장은 모든 이의 귀감(龜
鑑)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에 순종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이웃을
아끼며 도와주는 그의 생활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
의 이런 칭송은 후에 초대 교회의 사람들이 받았던 칭송으로 이어졌다(행 2:47).
누가복음 2장 강해설교
누가복음 2장 강해설교 누가복음 연구 https://blog.naver.com/angellotte/221663973462 누가복음 제2장 설교
예수의 탄생
눅2:1-7
본문에는 말씀이 육신이 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건이 나타납니다. 이 아기는 인류에게 새 생명을 주기 위해 탄생하셨습니다.따라서 아기의 탄생은 단순한 탄생이 아니라 전인류의 탄생(거듭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아기의 탄생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역사를 타고 오신 주님
‘이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이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사실은 주님께서는 이 땅에 초역사적으로 오시지 아니하시고 역사를 타고 오셨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1)기독교가 신화에 근거하지 않음을 보여 줍니다.
오늘날 기독교에 관한 모든 것을 신화로 풀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비롯하여 부활과 승천,재림,천지 창조 등을 모두 신화로 여길 뿐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탄생이 가이사 아구스도에 의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옮겨진 사실은 우리에게 예수의 탄생이 결코 신화가 아님을 밝히 보여 줍니다. 비단 주님의 탄생 뿐만 아니라 그의 부활,승천등이 사실에 근거함을 가르쳐 줍니다.
2)인간의 역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음을 보여 줍니다.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근거로 하여 생각해 보면(미5:2) 가이사 아구스도가 때마침 명령을 내려 예수께서 나사렛이 아닌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것은 결코 그의 명령이 자의나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있습니다. 특히 세상의 권세는 하나님 통치 아래 있습니다(롬13:1).
2.말씀을 응하신 주님
주님께서는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가 살던 나사렛에서 태어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미가 선지자를 통하여 예언하신 대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주님께서 선지자의 증거를 받고 오신 메시야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심과 동시에 하나님만을 기쁘게 하시기 위해 오셨음을 보여 줍니다. 주님께서는 이 세상에 오셔서 단 한번도 자신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일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의 영광을 드러낸 적도 없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일을 이루기 위해 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7:4). 또한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7:6). 그리고 최종적으로 죽음 앞에서 자기의 뜻대로 말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기를 구하셨습니다(눅22:42).
3.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주님
주님의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단순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이미 야곱에 의해서 예언되고(창49:10) 발람에 의해 예언되며(민24:17),하나님에 의해 직접 약속된(삼하7:12-16)후손으로 오셨습니다. 다시 말해 약속된 메시야요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역사를 살펴보면 다윗 왕국은,① 강력한 나라였습니다. 그의 나라는 어떠한 전쟁에서도 패하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전쟁을 치루었음에도 항상 이겼습니다. 이는 만군의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삼하5:10).② 의로운 나라였습니다. 솔로몬이 지혜로 나라를 다스렸다면 다윗은 의로 나라를 다스렸습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합당하게 여기실 정도로 의롭게 나라를 다스렸습니다(행13:22).
4.동정녀에게 탄생하신 주님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태복음에서는 이미 예수님께서 요셉과 마리아가 결혼한 후에 탄생하신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마1:24,25) 누가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까지 요셉과 마리아가 혼인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의 모순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누가가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게 기록한 것으로 보입니다. 누가가 이렇게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을 강조한 이유는 ① 예수님의 무죄성(히4:15),원죄의 무유전성(창3:15)을 강조하기 위해서이고,② 주님께서는 완전한 인간임과 동시에 완전한 하나님이심을(요1:1)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5.구유에서 탄생하신 주님
1)그의 겸손입니다.
주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고 열두 영도 더 되는 천사도 부리실 수 있는 엄청난 권세를 안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그 지위와 권세로써 이 세상 위에 군림하시고 억압하기 위해 오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는 겸손한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마21:5).
2)백성들의 배척입니다.
베들레헴은 아버지 요셉의 고향으로서 주님은 사관은 물론이요 가정집에서 태어나셨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유에서 태어나신 것은 그가 장차 자기 고향(눅4:24),자기 백성(요1:11)에게 배척받게 될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배척받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죽기 위해 태어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메시야로서의 삶입니다.
목자들에게 임한 기쁨 소식
눅2:8-10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비천한 자들을 버리지 아니하십니다. 타고난 재능도 없고,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재산도 없고,지혜도 건강도 없는 자들을 소흘히 대하지 않으십니다. 버리지 않는다는 말은 그들에게 무관심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들에게 오히려 정상적인 사람에게 갖는 곱절의 관심을 가지십니다. 본문은 이러한 사실을 단적으로 입증해 줍니다. 본문에서 보면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왕궁이나 성전에 있는 높은 지위에 있는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탄생을 알리지 않으셨습니다. 목자들에게 가장 먼저 성탄의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면 왜 이들에게 가장 먼저 성탄의 소식을 알리셨는지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기쁨의 소식을 받은 목자들
1)성실하였습니다.
먼저 본문에 나타난 목자들은 충실한 천국 일꾼의 모형입니다. 그들은 아기가 탄생하신 그 캄캄한 밤에 ‘들에’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낮의 피로를 씻고 잠자리에 든 그 시간에 그들은 여전히 들판에 있었습니다. 양떼를 믿고 맡겨 준 주인의 뜻을 저버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은 그들의 주인에게 있어 참으로 진실된 종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성탄의 그 큰 기쁨이 가장 먼저 전해진 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습니다. 마땅히 그 영광은 기름진 배를 따뜻한 온돌방에 대고 안락하게 잠자는 게으른 지위높은 자에게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이들처럼 애를 태우며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충성된 종에게 돌아가야 합니다(시126:5,6 ;마25:21,23).
2)깨어 있었습니다.
또한 본문에 나타난 목자들은 천국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신실한 성도의 모형입니다. 그들은 마치 그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기쁜 소식이 전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나 한 듯이 한밤중이 되었는데도 자지 않고 깨어 있었습니다. 달리 표현하면 그들이 깨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만 전할 수 있었고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으셨습니다. 따라서 오늘 우리는 깨어 있어야만 합니다. 천국을 사모하는 자들,주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들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마25:1-13).
3)비천하였습니다.
본문의 목자들은 또한 천국의 영광을 소유할 준비가 이미 끝난 자들의 모형입니다. 그들은 그들의 곳간과 함께 이미 마음까지도 비워져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임재하시기만 하면 언제든지 그들에게 들어가실 수 있었고 그들의 마음과 삶의 주인이 되실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에게 천국 복음이 가장 먼저 전파된 것은 너무도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들과 같이 주님의 기쁜 소식을 듣고 영광을 보기를 원한다면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또한 마음 비우기를 원한다면 물질,세상 지위 등을 버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있는 곳에 우리의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마6:21 ;19:22).
2.목자들이 받은 것
1)하늘 영광을 입었습니다.
‘주의 영광이 저희를 두루 비취매’.목자들에게 임한 것은 세속의 재물이나,명예,권세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민족이 그토록 대망하던 메시야의 영광을 보았습니다. 세상 임금의 영광만 보아도 그것이 큰 기쁨이요 영광인데,그들은 하늘 아버지,하늘 임금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이처럼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세속의 젖을 주지 않으십니다. 세상의 잠간 있다 없어질 영광을 주시기 않으십니다. 하늘의 영광,경건한 성도의 영혼이 기뻐할 신령한 복을 내리십니다.
2)두려움을 그치게 하는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 말라’. 목자들은 거룩함을 대할 때마다 생기는 죄로 인한 두려움을 그치게 하는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인간의 죄의 문제를 깨끗이 해결하시리라는 암시에 가까운 소식을 전달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을 부여받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모든 세상 짐을 해결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받는 것과 진배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죽음,고통은 모두 죄로부터 왔기 때문입니다. 목자들은 죄인을 의인으로 선고하시는 하나님의 법정 결정문을 가장 먼저 통고받은 것입니다.
3)온 세상에 미칠 기쁨의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그들은 그들 자신에게만이 아니라 온 백성이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소식을 전달받았습니다. 공유하고 나눌 수 있는 기쁨은 받은 것입니다. 이것은 비이기적인 그들의 성품에 합당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기들만 소유하고 남에게 거만하게 자랑 할 성질의 선물은 그들의 본성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한 선믈은 오히려 그들의 본성에 부담을 주고 양심을 괴롭게 할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웃과 나눌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선물을 그들에게 주셨던 것입니다.
예수의 탄생
눅2:11,12
본문은 베들레헴 말 구유에서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신 이야기에 대한 기록입니다.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은 미가 선지자에 의하여 메시야가 탄생될 곳으로 예언되었으며(미5:2),본문에서 그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 구속사적 직분에 대하여 상고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예수께서 탄생하신 곳
1)베들레헴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11절). 위에서 살펴본대로 베들레헴은 ‘다윗의 동네’로서 메시야가 탄생할 고장으로 예언된 곳입니다(미5:2). 당시에 예수의 부모 요셉과 마리아는 정혼한 사이였고 나사렛에서 목수직을 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ㅅ게금 징수를 위한 목적으로 호적령을 내려 이들은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오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혼한 마리아는 그때 성령으로 잉태한 아이가 해산할 기한이 차 있었습니다. 로마 황제의 호적령,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여행,해산 기일이 임박한 마리아의 동행 등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선지자 미가를 통하여 예언한 메시야의 탄생이 베들레헴에서 이루어지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의 움직임이었음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세상의 정치,인간들의 활동,생물학적인 인간의 기능 등,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동원되고 있음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다윗의 동네’ 베들레헴은 이런 의미를 가지고 구속사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2)떡집
‘베들레헴’은 ‘떡집’이란 뜻입니다.예수 그리스도의 화육은 ‘떡집’예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6:51)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생명의 떡'(요6:35)이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광야에서 내린 ‘만나'(요6:49)와 비교하셨습니다. 이 ‘떡’은 애굽에서 자유를 찾아 탈출하던 유월절로부터 상징화되었습니다. 히브리 백성들은 양의 피로 문설주에 바르고 누룩을 넣지 아니한 떡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출12:1-11).이 떡과 피는 광야 40년 동안에는 만나와 생수로 나타나고(고전10:3,4),예수 때에 이르러 그것은 살과 피로 표현되었으며(요6:54-58),마침내 이 살과 피는 최후의 만찬에서 떡과 포도주로 상징화되고 결국 그것은 모든 사람을 죄에서 해방하여 영원한 자유를 보장하는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으로 완성됩니다. 생명의 떡으로서 하늘에서 내려와 떡집 베들레헴에 나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하여 ‘참된 양식'(요6:55)으로서의 그의 생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2.예수께서 탄생하신 환경
1)여행중
‘베들레헴’은 요셉의 ‘고향’이었으며,그는 지금 여행 끝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이 ‘여행’중에 탄생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 모든 인생들은 다 ‘고향’을 떠난 ‘나그네’들입니다. 그리고 이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며,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여행 중에 탄생하셨다는 것은 나그네 인생에게 내리시는 축복이며 삶의 목적을 제시하는 귀중한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2)말구유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12절). 예수께서 말구유에 탄생하신 것은 그의 ‘자기 비하’의 시작이었으며,’고난’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가장 낮은 자로부터 가장 좊은 자까지 죄악의 고난으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가장 낮은 삶으로부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지금 가장 높은 곳인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빌2:6-11).그의 비천한 삶의 시작은 어부와 세리와 창기와 병자들과 실직자들의 친구로서의 삶의 출발이며,머리 둘 곳이 없는 가난한 삶의 첫걸음이었습니다. 그의 생애는 가난과 비천함을 ‘거룩함’으로 승화시킨 삶이었습니다.
3)표적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12절). 그리스도의 화육은 신비 중의 신비이며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영생하시는 하나님이 말구유에 나셨다는 것은 모든 사람의 구주가 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아버지이시며 인간은 모두가 한형제임을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3.예수의 탄생과 메시야로서의 직분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11절). ‘구주’,’그리스도’,’주’는 모두 메시야의 구속사역적 직분을 나타낸 것입니다. 구세주,그분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은 우리의 영원한 왕이요,제사장이요,선지자이시고,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십니다. 이 모든 구속사역적 직분 안에 모든 진리와 은총과 축복이 들어 있습니다.
하늘에는 영광 땅에는 평화
눅2:13,14
천사가 목자들에게 성탄을 고지하고 나자 하늘에는 아름다운 천군 천사의 찬양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천사들은 찬양을 통하여 가장 먼저 그리스도의 탄생이 하나님께 영광이 됨을 알립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평화가 됨을 알립니다. 짧은 찬양이지만 이 찬양은 기독교의 교리를 내포하고 있으며,기독교가 신본주의,하나님 우선의 종교임을 밝혀 줍니다. 그러면 왜 이러한 찬양이 나오게 되었는지,이 찬양의 의미는 무엇인지 함께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하나님께 영광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그리스도의 화육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이는 근원적인 문제로 그리스도의 화육이 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하나님은 손상된 의가 보상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탄생은 가장 먼저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과 관련됩니다. 이 관련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인간의 죄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기독교의 모든 근원적인 문제는 죄와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범죄와 그 이후에 계속된 범죄로 인해서 인간은 타락의 길로 들어섰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상처를 입혔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을 손상시킨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손상당하신 만큼 진노를 내리셔야 했습니다. 진노를 내리셔야 했던 것이 아니라 실제로 진노가 인간에게 임했습니다. 인간이 아담의 범죄 이후로 삶에 심한 고통을 느껴야 했고,최종적으로 죽어야 했던 것은 바로 이 진노의 결과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인간이 범죄의 결과와 하나님의 진노로 죽어가는 것은 하나님의 또 하나의 성품인 자비의 속성과 모순이 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랑의 속성에 의해 인간의 죄를 방치한다면 그것은 의의 속성에 모순되므로 그럴 수는 없으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이 두 가지 속성이 모순됨 없이 다 만족될 수 있는 방법을 계획하셨는데,그것이 바로 독생자이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자리인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에게 인류를 향한 모든 진노를 다 쏟으심으로써 하나님께서는 인류가 죽어가는 것을 두고 보실 수 없는 사랑의 속성과 죄를 간과할 수 없는 의의 속성을 다 만족시키신 것입니다(롬3:26,30 ;5:8). 그리스도의 탄생은 이를 이루실 초석을 마련하신 것이므로 근원적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은 하나님께 불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였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거스렸습니다. 불순종의 아들들이 된 것입니다(엡2:2 ;5:6). 그러나 그리스도는 ‘예’하고 ‘아니라’함이 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은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고후1:19)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한 제 2 아담으로 오신 주님은 자신만 ‘예’하지 아니하시고 당신의 모든 백성들을 품에 안으시고 하나님 앞에서 ‘예’하셨습니다. 불순종의 아들들을 순종하는 아들들로 바꿔 놓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이 해야 하나 할 수 없는 일을 이루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셨으므로 그것은 가장 먼저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2.땅의 평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셨음을 암시합니다.
1)하나님과 인간의 화목을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인간은 범죄로 인해 하나님의 의로우신 성품을 손상시켜 진노의 대상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단절되었습니다.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죽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슬퍼해야 할 것은 바로 이 점입니다. 육체적인 죽음은 잠시의 고통이지만 영적인 죽음은 영원한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십자가로써 이 담을 허셨습니다. 둘로 하나를 만드셨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2:14-16).
2)인간과 인간 사이의 화목을 이루기 위해 오셨습니다.
또한 천사들이 ‘땅에는 평화’라고 노래한 것은 주님께서 인간과 인간 사이를 화평케 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죄악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만을 원수로 만들지 아니하였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도 원수 관계를 수없이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끝없는 전쟁과 다툼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수를 위해 직접 죽으신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원수를 사랑하고…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눅6:35,36). ‘또 오셔서 먼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7,18).
비천한 무리를 위해 오신 예수
눅2:15-17
본문은 예수님의 탄생 기사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전하는 복음서 가운데 유일하게 그가 가축 우리에서 태어났으며,천사들의 찬송을 받았고,이어서 목자들의 경배를 받았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말하자면,예수님께서는 낮고 천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으나 근본적으로는 온 세상 인간들로부터 경배를 받기에 합당한 메시야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이 땅에 한밤중에 하늘에는 천사들이,땅에는 몇 사람의 목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리스도 탄생의 비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1.목자들은 비천한 사람이었으나 하나님은 저들에게 큰 계시를 주셨습니다.
‘천사가 가로되 무서워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10절). 목자들은 지위와 권력과 명예와 부가 없는 가난하고 비천한 자들입니다. 당시 그들은 법정에서 증인이 될 수 없을 정도로 신용을 받지 못하고 멸시받는 계층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자들이 먼저 주의 영광에 접하고 천사로부터 구주 탄생의 소식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가난하고 천한 직업을 가진 목자들과 같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음과 계시를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난하거나 비천한 직업이 천국에 관한 소식을 접하는 데 지장이 되지는 않습니다. 천국의 축복은 때때로 위대하고 부하며 권력 있는 사람에게는 숨겨지고 가난하고 대우받지 못하는 사람에게 잘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들은 대개 교만하거나 현실에 안주할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하고 권력을 가진 자는 자신의 가진 것을 잃을 것이 염려되어 새로운 사상이나 현상에 마음문을 열고 동참하기를 꺼려하는 것입니다.
2.목자들은 맡은 일에 충실하였기에 하나님의 계시와 주를 만나는 기쁨을 우선적으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12절). 목자들은 ‘밤에 자기 양떼를 지키고’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책임을 등한히 하여 잠자거나 자리를 떠나지 않고,깨어서 양무리를 배회하며 이리와 승냥이들과 도적들로부터 양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였으므로 그곳에 임한 천사들의 계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다른 사람들보다 먼저 ‘가서 보라’는 소명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자기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다가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인물들이 많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밀 타작을 하다가,모세는 양을 치다가,엘리사는 밭을 갈다가,베드로는 고기를 잡다가 각각 하나님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자기의 맡은 일에 충성하는 신자에게 사명을 주시고 기쁨을 주십니다.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큰 것으로 네게 맡기노라’는 말씀대로,하나님은 맡은 사명에 충성하는 자에게 보다 좋은 것을 보이고,보다 좋은 길로 인도하고,보다 큰 것을 맡기는 것입니다.
3.목자들은 천사의 계시를 믿었습니다.
천사는 ‘너흐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표적이니라’고 했는데, 그 표적은 목자들로 하여금 믿기 어려운 것일 수 도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이스라엘을 위한 구주가 나신다면 그는 분명히 비천한 구유에 누워 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목자들은 천사의 계시를 믿었고,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기를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였습니다. 이것은 목자들이 믿음의 사람들이었음을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유에 누인 아기’는 신이 인간의 배척과 고난의 한 중간에 그 자리를 펴셨음을 의미합니다. 그날 베들레헴에는 분명코 아기 예수 외에 어떤 갓난아기도 구유에 누워 있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이시니 예루살렘의 왕궁에서 나시고 고운 옷을 입으시고 아름답고 화려한 방에 누워 있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구주 되심의 표적은 그가 헤어지고 찢어진 강보에 싸여 낮고 천한 구유에 누워 있었던 사실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탄생의 비하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받으신 그 첫선물은 구유요,마지막 선물은 십자가였습니다. 그가 인류의 구세주로서 받으신 것은 고난과 비천이고 세상 영광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낮고 천하고 모욕을 당하는 이들의 친구가 되고,친히 동정하고 구원할 수 있는 구주시라는 것이 천사의 메시지가 담고 있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어떠합니까? 낮고 천한 이들의 벗이 되고 있습니까? 도시의 빈민들과 노동자 농민들의 삶에 지치고 허덕이는 생활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자세가 갖추어져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와 목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복음의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는 역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탄의 메시지를 대하는 자세들
눅2:18-20
목자들은 천사의 기쁜 성탄 메시지를 들은 후 지체하지 않고 베들레헴에 달려와 아기 예수님을 경배했습니다. 그리고 천사가 들려준 성탄 메시지를 아기 부모와 모든 사람들에게 들려주었습니다. 이제 성탄의 소식을 들은 사람들의 태도들을 살펴봄으로써 성탄에 합당한 신앙적 자세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1.불신하는 사람들
‘듣는 자가 다 목자의 말하는 일을 기이히 여기되'(18절). 목자들은 천사의 성탄 메시지와 마굿간에 가서 확인한 사실들을 베들레헴에 호적하러 온 허다한 사람들에게 기쁘게 알렸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말을 듣고 매우 놀라긴 했으나 구주를 경배하러 마굿간으로 발걸음을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① 메시야가 왕궁에서 출생치않고,마굿간의 말구유에서 천하게 태어난다는 것은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한 것처럼 세속적 사고 방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구세주께서 그렇게 비천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것은 인생들로 하여금 ‘종신토록 두려움 없이'(눅1:75) 자기를 섬기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긍휼하신 처사에서인데,그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시9:6 ;53:1-3 ;슥9:9).② 저들은 또한 하나님의 천사들이 성탄 소식을 거룩한 제사장들에게 알리지 않고,들사람들에게만 특별히 전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을 천하고 약한 사람들을 택하사 스스로 지혜롭고,부족함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을 심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였습니다(고전1:26-29).오늘날도 성탄의 기쁜 메시지는 겸허하게 마음의 눈이 하늘로 열린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2.영광 돌리는 목자들
1)믿고 순종함
그들은 천사의 메시지를 듣고 즉각 베들레헴으로 달려갔습니다. 이처럼 그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달려갔다는 것은 그들에게 큰 믿음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시는 메시야는 상식적으로 예루살렘 왕궁에서 태어났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상식을 뛰어넘는 천사의 메시지를 단순히 믿는 순수함 믿음과 믿음을 실천으로 옮기는 순종하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은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에도 말구유 안의 구세주를 환영할 수 없다면 십자가 위의 대속함도 어리석게 보일 것입니다(고전1:18-25).
2)확신을 가짐
목자들은 천사들이 고지해 준 구유의 표적을 가서 확인함으로써 믿음의 확신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 우리 중에도 성탄의 메시지를 듣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의심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먼저 확인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읽어보아야 합니다. 연구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의심해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고나면 우리에게는 의심 대신 확신이 찾아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3)담대하게 전파함
목자들은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16,17절)을 뜨거운 마음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전파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칼빈은 ‘그들의 열정은 우리의 나태함과 배은망덕에 대한 무언의 꾸중이다.그들이 외양간의 말구유에서 저 높은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다면 우리는 주님의 죽음과 부활까지 보고서 왜?…힘차게 헌신할 수 없을까?’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발걸음이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것이라고 찬탄하십니다(롬10:14,15).
3.생각하는 마리아
1)겸손한 순종
마리아는 자기가 구주의 모친이라고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전에 자기의 정절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의심을 당할 때에도,침묵했듯이 이제 자기의 결백함이 드러났지만 역시 주님께 모든 영광을 돌리고 잠잠히 성탄의 섭리를 순종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성의 아름다움은 이처럼 겉을 단장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 세계를 단장함에 있습니다(벧전3:3-6).
2)신중함과 진실함
본문의 ‘지켰다’라는 말은 ‘기억한다’라는 뜻이며,’생각한다’라는 말은 ‘여러 부분을 합친다’라는 뜻입니다. 마리아는 성탄의 현상만을 보지 않고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신중하게 살피고 그 깨달은 것을 마음속에 진실하게 간직했습니다(롬12:1-3). 이것이 성탄 메시지를 접하는 우리 인생이 취해야 할 합당한 신앙적 자세입니다.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삼상12:24).
할례와 세례
눅2:21
‘할례할 팔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유대인의 할례 의식이 주는 교훈은 그리스도인의 세례 의식이 주는 교훈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둘 다 모두 육신의 부정을 씻어버리는 것을 상징적으로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남성의 양피끝부분을 날카로운 차돌로 잘라냄으로써 훗날 구원의 피흘림을 상기시키는 것이었습니다.그리고 세례는 육체를 물로 씻어내는 의식을 통하여 옛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태어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할례는 육체적인 고통을 통하여 마음을 주께 바치는 행위입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17:10). 모든 남성을 난 지 팔 일 만에 그 피를 베는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과 그 백성과의 언약의 표징을 삼았습니다. 이 할례 의식은 이스라엘인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이디오피아나 남아프리카 애굽 등지에서도 행해지던 풍습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교적 동기가 아니라,몸의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수단으로 행해졌던 것인데,차츰 그 의미가 정결 의식으로 바뀌어 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근동에 있어서 남성들에게 할례 의식을 행하는 것은 도덕적 행실에 분명한 기초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동양인들의 급한 성격을 규제하고,악한 생각을 억제하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었습니다.즉 나쁜 생각이 그 마음에 떠올랐다 하더라도 그가 할례의 언약을 통해 자기가 거룩하게 생활하고 죄를 짓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실을 되새기므로 그 악한 생각을 극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할례 때에 흘리는 피는 개인적인 계약을 확고히 하게 했습니다.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자신의 아들의 양피를 베며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출4:25)고 했습니다. 그러나 할례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순종하게 만드는 데 그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10:16)고 했습니다. 이것은 할례의 본뜻이 마음의 할례에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유대인들을 향하여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못한 사람들'(행7:51)이라고 한 말은 할례의 의미가 유대 민족의 전역사를 통해 그러한 영적 의미를 제공해 주고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2.할례는 믿음의 언약입니다.
