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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2: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리로 공의를 베풀 것이며 | 개역한글 (KRV) | 지금 성경 앱 다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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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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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2장]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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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2장3절 상한갈대 꺽지 않이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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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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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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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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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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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12장]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마태복음 12: 9-21
예수님은 땅에 계실 때 인생고에 허덕이는 인간들을 불쌍히여기 셨읍니다. 이 광야같은 세상에 상한 갈대처럼 쓰러지고, 버림받은 인간들의 모습이 수 없이 비춰 올 때, 주님께서는 눈물을 금할길이 없었읍니다.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신 대로 무리를 보고 민망히 여기셨읍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상처난 인간들에게 향한 온유하신 성품 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이렇게 기록되어 있읍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마 l2 : 2o)하셨읍니다. 물론 이 예언은 그리스도의 온유하신 모습을 설명한 것이지만 우리 인간 편에저 보면 우리 자신이 상한 갈대들 입니다. 성경은 우리 인간들의 존재를 갈대에 비교하여 설명하였읍니다. 요단강 강변에는 지금도 넓은 지역에 갈대 밭이 있읍니다. 바람이 불거나 물결이 치면 갈대는 꺾어지고 상할 수 밖에 없읍니다. 갈대 는 습기있는 곳에는 어디서든지 자라는 식물로서 유대땅 도처에 혼 히 볼 수 있읍니다. 이처럼 연약하고 상한 갈대 같은 존재가 바로 ‘인간’이 우리들 자신입니다.
갈대같은 존 재!이는 인간의 연약성을 말합니다. 인간은 갈대와 같이 약한 것 인데, 더구나 상한 갈대는 무력하고 나약한 인간성을 표시한 것입 니다. 갈대는 바람에 꺾어지기 쉽습니다, 사람이 한 번 지나가도 상 하게 됩니다. 인간 역시 그러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전쟁이나 슬픔인생의 폭풍우가 지나갈 때 마음과 육체에 상처가 나고 깨어집니다. 생각하면 모든 사람은 상한 갈대입니다. 사람은 모두가 마음의 뚜껑을 열고 보면, 마음의 비애 와슬픔의 탄식이 있고 절망의 몸부림이 있읍니다. 상한 갈대입니다. 험악한 인생 광야에서 상한 갈대들이 여기 있읍니다. 바람에 흔들 리며 꺾어지고 상한 갈대들입니다. 주님은 오늘 이 자리에 오셔저 상한 갈대 같은 우리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첫째. 주님은 상한 갈대를 버리지 않습니다.
이 세상은 자기에게 유리할 때는 이용하려 들지만 조금만 상처가 나서 흠이 있으면 버림을 받게 됩니다. 이것이 세상인심입니다. 한 형제가 이른 아침부터 회사를 위해 열심히 뛰고 일했읍니다. 그런데 과로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해임 조치를 받았읍니디. 이 비정의 현실에 애통하는 것을 보았읍니다. 이것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은 상처 난 인간을 버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세상에서 여러 모양으로 상처 난 인간들을 찾으시고 그 들을 통하여 놀라운 일을 하셨읍니다. 예수님은 약한 자를 택하사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 없는 것을 택하여 있는 것을 폐하려고 하셨읍니다.(고전1 : 2d-sO) 시편 l47:3절의 말씀과 같이 하나넘은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회 상처를 싸매도다.’하나님은 우리가 상한 갈대처럼 쓰러질 때 불쌍히 여기십니다.
여러분 가운데 상한 심령이 있읍니까?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는 줄 믿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그 상한 갈대를 소생시키는 분이십니다. 마음이 상 한자를 불러서 상처를 고쳐 주시려고 힘쓰십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마음이 슬퍼하는 이들을 위로하여 주십니다. 죄로 상한 심령을 꺾어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케 하셔서 구원하여 주시는 분이 우리 주님이셨읍니다. 그리고 그 상한 갈대에서 새 움 이 나고 자라기를 바라시며 쓸모 있는 갈대로 소생되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를 잘 알고 있읍니다. 베드로는 자신이 연약한 갈대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갈릴리 바다에서 잔뼈가 굵은 건장한사 나이였기에 용기도 있었읍니다. 그는 장담하기를 ‘다 주님을 버릴지언정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장담을 하였읍니다. 그러나 그 는 주님이 잡히시던날 밤 닭 울기 전 연약한 소녀 앞에서 주님을 모른 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읍니다. 그때 주님의 시선은 베드로를 돌아보았읍니다. 베드로는 주님 말씀이 생각나서 심히 통곡하였습니다. 그는 상한 갈대가 되었고 연약한 소녀 앞에서 부러진 갈대였읍니다.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신 후, 베드로에게 나타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었읍니다. 베드로의 마음속에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함이 없었읍니다. 주님은 베드로에게 다시 큰 사명을 맡기셨으니 내 양을 치고 먹이라고 분부하였읍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지고 회복해서 귀한 사명을 맡기 셨습니다.
