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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 기초 강의] 제 1화. 풍수지리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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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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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원[편집]

주요 내용[편집]

한국의 풍수[편집]

미신으로서의 풍수[편집]

산수(山水)[편집]

같이 보기[편집]

각주[편집]

참고 문헌[편집]

풍수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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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風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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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風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풍수는 생기가 흩어지고 머무는 현상에서 시작해 음양론과 오행설을 토대로 땅에 관한 이치를 체계화하여 길흉화복을 설명하는 종교용어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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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수(風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풍수는 생기가 흩어지고 머무는 현상에서 시작해 음양론과 오행설을 토대로 땅에 관한 이치를 체계화하여 길흉화복을 설명하는 종교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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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風水)


	
    풍수(風水)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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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칼럼] 풍수란 무엇인가? (이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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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 칼럼] 풍수란 무엇인가? (이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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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風水地理)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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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수지리(風水地理)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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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면 재미있는 TMI: 풍수지리 편 | 한화저널 | 한화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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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한양의 명당 입지

풍수(風水)는 땅과 공간의 해석과 활용에 대한 동아시아의 고유 사상이다. 풍수에는 음양오행설을 바탕으로 한 동아시아의 자연관이 잘 나타나 있으며 실제로 조경과 건축 등에 영향을 미쳤던 사상이다.‘풍수’는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는 뜻인 장풍 득수(藏風 得水)를 줄인 말로, 생명을 불어 넣는 지기(地氣:땅 기운)를 살피는 것이다. 자연에서 태어난 사람은 바람과 물로 생명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풍수라는 한자어의 뜻을 풀이하면 자연(풍수)이 땅(지)의 모든 기운을 다스림(리)이 된다.

풍수는 바람과 물을 생활 속으로 끌어들여 그것을 지리적인 조건에 맞춰 해석하는데, 산세(山勢), 지세(地勢), 수세(水勢) 즉 산의 모양과 기, 땅의 모양과 기, 물의 흐름과 기 등을 판단하여 이것을 인간의 길흉화복에 연결시켜 이에 의해서 생활하는 인간의 본질을 나타내는 것이 풍수이다.[1]

풍수 사상은 중국 전국 시대 말기 이전부터 시작되었고, 한국에는 삼국 시대 이전에 전래되었다고 여겨진다. 일반적으로는 주로 묘지 풍수나 주택 풍수, 명당과 같은 터 잡기로 생각하기도 한다. 1990년대 이후 대한민국에서는 최창조 교수(지리학)가 ‘자생풍수’(自生風水)라는 이름으로 학문적 접근을 모색하면서 장례문화를 비롯하여 생태계에 의한 환경과 건축같은 학문적인 방법 등에 다양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현대 과학의 입장에서 풍수는 미개한 토속신앙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으로 분석, 판단하고 있다. 가장 비근한 예를 들면 풍수에 좌향등을 정하는 데 사용하는 패철에는 내반 중반 외반의 삼반이 존재하는데 그 중 외반은 물의 방향으로 측정하는 것으로서 이러한 외반의 방향은 지구 자전 운동에 따른 각가속에 의한 관성을 보정하기 위하여 서쪽으로 7.5도 편서되게 방향을 보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풍수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을 위해서는 산수, 좌향(놓인 방향),운기 등으로 살펴보는 것이 합리적으로 판단된다. 첫 번째 산수는 산과 물의 주어진 형상에 대한 분류이다. 이렇게 주어진 산수에 대한 파악이 이루어진 후에 좌향을 결정하여 그 산수와 좌향의 조합에 따른 기운을 평가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이루어진 산수와 좌향에 대한 기운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나는 운기에 의하여 어떤 형태로 발현되는가를 본다.

연원 [ 편집 ]

풍수는 산천, 수로의 모양을 인간의 길흉화복에 연결시켜 설명하는 사상으로, 이것을 체계화한 학설이 풍수설 또는 풍수지리설이다. 근대 지리학이 들어오기 전에는 지리설로도 불렸다.

이러한 풍우 등의 자연 현상의 변화가 인간 생활의 화복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은 이미 중국의 전국 시대 말기에 시작됐으나 그것이 음양오행의 사상이나 참위설(讖緯說)과 혼합되어 전한 말부터 후한에 걸쳐서 인간의 운명이나 화복에 관한 각종의 예언설을 만들어내고(음양지리(陰陽地理) 및 풍수도참(風水圖讖)), 그것은 초기 도교의 성립에 따라 다시 교리로 체계화되었다. 이 설은 그러한 사상으로서, 이후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인의 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1]

주요 내용 [ 편집 ]