그래서 본문이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는 것과 같이 예수님도 율법을 좇아 할례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백성과 언약을 맺기 위해 구태여 할례를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예수님께서 율법을 준수하신 것은,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신 분으로 그 일을 행함에 있어 조금도 결격 사유를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할례는 하나님과 아브라함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징표입니다(창17:2,4,9).이 언약은 믿음의 언약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믿음의 언약에 대해 말하기를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며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갈3:17)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믿음의 언약은 모세를 통해 맺어진 사역의 언약(출24:8)과는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율법적이기보다 복음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아브라함과 한 하나님의 약속은 영적인 것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할 것이라’는 언약은 곧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갈3:7)이라는 사실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무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요8:39)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기꺼이 할례를 받으신 것은 우리가 속한 교회의 규례를 준수하고 순종하라는 교훈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3.그러나 할례와 세례는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많은 성서학자들이 할례에서 세례의 의미를 발견하고자 합니다. 사실 그 의식의 과정이 유사한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할례와 세례는 명백히 그 성질을 달리합니다.첫째, 예수님께서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았으나 후에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만약 할례가 세례와 같은 의미를 가진다면 또다시 세례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둘째,할례는 율법의 의무이지만,세례는 복음의 의무입니다. 참된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과 자신의 영적 순종과의 관계이지 외적 상징에 있지 아니한 것입지다. 세째,할례는 남자에게만 한정되었지만,세례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세례는 심령 속에 이루어진 외부적인 표현입니다. 성령에 의해서 마음이 세례되어 영혼이 구원되었다는 표징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남자와 여자가 차별이 없고,가문이나 가족의 구별이 없습니다. 모든 민족,모든 백성에게 있어야 할 보편적인 의식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28:19).
아기 예수님의 결례
눅2:22-24
우리는 예수님께서 정결 예법을 받으실 필요가 없는 거룩하신 분임에도 불구하고 이 율법들에 참예하신 주님의 깊으신 뜻과 그 교훈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율법을 지키신 예수님
1)결례의 날
‘결례의 날'(22절)이라고 한 것은 정결함을 위한 날이라는 뜻입니다. 율법에 의하면 남자아기를 낳은 부인은 40일간 부정하다고 여겼는데(레12:1-4) 따라서 그 날짜가 찼을 때 산모들은 순결을 위해서 번제 및 산 제물로 성전에 와서 제사를 드려야만 했습니다. 누가복음 원본에는 ‘그들의 결례의 날’이라고 기록되어 주님과 마리아가 똑같이 정결의식을 행하는 것으로 누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2)그날을 지키신 의미
예수님은 원죄이든 자범죄이든 전혀 무관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누가가 정결 의식을 행한 것을 기록한 데에는 우리에게 깊은 의미와 교훈을 주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습니다.① 복음 사역에 유익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율법을 지키지 않으셨다면 당시의 유대 율법주의 사회 같은 곳에서는 지도자로 인정받을 수가 없습니다. 이방인이나,배교자로 낙인 찍힐 뿐입니다. 바울 사도가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을 구원코자 함이니'(고전9:22)라고 한 것처럼 성도는 세속적인 규례들을 백안시하거나 무시할 것이 아니라 복음 전파를 위해서는 주님처럼 참예하고 또 이용할 필요도 있을 것입니다. ② 우리 인생을 구원코자 하심입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갈4:4,5)라고 했듯이 인생에게 율법을 주신 분이 율법 아래의 세계로 오신 것은 우리와 같은 처지가 되어서 율법을 저주와 심판으로부터 우리 인생들을 해방시켜 주시고자 함이었습니다(갈3:10-13). 이 세상의 인위적인 종교들은 대개가 노력을 통해서 인간 이상의 존재가 되라고 가르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2.헌신되신 예수님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아기를 주께 드리고'(23절).율법에 의하면 모든 이스라엘인 중에 태어난 맏아들은 하나님게 바쳐야 하며(출13:2,12,15) 이 예식을 5세겔의 은으로써 대속하도록 되어 있습니다(레27:6). 이는 그들이 출애굽시 유월절의 장자 재앙에서 구원받은 이래로 지켜진 규례입니다(출13:12). 아기 예수님도 마리아와 요셉에 의해서 역시 성전에 헌신되셨습니다. 그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① 첫열매로 드려졌습니다. ‘첫해에 처음 난 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23절)라고 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장차 인류를 대신하여 부활과 구원의 첫열매로 천국에 들어가실 것을 보여 주는 예식입니다(롬11:16 ;고전15:20).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은 복음의 첫열매이며,하늘나라의 분깃을 얻을 백성이 되었습니다(롬16:5 ;약1:18).② 제물로 드려졌습니다. 주님은 5세겔의 속죄 대신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으며,죄인 된 우리를 거룩하신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기 위한 영원하신 대제사장이 되심을 의미하고 있습니다(히9:12 ;24-26,28). 이러한 사역은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성도들에게 계승되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을 ‘왕 같은 제사장들'(벧전2:9)이라고 했습니다.성도들은 복음의 능력을 힘입어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사람과 사람 사이에 사랑과 화평의 다리를 놓는 중보자적 삶을 살아야겠습니다(마5:9 ;요20:23 ;고후5:20,21).
3.가난한 자가 되신 예수님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혹 어린 반구들로 제사하려 함이더라'(24절).마리아가 정결 예식의 제물로 드린 비둘기들은 당시 빈민들의 제물이라고 불리워졌던 것입니다(레12:6-8).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는 주님의 가정이 매우 가난하고 궁핍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① 마리아는 가난 했지만 최고의 예물을 드린 여자가 됐습니다. 그녀는 전에 천사에게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눅1:38)라고 했듯이 여성으로서 생명 같은 처녀의 정절을 드렸으며 태의 열매인 예수님마저도 하나님의 구속 사업에 바쳤습니다. 즉 그녀는 자기 삶의 의미와 행복을 모두 하나님께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물질적으로 가난한 성도라고 해도 비관할 필요가 없습니다.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과 꿈과 삶을 산제사로 드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롬12:1-3). ②예수님은 가난한 자의 영원하신 친구이십니다. 가난은 주님께서 이 땅에서 누리신 분복이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 중의 한 사람으로 오셨으며,또한 그것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으며 가난하셨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세계들을 부요하게 하셨는지 알고 있습니다(고후8:9).그러므로 아무리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주님과 동행하면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고후8:10) 사람인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시므온
눅2:25-27
여러 주석가들이 본문에 나타나는 예루살렘의 시므온을 유명한 힐렐의 아들이자 가말리엘의 아버지인 시므온으로 봅니다. 그러나 그러한 추론을 뒷받침해 줄 만한 아무런 자료도 없으며,오히려 당시의 종교 지도자층이 대개 타락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본문의 시므온은 한 평민이었을 것이라는 추론이 타당하게 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껍데기뿐인 종교 지도자보다는 평민이지만 의롭고 경건하며 진심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에게 메시야를 만나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입니다.
1.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1)윤리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었다는 말은 곧 그가 바르고 정직했음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유대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율법의 명한 바 사랑의 원리에 서 있는 사람이었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메시야를 대망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만을 바르게 가지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가질 때 그는 자신은 종교인이지만 동시에 사회의 일원으로서 이웃과의 관계도 정확하고 바르게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혼탁한 사회를 바라보면서 자신도 타락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찾은 것이 아니라 그것을 사회가 그러하므로 더욱 자신을 바르게 할 이유로 삼은 것입니다.
2)불의를 참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그가 의로왔다는 말씀은 그가 불의를 보고 참지 못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그는 불의에 침묵하거나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불의에 침묵하고 방관하는 사람을 결코 우리는 의로운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불의를 참지 못함을 나타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 뜨거운 기도를 드렸든지,분노를 터뜨렸든지,불의를 책망했든지 그는 그의 방법으로 불의를 대적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참된 신앙인은 불의에 의해 자신의 의를 꺾지 아니합니다.
2.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경건하여’.시므온은 사회적인 사람,사회에만 관심을 두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인간만을 사랑하는 인본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최대의 관심은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존중하며 거스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의 이성에 옳은 대로 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명령대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명하시는 대로 살았습니다. 자기의 소욕을 버리고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았습니다.
3.이스라엘을 사랑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1)자기 민족을 사랑하였습니다.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은 매우 초라하였습니다. 애굽의 종으로 있었으며,나라도 없이 광야에서 40 년간을 유리하기도 하였습니다. 가나안을 차지하고 나서도 주변의 강대국 블레셋,암몬,모압,에돔 등을 비롯하여 페르시아,앗수르,헬라,로마 등에 의해 수없이 많은 수난을 당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치욕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민족을 사랑하였습니다. 자기 민족의 비극적인 상황을 사랑했으며,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시 세워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졌습니다.
2)선민을 사랑하였습니다.
그의 조국 이스라엘은 선민이었습니다. 선민이되 끝없이 하나님께 범죄한 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범죄한 민족일지라도 그는 이스라엘을 사랑했습니다. 그에게는 의로운 마음과 함께 자비한 마음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범죄자를 미워한 것이 아니라 긍휼히 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내려 주시기를 기대하였습니다.
4.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1)그리스도의 강림을 보게 될 것을 지시받았습니다.
‘주의 그리스도를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성령을 받은 그는 큰 능력이나 예언을 향한 것이 아니라 그가 죽기 전에 그리스도를 보게 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세상 사람의 눈,혹은 세속적인 시각을 버리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것은 지극히 작은 일일지 몰라도 그에게는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가장 기뻐할 일이었습니다.
2)예수를 알아보았습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율법의 규례를 행하기 위해 성전으로 들어오시는 모습을 보고 그가 그리스도인신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이 이를 가능케 하였던 것입니다. 후에 가버나움,벳새다,고라신의 사람들이 그 많은 이적을 보고서도 예수님을 바로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사실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하겠습니다. 이러한 사실로부터 우리가 깨닫는 것은 성도를 비롯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가장 큰 축복은 예수님을 구주로 바로 알아본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구주를 구주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만큼아니 큰 불행은 세상에는 없습니다.
의인 시므온의 찬송
눅2:28-33
본문은 의인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품에 안고서 하나님께 찬송으로 영광을 들린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① 메시야를 뵙게 된 것을 감사하고,② 그로 인해 자신이 영원한 안식을 얻게 된 것을 고백하며,③ 장차 주님의 영광스러운 사역과 직책의 성격을 예언한 것입니다. 의인 시므온에게 임했던 구원의 은총과 감격은 오늘날 모든 성도들에게도 그리스도 안에서 더욱 풍성하게 주신 바 된 것입니다(엡1:3).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의인의 찬송을 상고함으로써 우리의 영혼에도 속함받은 백성의 감사와 찬송이 풍성하게 흘러 넘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1.영원한 안식을 얻게 됨을 찬송함
시므온은 먼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29절)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뵙기 전까지는 이 땅에 거해야만 한다고 성령님께 명령을 받았지만(26절) 이제 그 언약이 이루어졌으니 괴롭고 고독한 순례자의 삶을 청산하고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성도에게 죽음은 어떤 의미입니까?
참된 성도라면 죽음을 결코 두려운 것으로는 여기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진실한 성도는 자신 안에 영생이 있음과(요일5:11-13) 또 죽음 저 너머 편에 어떤 세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음을 주 안에서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만일 땅에 있는 장막집이 무너지면…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을'(고후5:1) 내가 안다고 했으며,따라서 선교의 사명만 아니라면 어서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이것이 더욱 좋다'(빌1:23)고까지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성도가 영원한 본향으로 가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하다가 시므온처럼 주님이 부르실 때 즐겁고 미련없이 삶을 마무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겠습니다.
2)성도의 생사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시므온도 안나처럼 매우 고령이었을 것이며 36-38절,따라서 고대 식민지 세계에서 가난한 고령의 노인의 삶이란 비참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요5:1-7). 쇠잔해 가는 육체의 고통,벗들과의 슬픔의 사별,소외감과 궁핍,또한 언약을 기다리는 단조롭고도 권태로운 무미 건조한 생활과 퇴락해 가는 망국의 역사에 대한 회한 등,참으로 엄청난 시련을 겪으면서 살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딤후4:18) 해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영적,도덕적,사회적으로 더욱 혼탁하여 가는 세대에 거하는 우리들도,신앙적 삶에 사망의 캄캄한 구름이 덮일지라도 불신자들처럼 두려워하므로 악과 타협하거나 삶을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우리의 머리카락 한 올까지 보장해 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고(마10:27-33),인내로써 성도의 직분에 충실할 때 시므온처럼 주님께 영광과 존귀로움으로 보상받고 감사와 희열에 넘치는 찬송을 부르는 승리의 날이 기필코 우리 앞에 도래할 것입니다.
2.메시야의 사역과 직책을 찬송함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30-32절).우리들은 시므온의 찬송에서 율법 시대의 신앙인일지라도 진실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역과 그 직무에 대해 복음적인 견해와 확신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현재 우리들은 시므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복음의 빛을 그리스도 안에서 얻어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온전한 감사와 찬미로써 주님의 은혜로우신 행사를 이웃들에게 증거해야 하겠습니다.
1)거룩하신 빛의 사명을 찬송했습니다.
시므온은 예수님이 ‘이방을 비추는 빛'(32절)이 될 것이라고 찬양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을 제외한 우리들은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엡2:12) 고독한 이방인들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의 빛을 우리에게 비취시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아직까지 암흑 세계와 인본주의의 미신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살전1:9,10).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침 빛처럼 모든 어두운 이방 세계에 비춰야만 타락하고 무지한 심성들을 참되게 변화시킬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불신앙의 세계 속에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벧전2:9) 해야만 할 것입니다.
2)영광의 직책을 찬송했습니다.
시므온을 또한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의 영광’이라고 찬송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왕조를 제외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선민의 영광과는 거리가 먼 치욕의 골짜기를 거니는 역사였으며 시므온 당시도 로마의 식민지에 불과했습니다. 그리고 그 물리적이고도 현세적인 영광을 아직도 이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주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영적 이스라엘인들에게 우선 영원한 하늘의 영광을 주시려는 경륜이 시행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롬11:25,26 ;갈6:16).
인생의 표적
눅2:34,35
기도의 사람 시므온은 아기 예수가 기다리던 메시야임을 증언한 후에 장차 주님의 활동과 운명에 대해서도 마리아에게 엄숙한 예언을 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인류의 구원과 심판의 표적으로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러한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1.심판의 원인이 되시는 예수님
시므온은 먼저 아기 예수에게 많은 사람의 심판의 근거로 세움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물론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요12:47) 이 땅에 오셨습니다.
1)예수님은 인생을 향하신 하나님의 절실한 사랑의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불의하며 원수 된 죄악 세상에 그 아들을 보내신 의미를 용서의 손으로(롬10:21), 화해의 요청으로(고후5:20,21),구원의 은혜와 인생 최고의 복락인 영생의 선물로(롬6:23) 묘사했는데,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확증'(롬5:8) 하신 하나님의 절실한 사랑의 의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크신 사랑에 응답치 못하고 주님을 배척하거나 무관심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심판의 표적이 되심은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2)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유일한 구원의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수많은 종교관과 세계관 및 가치관들을 가지고 영원함을 추구하지만,복음을 외면한 모든 사상들은 그 발로가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3:5) 보려는 첫사람의 인본주의적 욕망을 근저로 하기 때문에 늘 자기 모순의 악순환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고전1:18-21).그러므로 주님 양편에 같이 매달린 두 강도들의 태도처럼 인생들은 진리의 푯대인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어떤 마음과 태도로 대하느냐에 따라 영원한 소속과 운명이 결정될 것입니다.
2.승리의 원인이 되시는 예수님
1)우리는 주님의 성육신을 인접함으로써 삶의 참된 의미를 얻습니다.
우리가 시므온처럼 마리아의 품에 있는 아기가 하늘에서 뛰어들어 오신 구세주임을 확신할 때 인생이란 영광의 보좌에서 뿐만 아니라 불행의 골짜기에서도 열심히 도전하고 살 만한 가치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2)주님의 대속의 은총을 믿음으로 삶의 생명력을 얻게 됩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고전1:18)이라고 바울이 고백했듯이, 성도들의 모든 삶의 원동력은 주님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의 용서와 용납을 늘 재확인함으로써만이 얻을 수가 있습니다(롬8:31-37).
3)또한 우리는 주님의 부활의 능력을 통해서 삶의 참된 지혜를 얻게 됩니다.
‘건축자들의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벧전2:7)이 되듯 인생의 행복과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간다는 원리를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마5:5).
4)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삶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예배를 통한 주와의 영적 교통,교우들과의 교제,교회와 이웃을 향한 봉사 및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노력 등은 성도로 하여금 이 땅 위에서도 신앙인만이 누릴 수 있는 삶의 만족감과 성취감을 얻게 합니다.
5)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림으로 확신 있는 삶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성도의 특권적 소망은 온갖 모순과 부패와 갈등으로 모든 세상의 허무주의 풍조를 이기게 되는 승리의 원동력입니다.
3.마음의 거울이 되신 예수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35절)고 하듯 고난받는 예수께서 마음의 거울이 된다는 말씀은 마리아 뿐만이 아니라 지상의 모든 성도들에게도 귀한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1)겸허한 마음을 유지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모친이라는 영웅심과 세상 영광의 기대감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아기 예수의 고난의 삶을 미리 말해 줌으로 바울처럼 은혜의 가시를 준 것입니다(고후12:7-10).우리가 우쭐해지고 자만해졌을 때라도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의 십자가 밑에 선다면 곧 자기의 부족한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2)주님과 늘 같은 마음을 품으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혈육이 앞으로 고난의 삶을 산다는 것을 알게 된 마리아의 마음은 칼로 도려내듯 아팠을 것입니다. 주님과 하나된 진실한 성도는 늘 주님과 한마음으로 기뻐하고 슬퍼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어느 날 주님의 십자가를 생각해도 아무런 감동이 없는 자신은 슬퍼하며 울었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위에서 사랑과 진리를 질식시키며,그리스도를 자주 십자가에 다시 못박는 일들을 바라보고 성도가 아무런 찔림이 없다면 슬픈 일이 아닐 수가 없을 것입니다.
과부 안나의 축복
눅2:36-38
본문은 경건한 여인 안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즉,안나는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이고,결혼하여 남편과 7년 동안 함께 살다가 과부된 지 84년이 되었으며,그녀는 언제나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이로 보아 안나의 나이가 1백 세가 넘었으리라는 것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나는 1백세가 넘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성전에서 주야로 기도하며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다가 할례를 받기 위하여 성전에 찾아온 아기 예수를 만나 그의 일생의 한을 풀고 인생을 마감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1.안나는 외로운 여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려서 결혼하였는데 남편과의 즐거운 삶이 7년 만에 끝났습니다. 남편의 죽음으로 한 여성의 불운한 인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과부로 늙는 외로운 한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젊은 과부에게는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젊은 과부의 주변에는 남성들도 기웃거리고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도 있으므로 어느 정도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매력이란 오래 전에 사라져버리고 사랑받을 만한 것이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이 늙은 과부에게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없고,주위를 맴도는 사람도 없습니다. 눈은 이미 오래 전에 희미해졌고,머리털은 백발이 되었으며,얼굴은 몹시 쪼그라져 깊은 골이 패여 있으며,손도 투박하여서 볼품 없는 늙은 과부에게 흥미를 느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나는 외로운 여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 중에 하나가 역시 노인 문제입니다. 나이 들어 늙어감으로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소외되어 소망을 잃고 있는 노인들의 갈등이 빚어내는 사회 문제는 갈수록 더욱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만년에 배우자가 없는 노인에게 더욱 쓸쓸함이 더할 것입니다. 안나는 과부된 지 84년의 긴 세월을 배우자 없이 견뎌왔습니다.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 줄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었고,그녀의 소망은 예루살렘의 구속함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안나는 오래 기다린 보람이 있어 기나긴 세월 동안 그 외롭고 쓸쓸했던 마음에 기쁨과 소망으로 가득 차는 순간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을 구속하고,온 세상을 구원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2.안나는 많은 노인들의 모범이 됩니다.
우리는 흔히 ‘청년은 미래에 살고,장년은 현실에 살며,노인은 과거에 산다’는 말을 자주 인용합니다. 노인은 과거의 경험만을 먹고 산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현실과 미래에는 필요치 않는 존재라는 말도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인을 쓸모없는 인물로 취급하는 경향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뿐만 아니라,옛날에도 비슷한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것 같습니다. 고구려 시대의 ‘고려장’풍습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현대의 핵가족 사회가 확산되자 노인들은 이제’현대판 고려장’모습이 재현되고 있다는 말도 생겨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서운 반사회적,반윤리적 작태는 한마디로 ‘노인은 쓸모가 없다’는 잘못된 풍조에서 생겨난 것입니다. 노인들 스스로 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자포 자기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노인들이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자포 자기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노인들이 쓸모없는 것은 아닙니다. 안나를 보십시오.안나는 이미 나이가 1백 세가 넘었으나 성전에서 하나님께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지난 1세기 동안 팔레스틴 전역에서 일어난 전쟁과 정복과 압제 등의 슬픈 역사를 몸으로 체험해 왔습니다. 이같은 고통은 모든 유대 민족의 가슴에 오래 전에 약속된 메시야에 의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의 소망을 심어 주었습니다. 안나도 그같은 소망을 더욱 강렬하게 갈망하며 성전에서 나라와 민족의 구원을 위해,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나이가 많은 노인이기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조카나 손자들의 눈치만 보며 살 것이 아닙니다. 또한 지난 과거만을 되뇌이며 인생을 마감할 때를 기다리고만 있어서도 안 됩니다. 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가장 자유로운 정신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신앙은 그러한 삶을 제공해 줍니다.
3.안나의 경건한 삶은 모든 그리스도의 모범이 됩니다.
안나가 선택한 길은 믿는 노인들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길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도 나이 많은 성도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는 권사나 집사의 직분을 맡은 자들도 있고,전혀 아무런 직분을 받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중에 권사 직분은 나이 든 여성도가 받는 직분으로서 우리는 그들을 ‘기도의 어머니’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시대에 안나가 주야로 성전에 있어 금식하며 기도로 하나님을 섬겼던 것처럼,오늘날의 나이 늙은 여성도들도 교회 안에서 기도로 하나님을 섬기며 온 교우와 나라와 민족의 구원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지 않아야 합니다.