둘째, 주님께서는 상한 갈대를 향한 기대가 있습니다.
갈대는 곱게 자랍니다. 꺾이면서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비록 상한 갈대일지라도 잡초와는 다릅니다. 갈대는 약하지만 특성을 지닌 식물입니다. 아무것도 아니게 보이지만 무엇인가 쓸모있는 존재 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향하석 흔한 것 속에서 그 가치의 존귀 성을 인정하셨읍니다. 너회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하실 때, 소금은 혼히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참으로 존귀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갈릴리 바닷가에서 나부끼는 갈대, 요단 강가의 바람에 대’그러나 그 갈대는 참으로 감추어진 쓸모가 있읍니다.
갈대는 성서를 기록한 재료였옴니다.
성서를 기록한 종이가’파피루스.라고하는 갈대였읍니다. 이 갈대 에 성서가 기록되어 전승되었다는 것은 신기한 일입니다. 비록 우 리가 상한 갈대일지라도 하나님 말씀을 기록할 갈대라는 것을 알아 야 합니다. 주님은 당신의 말씀을 책에 기록하지 않았고 남기지 않 았읍니다. 세계 역사상 위대한 성인들은 다 종이에 글을 써서 남겼읍니다.그 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글을 쓴 일이 없으십니다. 그 이유는 상한 갈 대같은 우리들 속에 직접 그 진리를 기록하기 위한 것이었읍니다.
베드로,요한, 마태, 그리고 마리아, 그리고 간음한 여인의 마음에 당신의 말씀을 기록하셨읍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3장2절에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의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있는 바라. 너희는 우 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 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우리는 편지를 쓰는 갈대가 되어야 합니다. ‘ 비록 상한 갈대일지라도 상한 갈쌔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위대한 진리가 전승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보십시오 죄로 말미암아 상 할대로 상한 어거스틴 같은 청년을 불러서 회복시켜 천년간의 기독 교 사상을 지배할 수 있는 위대한 신학자로 만든 것입니다. ‘진리의 갈대로 삼으셨읍니다. ‘ 지금도 그렇습니다. 빈곤과 실패,고난과 변 슬픔과 죄에상 한 인간들을 불러서 죄를 사해 주시고 회복시켜 하나님 나라의 귀 한 일꾼으로 삼고, 복음의 산 증인’으로삼았습니다.
조용히 묻습니다. 과연 나 자신이 예수님 말씀을 기록 할만한 갈대인지요? 우리의 얼굴에서 하나님 말씀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손과 발이 움직일 때 하나님 말씀이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을 통 하여 하나님 말씀을 찬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31장33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 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 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하였습니다.
갈대는 피리를 만들어 하늘나라 노래를 부르는 기구로 쓰입니다.
하나님은 상한 갈대 같은 인간들을 다시 회복하셔서 하늘나라 노래를 부르게 만든다고 하는 사실입니다. 신앙인의 아름다운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찬미하는 악기와 같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장18 절에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였읍니다. 상한 갈대를 소생시켜서 피리를 만들어 쓰셨읍니다. 우리는 매일 생에서 아름다운 찬송이 흘러 나와야 합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럽보 감방에서 손과 발에 착고가 채워진 채 기도하고 하나님께 찬송을 하였읍니다.(사도행전16 ’24) 이 찬송 소리에모 든 죄수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 흘연히 큰 지진이 나고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고 옥문이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읍니다. 바울과 실라는 연약한 갈대, 상한 갈대같은 존 재였지만 하늘나라의 노래를 부르는 악기로 쓰임 받는 것입니다.
작곡가 헨리 크로스비는 출생한 지 6주만에 소경이 되었읍니다. 상한 갈대였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상한 갈대로 피리를 만들어 하늘 노래를 부르게 하셨읍니다. 그는 이렇게 간증했읍니다. .주께서 내 시야를 어둡게 하시고 오직 주님만 볼 수 있도록 속눈을 열어 주셨다.’하였읍니다. 그의 작곡은 무려 천 여곡이 되는 데 그 중에 우리가 부르는 찬송도 많이 있읍니다. ‘인애하신 구세 주여, 돌아와 돌아와,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 주 예수 크신 사랑, 슬픈 마음 있는 사람 ‘ 외에도 많이 있읍니다. 헨리 크로스 비는 육신의 눈은 소경이 되었지만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봄으로 주의 음성을 듣고 아름다운 노래를 작곡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 나님은 상한 갈대를 들어 아름다운 악기로 만들어 쓰셨읍니다.
