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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주석 – 로마서 – 예사랑 성경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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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로마서 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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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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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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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주석 로마서 2장 1-10절 | 갓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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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칼빈주석 로마서 2장 1-10절 | 갓포스팅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그 심판에 대해서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주지 않으면 결코 그것을 두려워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칼빈주석 로마서 2장 1-10절 | 갓포스팅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그 심판에 대해서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주지 않으면 결코 그것을 두려워 … 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롬 2:1,2 1 그러므로 … 사람아, …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이 책망의 말씀은 외적인 거룩함을 과시함으로써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위선자들을 겨냥한 것이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만족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으셨다고 생각하기까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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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신학 – 로마서2장주석. 롬2:17-29 유대인과 율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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ë¡ë§ì ê°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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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ë¡ë§ì ê°í´ 그가 인용한 말씀은 시편 32:1-2이다. 그것은 사람이 죄가 없어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고 죄가 있지만 죄사함을 받기 때문에 의롭다 하심을 받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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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주석 성경 강해말씀] 하나님의 심판(롬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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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심판(롬 21-29)
Top 30 로마서 2 장 주석 29860 Good Rating This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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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주석
헬라어 로마서 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칼빈주석 로마서 2장 1-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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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 Once for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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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로마서 2장 « Once for All 이 문서는 칼빈의 로마서 주석과 함께 로마서를 공부하면서 인상 깊었던 내용 및 개인적으로 반추한 것들을 기록한 노트입니다. 1장 끝 부분에서 인간 죄악의 가장 … 1장 끝 부분에서 인간 죄악의 가장 추악한 면모를 언급했다. 2장에서는 우리 모두가, 특히 그런 추악과는 상관 없는 사람들도, 실상 자신을 살피면 그런 죄악이 범한 계명을 자신도 범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And he says that they did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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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GL NOCR – 메튜 헨리 주석, 로마서 0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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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HANGL NOCR – 메튜 헨리 주석, 로마서 02장 2:1 신의 공정한 통치(로마서 2:1-16) 앞장에서 사도는 유대인들이 보는대로 이방 세계가 암담하고 죄악투성이라는 것을 들어내 보여 주고 있다. 호크마 주석, 강해2:1 신의 공정한 통치(로마서 2:1-16) 앞장에서 사도는 유대인들이 보는대로 이방 세계가 암담하고 죄악투성이라는 것을 들어내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본장에서는 유대인 세계 역시 암담하고 죄악뿐이요 아니 어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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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주석
로마서 제 2장
=====2:1
그러므로 – 전후 문맥으로 보아 이 접속사가 어떤 부분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지
분명하지 않다. 혹자는 이 접속사가 앞에서 설명된 이방인들의 부도덕한 행위와 관련
이 있다고 주장한다(Hendriksen). 또한 어떤 학자는 본절 전체를 1:20과 같이 삼단 논
법식으로 재구성하여 다음과 같은 사상적 전개로 이해하고자 했다(J. Murray). (1) 다
른 사람의 행동을 너는 판단한다. (2) 너도 똑같이 그 행동을 한다. (3) ‘그러므로’
너는 너의 행동을 정죄하는 것이고, 너도 핑계치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종종 어떤 문장을 다른 주제로 전환하고자 할 때 별 의미 없이 접속사를 사용하여 주
의를 환기시키는 문법 구조를 사용한다(삼하 8:1;10:1;13:1;히 4:14). 바울도 이와 같
이 이방인의 죄악상을 폭로하는 주제로 전환하는 시점에서 별 의미없이 이 접속사를
사용하였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 ‘판단하는’의 헬라어 ‘크리논'( )은 하나님의
‘판단'( , 크리마)과는 구분되는 것으로서 ‘의심한다'(눅 24:38), ‘헤아린
다'(마 7:2), ‘구별하다'(마 13:30)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본절에서는 인간이 그 이웃
에 대하여 편견을 가졌다는 의미로 쓰여졌다(요 8:15;약 4:12). 한편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지시하는지의 문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혹자는
이 부류의 사람을 스스로 남을 규탄하고 지도하며 판단하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선생'(약 3:1)이라고 주장한다(Matthew Henry). (2) 또 혹자는 ‘판단하는 사람
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스 호 크리논'( ) 가운데 ‘파스’
( , ‘모든’)를 강조하여 ‘남을 판단하는 모든 사람’이란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를 포함하며 판단하는 일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자들이라고 한다(J. Barmby). 그러나
본장 전체의 흐름으로 보아 본절의 이 말은 율법을 받고 자랑하면서 율법에 따라 살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을 칭하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 같다. 물론 유대
인이라는 구체적 표현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당시 유대인들의 삶이 이웃을 판단하는 교
만한 삶이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가장 적합한 대상이라는 견해를 마치
이방인은 이 부류에서 제외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또 다른 오해를 발생하게 할
것이다.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 바르트(Barth)는 하나님께 핑계할 수 없는 부류에 하나님
을 모르는 사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사람도 포함시킨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비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더라도 유한한 인간이며 시간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이라
고 한다. 즉 인간은 제한되고 연약한 존재로 항상 죄악 가운데 그 영향권 아래 살아가
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 핑계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바르트의 주장대로라면
핑계치 못할 자의 범주에 바울 자신도 포함되므로 바울 역시 또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본 절은 신앙에서 떠난 유대인들을 향한 바울의 책
망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Luther, Calving, Hendriksen). 유대인이 하나님
의 율법을 받아 이방인보다 더욱 밝은 계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
역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 핑계할 수 없는 것이다.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판단력이
무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의를 이룰 능력도 무력해졌다. 그렇기에 남을 판단하
는 자는 자신이 자신을 정죄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정죄함이니’로 번역된 헬라어
‘카타크리네이스'( )는 ‘카타'( , ‘…에 반대하여’)와
‘크리노'( , ‘구별하다, 판단하다’)가 합쳐진 ‘카타크리노'(
)의 현재 직설법 2인칭 단수 동사로서 ‘세아우톤'( , ‘너 자신을’)
과 함께 쓰여 스스로를 죄있다고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혹자에 의하면 이 ‘정죄’는
남을 저주했을 때 분만 아니라 용서했을 때도 받게 되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이 판단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Lenski).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 이 표현은 유대인들이 범하는 잘못이 이중
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Calvin). 즉 그들은 이방인과 똑같은 잘못을 범하
고 있으면서도 뻔뻔스럽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신랄하게 정죄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
다. 이것을 좀더 간략하게 나타내자면 ‘어두움과 위선'(Murray)이 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바울의 논리는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한다(마 7:1-5;툭 6:41, 42).
=====2:2
하나님의 판단 – 여기서의 ‘판단'( , 크리마)은 공의의 하나님께서 내리
시는 심판 또는 정죄를 의미한다(약 3:1). 사람이 스스로 하는 판단은 항상 한계가 있
고 상대적이지만 하나님의 판단은 절대적인 표준이므로 모든 범죄자에 대해 심판과 정
죄를 내리심이 당연하다. 이러한 하나님의 판단(심판)은 종말에 궁극적으로 이루어지
는데, 어느 누구도 그의 심판에서 제외되거나 특권을 부여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
님은 진리이시므로 그의 절대적인 공의 성취하시기 때문이다(Murray).
진리대로 – 이 말에는 심판의 순결성과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내면을 감
찰하시어 판단하시는(삼상 16:7)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Calvin, Harrison, Barmby)
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가 아노라 – 본절에서 부울이 사용한 1인칭 복수 ‘우리’와 1:5에서의 ‘우리’는
그 지시하는 바가 각기 다르다. 즉 본절에서는 수신자와 바울 자신을 같은 공동체로
여기고 ‘우리’라고 하고 있고, 1:5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바울 일행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는 송신자들을 의미하고 있다.
=====2: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행하는 사람아 – 바르트(Barth)는 본절을 매우 실존주의
적으로 해석한다. 즉 그는 판단하는 일이 어떤 체계나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
며, 그러한 체계나 사상에서 나오는 선행은 인간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에
게 있어서 체계적인 사상은 복음의 생동력을 잃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이성을 통해 체계적인 사상을 통합하고자 했던 헤겔(Hegel)에 정면 도전한 키에르 케
고르(Kierkegaard)의 실존주의적 신앙 노선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체계적인
사상을 고집하면 복음의 생명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은 교회사를 통해서 입증될 수 있
다. 그러나 기독교는 논리와 사상의 체계에만 집착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
단적으로 사상의 체계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전자의 경우는 기독교를 논리의 체계 속
에 질식(窒息)시키게 하며, 후자는 신비 주의에로 흐르게 하기 때문이다. 오직 기독교
는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체계를 지님과 동시에 복음의 생명력을
지녀야 참 종교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 예수의 가르침 중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재물 바치는 것을 빙자하여 자기 부모를 부양하고 공궤
(供饋)할 책임을 회피했다(막 7:11).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종교라는 허울 아래 ‘하니
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추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한 행위인 것이
다. 이 같은 이들은 겉모습과 말을 그럴 듯 하지만 속마음은 이미 부패해서 회칠한 무
덤(23:27, 28)과도 같이 양면성을 갖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의
공의로운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다(고후 5:10). 설령 그 사람이 유대인 중에 유대인
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정죄적 선언을 피할 수 없다. ‘피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프세'( )는 ‘사라지다’ 또는 ‘도망가 안전한 곳을 찾다'(행
19:6)라는 뜻이 있고, ‘에크퓨고'( )의 미래중간태이다. 죄인이 여호와
의 낯을 피하여 숨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시 139:8;벧전 3:12).
=====2:4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멸시하느뇨 – ‘인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게이'( )는 현재 직설법 3인칭 동사로서, 하나님의 지속적
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이방의 우상숭배와 부도덕, 그리고 남을
판단하는 어떤 자들의 교만을 지켜보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방향을 전환하여 마음과
태도를 바꾸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속성, 곧 ‘인자하심’ 때문이다. 본절에
서 ‘인자하심’은 거듭 사용되어 중요한 사상임을 보여 준다. 본 구절의 ‘인자하심’
( , 크레스토테토스)은 하반절의 ‘인자하심'( , 크
레스톤)과 의미상 별차이는 없지만 특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미하며(11:22), 보다 포
괄적이고 근본적인 뜻을 갖는다. 이는 또한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것과 같은 성품을
시사한다(마 7:9-11). 그러나 유대인들을 포함한 모든 죄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이용하여 오히려 자기의 의를 자랑할 뿐더러 그의 오래 참으심을 자신들의 안전을 보
장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더 나아가 인생들은 악한 일을 행함에도 속히 징벌을 행하
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너그러움을 이용하여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였다(전 8:11).
본절에서 이와 같은 죄인의 태도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
카타프로네이스) 것이라고 지적된다. 유대인의 교만과 이방인의 부도덕은 같은 죄악으
로서 하나님을 깔보거나 업신여기는 방자한 행동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풍성함을
멸시하는 죄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죄인들 가운데 나타나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동시에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복음이 바로 죄인들에게 주어졌다(1:16).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
님의 택한 백성이기에 죄를 범할지라도 그 죄에 따라 공의의 심판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든지, 아니면 자기들이 죄를 범해도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심판을 내리시지 않
기에 자기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에 별로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무시해 버렸다. 이것은 곧 하나
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도 소홀히 여겼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완악한
심령에 대하여 바울은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5절)이라고 표현했다. 한편 본
절의 ‘용납하심'( , 아노케)은 잠시 쉬는 것을 의미하며 ‘자제’
(self-restrain)의 개념을 지닌다. 본절에서는 ‘너그러움’을 뜻하며 구체적으로 ‘징벌
의 지연’을 뜻한다. 또한 ‘길이 참으심'( , 마크로뒤미아)은 ‘어
떤 충격에도 곧바로 반응하지 않음’을 뜻한다. 이 두 단어는 ‘인자하심'(
, 크레스톤)과 합해져서 심판을 연기하여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벧후 3:15) 하나
님의 성품을 시사한다(Harrison).
■■=====2:5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 – 인간이 갖고 있는 완고함이나 회개치 않는 마음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상반된 대조를 보인다. ‘회개치 아니한’의 헬라어 ‘아메타노에
톤'( )은 하나님의 권고적인 회개를 뜻하는 ‘메타노이안'(
)과 부정접두사 ‘아'( )의 합성어이다. 이는 하나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개조되거나 변화되지 않는 마음을 뜻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거부하는 반항
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이러한 반항은 빛에 대한 거부로서 온순하고 순종적인 마음을
잊어 버린 완고한 행동이다. 또한 ‘고집’에 해당되는 헬라어 ‘스클레로테타'(
)는 ‘완악’, ‘완고’ 또는 ‘잔인’을 뜻하는 ‘스클레로테스'(
)의 목적격으로서 영적으로 경화(硬化)되거나 딱딱하게 굳어버린 상태를 의
미한다. 이들 두 단어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와 함께 자주 사용되었으며(신
9:27) 본절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서로의 의미를 보다 선명하게 밝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죄인은 자기의 고집과 회개치 아니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
를 쌓고 있는 것이다.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 ‘진노의 날’을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의
티투스(Titus) 장군에 의해 포위되어 함락되던 것과 반드시 연관지을 필요는 없다. 1
절에서 본절까지의 내용이 하나님을 거역한 유대 민족 전체에 대한 것으로 생각될 수
도 있으나, 6절부터는 개인의 행위에 따른 심판이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본
절은 민족적인 심판에 대한 언급이라기보다는 개인의 행위에 대하여 보응하는 마지막
심판으로 이해해야 한다(Luther, Calvin, Hendriksen, Harrison). 한편 ‘그 날'(
, 헤 헤메라)은 종말론적인 용어로서 ‘주의 날'(
, 헤 헤메라 퀴리우). 곧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고전 3:13;살전 5:4). 16절에 언
급 된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은 구체적으로 마지막 심판 날을 가리
키므로 본절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2:6
그 행한대로 – 심판의 기준이 되는 ‘행함’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을 가리
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생각하는 바까지도 포함한다(시 139:1-4). 본절에서의 ‘행
함’은 특히 인간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었으며 또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의미한
다고 볼 수 있다. 즉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선을 베
풀었을지라도 그의 선행이 아무 쓸모없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관련을 맺
었으나 그 믿음에 따른 행위가 없으면 그는 구원을 얻을지라도 상급은 없다. 그러므로
본절은 인간이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행위에 그 보응을
받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보응하시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도세이'( )는 ‘아포디도
미'( ) 의 미래 직설법으로 좋거나 나쁜 의미의 모든 보상을 뜻한
다. 따라서 본 구절에 의하면 믿는 자에게는 선한 상급이 주어지겠지만, 불신자는 그
형■편에 따라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고후 5:10). 그리고 그러한 심판은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공정한 것이다.
=====2:7
참고 선을 행하여 – 본문을 보면 바울이 6절에서 언급했던 ‘행위’가 단순히 율법적
인 차원의 것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참고 선을 행한다’는 것은 성도가 영
광의 면류관을 향해 끊임없이 달음박질 해나가는 것(빌 3:12-14)으로 이해되는데 이는
이신 칭의의 가르침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마 24:13;골 1:23;히 3:14;계 2:10).
성경에서 말하는 ‘선’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 이상이며 오직 하나님을 믿는 성도만 그
믿음에 따라 하나님과 이웃에게 ‘선’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의 선한 사
마리아인의 비유와(눅 10:25-37), 포도나무 비유(요 15;1-14)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성도의 선행이란 예수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으며 오직 그와 연합된 가운데서 비롯될
수 있다. 즉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이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며(갈 5:16-18;6:8), 그렇
게 될 때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가운데 선이 나온다(갈 5:22, 23). 그리고 이 열매는
낙심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행할 때 거두게 된다(갈 6:9).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 – 이것들의 본질은 영생이며, 그것들이 나타나는 장소
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즉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며 사는 성도에게 주
어지는 특권을 이 세 가지로 표현했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된 ‘영광’은 하나님의 속성
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영광’과는 다른 것으로서(1:23 주석 참조)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게 될 때에 나타나게 될 변화를 가리킨다(J.
Murray). 그리고 성도가 얻게 될 그 ‘영광’은 ‘존귀한 것’이며 결코 ‘썩지 아니하는
것’이다.
영생으로 하시고 – 영생( , 조엔 아이오니온)은 항상 궁극
적인 구원으로 표현되었다. 유대교도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을 준다는 것을 가르쳤으나
그들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율법을 행함으로 생명얻기를 원했다.
그러나 율법을 행하면서 썩어질 육체의 증표(證標)를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허락
되지 않았다(8:6). 영생은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으며(6:23) 또한
그를 믿는 자들에게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요 1:12;3:15). 한편 본절에서 영
생은 6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보응’의 목적격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8절의 ‘노와 분’이
라는 말과 대조를 이룬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심판이라는 개념보다 생명이
라는 개념이 더 중요하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후 그를 따르는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과 영생을 소망하며 다시 오
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삶을 보장받고 있기 때문이다.
=====2:8
당을 지어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이스 여스 에리데이아스'(
)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에리데이아'( )
가 ‘보수(報酬)에 얽매인 고용인’이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에리도스'( )
에서 파생되었다면, 본절은 ‘이기적인 욕망이나 야망을 가진 자들에게’라고 번역될 수
있고, ‘다툼’이나 ‘논쟁’의 의미를 가진 헬라어 ‘에리스'( )에서 나왔다면,
‘논쟁하는 자들에게’로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빌 1:16에서의 ‘에리데이아'(
)는 분명히 ‘에리스'( )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빌
2:3에서는 ‘다툼’이라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이기적인 욕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
다. 그외 갈 5:20이나 약 3:14 등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의미로 사용
되었다. 그리고 본절은 단순히 ‘당을 지어’로 번역되면 바울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
가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합쳐서 ‘이기적인 욕
망을 따라 논쟁에 가담하는 자들’로 이해하는 편이 좋다. 즉 진리에 대한 명확한 이해
가 없어 어떤 분쟁이 일어나면 항상 쉽게 발뺌할 수 있거나 이익이 되는 편에서는 자
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 민중들 사이에서
나타나던 공통된 특징이었다.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 – 진리와 의는 상호 보충적인 관계로 쓰여진
(엡 4;24) 반면 진리와 불의는 상반적인 관계로 쓰여졌다(1:18;고전 13:6;살후 2:12).