일찍이 안나가 과부로 일생을 주님 앞에 헌신하며 경건하게 살았던 것처럼,오늘날 나이 든 과부나 성도들도 주님께 소망을 두고 경건하게 살고자 하면 구원의 주님을 만나는 기쁨을 맛보게 되고 따라서 하나님의 영원한 축복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의 성장과 가정 교육
눅2:39,40
본문에서는 누가가 예수님의 생애 중 그 성장기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누가가 이 기사를 예수님의 부모가 유대의 율법을 충실히 지킨(39절) 기사와 연결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단적으로 여기서 누가는 예수님의 성장과 그 부모들의 충실한 율법에의 준수를 연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본문을 통해서 예수께서 어떻게 성장했으며,예수님의 성장에 그 부모들은 어떤 역할을 담당하였는가를 생각해 보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예수님의 부모들
‘주의 율법을 좇아 모든 일을 필하고…'(39절). 성경적인 문헌 속에 예수님의 부모들에 대한 기록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수태 고지를 받은 마리아에 대해서 조금 언급하기는 하지만 마리아와 요셉 개인들에 대하여 그리 많은 지면을 허락하지는 않습니다.그러나 성경에 나타난 기록들을 미루어 생각해 보건대 예수님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상당히 진실한 유대교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처지에서 율법을 충실히 지키려고 애쓰는 자들이었음에 틀림없습니다. 메시야 사상에 대한 정확한 의식과 깨달음이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지라도 그들은 충실한 유대 주의자들로서 메시야를 기다리는 자였고 구약의 율례를 진실한 마음으로 지켜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부모의 이러한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좋은 산교육이었을 것입니다. 그 가정의 문화는 과연 하나님의 아들을 양육하는 풍토가 조성된 문화였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가정의 교육 문제에 있어서 부모로서 이러한 문화적 공간을 만들어 줄 줄 아는,자녀가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가정의 분위기를 조성시켜 가야 할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2.강하여짐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40절). 예수는 세월이 갈수록 자라며 강하여졌다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강하여졌다는 말이 단순히 육체만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전체적인 인격적 측면에서인지 본문을 통해서는 알 수 없지만 아마 후자의 경우일 겁니다. 예수는 자라면 자랄수록 단순한 소년이 아니라 견고한 성품과 훌륭한 인격으로 성장해 나가고 아울러 육체까지도 강건하게 성장해 갔습니다.완전한 인성을 지니신 우리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독생하신 아들로서,요셉의 아들로서 건실하게 커나갔습니다. 일방적인 의미로 부모가 예수님을 가정에서 가정교육으로 양육했다고 말할 수는 없겠으나 그래도 상당한 영향을 그 가정으로부터 받았다고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볼 때 오늘날 믿는 우리들이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시키고 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
3.지혜가 충족하여짐
예수님께서는 자랄수록 지혜가 충족해졌다고 하였습니다.지혜가 날로 충족되어가는 주님은 아마 회당에서 율법도 배우시고 토론도 하시고 하는 과정 속에서 점점 더 확고한 메시야 의식,즉 자신이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깊이 자각하셨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열두 살 되던 해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눅2:49).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의 지혜를 비롯한 모든 방면에 있어서의 지혜를 날이 가면 갈수록 체득해 갔습니다. 메시야로서 지녀야 될 기본요건들을 이때부터 하나씩 둘씩 경험하면서 깨달아 가셨던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기의 자녀를 공부 잘하는 사람으로,돈을 잘 버는 사람으로 키우기보다는 참된 삶의 의미를 생각하고 그 의미를 실질적인 삶 속에 투영해 가면서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로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4.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
강건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한 소년으로 커갈 수 있었던 원인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크신 은혜가 그 위에서 항상 보살피고 있었기에 이 모든 것들이 다 가능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성장케 한 요인 중 그 부모들의 역할도 중요하였지만,그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그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들이 자기들의 자녀를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가꾸어 나가면서 꼭 알아야 할 것은 자신의 자녀들이 성장함에 있어서 가장 큰 요인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내가 내 자녀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 모든 것이 가능하기에 키울 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내가 낳은 자식이기에 내 자식이라는 소유 의식보다는 하나님의 나라를 빨리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러할 때 본능을 넘어선 하나님의 능력이 실제로 발휘되는 가정과 자녀로 존재해 갈 수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
눅2:41-43
유대인 남자들은 열두 살이 되면 율법이 정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고,또한 의무를 갖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율법의 규례대로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열두 살 되던 해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많은 주석가들은 이때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셔서 신의 소명에 눈을 떴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본문에 대해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예수님
1)율법을 지키신 예수님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심으로써 율법을 복종하시며 율법 아래 들어가시는 주님을 바라보면서 율법의 소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주님은 결코 율법을 무시하거나 멸시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께 율법은 선한 것이었으며,거룩한 것이었습니다(롬7:12,16).그래서 주님께서는 율법을 철저히 지키셨으며 십자가에 죽으심으로써 최종적으로는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마5:17,18 ;눅24:44 ;롬3:31). 본문에서 주님께서 십이 세 되던 해 율법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신 사실은 주님의 사역이 곧 이와 같이 율법을 완성시키는 사역임을 밝혀 줍니다.
2)유월절을 지키신 예수님
주님께서 본문에서 지키신 율법은 구체적으로 유월절 절기입니다. 그런데 이 유월절 절기는 유대인들에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첫째,그것은 죽음에서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장자들을 치실 때 유월절 양을 통해서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구원하셨습니다(출12:27). 둘째,억압과 속박으로부터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억압과 속박에서 완전히 해방하셨습니다(출12:11 ;신16:1). 따라서 주님께서 십이 세 때 유월절을 지키신 것은 곧 주님께서 유월절 양이 되셔서 인류의 죄를 속량하시고 죄에서 완전히 해방시키실 것을 예표하는 것입니다(고전5:7).
2.예루살렘에 머무신 예수님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아이 예수님은 유월절 제사를 마치고 부모님과 함께 집에 돌아가지 않으셨다고 본문은 기록하고 있습니다.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1)예수님의 집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국한해서 거하신 것은 아니었지만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요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따라서 주님은 그곳에 계셔야 했습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자시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눅1:35).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를 찾는 부모님께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49절)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2)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유월절 어린양으로서 인류를 대속하실 제물이실 뿐만 아니라 제물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중보하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십니다. 따라서 그는 대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만날 수 있는 성소가 있는 예루살렘에 머물러야 하셨던 것입니다.
3)예수님은 다윗 왕통을 잇는 유대인의 왕이셨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약속된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던 것입니다(삼하7:12 ;마1:1 ;롬1:3).따라서 그는 다윗성,혹은 시온성이라 불리우던 예루살렘에 머물러야 하셨습니다.그가 계셔야 할 곳은 나사렛 빈촌이 아니라 영광과 존귀를 받아야 했던 다윗 왕국이었습니다.
3.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머무신 사실을 몰랐던 요셉과 마리아
1)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계신 사실을 몰랐을 뿐만 아니라 머물러 계셔야 할 이유조차도 몰랐습니다. 이는 그들이 예수님을 단순히 자신들의 아들로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예수님이 정확하게 누구인지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이전에 천사 가브리엘이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려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은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우리의 본 모습입니다. 그처럼 많은 체험을 하고 예수님을 늘 옆에 모셔 두고도 그를 잊습니다. 그가 찬양받으실 하나님의 아들이 아닌 것처럼 착각합니다.
2)세상 일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머무신 사실을 몰랐던 것은 그들이 자기 일에 바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쓸데없는 세상의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였습니다. 그러한 나머지 그들은 예수님께 관심을 가질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은 너무 바쁩니다. 너무 급박하게 살아갑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 관심을 가질 시간이 없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잊고 살아갑니다. 요셉과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을 모시고,예수님을 앞세우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자기 뒤를 따라와 주기를 바랍니다. 세상 일과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반대가 됩니다.
진리를 찾는 사람들
눅 2:44-47
본문은 어린 예수님을 잃어버렸던 마리아와 요셉이 삼일 만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해후한 사건과 유월절 행사 중의 하나인 산헤드린 공개 신학 토론회에 참여하신 소년 예수의 지혜로움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년기의 예수님을 근간으로 한 이 단편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여러 모습들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생각해 봄으로 성도의 구도적 삶의 방향과 자세를 얻고자 합니다.
1.찾아 헤매는 부모
‘동행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찾되'(44절). 요셉과 마리아는 절기를 지킨 후 고향으로 되돌아가던 중 예수님이 없어진 것을 깨닫고 찾기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유월절 명절로 인한 삶의 희열과 만족감은 갑자기 혼란과 근심과 불안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진리 되신 예수를 찾아 헤매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진리는 어디에 있는지 그것은 찾는 구도적 삶의 방향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1)진리를 잃어버린 줄을 몰랐습니다.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동행중에'(44절) 있는 줄로 생각했었습니다. 팔레스틴의 여행길에서는 남정네들보다 여성들을 앞서보냈는데,그것은 여행 속도의 차이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행객의 행렬을 다 보려면 하룻길이 소요되었다고 어느 역사가는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예수님이 마리아와 함께 먼저 출발한 것으로 생각했고,마리아 또한 예수께서 요셉과 함께 뒤따라올 것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이처럼 대다수의 사람들을 평범한 삶의 행렬 속에 진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맡겨진 삶을 성실하게 영위하고,이웃과 공유하며,즐기는 것이 곧 인생의 참된 도리라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소시민적인 철학은 불치의 병이나,사회적 재난이나,죽음과 그 후의 문제 등 자기와 삶의 한계 상황들을 애써 외면하려는 허무주의적 사고에 불과합니다. 진리를 애써 외면하려는 자들입니다.
2)진리를 ‘인간’에게서 찾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또한 ‘친족과 아는 자 중'(44절)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이처럼 의식 있는 많은 사람들 중에는 친족 사랑,즉 인도주의를 삶의 이상과 최선의 가치고 여기고 있지만,인류의 타락한 본성으로 인한 이기심 때문에 사상과 계급의 대립과 갈등이 심화되어만 가는 고로 무신론적 인본주의의 치부만을 드러낼 뿐입니다.
3)삶의 경험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45절) 갔다고 했는바 원문의 ‘찾는다’는 뜻은 오르락내리락 앞뒤를 찾으며,또한 전체를 뒤지면서 예수님을 찾아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유사 이래로 오늘까지 인류는 모든 방법과 수단을 다하여 물질적,정신적,철학적 문제들의 해답을 찾고자 했으나,자기 모순과 시행 착오와 불가지론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4)결국 진리는 ‘성전’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사흘 후 성전에서'(46절) 공개 신학 토론회장에 있는 소년 예수님을 만났다고 했습니다. 인생이 진리를 만날 곳은 오직 하나님의 ‘성전 안’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신 곳이며,하나님의 주권과 말씀이 선포되는 곳이며,하나님의 사죄의 은총이 시행되며,인생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진리의 기둥과 터'(딤전3:15)인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며 우리의 마음과 삶은 성전화가되고(고전3:16),진리의 영이 우리를 삶의 온갖 문제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실 것입니다(요8:31,32).
2.학자들과 토론하는 소년 예수님
유월절 기간 중에는 산헤드린 공회에서 일반인들을 위한 신학 공개 강좌를 개설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위대한 랍비들과 소년 예수님의 만남이 이루어졌으며,그 공개 강좌의 열띤 분위기가 예수님을 사로잡은 것이었습니다(요2:17).우리는 여기서 자리를 구하는 자세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① 랍비들이 원하는 것은 부와 명예입니다. 공개 강좌 때 랍비들은 긴 의자에 앉아서 교육을 했으며,청중들은 땅에 앉아 가르침을 받았는데,어린 예수님도 청중으로 땅에 앉으셨을 것입니다. 랍비들은 소년 예수님의 신적인 통찰력에 대해 ‘기이히 여기더라’고 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복음의 진리에 대해 여명의 빛을 그들에게 비추셨을 것입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성육신으로 인한 메시야 예언의 성취 등을 설명했습니다(49절). 그러나 세속의 부와 명예와 권위주의로 눈이 가리워진 랍비들은 감탄만 했을 뿐 앞에 계신 진리의 하나님을 알아볼 수 있는 눈은 없었습니다(마23:2-26).그러므로 구도자인 성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청결한 마음입니다(마5:5).② 예수님은 믿는 자를 찾으십니다.’저희에게 듣기도 하고 묻기도'(46절) 하신 것은 이해를 위한 토론을 초월하사 구약 신학의 모든 것이 바로 예수님을 근간으로 이루어졌음을 저들에게 인식시켜,저들로 하여금 주님을 믿게 하시려는 의도였습니다(요5:39).
소년 예수의 의식
눅2:48-50
본문은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소년 예수와 그 모친 마리아와의 대화를 기록한 것입니다.
1.부드러운 책망
1)요셉과 마리아를 책망하심
요셉과 마리아는 드디어 성전 안에 있는 예수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48절)고 하자 주님께서는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부드럽게 책망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주님을 찾는 의도와 목적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즉 평범한 부모가 미아를 찾듯,인간의 소유욕과 연민으로 예수님을 찾았느냐는 물음입니다. 저들은 이 아이가 메시야임을 한동안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우리의 사사로운 목적을 위해서는 소유할 수 없는 분입니다. 오직 우리가 주님의 소유가 돼야 합니다.
2)우리들을 책망하심
본문의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될 줄을…’이란 말씀은 ‘내 아버지의 일을 해야만 함을’뜻합니다. 주님의 의식 속에는 늘 아버지 하나님의 일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우리처럼 간혹 ‘땅의 일을 생각하는'(빌4:20) 적은 없었습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 즉'(잠23:7)이라고 했듯,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의 일만 생각했던 것입니다.
2.자기 의식의 표현
1)소년 예수의 종교관
소년 예수는 하나님의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분은 며칠 전에 시행된 ‘율법의 아들의 축하식’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습니다(눅2:42).그의 의식 안에 성령으로 인각된 신성은 기어코 그로 하여금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만들었던 것입니다(눅1:35). 이 의식은 창조 섭리론적인 관점에서의’인류의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도 아니요,성도에게 구속 섭리로 부여하신 ‘양자의 자격’도 아닌,본질적인 관계에서의 아버지인 것입니다.
2)소년 예수의 윤리관
예수님은 늘 하나님 아버지의 공의와 사랑 안에서 행하셨습니다. 그분에게 있어서 세계는 아버지의 집이었습니다. 그분은 아버지 하나님의 뜻안에서 움직이시고 그 뜻 안에서만 멈추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의 주권과 명예를 침해하는 행위를 하는 자들에게는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요2:16)고 하시며 공의의 채찍을 휘두르셨고,그 아버지의 주권에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14:2)고 하시며 사랑으로 대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삶의 위기를 맞아 결단을 내려야 할 때엔 ‘내 원대로 마옵시고,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22:42)라며 ,의지를 아버지의 주권 앞에 굴복시키셨던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아름다운 삶을 통하여 자신의 본질을 증명하셨습니다.
3)소년 예수의 세계관
주님의 하나님의 집이라는 말씀은 또한 모든 세계와 하나님의 권세하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악한 세대 속에 살아가면서 때로,모든 세계와 역사의 통치권을 사탄이 쥐고 있는 것처럼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히11:3) 움직이는 하나님의 집임을 믿는 자는 결코 모든 희망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삶의 어둡고,막다른 자리인 십자가 위에서도,죽음의 세계마저도 하나님 아버지의 통치하에 있음을 믿었기에 원수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해 주실수 있었고(눅23:34),죽음의 순간이 찾아올 때도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눅23:46)라는 희망의 기도를 올릴 수 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도 모든 세계가 발 하나님의 집이라는 세계관을 가져야 하겠습니다(고전3:22,23).
3.신앙 교육의 중요성
우리는 본문의 소년 예수의 말씀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는 데,그것은 곧 신앙 교육,조기 교육의 영향력입니다.
1)부모들이 행해야만 하는 일들
소년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손에 이끌려서 단 한번의 예루살렘 성전 방문을 통하여 삶의 큰 전환점을 맞은 것입니다. 즉 그 동안 여명으로 비취던 메시야적 의식이 성전에 머물며 여러 신앙 교육적인 행사를 겪는 동안 확고하게 각성된 것입니다. 이것은 마리아와 요셉의 성실한 신앙생활의 분복입니다. 우리의 자녀도 어릴 때부터, 유한한 내 아이가 아닌 하나님의 자녀로 교육시켜야 하겠습니다.
2)자녀들이 행해야 할 일
예수님은 열두 살 때 이미 위대하신 결심을 했습니다. 즉 하나님의 집에 있기로 말입니다. 이 결단은 빠를 수록 좋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집'(시27:4)에 거하지 않는다면 죄악과 허무와 심판의 ‘악인의 장막'(시84:10)에 거해야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성장이 주는 교훈
눅2:51,52
본문은 복음서 가운데 예수님의 유년 시절을 언급한 단 한 곳의 증언가운데 한 절입니다. 41절부터 시작되는 예수님의 유년 시절의 행적은 사복음서 중에 오직 여기에만 나타난ㄴ 특별한 구절입니다. 예수님의 성장은 그가 비록 하나님의 아들이었을지라도 다른 인간과는 다른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많은 종교의 교주들이 신화적 신비 가운데서 태어나고 자라납니다. 예를 들면,불교의 창시자 석가모니는 마야 부인의 몸에서 태어나자마자 동으로 일곱 발자국 서로 일곱 발자국 걸은 후에「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태어남과 성장의 상식을 초월한 신비스럽게 꾸며 놓은 이야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리아의 몸에서 정상적으로 태어나 강보에 싸여 있었으며,나 지 팔 일만에 율법의 규례를 따라 할례를 받았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성장 모습에 대한 누가의 증언은’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족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40절)였습니다. 이것은 모든 다른 아이의 성장 과정과 동일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점을 살펴보겠습니다.
1.예수님은 열두 살 때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으로 올라갔습니다.
모세의 법에는 모든 이스라엘의 남바들은 매년 세 번씩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도록 명령되어 있습니다(출23:14 ;신16:16).그것은 유월절과 오순절과 장막절입니다. 그러나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들은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그래서 지방에 있는 회당에서 예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팔레스틴 지역에 사는 유대인은 최소한 유월절만은 허용되었으나 위대한 교법사 힐레에 의하여 여성까지 참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부모들은 경건한 유대인이었으므로 해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게 되었는데, 그것은 열두 살이 ‘율법의 아들’이 되는 해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교육은 어머니의 지도로 시작되어 6세가 되면 ‘쉐마'(신2:4)나 시편을 공부하게 되고,10세가 되면 율법의 해석인 ‘미쉬나’를 배우며,12세에는 ‘율법의 아들’로 본격적으로 율법을 배우고 익히며 그것을 지킬 의무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율법이 명하는 절기와 금식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열두 살이 되매 율법에 따라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고 그는 해마다 유월절을 지켰습니다.
2.예수님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예수께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51절). 신약성경에는 부모에 대한 효를 말할 때 ‘눈에 보이는 부모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한 구절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에 복종하기를 원하신 주님께서는 육신의 부모에게도 효성과 순종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원하신 주님께서는 육신의 부모에게도 효성과 순조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그는 30여 년 간 부모의 보호와 권위 아래 순종하며 받들어 모셨습니다. 훌륭한 시민을 만드는 것은 질서 정연한 가정의 훈련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효자의 집안에서 충신이 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작은 소망을 갖는 즐거움과 순수한 애정의 높은 가치를 배우는 곳도 가정이며,모든 도덕적 미적 안목과 순결을 유지하는 가장 튼튼한 안전 장치가 있는 곳이 가정입니다. 예수님은 그렇나 가정에서 근면하게 생활했습니다. 그는 ‘목수의 아들’이라고 불리웠던 것처럼 그 자신도 목수였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죽은 후에 그의 모친과 여러 동생들을 돌보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그러던 중 예수님은 준비 기간을 끝마치고 공생애 들어감에 있어서도 성급하게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선포를 위해 모든 가치 있는 능력을 축적하고,지식과 자각 뿐만 아니라 ,조용한 자기 성찰에서 오는 자제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나사렛 마을에 있는 자신의 가정에서 훗날 십자가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축적하고 있었습니다.
3.예수님은 키가 자람과 함께 지혜도 자랐습니다.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매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52절). 사람들은 흔히 하나님의 아들인 그리스도는 처음부터 모든 지식과 능력을 소유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를 잘못 이해하는 것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간으로 태어났으므로 신화적 인물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인간이 되셨으므로 인간의 성장 법칙에 따라 키가 자라고 또한 지혜도 자라갔습니다. 인간이 키만 자라고 지혜가 자라지 않는다면 그는 ‘바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즉 ,모자라는 사람이 되어 사회에 공헌하는 인물이 되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을 받음으로써 동시대의 어떤 유년이나 청년들보다 더 큰 지혜와 도덕적 탁월성을 지니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항하기 쉬운 사춘기와 죄의 유혹을 받기 쉬운 청년기,또는 본격적인 사회적 활동으로 인기와 외로움을 한몸에 지니고 있었던 예수는 우리에게 큰 교훈을 던지고 있습니다. 인간은 비록 연약하지만,완전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예수께서 몸소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쇄
헬라어 누가복음 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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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게네토 데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에케이나이스 엨셀덴 도그마 파라 카이사로스 아우구스투 아포그라페스다이 파산 텐 오이쿠메넨
개역개정,1 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새번역,1 그 때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온 세계가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는데,
우리말성경,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전 로마 통치 지역은 호적 등록을 하게 됐습니다.
가톨릭성경,1 그 무렵 아우구스투스 황제에게서 칙령이 내려,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되었다.
영어NIV,1 In those days Caesar Augustus issued a decree that a census should be taken of the entire Roman world.
영어NASB,1 Now in those days a decree went out from Caesar Augustus, that a census be taken of all the inhabited earth.
영어MSG,1 About that time Caesar Augustus ordered a census to be taken throughout the Empire.
영어NRSV,1 In those days a decree went out from Emperor Augustus that all the world should be registered.
헬라어신약Stephanos,1 εγενετο δε εν ταις ημεραις εκειναις εξηλθεν δογμα παρα καισαρος αυγουστου απογραφεσθαι πασαν την οικουμενην
라틴어Vulgate,1 factum est autem in diebus illis exiit edictum a Caesare Augusto ut describeretur universus orbis
히브리어Modern,1 ויהי בימים ההם ותצא דת מאת הקיסר אוגוסטוס לספר את כל ישבי תבל׃
성 경: [눅2:1]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이때에 – 2장을 시작하는 이 말은 1:80의 언급을 염두에 둔 것으로서 새로운 사건의 시작을 알림과 아울러 상황의 변화로 인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가이사 아구스도(K* A , 카이사로스 아우구스투) – ‘카이사로스’는 하나의 인명일 수도 있고 후대적 용법에서처럼 칭호일 수도 있다. 아구스도는 원래 라틴어인데 헬라어로는 보통 ‘황제'(*, 세바스토스, 행 25:21, 25)로 번역되며 여기서는 인명으로 사용되었다. 아구스도 황제의 본명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Gaius Octavius)이다. 그는 B.C. 27-A.D. 14까지 로마의 황제로 있었고 그후 외증조부 율리우스 시이저의 이름을 따라 가이우스 율리우스 시이저(Gaius Julius Caesar)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옥타비아누스는 B.C. 27년에 로마 원로원으로부터 ‘아우구스투스'(‘위대하고 고귀하며 지극히 숭배받는’ 이란 뜻)라는 칭호를 부여받으며 그후 그는 시이저 아우구스투스로 명명되고 최고의 권위자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는 탁월한 통치 능력과 현명하고 훌륭한 정치 및 행정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점령지에 대한 정책의 일환(一環)으로 점령지의 지방 자치를 부분적으로 허용하기도 하며 점령지의 문화와 종교, 생활 풍습등을 인정해 주기도 하고 심지어는 그 나라의 법률까지도 로마법에 비추어 무리가 크게 없는 한 인정해 주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예술. 문화. 건축 등을 장려하기도 했으며 그 자신이 또한 위대한 건축가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러한 그의 정책과 통치로 인해 전에 없이 오랜 세월동안 평화가 지속되었고 그는 ‘자비로운 정치가’, ‘로마의 대부'(代父)로까지 불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최고 승원장(Pontifex Maximus) 또는 대제사장(Highest Priest)이란 칭호를 받아들여 모든 종교의 최고의 위치를 차지했다. 게다가 그는 피살(被殺)된 자신의 외증조부 율리우스 시이저를 신격화하여 그를 기념하는 사원을 건립하여 그를 신으로 받들도록 명령하기도 하였다. 이렇듯 그는 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범하기도 하였다. 한편 탁월한 정치 지도자이며 행정가인 그가 자기에게 속한 나라들이 무질서하다는 것을 알고는 로마에 속한 모든나라들로 하여금 인구 조사를 실시하도록 명령했다. 따라서 그는 인구조사의 실시로 말미암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미 5:2의 예언을 성취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게 되었다(Hendriksen).
영(*, 도그마) – 이 단어의 기본적 의미는 ‘옳다고 여겨지는 것이며 ‘원리’, ‘법령’ 등의 뜻이다. 동사로는 ‘법령을 제정하다’, ‘칙령을 공포하다’ 등의 의미를 갖고 있다. 여기서는 황제의 포고령을 가리킨다.
천하 – 이는 원어상 ‘거주지’란 뜻이다. 고대 학자들은 이방인의 땅과 구별되는 의미로서의 헬라인의 거주지를 이 단어로써 나타냈으며 그 후에 ‘로마제국’이란 의미로 사용되었다(행 11:28;17:6).
호적(戶籍) – 황제의 칙령은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실시하는 인구 조사에 관한 것이었다. ‘호적’에 해당하는 원어 ‘아포그라포'(*)는 ‘등록하다’, ‘기록하다'(2:3, 5;히 12:23)는 말로 세금 징수를 위한 파피루스로 된 공식기록부를 가리키며, 이 기록부에는 성명, 직업, 재산, 친척관계를 기록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어쨌든 이 인구 조사는 예수의 탄생을 세계 역사의 맥락 속에 넣어 하나님이 그의 섭리를 달성하기 위해서 지상의 통치자를 이용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아우테 아포그라페 프로테 에게네토 헤게모뉴온토스 테스 쉬리아스 퀴레니우
개역개정,2 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새번역,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시행한 것이다.
우리말성경,2 이것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으로 있을 때 실시된 첫 번째 호적 등록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2 이 첫 번째 호적 등록은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에 실시되었다.
영어NIV,2 (This was the first census that took place while Quirinius was governor of Syria.)
영어NASB,2 This was the first census taken while Quirinius was governor of Syria.
영어MSG,2 This was the first census when Quirinius was governor of Syria.
영어NRSV,2 This was the first registration and was taken while Quirinius was governor of Syria.
헬라어신약Stephanos,2 αυτη η απογραφη πρωτη εγενετο ηγεμονευοντος της συριας κυρηνιου
라틴어Vulgate,2 haec descriptio prima facta est praeside Syriae Cyrino
히브리어Modern,2 וזה המפקד היה הראשון בהיות קוריניוס שליט בסוריא׃
성 경: [눅2:2]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구레뇨 -B.C. 12년에 마르마리대(Marmaridae)를 군사적으로 장악하여 집정관이 된 후 구레뇨는 갈라디아의 남쪽 접경에 있던 산적떼의 후손인 호모나덴세스(Homonadenses) 족을 정복하였다. 그후 그는 A.D. 3-4년 가이우스 시이저(Gaius Caesar)의 고문역을, A.D. 6-9년에는 시리아의 황제 파견관을 역임한 후 A.D. 21년에 죽었다.