이 설의 중심은 분묘·사찰·도관(道觀)·주거·촌락·도성을 축조하는 데 재화(災禍)를 물리치고 행복을 가져오기 위하여 지상(地相)을 생각하는 데 있다(풍수상지(風水相地)). 그것은 감여(堪輿)·지리를 연구하는 사람을 풍수가 또는 감여가·지리가·음양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들은 방위를 청룡(靑龍 : 동)·주작(朱雀 : 남)·백호(白虎 : 서)·현무(玄武 : 북)의 4가지로 나누어 바람(‘風’)이나 물(‘水’)의 양상(樣相)을 보고 구축물(構築物)의 위치를 정한다. 산천·언덕·당탑(堂塔)·가옥 등은 이들 4개의 동물을 상징하나 어느 것을 주로 하는가는 그 장소나 풍수에 따라 다르다.

큰 건축물을 예를 들면 대개 청룡을 중요시하여 남으로 향해서 백호를 우(右)로, 청룡을 좌로, 현무를 뒤로, 주작을 앞으로 하고 위치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같은 것일지라도 지점이나 산천을 달리하는 경우에는 다른 상황이 나타나므로 그 배당은 다만 풍수가만이 아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들의 설에는 옛날부터 비판이 있는데, 특히 송나라 장재(張載)·사마광(司馬光)·주희(朱熹) 등에 그것이 엿보인다.[1]

한국의 풍수 [ 편집 ]

한국의 풍수는 신라 시대에 전래되었으며 한국 전통의 대지모 사상과 중국의 음양오행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신라 말에는 도선(道詵)과 같은 대가가 나왔다. 그는 대개 중국에서 기원하여 발달한 참위설을 골자로 지리소왕설·산천순역설 및 비보설(裨補說)을 주창하였다.

곧 지리(地理)는 곳에 따라 쇠왕이 있고 순역이 있으므로, 왕처(旺處)·순처(順處)를 택하여 거주할 것과, 쇠처(衰處)·역처(逆處)를 인위적으로 비보(裨補 : 도와서 더하는 것)할 것을 말하여, 일종의 비기도참서(秘記圖讖書)를 남겼다.

뒷날 고려시대에 성행한 《도선비기》(道詵秘記) 등은 내용 전체가 도선의 글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사상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하여튼 그의 비기라고 칭하는 예언서가 그의 사후로부터 세상에 끊임없이 변천되어 인심을 현혹시킨 일이 많았다.

고려 태조도 도선의 설(說)을 고려하여 자손을 경계하는 훈요십조(訓要十條) 중에서 절을 세우는 데 산수의 순역을 점쳐서 지덕(地德)을 손박(損薄)하지 말 것을 유훈(遺訓)하였다. 물론 여기에는 후세의 절을 함부로 짓는 것을 방지하려는 정책적인 면도 있었던 것이다.

하여튼 이 설은 정치적인 면과 합하여 문제되곤 하였다. 묘청(妙淸)의 천도 운동도 고려 태조 이래 서경(西京 : 평양)의 중시와 그 시설에 한 원인이 있겠지만 서경은 서북의 가장 중추요, 부강임수(負江臨水)해서 ‘兩水來處是眞龍’의 빼어난 땅이며, 또 행주형(行舟形)이라 우물을 못 파고, 산이 낮아서 연료가 부족한 결점이 있다는 것이다.

개경(開京 : 개성)도 풍수상에 명당(明堂)이라 하여, 《삼국사기》 궁예전(弓裔傳), 《고려사》 태조세가(太祖世家), 최자(崔滋)의 《삼도부》(三都賦), 이중환(李重煥)의 《팔역지》(八域志), 송나라 서긍(徐兢)의 《고려도경》(高麗圖經), 명나라 동월(董越)의 《조선부》(朝鮮賦) 등에도 개경의 풍수를 찬양하고 있다.

즉 개경은 장풍득수(藏風得水)의 형국이 많고 내기불예(內氣不洩)의 명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산이 첩첩이 둘러 있어서 국면(局面)이 넓지 못하고 또 물이 전부 중앙으로 모여 들어서 수덕(水德)이 순조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것을 비보하기 위해 많은 사탑(寺塔)을 세웠다. 개성은 산과 골짜기로 둘러싸여 막힌 형세라 권신들의 발호가 많았다.

한편 조선은 한양에 도읍을 정하면서 나라의 정통성을 구변지국(九變之局)에서 찾았다. 구변지국(九變之局)은 ‘구변진단도(九變震檀圖)’·‘구변도국(九變圖局)’·‘구변도(九變圖)’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한민족은 지금까지 9천여년 동안 9번의 나라가 세워졌다고 보는 것이다. 구변진단도(九變震檀圖)는 아홉번 변하는 진단의 그림, 일종의 도참서로 『구변진단도』(九變震檀圖)의 구변(九變)은 국도(國都)의 변천(變遷)을 뜻한다고 해석했다.