갈대는 자로 사용함니다.
갈대는 대나무처럼 곧게 자라서 길이를 재는 척도로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는 주님의 심정은 이 연약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통하여 이 세상을 재는 [자]의 역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오늘 세상 사람들이 우리들을 바라볼 때, 자신의 중심과 생활을 판단해 주는 측정기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크리스천은 오늘의 사회를 저울질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우리는 불의한 곳에 정의의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어두움이 있는 곳에 빛의 [자]가 되어야 합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의 [자]가 되어 야 합니다. 갈등이 있는 곳에 평화의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자] 는 하나님 말?대로 정확한 칫수를 가진 [자]라야 합니다. 이 세상 에는 자기 부정한 양심과 거짓된 자로 살려고 하나 의로운 자(끄) 앞에서 자기 위선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역사의 바른 자(크)로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죽이고 핍박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상한 갈대일지라도 주님의 손에 붙잡힌 갈 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간은 연약한 갈대이나 주님의 강한 손이 붙들어 주신다는 것입 니다. 마태복음 27장29절에 보면 수난의 그리스도께서 빌라도의 법 정으로 끌려 가서 그의 몸에 흥포를 입으시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 관을 쓰시고 손에 갈대를 가지신 것을 묘사하고 있읍니다. 그것은 불성실한 로마 군인들이 즉흥적으로 꾸며낸 것이지만 예언적이며 암시적인 말입니다. 흥포는 왕=을, 가시관은 면류관을 표시하고, 손에 잡힌 갈대는, 왕권을 상징하는 흘을 대신한 것이었읍니다. 그떻다면 우리 성도들 은 그리스도의 손에 잡힌 갈대로서 그의 권세를 행사하는 그릇이라 할 수 있읍니다.
주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버리시지 않았 읍니다. 이사야 57장I5절에 보면,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하였읍니다. 시편 5l편17절에는,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하였읍니다.
상한 갈대는 자신의 전적 무능을 느껴 아는 사람이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죄를 통회하는 것이 상한 사람의 심령 입니다. 이런 상한 갈대를 주님은 꺾지 않으시고 더욱 사랑하십니 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자신의 상한 갈대로 철저하게 고백하는 신앙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상한 갈대임을 알았읍니다. “우리가 아 보배를 질 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 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 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거 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고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지면 예수의 생명도 우리의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고훅4 : 8-I0) 하였읍니다. 바울은 쓰러지고 넘어지고 바람에 거꾸러지는 갈대임을 알았읍니다. 그러나 주님의 손에 붙들린 갈대임을 알았을 때, 결코 망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고 있었읍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스릴이 있고 승리의 기쁨이 있읍니다.
우리는 모두다 상한 갈대입니다. 육신적으로 병들고, 사업의 실패 마음의 비애, 가정의 파탄, 죄로 얼룩진 심령, 모두가 상처 난 갈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낙심하지 않습니다. 전능하신 주님의 손이 이 상한 갈대를 붙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들이 서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하나님이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생명, 건강. 가정, 사업, 직장,교 회 인간의 모든 것을 붙들고 계심을 확신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상한 갈대, 그것이 더욱 자랑스러웠고, 그의 큰 능력은 실 로 상한 갈대의 겸손에서 온 것이었읍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I2장7절에 이렇게 간증하고 있읍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너무 커서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육체에 가시가 잇어서 상한 갈대가 되었읍니다. 이것을 고치려고 눈물로 기도할 때 주어진 응답은 내 은혜가 족하다 하는 것이었읍니다. 이는 하나님 의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해지는 것을 알았읍니다. 이제 바을은 자기 자신의 약한 것이 자랑이었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 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였고 약할 그때에 곧 강해지는 비결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상한 갈대라고 느껴집니까? 낙심하지마십시오 주 의 손이 더욱 강하게 붙들어 주실 때인 줄로 믿습니다. 위대한 종 들은 주님의 손에 붙들린 갈대였읍니다. 주님의 손에 붙들릴 때 말을 기록할 성스러운 존재가 되고, 아름다운 찬양을 할 수 있으며, 세상과 교회에 [자]가 될 수 있읍니다. 이사야서 4l장10절에,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 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하였읍니다. 오늘도 상한 갈대를 붙드시고 우리들에게 가까이 오신 주님을 영접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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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42장3절 상한갈대 꺽지 않이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이사야 42장3절 상한갈대 꺽지 않이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비 오는 아침 출근 길 차안에서 듣게된 마커스의 “그 사랑”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복음성가 중 하나입니다.