수리아 – 시리아(수리아, :27)는 B.C. 64에 로마제국에 합병되었다. A.D. 70까지 유대는 별도로 자체의 행정부를 구성하고 있었지만 시리아에 복속되어 로마의 통치를받고 있었다. 따라서 이 당시까지만 해도 시리아는 유대 지역까지 포함된 로마제국의 통치령이었다.
첫 번 한 것이라 – 제1차 인구 조사는 흔히 예수의 탄생보다 훨씬 이후인 A.D. 6년경 구레뇨가 통치하던 시기에 실시되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행 5:37과 요세푸스의 저서(Antiq. , 26.1)에도 제1차 인구조사에 대해서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많은 학자들은 누가가 A.D. 6년에 실시되었던 제1차 인구조사를 그 이전에 실시되었던 것으로 혼동했다고 추측한다. 그 문제와 관련하여 많은 견해들이 제시되었지만 다음 두 견해가 가장 설득력이 있다. 첫째, 어떤 사본에는 구레뇨가 ‘두번째’로 ‘시리이의 총독’이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그 사본의 내용이 애매한점이 있기는 하지만 구레뇨는 예수가 태어날 당시와 그 후의 몇 년이 지난 뒤, 곧 두 차례에 걸쳐 시리아의 총독 직위에 있었다는 단서를 제공해 준다(F.F. Bruce, Quirinius, NBD, p.1069). 둘째, ‘첫 번’의 헬라어 ‘프로테'(*)는 거의 대부분의 경우에 ‘첫 번째의’라고 번역되었지만 그 단어는 그 의미보다 ‘이전의’ 또는 ‘앞의’를 뜻할 수 있다. 만약 ‘첫 번’이라는 단어가 ‘이전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면 본절은 ‘구레뇨가 시리아의 총독이 되기 이전에’라고 번역해야 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는 본문의 기록의 역사성이 대해 회의를 표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만일 이 기록이 잘못된 것이라면 초대의 기독교 논박자들이 이를 지적하지 않았을리 없으며 또한 당대의 교양있는 사람들에게 써보낸 누가의 기록 속에 터무니없는 내용이 수록되었을리도 없겠기 때문이다.
카이 에포류온토 판테스 아포그라페스다이 헤카스토스 에이스 텐 헤아우투 폴린
개역개정,3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새번역,3 모든 사람이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고향으로 갔다.
우리말성경,3 그래서 모든 사람은 호적을 등록하기 위해 각각 자기 고향으로 갔습니다.
가톨릭성경,3 그래서 모두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다.
영어NIV,3 And everyone went to his own town to register.
영어NASB,3 And everyone was on his way to register for the census, each to his own city.
영어MSG,3 Everyone had to travel to his own ancestral hometown to be accounted for.
영어NRSV,3 All went to their own towns to be registered.
헬라어신약Stephanos,3 και επορευοντο παντες απογραφεσθαι εκαστος εις την ιδιαν πολιν
라틴어Vulgate,3 et ibant omnes ut profiterentur singuli in suam civitatem
히브리어Modern,3 וילכו כלם להתפקד איש לעירו׃
성 경: [눅2:3]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모든 사람이…고향으로 돌아가매 – 인구 조사는 각 사람의 고향에서 실시되는 것이 관례였다. 이렇게 많은 불편을 감수하며 자기의 고향까지 가서 호적을 하는 것은 유대의 호적제도를 따르는 것이었다. 로마의 호적제도는 자신이 현재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인적 사항만을 기록하는 훨씬 더 간편하고 손쉬운 방법이었다. 그런데도 유대인들이 로마의 손쉬운 호적 제도를 따르지 않고 굳이 번거롭게 많은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자신들의 호적제도를 따르는 것은 이 호적명령이 로마의 명령으로 행해지는 것이지만 자신들의 독자적(獨自的)인 방법과 의사에 의해 행해지는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며 또 최소한의 민족적 자존심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한편 모든 사실들을 자세히 미루어 살펴본(1:1-4) 누가가 실제로 시행되지 않았던 인구 조사를 강조하여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네베 데 카이 요세프 아포 테스 갈릴라이아스 에크 폴레오스 나자렏 에이스 텐 유다이안 에이스 폴린 다윋 헤티스 칼레이타이 베들레엠 디아 토 에이나이 아우톤 엨스 오이투 카이 파트리아스 다윋
개역개정,4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새번역,4 요셉은 다윗 가문의 자손이므로,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에 있는 베들레헴이라는 다윗의 동네로,
우리말성경,4 요셉도 갈릴리 나사렛 마을을 떠나 다윗의 마을인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올라갔습니다. 요셉은 다윗 가문의 직계 혈통이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4 요셉도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고을을 떠나 유다 지방, 베들레헴이라고 불리는 다윗 고을로 올라갔다. 그가 다윗 집안의 자손이었기 때문이다.
영어NIV,4 So Joseph also went up from the town of Nazareth in Galilee to Judea, to Bethlehem the town of David, because he belonged to the house and line of David.
영어NASB,4 Joseph also went up from Galilee, from the city of Nazareth, to Judea, to the city of David which is called Bethlehem, because he was of the house and family of David,
영어MSG,4 So Joseph went from the Galilean town of Nazareth up to Bethlehem in Judah, David’s town, for the census. As a descendant of David, he had to go there.
영어NRSV,4 Joseph also went from the town of Nazareth in Galilee to Judea, to the city of David called Bethlehem, because he was descended from the house and family of David.
헬라어신약Stephanos,4 ανεβη δε και ιωσηφ απο της γαλιλαιας εκ πολεως ναζαρετ εις την ιουδαιαν εις πολιν δαβιδ ητις καλειται βηθλεεμ δια το ειναι αυτον εξ οικου και πατριας δαβιδ
라틴어Vulgate,4 ascendit autem et Ioseph a Galilaea de civitate Nazareth in Iudaeam civitatem David quae vocatur Bethleem eo quod esset de domo et familia David
히브리어Modern,4 ויעל גם יוסף מן הגליל מעיר נצרת אל יהודה לעיר דוד הנקראה בית לחם כי היה מבית דוד וממשפחתו׃
성 경: [눅2:4]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다윗의 집 족속…다윗의 동네로 – ‘집’은 단순한 문자적 의미보다는 좀 더 포괄적인 의미를 나타내어 ‘민족’, ‘족속’, ‘나라’ 등의 의미를 내포하며, ‘족속’은 문자 그대로의 뜻을 나타내나 이 곳에서는 둘이 서로 동의어로 사용된 것 같다. 평행본문 마 1:6, 16에서도 요셉이 다윗의 후손임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거니와 본절에서 다윗의 집 혹은 다윗의 동네라는 말이 거듭 언급되는 것은, 예수께서 육신상으로 다윗의 후손임을 강조함과 아울러 다윗 왕가의 후손이자 만왕의 왕으로 오실 예수께서 일개초라한 시골민의 가정에서 태어남을 부각시키려는 의도를 내포한다. 삼상 20:6에서 베들레헴은 ‘다윗 성’이라 불리운다. 다윗은 약 천년전 이곳에서 태어났고, 그가 양떼를 돌보던(삼상 17:15) 곳도 이 마을 근처의 언덕이었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으로부터 약 7.2Km 떨어졌고 나사렛에서는 약 144Km 떰어진 곳이며 그것의 옛 이름은 에브라다이고 라헬이 장사된 곳이기도 하다(창 35:19). 이 마을 이름의 뜻은 ‘떡집’이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곳이 다윗이 자라난 곳이고 미 5:2에 나타난 대로 메시야가 출생한 곳이라는데 있다. 따라서 이 이야기를 읽은 사람들은 태어난 아기가 다윗성에서 난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아포그랖사스다이 쉰 마리암 테 엠네스튜메네 아우토 우세 엥퀴오
개역개정,5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새번역,5 자기의 약혼자인 마리아와 함께 등록하러 올라갔다. 그 때에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는데,
우리말성경,5 그는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을 등록하러 그곳에 갔습니다. 그때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5 그는 자기와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 등록을 하러 갔는데, 마리아는 임신 중이었다.
영어NIV,5 He went there to register with Mary, who was pledged to be married to him and was expecting a child.
영어NASB,5 in order to register along with Mary, who was engaged to him, and was with child.
영어MSG,5 He went with Mary, his fianc?, who was pregnant.
영어NRSV,5 He went to be registered with Mary, to whom he was engaged and who was expecting a child.
헬라어신약Stephanos,5 απογραψασθαι συν μαριαμ τη μεμνηστευμενη αυτω γυναικι ουση εγκυω
라틴어Vulgate,5 ut profiteretur cum Maria desponsata sibi uxore praegnate
히브리어Modern,5 להתפקד עם מרים המארשה לו והיא הרה׃
성 경: [눅2:5]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그 정혼한 마리아와 함께 – 누가는 요셉이 어느 시기에 베들레헴을 향해서 출발했으며, 또한 그가 왜 마리아를 동반하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는다. 추측컨대 아마 마리아의 고향에서 마리아에 대한 그릇된 소문이 퍼지고 있었을지도 모르며 그 소문으로 인해서 마리아는 정신적으로 압박을 받았을 것이므로 요셉은 인구 조사를 기회로 마리아를 데리고 고향을 떠났을 가능성도 있다. 요셉은 이미 그녀를 아내로 맞이했다(마 1:24). 그러나 그들이 성령으로 잉태한 아이를 낳을 때 까지는 분명히 약혼 관계에만 머물러 있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 ‘정혼’이라는 말을 유대적 배경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유대적 개념에서 ‘정혼’은 결혼을 의미하고 절차상으로 신부를 신랑집으로 데려오는 일만 남은 것이다. 혼인서약은 대체로 정혼에 행해졌으며 이 정혼은 항상 공식적이었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은 후에는 신랑이 그의 신부를 데려가는 일에 있어서 어느 누구의 제지도 받지 않았다. 한편 요셉이 나사렛에서 베들레헴까지 여행하는 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해산이 임박한 마리아가 그 장거리(약 144Km, 요단을 우회하여 돌아가는 길)를 여행한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이것은 산모와 태아에 치명적인 위험을 줄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당시 로마법에 의하면 여자도 호적해야할 의무가 있었지만 자신이 직접 고향에 가서 호적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함께 동행하는 것은 세인(世人)의 비난을 피하고자 한 요셉의 배려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도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되어진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를 자신의 뜻대로 운행하는 주관자이시기 때문이다(시 136:8-26).
에게네토 데 엔 토 에이나이 아우투스 에케이 에플레스데산 하이 헤메라이 투 테케인 아우텐
개역개정,6 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새번역,6 그들이 거기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되었다.
우리말성경,6 그들이 그곳에 머무르는 동안 해산할 때가 돼
가톨릭성경,6 그들이 거기에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
영어NIV,6 While they were there, the time came for the baby to be born,
영어NASB,6 While they were there, the days were completed for her to give birth.
영어MSG,6 While they were there, the time came for her to give birth.
영어NRSV,6 While they were there, the time came for her to deliver her child.
헬라어신약Stephanos,6 εγενετο δε εν τω ειναι αυτους εκει επλησθησαν αι ημεραι του τεκειν αυτην
라틴어Vulgate,6 factum est autem cum essent ibi impleti sunt dies ut pareret
히브리어Modern,6 ויהי בהיותם שם וימלאו ימיה ללדת׃
성 경: [눅2:6]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그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 이 표현은 단순히 임신과 출산 사이에 일정한 기간이 지나야만 아이가 태어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도 무방하다. 임신 자체는 비록 기적적인 방법으로 이루어졌지만 태중에서 아기가 자라나는 것은 일반적인 과정에 의했던 것이다. 이는 예수께서 우리와 똑같은 성정(性情)을 가지고 똑같은 성장 과정을 거치며 모든 인류를 대속하실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는 우리와 똑같은 출생과 성장과정을 거쳤기에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다(히 4:15). 한편 이 구절에서 ‘해산할 날’이 현재대로 12월 25일인지는밝히고 있지 않다. 그러나 기독교회에서는 성탄절을 전승에 따라 보통 겨울로 잡는다. 이것이 3세기부터 문제시되어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5월 20일을 제안했다. 12월25일을 성탄일로 지킨 것은 336년부터였다. 서방에서 이날을 택한 것은 로마신인 ‘정의의 태양'(Sol Invictus) 탄생일에 대치한 것이나 동방 교회에서는 주현제 즉 동방의 현자들이 도착했다고 하는 날(Epiphania manifestation, 1월 6일)에 예수의 수세를 기념하다가 4세기부터는 예수의 탄생도 연결시켰다. 그리고 5세기 중엽부터는 동방 교회도 거의 12월 25일을 성탄일로 지켰으나 예루살렘 교회는 549년까지도 1월 6일을 크리스마스날로 지킨다.
카이 에테켄 톤 휘온 아우테스 톤 프로토토콘 카이 에스파르가노센 아우톤 카이 아네클리넨 아우톤 엔 파트네 디오티 우크 엔 아우토이스 토포스 엔 토 카탈뤼마티
개역개정,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새번역,7 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아서,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눕혀 두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방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말성경,7 마리아는 첫아들을 낳고는 아기를 천으로 싸서 구유에 눕혔습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빈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7 첫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
영어NIV,7 and she gave birth to her firstborn, a son. She wrapped him in cloths and place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room for them in the inn.
영어NASB,7 And she gave birth to her first-born son; and she wrapped Him in cloths, and lai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room for them in the inn.
영어MSG,7 She gave birth to a son, her firstborn. She wrapped him in a blanket and lai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room in the hostel.
영어NRSV,7 And she gave birth to her firstborn son and wrapped him in bands of cloth, and lai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place for them in the inn.
헬라어신약Stephanos,7 και ετεκεν τον υιον αυτης τον πρωτοτοκον και εσπαργανωσεν αυτον και ανεκλινεν αυτον εν τη φατνη διοτι ουκ ην αυτοις τοπος εν τω καταλυματι
라틴어Vulgate,7 et peperit filium suum primogenitum et pannis eum involvit et reclinavit eum in praesepio quia non erat eis locus in diversorio
히브리어Modern,7 ותלד את בנה הבכור ותחתלהו ותשכיבהו באבוס כי לא היה להם מקום במלון׃
성 경: [눅2:7]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탄생]
맏아들 – ‘외아들’이 아닌 ‘맏아들’이라는 표현은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뒤 계속해서 자녀들을 낳았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에 계속해서 동정을 지키며 자녀를 낳지 않았다는 주장은 근거없는 이야기며 이는 마리아에 대한 지나친 의미부여와 경외심에서 나온 이야기라 하겠다. 그리고 예수의 여러 형제와 여동생들에 대한 이야기는 신약성경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8:19, 20;마 12:46, 47;13:55, 56;막 3:31, 32;요 2:12;7:3, 5, 10;행 1:14).
사관(舍館)(*, 카탈뤼마) – 이 단어는 흔히 ‘여관'(inn)이라고 번역되었다. 이 단어는 최후의 만찬 때에 사용된(22:11) ‘객실'(guest room)을 의미하기도 하는데 22:12에는 그 객실이 ‘다락방’으로 언급되었다. 또한 이 단어는 군인들의 숙소나 여관을 포함하여 숙박소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강도 만난 사람을 데려갔던 ‘판도케이온'(*, ‘주막’, 헬라어에서 대체로 여관을 언급할 때 사용되는 단어)과는 다르다(10:34). 그런데 마리아가 해산할 날이 다가왔을 때 그 보잘 것없는 가족에게 허락되었던 장소는 가축우리 있다고 누가는 담담하게 표현한다. 그곳은 우리에게 전해 내려오는대로 곳간(cave)이었을 수도 있으며, 또는 집이나 사관의 일부분이었을 수도 있다.
구유(*, 파트네) – 신약에서 이 ‘파트네’는 누가복음에서만 4회 나온다(7, 12, 16절;13:15). 이 주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 메시야이신 예수께서 비천한 신분으로 보잘것없이 너무나도 초라하게 이 세상에 오셨음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구유는 세상 구속주의 비천한 탄생을 당시 세계의 주관자인 아구스도의 영광과 대조시키며(1, 11, 14절), 아무데도 머리둘 곳이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자 인자이신 예수의 겸손과 고난을 상징한다(9:58). 어쨌든 그 당시에 사용되었던 구유는 갓난아이를 누이기에는 안성 맞춤이었다. 그리고 마굿간밖에 내어 줄 수 없었던 여관 주인은 동정심이 전혀 없어서 그러했다고 보이지 않으며 누가 역시 그러한 각도에서 기술하고 있는 것 같다(H. Hengel, TDNT. , 49-55).
카이 포이메네스 에산 엔 테 코라 테 아우테 아그라울룬테스 카이 퓔라쏜테스 퓔라카스 테스 뉰토스 에피 텐 포임넨 아우톤
개역개정,8 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새번역,8 그 지역에서 목자들이 밤에 들에서 지내며 그들의 양 떼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말성경,8 한편 목자들은 바로 그 지역 들판에서 살며 밤에 양 떼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8 그 고장에는 들에 살면서 밤에도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 있었다.
영어NIV,8 And there were shepherds living out in the fields nearby, keeping watch over their flocks at night.
영어NASB,8 In the same region there were some shepherds staying out in the fields and keeping watch over their flock by night.
영어MSG,8 There were sheepherders camping in the neighborhood. They had set night watches over their sheep.
영어NRSV,8 In that region there were shepherds living in the fields, keeping watch over their flock by night.
헬라어신약Stephanos,8 και ποιμενες ησαν εν τη χωρα τη αυτη αγραυλουντες και φυλασσοντες φυλακας της νυκτος επι την ποιμνην αυτων
라틴어Vulgate,8 et pastores erant in regione eadem vigilantes et custodientes vigilias noctis supra gregem suum
히브리어Modern,8 ורעים היו בארץ ההיא לנים בשדה ושמרים את משמרות הלילה בעדרם׃
성 경: [눅2:8]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천사들의 찬송]
목자들이 – 당시 유대 사회의 여러 가지 직업들 중에서 목자라는 직업은 아주 천시되었다. 일반 사람들은 목자들을 믿을 수 없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목자들이 하는일이란 유대인의 규례(規例)에 의하면 부정한 일로 간주되었다. 이 이야기를 살펴볼 때 명백한것은 복음이 맨 먼저 그 당시에 사회적으로 천대를 받던 사람들에게 전해졌다는 사실이다. 누가는 그의 복음서에서 이 사실을 여러 번에 걸쳐 강조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는 예수께서 양들을 위해 목숨마져 아끼지 않는 선한 목자처럼 인류를 위해 당신의 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이심을(마 20:18;요 1:29) 넌지시 암시한다. 한편, 이점과 관련하여 우리는 여호와께서 나단을 통하여 다윗에게 언약하는 내용(삼하 7:8)을 상기해볼 수 있다. 그 내용 중에는 여호와께서 다윗을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서 취하여 메시야의 선조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이 나온다. 그리고 신구약에서 목자는 하나님 자신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는 자들을 상징적으로 가리킨다(시 23:1;사 40:11;렘 23:1-4;히 13:20;벧전 2:25;5:2).
밤에…지키더니 – ‘지키더니’에 해당하는 ‘퓔라쏜테스’는 ‘파수하다’, ‘보호하다’의 뜻인 ‘퓔라쏘'(*)의 복수 현재능동태형이다. 그리고 ‘밤에’에 해당하는 ‘테스뉴토스’는 ‘밤 새워’란 뜻을 내포한다. 따라서 이 귀절은 밖에서 여러명이 교대로 밤을 새워 도둑이나 다른 들짐승들로부터 양떼를 지키며 보호하는 일련의 행동을 묘사한다. 팔레스틴 지방에서 목자들은 4월부터 11월까지 이런 식으로 양떼를 밖에서 방목(放牧)하였으며 겨울철에도 날씨가 춥지 않을 때에는 종종 그렇게했다. 한편 본문상으로는 예수가 어느 철에 태어났는지에 관해서 아무런 언급이 없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께서 어느 철에 태어나셨나 하는 점보다는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사실 그 자체이다.
카이 앙겔로스 퀴리우 에페스테 아우토이스 카이 돜사 퀴리우 페리엘람프센 아우투스 카이 에포베데산 포본 메간
개역개정,9 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새번역,9 그런데 주님의 한 천사가 그들에게 나타나고, 주님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니,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우리말성경,9 주의 천사가 그들 앞에 나타났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환하게 둘러 비춰서 그들은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가톨릭성경,9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그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 그들은 몹시 두려워하였다.
영어NIV,9 An angel of the Lord appeared to them, and the glory of the Lord shone around them, and they were terrified.
영어NASB,9 And an angel of the Lord suddenly stood before them, and the glory of the Lord shone around them; and they were terribly frightened.
영어MSG,9 Suddenly, God’s angel stood among them and God’s glory blazed around them. They were terrified.
영어NRSV,9 Then an angel of the Lord stood before them, and the glory of the Lord shone around them, and they were terrified.
헬라어신약Stephanos,9 και ιδου αγγελος κυριου επεστη αυτοις και δοξα κυριου περιελαμψεν αυτους και εφοβηθησαν φοβον μεγαν
라틴어Vulgate,9 et ecce angelus Domini stetit iuxta illos et claritas Dei circumfulsit illos et timuerunt timore magno
히브리어Modern,9 והנה מלאך יהוה נצב עליהם וכבוד יהוה הופיע עליהם מסביב וייראו יראה גדולה׃
성 경: [눅2:9]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천사들의 찬송]
주의 영광 – ‘영광'(*, 돝사)은 영원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존재양식 중 하나이며 그분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 표현이기도 하다. 또한 ‘독사’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묘사하는 표현 속에서도 흔히 등장한다(9절;9:31, 32;행 22:11;계 15:8).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영광에 의해 다시 살아나셨으며(롬 6:4) 영광 속으로 올리워 지셨고(딤전 3:16) 지금도 영광의 우편에 계신다(행 7:55). 또한 영광이 하나님께 돌려지듯이 그에게도 돌려진다(2:14;히 13:21). 따라서 그는 영광의 주님이시다(고전 2:8;약 2:1). 나아가 우리의 종말론적 소망(사 40:5)은 위대하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딛 2:13). 그런데 이러한 것들은 대부분이 부활하신 그리스도에 대한 언급들이나 본 구절에서 그의 출생시에 영광이 드러난 것은 그가 하늘로부터 왔음을 진작부터 말해주는 것이며 요한복음에서도 또한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언급하고 있다(요 1:14;2:11;11:40). 그리스도께서 영광에 들어가는 것은 십자가를 통해서이다(요 13:31).
두루 비추매(*, 페리엘람프센) – 이 단어는 ‘페리'(*, ‘주위에’)와 ‘람포'(*, ‘비취다’)의 합성어로서 ‘빛에 완전히 쌓인 상태’를 뜻한다. 때때로 하나님의 영광은 찬란한 빛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이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으로 유대 민족들 가운데서는 ‘세키나’로서 알려져 있다. 이는 매우 희고 밝게 빛나는 구름의 형태를 띠고 나타나는 것으로 구약성경의 여러 곳에서 언급되고 있다(출 24:16;왕상 8:10;사 6:1-3;행 7:55).
카이 에이펜 아우토이스 호 앙겔로스 메 포베이스데 이두 가르 유앙겔리조마이 휘민 카란 메갈렌 헤티스 에스타이 판티 토 라오
개역개정,10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새번역,10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여 준다.
우리말성경,10 천사가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아라. 내가 모든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알려 준다.
가톨릭성경,10 그러자 천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영어NIV,10 But the angel said to them, “Do not be afraid. I bring you good news of great joy that will be for all the people.
영어NASB,10 But the angel said to them, ” Do not be afraid; for behold, I bring you good news of great joy which will be for all the people;
영어MSG,10 The angel said, “Don’t be afraid. I’m here to announce a great and joyful event that is meant for everybody, worldwide:
영어NRSV,10 But the angel said to them, “Do not be afraid; for see–I am bringing you good news of great joy for all the people:
헬라어신약Stephanos,10 και ειπεν αυτοις ο αγγελος μη φοβεισθε ιδου γαρ ευαγγελιζομαι υμιν χαραν μεγαλην ητις εσται παντι τω λαω
라틴어Vulgate,10 et dixit illis angelus nolite timere ecce enim evangelizo vobis gaudium magnum quod erit omni populo
히브리어Modern,10 ויאמר אליהם המלאך אל תיראו כי הנני מבשר אתכם שמחה גדולה אשר תהיה לכל העם׃
성 경: [눅2:10]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천사들의 찬송]
온 백성 – 이 말이 가리키는 대상은 이스라엘 백성이다. 그러나 천사를 통해 전달된 복음의 메시지는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민족적 울타리를 넘어 세계 만민에게 개방된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유대 백성에게 복음의 기쁜 소식이 먼저 전달된 것은 그들을 통해 온인류에게 전해지게끔 하고자 함이었다. 이러한 소식은 이 복음의 메시지를 접할 대상이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14절)과 ‘이방'(32절)에로 확대(擴大)된다는 점을 통해서도 잘 나타난다.