진리로 자기들의 생활을 다스리지 않고(1:21) 강퍅하게 회개치 않는 마음으로 자기의
의를 좇는 자는 결국 불의에 순종하는 자로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진리와
불의의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불순종은 불의에 순종하는 것
이며 또한 붕의에 순종하는 것은 궁극적인 영원한 의를 포기하는 행위이기에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는 하나님의 분노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분노는 불
신앙에 따른 적극적인 불순종에 대하여 발생하는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하시려는 궁극적인 구원을 거부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보응은 더욱 가증될 것
이다. 바울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라고 같은 말을 반복한 것도 그
들에게 임할 진노의 강도를 보다 명백하게 나타내고자 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 ‘노’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모스'( )는 보통 ‘분
노’로 번역되지만 ‘진노'( , 오르게)와 특별한 구별 없이 사용될 수 있다. 바
울이 유사한 의미를 가진 두 단어를 같이 사용한 것은 일종의 중복어법으로 하나님께
서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하여 무시무시한 진노로 보응하시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
다.
=====2: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 ‘각 사람의 영'(
, 파산 프쉬켄 안드로푸)이라는 표현은 사람의 영혼과 육체 중 ‘영혼’만을 의
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울은 ‘영’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쉬케'( )를 ‘사
람’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기 때문이다(13:1;행 2:41, 43). 또한 전후 문맥상 ‘사
람’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고데(Godet)의 견해에 따르면 9절과 10절의 구
성은 7절과 8절의 대조적 구성을 거꾸로 재배열 시킨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볼 때
‘각 사람’이라는 말과 ‘각 사람의 영’이라는 말은 동일한 의미로서 ‘모든 사람’을 의
미한다. 따라서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이라는 표현 역시 악의 계획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임할 보응의 보편성(6절)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악을 행하
는 각 사람은 선을 행하는 각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행한대로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된다.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 8절에 언급된 ‘노와 분’이 심판자이신 하나님 편에 속한
것이라면 본절의 ‘환난과 곤고’는 하나님이 발하신 ‘노와 분’으로 인하여 약한 자에게
내려지는 결과이다. 그리고 이 두 단어는 선을 행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인 ‘영광
과 존귀와 평강’과 반대되는 것이기도 하다. 혹자는 ‘환난’은 외적인 것으로 ‘곤고’는
내적인 것으로 설명한다(Hendriksen).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 본 구절은 다음 10절에서도 반복된다.
구원이나 은혜와 마찬가지로 심판과 형벌에 있어서도 유대인이 우선적이다. 언약과 약
속에 따른 복이 유대인들에게 먼저 주어졌듯이 그 복을 거절한 데에 대한 형벌도 유대
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왜냐하면 우선적인 특권을 부여한 자에게 거기에 상응
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시 50:3-6;눅 12:47, 48;벧전
4:17). 한편 본절에 언급된 ‘헬라인’은 모든 이방인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
당하다.
=====2:10
영광과 존귀와 평강 – 7절에서도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이 나왔으나 본절에
서는 ‘썩지 아니함’ 대신 ‘평강’이 언급되었다 혹자는 이것을 ‘하나님과의 화목'(5:1)
으로 이해하기도 하며(Black, Murray), 또다른 학자는 보다 넓은 의미로 해석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의 모든 축복 속에서 새롭게 변화된 영혼과 육체로 영원히 즐거워하며 충
만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구원’이라고 설명한다(Hendriksen). 어떤 의미이든 바울은
악한 자에게 형벌로 내리시는 ‘환난과 곤고'(9절)에 대조를 이루는 용어로서 ‘평강’이
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 결과가 상반되는 것을 보여준다
=====2:11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 본절은 앞 부분(1-10절)과 그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12-29절)을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데, 문자적으로 ‘하나
님께서는 어떠한 불공평도 없으시다’, 또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편애도 없으시다’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편파적(偏頗的)인 것이 될 수 없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라는 (5절) 구절이 이미 증명한 바 있다.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특권
이나 지위가 아니라 사람이 행한 일들의 성격이 어떠한 것이냐의 문제이다.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 , 프로소폴렘프시아)는 개념을 히브리적
사고에서 온 것으로서 재판관의 편견이나 편애를 지시하는 의미로 쓰여졌다(삼상
16:7;대하 19:7;욥 34:19). 하나님은 편견이나 편애가 없어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외형상 유대인에게 우선권을 부여한 사실과 모순을 이루는 것처럼 보
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대인 역시 그의 행한대로 판단받으며, 오히려 그들에게 있어
서는 우선권이 부여된만큼 악행에 대하여 더 큰 환난과 곤고를 당해야 한다. 유대인이
기 때문에 편견과 편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특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라도 그분의 선하신 뜻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마 20:15). 오직 공의로우신 그분만이 판단받는 자들의 다양한 입장을 고려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로 있다.
=====2:12
본절에서 바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요지는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이든지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든지 누구나 자신들의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복했느냐 하지 않
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 ‘율법 없이'( , 아노모스)라는 말은 부사로서
신약성경에서는 여기서만 사용되었다. ‘율법 없이'( , 아노모스)의 명사형
‘아노미아'( )나 형용사형 ‘아노모스'( )는 대개 ‘불법’이나
‘범법’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절의 경우에는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
다(고전 9:21). 즉 ‘아노모스’는 14절의 ‘타 메노몬 에콘타'(
, ‘율법을 갖지 아니한’)와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는 바, 계약을 맺
어 율법의 기준에 따라 살기로 약속한 일이 없는 자들, 곧 씌어진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로 이해되어야 한다(행 2:23).
율법 없이 망하고…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 바울은 율법 없이 범죄
한 자들은 ‘망한다'( , 아폴룬타이)라고 서술하고 율법 아래서 범
죄한 자들은 ‘심판을 받으리라'( , 크리데손타이)고 서술한다.
이 두 단어는 모두 수동태로서 하나님의 능동적인 보응이 있을 것을 시사한다. 율법을
받지 아니한 이방인들은 우주 만물과 양심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지 않음으
로 인하여 파멸된 것이며(1:20),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게 되었
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율법의 기준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특
별히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된다는 주장은 매우 중요한 사상이
다. 바울은 율법을 자랑거리로 여기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정죄하거나 규제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정의하였다. 그러나 율법은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이고, 율법 자체가
멸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율법 아래서 범죄한 자들은 이 율법을 기준으로 심판받아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J. Murray)
=====2:13
율법을 – 12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율법'( , 노모스)은 관사가 없이 사용
되었다. 공인 본문(Textus Receptus, Majority Text)에는 정관사 ‘투'( )가 ‘노
무'( , ‘율법의’)앞에 있는데, 대부분의 고대 사본( , A. B)에는 이 관사가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 ‘노모스'( , ‘율법’)에 관사가 붙고 안 붙고에 따라
약간의 의미상 차이가 있다. (1) ‘노모스’ 앞에 정관사 ‘호'( )가 붙으면, 거의 대부
분 모세 율법을 의미한다. (2) ‘노모스’ 앞에 관사가 붙어 있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모세의 율법이나 율법의 특정한 조문(條文)을 의미하기 보다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
서 추상적인 법 개념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양심 속에 주어진 법이나, 자연적 계시
속에 나타난 법이나 어떤 순종을 요구하는 일반적인 개념의 법을 가리킨다. (3) 특수
한 경우로서 관사가 생략되어 있으나 모세 율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경
우이다. 이는 헬라어 문법상 이미 알려진 어떤 확실한 개념을 보다 선명하게 나타내거
나 그 단어의 본래적 개념을 강조하고나 할 때 관사를 생략하는 용법으로서 율법의 특
수한 의미를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로 쓰인 경우가 있다. 만약 본절을 관사없는 사본을
따라 해석한다 하더라도 ‘율법’은 12절의 ‘율법’과 같은 것으로서 모세의 율법을 뜻하
는 특수한 경우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J. Murray).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익히 배우고 들어
서 잘 알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의 자랑거리다. 그렇지만 이 지식은 그들을 심판에서
제외시킬 수 있는 힘이 될 수 없다. 율법을 들었으면 행해야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율
법이 의의 법칙일지라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만이 그것으로 인해 살리라고 가르친다(레
18:5;신 4:1). 그러나 본절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
니라 모든 사람이 범죄할 수밖에 없는 죄인(3:23)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
논리를 전개하고 있을 뿐이다.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 본서에서 ‘의롭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카이오데손타
이'( )가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단지 자신
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롭게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문제가 달랐다(J. Murray). 글자 그대로 보면 ‘의롭게 된다’는 것이 율법을 행하는 자
에게 해당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기준과 목적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바울은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
나님 편에서 보시는 판단에 의하여 칭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2:14
이방인이 본성으로 –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본성(nature)을 따라 부분적으로 행할
수 있을지 모르나 완전히 행할 수는 없으므로 이방인 역시 죄인일 수밖에 없다. 간혹
이방인도 율법의 행위를 수행하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 자들이 있으니
이들은 바울이 전개하는 논리의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자들이다. 비록 본절이나
앞절(13절)에서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표
현하였지만 계속되는 바울의 논리는 어느 누구도 율법의 요구대로 완전히 순종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3:9, 19). 무엇보
다도 본절은 율법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받은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방인들도 양심의 법칙을 따라 율법이 요구하는 바
행위를 할 때가 있음을 가르침으로써 유대인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경고하고 있다.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 인간은 그 본성에 심어진 양심과
생각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의 율법에 직면하게 된다(J. Murray). 즉 인간들의 본성 속
에 존재하는 도덕적 성향은 하나님의 일반적 계시에 의하여 생긴 것으로서 명령하거나
금지하는 양심의 소리를 수반한다(Murray).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율법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본래적인 양심의 법을 따라 일반 계시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님의 계시
를 유비적(類比的)으로 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율법은 궁극적인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
다. 이방인이 갖는 양심의 법은 간혹 모세 율법과 비슷한 법과 규례를 가질 수 있으
나, 율법의 궁극적인 의미에는 전혀 도달할 수 없다.
=====2:15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 ‘양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네이데시스'(
)는 문자적으로 ‘함께 안다’라는 의미로서 본절에서는 ‘함께 증거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쉼마르튀루세스'( )와 함께 쓰여 사람의 마
음속에서 연대적으로 증거하므로 율법처럼 증인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한다는 뜻으로
쓰여졌다. 양심은 인간이 마음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살피면서 때로는 자신을 정죄하기
도 하며, 율법과 일치한 행동에 대하여는 스스로 선한 증거로 인정하기도 하는 인간의
‘바른 인식의 주체’인 것이다(고전 8:7-12). 칼빈(Calvin)은 양심을 정의하면서 ‘합리
적인 행위에 대하여서는 변호하며 악한 행실에 대하여서는 고발하고 유죄 선고를 내리
기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양심은 타락한 인간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도덕적 성품을 보여준다(고호 4:2). 그러나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은 계속해서 죄 가
운데 자신을 방치하여 스스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거짓 속에서 멸망으로 나아
간다(갈 6:3;딤전 4:2;딛 1:15).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 이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생각이 갈등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준다. 즉 사람이 어떤 잘못을 범했을 때 그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한쪽에서는 그것을 합리화시키려는 생각이 일어난다. 이러한 갈
등이 반복되는 상태가 모든 사람의 내부에 존재한다. 이것이 곧 인간의 양심에 새겨져
있는 율법적인 요소인 것이다.
율법의 행위 – 율법에 따르는 행위로 해석되기 보다는 율법적인 요소가 인간의 양
심 가운데 활동하며 그것이 행위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통해
양심의 갈등을 느낀 후에 이전보다 나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2:16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 본 구절은 문자적으로 ‘내 복음을 따라'(
, 카타 토 유앙겔리온 무)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말은 바울 자신
이 전파한 복음을 근거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바
울은 ‘내 복음’이란 표현을 취했는데, 이것은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어 ‘이신 칭의’의
교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전파한 모든 내용을 가리킨다. 초대 교육 교부들은
이것을 ‘누가복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나(Origen, Jerome)여기서는
바울의 전파 내용 중 종말론적인 설교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타당하다. 왜
냐하면 바울이 본절에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바울은
‘내 복음’이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복음’의 출처가 자기 자신인 것처럼 나타내고 있
다. 그러나 이는 바울의 사도적 권위와 깊이 연관되는 표현으로 바울 자신이 예수께로
부터 사도로 세우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는 인식을 드러내 주며 자기가
그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은 이
러한 부르심에 대해 전인격적으로 반응한다는 뜻에서 복음을 자신의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이 용어가 원문에서는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라
는 구절 뒤에 따라 나오지만,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복음과 연결지을
핑요는 없다(Calvin). 오히려 본 구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단독 사역이 아니
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고자(요 5:27;행 17:31)하
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음이 성취되어 인간들에게 주어졌듯
이 그 복음으로 인한 심판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행되는 것이 정당한 절차일 것
이다. 예수께서도 심판날 왕권을 가지고 오실 것을 말슴하셨다(마 16:28).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 심판날에는 감추인 것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드러나게 된다(고전 4:5).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신랄하게 비판하신
것도 어떤면에서는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에 대한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 앞
에서는 선하게 행동하고 선한 말을 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에
외식하는 자들의 마음과 생각을 심판날에 남김없이 드러내실 것이다(마 12:36, 37).
그날이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헤메라'( )는 문장 맨 앞에
위치하여 강조적으로 사용되었다. 바티칸 사본(B;codex Vaticanus)에서는 정관사 ‘헤’
( )가 표기되어 있는데 문법상으로는 맞는 듯하다. 그러나 이처럼 정관사를 생략하는
것은 바울의 서술 방법 중 하나이다(12절). 더욱이 5절에서 ‘그날’에 대해 언급하면서
정관사를 사용했기 때문에 굳이 이를 사용하지 않아도 의미가 통하고 본절에서는 내용
자체가 마지막 심판 날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으므로 생략한 것 같다.
=====2:17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으나 본절 첫머리에 ‘이데'( , ‘보라’), 혹은
‘에이 데'( , ‘그러나 만약’)가 있다. 흠정역(KJV)이 번역한 공인 본문
(Textus Receptus)은 전자를 취하지만, 대부분의 사본들과 비교적 오래된 사본들( ,
A, B, D, K, )은 후자를 취하였다. ‘에이 데’는 직설법과 함께 사용되어 실제로 발
생될 수 있는 상태를 가정하는 조건절을 갖는다. 따라서 본절의 ‘에이'( , ‘만약’)
는 20절까지 조건문으로 취한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 ‘칭하는’의 헬라어 ‘에포노마제'( )
는 ‘이름을 붙이다’ 또는 ‘칭함을 받다’라는 뜻을 가진 ‘에포노마조'(
)의 현재 조건문으로 그 의미는 ‘유대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대인'( , 유다이오스)은 ‘히브리인'( , 헤브
라이오스)이나 ‘이스라엘인'( , 이스라엘리터스)이라는 용어와 구
별된다. 히브리인이라는 호칭은 언어 군(群)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고, 이스라엘인이라
는 호칭은 구속사적인 개념을 강조하는데, 유대인이라는 호칭은 헬라인이나 이방인들
과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모세 율법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교 공동체로서의 특성을 반영
한다.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부여받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특권을 자랑할 뿐 아니라 그 특권을 받지 못한 이
방인들을 경멸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월감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순종함으로 나타났으
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그들은 특권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
에 따르는 책임을 무시했다. 그들은 제사장 나라에 걸맞는 거룩한 백성으로서의(출
19:6) 특권을 유지하려면 ‘언약을 지켜야 할'(출 19:5) 책임이 있음을 무시했다. 그들
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한다고 내세웠으나 실상은 율법의 요구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면서 그들이 부여받은 특권만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모습은 세례 요한의 책망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마 3:9).
=====2:18
본절에서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해서 얻게 된 유익이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해 주셔야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
서 여러 모양으로 계시하셨기에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백성
이 되었다. ‘하나님의 뜻’은 구체적으로 ‘구원 계시’를 가리키지만 좀더 폭넓게 하나
님의 섭리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용어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 계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계시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생활
이 요청된다.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 본 구절에 대해서는 해석자들마다 약간씩 견해가
다르다. 예를 들어 틴델(Tyndale)은 ‘선악에 대한 경험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하며,
모펫(Moffat)은 ‘종교에 있어서 생동력있는 것에 대한 의식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하
기도 한다. 또한 영역 성경중에서 이 구절을 ‘도덕적인 구분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것’으로 번역하기도 한다(NEB). 이러한 해석상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칼빈(Calvin)
은 선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선악을 구별하는 것을 동시에 인정한다. 이러한 해석은
메튜 헨리(Mattew Henry)같은 주석가도 동의한다. 그렇지만 본문이 뜻하는 바는 칼빈
의 첫번째 견해에 더 접근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본절은 유대인들이 단순히
선악간에 판단한다기 보다는 율법의 선한 교훈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해 선한 것을 인정한다는 사실은 그 선을 옳은 원리로 받아들였
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믿음으로 율법에 따르는 선한 삶을 살
지 않은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
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한'(1:21) 이방인들의 어리석음과 동일하다.