고려 말~조선 초의 문신 권근(權近, 1352년 ∼ 1409년)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건원릉신도비명(建元陵神道碑銘)’에서 “예전부터 (고려) 서운관(書雲觀)에 전하던 비기(秘記)에 ‘구변진단지도(九變震檀之圖)’가 있는데 ‘나무를 세워 열매(아들)을 얻는다(建木得子)’는 설이 있었다”고 기록했다.

목자(木子)는 이(李)씨를 파자한 것으로 역시 개국한다는 뜻이다. ‘구변진단도’란 ‘아홉 번 변하는 진단(震檀, 단군조선)의 그림’이란 일종의 도참서(圖讖書)로, 천문(天文)·역수(曆數)·기후 등을 관측하던 고려 서운관에서 일부러 감추었다는 이야기다.

1445년(조선 세종 27년) 4월에 편찬되어 1447년(조선 세종 29년) 5월에 간행된《용비어천가》 3권 15장에는 “揚子江南(양자강남) 리샤 使者(사자) 보내신 七代之王(칠대지왕) 뉘마리가 / 公州江南(공주강남) 저샤 子孫(자손) 치신 九變之局(구변지국)이 사디리잇가”라고 ‘구변진단도’에 대한 언급을 기록하고 있다.[2]

풀이해 보면 “중국 진시황이 양자강 강남(금릉)을 꺼리시어 사자(使者)를 보내신들 (이미 하늘에서 정한) 칠대의 왕을 누가 막겠습니까. / (고려 태조가) 공주의 강남(전주지역)을 두려워하시어 그 자손을 가르치신들, 아홉 번 바뀌리란 이 나라 판국이 사람의 뜻이겠습니까.”

또한 “공주강 남 저샤 자손 치신 구변지국이 사디리잇가(公州江南, 畏且訓嗣, 九變之局 豈是人意).”라는 노래가 보이는데, 이는 이씨 건국이 하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밝혀 왕조의 정통성을 주장했다.

한양은 북서쪽 우백호가 높고 남동쪽 좌청룡이 낮아 맏아들인 장자가 잘 되지 못하고 차남 이하 아들이 잘되어, 임금과 재상, 거경(巨卿. 높은 벼슬아치)은 장남 아닌 사람이 많았다.

구변진단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구변진단도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구변진단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고려시대 말에 쓰인 《서운관비기》(書雲觀秘記)라는 책에 “이씨가 한양에 도읍하리라”라는 설이 퍼지자, 한양 삼각산 아래 오얏나무가 무성하다는 말을 듣고 이씨가 흥할 징조라 여겨 이곳의 오얏나무를 베기위해 벌리사를 보냈다는데서 나왔다.

현재 서울시 강북구 번동을 “벌리(伐李)”라고 칭하였고 후에 “번리(樊里)”가 되었다. 당시 번동의 자연 마을은 위치에 따라 윗벌리・가운데벌리・아랫벌리로 불렀다고 한다.[3]

벌리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벌리사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번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상에서 대강 보아 온 바와 같이 풍수지리설은 왕가(王家)에서는 물론 민간에게도 신앙하는 사람이 많았다. 오늘날도 《정감록》(鄭鑑綠)을 믿고, 한때 계룡산(鷄龍山)이 서울이 된다는 풍문이 돌았다. 아직도 민간에서는 풍수설을 좇아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니 하여 산소(山所)를 잘 써야 자손이 복을 받는다고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1]

미신으로서의 풍수 [ 편집 ]

지리적 입지에 따라 득실이 생기는 경험적 지혜에서 출발하였으나, 인간과 혈족과 국가의 길흉화복에 영향을 준다고 믿으면서 점차 미신화하였다. 현재 중국정부에서는 풍수를 “봉건시대의 미신행위”로 규정짓고 있다. 미국 및 서구지역의 심리학과, 의학, 출판물, 뉴스, 보도자료 등을 안내하는 ‘회의적 조사 위원회'(Committee for Skeptical Inquiry, 약칭 CSI)에서 발행된 기행문에서는 풍수를 “우주적 조화에 대한 미신적 신앙”으로 결론지었고 미국의 ‘Bullshit!’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 모순되며 양립할 수 없는 경우를 들어 일관성 없음을 평가하기도 하였다.[1]

미국에서 풍수는 1990년대부터 크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CNN 등 주요 언론에 풍수에 관한 기사가 실리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미국인들은 풍수의 개념을 중국인들에게 배웠기 때문에 풍수의 중국어 발음인 ‘펑슈에이’(Feng Shui)라고 말하며, 상당수의 사람들이 집과 사무실, 가구 등의 방향과 위치에 있어 풍수이론을 받아들이고 있다.[4][5]