좋은 소식을…전하노라(*, 유앙겔리조마이) – 이 단어는 ‘기쁜 소식을 전파하다’의 뜻이며 히브리어로는 ‘바사르'(*)에 해당한다. 이 히브리어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다’는 뜻을 나타냄은 물론이나 승리의 기쁜 소식을 전한다는 의미로도 자주 사용된다(삼하 4:10;왕상 1:42). 이 용어는 특히 사 40장 이하에서 의미심장하게 사용되었으니 여기서 사자는 시온에 이르러 구원의 시대를 시작하시는 하나님의 전세계적인 승리를 선포한다(사 40:9; 41:27;52:7). 한편 본문에서의 ‘좋은 소식’ 이란 곧 그리스도의 탄생 소식을 가리킨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사실 자체가 기쁜 소식이며, 그리스도의 전 생애는 곧 복음이라 할수 있었다.
호티 에텤데 휘민 세메론 소테르 호스 에스틴 크리스토스 퀴리오스 엔 폴레이 다윋
개역개정,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새번역,11 오늘 다윗의 동네에서 너희에게 구주가 나셨으니, 그는 곧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 ㉠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다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함
우리말성경,11 오늘 구주이신 주 그리스도가 다윗의 동네에서 태어나셨다.
가톨릭성경,11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영어NIV,11 Today in the town of David a Savior has been born to you; he is Christ the Lord.
영어NASB,11 for today in the city of David there has been born for you a Savior, who is Christ the Lord.
영어MSG,11 A Savior has just been born in David’s town, a Savior who is Messiah and Master.
영어NRSV,11 to you is born this day in the city of David a Savior, who is the Messiah, the Lord.
헬라어신약Stephanos,11 οτι ετεχθη υμιν σημερον σωτηρ ος εστιν χριστος κυριος εν πολει δαβιδ
라틴어Vulgate,11 quia natus est vobis hodie salvator qui est Christus Dominus in civitate David
히브리어Modern,11 כי היום ילד לכם בעיר דוד מושיע אשר הוא המשיח האדון׃
성 경: [눅2:11]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천사들의 찬송]
다윗의 동네 – 베들레헴(4절 주석 참조). 메시야는 다윗의 동네 곧 베들레헴에서 탄생하리라 예언되었다. 여기서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라고 간접적으로 표현한 것은 메시야의 오심과 관련된 모든 약속들을 기억나게하고 그와 관련된 예언의 성취를 암시하기 위함이다.
구주(*, 소테르) – 헬라어 ‘소테르’는 신약 성경에서 드물게 나타나며 그것도 누가와 바울에 의해서만 주로 사용된 표현이다(행 5:31;엡 5:23;딤후 1:10). 이는 하나님을 구원자로 표현하는 것과 맥을 같이하는 바(1:47;삼하 22:3;시 49:26), 예수께서 죄악에 찌들은 세상과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분임을 뜻한다.
그리스도 주 – ‘그리스도’는 마 1:1 주석에서 설명된 바처럼 인류 구속의 대사명과 관련되는 주님의 직능적 명칭이며, ‘주'(헬, 퀴리오스)는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한다. 예수는 영원전부터 그리스도와 주로 예정되었으며(엡 1:4;3:11;골 4:3), 본체상으로는 영광과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하나님의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육신하셨으며,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로서 자기 백성들을 위한 왕과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신 것이다.
카이 투토 휘민 토 세메이온 휴레세테 브레포스 에스파르가노메논 카이 케이메논 엔 파트네
개역개정,12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새번역,12 너희는 한 갓난아기가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것을 볼 터인데,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표징이다.”
우리말성경,12 너희가 천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볼 것인데 그것이 너희에게 표적이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12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영어NIV,12 This will be a sign to you: You will find a baby wrapped in cloths and lying in a manger.”
영어NASB,12 “This will be a sign for you: you will find a baby wrapped in cloths and lying in a manger.”
영어MSG,12 This is what you’re to look for: a baby wrapped in a blanket and lying in a manger.”
영어NRSV,12 This will be a sign for you: you will find a child wrapped in bands of cloth and lying in a manger.”
헬라어신약Stephanos,12 και τουτο υμιν το σημειον ευρησετε βρεφος εσπαργανωμενον κειμενον εν τη φατνη
라틴어Vulgate,12 et hoc vobis signum invenietis infantem pannis involutum et positum in praesepio
히브리어Modern,12 וזה לכם האות תמצאון ילד מחתל ומנח באבוס׃
성 경: [눅2:12]
주제1: [8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천사들의 찬송]
강보에 싸여…표적이니라 – 아이를 낳으면 어머니는 긴 옷감으로 아기를 포근히 감싸준다. 그렇게 함으로써 새로 태어난 아기를 따뜻하게 하고 병으로부터 보호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아기예수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놓여있다는 것은 특별한 표적이라고 언급된다. 그것은 다음 세가지 면에서 표적이 되었다. (1) 천사가 목자들에게 예언한 시기의 장소에서 한 아기가 태어났다. (2) 그들에게 전달된 기쁜 소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3) 기름부음 받은 자 곧 그리스도로서의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기위해 지극히 비천한 자리에까지 낮아지셨다. 한편 겔 16:1-5에는 예루살렘이 이방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불쌍한 아기로 묘사되었거니와, 예수는 이와 같은 가련한 상태에 놓인 이스라엘과 나아가 온 인류를 구원하고 돌보시기 위해 스스로 비천한 자리(구유)에 누이셨던 것이다.
카이 엨사이프네스 에게네토 쉰 토 앙겔로 플레도스 스트라티아스 우라니우 아이눈톤 톤 데온 카이 레곤톤
개역개정,13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새번역,13 갑자기 그 천사와 더불어 많은 하늘 군대가 나타나서,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우리말성경,13 갑자기 그 천사와 함께 하늘의 군대가 큰 무리를 이루며 나타나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13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영어NIV,13 Suddenly a great company of the heavenly host appeared with the angel, praising God and saying,
영어NASB,13 And suddenly there appeared with the angel a multitude of the heavenly host praising God and saying,
영어MSG,13 At once the angel was joined by a huge angelic choir singing God’s praises:
영어NRSV,13 And suddenly there was with the angel a multitude of the heavenly host, praising God and saying,
헬라어신약Stephanos,13 και εξαιφνης εγενετο συν τω αγγελω πληθος στρατιας ουρανιου αινουντων τον θεον και λεγοντων
라틴어Vulgate,13 et subito facta est cum angelo multitudo militiae caelestis laudantium Deum et dicentium
히브리어Modern,13 ויהי פתאם אצל המלאך המון צבא השמים והם משבחים את האלהים ואמרים׃
성 경: [눅2:13]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천사들의 찬송]
허다한 천군이…찬송하여 – 두 세사람의 증거로도 어떤 사실의 진정성을 입증할 수 있었거니와(마 18:16) 여기서는 수많은 천군이 한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아들을 증거하고 있다. ‘천군’에 해당하는 ‘스트라티아'(*)는 구약 성경에서 종종 천체(henvenly bodies)를 가리키나(느 9:6), 여기서는 일군(一群)의 천사들을 가리킨다(시 103:21).
돜사 엔 휲시스토이스 데오 카이 에피 게스 에이레네 엔 안드로포이스 유도키아스
개역개정,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새번역,14 “더없이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주님께서 좋아하시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우리말성경,14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의 은총을 입는 사람들에게 평화로다.”
가톨릭성경,14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
영어NIV,14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to men on whom his favor rests.”
영어NASB,14 “Glory to God in the highest, And on earth peace among men with whom He is pleased.”
영어MSG,14 Glory to God in the heavenly heights, Peace to all men and women on earth who please him.
영어NRSV,14 “Glory to God in the highest heaven, and on earth peace among those whom he favors!”
헬라어신약Stephanos,14 δοξα εν υψιστοις θεω και επι γης ειρηνη εν ανθρωποις ευδοκια
라틴어Vulgate,14 gloria in altissimis Deo et in terra pax in hominibus bonae voluntatis
히브리어Modern,14 כבוד במרומים לאלהים ובארץ שלום בבני אדם רצונו׃
성 경: [눅2:14]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천사들의 찬송]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 이 이야기에서 절정을 이루는 내용이다. 그리스도의 등장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이유는, (1) 하나님의 영윈하신 신성과 영광이 그리스도 안에 충만히 거하고 또한 그를 통해 확연히 나타나기 때문이다(요 1:14). 이런 맥락에서 그리스도를 본 자는 곧 하나님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요 14:9). (2)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이 찬양과 경배로써 하나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릴 것이기 때문이다(고후 1:20). (3) 그리고 하나님이 그 영원하신 섭리에 따라 인생과 세상 만물을 향해 이루고자하신 계획을 그리스도를 통해 완수하시게 되기 때문이다.
땅에서는…평화로다 – 그리스도의 오심이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인(and on earth peace to men on whom his favor rest, NIV) 것은, (1) 그리스도의 중재와 대속으로 인해 하나님과 사람들 간의 막혔던 장벽이 제거되고 화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엡 2:14). 그리스도를 모르는 자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으로서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놓여있으므로 늘 불화의 다툼의 수렁에서 허덕이지만, 하나님과의 근본적 화해를 이룬 사람은 세상이 알지 못하는 놀라운 평강을 선물로 소유하게 된다(요 14:27). (2) 그리스도의 역사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죄악이 제거되고 사람들간에 화해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다(엡 2:16-18). 여기 언급된 평화는 메시아의 도래와 관련된 총체적 축복과 구원을 지칭한다고도 볼 수 있다. 예수는 평강의 왕으로서(히 7:2), 당신의 공생애를 백성들의 평강을 위해 보내셨으며(7:50;8:48) 그 평강을 위한 사역은 십자가상에서 절정에 달했다.
카이 에게네토 호스 아펠돈 앞 아우톤 에이스 톤 우라논 호이 앙겔로이 호이 포이메네스 엘랄룬 프로스 알렐루스 디엘도멘 데 헤오스 베들레엠 카이 이도멘 토 레마 투토 토 게고노스 호 호 퀴리오스 에그노리센 헤민
개역개정,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새번역,15 천사들이 목자들에게서 떠나 하늘로 올라간 뒤에, 목자들이 서로 말하였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바, 일어난 그 일을 봅시다.”
우리말성경,15 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자 목자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 이 일이 정말 일어났는지 보자.”
가톨릭성경,15 천사들이 하늘로 떠나가자 목자들은 서로 말하였다. “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 주신 그 일,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봅시다.”
영어NIV,15 When the angels had left them and gone into heaven, the shepherds said to one another, “Let’s go to Bethlehem and see this thing that has happened, which the Lord has told us about.”
영어NASB,15 When the angels had gone away from them into heaven, the shepherds began saying to one another, “Let us go straight to Bethlehem then, and see this thing that has happened which the Lord has made known to us.”
영어MSG,15 As the angel choir withdrew into heaven, the sheepherders talked it over. “Let’s get over to Bethlehem as fast as we can and see for ourselves what God has revealed to us.”
영어NRSV,15 When the angels had left them and gone into heaven, the shepherds said to one another, “Let us go now to Bethlehem and see this thing that has taken place, which the Lord has made known to us.”
헬라어신약Stephanos,15 και εγενετο ως απηλθον απ αυτων εις τον ουρανον οι αγγελοι και οι ανθρωποι οι ποιμενες ειπον προς αλληλους διελθωμεν δη εως βηθλεεμ και ιδωμεν το ρημα τουτο το γεγονος ο ο κυριος εγνωρισεν ημιν
라틴어Vulgate,15 et factum est ut discesserunt ab eis angeli in caelum pastores loquebantur ad invicem transeamus usque Bethleem et videamus hoc verbum quod factum est quod fecit Dominus et ostendit nobis
히브리어Modern,15 ויהי כאשר עלו מעליהם המלאכים השמימה ויאמרו הרעים איש אל רעהו נעברה נא עד בית לחם ונראה המעשה הזה אשר הודיענו יהוה׃
성 경: [눅2:15]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목자들의 경배]
하늘로 올라가니 – 누가는 천사들이 단순히 사라졌다고 언급하지 않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말한다. 이는 공간적인 이동을 자세히 묘사한 누가의 독특한 표현이다(24:51;행 1:10). 물론 우리는 본절을 문자적인 의미로만 해석하여 수직 상승의 뜻으로 보기는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천사의 처소 곧 하늘 나라는 이 우주속의 그 어느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시공을 초월한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문은, 예수의 승천장면에 대한 묘사와 마찬가지로, 지각 가능 상태로부터 지각 초월 상태에로 변화되는 광경을 묘사한 것이라 하겠다.
이제(*, 데) – 강조를 위한 접두사로서 특히 명령형 문장과 더불어 사용되며 여기서는 긴급성을 강조한다.
카이 엘단 스퓨산테스 카이 아뉴란 텐 테 마리암 카이 톤 요세프 카이 토 브레포스 케이메논 엔 테 파트네
개역개정,16 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새번역,16 그리고 그들은 급히 달려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찾아냈다.
우리말성경,16 그래서 그들은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를 찾아냈습니다. 과연 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16 그리고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냈다.
영어NIV,16 So they hurried off and found Mary and Joseph, and the baby, who was lying in the manger.
영어NASB,16 So they came in a hurry and found their way to Mary and Joseph, and the baby as He lay in the manger.
영어MSG,16 They left, running, and found Mary and Joseph, and the baby lying in the manger.
영어NRSV,16 So they went with haste and found Mary and Joseph, and the child lying in the manger.
헬라어신약Stephanos,16 και ηλθον σπευσαντες και ανευρον την τε μαριαμ και τον ιωσηφ και το βρεφος κειμενον εν τη φατνη
라틴어Vulgate,16 et venerunt festinantes et invenerunt Mariam et Ioseph et infantem positum in praesepio
히브리어Modern,16 וימהרו לבוא וימצאו את מרים ואת יוסף ואת הילד שכב באבוס׃
성 경: [눅2:16]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목자들의 경배]
빨리 가서 – 마리아가 천사 가브리엘을 만난 후 엘리사벳을 찾아 나선 장면을 연상시킨다(1:39). 목자들은 자신들이 돌보던 양떼를 두고 마리아처럼 서둘러 찾아 나선다. 목자들이 양떼를 다른 동료 목자들에게 맡기고 갔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직접적인 보존에 맡겼는지 알 수가 없으나 아무튼 목자들은 즉각적(卽刻的)인 반응을 보여주고 아기 예수를 찾겠다는 일념으로 양떼를 뒤로했다. 이와같이 그리스도와의 만남에는 결단이 요구된다. 우리도 목자들과 같이 순수한 믿음과 겸손하고 완전한 섬김으로써 주를 찾을 때에 주께서는 우리의 친구가 되시고 인도자 되신다.
찾아서(*, 아뉴란) – 원어상으로 ‘끊임없이'(부지런히) 탐색하여 찾다’라는 뜻이다. 목자들이 아기 예수를 계속해서 찾아다녔으며, 그렇게 노력하여 찾던 끝에 정말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인 평강의 왕 아기 예수를 발견한 것을 말한다.
이돈테스 데 에그노리산 페리 투 레마토스 투 랄레덴토스 아우토이스 페리 투 파이디우 투투
개역개정,17 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새번역,17 그들은 이것을 보고 나서, 이 아기에 관하여 자기들이 들은 말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었다.
우리말성경,17 그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이에 관해 들은 말을 알려 주었고
가톨릭성경,17 목자들은 아기를 보고 나서, 그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알려 주었다.
영어NIV,17 When they had seen him, they spread the word concerning what had been told them about this child,
영어NASB,17 When they had seen this, they made known the statement which had been told them about this Child.
영어MSG,17 Seeing was believing. They told everyone they met what the angels had said about this child.
영어NRSV,17 When they saw this, they made known what had been told them about this child;
헬라어신약Stephanos,17 ιδοντες δε διεγνωρισαν περι του ρηματος του λαληθεντος αυτοις περι του παιδιου τουτου
라틴어Vulgate,17 videntes autem cognoverunt de verbo quod dictum erat illis de puero hoc
히브리어Modern,17 ויראו וישמיעו את הדבר הנאמר אליהם על הגער הזה׃
성 경: [눅2:17]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목자들의 경배]
보고…말한 것을 고하니 – 당시 이스라엘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 처해 있었던 이 목자들이 최초로 복음을 전해들은 사람들이었고 또 최초로 복음을 전달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목자들이 그 아기에 관한 기쁜 소식을 누구에게 전해 주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마리아와 요셉과 아기 외에 다른 사람들이 함께 마굿간에 모여 있었으리라고 추측해 볼 수도 있고, 목자들이 이웃 사람들에게 가서 그 이야기를 전했다고도 짐작된다.
카이 판테스 호이 아쿠산테스 에다우마산 페리 톤 랄레덴톤 휘포 톤 포이메논 프로스 아우투스
개역개정,18 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새번역,18 이것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목자들이 그들에게 전해준 말을 이상히 여겼다.
우리말성경,18 그 말을 들은 모든 사람은 목자들이 한 말에 놀랐습니다.
가톨릭성경,18 그것을 들은 이들은 모두 목자들이 자기들에게 전한 말에 놀라워하였다.
영어NIV,18 and all who heard it were amazed at what the shepherds said to them.
영어NASB,18 And all who heard it wondered at the things which were told them by the shepherds.
영어MSG,18 All who heard the sheepherders were impressed.
영어NRSV,18 and all who heard it were amazed at what the shepherds told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8 και παντες οι ακουσαντες εθαυμασαν περι των λαληθεντων υπο των ποιμενων προς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18 et omnes qui audierunt mirati sunt et de his quae dicta erant a pastoribus ad ipsos
히브리어Modern,18 וכל השמעים תמהו על הדברים אשר דברו אליהם הרעים׃
성 경: [눅2:18]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목자들의 경배]
기이(奇異)히 여기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다우마조'(*)는 ‘이상히 여기다’, ‘놀라다’는 뜻 외에 ‘찬양하다’는 뜻도 내포한다. 즉 이 말은 초자연적인 혹은 신적인 사건과 접한 자의 외경스러운 감동을 시사한다. 누가는 메시아에 대하여 선포하는 말을 들었던 이들이 그 말을 기이하게 생각했다고 여러번 언급하고 있는데 본절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마리아와 요셉도 시므온이 예수께 대하여 하는 말을 듣고 기이하게 여겼으며(33절) 47절에 보면 성전에서 답변하는 어린 예수의 말을 들었던 모든 이들이 예수의 말을 기이하게 여겼다. 또한 나사렛의 회당에서 예수가 사 61장의 어떤 부분을 읽고 나서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곳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예수의 말을 기이하게 여겼다(4:22;8:25;9:43;11:14, 38;20:26;24:12). 이외에도 사람들이 위와 비슷한 반응을 보인 것을 설명해주는 여러가지 어휘가 사용되었다(4:15, 36;5:26). 사실 예수 안에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충만히 거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기이한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었다(롬 1:20).
헤 데 마리암 판타 쉬네테레이 타 레마타 타우타 쉼발루사 엔 테 카르디아 아우테스
개역개정,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새번역,19 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고이 간직하고, 마음 속에 곰곰이 되새겼다.
우리말성경,19 그러나 마리아만은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습니다.
가톨릭성경,19 그러나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
영어NIV,19 But Mary treasured up all these things and pondered them in her heart.
영어NASB,19 But Mary treasured all these things, pondering them in her heart.
영어MSG,19 Mary kept all these things to herself, holding them dear, deep within herself.
영어NRSV,19 But Mary treasured all these words and pondered them in her heart.
헬라어신약Stephanos,19 η δε μαριαμ παντα συνετηρει τα ρηματα ταυτα συμβαλλουσα εν τη καρδια αυτης
라틴어Vulgate,19 Maria autem conservabat omnia verba haec conferens in corde suo
히브리어Modern,19 ומרים שמרה את הדברים האלה ותחשבם בלבה׃
성 경: [눅2:19]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목자들의 경배]
지키어 생각하니라 – ‘지키어’에 해당하는 ‘쉬네테레이’는 원형 ‘쉰테레오'(*)의 미완료 시제로서 ‘보호하다’,(기억으로) ‘간직하다’의 뜻이며, ‘생각하니라’에 해당하는 ‘쉼발루사’는 원형 ‘쉼발로'(*)의 주격 분사 현재형으로 ‘숙고하다’, ‘생각하다’, ‘만나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여기서 마리아는 사건 전반을 기도하는 마음과 자세로 계속해서 생각하여 그 의미를 되새겼음을 알 수 있다. 예수 탄생을 전후하여 천사로부터 전해진 메시지들이나 처녀의 몸으로 잉태한 사실 등은 마리아로 하여금 아기 예수의 신분과 사명에 대해 거듭 상고해 보게끔 하였을 것임에 분명하다.
카이 휘페스트렢산 호이 포이메네스 옼사존테스 카이 아이눈테스 톤 데온 에피 파신 호이스 에쿠산 캉키 에이돈 카도스 엘랄레데 프로스 아우투스
개역개정,20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
새번역,20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본 모든 일이 자기들에게 일러주신 그대로임을 알고, 돌아가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를 찬미하였다.
우리말성경,20 목자들은 자기들이 보고 들은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찬양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들이 듣고 본 모든 일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20 목자들은 천사가 자기들에게 말한 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하여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
영어NIV,20 The shepherds returned, glorifying and praising God for all the things they had heard and seen, which were just as they had been told.
영어NASB,20 The shepherds went back, glorifying and praising God for all that they had heard and seen, just as had been told them.
영어MSG,20 The sheepherders returned and let loose, glorifying and praising God for everything they had heard and seen. It turned out exactly the way they’d been told!
영어NRSV,20 The shepherds returned, glorifying and praising God for all they had heard and seen, as it had been told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20 και επεστρεψαν οι ποιμενες δοξαζοντες και αινουντες τον θεον επι πασιν οις ηκουσαν και ειδον καθως ελαληθη προς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20 et reversi sunt pastores glorificantes et laudantes Deum in omnibus quae audierant et viderant sicut dictum est ad illos
히브리어Modern,20 וישובו הרעים מהללים ומשבחים את האלהים על כל אשר שמעו וראו כפי אשר נאמר אליהם׃
성 경: [눅2:20]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목자들의 경배]
목자가…찬송하며 돌아가니라 – ‘하나님께’라는 목적어를 받는 ‘영광을 돌리다'(*, 돝사조)라는 표현이 누가복음에 자주 쓰인다(5:25;7:16;13;17:15; 18:43;23:47). 그리고 본절에서와 같이 어떤 이야기가 찬양으로 끝맺는 것은 누가복음의 특징중 하나이다(24:53). 목자들은 그들이 천사들로부터 들은 바와 실제로 본 것이 똑같음을 알고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올린다. 사실 아기의 탄생 자체는 평범한 보통의 사건으로 보일 것이다. 왜냐하면 아기 예수는 그 비슷한 시간에 태어난 많은 아기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베들레헴의 말구유에 오신 아기 예수는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성육하신 하나님이신 것이다.
카이 호테 에플레스데산 헤메라이 옼토 투 페리테메인 아우톤 카이 에클레데 토 오노마 아우투 예수스 토 클레덴 휘포 투 앙겔루 프로 투 쉴렘프데나이 아우톤 엔 테 코일리아
개역개정,21 할례할 팔 일이 되매 그 이름을 예수라 하니 곧 잉태하기 전에 천사가 일컬은 바러라
새번역,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행할 때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수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준 이름이다.
우리말성경,21 8일째 되는 날 할례 할 때가 되자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대로 그 이름을 ‘예수’라 지었습니다.
가톨릭성경,21 여드레가 차서 아기에게 할례를 베풀게 되자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그것은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 준 이름이었다.
영어NIV,21 On the eighth day, when it was time to circumcise him, he was named Jesus, the name the angel had given him before he had been conceived.
영어NASB,21 And when eight days had passed, before His circumcision, His name was then called Jesus, the name given by the angel before He was conceived in the womb.
영어MSG,21 When the eighth day arrived, the day of circumcision, the child was named Jesus, the name given by the angel before he was conceived.
영어NRSV,21 After eight days had passed, it was time to circumcise the child; and he was called Jesus, the name given by the angel before he was conceived in the womb.