=====2:19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 본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본문을
부산 구문의 형식으로, 직역하면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양을 가지고서’가 된
다. 이에 대해 칼빈(Calvin)은 이유를 나타내는 분사 구문으로 이해하여 ‘지식과 진리
의 모양을 가지고 있으므로’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영역 성경 중에서도 이 구절을 이
유를 나타내는 접속사(because)를 사용하여 번역했다(NIV). 이러한 해석은 본문의 흐
름상 적합하다고 본다. 한편 ‘지식’과 ‘진리’는 특별한 의미상의 구별 없이 중복어법
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한다(Black). 그리고 ‘규모’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르
포시스'( )는 ‘모양’이나 ‘외모’를 뜻하지만 외적인 모양만을 가
리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참된 표현’을 의미하기도 한다(Barmby). 그래서 혹자는
‘모르포시스’를 ‘본질'( , 휘포스타시스)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다(Black). 간혹 학자들 중에는 ‘모르포시스’를 유대인들의 ‘외식’과 같이 ‘과장된
외형'(Calvin)이나 ‘경건이 없는 겉 모양'(Matthew Henry)으로 이해하기도 하나 이러
한 해석은 본문의 성격상 적합하지 않다. 본문에서는 유대인이 율법을 통해 가진 지식
이나 진리가 거짓되다든지 알맹이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한
참된 지식의 본질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Murray, Barmby) 그 지식을 좇지 않
고 자기 임의대로 행하는 것을 책망하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 – 성경에서 소경과 어두움에 있
는 자는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눈이 먼 상태에 있다는
것은 어둠 가운데서 헤매이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사 42:19;56:10;마 6:23;요
1:5;고후 4:4;요일 2:11). 여기서도 바울은 역시 중복어법을 사용하여 자신이 전하고
자 하는 메시지의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어두움에 있는 자들의 빛’이라는 표현
은 이방인을 향한 유대인들의 사명을 시사한다. 유대인들은 토라를 자기의 등불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토라를 소유한 자신들이 이방인들에게 등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
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사명마저도 자신들의 특권을 자랑하는 도구로 삼
고 말았다. 오늘날 성도들도 ‘주의 말씀은 내발에 등’이라고(시 169:105) 고백하면서
빛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유대인들처럼 말씀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자랑하려 하는 잘못
을 범하는 것이다.
=====2:20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 – 영적으로 ‘이리석은 자’와 ‘어린아이’는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린아이’가 영적인 의미에서 상징하는 바가 ‘연약한 존
재'(고전 14:20;엡 4:14) 또는 ‘어리석은 존재'(잠 22:15)로 나타난 점으로 미루어 보
아 본 구절도 앞절과 마찬가지로 중복어법에 의한 강조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편
‘훈도’란 용어는 헬라어 ‘파이듀테스'( )로 보통 ‘선생’으로 번역되
는 헬라어 ‘디다스칼로스'( )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지만, 좁은 의
미에서 ‘파이듀테스’는 잘못을 범할 때 채찍질도 가하는 ‘엄한 선생’을 가리킨다.
스스로 믿으니 –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잘못은 특권을 부여받은 자들이라
는 자기 만족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울은 갈라디아서에서도 유사한 표현을 사
용하고 있는데(갈 6:3, 4) 본절과 같이 행함 없는 자랑을 위선이라고 폭로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갖지 못한 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특권으로 말미암아 더 큰 행악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자기
의 신념을 신뢰하였을 뿐만 아니라 부패한 인간의 도덕적 무능력에 지나친 기대를 가
짐으로 인하여 아무것도 아닌 초라한 가운데서 자신을 속이는 잘못을 범하였다. 또한
율법주의자들은 그 이웃들에게 자신도 질 수 없는 무거운 짐들을 지우는 반율법적인
잘못을 범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들의 신념은 자신을 속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만
홀히 여기는 결과를 초래함으로 인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징계를 초래하고 말았다.
=====2:21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 이 질문은 유대인들
의 형식적인 삶에 대하여 다음에 계속되는 네 가지 질문을 유도하기 위한 대표적인 의
문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유대 랍비들의 문헌에서 자주 발견되고 있다
(Hendriksen).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만이 율법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
며 진리를 알고 있다고 자부했고(요 9:34), 이 점은 주님께서도 인정해 주신 바 있다
(ak 23:3). 그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자기들이 가르치는 바를 자신들은 지키지 않으면
서 의로운 체 하는 그들의 외식이었다(마 23:23-28). 이러한 의미에서 유대교 지도자
들은 여호와 신앙을 형식적인 종교로 전락시킨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행동으로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처럼 나타내 보이지만, 실상
그들의 심령은 전혀 하나님과 무관하며 단순히 형식적이고 외면적인 종교 지도자에 불
과했다.
=====2: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 ‘간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이큐오'(
)는 히브리적 표현에서 ‘영적 간음’이나 ‘우상 숭배’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
도 하였으나(계 2:22) 본절에서는 우상 숭배를 따로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영적
간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바울은 의도적이며 구체적인
사실을 선명하게 표현하면서 그들 가운데서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온갖 음행과 간통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가장 엄격한 율법을 종교의 원리로 삼고 있었
지만, 그들의 도덕적 기준은 여전히 부패한 인간 본성의 심연에 머물러 있었다.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 앞에서 언급된 ‘도적질’과
‘간음’이란 용어를 비추어 볼 때 바울은 십계명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
대인은 십계명에 따라 우상을 가증스럽게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나 우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을 탐내어 도적질했다. 신사(神社) 물건을
도적질 한 것이 악행인가에 대해서 성경이 명백히 가르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지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본절에서 바울은 그러한 행위가 죄인지 죄가 아닌
지에 대해서 논하고자 이 질문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가증스러이 여기는 우상 제물을
탐낸, 우상 숭배 이상의 죄악을 폭로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신명기에서는 이 문제
를 암시적으로보여주면서 그 행위가 죄가 된다고 교훈하고 있다. 즉 신명기는 우상들
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어 취하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그 금지의 이유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일로 인해 올무에 빠질 것이 염려되기 때문인 것을 들고 있다(신 7:25).
=====2:23
학자들 사이에는 본절을 의문문으로 해석하느냐 평서문으로 해석하느냐에 대한 의
견이 분분하다. 평서문을 주장하는 학자들(Cranfield)은 24절에서 헬라어 원문상 24절
에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 )가 사용되고 있으므로 본절은 그 접속사를
유도할 만한 이유를 묻는 의문문이 되든지 아니면 그 이유를 유도해 내는 평서문이 되
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본절은 이유를 묻는 의문문의 성격을 띠지 않았으므로
이유를 유도해 내거나 확정을 나타내는 평서문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생각할 근거는 본문 가운데서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24절의 접속사 ‘가르’
( )는 21절에서 23절까지에 언급된 다섯 가지 질문을 하게 된 근거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본절은 내용상 앞에서 언급된 네 가지 질문의 형식과 잘 부
합될 뿐 아니라 특히 21절에 언급된 첫번째 질문을 보다 구체화시켜 대비적으로 표현
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 나머지 세 가지 질문을 요약한 질문도 된다. 따라서 본절은
의문문으로 해석하는 편이 본문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된다.
율법을 범함으로 – 이말은 유대인들이 범한 잘못들(22, 23절)이 곧 율법을 범한 행
위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21절에서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는 질문의
내용이 율법을 범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것임도 본절에 잘 나타나고 있다.
=====2:24
기록된 바와 같이 – 이 표현은 본절이 사 52:5의 인용구임을 시사해 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이사야 선지자의 권위를 내세우는 동시에 자신의 논리를 더욱 확고히
정당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바울이 이사야 선지자의 직접적인 선포를 간접적인
내용으로 변형시켰으나 내용상으로는 동일한 의미를 유지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 당시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마치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을 소유한 거룩한 백성인 양 취급했다. 그것은
실제로 그들의 삶이 고상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지나친 자랑에 이방인들이 속
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방인들이 바울이 고발한 것과 같은 유대인의 범죄함을 발견
한다면 유대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도구가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
한다고 말하는 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자들임을 바울은 분명하게 밝
히고 있다(J. Murray).
=====2:25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 바울은 유대인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율
법과 함께 또 다른 자랑거리인 할례의 문제로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자신이 의도한 복
음의 본질에 한 걸음 더 접근하고 있다. 유대인을 이방인과 구별시키는 유일한 기준은
율법이지만 표식은 할례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지금까지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들
어 논리를 전개해 왔지만, 이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의 자랑거리요 표식인 할례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더욱더 유대인들이 변명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여기서 ‘율법
을 행한다’는 것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하나님의 편에 서 있을 때 유대인들의 할례가 그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
이지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형식적인 할례 의식에 그치며 이는 그들을 아브라함의 자
손으로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신적인 힘을 상실케 하고 만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바
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하나님이
능히 이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고 경고했던 것이다.
네 할 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 유대인들은 할례 자체가 의의 조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으로 오해했다. 실제로 유대교의 전승에 따
르면 ‘게헨나(지옥) 문 옆에 앉았을지라도 할례받은 사람은 아무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아브라함이 책임을 져 준다’는 내용의 교훈이 있다(Harrison). 이와 같이 유대
인들 사이에서는 할 례가 다른 어떤 의식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바울이 형식적인 유대인들의 할례는 무할례와 같다고 선포한 것은 혁명적인 선언
이었다. 이러한 바울의 선포로 인해 유대인의 자랑은 쓸모없는 것으로 변하게 되며 형
식적인 신앙에서 실제적인 신앙으로의 결단이 요구되고 있다.
헬라어 로마서 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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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오 아나폴로게토스 에이 오 안드로페 파스 호 크리논 엔 호 가르 크리네이스 톤 헤테론 세아우톤 카타크리네이스 타 가르 아우타 프라쎄이스 호 크리논
개역개정,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새번역,1 그러므로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이든지, 죄가 없다고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남을 심판하는 일로 결국 자기를 정죄하는 셈입니다. 남을 심판하는 그대도 똑같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를 가리키는 말
우리말성경,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여, 그대는 변명할 수 없습니다. 그대는 남을 판단하는 그것으로 그대 스스로를 정죄하고 있습니다. 남을 판단하는 그대가 똑같은 일들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 그러므로 아,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누구든 변명의 여지가 없습니다. 남을 심판하면서 똑같은 짓을 저지르고 있으니, 남을 심판하는 바로 그것으로 자신을 단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 You, therefore, have no excuse, you who pass judgment on someone else, for at whatever point you judge the other, you are condemning yourself, because you who pass judgment do the same things.
영어NASB,1 Therefore you are without excuse, every man of you who passes judgment, for in that you judge another, you condemn yourself; for you who judge practice the same things.
영어MSG,1 Those people are on a dark spiral downward. But if you think that leaves you on the high ground where you can point your finger at others, think again. Every time you criticize someone, you condemn yourself. It takes one to know one. Judgmental criticism of others is a well-known way of escaping detection in your own crimes and misdemeanors.
영어NRSV,1 Therefore you have no excuse, whoever you are, when you judge others; for in passing judgment on another you condemn yourself, because you, the judge, are doing the very same things.
헬라어신약Stephanos,1 διο αναπολογητος ει ω ανθρωπε πας ο κρινων εν ω γαρ κρινεις τον ετερον σεαυτον κατακρινεις τα γαρ αυτα πρασσεις ο κρινων
라틴어Vulgate,1 propter quod inexcusabilis es o homo omnis qui iudicas in quo enim iudicas alterum te ipsum condemnas eadem enim agis qui iudicas
히브리어Modern,1 לכן אין לך התנצלות אתה בן אדם הדן תהיה מי שתהיה כי במה שתדין את חברך תחיב את נפשך באשר אתה הדן תעשה כמעשהו׃
성 경: [롬2:1]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
그러므로 – 전후 문맥으로 보아 이 접속사가 어떤 부분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지 분명하지 않다. 혹자는 이 접속사가 앞에서 설명된 이방인들의 부도덕한 행위와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Hendriksen). 또한 어떤 학자는 본절 전체를 1:20과 같이 삼단 논법식으로 재구성하여 다음과 같은 사상적 전개로 이해하고자 했다(J. Murray). (1) 다른 사람의 행동을 너는 판단한다. (2) 너도 똑같이 그 행동을 한다. (3) ‘그러므로’ 너는 너의 행동을 정죄하는 것이고, 너도 핑계치 못할 것이다. 그렇지만 유대인들은 종종 어떤 문장을 다른 주제로 전환하고자 할 때 별 의미 없이 접속사를 사용하여 주의를 환기시키는 문법 구조를 사용한다(삼하 8:1;10:1;13:1;히 4:14). 바울도 이와 같이 이방인의 죄악상을 폭로하는 주제로 전환하는 시점에서 별 의미없이 이 접속사를 사용하였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 ‘판단하는’의 헬라어 ‘크리논'(*)은 하나님의 ‘판단'(*, 크리마)과는 구분되는 것으로서 ‘의심한다'(눅 24:38), ‘헤아린다'(마 7:2), ‘구별하다'(마 13:30)라는 뜻으로 사용되며 본절에서는 인간이 그 이웃에 대하여 편견을 가졌다는 의미로 쓰여졌다(요 8:15;약 4:12). 한편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을 지시하는지의 문제는 의견이 분분하다. (1) 혹자는 이 부류의 사람을 스스로 남을 규탄하고 지도하며 판단하는 입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많은 선생'(약 3:1)이라고 주장한다(Matthew Henry). (2) 또 혹자는 ‘판단하는 사람아’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스 호 크리논'(*) 가운데 ‘파스’ (*, ‘모든’)를 강조하여 ‘남을 판단하는 모든 사람’이란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를 포함하며 판단하는 일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는 자들이라고 한다(J. Barmby). 그러나 본장 전체의 흐름으로 보아 본절의 이 말은 율법을 받고 자랑하면서 율법에 따라 살지 아니하는 유대인들을 칭하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할 것 같다. 물론 유대인이라는 구체적 표현이 나타나지는 않지만 당시 유대인들의 삶이 이웃을 판단하는 교만한 삶이었음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가장 적합한 대상이라는 견해를 마치 이방인은 이 부류에서 제외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은 또 다른 오해를 발생하게 할 것이다.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 바르트(Barth)는 하나님께 핑계할 수 없는 부류에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사람도 포함시킨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비록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더라도 유한한 인간이며 시간에 속한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인간은 제한되고 연약한 존재로 항상 죄악 가운데 그 영향권 아래 살아가므로 누구든지 하나님께 핑계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바르트의 주장대로라면 핑계치 못할 자의 범주에 바울 자신도 포함되므로 바울 역시 또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있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따라서 본 절은 신앙에서 떠난 유대인들을 향한 바울의 책망이라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Luther, Calving, Hendriksen). 유대인이 하나님의 율법을 받아 이방인보다 더욱 밝은 계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살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께 핑계할 수 없는 것이다.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은 판단력이 무능해졌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의를 이룰 능력도 무력해졌다. 그렇기에 남을 판단하는 자는 자신이 자신을 정죄하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정죄함이니’로 번역된 헬라어 ‘카타크리네이스'(*)는 ‘카타'(*, ‘…에 반대하여’)와 ‘크리노'(*, ‘구별하다, 판단하다’)가 합쳐진 ‘카타크리노'(*)의 현재 직설법 2인칭 단수 동사로서 ‘세아우톤'(*, ‘너 자신을’)과 함께 쓰여 스스로를 죄있다고 판단하는 것을 의미한다. 혹자에 의하면 이 ‘정죄’는 남을 저주했을 때 분만 아니라 용서했을 때도 받게 되는데 그것은 자기 자신이 판단의 기준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Lenski).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 이 표현은 유대인들이 범하는 잘못이 이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음을 보여준다(Calvin). 즉 그들은 이방인과 똑같은 잘못을 범하고 있으면서도 뻔뻔스럽게 다른 사람의 잘못을 신랄하게 정죄하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좀더 간략하게 나타내자면 ‘어두움과 위선'(Murray)이 될 수 있겠다. 이와 같은 바울의 논리는 예수의 가르침에 근거한다(마 7:1-5;툭 6:41, 42).
오이다멘 데 호티 토 크리마 투 데우 에스틴 카타 알레데이안 에피 투스 타 토이아우타 프라쏜타스
개역개정,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새번역,2 하나님의 심판이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공정하게 내린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말성경,2 우리는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에게 진리대로 하나님의 심판이 내린다는 것을 압니다.
가톨릭성경,2 우리는 그러한 짓을 저지르는 자들에게 내리는 하느님의 심판이 진리에 따른 것임을 알고 있습니다.
영어NIV,2 Now we know that God’s judgment against those who do such things is based on truth.
영어NASB,2 And we know that the judgment of God rightly falls upon those who practice such things.
영어MSG,2 But God isn’t so easily diverted. He sees right through all such smoke screens and holds you to what you’ve done.
영어NRSV,2 You say, “We know that God’s judgment on those who do such things is in accordance with truth.”
헬라어신약Stephanos,2 οιδαμεν δε οτι το κριμα του θεου εστιν κατα αληθειαν επι τους τα τοιαυτα πρασσοντας
라틴어Vulgate,2 scimus enim quoniam iudicium Dei est secundum veritatem in eos qui talia agunt
히브리어Modern,2 וידענו כי משפט אלהים כפי האמת על עשי אלה׃
성 경: [롬2:2]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
하나님의 판단 – 여기서의 ‘판단'(*, 크리마)은 공의의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 또는 정죄를 의미한다(약 3:1). 사람이 스스로 하는 판단은 항상 한계가 있고 상대적이지만 하나님의 판단은 절대적인 표준이므로 모든 범죄자에 대해 심판과 정죄를 내리심이 당연하다. 이러한 하나님의 판단(심판)은 종말에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어느 누구도 그의 심판에서 제외되거나 특권을 부여받지 못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진리이시므로 그의 절대적인 공의 성취하시기 때문이다(Murray).
진리대로 – 이 말에는 심판의 순결성과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내면을 감찰하시어 판단하시는(삼상 16:7) 하나님의 절대적인 공의(Calvin, Harrison, Barmby)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우리가 아노라 – 본절에서 바울이 사용한 1인칭 복수 ‘우리’와 1:5에서의 ‘우리’는 그 지시하는 바가 각기 다르다. 즉 본절에서는 수신자와 바울 자신을 같은 공동체로 여기고 ‘우리’라고 하고 있고, 1:5에서는 복음을 전하는 바울 일행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에, 거기서는 송신자들을 의미하고 있다.
로기제 데 투토 오 안드로페 호 크리논 투스 타 토이아우타 프라쏜타스 카이 포이온 아우타 호티 쉬 에크픀세 토 크리마 투 데우
개역개정,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새번역,3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을 심판하면서, 스스로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여, ㉣그대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까? /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를 가리키는 말
우리말성경,3 그런 일을 행하는 사람을 판단하면서 똑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이여, 그대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을 줄로 생각합니까?