동북아시아 한,중,일에서는 풍수에 대한 과학적 또는 학문적으로 첫 번째로 살펴보는 것이 산수인데 산과 물은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조건으로 산은 좌청룡(左靑龍), 우백호(右白虎), 전주작(前朱雀), 후현무(後玄武)의 좌향을 살펴보고 물은 흘러가는 입출구를 따져 뒤쪽은 산으로 에워싸여 있고, 앞으로는 하천이 흐르는 곡구나 산록 사면의 입지를 말하는 것으로, 풍수 지리적으로 볼 때 명당으로 보는 것이 풍수의 기본개념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산임수 지형은 대한민국의 지형 계절풍 기후 조건 등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이 사실이다.[1]

같이 보기 [ 편집 ]

각주 [ 편집 ]

참고 문헌 [ 편집 ]

풍수는 도읍이나 군현(郡縣), 혹은 마을 등 취락풍수에 있어서는 양기풍수라는 용어를 쓰고, 개인의 주택에 있어서는 양택풍수라는 말을 쓰며, 산소의 자리잡기 등 묘지풍수에 있어서는 음택풍수라는 개념을 씀으로써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그러나 양기·양택과 음택의 풍수 술법은 본질에 있어서는 같다.

『설심부』에 “양택이 음택과 다른 점은 그 지세가 넓어야 한다는 점이다. 양택은 국면이 좁으면 안 된다.”는 구절이 있는데, 이의 해의(解義)에서 양기와 음택의 법술이 다르지 않음을 다음과 같이 분명히 밝히고 있다.

즉, “양택은 사람 사는 곳이고 음택은 분묘이다. 양택이든 음택이든 그 조산(祖山)·내룡(來龍)·과(過)·협(峽)·기(起)·정(頂)과 청룡·백호·조산(朝山)·안산·나성(羅城)·수구 등이 두루 같은 것이지 다른 것은 거의 없다. 다만 다른 점은 양택의 경우는 그 혈장이 넓어야 하고, 음택의 경우는 혈장이 꽉 짜이게 좁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양지(陽地)는 면(面)이요, 음지(陰地)는 선(線)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양택은 반드시 그 지세가 관평(寬平)하고 명당의 규국이 넓어야지, 그렇지 못하고 가깝게 붙고 좁아서 답답하면 뭇사람의 집을 포용하기 힘든 것이다.”

따라서 양기나 양택을 보는 경우, 모든 것을 음택 보는 방법에 준하여 생각하면 될 것이고, 다만 규국이 중거(衆居)를 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지의 여부에만 신경을 더 쏟으면 된다.

그러나 산수취합(山水聚合)의 규모가 큰가 작은가에 따라서 양기의 종류는 달라져야 하는데, 『양택대전』은 “제일 넓은 곳에는 기전(畿甸)이나 성성(省城)이, 그 다음 규모에는 군(郡)이, 그보다 작으면 주읍(州邑)이, 그리고 아주 작은 곳에는 시정(市井)이나 향촌(鄕村)이 들어선다.”고 보았다.

『탁옥부』도 그 용어만 다르게 표현하여 “용이 수천 리에 이르면 경도(京都)를, 수백 리면 성군(省郡)을, 백여 리면 주읍을 이루는데, 시진(市鎭)과 향촌이라도 반드시 수십 리는 되어야 한다.

이것보다 짧으면 역량을 중(重)히 볼 것이 없다.”고 하였다. 인구 부양력이나 식수 및 생활용수의 공급, 그리고 대지의 확보라는 측면에서 이와 같은 양기풍수이론은 대단히 합리적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양택대전』에서는 평야인 경우 득수가 중요하고, 산곡인 경우 장풍이 우선된다고 하였다. 평야에서는 관평의 욕구는 충족되지만, 대체로 대강(大江) 연변에 입지하는 관계로 수해(水害)든 한해(旱害)든 강의 피해에 대한 대책이 제일 먼저 마련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득수법에 관한 풍수술을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산곡의 경우는 수해가 크게 문제되지 않기 때문에 득수에 대한 술법을 우선시킬 필요는 없다. 이때는 오히려 요풍(凹風)에의 두려움 등 국지 기후적인 영향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얼마나 안온한가 하는, 다시 말해서 주변 산세의 환포성(環抱性)을 염두에 두어 장풍법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양기·양택·음택은 이중환(李重煥)의 다음 여섯 가지 지리조건을 적용하여야 한다. 첫째, 수구는 휴소(虧疎), 공활(空闊)하지 않고 반드시 관진(關鎭)이 있어, 안으로 평야가 전개되는 곳이 좋은데, 관진은 이것이 서로 겹칠수록 대길의 지세라 하였다.