헬라어신약Stephanos,21 και οτε επλησθησαν ημεραι οκτω του περιτεμειν το παιδιον και εκληθη το ονομα αυτου ιησους το κληθεν υπο του αγγελου προ του συλληφθηναι αυτον εν τη κοιλια
라틴어Vulgate,21 et postquam consummati sunt dies octo ut circumcideretur vocatum est nomen eius Iesus quod vocatum est ab angelo priusquam in utero conciperetur
히브리어Modern,21 ויהי במלאת לנער שמנה ימים וימול ויקרא שמו ישוע כשם אשר קרא לו המלאך בטרם הרה בבטן׃
성 경: [눅2:21]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할례와 헌신례]
수태하기 전에 천사의 일컬은 바러라 – 성경에는 아기가 출생하기도 전에 이름이 먼저 지어진 예가 여러번 나온다. 이삭(창 17:19), 솔로몬(대상 22:9), 요시야(왕상 13:2, 왕하 22:1), 고레스(사 44:28-45:1), 세례요한(1:13,60-63), 예수(마 1:25)가 이러한 경우에 해당된다. 한편 예수라는 이름이 명명된것은 마리아나 요셉의 의도가 아니었다. 이것은 이미 아기 탄생 전에 천사가 지시한 바를 따른것 뿐이었다.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의 이름을 짓는 과정에서 그들의 의견을 전혀 가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천사를 통해서 명령하신 그대로 수행했다고 하는 것은 이 일이 처음부터 성령의 역사하심 가운데 진행되어온 일이라는것을 인정하며 앞으로의 일 역시 성령께서 진행시켜 나가실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카이 호테 에플레스데산 하이 헤메라이 투 카다리스무 아우톤 카타 톤 노몬 모위세오스 아네가곤 아우톤 에이스 히에로솔뤼마 파라스테사이 토 퀴리오
개역개정,22 모세의 법대로 정결예식의 날이 차매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새번역,22 모세의 법대로 그들이 정결하게 되는 날이 차서, 그들은 아기를 주님께 드리려고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우리말성경,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 의식을 치를 때가 되자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가톨릭성경,22 모세의 율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그들은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영어NIV,22 When the time of their purification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had been completed, Joseph and Mary took him to Jerusalem to present him to the Lord
영어NASB,22 And when the days for their purification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were completed, they brought Him up to Jerusalem to present Him to the Lord
영어MSG,22 Then when the days stipulated by Moses for purification were complete, they took him up to Jerusalem to offer him to God
영어NRSV,22 When the time came for their purification according to the law of Moses, they brought him up to Jerusalem to present him to the Lord
헬라어신약Stephanos,22 και οτε επλησθησαν αι ημεραι του καθαρισμου αυτων κατα τον νομον μωσεως ανηγαγον αυτον εις ιεροσολυμα παραστησαι τω κυριω
라틴어Vulgate,22 et postquam impleti sunt dies purgationis eius secundum legem Mosi tulerunt illum in Hierusalem ut sisterent eum Domino
히브리어Modern,22 וימלאו ימי טהרה לפי תורת משה ויעלהו לירושלים להעמידו לפני יהוה׃
성 경: [눅2:22]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할례와 헌신례]
결례(潔禮)의 날 – 유대의 모든 산모는 자녀를 낳은 후 율법에서 정한 기한이 지나면 제사장에게로 가서 규례대로 예물을 드려 속죄를 받아야 했다. 그 이유는 자녀를 해산한 산모는 부정하게 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율법에서는 부정하게 된 산모와 아이들을 위해서 정결케 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였다. 그래서 율법이 명시한대로 정결케 되는 기간이(남자 아이 40일, 여자 아이 80일) 찬(레12:1-5) 산모는 최종 정결 예식으로서 번제와 속죄제를 드려야만 했다. 여기서 번제는 출산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마음을 표하기 위하여 드렸고 속죄제는 출산에 따른 부정(不淨)을 제거하는 뜻에서 드렸다. 이때 각 예물은 번제로 양, 속죄제는 비둘기였으나 가난할 경우 번제로 양 대신 비둘기 둘로 대치할 수 있었다(레 12:1-8). 본문에서 누가는 어머니의 정결 예식과 아기를 바치는 행위를 함께 묘사하고 있다(Marshall). 여기서 아기 예수를 위해 제사장을 찾아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만, 결국 이 예수는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이시다(히 3:1). 이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분이 아니며 우리의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시되 죄는 없으신 분이시다.
카도스 게그랖타이 엔 노모 퀴리우 호티 판 아르센 디아노이곤 메트란 하기온 토 퀴리오 클레데세타이
개역개정,23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새번역,23 그것은 주님의 율법에 기록된 바 ㉡”어머니의 태를 처음 여는 사내아이마다, 주님의 거룩한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 한 대로 한 것이요, / ㉡출 13:2; 12
우리말성경,23 이것은 주의 율법에 “첫 번째 태어나는 모든 남자 아기는 하나님께 거룩한 사람으로 불릴 것이다”라고 기록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 출13:2;출13:12
가톨릭성경,23 주님의 율법에 “ 태를 열고 나온 사내아이는 모두 주님께 봉헌해야 한다.”고 기록된 대로 한 것이다.
영어NIV,23 (as it is written in the Law of the Lord, “Every firstborn male is to be consecrated to the Lord”),
영어NASB,23 (as it is written in the Law of the Lord, ” EVERY firstborn MALE THAT OPENS THE WOMB SHALL BE CALLED HOLY TO THE LORD”),
영어MSG,23 as commanded in God’s Law: “Every male who opens the womb shall be a holy offering to God,”
영어NRSV,23 (as it is written in the law of the Lord, “Every firstborn male shall be designated as holy to the Lord”),
헬라어신약Stephanos,23 καθως γεγραπται εν νομω κυριου οτι παν αρσεν διανοιγον μητραν αγιον τω κυριω κληθησεται
라틴어Vulgate,23 sicut scriptum est in lege Domini quia omne masculinum adaperiens vulvam sanctum Domino vocabitur
히브리어Modern,23 כאשר כתוב בתורת יהוה כל זכר פטר רחם יקרא קדש ליהוה׃
성 경: [눅2:23]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할례와 헌신례]
주의 율법에…아기를 주께 드리고 – 율법은 처음 난 짐승의 새끼를 여호와께 드리도록 규정하였다(출 13장;22:29;34:19;민 3:11-13;40-51;8:16-18;신 15:19).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첫 아기를 제물로 드리는 일을 대치시키기 위해 레위 지파를 성별하셨는데 이때 이스라엘 장자의 수가 레위인의 슷자의 비율에 맞지 않을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 수만큼, 즉 한 사람당 다섯 세겔씩을 속전으로 지불하도록 하셨다. 이러한 율법에 근거하여 예수께서도 장자, 곧 거룩한 자로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된다. 그러나 예수는 비록 인간의 몸을 입으셨긴 하지만 전혀 무죄하시다(히 4:15). 따라서 예수가 주께 바쳐진 것은 그가 자신을 중보자로서 주께 드림을 상징한다(딤전 2:5). 실로 예수의 생애 자체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짊어지기 위한 희생과 헌신의 연속이었다.
카이 투 두나이 뒤시안 카타 토 에이레메논 엔 토 노모 퀴리우 쥬고스 트뤼고논 에 뒤오 노쑤스 페리스테론
개역개정,24 또 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혹은 어린 집비둘기 둘로 제사하려 함이더라
새번역,24 또 주님의 율법에 이르신 바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드려야 한다” 한 대로, 희생제물을 드리기 위한 것이었다. / ㉢레 12:8
우리말성경,24 또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라고 한 주의 율법을 지켜 희생제물을 드리려는 것이었습니다. 레12:8
가톨릭성경,24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영어NIV,24 and to offer a sacrifice in keeping with what is said in the Law of the Lord: “a pair of doves or two young pigeons.”
영어NASB,24 and to offer a sacrifice according to what was said in the Law of the Lord, “A PAIR OF TURTLEDOVES OR TWO YOUNG PIGEONS.”
영어MSG,24 and also to sacrifice the “pair of doves or two young pigeons” prescribed in God’s Law.
영어NRSV,24 and they offered a sacrifice according to what is stated in the law of the Lord, “a pair of turtledoves or two young pigeons.”
헬라어신약Stephanos,24 και του δουναι θυσιαν κατα το ειρημενον εν νομω κυριου ζευγος τρυγονων η δυο νεοσσους περιστερων
라틴어Vulgate,24 et ut darent hostiam secundum quod dictum est in lege Domini par turturum aut duos pullos columbarum
히브리어Modern,24 ולתת קרבן כאמור בתורת יהוה שתי תרים או שני בני יונה׃
성 경: [눅2:24]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예수의 할례와 헌신례]
비둘기 한 쌍이나 혹 어린 반구(斑鳩)둘로 제사하려 – 누가는 계속해서 산모의 정결예식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반구는 산비둘기를 말한다. 이 구절은 예수께서 태어나셨던 가정환경과 그 사회적 형편을 단적으로 나타내 준다. 앞서 기술했듯이 레 12장에는 해산한 여인이 하나님께 드려야 할 예물을 ‘양 한마리와 비둘기 한마리’로 규정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율법에 따라 제물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과의 약속으로서 그 양(量)과 방법들이 엄격하게 법으로 정해져 있다. 그러나 극빈자의 경우는 정한 제물의 양대로 바치지 못하게 되고 그것으로 인해 종교적으로 갈등을 갖게 될 것이므로 그 양을 줄이는 것 역시 법으로 정하여 바치게 했다. “그 여인의 힘이 어린 양에 미치지 못하거든 산비둘기 둘이나 집비들기 새끼 둘을 가져다가 하나는 번제물로, 하나는 속죄 제물로 삼을 것이요 제사장은 그를 위하여 속할지니 그가 정결하리라(레 12:8). 이것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세심한 배려와 관심에서 이루어진 일들이기도 하지만 또 다른 의미에서는 부유한자나 가난한 자나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누구나가 하나님을 경배하여 그에게 예배를 드려야 함을 암시한다. 당시 비둘기의 가격은 어린 양의 약1/10정도에 해당하였다. 마리아와 요셉이 하나님의 율법을 신실하게 지키는 경건한 사람들이었음에 비추어볼 때 그들이 극빈층에 속하였던 것이 분명하다.
카이 이두 안드로포스 엔 엔 예루살렘 호 오노마 쉬메온 카이 호 안드로포스 후토스 디카이오스 카이 율라베스 프로스데코메노스 파라클레신 투 이스라엘 카이 프뉴마 엔 하기온 엪 아우톤
개역개정,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새번역,25 그런데 마침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므로, 이스라엘이 받을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고, 또 성령이 그에게 임하여 계셨다.
우리말성경,25 당시 예루살렘에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한 사람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로하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시므온에게 머물러 계셨습니다.
가톨릭성경,25 그런데 예루살렘에 시메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영어NIV,25 Now there was a man in Jerusalem called Simeon, who was righteous and devout. He was waiting for the consolation of Israel, and the Holy Spirit was upon him.
영어NASB,25 And there was a man in Jerusalem whose name was Simeon; and this man was righteous and devout, looking for the consolation of Israel; and the Holy Spirit was upon him.
영어MSG,25 In Jerusalem at the time, there was a man, Simeon by name, a good man, a man who lived in the prayerful expectancy of help for Israel. And the Holy Spirit was on him.
영어NRSV,25 Now there was a man in Jerusalem whose name was Simeon; this man was righteous and devout, looking forward to the consolation of Israel, and the Holy Spirit rested on him.
헬라어신약Stephanos,25 και ιδου ην ανθρωπος εν ιερουσαλημ ω ονομα συμεων και ο ανθρωπος ουτος δικαιος και ευλαβης προσδεχομενος παρακλησιν του ισραηλ και πνευμα αγιον ην επ αυτον
라틴어Vulgate,25 et ecce homo erat in Hierusalem cui nomen Symeon et homo iste iustus et timoratus expectans consolationem Israhel et Spiritus Sanctus erat in eo
히브리어Modern,25 והנה איש היה בירושלים ושמו שמעון והוא איש צדיק וחסיד מחכה לנחמת ישראל ורוח הקדש היה עליו׃
성 경: [눅2:25]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시므온 – 이러한 이름은 유대 사회에서는 매우 보편적이고 흔한 이름이었다. 그런데 혹자들은 이 구절의 시므온은 잘 알려진 유대랍비 힐렐의 아들이요 가말리엘의 아버지라고 주장하며 그가 A.D. 13년에 산헤드린의 회장이 되었다고 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막연한 추측일 뿐 정확한 자료나 확증이 없다. 어쨌든 시므온은 평생을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왔으며 더욱이 그는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살아왔다. 메시야가 바로 그의 위로의 근원인 것이다. 이는 우리들에게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며, 우리가 언제 재림하실지 알 수 없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위해 경건된 삶을 준비하여야 함을 보여 주고 있다(마 25:1-13).
의롭고 경건하여 – 1:5, 6에서 세례 요한의 부모 사가랴와 엘리스벱이 소개될 때처럼 의로음과 경건함이 강조되고 있다. ‘의롭고’에 해당하는 ‘디카이오스'(*)는 ‘공정한’, ‘정의로운’등의 뜻을 나타내며 하나님과 신정 사회(神政社會)에 대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따라서 ‘의로운’ 자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우선되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그리고 ‘경건하여’에 해당하는 ‘율라베스'(*)는 ‘경건한’, ‘독실한’ 등의 의미외에 ‘주의’, ‘신중함’ 혹은 ‘두려워하다’, ‘경계하다’ 등을 뜻하며, 율법의 요구를 면밀하고 세심하게 충족시키고자 행동거지를 주의하는 독실한 유대인들을 지칭하는 말로 잘 사용된다. 따라서 시므온이 얼마나 율법을 공경하며 준수했는가를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위로 –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때받는 위로를 가리킨다(사 40-55장). 말라기선지 이후 약 400년 동안 이스라엘에는 영감받은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는데, 시므온은 이러한 소위 오랜 침묵의 시대에 살면서도 메시야의 도래를 확신하며 끈기있게 기다리는 믿음을 소유한 자였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이다. 우리는 눈앞에 전개되는 타락과 불신의 흐름에 휩쓸려갈 것이 아니라 역사의 끝까지 투시(透視)하는 신령한 눈을 떠서 매일 매일을 하나님 앞에서 새롭게 결단하고 인내하는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카이 엔 아우토 케크레마티스메논 휘포 투 프뉴마토스 투 하기우 메 이데인 다나톤 프린 에 안 이데 톤 크리스톤 퀴리우
개역개정,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새번역,26 그는 주님께서 세우신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은 사람이었다. / ㉣또는 ‘메시아’. 그리스도는 그리스어이고, 메시아는 히브리어임. 둘다 ‘기름부음 받은 이’를 뜻함
우리말성경,26 그에게는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성령의 계시가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26 성령께서는 그에게 주님의 그리스도를 뵙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고 알려 주셨다.
영어NIV,26 It had been revealed to him by the Holy Spirit that he would not die before he had seen the Lord’s Christ.
영어NASB,26 And it had been revealed to him by the Holy Spirit that he would not see death before he had seen the Lord’s Christ.
영어MSG,26 The Holy Spirit had shown him that he would see the Messiah of God before he died.
영어NRSV,26 It had been revealed to him by the Holy Spirit that he would not see death before he had seen the Lord’s Messiah.
헬라어신약Stephanos,26 και ην αυτω κεχρηματισμενον υπο του πνευματος του αγιου μη ιδειν θανατον πριν η ιδη τον χριστον κυριου
라틴어Vulgate,26 et responsum acceperat ab Spiritu Sancto non visurum se mortem nisi prius videret Christum Domini
히브리어Modern,26 ולו נגלה ברוח הקדש כי לא יראה מות עד ראותו את משיח יהוה׃
성 경: [눅2:26]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 ‘지시를 받았더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케크레마티스메논'(*)은 ‘사건을 다루다’, ‘계시를 전달하다’ 등의 뜻을 나타낸다. 본 구절에서 이 단어는 계시에 의한 하나님의 가르침을 나타낸다. 메시야를 대망하며 그의 도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은 유대인들의 경건한 생활의 한 부분이었다. 시므온은 오랜 세월을 메시야의 도래를 위해 기도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계시의 전달자인 성령을 통해 의롭고 경건한 시므온에게 메시야께서 오실 것을 보리라는 계시를 허락하셨다.
카이 엘덴 엔 토 프뉴마티 에이스 토 히에론 카이 엔 토 에이사가게인 투스 고네이스 토 파이디온 예순 투 포이에사이 아우투스 카타 토 에이디스메논 투 노무 페리 아우투
개역개정,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새번역,27 그가 성령의 인도로 성전에 들어갔을 때에, 마침 아기의 부모가 율법이 정한 대로 행하고자 하여,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다.
우리말성경,27 시므온이 성령에 이끌려 성전 뜰 안으로 들어갈 때 아기의 부모가 율법의 규정대로 행하기 위해 아기 예수를 데리고 들어왔습니다.
가톨릭성경,27 그가 성령에 이끌려 성전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아기에 관한 율법의 관례를 준수하려고 부모가 아기 예수님을 데리고 들어오자,
영어NIV,27 Moved by the Spirit, he went into the temple courts. When the parents brought in the child Jesus to do for him what the custom of the Law required,
영어NASB,27 And he came in the Spirit into the temple; and when the parents brought in the child Jesus, to carry out for Him the custom of the Law,
영어MSG,27 Led by the Spirit, he entered the Temple. As the parents of the child Jesus brought him in to carry out the rituals of the Law,
영어NRSV,27 Guided by the Spirit, Simeon came into the temple; and when the parents brought in the child Jesus, to do for him what was customary under the law,
헬라어신약Stephanos,27 και ηλθεν εν τω πνευματι εις το ιερον και εν τω εισαγαγειν τους γονεις το παιδιον ιησουν του ποιησαι αυτους κατα το ειθισμενον του νομου περ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27 et venit in Spiritu in templum et cum inducerent puerum Iesum parentes eius ut facerent secundum consuetudinem legis pro eo
히브리어Modern,27 ויבא ברוח אל המקדש ויהי כאשר הביאו הוריו את הנער ישוע לעשות עליו כמשפט התורה׃
성 경: [눅2:27]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성령의 감동으로(*, 엔 토 프뉴마티) – 이 구절은 시므온이 계속 성령의 지배를 받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결국 시므온이 성건에 들어오게 된 것도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것이고 마리아 부처가 아기예수를 성전으로 데려올 때 그를 맞이하도록 시므온을 준비시킨 분도 바로 성령이셨다. 이처럼 성령의 역사는 주도면밀(周到綿密)하고 정확하다. 오랜 세월을 기다림으로 보낸 나이먹은 시므온은 이제 계시의 말씀이 완성되는 순간을 맞이한다.
부모 – 법적인 차원에서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의 부모였다.
카이 아우토스 에뎈사토 아우토 에이스 타스 앙칼라스 카이 율로게센 톤 데온 카이 에이펜
개역개정,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새번역,28 시므온이 아기를 자기 팔로 받아서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여 말하였다.
우리말성경,28 그러자 시므온이 아기를 팔에 안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28 그는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이렇게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영어NIV,28 Simeon took him in his arms and praised God, saying:
영어NASB,28 then he took Him into his arms, and blessed God, and said,
영어MSG,28 Simeon took him into his arms and blessed God:
영어NRSV,28 Simeon took him in his arms and praised God, saying,
헬라어신약Stephanos,28 και αυτος εδεξατο αυτο εις τας αγκαλας αυτου και ευλογησεν τον θεον και ειπεν
라틴어Vulgate,28 et ipse accepit eum in ulnas suas et benedixit Deum et dixit
히브리어Modern,28 ויקחהו על זרעותיו ויברך את האלהים ויאמר׃
성 경: [눅2:28]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찬송하여 – 아기 예수가 나타났을 때 시므온은 그를 알아보고 안아 하나님께 찬양드렸다. 시므온은 율법에 따라 결례와 번제와 속전을 드리러오는 많은 사람, 많은 아이 가운데(그 중에는 품위있고 고상해 보이는 부모들이 데리고 있는 아이들도 있었을 것이다) 초라하고 볼품없는 시골 출신의 요셉과 마리아가 데리고 있는 예수를 보자 곧 그가 메시야임을 알게되었다. 이는 오직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임에 분명하다. ‘찬송하여’에 해당하는 ‘율로게센'(*)은 ‘좋게 이야기 하다’, ‘축복하다'(bless, KJV) 등의 뜻을 나타낸다.
뉜 아폴뤼에이스 톤 둘론 수 데스포타 카타 토 레마 수 엔 에이레네
개역개정,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새번역,29 “주님, 이제 주님께서는 주님의 말씀을 따라, 이 종을 세상에서 평안히 떠나가게 해주십니다.
우리말성경,29 “다스리시는 주여, 이제 주께서는 주의 종이 평안히 가게 해 주십니다.
가톨릭성경,29 “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영어NIV,29 “Sovereign Lord, as you have promised, you now dismiss your servant in peace.
영어NASB,29 “Now Lord, You are releasing Your bond-servant to depart in peace, According to Your word;
영어MSG,29 God, you can now release your servant; release me in peace as you promised.
영어NRSV,29 “Master, now you are dismissing your servant in peace, according to your word;
헬라어신약Stephanos,29 νυν απολυεις τον δουλον σου δεσποτα κατα το ρημα σου εν ειρηνη
라틴어Vulgate,29 nunc dimittis servum tuum Domine secundum verbum tuum in pace
히브리어Modern,29 עתה תפטר את עבדך כדברך אדני בשלום׃
호티 에이돈 호이 옾달모이 무 투 소테리온 수
개역개정,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새번역,30 내 눈이 주님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우리말성경,30 제 두 눈으로 주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가톨릭성경,30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영어NIV,30 For my eyes have seen your salvation,
영어NASB,30 For my eyes have seen Your salvation,
영어MSG,30 With my own eyes I’ve seen your salvation;
영어NRSV,30 for my eyes have seen your salvation,
헬라어신약Stephanos,30 οτι ειδον οι οφθαλμοι μου το σωτηριον σου
라틴어Vulgate,30 quia viderunt oculi mei salutare tuum
히브리어Modern,30 כי ראו עיני את ישועתך׃
성 경: [눅2:30]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 시므온은 히브리적 표현법을 사용하여 자신이 메시야를 보았다고 말하지 않고 자신의 눈이 하나님의 구원을 보았다고 말한다. 이는 누가복음의 한 특징으로서 이미 나타난 바와 같이(1:69,71,77) 예수를 본다는 것은 예수 안에서 구원이 구체화된 것(embodied)을 보는 것이다. 따라서 시므온이 예수로 말미암아 구현될 인간구원의 역사를 예견하였다는 의미이다. 사실 예수 탄생 자체가 이미 인류 구원을 위한 위대한 사역의 첫 발걸음이기 때문에 그 사역은 벌써 성취된 것이나 다름없다. 결국 시므온은 구약시대 동안 계속해서 예언되었지만 아무도 보지 못했던 메시야를 맞이하는 구약시대를 마감하는 인물이요, 또 메시야를 맞이함으로 신약시대를 열도록 길을 열어주는 서언적(序言的)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아직 갓난아기의 모습인 예수를 보고서 그토록 즐겁고 평안한 심정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정도로 강력한 영향을 시므온이 받았다면, 구원의 실제적 내용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완성된 이 복음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얼마나 더 큰 기쁨과 확신을 나타내어야 하겠는가!
호 헤토이마사스 카타 프로소폰 판톤 톤 라온
개역개정,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새번역,31 주님께서 이것을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셨으니,
우리말성경,31 이 구원은 주께서 모든 백성 앞에 마련하신 것으로
가톨릭성경,31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영어NIV,31 which you have prepared in the sight of all people,
영어NASB,31 Which You have prepared in the presence of all peoples,
영어MSG,31 it’s now out in the open for everyone to see:
영어NRSV,31 which you have prepared in the presence of all peoples,
헬라어신약Stephanos,31 ο ητοιμασας κατα προσωπον παντων των λαων
라틴어Vulgate,31 quod parasti ante faciem omnium populorum
히브리어Modern,31 אשר הכינות לפני כל העמים׃
성 경: [눅2:31]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만민 앞에 – 시므온은 아기 예수를 팔에 안고서 세상 끝에까지 미칠 그분의 영광과 은혜를 찬양하고 있다. 이는 구원의 복음이 이스라엘의 지경을 넘어 세게 만방에로 확장될 것임을 내다보는 예언자적 통찰력이다. 한편 이방인의 구원 혹은 복음의 보편성이라는 주제는 누가복음에서 강조된 사실들 중 하나이며(15장), 구약 속에 이미 태동되어 있던 구속사의 한 주제였었다(사 43:5,6;45:6;49:12;미 4:1,2;슥 8:20-23). 이점에 관해서는 마8:1-17주제 강해 ‘이방인과 유대인의 구원관계’를 보라.
포스 에이스 아포칼륖신 에드논 카이 돜산 라우 수 이스라엘
개역개정,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새번역,32 이는 이방 사람들에게는 계시하시는 빛이요, 주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우리말성경,32 이방 사람에게는 계시의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가톨릭성경,32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
영어NIV,32 a light for revelation to the Gentiles and for glory to your people Israel.”
영어NASB,32 A LIGHT OF REVELATION TO THE GENTILES, And the glory of Your people Israel.”
영어MSG,32 A God-revealing light to the non-Jewish nations, and of glory for your people Israel.