가톨릭성경,3 아, 그러한 짓을 저지르는 자들을 심판하면서도 스스로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이여, 그대는 하느님의 심판을 모면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까?
영어NIV,3 So when you, a mere man, pass judgment on them and yet do the same things, do you think you will escape God’s judgment?
영어NASB,3 And do you suppose this, O man, when you pass judgment upon those who practice such things and do the same yourself, that you will escape the judgment of God?
영어MSG,3 You didn’t think, did you, that just by pointing your finger at others you would distract God from seeing all your misdoings and from coming down on you hard?
영어NRSV,3 Do you imagine, whoever you are, that when you judge those who do such things and yet do them yourself, you will escape the judgment of God?
헬라어신약Stephanos,3 λογιζη δε τουτο ω ανθρωπε ο κρινων τους τα τοιαυτα πρασσοντας και ποιων αυτα οτι συ εκφευξη το κριμα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3 existimas autem hoc o homo qui iudicas eos qui talia agunt et facis ea quia tu effugies iudicium Dei
히브리어Modern,3 ואתה בן אדם הדן את אשר פעלו כאלה ועשית כמעשיהם התחשב להמלט ממשפט האלהים׃
성 경: [롬2:3]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행하는 사람아 – 바르트(Barth)는 본절을 매우 실존주의적으로 해석한다. 즉 그는 판단하는 일이 어떤 체계나 사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하며, 그러한 체계나 사상에서 나오는 선행은 인간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있어서 체계적인 사상은 복음의 생동력을 잃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이성을 통해 체계적인 사상을 통합하고자 했던 헤겔(Hegel)에 정면 도전한 키에르 케고르(Kierkegaard)의 실존주의적 신앙 노선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체계적인 사상을 고집하면 복음의 생명력을 상실하게 되는 것은 교회사를 통해서 입증될 수 있다. 그러나 기독교는 논리와 사상의 체계에만 집착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극단적으로 사상의 체계를 부정해서도 안 된다. 전자의 경우는 기독교를 논리의 체계 속에 질식(窒息)시키게 하며, 후자는 신비 주의에로 흐르게 하기 때문이다. 오직 기독교는 복음의 진리를 왜곡시키지 않는 범위에서 체계를 지님과 동시에 복음의 생명력을 지녀야 참 종교로서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 예수의 가르침 중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재물 바치는 것을 빙자하여 자기 부모를 부양하고 공궤(供饋)할 책임을 회피했다(막 7:11). 이러한 그들의 행위는 종교라는 허울 아래 ‘하니님’을 이용하여 자신의 명예나 이익을 추구하고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한 행위인 것이다. 이 같은 이들은 겉모습과 말을 그럴 듯 하지만 속마음은 이미 부패해서 회칠한 무덤(23:27, 28)과도 같이 양면성을 갖고 있었다. 이와 같은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의 공의로운 심판을 결코 피할 수 없다(고후 5:10). 설령 그 사람이 유대인 중에 유대인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정죄적 선언을 피할 수 없다. ‘피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프세'(*)는 ‘사라지다’ 또는 ‘도망가 안전한 곳을 찾다'(행 19:6)라는 뜻이 있고, ‘에크퓨고'(*)의 미래중간태이다. 죄인이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숨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다(시 139:8;벧전 3:12).
에 투 플루투 테스 크레스토테토스 아우투 카이 테스 아노케스 카이 테스 마크로뒤미아스 카타프로네이스 아그노온 호티 토 크레스톤 투 데우 에이스 메타노이안 세 아게이
개역개정,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새번역,4 아니면,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을 베푸셔서 ㉤그대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신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의 풍성하신 인자하심과 너그러우심과 오래 참으심을 업신여기는 것입니까? /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를 가리키는 말
우리말성경,4 아니면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그대를 회개로 이끄시는 것을 알지 못하고 그분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합니까?
가톨릭성경,4 아니면, 하느님의 그 큰 호의와 관용과 인내를 업신여기는 것입니까? 그분의 호의가 그대를 회개로 이끌려 한다는 것을 모릅니까?
영어NIV,4 Or do you show contempt for the riches of his kindness, tolerance and patience, not realizing that God’s kindness leads you toward repentance?
영어NASB,4 Or do you think lightly of the riches of His kindness and forbearance and patience, not knowing that the kindness of God leads you to repentance?
영어MSG,4 Or did you think that because he’s such a nice God, he’d let you off the hook? Better think this one through from the beginning. God is kind, but he’s not soft. In kindness he takes us firmly by the hand and leads us into a radical life-change.
영어NRSV,4 Or do you despise the riches of his kindness and forbearance and patience? Do you not realize that God’s kindness is meant to lead you to repentance?
헬라어신약Stephanos,4 η του πλουτου της χρηστοτητος αυτου και της ανοχης και της μακροθυμιας καταφρονεις αγνοων οτι το χρηστον του θεου εις μετανοιαν σε αγει
라틴어Vulgate,4 an divitias bonitatis eius et patientiae et longanimitatis contemnis ignorans quoniam benignitas Dei ad paenitentiam te adducit
히브리어Modern,4 או התבוז לעתרת טובו ולחמלתו ולארך רוחו ולא תתבונן כי טובת האלהים תדריך אתך לתשובה׃
성 경: [롬2:4]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멸시하느뇨 – ‘인도하여’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게이'(*)는 현재 직설법 3인칭 동사로서, 하나님의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행동을 나타낸다. 하나님께서 이방의 우상숭배와 부도덕, 그리고 남을 판단하는 어떤 자들의 교만을 지켜보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방향을 전환하여 마음과 태도를 바꾸기를 원하시는 것은 하나님 자신의 속성, 곧 ‘인자하심’ 때문이다. 본절에서 ‘인자하심’은 거듭 사용되어 중요한 사상임을 보여 준다. 본 구절의 ‘인자하심’ (*, 크레스토테토스)은 하반절의 ‘인자하심'(*, 크레스톤)과 의미상 별차이는 없지만 특히 하나님의 선하심을 의미하며(11:22), 보다 포괄적이고 근본적인 뜻을 갖는다. 이는 또한 부모가 자녀를 대하는 것과 같은 성품을 시사한다(마 7:9-11). 그러나 유대인들을 포함한 모든 죄인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이용하여 오히려 자기의 의를 자랑할 뿐더러 그의 오래 참으심을 자신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수단으로 생각했다. 더 나아가 인생들은 악한 일을 행함에도 속히 징벌을 행하시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너그러움을 이용하여 악을 행하기에 담대하였다(전 8:11). 본절에서 이와 같은 죄인의 태도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카타프로네이스) 것이라고 지적된다. 유대인의 교만과 이방인의 부도덕은 같은 죄악으로서 하나님을 깔보거나 업신여기는 방자한 행동이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풍성함을 멸시하는 죄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죄인들 가운데 나타나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켰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동시에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복음이 바로 죄인들에게 주어졌다(1:16).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에 죄를 범할지라도 그 죄에 따라 공의의 심판을 받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든지, 아니면 자기들이 죄를 범해도 하나님께서 즉각적으로 심판을 내리시지 않기에 자기들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에 별로 어긋나지 않는 것으로 착각했을 수도 있다. 다시 말해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잘못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을 무시해 버렸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해서도 소홀히 여겼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완악한 심령에 대하여 바울은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5절)이라고 표현했다. 한편 본절의 ‘용납하심'(*, 아노케)은 잠시 쉬는 것을 의미하며 ‘자제'(self-restrain)의 개념을 지닌다. 본절에서는 ‘너그러움’을 뜻하며 구체적으로 ‘징벌의 지연’을 뜻한다. 또한 ‘길이 참으심'(*, 마크로뒤미아)은 ‘어떤 충격에도 곧바로 반응하지 않음’을 뜻한다. 이 두 단어는 ‘인자하심'(*, 크레스톤)과 합해져서 심판을 연기하여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벧후 3:15) 하나님의 성품을 시사한다(Harrison).
카타 데 텐 스클레로테타 쉬 카이 아메타노에톤 카르디안 데사우리제이스 세아우토 오르겐 엔 헤메라 오르게스 카이 아포칼륖세오스 디카이오크리시아스 투 데우
개역개정,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새번역,5 ㉥그대는 완고하여 회개할 마음이 없으니,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이 나타날 진노의 날에 자기가 받을 진노를 스스로 쌓아 올리고 있는 것입니다. /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를 가리키는 말
우리말성경,5 그대의 고집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 때문에 그대는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나타날 그날에 그대에게 임할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가톨릭성경,5 그대는 회개할 줄 모르는 완고한 마음으로, 하느님의 의로운 재판이 이루어지는 진노와 계시의 날에 그대에게 쏟아질 진노를 쌓고 있습니다.
영어NIV,5 But because of your stubbornness and your unrepentant heart, you are storing up wrath against yourself for the day of God’s wrath, when his righteous judgment will be revealed.
영어NASB,5 But because of your stubbornness and unrepentant heart you are storing up wrath for yourself in the day of wrath and revelation of the righteous judgment of God,
영어MSG,5 You’re not getting by with anything. Every refusal and avoidance of God adds fuel to the fire. The day is coming when it’s going to blaze hot and high, God’s fiery and righteous judgment.
영어NRSV,5 But by your hard and impenitent heart you are storing up wrath for yourself on the day of wrath, when God’s righteous judgment will be revealed.
헬라어신약Stephanos,5 κατα δε την σκληροτητα σου και αμετανοητον καρδιαν θησαυριζεις σεαυτω οργην εν ημερα οργης και αποκαλυψεως δικαιοκρισιας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5 secundum duritiam autem tuam et inpaenitens cor thesaurizas tibi iram in die irae et revelationis iusti iudicii Dei
히브리어Modern,5 ובקשי לבבך הממאן לשוב תצבר לך עברה אל יום עברת האלהים ועת הגלות צדקת משפטו׃
성 경: [롬2:5]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 – 인간이 갖고 있는 완고함이나 회개치 않는 마음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상반된 대조를 보인다. ‘회개치 아니한’의 헬라어 ‘아메타노에톤'(*)은 하나님의 권고적인 회개를 뜻하는 ‘메타노이안'(*)과 부정접두사 ‘아'(*)의 합성어이다. 이는 하나님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개조되거나 변화되지 않는 마음을 뜻하며, 동시에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거부하는 반항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이러한 반항은 빛에 대한 거부로서 온순하고 순종적인 마음을 잊어 버린 완고한 행동이다. 또한 ‘고집’에 해당되는 헬라어 ‘스클레로테타'(*)는 ‘완악’, ‘완고’ 또는 ‘잔인’을 뜻하는 ‘스클레로테스'(*)의 목적격으로서 영적으로 경화(硬化)되거나 딱딱하게 굳어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이들 두 단어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경고와 함께 자주 사용되었으며(신 9:27) 본절에서는 서로 연결되어 서로의 의미를 보다 선명하게 밝혀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죄인은 자기의 고집과 회개치 아니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진노를 쌓고 있는 것이다.
그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 ‘진노의 날’을 A.D. 70년 예루살렘이 로마의 티투스(Titus) 장군에 의해 포위되어 함락되던 것과 반드시 연관지을 필요는 없다. 1절에서 본절까지의 내용이 하나님을 거역한 유대 민족 전체에 대한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으나, 6절부터는 개인의 행위에 따른 심판이 분명하게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본절은 민족적인 심판에 대한 언급이라기보다는 개인의 행위에 대하여 보응하는 마지막 심판으로 이해해야 한다(Luther, Calvin, Hendriksen, Harrison). 한편 ‘그 날'(*, 헤 헤메라)은 종말론적인 용어로서 ‘주의 날'(*, 헤 헤메라 퀴리우). 곧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고전 3:13;살전 5:4). 16절에 언급 된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은 구체적으로 마지막 심판 날을 가리키므로 본절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호스 아포도세이 헤카스토 카타 타 에르가 아우투
개역개정,6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새번역,6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가 한 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 ㉦시 62:12; 잠 24:12
우리말성경,6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에 따라 갚아 주실 것입니다. 시62:12;잠24:12
가톨릭성경,6 하느님께서는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영어NIV,6 God “will give to each person according to what he has done.”
영어NASB,6 who WILL RENDER TO EVERY MAN ACCORDING TO HIS DEEDS:
영어MSG,6 Make no mistake: In the end you get what’s coming to you–
영어NRSV,6 For he will repay according to each one’s deeds:
헬라어신약Stephanos,6 ος αποδωσει εκαστω κατα τα εργα αυτου
라틴어Vulgate,6 qui reddet unicuique secundum opera eius
히브리어Modern,6 אשר ישלם לאיש כמעשהו׃
성 경: [롬2:6]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행위에 따른 심판]
그 행한대로 – 심판의 기준이 되는 ‘행함’은 단순히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생각하는 바까지도 포함한다(시 139:1-4). 본절에서의 ‘행함’은 특히 인간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었으며 또한 어떻게 살아왔는가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지 않은 상태에서 많은 선을 베풀었을지라도 그의 선행이 아무 쓸모없는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이 하나님과 관련을 맺었으나 그 믿음에 따른 행위가 없으면 그는 구원을 얻을지라도 상급은 없다. 그러므로 본절은 인간이 하나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행위에 그 보응을 받게 된다는 의미로 이해되어야 한다.
보응하시되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포도세이'(*)는 ‘아포디도미'(*) 의 미래 직설법으로 좋거나 나쁜 의미의 모든 보상을 뜻한다. 따라서 본 구절에 의하면 믿는 자에게는 선한 상급이 주어지겠지만, 불신자는 그 형편에 따라 형벌을 받게 될 것이다(고후 5:10). 그리고 그러한 심판은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는 공정한 것이다.
토이스 멘 칻 휘포모넨 에르구 아가두 돜산 카이 티멘 카이 아프다르시안 제투신 조엔 아이오니온
개역개정,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새번역,7 참으면서 선한 일을 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의 것을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
우리말성경,7 참고 선을 행해 영광과 존귀와 불멸을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영생을 주시나
가톨릭성경,7 꾸준히 선행을 하면서 영광과 명예와 불멸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영어NIV,7 To those who by persistence in doing good seek glory, honor and immortality, he will give eternal life.
영어NASB,7 to those who by perseverance in doing good seek for glory and honor and immortality, eternal life;
영어MSG,7 Real Life for those who work on God’s side,
영어NRSV,7 to those who by patiently doing good seek for glory and honor and immortality, he will give eternal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7 τοις μεν καθ υπομονην εργου αγαθου δοξαν και τιμην και αφθαρσιαν ζητουσιν ζωην αιωνιον
라틴어Vulgate,7 his quidem qui secundum patientiam boni operis gloriam et honorem et incorruptionem quaerentibus vitam aeternam
히브리어Modern,7 למתמידים בעשות הטוב ומבקשים את הכבוד וההדר ואת אשר איננו עבד יתן את חיי העולמים׃
성 경: [롬2:7]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행위에 따른 심판]
참고 선을 행하여 – 본문을 보면 바울이 6절에서 언급했던 ‘행위’가 단순히 율법적인 차원의 것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참고 선을 행한다’는 것은 성도가 영광의 면류관을 향해 끊임없이 달음박질 해나가는 것(빌 3:12-14)으로 이해되는데 이는 이신 칭의의 가르침과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마 24:13;골 1:23;히 3:14;계 2:10). 성경에서 말하는 ‘선’은 율법이 요구하는 것 이상이며 오직 하나님을 믿는 성도만 그 믿음에 따라 하나님과 이웃에게 ‘선’을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예수의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와(눅 10:25-37), 포도나무 비유(요 15;1-14)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성도의 선행이란 예수를 떠나서는 있을 수 없으며 오직 그와 연합된 가운데서 비롯될 수 있다. 즉 그리스도와 연합한 삶이 성령을 따라 사는 것이며(갈 5:16-18;6:8), 그렇게 될 때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가운데 선이 나온다(갈 5:22, 23). 그리고 이 열매는 낙심하지 않고 참고 인내하며 행할 때 거두게 된다(갈 6:9).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 – 이것들의 본질은 영생이며, 그것들이 나타나는 장소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즉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며 사는 성도에게 주어지는 특권을 이 세 가지로 표현했다. 따라서 여기서 언급된 ‘영광’은 하나님의 속성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영광’과는 다른 것으로서(1:23 주석 참조)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게 될 때에 나타나게 될 변화를 가리킨다(J. Murray). 그리고 성도가 얻게 될 그 ‘영광’은 ‘존귀한 것’이며 결코 ‘썩지 아니하는 것’이다.
영생으로 하시고 – 영생(*, 조엔 아이오니온)은 항상 궁극적인 구원으로 표현되었다. 유대교도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을 준다는 것을 가르쳤으나 그들은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율법을 행함으로 생명얻기를 원했다. 그러나 율법을 행하면서 썩어질 육체의 증표(證標)를 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생이 허락되지 않았다(8:6). 영생은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으며(6:23) 또한 그를 믿는 자들에게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요 1:12;3:15). 한편 본절에서 영생은 6절에 기록된 ‘하나님의 보응’의 목적격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8절의 ‘노와 분’이라는 말과 대조를 이룬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심판이라는 개념보다 생명이라는 개념이 더 중요하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시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후 그를 따르는 모든 성도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과 영생을 소망하며 다시 오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삶을 보장받고 있기 때문이다.
토이스 데 엨스 에리데이아스 카이 아페이두시 테 알레데이아 페이도메노이스 데 테 아디키아 오르게 카이 뒤모스
개역개정,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새번역,8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를 쏟으실 것입니다.
우리말성경,8 자기 이익만 추구하고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사람에게는 진노와 분노를 내리실 것입니다.
가톨릭성경,8 그러나 이기심에 사로잡혀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진노와 격분이 쏟아집니다.
영어NIV,8 But for those who are self-seeking and who reject the truth and follow evil, there will be wrath and anger.
영어NASB,8 but to those who are selfishly ambitious and do not obey the truth, but obey unrighteousness, wrath and indignation.
영어MSG,8 but to those who insist on getting their own way and take the path of least resistance, Fire!