둘째, 야세(野勢)는 무릇 사람이 양기(陽氣)를 받아야 하므로 천광(天光)을 많이 받을 수 있는 광야가 더욱 길지라 상정하였다.

셋째, 산형(山形)은 주위의 산이 너무 고압(高壓)하여, 해가 늦게 뜨고 일찍 빠지며 밤에는 이따금 북두성도 보이지 않는 곳을 가장 꺼리는데, 이런 곳은 음랭(陰冷)하여 안개와 장기(瘴氣), 그리고 잡귀가 침입해서 사람을 병들게 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큰 들판에 낮은 산이 둘러진 것은 산이라 하지 아니하고 모두 들이라 한다.

넷째, 토색(土色)은 사토(砂土)로서 굳고 촘촘하면 우물이 맑고 차서 좋은 땅이 된다. 이런 곳은 음택으로 쓴다 하더라도 바로 그 위에만 시신을 모시지 않는다면 관계가 없다. 다섯째, 수리는 산수가 상배하여야 조화의 묘를 다하는 것인만큼 물이 없는 곳은 사람이 살 곳이 못 된다.

여섯째, 조산(朝山)은 산이 멀면 청수(淸秀)하고, 가까우면 명정(明淨)하며, 일견 사람을 환희하게 하고 증오하는 모습이 없으면 길상(吉相)이다. 조수(朝水)는 소천(小川)·소계(小溪)에 있어서는 역조함이 길상이나, 대천(大川)·대강(大江)에 있어서는 역으로 흘러드는 곳이 결코 좋지 못하다. 물이 흘러오면 반드시 용과 향합(向合)하여 그 음양을 합하고, 또 꾸불꾸불 흘러서 천천히 가야 하며 직사하듯 흐르는 곳은 좋지 않다.

음택에 있어서는 시신이 직접 묻히게 될 광중(壙中)을 찾는 데에는 정혈과 좌향이 중시되는데, 이를 위하여 무수한 술법이 개발되어 있다. 조안(朝案)·분수합수(分水合水)·천심십도(天心十道)·태극 등의 정혈법, 이십사향(二十四向)·팔십팔향(八十八向) 등에 의한 방위결정법과 십오도수법(十五度數法)·향향발미법(向向發微法) 등의 산수방위의 길흉해석에 관한 방법 등이 그 예이다.

양택에 있어서는 삼요(三要)를 중시하는데, 첫째 대문, 둘째 주된 거처인 방 또는 대청, 셋째 부엌을 뜻한다. 유지로(由之路)·거지소(居之所)·식지방(食之方), 즉 대문·안방·부엌은 현대적인 주택계획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생각할 때, 풍수에서 이 삼요의 배치방식을 논한 것은 매우 타당한 일이다.

이 중에서도 특히 대문이 중시되는데, 대문은 기(氣)의 출입구이며 기구(氣口)는 사람에 있어서의 입과 같기 때문이다. 입이 바르면 호흡과 음식 먹는 것이 편하고, 대문이 바르면 당기(堂氣)를 받아들이고 인물이 출입하는 데 편한 까닭이다.

(1) 풍수지리설의 정의와 기원

風水地理의 기원이 언제, 누구에 의하여, 어떤 과정과 방법으로 이루어졌느냐 하는 문제는 먼저 풍수지리를 어떻게 정의할 것이냐 하는 문제가 선결되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정의에 따라서 기원은 얼마든지 달리 설명되어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풍수의 정의는 풍수의 기원과 마찬가지로 설이 구구하다. 그러므로 논리 전개상 풍수의 기원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풍수의 정의부터 내리는 것이 옳다는 지적은 맞는 것이면서도 풍수지리의 기원 연구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 문제는 풍수지리상의 용어들이 쓰이기 시작한 시점을 기원으로 잡을 것이냐, 아니면 풍수지리의 본질인 地氣를 느끼기 시작한 시점을 기원으로 잡을 것이냐를 결정해야 할 것인데, 이에 대한 논의 조차도 간단한 것이 아니다.