영어NRSV,32 a light for revelation to the Gentiles and for glory to your people Israel.”
헬라어신약Stephanos,32 φως εις αποκαλυψιν εθνων και δοξαν λαου σου ισραηλ
라틴어Vulgate,32 lumen ad revelationem gentium et gloriam plebis tuae Israhel
히브리어Modern,32 אור לגלות עיני הגוים ותפארת ישראל עמך׃
성 경: [눅2:32]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 빛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또한 그의 온전히 의로우신 성품을 나타내는 상징으로서(시 27:1;요 1:5;딤전 6:16) 또 하나님의 계시와(시 34:5) 생명의(요 1:4) 상징으로서 언급된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으사 하나님 나라의 복된 소식을 이방에 전파할 ‘이방의 빛’으로 삼으셨다고 되어있다(사 42:6). 이러한 말씀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성취를 보게 되었다. 예수는 그 가운데 조금의 어둠도 없으신 참빛로서 인종과 신분 등 모든 인간적 장벽(障壁)을 뛰어넘어 모든 이들에게 비추이신다(요 1:9). 그리고 예수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도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셨고(마 5:14) 그 빛을 사람들 앞에 비취게 하라고 명하셨다(마 5:16).
주의 백성…영광이니이다 – 예수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다. 왜냐하면 온 세계 만민을 위한 구원의 길이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를 통해 열렸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이스라엘은 이방세력의 지배 하에서 민족적 자존심을 잃은 상태였는데, 이제 메시야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면모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은 이러한 특권을 바로 깨닫기는 커녕 오히려 메시야를 배척하고 마침내 십자가 형틀에로 내몰아 버렸다.
카이 엔 호 파테르 아우투 카이 헤 메테르 다우마존테스 에피 토이스 랄루메노이스 페리 아우투
개역개정,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새번역,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므온이 아기에 대하여 하는 이 말을 듣고서, 이상하게 여겼다.
우리말성경,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에 대한 이 말에 무척 놀랐습니다.
가톨릭성경,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영어NIV,33 The child’s father and mother marveled at what was said about him.
영어NASB,33 And His father and mother were amazed at the things which were being said about Him.
영어MSG,33 Jesus’ father and mother were speechless with surprise at these words.
영어NRSV,33 And the child’s father and mother were amazed at what was being said about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3 και ην ιωσηφ και η μητηρ αυτου θαυμαζοντες επι τοις λαλουμενοις περ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33 et erat pater eius et mater mirantes super his quae dicebantur de illo
히브리어Modern,33 ויוסף ואמו תמהים על הדברים הנאמרים עליו׃
성 경: [눅2:33]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기이히 여기더라 – 마리아와 요셉이 기이히 여기며 놀란 것은 단지 시므온의 찬송 내용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보다는 천사들, 목자들, 동방박사들, 엘리사벳, 사가랴 그리고 시므온 등 사방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아기 예수에 관한 증거가 나타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여러 증거들을 접하게 됨으로써 마리아 부처는 애초 그들에게 임했던 천사들의 계시를 거듭 상고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자신들의 이해를 보다 깊게 다져 나갔을 것이다.
카이 율로게센 아우투스 쉬메온 카이 에이펜 프로스 마리암 텐 메테라 아우투 이두 후토스 케이타이 에이스 프토신 카이 아나스타신 폴론 엔 토 이스라엘 카이 에이스 세메이온 안틸레고메논
개역개정,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새번역,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시므온이 아기에 대하여 하는 이 말을 듣고서, 이상하게 여겼다.
우리말성경,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에 대한 이 말에 무척 놀랐습니다.
가톨릭성경,33 아기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에 놀라워하였다.
영어NIV,33 The child’s father and mother marveled at what was said about him.
영어NASB,33 And His father and mother were amazed at the things which were being said about Him.
영어MSG,33 Jesus’ father and mother were speechless with surprise at these words.
영어NRSV,33 And the child’s father and mother were amazed at what was being said about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3 και ην ιωσηφ και η μητηρ αυτου θαυμαζοντες επι τοις λαλουμενοις περι αυτου
라틴어Vulgate,33 et erat pater eius et mater mirantes super his quae dicebantur de illo
히브리어Modern,33 ויוסף ואמו תמהים על הדברים הנאמרים עליו׃
성 경: [눅2:34]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많은 사람의…세움을 입었고 – 이 구절은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도 하는 반면 하나님의 집을 세우는데 기초석이 되기도 하는 돌(사 8:14;28:16)에 관한 사상을 반영한다. 예수를 배반하고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예수께서 걸림돌이 되어 넘어지게 하며 멸망에 이르게하실 것이요 또 그를 따르는 자들은 세움을 입고 하나님 나라의 초석(礎石)이 되게 하실 것이다. 또한 예수는 백성의 구원자로 오셨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박해와 곤욕을 치러야만 될 것으로 예언되었다. 이는 예수께서 유대인들과 이방인들로부터 받으셨던 각종 모욕과 비방(4:29;22:63-65;23:11, 34-39)이 결코 우연한 것이 아니라 영원 전부터 예정된 것(시 32:6-8;사 50:6;53:4-12)임을 증거해 준다. 시므온의 이러한 예언은 엘리사벳의 노래나(:42-45) 사가랴의 예언(1:68-79) 그리고 천사들의 찬송과는(2:10-14) 반대로 예수께 드리워질 어두운 면을 증거한다. 예수의 영광에 관한 기쁨의 증거와 더불어 이러한 비탄스러운 증거는 앞으로 전개될 메시야적 사역의 진면목이 어떠한지를 암시해 준다.
카이 수 데 아우테스 텐 프쉬켄 디엘류세타이 롬파이아 호포스 안 아포칼륖도신 에크 폴론 카르디온 디알로기스모이
개역개정,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새번역,35 -그리고 칼이 당신의 마음을 찌를 것입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의 마음 속 생각들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말성경,35 칼이 당신의 마음도 찌를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35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꿰찔리는 가운데, 많은 사람의 마음속 생각이 드러날 것입니다.”
영어NIV,35 so that the thoughts of many hearts will be revealed. And a sword will pierce your own soul too.”
영어NASB,35 and a sword will pierce even your own soul–to the end that thoughts from many hearts may be revealed.”
영어MSG,35 the pain of a sword-thrust through you– But the rejection will force honesty, as God reveals who they really are.
영어NRSV,35 so that the inner thoughts of many will be revealed–and a sword will pierce your own soul too.”
헬라어신약Stephanos,35 και σου δε αυτης την ψυχην διελευσεται ρομφαια οπως αν αποκαλυφθωσιν εκ πολλων καρδιων διαλογισμοι
라틴어Vulgate,35 et tuam ipsius animam pertransiet gladius ut revelentur ex multis cordibus cogitationes
히브리어Modern,35 וגם בנפשך תחתר חרב למען תגלינה מחשבות לבב רבים׃
성 경: [눅2:35]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시므온의 찬송]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라 – ‘칼’을 나타내는 헬라어 ‘롬파이아(*)는 드라키아인들의 대검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통 큰 칼을 의미한다. 여기서 마리아는 ‘여인 중에 가장 복이 있는 자'(1:42) 곧 메시야의 어머니라는 영광과는 또 달리 ‘슬픔의 어머니'(Mater dolorosa)로 묘사되고 있다. 한 어머니로서의 마리아는 예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나사렛에서 함께 보낸 소년 시절과 청년시절이 가장 행복된 나날이었을 것이다. 예수의 공생애가 시작됨과 그의 때를 같이하여 대두한 유대교 지도가들의 핍박은 날이 갈수록 심각성을 띠어 갔으며, 이로 인해 혈육의 정을 떨칠 수 없었던 마리아로서는 예수의 장래에 대한 불길한 예감으로 노심초사(勞心焦思)할 때가 많았을 것이다. 특히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십자가에 달려 엄청난 고통을 받을 때 큰 칼이 찌르는 것보다 더한 찢어지는 아픔을 겪어야만 했었을 것이다.
드러내려 함이니 – 여기서 헬라어 ‘아포칼뤼프도신'(*)은 ‘베일이 벗겨지는’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믿고 그의 뜻을 행한다고 하는 자들의 위선과 허위가 드러나지 않은 채 그대로 숨기워 있었지만 이제는 예수를 통해 사실 그대로 드러날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사역과 더불어 그를 섬기는 자들과 대적하는 자들이 명확하게 구분될 것이다.
카이 엔 한나 프로페티스 뒤가테르 파누엘 에크 퓔레스 아세르 하우테 프로베베퀴이아 엔 헤메라이스 폴라이스 제사사 메타 안드로스 에테 헾타 아포 테스 파르데니아스 아우테스
개역개정,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새번역,36 아셀 지파에 속하는 바누엘의 딸로 ㉤안나라는 여예언자가 있었는데, 나이가 많았다. 그는 처녀 시절을 끝내고 일곱 해를 남편과 함께 살고, / ㉤그, ‘한나’
우리말성경,36 또 아셀 지파의 바누엘의 딸인 안나라는 여자 예언자도 있었습니다. 안나는 나이가 많았는데 결혼해서 남편과 7년 동안 살다가
가톨릭성경,36 한나라는 예언자도 있었는데, 프누엘의 딸로서 아세르 지파 출신이었다. 나이가 매우 많은 이 여자는 혼인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서는,
영어NIV,36 There was also a prophetess, Anna, the daughter of Phanuel, of the tribe of Asher. She was very old; she had lived with her husband seven years after her marriage,
영어NASB,36 And there was a prophetess, Anna the daughter of Phanuel, of the tribe of Asher. She was advanced in years and had lived with her husband seven years after her marriage,
영어MSG,36 Anna the prophetess was also there, a daughter of Phanuel from the tribe of Asher. She was by now a very old woman. She had been married seven years
영어NRSV,36 There was also a prophet, Anna the daughter of Phanuel, of the tribe of Asher. She was of a great age, having lived with her husband seven years after her marriage,
헬라어신약Stephanos,36 και ην αννα προφητις θυγατηρ φανουηλ εκ φυλης ασηρ αυτη προβεβηκυια εν ημεραις πολλαις ζησασα ετη μετα ανδρος επτα απο της παρθενιας αυτης
라틴어Vulgate,36 et erat Anna prophetissa filia Phanuhel de tribu Aser haec processerat in diebus multis et vixerat cum viro suo annis septem a virginitate sua
히브리어Modern,36 ותהי שם חנה אשה נביאה בת פנואל משבט אשר והיא באה בימים וחיתה עם בעלה שבע שנים אחרי בתוליה׃
성 경: [눅2:36]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안나의 예언]
아셀 지파 비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 – 시므온의 소개와는 달리 안나의 경우는 지파명까기 상세하게 소개되고 있다. 시므온의 경우는 구체적인 신분을 확인할 수가 없었으나 안나는 삶의 배경이 기술되었다. 아셀은 야곱의 여덟번째 아들이었다(창 30:13). 예수 탄생 당시는 이스라엘 민족이 주로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로 구성되어 있어 나머지 10지파의 행방은 불투명했다. 이는 바벧론 포로지로부터 귀환(歸還)한 자들 중 거의가 이 두 지파에 속한 사람들이었던 연유도 있겠는데, 안나도 바로 다른 지파에 속한 소수의 사람들 중의 하나였다. 이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자신들의 족보를 보관하고 그 잃어버린 지파 백성의 후손을 찾아내기도 하였다. 한편 ‘바누엘’은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얻고 그 곳에 붙인 ‘브니엘’ 이라는(창 32:30) 지명에서 나온 이름이다. 따라서 히브리식으로는 ‘브니엘’이며 그 뜻은 ‘하나님의 얼굴’이다. 그리고 ‘안나’는 히브리어의 ‘한나'(*)에 해당한다(삼상 1:2). 즉 이 이름은 사사이며 제사장이고 선지자였던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이름과 동일하다. 그녀는 구약 성경의 드보라(삿 4:4)와 훌다(왕하 22:14)와 같이 휼릉한 여성 예언자였다.
카이 아우테 케라 헤오스 에톤 옥도에콘타 테싸론 헤 우크 아피스타토 투 히에루 네스테이아이스 카이 데에세신 라트류우사 뉰타 카이 헤메란
개역개정,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새번역,37 과부가 되어서, 여든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섬겨왔다.
우리말성경,37 그 후 84세가 되도록 과부로 지냈습니다. 안나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으로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가톨릭성경,37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냈다. 그리고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
영어NIV,37 and then was a widow until she was eighty-four. She never left the temple but worshiped night and day, fasting and praying.
영어NASB,37 and then as a widow to the age of eighty-four. She never left the temple, serving night and day with fastings and prayers.
영어MSG,37 and a widow for eighty-four. She never left the Temple area, worshiping night and day with her fastings and prayers.
영어NRSV,37 then as a widow to the age of eighty-four. She never left the temple but worshiped there with fasting and prayer night and day.
헬라어신약Stephanos,37 και αυτη χηρα ως ετων ογδοηκοντατεσσαρων η ουκ αφιστατο απο του ιερου νηστειαις και δεησεσιν λατρευουσα νυκτα και ημεραν
라틴어Vulgate,37 et haec vidua usque ad annos octoginta quattuor quae non discedebat de templo ieiuniis et obsecrationibus serviens nocte ac die
히브리어Modern,37 והיא אלמנה כארבע ושמנים שנה ולא משה מן המקדש ובצום ובתחנונים עבדה את האלהים לילה ויום׃
성 경: [눅2:37]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안나의 예언]
과부 된 지 팔십 사 년이라…기도함으로 섬기더니 – 당시 유대 사회의 조혼 풍습에 비추어 볼 때 안나는 14세를 전후하여 결혼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 안나의 나이는 14+7+84=105세 쯤 되는 셈이다. 이처럼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안나는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긴’여인이었다. 이는 그녀가 철저한 헌신의 삶을 살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이스라엘의 소망 곧 메시야를 대망하며 기도했던 여인임을 나타내준다. 아마 그녀는 오직 메시야만이 그녀와 이스라엘의 가슴에 수십년 동안 맺혀있던 응어리를 풀어주고 위로해주실 수 있다고 확신했을 것이다. 한편, 안나는 성전에서 시므온의 송가(頌歌)를 들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 송가를 통해서 그리고 성령의 인도로 그 아기 예수가 메시야이심을 확신하였다.
카이 아우테 테 호라 에피스타사 안도몰로게이토 토 데오 카이 엘랄레이 페리 아우투 파신 토이스 프로스데코메노이스 뤼트로신 예루살렘
개역개정,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새번역,38 바로 이 때에 그가 다가서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하였다.
우리말성경,38 바로 그때 안나가 그들에게 다가와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원을 간절히 고대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 아기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가톨릭성경,38 그런데 이 한나도 같은 때에 나아와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는 모든 이에게 그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영어NIV,38 Coming up to them at that very moment, she gave thanks to God and spoke about the child to all who were looking forward to the redemption of Jerusalem.
영어NASB,38 At that very moment she came up and began giving thanks to God, and continued to speak of Him to all those who were looking for the redemption of Jerusalem.
영어MSG,38 At the very time Simeon was praying, she showed up, broke into an anthem of praise to God, and talked about the child to all who were waiting expectantly for the freeing of Jerusalem.
영어NRSV,38 At that moment she came, and began to praise God and to speak about the child to all who were looking for the redemption of Jerusalem.
헬라어신약Stephanos,38 και αυτη αυτη τη ωρα επιστασα ανθωμολογειτο τω κυριω και ελαλει περι αυτου πασιν τοις προσδεχομενοις λυτρωσιν εν ιερουσαλημ
라틴어Vulgate,38 et haec ipsa hora superveniens confitebatur Domino et loquebatur de illo omnibus qui expectabant redemptionem Hierusalem
히브리어Modern,38 ותקם בשעה ההיא ותגש להדות ליהוה ותדבר עליו באזני כל המחכים לגאלה בירושלים׃
성 경: [눅2:38]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안나의 예언]
하나님께 감사하고 – ‘감사하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안도몰로게이토'(*)’는 ‘찬양하다’, ‘감사하다’ 등의 뜻외에 ‘단호하게 신앙을 고백하다’, ‘무엇인가를 믿음으로 고백하다’ 등의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안나의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신앙 고백적인 믿음의 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안나의 감사는 순종 및 메시지의 선포와 결합되고 있다.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 이 구절은 사가랴가 이스라엘의 속량(1:68)을 노래하고, 시므온이 이스라엘의 위로(25절)를 기다리는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으며 사 52:9에 나타난 메시야의 예루살렘 구원에 대한 대망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된다. 사실 ‘구속’은 예수께서 이룩하실 신적구원 개념을 나타내는 말이다(롬 3:24;엡 1:7;골 1:14).
카이 호스 에펠레산 판타 타 카타 톤 노몬 퀴리우 에페스트렢산 에이스 텐 갈릴라이안 에이스 폴린 헤아우톤 나자렏
개역개정,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새번역,39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에 규정된 모든 일을 마친 뒤에, 갈릴리의 자기네 고향 동네 나사렛에 돌아왔다.
우리말성경,39 요셉과 마리아는 주의 율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난 뒤 갈릴리에 있는 자기 마을 나사렛으로 돌아왔습니다.
가톨릭성경,39 주님의 법에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나서, 그들은 갈릴래아에 있는 고향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영어NIV,39 When Joseph and Mary had done everything required by the Law of the Lord, they returned to Galilee to their own town of Nazareth.
영어NASB,39 When they had performed everything according to the Law of the Lord, they returned to Galilee, to their own city of Nazareth.
영어MSG,39 When they finished everything required by God in the Law, they returned to Galilee and their own town, Nazareth.
영어NRSV,39 When they had finished everything required by the law of the Lord, they returned to Galilee, to their own town of Nazareth.
헬라어신약Stephanos,39 και ως ετελεσαν απαντα τα κατα τον νομον κυριου υπεστρεψαν εις την γαλιλαιαν εις την πολιν αυτων ναζαρετ
라틴어Vulgate,39 et ut perfecerunt omnia secundum legem Domini reversi sunt in Galilaeam in civitatem suam Nazareth
히브리어Modern,39 ויכלו את הכל כפי תורת יהוה וישובו הגלילה אל נצרת עירם׃
성 경: [눅2:39]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안나의 예언]
주의 율법을 좇아 – 누가는 예수의 부모들이 율법이 명하는 바를 열심히 준수하였을 의도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본장 내에서만 하더라도 예수의 부모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율법을 준수했었는가 여러차례 강조되고 있다. 22절(모세의 법대로), 23절(주의 율법에 쓴 바), 24절(주의 율법에 말씀하신 대로), 27절(율법의 전례대로 미루어 보건대 마리아 부처는 경건한 삶을 사는 유대인의 전형(典型)이었다. 본절은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율법의 마침이 되시고(롬 10:4) 율법 아래 있는 모든 자들을 구속하시기 위하여(갈4:4) 친히 율법을 지키셨음을 시사한다.
갈릴리로…나사렛에 이르니라 – 누가는 마태복음 2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동방 박사의 방문이나 애굽으로의 피난 기사를 전혀 다루고 있지 않다. 그것은 누가가 마태의 기사를 무시하거나 인정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마태는 또 하나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실례를 들기 위해서 그 기사의 내용을 넣었겠지만 이방인을 포함한 전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빌어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에 대해서 기술하려고 하는 누가에게는 그러한 내용이 그다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누가는 예수의 부모가 율법을 충실히 지키고 예수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으며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고 정상적인 어린 아이로 성장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했다(40, 52).
토 데 파이디온 에윜사넨 카이 에크라타이우토 플레루메논 소피아 카이 카리스 데우 엔 엪 아우토
개역개정,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새번역,40 아기는 자라나면서 튼튼해지고, 지혜로 가득 차게 되었고, 또 하나님의 은혜가 그와 함께 하였다.
우리말성경,40 아이는 점점 자라 가며 강해지고 지혜가 충만했으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40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영어NIV,40 And the child grew and became strong; he was filled with wisdom, and the grace of God was upon him.
영어NASB,40 The Child continued to grow and become strong, increasing in wisdom; and the grace of God was upon Him.
영어MSG,40 There the child grew strong in body and wise in spirit. And the grace of God was on him.
영어NRSV,40 The child grew and became strong, filled with wisdom; and the favor of God was upon him.
헬라어신약Stephanos,40 το δε παιδιον ηυξανεν και εκραταιουτο πνευματι πληρουμενον σοφιας και χαρις θεου ην επ αυτο
라틴어Vulgate,40 puer autem crescebat et confortabatur plenus sapientia et gratia Dei erat in illo
히브리어Modern,40 ויגדל הנער ויחזק ברוח וימלא חכמה וחסד אלהים עמו׃
성 경: [눅2:40]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안나의 예언]
아기가 자라며…그 위에 있더라 – 이 구절은 세례 요한의 어릴적 성장 모습을 묘사한 1:80의 내용과 비교된다. 그리고 52절은 이 구절에 대한 보충 내용이다. 이것은 예수가 12살이 되기(42절) 이전의 이야기이다. ‘자라며 강하여지고’라는 표현은 신체적 성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평범한 아이와 같이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잘 자라고 있음을 말한다. 그리고 ‘지혜가 충족하며’라는 표현은 정신적 성장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 위에 있더라’는 표현은 영적 성장을 뜻하는 것으로 예수께서 어릴 때부터 지혜와 은혜를 가진 인물로 세례요한보다도 훨씬 탁월했음을 의미한다.
카이 에포류온토 호이 고네이스 아우투 캍 에토스 에이스 예루살렘 테 헤오르테 투 파스카
개역개정,4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새번역,41 예수의 부모는 해마다 ㉥유월절에 예루살렘으로 갔다. / ㉥출 12:13; 21-28을 볼 것
우리말성경,41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수의 부모는 예루살렘으로 갔습니다.
가톨릭성경,41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면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다.
영어NIV,41 Every year his parents went to Jerusalem for the Feast of the Passover.
영어NASB,41 Now His parents went to Jerusalem every year at the Feast of the Passover.
영어MSG,41 Every year Jesus’ parents traveled to Jerusalem for the Feast of Passover.
영어NRSV,41 Now every year his parents went to Jerusalem for the festival of the Passover.
헬라어신약Stephanos,41 και επορευοντο οι γονεις αυτου κατ ετος εις ιερουσαλημ τη εορτη του πασχα
라틴어Vulgate,41 et ibant parentes eius per omnes annos in Hierusalem in die sollemni paschae
히브리어Modern,41 ועלו הוריו ירושלים שנה בשנה לחג הפסח׃
성 경: [눅2:41]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그 부모가 해마다…예루살렘으로 가더니 – 예수의 부모가 율법을 성실히 이행하는 경건한 유대인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있다. 당시 성전을 중심으로 한 유대교 의식은 온갖 위선과 타락으로 얼룩져 있었지만, 구약적 차원에서 지켜야 할 율법 의식들은 여전히 중요한 구속력(拘束力)을 지니고 있었다. 따라서 경건한 자들이 그러한 의식에 맞춰 자신의 신앙을 증거하는 것은 마땅히 행해야 할 본분이었다. 율법에는 유대 성인 남자들이 연례 행사로서 삼대 주요 절기인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장막절)을 예루살렘을 방문하여 지키도록 명시되어 있다(신 16:16). 그러나 바벧론 포로 시대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각처로 흩어지게 되어 이행사에 매년 모두 참석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어렵게 되었다. 그렇지만 많은 경건한 유대인들은 적어도 유월절 행사에만은 꼭 참석하려고 노력하였다. 한편 모세의 율법에는 이 행사에 남자들만 참석하도록 명시하고 있으나 유대 랍비 힐렐(Hillel)은 여자들도 축제에 참석하도록 권고하여 그렇게 지켜졌다. 한편 우리는 여기서 어린 예수가 자란 가정의 신앙적 배경을 살필수가 있다. 어린 예수는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해서 영적 및 인격적 교육을 받으며 자랐으며 어려서부터 의롭고 경건한 삶에 훈련되어져 갔던 것이다.
카이 호테 에게네토 에톤 도데카 아나바이논톤 아우톤 카타 토 에도스 테스 헤오르테스
개역개정,42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새번역,42 예수가 열두 살이 되는 해에도, 그들은 절기 관습을 따라 ㉦유월절을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 ㉦출 12:13; 21-28을 볼 것
우리말성경,42 예수께서 열두 살이 되던 해에도 그들은 관례에 따라 절기를 지키러 예루살렘에 올라갔습니다.
가톨릭성경,42 예수님이 열두 살 되던 해에도 이 축제 관습에 따라 그리로 올라갔다.
영어NIV,42 When he was twelve years old, they went up to the Feast, according to the custom.
영어NASB,42 And when He became twelve, they went up there according to the custom of the Feast;
영어MSG,42 When he was twelve years old, they went up as they always did for the Feast.
영어NRSV,42 And when he was twelve years old, they went up as usual for the festival.