영어NRSV,8 while for those who are self-seeking and who obey not the truth but wickedness, there will be wrath and fury.
헬라어신약Stephanos,8 τοις δε εξ εριθειας και απειθουσιν μεν τη αληθεια πειθομενοις δε τη αδικια θυμος και οργη
라틴어Vulgate,8 his autem qui ex contentione et qui non adquiescunt veritati credunt autem iniquitati ira et indignatio
히브리어Modern,8 ועל בני המרי ואשר לא ישמעו לאמת כי אם לעולה שמעו חרון אף וחמה׃
성 경: [롬2:8]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행위에 따른 심판]
당을 지어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이스 여스 에리데이아스'(*)는 논란의 여지가 있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에리데이아'(*)가 ‘보수(報酬)에 얽매인 고용인’이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에리도스'(*)에서 파생되었다면, 본절은 ‘이기적인 욕망이나 야망을 가진 자들에게’라고 번역될 수 있고, ‘다툼’이나 ‘논쟁’의 의미를 가진 헬라어 ‘에리스'(*)에서 나왔다면, ‘논쟁하는 자들에게’로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빌 1:16에서의 ‘에리데이아'(*)는 분명히 ‘에리스'(*)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빌 2:3에서는 ‘다툼’이라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이기적인 욕망’이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외 갈 5:20이나 약 3:14 등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그리고 본절은 단순히 ‘당을 지어’로 번역되면 바울이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가 분명히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것은 두 가지 의미를 모두 합쳐서 ‘이기적인 욕망을 따라 논쟁에 가담하는 자들’로 이해하는 편이 좋다. 즉 진리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없어 어떤 분쟁이 일어나면 항상 쉽게 발뺌할 수 있거나 이익이 되는 편에서는 자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예수님 당시에 유대인 민중들 사이에서 나타나던 공통된 특징이었다.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 – 진리와 의는 상호 보충적인 관계로 쓰여진(엡 4;24) 반면 진리와 불의는 상반적인 관계로 쓰여졌다(1:18;고전 13:6;살후 2:12). 진리로 자기들의 생활을 다스리지 않고(1:21) 강퍅하게 회개치 않는 마음으로 자기의 의를 좇는 자는 결국 불의에 순종하는 자로 나타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진리와 불의의 두 주인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불순종은 불의에 순종하는 것이며 또한 붕의에 순종하는 것은 궁극적인 영원한 의를 포기하는 행위이기에 그들에게 주어질 것이라고는 하나님의 분노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들에게 주어지는 분노는 불신앙에 따른 적극적인 불순종에 대하여 발생하는 것이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의롭게 하시려는 궁극적인 구원을 거부하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보응은 더욱 가증될 것이다. 바울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라고 같은 말을 반복한 것도 그들에게 임할 진노의 강도를 보다 명백하게 나타내고자 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 ‘노’에 해당하는 헬라어 ‘뒤모스'(*)는 보통 ‘분노’로 번역되지만 ‘진노'(*, 오르게)와 특별한 구별 없이 사용될 수 있다. 바울이 유사한 의미를 가진 두 단어를 같이 사용한 것은 일종의 중복어법으로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들에 대하여 무시무시한 진노로 보응하시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들맆시스 카이 스테노코리아 에피 파산 프시켄 안드로푸 투 카테르가조메누 토 카콘 이우다이우 테 프로톤 카이 헬레노스
개역개정,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새번역,9 악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환난과 고통을 주실 것이요,
우리말성경,9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의 영혼에 환난과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는 유대 사람에게 있을 것이며 다음으로는 그리스 사람에게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9 먼저 유다인이 그리고 그리스인까지,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환난과 고통을 겪을 것입니다.
영어NIV,9 There will be trouble and distress for every human being who does evil: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영어NASB,9 There will be tribulation and distress for every soul of man who does evil, of the Jew first and also of the Greek,
영어MSG,9 If you go against the grain, you get splinters, regardless of which neighborhood you’re from, what your parents taught you, what schools you attended.
영어NRSV,9 There will be anguish and distress for everyone who does evil, the Jew first and also the Greek,
헬라어신약Stephanos,9 θλιψις και στενοχωρια επι πασαν ψυχην ανθρωπου του κατεργαζομενου το κακον ιουδαιου τε πρωτον και ελληνος
라틴어Vulgate,9 tribulatio et angustia in omnem animam hominis operantis malum Iudaei primum et Graeci
히브리어Modern,9 צרה ומצוקה על כל נפש אדם עשה הרע על היהודי בראשונה וכן גם על היוני׃
성 경: [롬2:9]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행위에 따른 심판]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 ‘각 사람의 영'(*, 파산 프쉬켄 안드로푸)이라는 표현은 사람의 영혼과 육체 중 ‘영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바울은 ‘영’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쉬케'(*)를 ‘사람’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기 때문이다(13:1;행 2:41, 43). 또한 전후 문맥상 ‘사람’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욱 타당하다 고데(Godet)의 견해에 따르면 9절과 10절의 구성은 7절과 8절의 대조적 구성을 거꾸로 재배열 시킨 것이라고 했다. 이렇게 볼 때 ‘각 사람’이라는 말과 ‘각 사람의 영’이라는 말은 동일한 의미로서 ‘모든 사람’을 의미한다. 따라서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이라는 표현 역시 악의 계획을 추진하는 사람들에게 임할 보응의 보편성(6절)을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은 선을 행하는 각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 행한대로 하나님의 판단을 받게 된다.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 8절에 언급된 ‘노와 분’이 심판자이신 하나님 편에 속한 것이라면 본절의 ‘환난과 곤고’는 하나님이 발하신 ‘노와 분’으로 인하여 약한 자에게 내려지는 결과이다. 그리고 이 두 단어는 선을 행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상급인 ‘영광과 존귀와 평강’과 반대되는 것이기도 하다. 혹자는 ‘환난’은 외적인 것으로 ‘곤고’는 내적인 것으로 설명한다(Hendriksen).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 본 구절은 다음 10절에서도 반복된다. 구원이나 은혜와 마찬가지로 심판과 형벌에 있어서도 유대인이 우선적이다. 언약과 약속에 따른 복이 유대인들에게 먼저 주어졌듯이 그 복을 거절한 데에 대한 형벌도 유대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왜냐하면 우선적인 특권을 부여한 자에게 거기에 상응하는 책임을 묻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기 때문이다(시 50:3-6;눅 12:47, 48;벧전 4:17). 한편 본절에 언급된 ‘헬라인’은 모든 이방인을 대표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돜사 데 카이 티메 카이 에이레네 판티 토 에르가조메노 토 아가돈 유다이오 테 프로톤 카이 헬레니
개역개정,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새번역,10 선한 일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먼저 유대 사람을 비롯하여 그리스 사람에게 이르기까지, 영광과 존귀와 평강을 내리실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0 그러나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입니다. 먼저는 유대 사람에게 있을 것이며 다음으로는 그리스 사람에게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0 먼저 유다인에게 그리고 그리스인에게까지,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가 내릴 것입니다.
영어NIV,10 but glory, honor and peace for everyone who does good: first for the Jew, then for the Gentile.
영어NASB,10 but glory and honor and peace to every man who does good, to the Jew first and also to the Greek.
영어MSG,10 But if you embrace the way God does things, there are wonderful payoffs, again without regard to where you are from or how you were brought up.
영어NRSV,10 but glory and honor and peace for everyone who does good, the Jew first and also the Greek.
헬라어신약Stephanos,10 δοξα δε και τιμη και ειρηνη παντι τω εργαζομενω το αγαθον ιουδαιω τε πρωτον και ελληνι
라틴어Vulgate,10 gloria autem et honor et pax omni operanti bonum Iudaeo primum et Graeco
히브리어Modern,10 וכבוד והדר ושלום לכל עשה הטוב ליהודי בראשונה וכן גם ליוני׃
성 경: [롬2:10]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행위에 따른 심판]
영광과 존귀와 평강 – 7절에서도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이 나왔으나 본절에서는 ‘썩지 아니함’ 대신 ‘평강’이 언급되었다 혹자는 이것을 ‘하나님과의 화목'(5:1)으로 이해하기도 하며(Black, Murray), 또다른 학자는 보다 넓은 의미로 해석하여 ‘새 하늘과 새 땅의 모든 축복 속에서 새롭게 변화된 영혼과 육체로 영원히 즐거워하며 충만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구원’이라고 설명한다(Hendriksen). 어떤 의미이든 바울은 악한 자에게 형벌로 내리시는 ‘환난과 곤고'(9절)에 대조를 이루는 용어로서 ‘평강’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그 결과가 상반되는 것을 보여준다
우 가르 에스틴 프로소폴렘프시아 파라 토 데오
개역개정,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새번역,11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함이 없이 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11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편애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11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1 For God does not show favoritism.
영어NASB,11 For there is no partiality with God.
영어MSG,11 Being a Jew won’t give you an automatic stamp of approval. God pays no attention to what others say (or what you think) about you. He makes up his own mind.
영어NRSV,11 For God shows no partiality.
헬라어신약Stephanos,11 ου γαρ εστιν προσωποληψια παρα τω θεω
라틴어Vulgate,11 non est enim personarum acceptio apud Deum
히브리어Modern,11 כי אין משא פנים עם האלהים׃
성 경: [롬2:11]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행위에 따른 심판]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 본절은 앞 부분(1-10절)과 그 다음에 이어지는 부분(12-29절)을 이어주는 다리의 역할을 하는데, 문자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불공평도 없으시다’, 또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편애도 없으시다’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심판은 편파적(偏頗的)인 것이 될 수 없다. 이 사실은 ‘하나님의의로우신 판단’이라는 (5절) 구절이 이미 증명한 바 있다.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특권이나 지위가 아니라 사람이 행한 일들의 성격이 어떠한 것이냐의 문제이다. ‘사람을 외모로 취한다'(*, 프로소폴렘프시아)는 개념을 히브리적 사고에서 온 것으로서 재판관의 편견이나 편애를 지시하는 의미로 쓰여졌다(삼상 16:7;대하 19:7;욥 34:19). 하나님은 편견이나 편애가 없어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외형상 유대인에게 우선권을 부여한 사실과 모순을 이루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유대인 역시 그의 행한대로 판단받으며, 오히려 그들에게 있어서는 우선권이 부여된만큼 악행에 대하여 더 큰 환난과 곤고를 당해야 한다. 유대인이기 때문에 편견과 편애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또한 특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라도 그분의 선하신 뜻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마 20:15). 오직 공의로우신 그분만이 판단받는 자들의 다양한 입장을 고려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로 있다.
호소이 가르 아노모스 헤마르톤 아노모스 카이 아폴룬타이 카이 호소이 엔 노모 헤마르톤 디아 노무 크리데손타이
개역개정,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새번역,12 율법을 모르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과 상관없이 망할 것이요, 율법을 알고 범죄한 사람은 율법을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우리말성경,12 율법 없이 죄짓는 사람은 모두 율법 없이 멸망하고 율법 안에서 죄짓는 사람은 모두 율법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2 율법을 모르고 죄지은 자들은 누구나 율법과 관계없이 멸망하고, 율법을 알고 죄지은 자들은 누구나 율법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영어NIV,12 All who sin apart from the law will also perish apart from the law, and all who sin under the law will be judged by the law.
영어NASB,12 For all who have sinned without the Law will also perish without the Law; and all who have sinned under the Law will be judged by the Law;
영어MSG,12 If you sin without knowing what you’re doing, God takes that into account. But if you sin knowing full well what you’re doing, that’s a different story entirely.
영어NRSV,12 All who have sinned apart from the law will also perish apart from the law, and all who have sinned under the law will be judged by the law.
헬라어신약Stephanos,12 οσοι γαρ ανομως ημαρτον ανομως και απολουνται και οσοι εν νομω ημαρτον δια νομου κριθησονται
라틴어Vulgate,12 quicumque enim sine lege peccaverunt sine lege et peribunt et quicumque in lege peccaverunt per legem iudicabuntur
히브리어Modern,12 כי כל אלה אשר חטאו בלי תורה גם בבלי תורה יאבדו ואשר חטאו בתורה גם על פי התורה ישפטו׃
성 경: [롬2:12]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행위에 따른 심판]
본절에서 바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요지는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이든지 율법을 받은 유대인이든지 누구나 자신들의 죄로 인해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복했느냐 하지 않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 ‘율법 없이'(*, 아노모스)라는 말은 부사로서 신약성경에서는 여기서만 사용되었다. ‘율법 없이'(*, 아노모스)의 명사형 ‘아노미아'(*)나 형용사형 ‘아노모스'(*)는 대개 ‘불법’이나 ‘범법’을 의미한다. 그러나 본절의 경우에는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고전 9:21). 즉 ‘아노모스’는 14절의 ‘타 메노몬 에콘타'(*, ‘율법을 갖지 아니한’)와 같은 의미로 해석되어야 하는 바, 계약을 맺어 율법의 기준에 따라 살기로 약속한 일이 없는 자들, 곧 씌어진 율법을 받지 않은 이방인들로 이해되어야 한다(행 2:23).
율법 없이 망하고…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 바울은 율법 없이 범죄한 자들은 ‘망한다'(*, 아폴룬타이)라고 서술하고 율법 아래서 범죄한 자들은 ‘심판을 받으리라'(*, 크리데손타이)고 서술한다. 이 두 단어는 모두 수동태로서 하나님의 능동적인 보응이 있을 것을 시사한다. 율법을 받지 아니한 이방인들은 우주 만물과 양심에 나타내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지 않음으로 인하여 파멸된 것이며(1:20), 율법을 받은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뜻을 잘 알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율법의 기준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특별히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게 된다는 주장은 매우 중요한 사상이다. 바울은 율법을 자랑거리로 여기지 아니하고 죄인들을 정죄하거나 규제하는 수단에 불과한 것으로 정의하였다. 그러나 율법은 심판의 기준이 되는 것이고, 율법 자체가 멸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율법 아래서 범죄한 자들은 이 율법을 기준으로 심판받아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J. Murray)
우 가르 호이 아크로아타이 노무 디카이오이 파라 토 데오 알 호이 포이에타이 노무 디카이오데손타이
개역개정,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새번역,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 아닙니다. 오직 율법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말성경,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사람이 의인이 아니라 오직 율법을 행하는 사람이 의롭다는 인정을 받을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3 율법을 듣는 이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가 아니라, 율법을 실천하는 이라야 의롭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영어NIV,13 For it is not those who hear the law who are righteous in God’s sight, but it is those who obey the law who will be declared righteous.
영어NASB,13 for not the hearers of the Law are just before God, but the doers of the Law will be justified.
영어MSG,13 Merely hearing God’s law is a waste of your time if you don’t do what he commands. Doing, not hearing, is what makes the difference with God.
영어NRSV,13 For it is not the hearers of the law who are righteous in God’s sight, but the doers of the law who will be justified.
헬라어신약Stephanos,13 ου γαρ οι ακροαται του νομου δικαιοι παρα τω θεω αλλ οι ποιηται του νομου δικαιωθησονται
라틴어Vulgate,13 non enim auditores legis iusti sunt apud Deum sed factores legis iustificabuntur
히브리어Modern,13 כי לא שמעי התורה צדיקים לפני האלהים כי אם עשי התורה הם יצדקו׃
성 경: [롬2:13]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행위에 따른 심판]
율법을 – 12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율법'(*, 노모스)은 관사가 없이 사용되었다. 공인 본문(Textus Receptus, Majority Text)에는 정관사 ‘투'(*)가 ‘노무'(*, ‘율법의’)앞에 있는데, 대부분의 고대 사본(*, A. B)에는 이 관사가 생략되어 있다. 그런데 ‘노모스'(*, ‘율법’)에 관사가 붙고 안 붙고에 따라 약간의 의미상 차이가 있다. (1) ‘노모스’ 앞에 정관사 ‘호'(*)가 붙으면, 거의 대부분 모세 율법을 의미한다. (2) ‘노모스’ 앞에 관사가 붙어 있지 않으면 대부분의 경우 모세의 율법이나 율법의 특정한 조문(條文)을 의미하기 보다는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서 추상적인 법 개념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양심 속에 주어진 법이나, 자연적 계시 속에 나타난 법이나 어떤 순종을 요구하는 일반적인 개념의 법을 가리킨다. (3) 특수한 경우로서 관사가 생략되어 있으나 모세 율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하는 경우이다. 이는 헬라어 문법상 이미 알려진 어떤 확실한 개념을 보다 선명하게 나타내거나 그 단어의 본래적 개념을 강조하고나 할 때 관사를 생략하는 용법으로서 율법의 특수한 의미를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로 쓰인 경우가 있다. 만약 본절을 관사없는 사본을 따라 해석한다 하더라도 ‘율법’은 12절의 ‘율법’과 같은 것으로서 모세의 율법을 뜻하는 특수한 경우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J. Murray).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 유대인들은 율법을 받았을 뿐 아니라 익히 배우고 들어서 잘 알게 되었다. 이것은 그들의 자랑거리다. 그렇지만 이 지식은 그들을 심판에서 제외시킬 수 있는 힘이 될 수 없다. 율법을 들었으면 행해야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율법이 의의 법칙일지라도 그것을 행하는 사람만이 그것으로 인해 살리라고 가르친다(레 18:5;신 4:1). 그러나 본절은 행함으로 의롭게 되는 원리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범죄할 수밖에 없는 죄인(3:23)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이 논리를 전개하고 있을 뿐이다.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 본서에서 ‘의롭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디카이오데손타이'(*)가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단지 자신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의롭게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문제가 달랐다(J. Murray). 글자 그대로 보면 ‘의롭게 된다’는 것이 율법을 행하는 자에게 해당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보다 근본적인 기준과 목적은 ‘하나님 앞에서’라는 말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바울은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보시는 판단에 의하여 칭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호탄 가르 에드네 타 메 노몬 에콘타 퓌세이 타 투 노무 포이오신 후토이 노몬 메 에콘테스 헤아우토이스 에이신 노모스
개역개정,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새번역,14 율법을 가지지 않은 이방 사람이, 사람의 본성을 따라 율법이 명하는 바를 행하면, 그들은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율법입니다.