먼저 저명한 교과서적 풍수지리 전적들에 나타나는 풍수사상의 정의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琢玉賦≫에서는 “수많은 지리서가 있으나 그 뜻을 묶으면 음양이라는 두 개념 사이에 머무는 것이니, 음양의 기묘함을 꿰뚫어 알 때 사람 사이에 나아가 地仙으로 행세하여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611)≪地理琢玉賦≫, 陰陽歌(上海, 會文堂書局, 年代未詳).이라 하여 그 요체를 음양이라 파악하였다.≪雪心賦≫는 “地理의 理法에서는 坐向 방위에 대한 것이 논리를 세우는 처음”612)≪雪心賦辯謂正解≫辯論三十篇, 地理辯(臺灣, 竹林書局, 1975).이라 하여 방위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靑囊經≫에서는 다시 음양을 내세웠고613)“人得陰陽玄妙之理 知其衰旺生與死”(≪地理正宗≫권 5, 靑囊 序).≪金彈子≫에서는 “지리에서 땅을 보는 일은 모두 다 龍이 主이고 穴이 다음이며 砂城과 水가 또 그 다음이다”614)≪金彈子地理元珠經≫巒頭心法(上海, 校經山房, 年代未詳).고 말하여 龍·穴·砂·水의 네 가지를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山法全書≫에서 더욱 분명하게 “풍수지리설을 요약해서 말하면 용·혈·사·수의 四法”615)≪地理大成 山法全書≫卷之首 上, 龍穴砂水釋名 總說(上海, 九經書局, 年代未詳).이라 표현하고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옛 지리서의 공통적인 구조로 용·혈·사·수를 같이 다루어 온 것은 전통이었던 듯하다. 당의 楊筠松이 穴에 대한≪倒杖≫이라는 책을 씀으로써 4법을 분리 서술하는 경향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풍수 기본서에서는 역시 이 방법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중국에서도 풍수지리의 이론이 확립된 훨씬 후대의 일로, 초기에는 地氣論에 중점이 두어졌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예컨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풍수지리서인≪靑烏經≫은 우주 만물을 음양 5행의 氣로써 이루어진 것으로 보고 인생의 길흉화복도 바로 그 기의 운행에 따른다고 하였다.616)文化財管理局 편,≪韓國民俗綜合調査報告書-墓地風水篇-≫(1989), 77쪽. 이 점은 葬縱이라고까지 추앙되는 東晋時代 郭璞의 ≪錦囊經≫에서도 마찬가지로, “장사지낸다는 것은 生氣를 타는 일”이라 하였고, 이어서 張說이 주해하기를 “만물의 생겨남은 땅 속의 것에 힘 입지 않은 것이 없다”617)≪錦囊經≫氣感篇 1, 奎章閣圖書(圖書番號 1741).고 할 정도이다. 즉 풍수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지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풍수 기원에 관한 논의는 이러한 지기론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풍수의 기원에 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뉘어진다. 하나는 한반도 자생설이고 다른 하나는 중국으로부터의 도입설이다.

먼저 가장 극단적인 자생 풍수지리설의 주장은 구석기시대부터 그 연원을 찾고 있다. 이에 의하면 한반도는 지형적인 구조에 있어서 산이 많은 까닭으로 산악과 산신에 대한 숭배사상이 구석기시대부터 전해져 내려 왔으며, 산신과 산악의 숭배사상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하여 독특한 지석묘문화를 형성하였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있어서의 풍수지리사상은 산악지대의 지리적인 환경조건과 산악숭배사상, 地母觀念, 영혼불멸사상 및 三神五帝思想 등에 의하여 자연적으로 발생하게 되었으며, 檀君의 神市 선정, 王儉의 符都 건설, 지석묘 설치에서의 위치 선정 및 신라 탈해왕의 半月城 선정 등은 우리나라 고대에 풍수사상이 직접적으로 건축에 적용된 실례라는 것이다.

또한 이 견해는 음양오행설의 발생 배경을 3신 5제사상에 두고 있으며, 3신 5제사상은 풍수지리설이 발생하게 된 모체적 사상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신라 말기에 활발해진 중국과의 문화 교류로 더욱 풍수가 발달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 주장의 골자이다.618)朴時翼,≪風水地理說 發生背景에 關한 分析硏究-建築에의 合理的인 適用을 爲하여-≫(高麗大 建築工學科 博士學位論文, 1987), 230∼243쪽.

이와 유사한 고조선시대 발생설을 찾아볼 수 있다. 즉≪三國遺事≫단군신화에 나오는 “桓因이 三危太伯을 보았다”는 말을 한울을 건설하기 위해 그 땅의 풍수지리를 보았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삼위태백은 三山 즉 主山과 좌우의 靑龍·白虎를 뜻하는 바, 그것은 乾·離·坎을 말한 것이며 太伯山 또한 주산 즉 乾山을 의미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고대 우리 민족의 명칭인 東夷란 천문, 풍수지리, 풍각쟁이(幾何), 노래하는 활량들의 뜻이라고 단정하였다.619)朴容淑,≪韓國의 始源思想-原型硏究를위한 方法序說-≫(文藝出版社, 1985), 2∼24쪽.

―――,≪神話體系로 본 韓國美術論≫(一志社, 1975), 13쪽.