헬라어신약Stephanos,42 και οτε εγενετο ετων δωδεκα αναβαντων αυτων εις ιεροσολυμα κατα το εθος της εορτης
라틴어Vulgate,42 et cum factus esset annorum duodecim ascendentibus illis in Hierosolymam secundum consuetudinem diei festi
히브리어Modern,42 ויהי בהיותו בן שתים עשרה שנה ויעלו ירושלים כמשפט החג׃
카이 텔레이오산톤 타스 헤메라스 엔 토 휘포스트레페인 아우투스 휘페메이넨 예수스 호 파이스 엔 예루살렘 카이 우크 에그노산 호이 고네이스 아우투
개역개정,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새번역,43 그런데 그들이 절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었다. 그의 부모는 이것을 모르고,
우리말성경,43 기간이 끝나 그 부모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는데 소년 예수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가톨릭성경,43 그런데 축제 기간이 끝나고 돌아갈 때에 소년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았다. 그의 부모는 그것도 모르고,
영어NIV,43 After the Feast was over, while his parents were returning home, the boy Jesus stayed behind in Jerusalem, but they were unaware of it.
영어NASB,43 and as they were returning, after spending the full number of days, the boy Jesus stayed behind in Jerusalem. But His parents were unaware of it,
영어MSG,43 When it was over and they left for home, the child Jesus stayed behind in Jerusalem, but his parents didn’t know it.
영어NRSV,43 When the festival was ended and they started to return, the boy Jesus stayed behind in Jerusalem, but his parents did not know it.
헬라어신약Stephanos,43 και τελειωσαντων τας ημερας εν τω υποστρεφειν αυτους υπεμεινεν ιησους ο παις εν ιερουσαλημ και ουκ εγνω ιωσηφ και η μητηρ αυτου
라틴어Vulgate,43 consummatisque diebus cum redirent remansit puer Iesus in Hierusalem et non cognoverunt parentes eius
히브리어Modern,43 וימלאו את הימים וישובו ויותר ישוע הנער בירושלים ויוסף ואמו לא ידעו׃
성 경: [눅2:43]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그 날들을 마치고 – 유월절과 무교절은 모두 7일 동안 계속되었다(출 12:15;레 23:6-8;신 16:3). 그리고 이 절기를 위해 예루살렘을 찾은 순례자들은 적어도 이틀은 그곳에 머물러 있었다.
아이 예수는…알지 못하고 – 예수는 그의 부모들보다 예루살렘에 더 오래 머물러 있었다. 당시 열 두 살의 나이는 결코 어리게만 간주되지 않았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부모는 예수의 움직임을 일일이 살피지는 않았을 것이다. 부모들은 그 사실을 모르는채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 어중간한 나이였던 예수는 여인들과 어린 아이들의 행렬이나 남자 어른들과 제법 나이가 든 소년들의 행렬중 어느 한 곳에 끼여 여행했을 것이다. 이 행렬이 이처럼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다면 요셉은 예수가 마리아와 함께 여행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고, 마리아는 예수가 요셉과 함께 여행하고 있으리라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서로가 착각한 사이에 하루가 끝나갈 무렵 이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한편 예수는 그의 부모들이 찾고 있을 시간에 성전에서 최고 석학(碩學)들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의 일과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서 많은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은 그를 게속해서 엉뚱한 곳에서 찾아 해맨다. 만일 그의 부모들이 예수의 메시야성을 계속해서 염두에두고 그의 신성을 깨닫고 있었다면 그들은 예수가 보이지 않았을 때 바로 성전에 가서 찾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 그의 아버지의 집은 바로 성전이었기 때문이다.
노미산테스 데 아우톤 에이나이 엔 테 쉬노디아 엘돈 헤메라스 호돈 카이 아네케툰 아우톤 엔 토이스 슁게뉴신 카이 토이스 그노스토이스
개역개정,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새번역,44 일행 가운데 있으려니 생각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 뒤에 비로소 그들의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그를 찾았으나,
우리말성경,44 그들은 예수가 일행 속에 있으리라 생각하고 하룻길을 가다가 그제야 친척들과 친구들 사이에서 예수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가톨릭성경,44 일행 가운데에 있으려니 여기며 하룻길을 갔다. 그런 다음에야 친척들과 친지들 사이에서 찾아보았지만,
영어NIV,44 Thinking he was in their company, they traveled on for a day. Then they began looking for him among their relatives and friends.
영어NASB,44 but supposed Him to be in the caravan, and went a day’s journey; and they began looking for Him among their relatives and acquaintances.
영어MSG,44 Thinking he was somewhere in the company of pilgrims, they journeyed for a whole day and then began looking for him among relatives and neighbors.
영어NRSV,44 Assuming that he was in the group of travelers, they went a day’s journey. Then they started to look for him among their relatives and friends.
헬라어신약Stephanos,44 νομισαντες δε αυτον εν τη συνοδια ειναι ηλθον ημερας οδον και ανεζητουν αυτον εν τοις συγγενεσιν και εν τοις γνωστοις
라틴어Vulgate,44 existimantes autem illum esse in comitatu venerunt iter diei et requirebant eum inter cognatos et notos
히브리어Modern,44 ויחשבו כי עם חבל הארחים הוא וילכו כדרך יום ויבקשהו בין הקרובים והמידעים׃
성 경: [눅2:44]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동행 중에…아는 자 중에서 찾되 – 성전 절기 준수를 위해 성전으로 모이는 여행자 무리는 같은 마을 이웃들과 친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매일 저녁 때 이 무리들은 지정된 장소에서 함께 모여 유숙하고 여행 일정 등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예수의 부모는 예수가 일행 중에 있을 줄로 알고 신경쓰고 있지 않았으나 저녁 식사 때 혹은 잠자리에 들려 할 때 그가 없음을 알고 아는 사람들 속에서 그를 찾아 나섰다.
카이 메 휴론테스 휘페스트렢산 에이스 예루살렘 아나제툰테스 아우톤
개역개정,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새번역,45 찾지 못하여,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찾아다녔다.
우리말성경,45 그러나 찾지 못하자 그들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서 예수를 찾았습니다.
가톨릭성경,45 찾아내지 못하였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그를 찾아다녔다.
영어NIV,45 When they did not find him, they went back to Jerusalem to look for him.
영어NASB,45 When they did not find Him, they returned to Jerusalem looking for Him.
영어MSG,45 When they didn’t find him, they went back to Jerusalem looking for him.
영어NRSV,45 When they did not find him, they returned to Jerusalem to search for him.
헬라어신약Stephanos,45 και μη ευροντες αυτον υπεστρεψαν εις ιερουσαλημ ζητουντες αυτον
라틴어Vulgate,45 et non invenientes regressi sunt in Hierusalem requirentes eum
히브리어Modern,45 ולא מצאהו וישבו ירושלים לבקשו׃
성 경: [눅2:45]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찾으면서 – 헬라어 ‘아나제툰테스'(*)는 현재 분사형으로서, 마리아 부처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며 줄곧 예수의 행방을 수소문하였음을 뜻한다.
카이 에게네토 메타 헤메라스 트레이스 휴론 아우톤 엔 토 히에로 카데조메논 엔 메소 톤 디다스칼론 카이 아쿠온타 아우톤 카이 에페로톤타 아우투스
개역개정,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새번역,46 사흘 뒤에야 그들은 성전에서 예수를 찾아냈는데, 그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우리말성경,46 3일이 지나서야 그들은 성전 뜰에서 예수를 찾게 됐습니다. 그는 선생들 가운데 앉아서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46 사흘 뒤에야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그는 율법 교사들 가운데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고 있었다.
영어NIV,46 After three days they found him in the temple courts, sitting among the teachers, listening to them and asking them questions.
영어NASB,46 Then, after three days they found Him in the temple, sitting in the midst of the teachers, both listening to them and asking them questions.
영어MSG,46 The next day they found him in the Temple seated among the teachers, listening to them and asking questions.
영어NRSV,46 After three days they found him in the temple, sitting among the teachers, listening to them and asking them questions.
헬라어신약Stephanos,46 και εγενετο μεθ ημερας τρεις ευρον αυτον εν τω ιερω καθεζομενον εν μεσω των διδασκαλων και ακουοντα αυτων και επερωτωντα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46 et factum est post triduum invenerunt illum in templo sedentem in medio doctorum audientem illos et interrogantem
히브리어Modern,46 ויהי אחרי שלשת ימים וימצאהו במקדש ישב בתוך המורים שמע אליהם ושאל אתם׃
성 경: [눅2:46]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 마리아와 요셉은 하룻길을 여행하고 나서 예수의 행방이 묘연해진 사실을 알게 되었다(44절). 이튿날 그들은 오던 길을 되돌아가며 예수를 찾는데 하루가 걸렸을 것이다(45절). 그리고 그 다음날 곧 ‘사흘 후에’ 그들은 예수를 성전에서 만났다.
선생들 중에 앉으사…묻기도 하시니 – 성전 안에는 이방인의 뜰과 이스라엘인의 뜰과 안뜰의 동남부 등 이렇게 세 곳에 회당이 있었다고 탈무드(Talmud)는 전한다. 대체로 랍비들은 바로 이 안뜰의 동남부에 있는 회당에서 율법을 강론(講論)했다고 한다. 당시 생존해있던 저명한 율법 학자들은 ‘힐렐'(Hillel), ‘샴마이'(Shammai), ‘가말리엘'(Gamaliel), ‘요나단'(Jonathan), ‘시므온'(Simeon), ‘니고데모'(Nicodemus) 등으로 짐작된다. 추측해 보건대 이러한 유명한 학자들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중 적어도 한 사람 정도는 예수와의 토론에 참석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외경 ‘도마 복음서'(Gospel of Thomas)에서는 이때 예수께서 율법과 선지자들의 난제들을 해결하고 또 어려운 질문을 제기하고 답하며 천문학, 의학, 물리학, 철학 등에 관한 이야기 등도 논의되었다고하나 정확한 증거 자료는 없다. 아무튼 어린 예수께서 당대 최고 석학들과 함께 율법을 이야기하며 토론했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었다.
엨시스탄토 데 판테스 호이 아쿠온테스 아우투 에피 테 쉬네세이 카이 타이스 아포크리세신 아우투
개역개정,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새번역,47 그의 말을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슬기와 대답에 경탄하였다.
우리말성경,47 예수의 말을 들은 사람들마다 그가 깨닫고 대답하는 것에 몹시 감탄했습니다.
가톨릭성경,47 그의 말을 듣는 이들은 모두 그의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하였다.
영어NIV,47 Everyone who heard him was amazed at his understanding and his answers.
영어NASB,47 And all who heard Him were amazed at His understanding and His answers.
영어MSG,47 The teachers were all quite taken with him, impressed with the sharpness of his answers.
영어NRSV,47 And all who heard him were amazed at his understanding and his answers.
헬라어신약Stephanos,47 εξισταντο δε παντες οι ακουοντες αυτου επι τη συνεσει και ταις αποκρισεσι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47 stupebant autem omnes qui eum audiebant super prudentia et responsis eius
히브리어Modern,47 וכל השמעים אליו השתוממו על שכלו ועל תשובתיו׃
성 경: [눅2:47]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듣는 자가 다…기이히 여기더라 – ‘기이히 여기더라'(*, 여시스탄토)는 미완료 중간태 직설법으로서 계속적이고 반복적인 놀라움을 나타내며, 그 원형 ‘에크시스테미’는 거의 기절(faint)할 정도로 놀랐다는 뜻이다. 즉 예수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계속하여 반복해서 그 질문과 답변에 매우 놀라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 놀라움은 어린 소년의 입에서 그토록 영특한 이야기가 넘쳐나온 사실로 말미암은 바도 있지만, 그보다는 그 입에서 나온 지혜의 말씀 자체의 탁월성에 기인한 것임에 분명하다. ‘지혜’에 해당하는 ‘쉬네세이'(*)는 ‘이해’라는 뜻이다. 여기서 이 이해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는 하나님의 지혜를 가리킨다. 예수의 답변과 하나님의 지혜는 별개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 안에는 하나님께 속한 모든 신령(神靈)한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감취어 있기 때문이다(골 2:3).
카이 이돈테스 아우톤 엨세플라게산 카이 에이펜 프로스 아우톤 헤 메테르 아우투 테크논 티 에포이에사스 헤민 후토스 이두 호 파테르 수 카고 오뒤노메노이 에제투멘 세
개역개정,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새번역,48 그 부모는 예수를 보고 놀라서, 어머니가 예수에게 말하였다. “얘야, 이게 무슨 일이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찾느라고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모른다.”
우리말성경,48 그 부모는 예수를 보고 놀랐습니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얘야, 왜 우리에게 이렇게 했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걱정하며 찾았는지 모른다.”
가톨릭성경,48 예수님의 부모는 그를 보고 무척 놀랐다. 예수님의 어머니가 “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하자,
영어NIV,48 When his parents saw him, they were astonished. His mother said to him, “Son, why have you treated us like this? Your father and I have been anxiously searching for you.”
영어NASB,48 When they saw Him, they were astonished; and His mother said to Him, “Son, why have You treated us this way? Behold, Your father and I have been anxiously looking for You.”
영어MSG,48 But his parents were not impressed; they were upset and hurt. His mother said, “Young man, why have you done this to us? Your father and I have been half out of our minds looking for you.”
영어NRSV,48 When his parents saw him they were astonished; and his mother said to him, “Child, why have you treated us like this? Look, your father and I have been searching for you in great anxiety.”
헬라어신약Stephanos,48 και ιδοντες αυτον εξεπλαγησαν και προς αυτον η μητηρ αυτου ειπεν τεκνον τι εποιησας ημιν ουτως ιδου ο πατηρ σου καγω οδυνωμενοι εζητουμεν σε
라틴어Vulgate,48 et videntes admirati sunt et dixit mater eius ad illum fili quid fecisti nobis sic ecce pater tuus et ego dolentes quaerebamus te
히브리어Modern,48 ויהי כראותם אתו ויחרדו ותאמר אליו אמו בני מדוע ככה עשית לנו הנה אביך ואנכי בעצבת לב בקשנוך׃
성 경: [눅2:48]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그 부모가 보고 놀라며…너를 찾았노라 – 누가는 예수의 부모가 예수를 발견했을 때 느꼈던 감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그들의 처음 가졌던 감정은 놀라움이었다. 불과 12세에 불과한 소년이 당대의 석학들과 당당하게 토론하는 장면은 그들에게도 놀라움으로 먼저 다가왔다. 물론 그들은 예수의 탄생에 얽힌 신비스러운 일들이나 차츰 성장하면서 보여준 특출한 지혜와 인격에 대해 남다른 경험을 한 바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역시 경험한 바 계시에대한 이해의 한계를 분명히 드러낼 수밖에 없는 한 인간이었기 때문에 예수의 신분이나 사역의 본질적 의의를 정확히 깨닫지는 못한 상태였다. 이어서 마리아가 예수께 책망조로 탓한 사실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마리아는 어디까지나 잃어버린 아들로 인해 노심초사했던 어머니로서의 걱정에 사로잡힌 나머지 속상한 감정을 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어지는 예수의 대답은(49절) 마리아 부처로 하여금 예수의 신분에 대해 다시금 깊이 숙고해 보게 하였을 것이다.
카이 에이펜 프로스 아우투스 티 호티 에제테이테 메 우크 에데이테 호티 엔 토이스 투 파트로스 무 데이 에이나이 메
개역개정,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새번역,49 예수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
우리말성경,49 그러자 예수가 말했습니다. “왜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마땅히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 모르셨습니까?”
가톨릭성경,49 그가 부모에게 말하였다. “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영어NIV,49 “Why were you searching for me?” he asked. “Didn’t you know I had to be in my Father’s house?”
영어NASB,49 And He said to them, “Why is it that you were looking for Me? Did you not know that I had to be in My Father’s house?”
영어MSG,49 He said, “Why were you looking for me? Didn’t you know that I had to be here, dealing with the things of my Father?”
영어NRSV,49 He said to them, “Why were you searching for me? Did you not know that I must be in my Father’s house?”
헬라어신약Stephanos,49 και ειπεν προς αυτους τι οτι εζητειτε με ουκ ηδειτε οτι εν τοις του πατρος μου δει ειναι με
라틴어Vulgate,49 et ait ad illos quid est quod me quaerebatis nesciebatis quia in his quae Patris mei sunt oportet me esse
히브리어Modern,49 ויאמר אליהם למה זה בקשתם אתי הלא ידעתם כי עלי להיות באשר לאבי׃
성 경: [눅2:49]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어찌하여…알지 못하셨나이까 – 본서에 나오는 예수의 첫 말씀이다. 이는 혈육상의 모친인 마리아에게 하신 삼가는 투의 공손한 말씀이지만 자신의 존재 의의를 분명히 천명(闡明)하신 단호한 말씀이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몇 사항을 상고해 볼 수 있다. (1) 혈육상의 모친에 대한 순종과 하늘 아버지에 대한 절대적 순종 사이의 긴장 관계가 나타난다. 예수께서도 인간의 몸을 입고 한 가정의 아들로 탄생하셨기 때문에 그 부모에 대한 임무에 충실하셨다. 하지만 예수께서는 그러한 사사로운 일에 얽매일여념이 없을 엄청난 사명, 곧 온 인류에게 구원의 산 길을 열어주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다. 이 지상에서 수행해야 할 인간에 대한 모든 임무는 하나님의 계명이 허락하는 한도 내에서만 수행될 수 있을 뿐이며 우선 순위는 절대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일에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18:29;신 33:9;마 6:33). (2) 예수는 자신의 전생애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 전개되어감을 분명히 인식하고 계셨음을 보여준다. 특히 ‘있어야 될 줄을’이란 표현은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고 하는 당위성(I must be…)을 강조해 준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도들은 하나님께 대한 의무와 인간에 대한 의무의 우선 순위 문제, 그리고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욕망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 간의 양자 택일 문제를 놓고 믿음의 용단(勇斷)을 내릴 수 있어야 하겠다.
내 아버지 집에 – 예수께서 하나님을 독특하고 유일한 의미에서 자신의 아버지로 부른 최초의 언급이며(22:29;23:46;마 11:25;막 14:36;요 5:17), 자신의 신성(神性)을 증거한 것이다. 이 구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문은 ‘내 아버지의 일'(My Father’s business)로도 번역된다. New KJV는 본절 하반절을 ‘내가 내 아버지의 일에 열심을 내야 할 것을 모르셨나이까'(Did you not know that I must be about My Father’s business ?)라고 옮겼다. 이는 ‘집에’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토이스’가 중성 복수로 ‘일’ 또는 ‘사물’의 개념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일’이라 번역하든 ‘집’이라 번역하든 이 구절의 의미를 크게 바꾸어 놓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는 그의 전생애를 하나님의 일을 실천해 나가면서 살았다. 그는 항상 하나님의 일이 있는 곳에 있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일이 있는 곳이 그가 머물 자리이고 그의 집이었던 것이다.
카이 아우토이 우 쉬네칸 토 레마 호 엘랄레센 아우토이스
개역개정,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새번역,50 그러나 부모는 예수가 자기들에게 한 그 말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지 못하였다.
우리말성경,50 그러나 그들은 예수가 하는 말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가톨릭성경,50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이 한 말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영어NIV,50 But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he was saying to them.
영어NASB,50 But they did not understand the statement which He had made to them.
영어MSG,50 But they had no idea what he was talking about.
영어NRSV,50 But they did not understand what he said to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50 και αυτοι ου συνηκαν το ρημα ο ελαλησεν αυτοις
라틴어Vulgate,50 et ipsi non intellexerunt verbum quod locutus est ad illos
히브리어Modern,50 והם לא הבינו את הדבר אשר דבר אליהם׃
성 경: [눅2:50]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양친이…깨닫지 못하더라 – 마리아에 임한 예수 탄생에 관한 계시를 생각해 보면이 구절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즉 예수께서 메시야임을 알고 있었다면 이 정도의 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으리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부의 깨닫지 못함이 훨씬더 자연스럽다. 왜냐하면 48절에서도 나타내었듯이, 설령 그들이 예수께 얽힌 여러 신비로운 계시를 접했다고 해도 그 의미를 확연히 깨달을만한 영적 수준에는 도달해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카이 카테베 멭 아우톤 카이 엘덴 에이스 나자렏 카이 엔 휘포타쏘메노스 아우토이스 카이 헤 메테르 아우투 디에테레이 판타 타 레마타 엔 테 카르디아 아우테스
개역개정,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새번역,51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그들에게 순종하면서 지냈다. 예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하였다.
우리말성경,51 그러고 나서 예수는 부모와 함께 내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서 부모님께 순종하며 지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에 간직했습니다.
가톨릭성경,51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영어NIV,51 Then he went down to Nazareth with them and was obedient to them. But his mother treasured all these things in her heart.
영어NASB,51 And He went down with them and came to Nazareth, and He continued in subjection to them; and His mother treasured all these things in her heart.
영어MSG,51 So he went back to Nazareth with them, and lived obediently with them. His mother held these things dearly, deep within herself.
영어NRSV,51 Then he went down with them and came to Nazareth, and was obedient to them. His mother treasured all these things in her heart.
헬라어신약Stephanos,51 και κατεβη μετ αυτων και ηλθεν εις ναζαρετ και ην υποτασσομενος αυτοις και η μητηρ αυτου διετηρει παντα τα ρηματα ταυτα εν τη καρδια αυτης
라틴어Vulgate,51 et descendit cum eis et venit Nazareth et erat subditus illis et mater eius conservabat omnia verba haec in corde suo
히브리어Modern,51 וירד אתם ויבא אל נצרת ויכנע להם ואמו שמרה בלבה את כל הדברים האלה׃
성 경: [눅2:51]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예수께서…순종하여 받드시더라 – 누가는 예수의 신성에 관해서 언급하고나서 한 가정의 자녀로서의 본분에 충실한 인자이신 예수의 모습을 묘사한다. 예수는 이후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 받으실 때까지(3:21) 18년 동안 갈릴리 나사렛에서 그의 부모와 동생들과 함께 지내셨다. 그곳에서 주님은 아버지 요셉의 가업인 목수직을 이어 동생들을 보살피고 어머니 마리아를 봉양했다(막 6:3). 요셉에 관한 기록은 더 이상 언급되지 않고 있다. 추측컨대 이 18년 어간에 요셉이 죽은 것으로 여겨진다. 요셉이 죽자, 장남인 예수가 그의 가족을 부양(扶養)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 모친은…마음에 두니라 – 1장의 주석 서두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누가는 이 복음서의 내용 중 일부를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마리아에게서 얻은 듯하다. 그녀는 여기 언급된 세부 내용들을 얘기할 수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말’이란 본장의 사건 전반에 걸쳐 나타난 말들을 지칭한다.
카이 예수스 프로에콮텐 엔 테 소피아 카이 헬리키아 카이 카리티 파라 데오 카이 안드로포이스
개역개정,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새번역,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을 받았다.
우리말성경,52 그리고 예수는 지혜와 키가 점점 더 자라 가며 하나님과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았습니다.
가톨릭성경,52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
영어NIV,52 And Jesus grew in wisdom and stature, and in favor with God and men.
영어NASB,52 And Jesus kept increasing in wisdom and stature, and in favor with God and men.
영어MSG,52 And Jesus matured, growing up in both body and spirit, blessed by both God and people.
영어NRSV,52 And Jesus increased in wisdom and in years, and in divine and human favor.
헬라어신약Stephanos,52 και ιησους προεκοπτεν σοφια και ηλικια και χαριτι παρα θεω και ανθρωποις
라틴어Vulgate,52 et Iesus proficiebat sapientia aetate et gratia apud Deum et homines
히브리어Modern,52 וישוע הלך וגדל בחכמה ומקומה ובחן עם אלהים ועם אנשים׃
성 경: [눅2:52]
주제1: [인자 탄생과 유년 시절]
주제2: [성전에서의 소년 예수]
예수는…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 외경의 복음서들은 예수께서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도 여러가지 기적을 행하기도 하고 비상한 능력을 나타내기도 하셨다고 전하지만 그 증거는 불확실하다. 본문이 거듭 밝히는 바는(40절 주석 참조), 예수께서 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거치셨다는 사실이다. 예수의 지혜와 키가 자라갔다고 하는 것이 예수의 신성(deity)을 도외시하는 뜻은 결코 아니다. 왜냐하면 예수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셨을 뿐이기 때문이다(빌 2:6, 7). 한편 ‘키’에 해당하는 헬라어 ‘헬리키아'(*)는 ‘키'(stature, NIV) 또는 ‘나이’로 번역된다. 이를 어떻게 번역하든 별반 차이가 없지만 ‘키’로 보는 것이 적합한 듯하다. 왜냐하면 ‘나이’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적으로 먹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다시 부연하여 설명할 필요가 없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혹자는 그 의미를 신체적인 성장이나 인격적인 성장으로 보기도 한다. 한 인간으로서의 예수의 착실한 성장은 모든 이의 귀감(龜鑑)이다.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에 순종하며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며 이웃을 아끼며 도와주는 그의 생활은 하나님과 사람에게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수의 이런 칭송은 후에 초대 교회의 사람들이 받았던 칭송으로 이어졌다(행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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