우리말성경,14 율법이 없는 이방 사람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한다면 비록 그에게는 율법이 없을지라도 자기 자신이 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
가톨릭성경,14 다른 민족들이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본성에 따라 율법에서 요구하는 것을 실천하면, 율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그들이 자신들에게는 율법이 됩니다.
영어NIV,14 (Indeed, when Gentiles, who do not have the law, do by nature things required by the law, they are a law for themselves, even though they do not have the law,
영어NASB,14 For when Gentiles who do not have the Law do instinctively the things of the Law, these, not having the Law, are a law to themselves,
영어MSG,14 When outsiders who have never heard of God’s law follow it more or less by instinct, they confirm its truth by their obedience.
영어NRSV,14 When Gentiles, who do not possess the law, do instinctively what the law requires, these, though not having the law, are a law to themselves.
헬라어신약Stephanos,14 οταν γαρ εθνη τα μη νομον εχοντα φυσει τα του νομου ποιη ουτοι νομον μη εχοντες εαυτοις εισιν νομος
라틴어Vulgate,14 cum enim gentes quae legem non habent naturaliter quae legis sunt faciunt eiusmodi legem non habentes ipsi sibi sunt lex
히브리어Modern,14 כי הגוים אשר אין להם תורה בעשותם כדברי התורה מאליהם גם באין תורה הם תורה לנפשם׃
성 경: [롬2:14]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행위에 따른 심판]
이방인이 본성으로 –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본성(nature)을 따라 부분적으로 행할 수 있을지 모르나 완전히 행할 수는 없으므로 이방인 역시 죄인일 수밖에 없다. 간혹 이방인도 율법의 행위를 수행하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논리를 펴는 자들이 있으니 이들은 바울이 전개하는 논리의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한 자들이다. 비록 본절이나 앞절(13절)에서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을 만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표현하였지만 계속되는 바울의 논리는 어느 누구도 율법의 요구대로 완전히 순종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 준다(3:9, 19). 무엇보다도 본절은 율법을 받았다고 자랑하는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받은 것 자체가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보여 주고 있으며, 이방인들도 양심의 법칙을 따라 율법이 요구하는 바 행위를 할 때가 있음을 가르침으로써 유대인들이 저지르는 어리석음을 경고하고 있다.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 인간은 그 본성에 심어진 양심과 생각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의 율법에 직면하게 된다(J. Murray). 즉 인간들의 본성 속에 존재하는 도덕적 성향은 하나님의 일반적 계시에 의하여 생긴 것으로서 명령하거나 금지하는 양심의 소리를 수반한다(Murray). 이방인들은 유대인의 율법과 동일하지는 않지만, 그들은 본래적인 양심의 법을 따라 일반 계시의 도움을 받아서 하나님의 계시를 유비적(類比的)으로 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율법은 궁극적인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 이방인이 갖는 양심의 법은 간혹 모세 율법과 비슷한 법과 규례를 가질 수 있으나, 율법의 궁극적인 의미에는 전혀 도달할 수 없다.
호이티네스 엔데잌뉜타이 토 에르곤 투 노무 그랖톤 엔 타이스 카르디아이스 아우톤 쉼마르튀루세스 아우톤 테스 쉬네이데세오스 카이 메탘쉬 알렐론 톤 로기스몬 카테고룬톤 에 카이 아폴로구메논
개역개정,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새번역,15 그런 사람은, 율법이 요구하는 일이 자기의 마음에 적혀 있음을 드러내 보입니다. 그들의 양심도 이 사실을 증언합니다.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호하기도 합니다.
우리말성경,15 이런 사람은 율법의 요구가 자기 마음에 기록돼 있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의 양심도 이것을 증거합니다. 그들의 생각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호하기도 합니다.
가톨릭성경,15 그들의 양심이 증언하고 그들의 엇갈리는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호하기도 하면서, 그들은 율법에서 요구하는 행위가 자기들의 마음에 쓰여 있음을 보여 줍니다.
영어NIV,15 since they show that the requirements of the law are written on their hearts, their consciences also bearing witness, and their thoughts now accusing, now even defending them.)
영어NASB,15 in that they show the work of the Law written in their hearts, their conscience bearing witness, and their thoughts alternately accusing or else defending them,
영어MSG,15 They show that God’s law is not something alien, imposed on us from without, but woven into the very fabric of our creation. There is something deep within them that echoes God’s yes and no, right and wrong.
영어NRSV,15 They show that what the law requires is written on their hearts, to which their own conscience also bears witness; and their conflicting thoughts will accuse or perhaps excuse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5 οιτινες ενδεικνυνται το εργον του νομου γραπτον εν ταις καρδιαις αυτων συμμαρτυρουσης αυτων της συνειδησεως και μεταξυ αλληλων των λογισμων κατηγορουντων η και απολογουμενων
라틴어Vulgate,15 qui ostendunt opus legis scriptum in cordibus suis testimonium reddente illis conscientia ipsorum et inter se invicem cogitationum accusantium aut etiam defendentium
히브리어Modern,15 בהראותם מעשה התורה כתוב על לבם ודעתם מעידה בהם ומחשבותם בקרבם מחיבות זאת את זאת או גם מזכות׃
성 경: [롬2:15]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행위에 따른 심판]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 ‘양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쉬네이데시스'(*)는 문자적으로 ‘함께 안다’라는 의미로서 본절에서는 ‘함께 증거하다’라는 의미를 가진 ‘쉼마르튀루세스'(*)와 함께 쓰여 사람의 마음속에서 연대적으로 증거하므로 율법처럼 증인으로서 그 역할을 감당한다는 뜻으로 쓰여졌다. 양심은 인간이 마음속에서 자신의 행동을 살피면서 때로는 자신을 정죄하기도 하며, 율법과 일치한 행동에 대하여는 스스로 선한 증거로 인정하기도 하는 인간의 ‘바른 인식의 주체’인 것이다(고전 8:7-12). 칼빈(Calvin)은 양심을 정의하면서 ‘합리적인 행위에 대하여서는 변호하며 악한 행실에 대하여서는 고발하고 유죄 선고를 내리기도 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이러한 양심은 타락한 인간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도덕적 성품을 보여준다(고호 4:2). 그러나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은 계속해서 죄 가운데 자신을 방치하여 스스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는 거짓 속에서 멸망으로 나아간다(갈 6:3;딤전 4:2;딛 1:15).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 이것은 인간의 마음속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생각이 갈등 상태에 놓여 있음을 보여 준다. 즉 사람이 어떤 잘못을 범했을 때 그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면 한쪽에서는 그것을 합리화시키려는 생각이 일어난다. 이러한 갈등이 반복되는 상태가 모든 사람의 내부에 존재한다. 이것이 곧 인간의 양심에 새겨져 있는 율법적인 요소인 것이다.
율법의 행위 – 율법에 따르는 행위로 해석되기 보다는 율법적인 요소가 인간의 양심 가운데 활동하며 그것이 행위로 나타나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통해 양심의 갈등을 느낀 후에 이전보다 나은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 ‘율법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엔 헤메라 호테 크리네이 호 데오스 타 크맆타 톤 안드로폰 카타 토 유앙겔리온 무 디아 크리스투 예수
개역개정,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새번역,16 이런 일은, ㉧내가 전하는 복음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내세우셔서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비밀들을 심판하실 그 날에 드러날 것입니다. / ㉧그, ‘나의 복음’
우리말성경,16 이런 일은 내가 전한 복음대로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실 그날에 일어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6 이러한 사실은 내가 전하는 복음이 가르치는 대로,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하여 사람들의 숨은 행실들을 심판하시는 그 날에 드러날 것입니다.
영어NIV,16 This will take place on the day when God will judge men’s secrets through Jesus Christ, as my gospel declares.
영어NASB,16 on the day when, according to my gospel, God will judge the secrets of men through Christ Jesus.
영어MSG,16 Their response to God’s yes and no will become public knowledge on the day God makes his final decision about every man and woman. The Message from God that I proclaim through Jesus Christ takes into account all these differences.
영어NRSV,16 on the day when, according to my gospel, God, through Jesus Christ, will judge the secret thoughts of all.
헬라어신약Stephanos,16 εν ημερα οτε κρινει ο θεος τα κρυπτα των ανθρωπων κατα το ευαγγελιον μου δια ιησου χριστου
라틴어Vulgate,16 in die cum iudicabit Deus occulta hominum secundum evangelium meum per Iesum Christum
히브리어Modern,16 ביום אשר ישפט האלהים את כל תעלמות בני האדם ביד ישוע המשיח כפי בשורתי׃
성 경: [롬2:16]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행위에 따른 심판]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 본 구절은 문자적으로 ‘내 복음을 따라'(*, 카타 토 유앙겔리온 무)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말은 바울 자신이 전파한 복음을 근거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바울은 ‘내 복음’이란 표현을 취했는데, 이것은 협소한 의미로 사용되어 ‘이신 칭의’의 교리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울이 전파한 모든 내용을 가리킨다. 초대 교육 교부들은 이것을 ‘누가복음’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나(Origen, Jerome)여기서는 바울의 전파 내용 중 종말론적인 설교를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편이 타당하다. 왜냐하면 바울이 본절에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바울은 ‘내 복음’이란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복음’의 출처가 자기 자신인 것처럼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이는 바울의 사도적 권위와 깊이 연관되는 표현으로 바울 자신이 예수께로부터 사도로 세우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는 인식을 드러내 주며 자기가 그 복음을 위해 택정함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바울은 이러한 부르심에 대해 전인격적으로 반응한다는 뜻에서 복음을 자신의 것으로 소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이 용어가 원문에서는 ‘내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라는 구절 뒤에 따라 나오지만, 굳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어진 복음과 연결지을 핑요는 없다(Calvin). 오히려 본 구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단독 사역이 아니라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나타내고자(요 5:27;행 17:31)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복음이 성취되어 인간들에게 주어졌듯이 그 복음으로 인한 심판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실행되는 것이 정당한 절차일 것이다. 예수께서도 심판날 왕권을 가지고 오실 것을 말슴하셨다(마 16:28).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 심판날에는 감추인 것이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드러나게 된다(고전 4:5).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신랄하게 비판하신 것도 어떤면에서는 마지막 날에 있을 심판에 대한 본보기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 앞에서는 선하게 행동하고 선한 말을 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에외식하는 자들의 마음과 생각을 심판날에 남김없이 드러내실 것이다(마 12:36, 37).
그 날이라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헤메라'(*)는 문장 맨 앞에 위치하여 강조적으로 사용되었다. 바티칸 사본(B;codex Vaticanus)에서는 정관사 ‘헤'(*)가 표기되어 있는데 문법상으로는 맞는 듯하다. 그러나 이처럼 정관사를 생략하는 것은 바울의 서술 방법 중 하나이다(12절). 더욱이 5절에서 ‘그날’에 대해 언급하면서 정관사를 사용했기 때문에 굳이 이를 사용하지 않아도 의미가 통하고 본절에서는 내용 자체가 마지막 심판 날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으므로 생략한 것 같다.
에이 데 쉬 유다이오스 에포노마제 카이 에파나파우에 노모 카이 카우카사이 엔 데오
개역개정,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새번역,17 그런데, ㉨그대가 유대 사람이라고 자처한다고 합시다. 그래서 ㉨그대는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를 가리키는 말
우리말성경,17 그대는 자칭 유대 사람이라 하고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하고
가톨릭성경,17 그런데 그대는 자신을 유다인이라고 부르면서 율법에 의지하고 하느님을 자랑하며,
영어NIV,17 Now you, if you call yourself a Jew; if you rely on the law and brag about your relationship to God;
영어NASB,17 But if you bear the name “Jew,” and rely upon the Law, and boast in God,
영어MSG,17 If you’re brought up Jewish, don’t assume that you can lean back in the arms of your religion and take it easy, feeling smug because you’re an insider to God’s revelation,
영어NRSV,17 But if you call yourself a Jew and rely on the law and boast of your relation to God
헬라어신약Stephanos,17 ιδε συ ιουδαιος επονομαζη και επαναπαυη τω νομω και καυχασαι εν θεω
라틴어Vulgate,17 si autem tu Iudaeus cognominaris et requiescis in lege et gloriaris in Deo
히브리어Modern,17 הן אתה נקרא בשם יהודי ונשענת על התורה והתהללת באלהים׃
성 경: [롬2:17]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형식적 율법주의]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으나 본절 첫머리에 ‘이데'(*, ‘보라’), 혹은 ‘에이 데'(*, ‘그러나 만약’)가 있다. 흠정역(KJV)이 번역한 공인 본문(Textus Receptus)은 전자를 취하지만, 대부분의 사본들과 비교적 오래된 사본들(*, A, B, D, K, )은 후자를 취하였다. ‘에이 데’는 직설법과 함께 사용되어 실제로 발생될 수 있는 상태를 가정하는 조건절을 갖는다. 따라서 본절의 ‘에이'(*, ‘만약’)는 20절까지 조건문으로 취한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 ‘칭하는’의 헬라어 ‘에포노마제'(*)는 ‘이름을 붙이다’ 또는 ‘칭함을 받다’라는 뜻을 가진 ‘에포노마조'(*)의 현재 조건문으로 그 의미는 ‘유대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이다. 여기서 ‘유대인'(*, 유다이오스)은 ‘히브리인'(*, 헤브라이오스)이나 ‘이스라엘인'(*, 이스라엘리터스)이라는 용어와 구별된다. 히브리인이라는 호칭은 언어 군(群)의 개념을 강조하고 있고, 이스라엘인이라는 호칭은 구속사적인 개념을 강조하는데, 유대인이라는 호칭은 헬라인이나 이방인들과 상대되는 개념으로서 모세 율법을 중심으로 형성된 종교 공동체로서의 특성을 반영한다.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 유대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율법을 부여받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 특권을 자랑할 뿐 아니라 그 특권을 받지 못한 이방인들을 경멸하기도 했다. 이러한 우월감이 하나님께 감사하며 순종함으로 나타났으면 하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었을지도 모르나, 그들은 특권만을 중요하게 여기며 그에 따르는 책임을 무시했다. 그들은 제사장 나라에 걸맞는 거룩한 백성으로서의(출 19:6) 특권을 유지하려면 ‘언약을 지켜야 할'(출 19:5) 책임이 있음을 무시했다. 그들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한다고 내세웠으나 실상은 율법의 요구에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못하면서 그들이 부여받은 특권만을 자랑스럽게 여겼던 것이다. 이러한 유대인들의 모습은 세례 요한의 책망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마 3:9).
카이 기노스케이스 토 델레마 카이 도키마제이스 타 디아페론타 카테쿠메노스 에크 투 노무
개역개정,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새번역,18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가장 선한 일을 분간할 줄 알며,
우리말성경,18 율법의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할 줄 압니다.
가톨릭성경,18 율법을 배워 하느님의 뜻을 알고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할 줄 안다고 합니다.
영어NIV,18 if you know his will and approve of what is superior because you are instructed by the law;
영어NASB,18 and know His will, and approve the things that are essential, being instructed out of the Law,
영어MSG,18 a connoisseur of the best things of God, informed on the latest doctrines!
영어NRSV,18 and know his will and determine what is best because you are instructed in the law,
헬라어신약Stephanos,18 και γινωσκεις το θελημα και δοκιμαζεις τα διαφεροντα κατηχουμενος εκ του νομου
라틴어Vulgate,18 et nosti voluntatem et probas utiliora instructus per legem
히브리어Modern,18 וידעת הראוי ובהיותך מלמד בתורה תבין בין טוב לרע׃
성 경: [롬2:18]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형식적 율법주의]
본절에서는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해서 얻게 된 유익이 언급되어 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 인간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는 길은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해 주셔야만 가능하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모양으로 계시하셨기에 유대인들은 이방인들과 달리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백성이 되었다. ‘하나님의 뜻’은 구체적으로 ‘구원 계시’를 가리키지만 좀더 폭넓게 하나님의 섭리까지도 포괄할 수 있는 용어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구원 계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통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 계시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생활이 요청된다.
지극히 선한 것을 좋게 여기며 – 본 구절에 대해서는 해석자들마다 약간씩 견해가 다르다. 예를 들어 틴델(Tyndale)은 ‘선악에 대한 경험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하며, 모펫(Moffat)은 ‘종교에 있어서 생동력있는 것에 대한 의식을 가지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한 영역 성경중에서 이 구절을 ‘도덕적인 구분에 대한 지식을 가지는 것’으로 번역하기도 한다(NEB). 이러한 해석상의 어려움을 피하기 위해 칼빈(Calvin)은 선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선악을 구별하는 것을 동시에 인정한다. 이러한 해석은 메튜 헨리(Mattew Henry)같은 주석가도 동의한다. 그렇지만 본문이 뜻하는 바는 칼빈의 첫번째 견해에 더 접근해 있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본절은 유대인들이 단순히 선악간에 판단한다기 보다는 율법의 선한 교훈을 인정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해 선한 것을 인정한다는 사실은 그 선을 옳은 원리로 받아들였다는 의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믿음으로 율법에 따르는 선한 삶을 살지 않은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이러한 어리석음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한'(1:21) 이방인들의 어리석음과 동일하다.
페포이다스 테 세아우톤 호데곤 에이나이 튀플론 포스 톤 엔 스코테이
개역개정,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새번역,19 눈먼 사람의 길잡이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라고 생각하며,
우리말성경,19 그리고 그대는 스스로 눈먼 사람의 안내자요,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의 빛이요.