위의 두 견해보다 약간 시기를 뒤로 끌어내려 삼국의 건국 이전 상고 때를 그 발생시기로 본 견해가 있지만, 이 또한 풍수사상이 우리 민족 내부에서 자체적으로 발생한 地理思想이란 점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에서는 먼저 풍수의 정의를 다음과 같이 내리고 있다. 즉 풍수라는 것은 地理 혹은 堪輿라고도 하여 國都나 국토로부터 한 개인의 주택, 분묘에 이르기까지 그 위치가 산천의 地相과 형세에 따라 길흉화복이 있다는 것이다. 땅에는 만물을 化生하는 생활력이 있으므로 땅의 활력 여하에 따라 국가나 국토나 인생에 중대한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 풍수사상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면서, 기원에 관해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여 놓고 있다.

풍수지리설도 陰陽八卦와 五行生氣의 관념을 토대로 하여 일종의 학문으로 발달된 것인데, 그 기원을 찾자면 중국 상고시대까지 소급하여야 할 것이지만, 우리나라에는 당의 풍수설을 도입하기 이전에 이미 풍수설이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상고시대의 우리 민족과 마찬가지로 지상에서의 생활상의 요구 때문에 적당한 토지의 선택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택을 선택함에는 산수가 놓인 모양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국도를 占定함에 있어서는 방위와 안전의 지세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토지 선택의 방법은 점점 추상적으로 그리고 전문적으로 진보되어 하나의 相地術로 발달하여 갔다.

이러한 논리 아래 그 증거로 백제 시조 온조왕이 鳥干·馬黎 등 10명을 거느리고 漢山의 負兒山岳에 올라 지세를 살펴보고 강남의 땅이 북은 漢山을 끼고 동은 高岳에 웅거하고 남은 如澤을 바라보고 서는 대해를 막아 天險地利하므로 국도를 정하였다는 기록과, 고구려 유리왕이 尉那城은 산수가 험하고 땅이 기름져서 그 곳으로 천도하였다는 기록 등을 꼽았다. 이렇게 풍수설에 가까운 것이 상고시대에 신봉되었는데, 신라 말엽에 당으로부터 학술적인 풍수지리설이 수입되자 급속도로 풍수설이 확산되게 되었다는 것이다.620)金得榥,≪韓國思想史≫(白巖社, 1958), 195∼201쪽. 따라서 이 주장은 엄밀히 말하자면 순수한 풍수의 한반도 자생설이라기 보다는 최초 우리나라에 풍수적 사고방식이 있었고 뒤에 체계화된 중국의 이론 풍수가 도입된 것이라는, 일종의 혼합설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모든 현대 地官들의 풍수 저술들은 한결같이 철저하게 중국으로부터의 도입설을 기정 사실로서 받아들이고 있다.

한편 풍수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과 민속학자들의 경우는 역사적 사실들을 실증적으로 제시하며 중국으로부터의 도입을 주장하는데, 그들 사이의 차이는 도입 시기가 삼국시대냐 아니면 신라의 통일 이후냐의 시대 간격 차이 뿐이다.

먼저 현존하는 문헌 중 풍수지리설의 존재를 입증하는 최초의 기록인 崇福寺碑文을 근거로 하여 풍수사상이 신라 통일 이후 당과의 문화적 교류가 빈번하던 때에 비로소 전래된 것으로 본 견해가 있다.621)李龍範,<風水地理說>(≪한국사≫6, 국사편찬위원회, 1983), 272쪽. 특히 우리 나라는 원래 산악국으로 ‘到處有明堂’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풍수 조건에 적합한 곳이 무수하여, 결국 이러한 자연적 환경이 풍수지리사상의 성행과 폐해를 유치한 중요한 이유가 되었거니와, 신라통일 이전 삼국시대에는 아직 그러한 術法과 사상을 받아들인 듯한 형적은 없다고 단정하고 있다.622)李丙燾,≪高麗時代의 硏究-특히 圖讖思想의 發展을 中心으로-≫(亞細亞文化社, 1980), 21∼30쪽.

그런데≪三國遺事≫와≪三國史記≫에 나타나는 고구려 주몽 동명왕과 백제의 시조 온조왕이 수도를 정한 것이라든가 기타 삼국시대 때부터 행해진 新月, 三日月形 등에 입각한 卜地思想을 모두 풍수지리사상으로 보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삼국시대 초기부터 풍수사상이 널리 유행하고 있었다는 주장도 있다.623)任東權,<三國時代의 巫, 占俗>(≪白山學報≫3, 1967), 168∼172쪽.