그 가사를 들여다 보면
아버지 사랑 내가 노래해
아버지 은혜 내가 노래해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상한 갈대 꺾지 않으시는
꺼져가는 등불 끄지 않는
그 사랑 변함 없으신 거짓 없으신
성실하신 그 사랑 사랑
그 사랑 날 위해 죽으신 날 위해 다시 사신
예수 그리스도 다시 오실 그 사랑
죽음도 생명도 천사도 하늘에 어떤 권세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그 사랑 예수
그동안 저는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에 대해서 그저 생각없이(?) 흘려 들으며
그 미약한 존재가 힘없이 상처받는 세상속의 “나”라고 인식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이 복음성가를 들으시며 그부분을 어떻게 이해하셨는지요?
“그 사랑”의 작사가는 과연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에 대해 누굴 지칭하며 썻을까요?
평소 아무 의심없이 감성적으로 흘려 들으며 좋아했던 마커스의 “그 사랑”
그러다 문득 그 상한 갈대와 꺼져가는 등불이 누구를 지칭하는지에 대해 성경에 말씀을
확인하고 싶어지게된 이 마음의 감동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찾은 바에 대해 글을 올려 봅니다.
열왕기하 18:21
이제 네가 너를 위하여 저 상한 갈대 지팡이 애굽을 의뢰하도다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그의 손에 찔려 들어갈지라 애굽의 왕 바로는 그에게 의뢰하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이사야 42:3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이사야 36:6
보라 네가 애굽을 믿는도다 그것은 상한 갈대 지팡이와 같은 것이라 사람이 그것을 의지하면 손이 찔리리니 애굽 왕 바로는 그를 믿는 모든 자에게 이와 같으니라
마태복음 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성경속에 나오는 상한 갈대에 대한 비유는 세상속에 약한 “나”가 아닌 하나님과 반대되는 세상의 힘을 뜻하는 세상의 지팡이 애굽을 상징하는 것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겠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 참 믿음에 길로 나올수있도록 세상 권력자인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그를 이용하여 당신의 백성을 심판에 이길 때까지 활용하시겠다는 하나님 계획속 은혜의 의미였던 것입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탈출하던 전 과정을 되돌아 보며 바로의 마음을 어떻게 주장하게하셨는지를 이해하게 된다면 그로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한 변화되는 과정을 거쳤는가를 되돌아 본다면 깨달을 수 있을것같습니다.
또한 꺼져가는 등불에 대한 성경 속 말씀입니다.
잠언 13:9
의로운 사람은 밝게 빛나는 빛과 같고 악인은 꺼져가는 등불과 같다.
잠언 20:20
자기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의 최후는 어둠 속에서 꺼져가는 등불과 같을 것이다.
마태복음 12:20
그는 진리가 승리할 때까지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실 것이다.
마태복음 25:8
미련한 자들이 슬기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우리 등불이 꺼져가니 너희 기름을 좀 나눠 달라 하거늘
꺼져가는 등불은 또 어떠합니까?
믿음이 나약해서 흔들려지는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나타낸것이 아닌 상한 갈대와 같이 하나님의 사람을 비유한것이 아닌 악인과 미련한 자들을 지칭하는 말씀이였던 것입니다.
상한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시겠다는 의미는 당신의 택한 백성들의 구원에 필요한 한 부속물로 그들을 이용하시겠다는 의미이며 그러한 모든 일련의 과정이 택한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완전하시고 철저하도록 계획적이신 하나님의 경륜을 말씀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물론 이미 이러한 은혜를 깨달아 마커스의 작사자는 글을 썻다라고 이해되며 또한 이것을 즐겨 부르시는 많은 분들 또한 이미 그러한 놀라운 비밀을 깨달으시고 즐거 부르셨을꺼라 생각합니다.
그러한 비밀을 미쳐 깨닫지도 못하고 그저 흘려 들어 왔던 저에게 이렇듯 뜻하지 않은 출근길에서
궁금하게 하시고 찾아 보시게 하시고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사 42:1~4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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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마태복음 제 18 강 / 이창무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말씀 / 마태복음 12:1-21
요절 / 마태복음 12:20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휴식이란 무엇일까요? 멋진 여행지에서 즐기는 것일까요? 12시간 정도 늘어지게 자는 것일까요? 그런데 휴식하면 할수록 오히려 피곤함을 느끼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휴식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교의 두 기둥은 할례와 안식일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수호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과연 참된 안식이 무엇인지 알면서 지키고자 했을까요? 오늘 말씀 속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통해 참된 안식에 이르는 길을 우리에게 제시해 주십니다. 그 길이 무엇일까요?