가톨릭성경,19 또 자신이 눈먼 이들의 인도자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의 빛이라고 확신하며,
영어NIV,19 if you are convinced that you are a guide for the blind, a light for those who are in the dark,
영어NASB,19 and are confident that you yourself are a guide to the blind, a light to those who are in darkness,
영어MSG,19 I have a special word of caution for you who are sure that you have it all together yourselves and, because you know God’s revealed Word inside and out,
영어NRSV,19 and if you are sure that you are a guide to the blind, a light to those who are in darkness,
헬라어신약Stephanos,19 πεποιθας τε σεαυτον οδηγον ειναι τυφλων φως των εν σκοτει
라틴어Vulgate,19 confidis te ipsum ducem esse caecorum lumen eorum qui in tenebris sunt
히브리어Modern,19 ובטחת בנפשך להיות מוליך העורים ואור להלכים בחשך׃
성 경: [롬2:19]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형식적 율법주의]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규모를 가진 자로서 – 본절에 해당하는 헬라어 본문을 부산 구문의 형식으로, 직역하면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양을 가지고서’가 된다. 이에 대해 칼빈(Calvin)은 이유를 나타내는 분사 구문으로 이해하여 ‘지식과 진리의 모양을 가지고 있으므로’라고 해석했다. 그리고 영역 성경 중에서도 이 구절을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because)를 사용하여 번역했다(NIV). 이러한 해석은 본문의 흐름상 적합하다고 본다. 한편 ‘지식’과 ‘진리’는 특별한 의미상의 구별 없이 중복어법으로 사용된 것으로 보아도 무방한다(Black). 그리고 ‘규모’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르포시스'(*)는 ‘모양’이나 ‘외모’를 뜻하지만 외적인 모양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참된 표현’을 의미하기도 한다(Barmby). 그래서 혹자는 ‘모르포시스’를 ‘본질'(*, 휘포스타시스)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기도 했다(Black). 간혹 학자들 중에는 ‘모르포시스’를 유대인들의 ‘외식’과 같이 ‘과장된 외형'(Calvin)이나 ‘경건이 없는 겉 모양'(Matthew Henry)으로 이해하기도 하나 이러한 해석은 본문의 성격상 적합하지 않다. 본문에서는 유대인이 율법을 통해 가진 지식이나 진리가 거짓되다든지 알맹이가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유대인들이 율법을 통한 참된 지식의 본질을 소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Murray, Barmby) 그 지식을 좇지 않고 자기 임의대로 행하는 것을 책망하는데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 – 성경에서 소경과 어두움에 있는 자는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눈이 먼 상태에 있다는 것은 어둠 가운데서 헤매이는 것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사 42:19;56:10;마 6:23;요 1:5;고후 4:4;요일 2:11). 여기서도 바울은 역시 중복어법을 사용하여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어두움에 있는 자들의 빛’이라는 표현은 이방인을 향한 유대인들의 사명을 시사한다. 유대인들은 토라를 자기의 등불이라고 생각한 것처럼 토라를 소유한 자신들이 이방인들에게 등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사명마저도 자신들의 특권을 자랑하는 도구로 삼고 말았다. 오늘날 성도들도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라고(시 169:105) 고백하면서 빛된 삶을 살지 못한다면 유대인들처럼 말씀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자랑하려 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파이듀텐 아프로논 디다스칼론 네피온 에콘타 텐 모르포신 테스 그노세오스 카이 테스 알레데이아스 엔 토 노모
개역개정,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새번역,20 지식과 진리가 율법에 구체화된 모습으로 들어 있다고 하면서, 스스로 어리석은 사람의 스승이요 어린 아이의 교사로 확신한다고 합시다.
우리말성경,20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아이의 선생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이는 그대가 율법의 지식과 진리의 교훈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톨릭성경,20 율법에서 지식과 진리의 진수를 터득하였으므로 어리석은 자들의 교사이며 철없는 자들의 선생이라고 확신합니다.
영어NIV,20 an instructor of the foolish, a teacher of infants, because you have in the law the embodiment of knowledge and truth–
영어NASB,20 a corrector of the foolish, a teacher of the immature, having in the Law the embodiment of knowledge and of the truth,
영어MSG,20 feel qualified to guide others through their blind alleys and dark nights and confused emotions to God.
영어NRSV,20 a corrector of the foolish, a teacher of children, having in the law the embodiment of knowledge and truth,
헬라어신약Stephanos,20 παιδευτην αφρονων διδασκαλον νηπιων εχοντα την μορφωσιν της γνωσεως και της αληθειας εν τω νομω
라틴어Vulgate,20 eruditorem insipientium magistrum infantium habentem formam scientiae et veritatis in lege
히브리어Modern,20 מיסר לחסרי לב ומורה הפתאים ויש לך צורת המדע והאמת בתורה׃
성 경: [롬2:20]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형식적 율법주의]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아이의 선생 – 영적으로 ‘이리석은 자’와 ‘어린아이’는 동일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어린아이’가 영적인 의미에서 상징하는 바가 ‘연약한 존재'(고전 14:20;엡 4:14) 또는 ‘어리석은 존재'(잠 22:15)로 나타난 점으로 미루어 보아 본 구절도 앞절과 마찬가지로 중복어법에 의한 강조적인 형식을 취하고 있다. 한편 ‘훈도’란 용어는 헬라어 ‘파이듀테스'(*)로 보통 ‘선생’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디다스칼로스'(*)와 동일한 의미를 지니지만, 좁은 의미에서 ‘파이듀테스’는 잘못을 범할 때 채찍질도 가하는 ‘엄한 선생’을 가리킨다.
스스로 믿으니 –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결정적인 잘못은 특권을 부여받은 자들이라는 자기 만족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부울은 갈라디아서에서도 유사한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데(갈 6:3, 4) 본절과 같이 행함 없는 자랑을 위선이라고 폭로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갖지 못한 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특권을 가지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 특권으로 말미암아 더 큰 행악에 빠지게 된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신념을 신뢰하였을 뿐만 아니라 부패한 인간의 도덕적 무능력에 지나친 기대를 가짐으로 인하여 아무것도 아닌 초라한 가운데서 자신을 속이는 잘못을 범하였다. 또한 율법주의자들은 그 이웃들에게 자신도 질 수 없는 무거운 짐들을 지우는 반율법적인 잘못을 범하였으며 더 나아가 그들의 신념은 자신을 속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결과를 초래함으로 인하여 스스로 하나님의 징계를 초래하고 말았다.
호 운 디다스콘 헤테론 세아우톤 우 디다스케이스 호 케뤼쏜 메 클렢테인 클렢테이스
개역개정,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새번역,21 그렇다면 ㉪그대는 남은 가르치면서도, 왜 자기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도, 왜 도둑질을 합니까? /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를 가리키는 말
우리말성경,21 그렇다면 남을 가르치는 그대가 왜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도둑질하지 말라고 선포하는 그대가 왜 도둑질합니까?
가톨릭성경,21 그렇다면 남은 가르치면서 왜 자신은 가르치지 않습니까? 도둑질을 하지 말라고 설교하면서 왜 그대는 도둑질을 합니까?
영어NIV,21 you, then, who teach others, do you not teach yourself? You who preach against stealing, do you steal?
영어NASB,21 you, therefore, who teach another, do you not teach yourself? You who preach that one should not steal, do you steal?
영어MSG,21 While you are guiding others, who is going to guide you? I’m quite serious. While preaching “Don’t steal!” are you going to rob people blind? Who would suspect you?
영어NRSV,21 you, then, that teach others, will you not teach yourself? While you preach against stealing, do you steal?
헬라어신약Stephanos,21 ο ουν διδασκων ετερον σεαυτον ου διδασκεις ο κηρυσσων μη κλεπτειν κλεπτεις
라틴어Vulgate,21 qui ergo alium doces te ipsum non doces qui praedicas non furandum furaris
히브리어Modern,21 ואתה אשר תורה אחרים את נפשך לא תורה אמרת לא תגנב והנך גנב׃
성 경: [롬2:21]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형식적 율법주의]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 이 질문은 유대인들의 형식적인 삶에 대하여 다음에 계속되는 네 가지 질문을 유도하기 위한 대표적인 의문문이다. 그리고 이 질문은 유대 랍비들의 문헌에서 자주 발견되고 있다(Hendriksen). 유대교 지도자들은 자신들만이 율법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으며 진리를 알고 있다고 자부했고(요 9:34), 이 점은 주님께서도 인정해 주신 바 있다(마 23:3). 그들에게 있어서 문제는 자기들이 가르치는 바를 자신들은 지키지 않으면서 의로운 체 하는 그들의 외식이었다(마 23:23-28). 이러한 의미에서 유대교 지도자들은 여호와 신앙을 형식적인 종교로 전락시킨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행동으로는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처럼 나타내 보이지만, 실상 그들의 심령은 전혀 하나님과 무관하며 단순히 형식적이고 외면적인 종교 지도자에 불과했다.
호 레곤 메 모이큐에인 모이큐에이스 호 브델뤼쏘메노스 타 에이돌라 히에로쉴레이스
개역개정,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새번역,22 간음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왜 간음을 합니까? 우상을 미워하면서도, 왜 신전의 물건을 훔칩니까?
우리말성경,22 간음하지 말라고 하는 그대가 왜 간음합니까? 우상이라면 질색하는 그대가 왜 신전 물건을 훔칩니까?
가톨릭성경,22 간음을 하지 말라고 하면서 왜 그대는 간음을 합니까? 우상을 혐오한다고 하면서 왜 그대는 신전 물건을 훔칩니까?
영어NIV,22 You who say that people should not commit adultery, do you commit adultery? You who abhor idols, do you rob temples?
영어NASB,22 You who say that one should not commit adultery, do you commit adultery? You who abhor idols, do you rob temples?
영어MSG,22 The same with adultery. The same with idolatry.
영어NRSV,22 You that forbid adultery, do you commit adultery? You that abhor idols, do you rob temples?
헬라어신약Stephanos,22 ο λεγων μη μοιχευειν μοιχευεις ο βδελυσσομενος τα ειδωλα ιεροσυλεις
라틴어Vulgate,22 qui dicis non moechandum moecharis qui abominaris idola sacrilegium facis
히브리어Modern,22 אמרת לא תנאף ואתה נאף תשקץ את האלילים ואתה גזל את הקדש׃
성 경: [롬2:22]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형식적 율법주의]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 ‘간음’에 해당하는 헬라어 ‘모이큐오'(*)는 히브리적 표현에서 ‘영적 간음’이나 ‘우상 숭배’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였으나(계 2:22) 본절에서는 우상 숭배를 따로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영적 간음’이라는 의미로 사용된 것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바울은 의도적이며 구체적인 사실을 선명하게 표현하면서 그들 가운데서 실제로 행해지고 있는 온갖 음행과 간통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다. 율법주의자들은 가장 엄격한 율법을 종교의 원리로 삼고 있었지만, 그들의 도덕적 기준은 여전히 부패한 인간 본성의 심연에 머물러 있었다.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 앞에서 언급된 ‘도적질’과 ‘간음’이란 용어를 비추어 볼 때 바울은 십계명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유대인은 십계명에 따라 우상을 가증스럽게 여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상에게 바쳐진 제물이나 우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을 탐내어 도적질했다. 신사(神社) 물건을 도적질 한 것이 악행인가에 대해서 성경이 명백히 가르치고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따지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본절에서 바울은 그러한 행위가 죄인지 죄가 아닌지에 대해서 논하고자 이 질문을 내놓은 것이 아니라 가증스러이 여기는 우상 제물을 탐낸, 우상 숭배 이상의 죄악을 폭로하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신명기에서는 이 문제를 암시적으로보여주면서 그 행위가 죄가 된다고 교훈하고 있다. 즉 신명기는 우상들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어 취하지 말라는 말씀과 함께 그 금지의 이유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일로 인해 올무에 빠질 것이 염려되기 때문인 것을 들고 있다(신 7:25).
호스 엔 노모 카우카사이 디아 테스 파라바세오스 투 노무 톤 데온 아티마제이스
개역개정,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새번역,23 율법을 자랑하면서도, 왜 율법을 어겨서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까?
우리말성경,23 율법을 자랑하는 그대가 왜 율법을 어기고 하나님을 욕되게 합니까?
가톨릭성경,23 율법을 자랑하면서 왜 그대는 율법을 어겨 하느님을 모욕합니까?
영어NIV,23 You who brag about the law, do you dishonor God by breaking the law?
영어NASB,23 You who boast in the Law, through your breaking the Law, do you dishonor God?
영어MSG,23 You can get by with almost anything if you front it with eloquent talk about God and his law.
영어NRSV,23 You that boast in the law, do you dishonor God by breaking the law?
헬라어신약Stephanos,23 ος εν νομω καυχασαι δια της παραβασεως του νομου τον θεον ατιμαζεις
라틴어Vulgate,23 qui in lege gloriaris per praevaricationem legis Deum inhonoras
히브리어Modern,23 תתהלל בתורה ותנבל את האלהים בעברך את התורה׃
성 경: [롬2:23]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형식적 율법주의]
학자들 사이에는 본절을 의문문으로 해석하느냐 평서문으로 해석하느냐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평서문을 주장하는 학자들(Cranfield)은 24절에서 헬라어 원문상 24절에 이유를 나타내는 접속사 ‘가르'(*)가 사용되고 있으므로 본절은 그 접속사를 유도할 만한 이유를 묻는 의문문이 되든지 아니면 그 이유를 유도해 내는 평서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본절은 이유를 묻는 의문문의 성격을 띠지 않았으므로 이유를 유도해 내거나 확정을 나타내는 평서문이 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생각할 근거는 본문 가운데서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24절의 접속사 ‘가르'(*)는 21절에서 23절까지에 언급된 다섯 가지 질문을 하게 된 근거를 설명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본절은 내용상 앞에서 언급된 네 가지 질문의 형식과 잘 부합될 뿐 아니라 특히 21절에 언급된 첫번째 질문을 보다 구체화시켜 대비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러면서 그 나머지 세 가지 질문을 요약한 질문도 된다. 따라서 본절은 의문문으로 해석하는 편이 본문 이해에 더욱 도움이 된다.
율법을 범함으로 – 이말은 유대인들이 범한 잘못들(22, 23절)이 곧 율법을 범한 행위임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21절에서 ‘네 자신을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는 질문의 내용이 율법을 범하고 있는 사실에 대한 것임도 본절에 잘 나타나고 있다.
토 가르 오노마 투 데우 디 휘마스 블라스페메이타이 엔 토이스 에드네신 카도스 게그랖타이
개역개정,24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새번역,24 성경에 기록한 바 ㉫”너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 사람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 한 것과 같습니다. / ㉫사 52:5(칠십인역); 겔 36:22
우리말성경,24 기록되기를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해 이방 사람들 사이에서 모욕을 당하는구나”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사52:5;겔36:22
가톨릭성경,24 과연 성경에, “하느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모독을 받는다.”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영어NIV,24 As it is written: “God’s name is blasphemed among the Gentiles because of you.”
영어NASB,24 For “THE NAME OF GOD IS BLASPHEMED AMONG THE GENTILES BECAUSE OF YOU,” just as it is written.
영어MSG,24 The line from Scripture, “It’s because of you Jews that the outsiders are down on God,” shows it’s an old problem that isn’t going to go away.
영어NRSV,24 For, as it is written, “The name of God is blasphemed among the Gentiles because of you.”
헬라어신약Stephanos,24 το γαρ ονομα του θεου δι υμας βλασφημειται εν τοις εθνεσιν καθως γεγραπται
라틴어Vulgate,24 nomen enim Dei per vos blasphematur inter gentes sicut scriptum est
히브리어Modern,24 כי שם האלהים בגללכם מחלל בגוים כאשר כתוב׃
성 경: [롬2:24]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형식적 율법주의]
기록된 바와 같이 – 이 표현은 본절이 사 52:5의 인용구임을 시사해 준다. 이렇게 함으로써 바울은 이사야 선지자의 권위를 내세우는 동시에 자신의 논리를 더욱 확고히 정당화시킬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바울이 이사야 선지자의 직접적인 선포를 간접적인 내용으로 변형시켰으나 내용상으로는 동일한 의미를 유지하고 있다.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 당시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을 마치 하나님과 동일한 인격을 소유한 거룩한 백성인 양 취급했다. 그것은 실제로 그들의 삶이 고상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지나친 자랑에 이방인들이 속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방인들이 바울이 고발한 것과 같은 유대인의 범죄함을 발견한다면 유대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을 모독하는 도구가 되고 말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자들이 오히려 하나님의 신성을 모독하는 자들임을 바울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J. Murray).
페리토메 멘 가르 오펠레이 에안 노몬 프라쎄스 에안 데 파라바테스 노무 에스 헤 페리토메 수 아크로뷔스티아 게고넨
개역개정,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새번역,25 율법을 지키면 할례를 받은 것이 유익하지만, 율법을 어기면 ㉬그대가 받은 할례는 할례를 받지 않은 것으로 되어 버립니다. /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를 가리키는 말
우리말성경,25 그대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는 가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대가 율법을 어기면 그대의 할례는 무할례와 같습니다.
가톨릭성경,25 그대가 율법을 실천하면 할례는 유익합니다. 그러나 그대가 율법을 어기면, 그대가 받은 할례는 할례가 아닌 것이 되고 맙니다.
영어NIV,25 Circumcision has value if you observe the law, but if you break the law, you have become as though you had not been circumcised.
영어NASB,25 For indeed circumcision is of value, if you practice the Law; but if you are a transgressor of the Law, your circumcision has become uncircumcision.
영어MSG,25 Circumcision, the surgical ritual that marks you as a Jew, is great if you live in accord with God’s law. But if you don’t, it’s worse than not being circumcised.
영어NRSV,25 Circumcision indeed is of value if you obey the law; but if you break the law, your circumcision has become uncircumcision.