또한≪삼국사기≫탈해이사금조에 나오는 “脫海가 兼知地理했다”는 말은 곧 풍수지리를 알았다는 뜻이므로 서기 57년에 이미 풍수지리사상이 도입되었다고 보기도 한다.624)盧道陽,<韓國文化의 地理的 背景>(≪韓國文化史大系≫Ⅰ, 高麗大 民族文化硏究所, 1970), 76쪽.

朴鐘鴻,<韓國哲學史>(≪韓國思想史-古代篇-≫, 法文社, 1974), 90쪽.

이에 반해서 四神壁畵가 그려져 있는 平南 龍岡郡 梅山里, 新德里 및 眞池洞 소재의 고구려 고분과 忠南 扶餘郡 陵山里 고분은 그 주위 산세가 확실히 풍수상의 조건을 구비하고 있어서 그에 의하여 선정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특히 백제에서는 풍수지리에 관한 서적까지 유행되었던 모양으로 무왕 3년에 三論宗의 승려인 觀勒이 曆法, 遁甲方術書와 함께 천문지리서를 가지고 일본에 가서 그 곳의 僧正이 되었던 적이 있는데, 관륵이 가지고 갔다는 지리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당시 백제에서 유행하고 있던 풍수지리 관계의 서적임에는 틀림없다고 보고, 삼국시대에 이미 풍수지리설이 들어왔다고 주장하였다.625)崔柄憲,<道詵의 生涯와 羅末麗初의 風水地理說>(≪韓國史硏究≫11, 1975), 129∼130쪽.

그리고 고구려 및 백제의 능묘에서 四神圖가 등장하고 또 公州 松山里 武寧王陵의 葬法이 풍수지리설과 일정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우리 나라에 풍수사상이 전래된 시기는 중국적 음양오행설이나 천문관이 전래된 삼국시대 초가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626)趙 珖,<歷史的 側面에서 본 風水地理說>(국립민속박물관 편,≪한국의 풍수지리-제7회 학술강연회 발표 내용-≫, 1982), 76쪽. 또≪삼국유사≫의 기록을 빌어 삼국시대 초기에 이미 풍수지리설이 널리 퍼져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기도 한다.627)金光彦,≪韓國의 住居民俗誌≫(民音社, 1988), 21쪽.

한편 풍수지리사상이 천문사상이나 방위사상, 음양오행사상, 도참사상 등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태동, 전개, 변화해 온 것은 주지의 사실이지만 문제는 비록 풍수사상이 그 이론을 체계화하는 과정에서 이들 사상의 내용을 도입하였다 할지라도 시간적으로 더 소급하여 존재하였던 이들 사상 자체가 풍수사상의 기원이 될 수는 없으며, 음양오행설로 무장된 유교 경전이 풍수지리의 경전보다 우리 나라에 더 일찍 전래되었다고 해서 그것이 한국 풍수사상의 기원이 될 수는 없다고 주장되기도 하였다.628)李夢日,≪韓國 風水地理思想의 變遷過程≫(慶北大 博士學位論文, 1990), 84∼85쪽.

그러나 필자는 위의 여러 학자들이 열거한 예들이, 풍수가 중국으로부터 이미 들어왔다는 증거로는 미흡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우선 4神벽화의 개념은 풍수 이전에 陰陽方位論에서 상당히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던 것이기 때문에 그러하고, 초승달 모양의 지세라는 것도 일종의 우리 自生 風水의 한 전령으로서 그것이 결코 중국으로부터의 도입을 증거해 주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본다.

특히 고분 벽화에 그려진 사신도를 바로 풍수지리의 것으로 단정하는 견해는 4신사상이나 천문방위사상을 풍수지리사상과 혼동한 결과이다. 곧 풍수에 四神砂 개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원래가 漢·魏와 六朝時代에 회화와 공예가 기본이 된 것이므로 분묘 장식에 쓰였을 뿐인 것이다. 물론 그 후에는 각 방위를 수호하는 상징성을 포함하게 되지만, 거기에는 풍수의 본질인 地氣論的 속성이 전혀 배제되어 있기 때문에 풍수의 증거로는 삼을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필자는 전래의 자생 풍수지리가 이미 이 나라에 있어 오다가, 백제와 고구려에 중국으로부터 이론이 확립된 풍수지리가 도입되면서 서서히 알려지게 되었고, 결국 삼국 통일 이후에는 신라에도 전해져 한반도 전체에 유포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신라에 풍수가 늦어졌다고 보는 이유는 신라의 왕릉 터가 유독 풍수적 地氣와는 관련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즉 자생 풍수에 중국으로부터 도입된 이론 풍수가 혼합된 것은 신라 통일 무렵으로 보는 것이다.629)崔昌祚,<韓國 風水思想의 歷史와 地理學>(≪정신문화연구≫42,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1), 127∼1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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