헬라어신약Stephanos,25 περιτομη μεν γαρ ωφελει εαν νομον πρασσης εαν δε παραβατης νομου ης η περιτομη σου ακροβυστια γεγονεν
라틴어Vulgate,25 circumcisio quidem prodest si legem observes si autem praevaricator legis sis circumcisio tua praeputium facta est
히브리어Modern,25 הן המילה מועילה אם תשמר את התורה אבל אם עבר אתה את התורה אז מילתך היתה לך לערלה׃
성 경: [롬2:25]
주제1: [유대인에 대한 심판]
주제2: [형식적 율법주의]
네가 율법을 행한즉 할례가 유익하나 – 바울은 유대인들의 가장 큰 자랑거리인 율법과 함께 또 다른 자랑거리인 할례의 문제로 주의를 환기시키면서 자신이 의도한 복음의 본질에 한 걸음 더 접근하고 있다. 유대인을 이방인과 구별시키는 유일한 기준은 율법이지만 표식은 할례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은 지금까지 유대인들에게 율법을 들어 논리를 전개해 왔지만, 이제는 아브라함의 자손으로서의 자랑거리요 표식인 할례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더욱더 유대인들이 변명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여기서 ‘율법을 행한다’는 것은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는 것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하나님의 편에 서 있을 때 유대인들의 할례가 그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형식적인 할례 의식에 그치며 이는 그들을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계속 유지시킬 수 있는 신적인 힘을 상실케 하고 만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에게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고 경고했던 것이다.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 유대인들은 할례 자체가 의의 조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조건, 구원의 조건이 되는 것으로 오해했다. 실제로 유대교의 전승에 따르면 ‘게헨나(지옥) 문 옆에 앉았을지라도 할례받은 사람은 아무도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아브라함이 책임을 져 준다’는 내용의 교훈이 있다(Harrison). 이와 같이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할례가 다른 어떤 의식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형식적인 유대인들의 할례는 무할례와 같다고 선포한 것은 혁명적인 선언이었다. 이러한 바울의 선포로 인해 유대인의 자랑은 쓸모없는 것으로 변하게 되며 형식적인 신앙에서 실제적인 신앙으로의 결단이 요구되고 있다.
에안 운 헤 아크로뷔스티아 타 디카이오마타 투 노무 퓔라쎄 우크 헤 마크로뷔스티아 아우투 에이스 페리토멘 로기스데세타이
개역개정,26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새번역,26 그러므로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이 율법의 규정을 지키면, 그 사람은 할례를 받지 않았더라도 할례를 받은 것으로 여겨질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말성경,26 할례받지 않은 사람이 율법의 요구를 지킨다면 그의 무할례가 할례로 여겨지지 않겠습니까?
가톨릭성경,26 그러니 할례 받지 않은 이들이 율법의 규정들을 지키면, 할례를 받지 않았지만 할례를 받은 것으로 여겨지지 않겠습니까?
영어NIV,26 If those who are not circumcised keep the law’s requirements, will they not be regarded as though they were circumcised?
영어NASB,26 If therefore the uncircumcised man keeps the requirements of the Law, will not his uncircumcision be regarded as circumcision?
영어MSG,26 The reverse is also true: The uncircumcised who keep God’s ways are as good as the circumcised–
영어NRSV,26 So, if those who are uncircumcised keep the requirements of the law, will not their uncircumcision be regarded as circumcision?
헬라어신약Stephanos,26 εαν ουν η ακροβυστια τα δικαιωματα του νομου φυλασση ουχι η ακροβυστια αυτου εις περιτομην λογισθησεται
라틴어Vulgate,26 si igitur praeputium iustitias legis custodiat nonne praeputium illius in circumcisionem reputabitur
히브리어Modern,26 לכן אם ישמר הערל את משפטי התורה הלא תחשב לו ערלתו למילה׃
카이 크리네이 헤 에크 퓌세오스 아크로뷔스티아 톤 노몬 텔루사 세 톤 디아 그람마토스 카이 페리토메스 파라바텐 노무
개역개정,27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새번역,27 그리고 본래 할례를 받지 않았더라도 율법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이, 율법의 조문을 가지고 있고 할례를 받았으면서도 율법을 범하는 사람인 ㉭그대를 정죄할 것입니다. /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가상의 논쟁 상대를 가리키는 말
우리말성경,27 본래 할례받지 않은 사람이 율법을 지키면 율법의 조문과 할례를 소유하고도 율법을 어기는 그대를 심판하지 않겠습니까?
가톨릭성경,27 그리하여 몸에 할례를 받지 않았으면서도 율법을 준수하는 이들이, 법전을 가지고 있고 할례를 받았으면서도 율법을 어기는 그대를 심판할 것입니다.
영어NIV,27 The one who is not circumcised physically and yet obeys the law will condemn you who, even though you have the written code and circumcision, are a lawbreaker.
영어NASB,27 And will not he who is physically uncircumcised, if he keeps the Law, will he not judge you who though having the letter of the Law and circumcision are a transgressor of the Law?
영어MSG,27 in fact, better. Better to keep God’s law uncircumcised than break it circumcised.
영어NRSV,27 Then those who are physically uncircumcised but keep the law will condemn you that have the written code and circumcision but break the law.
헬라어신약Stephanos,27 και κρινει η εκ φυσεως ακροβυστια τον νομον τελουσα σε τον δια γραμματος και περιτομης παραβατην νομου
라틴어Vulgate,27 et iudicabit quod ex natura est praeputium legem consummans te qui per litteram et circumcisionem praevaricator legis es
히브리어Modern,27 והערל מלדה המקים את התורה הלא הוא ידין אתך אשר יש לך הכתב והמילה ועברת את התורה׃
우 가르 호 엔 토 파네로 유다이오스 에스틴 우데 헤 엔 토 파네로 엔 사르키 페리토메
개역개정,28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새번역,28 겉모양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유대 사람이 아니요, 겉모양으로 살갗에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할례가 아닙니다.
우리말성경,28 겉으로 유대 사람이라고 해서 참 유대 사람이 아니고 몸에 받은 할례가 참 할례가 아닙니다.
가톨릭성경,28 겉모양을 갖추었다고 유다인이 아니고, 살갗에 겉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할례가 아닙니다.
영어NIV,28 A man is not a Jew if he is only one outwardly, nor is circumcision merely outward and physical.
영어NASB,28 For he is not a Jew who is one outwardly; neither is circumcision that which is outward in the flesh.
영어MSG,28 Don’t you see: It’s not the cut of a knife that makes a Jew.
영어NRSV,28 For a person is not a Jew who is one outwardly, nor is true circumcision something external and physical.
헬라어신약Stephanos,28 ου γαρ ο εν τω φανερω ιουδαιος εστιν ουδε η εν τω φανερω εν σαρκι περιτομη
라틴어Vulgate,28 non enim qui in manifesto Iudaeus est neque quae in manifesto in carne circumcisio
히브리어Modern,28 כי לא הנראה מחוץ הוא היהודי ולא הנראה מחוץ בבשר היא המילה׃
알 호 엔 토 크륖토 유다이오스 카이 페리토메 카르디아스 엔 프뉴마티 우 그람마티 후 호 에파이노스 우크 엨스 안드로폰 알 에크 투 데우
개역개정,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새번역,29 오히려 속 사람으로 유대 사람인 이가 유대 사람이며, 율법의 조문을 따라서 받는 할례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이런 사람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칭찬을 받습니다.
우리말성경,29 오히려 속사람이 유대 사람이라야 참 유대 사람이며 문자화된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은 할례가 참 할례입니다. 그 칭찬은 사람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가톨릭성경,29 오히려 속으로 유다인인 사람이 참유다인이고,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할례입니다. 그렇게 하는 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께 칭찬을 받습니다.
영어NIV,29 No, a man is a Jew if he is one inwardly; and circumcision is circumcision of the heart, by the Spirit, not by the written code. Such a man’s praise is not from men, but from God.
영어NASB,29 But he is a Jew who is one inwardly; and circumcision is that which is of the heart, by the Spirit, not by the letter; and his praise is not from men, but from God.
영어MSG,29 You become a Jew by who you are. It’s the mark of God on your heart, not of a knife on your skin, that makes a Jew. And recognition comes from God, not legalistic critics.
영어NRSV,29 Rather, a person is a Jew who is one inwardly, and real circumcision is a matter of the heart–it is spiritual and not literal. Such a person receives praise not from others but from God.
헬라어신약Stephanos,29 αλλ ο εν τω κρυπτω ιουδαιος και περιτομη καρδιας εν πνευματι ου γραμματι ου ο επαινος ουκ εξ ανθρωπων αλλ εκ του θεου
라틴어Vulgate,29 sed qui in abscondito Iudaeus et circumcisio cordis in spiritu non littera cuius laus non ex hominibus sed ex Deo est
히브리어Modern,29 כי אם אשר בפנים הוא יהודי ומילה היא אשר בלב כפי הרוח ולא כפי הכתב אשר לא מבני אדם תהלתו כי אם מאת האלהי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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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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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2장 강해
로마서 2장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모든 인류를 고발합니다.
1-11절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 12-16절 율법과 심판 17-29절 유대인과 율법
1-11절 하나님의 공평한 심판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그러므로'(디아)는 앞선 이야기의 결론이지만 헬라어 문법상 완벽하게 연결된 것은 아니며 연장의 개념도 포함합니다. 앞선 이야기, 즉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보다 우상을 숭배하는 죄에 빠져 있다는 1장의 내용에 대해 추가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아’는 마치 대화의 상대를 앞에 두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편지이기에 상상의 대상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수사학적 기법을 자주 사용합니다.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결국 판단하는 자의 오류를 폭로합니다. 자신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야 할 대상이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율법을 어기면서 율법을 안다며 다른 이방인들을 비판하는 유대인들을 전제합니다.
2:2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3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판단하고도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하나님의 심판
유대인들의 착각을 폭로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진리대로’ 진행됩니다. 기록된 말씀대로 어긋나지 않고 진행됩니다.
심판을 피할 줄로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을 가지고 있으면 오지 않는다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돌봐 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착각에 빠져 있는 판단의 오류를 바울을 지적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피할 수 없습니다. 모든 죄인에게 임합니다.
2:4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이 풍성함을 멸시하느냐
하나님의 인자하심
하나님의 인자는 문맥상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을 내포하며 또한 인내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종종 인자와 친절이 함께 사용됩니다. 하나님은 언약 안에서 인자하시며, 친절하십니다. 하지만 죄를 지을 때도 하나님은 인자하십니다. 이럴 때의 인자는 한시적인 것으로 하나님의 심판이 이르기 전까지입니다. 그런데 죄인들은 하나님의 인내를 용서로 착각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내의 시간을 방종하며 죄를 짓는 데 사용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기다린 이유를 회개시키기 위함입니다.
2:5 다만 네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심판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고집과 마음
고집과 회개하지 아니한 마음은 계속된 악과 죄를 말합니다. 고집은 일관성이며, 회개하지 않는 마음 역시 일관성입니다. 한 번 죄를 짓고 잘못된 생각에 빠져 계속하여 죄를 짓는 것입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합니다.
회개하지 않으면 즉 행동과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결국 ‘진노의 날’이 임할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이 나타날 것입니다.
쌓는도다
하나님의 진노를 인애와 정비례합니다. 하나님의 인내가 길어지면 그만큼 다가올 심판의 강도도 올라갑니다. 하나님은 심판하실 때 임할 진노로 심판하실 때 그들을 참아온 시간에 비례하여 심판하실 것입니다.
2:6-8 6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7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8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따르지 아니하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진노와 분노로 하시리라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하나님은 아무런 까닭 없이 심판하지 않습니다. 행한 대로 심판합니다. 역으로 악을 행하지 않는다면 심판하지 않을 것입니다. ‘행한 대로’는 명백한 결과를 말합니다. 추측하시거나 예측하시지 않고 행한 그대로를 심판하십니다.
영생으로 하시고
하나님은 선을 행하는 자는 영생을 선물로 주시지만 악을 행하는 자는 진노와 분노로 갚으십니다. 7-8절은 6절의 해석입니다. 선행은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것으로 말합니다. 마치 행위로 구원 사는 것처럼 말하지만, 실제로 구원과 행위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입니다. 행한 대로 상급과 저주를 받습니다. 7절에서는 영생을 상급으로 8절은 진노와 분노를 받습니다.
당을 지어
당을 짓다는 에레데이아는 희귀한 헬라어로 신약 이전의 문서에서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뜻은 ‘당파적인’ 또는 ‘편당 하여’라는 뜻을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힘을 규합하는 것입니다. 마치 시편 2편 1-3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시 2: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당을 짓는다’는 표현의 에리데이아스의 기본어인 에리스는
2:9-11 9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는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며 10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라 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라
악을 행하는 자
8절의 ‘당을 지어’는 9절의 ‘악을 행하는 자’로 연결됩니다. 그들은 환난과 곤고가 있을 것이라 말합니다. 당을 짓는 이유가 바로 악을 행하기 위함입니다. ‘당을 짓는’의 어원인 에리스는 투쟁 논쟁이란 단어에서 유래했으며, 이기적 욕망을 위해 자신의 편을 모으는 것을 말합니다.(WBC 로마서1) 그들에게는 ‘환난과 곤고’가 있을 것입니다. 11절의 ‘하나님’이 이 문장을 이끕니다.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바울의 확고한 선언입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심판은 먼저 유대인에게 임한 것이고, 그 다음은 헬라 인입니다. 헬라인은 이방인은 대표하는 민족으로 다른 모든 민족을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환난과 곤고-영광과 존귀와 평강
이 대립적 구문은 악을 행하는 자(9절)와 선을 행하는 자(10절)로 구분됩니다. 계명에 순종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의 종말에 대한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을 명백히 하는 선언입니다. 7절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이 10절에서 ‘영광과 존귀와 평강’로 약간 수정됩니다. ‘썩지 아니함’이 빠지고 ‘평강’으로 교체됩니다.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함
유대인과 헬라인은 대변하는 존재들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백성을, 헬라인은 이방인을 대변합니다. 하지만 둘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는 동일하게 심판을 받게 됩니다. 유대인이 먼저 등장한다는 것을 염두에 둡시다. 유대인들은 특권을 가진 존재들이며, 심판도 그들에게 먼저 일어날 것입니다.
롬 3: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2 범사에 많으니 우선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유대인들은 분명 특권을 가졌지만 결국 그들의 특권으로 인해 먼저 심판을 받을 것이며, 더욱 강하게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보십니다.
사무엘상 16:7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12-16절 율법과 심판
2:12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동일한 결론을 말합니다. 율법이 범죄한 자는 율법 없이도 망하며, 율법을 가지고 있으나 율법을 어기는 자는 율법대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모든 인류를 죄인입니다. 율법은 소유하였다 하여 율법이 지키지 않습니다. 율법은 순종해야 한다. 12절의 목적은 결국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동시에 율법은 지키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오히려 독이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롬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율법은 듣기 위한 것이 아니라 순종 즉 실천하기 위함입니다. 히브리 사상은 들음이 곧 행함이지만 헬라 사상은 구분되어 있습니다. 귀를 막는 것은 듣지 않음, 곧 불순종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지금은 헬라적 사상으로 말합니다. 왜냐하면 청중이 헬라 사상을 가진 로마인들이기 때문입니다. 들음 곧 지식이 의인을 만들지 못합니다. 오직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함을 받게 됩니다. 이 부분은 바울의 주요 교리인 이신칭의와 어긋난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하지만 바울은 행함과 의를 구분하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는 행함이 곧 의로 보았으며 바울 또한 이것을 다르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2:14-16 (14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15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고발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율법 없는 이방인
바울은 율법을 설명해 나갑니다. 하지만 이 부분은 후대에 첨가된 것으로 보입니다. 율법과 본성으로 동일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는 점은 놀랍습니다. 하지만 결국 율법도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준 것이기에 양심의 법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로마서 안에서 양심이 율법의 역할과 같음을 주장합니다. 이러한 바울의 주장은 율법을 가지고 있고, 안다고 착각하는 유대인들의 자만과 어리석음을 비꼬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쌀을 창고에 가지고 있어도 밥을 해 먹지 않으면 굶어 죽는 것과 같습니다. 율법은 지킬 때 의미가 있어집니다.
마음에 새긴 율법
14절의 본성과 15절의 양심은 동일한 선상에서 다룹니다. 비록 율법이 없다 해도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본성에 새긴 양심이 율법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양심은 하나님의 계명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지만 맥락상 같은 것입니다. 바울은 양심을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로 확장시킵니다. 이러한 해석은 16절에서 ‘은밀한 것을 심판’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를 양심을 통해 사람들이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바울은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의 몫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대리자로 하나님을 대신하고 대변합니다. 십자가에서 힘 없이 죽어간 그리스도는 후에 다시 재림하실 때 심판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17-29절 율법을 소유가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다.
[2:17-20] 17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18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9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둠에 있는 자의 빛이요 20 율법에 있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교사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율법을 의지하는 네가
17절을 율법을 의지하는 유대인들의 어리석음을 비판합니다. 그들은 율법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율법을 순종하지 않습니다. 사실은 율법을 싫어합니다. 그럼에도 율법을 소유한 것으로 자랑합니다. ‘유대인이라 불리는 네가’라는 말은 유대인인 것을 스스로 자랑하는 유대인들을 비꼬는 말입니다. 그들은 율법을 소유했으니 지키지 않음으로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킵니다. 이제 그들의 자만과 어리석음을 18-19절에서 폭로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유대인의 첫 번째 어리석음은 그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안다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생각을 알고 있다고 착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의 율법을 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신들의 특권의식을 자랑합니다. 하지만 앎과 실천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지극히 선한 것’은 율법을 존귀하게 여기는 유대인들의 성향을 말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음으로, 자신들이 안다고 생각한 율법이 그들을 심판할 것입니다.
맹인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진리는 빛이고, 지혜와 지식 역시 빛입니다. 굳이 소크라테스의 예화를 빌리지 않아도 진리는 어둠을 비추는 빛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맹인들이며, 하나님의 율법을 가진 자신들이 맹인들을 인도하는 자라 착각했습니다. 분명 계명은 빛입니다.
시편 119:130 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시편 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지만 이들은 소유할 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소유가 곧 영생이란 착각을 했던 것입니다.
2: 21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22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23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않느냐
21-23절은 유대인 자랑을 뒤엎는 바울의 폭로가 담겨 있습니다. 먼저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자신을 가르치지 않는 유대인들을 고발합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이방인들에게 가르칩니다. 하지만 자신들은 지키지 않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이중성을 폭로합니다. 진정한 가르침은 말이 아니라 행함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서 이방인들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이방인들에게 도둑질하지 말라하면서 자신들은 합니다. 간음하지 말라 하면서 그들은 간음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더 나갑니다. 우상을 가증히 여기면서 하나님의 전에서 도둑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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