첫째로,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참된 안식을 얻습니다. 1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때였습니다. 배 고픈 제자들이 밀이삭을 잘라먹었습니다. 이것은 귀엽게 봐주면 서리지만 심각하게 보면 절도죄 아닙니까? 그런데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죄가 아니었습니다. 율법은 굶주린 사람을 위해 낫을 대지만 않는다면 얼마든지 이삭을 잘라먹을 수 있다고 허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이 문제 삼은 것은 다른 것이었습니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손으로 이삭을 잘라 추수하고 비벼서 탈곡하고 껍질을 털어 키질을 했으니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세 가지나 했다’ 이것이 바리새인들의 관점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어떻게 답하셨습니까? 예수님은 두 가지 이유로 제자들의 행동을 변호하셨습니다. 첫째 예수님과 제자들은 안식일 법에서 예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약에도 안식일 법에서 예외를 인정했던 사례들이 있습니다.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느라 시장할 때였습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은 제사장만이 먹도록 규정된 진설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아히멜렉이 허락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단지 그들의 배고픔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대상이 다윗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이 누구입니까? 구속 역사에서 메시아의 직접적인 그림자가 되는 특별한 사람입니다. 도대체 메시아가 어떤 분이시기에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까요?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기절초풍할 깜짝 선언을 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6)” 성전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사람이 하나님과 만나는 곳입니다. 이 성전 안에서 제사장들은 안식일에 일했습니다. 이것이 그들의 의무였습니다. 성전이 그림자라면 그 실체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인생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제자들은 성전보다 더 크신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처럼 안식일에 일해도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둘째 자비의 법이 제사 법보다 상위의 법이기 때문입니다. 허기질 때 이삭을 잘라먹어도 된다는 것은 자비의 법이고 안식일 규례는 제사 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세아를 통하여 ‘내가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에 따르면 제사 법보다 자비의 법이 더 상위의 법입니다. 상위 법을 따른 제자들은 아무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결론을 내리십니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8)” 구약에서 안식일 법은 두 가지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천지 창조이고 다른 하나는 출애굽 구원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창조주요 구원자가 되신다고 선포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안식일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이해하고 지켜져야 합니다.
신약 시대의 성도들은 안식일 대신 주일을 지키고 있습니다. 주일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된 날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일이 안식일과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에는 재창조와 구원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일은 구약의 안식일을 계승하고 흡수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주일을 어떻게 지켜야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주일에는 안식일을 지킨 유대인들처럼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월요일에 기말 시험이 있어도 주일에는 공부를 못하게 했습니다. 일체 돈을 쓰지 못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주일은 여느 평일이나 다를 바 없는 날이지만 예배만 잘 드리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예배를 드린 후 하루 종일 골프를 치거나 여행을 다니기도 합니다. 장사도 하고 사업도 하고 평소처럼 할 것은 다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주일을 지켜야 할까요? 우리는 두 양극을 다 피해야 합니다. 주일을 율법적으로 지키는 것도 문제이고 주일을 평일과 구별되지 않게 보내는 것도 잘못입니다. 율법적으로 지키게 되면 우리는 율법의 짐에 눌려 정작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주일을 구별하여 지키지 않으면 우리는 계속 근심에 매이고 갖가지 욕심에 이끌리게 안식을 누리지 못하게 됩니다. 주일은 한 주 동안 망가졌던 우리 몸과 마음이 치유 받고 회복되는 날입니다. 주일은 주님께서 행하신 창조와 구원의 큰 일을 기념하고 감사하고 주님께 예배 드리는 날입니다. 주일은 가족과 이웃과 동역자들과 양들을 돌아보며 자비를 베풀고 선을 행하는 날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중심으로 주일을 보내고 나면 한 주를 성령충만한 가운데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주일이 우리를 지켜줍니다. 예전 한국교회는 율법적인 주일 성수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세속화된 주일 성수가 더 큰 문제입니다. 우리가 중심을 잡고 주일을 구별하여 지킬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일에 우리가 모여 서로를 위로하고 북돋우며 격려하는 가운데 세상을 이길 새 힘을 얻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로, 예수님 앞에 병든 손을 내어 놓을 때 우리는 참된 안식을 얻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예배하러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곳에 한 손 마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한 손은 몸 전체에서 작은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대부분의 일을 손으로 합니다. 말라버린 한 손은 그의 인생 전체에 짙은 어두움을 드리우게 했습니다. 이런 사람을 보면 보통 ‘참 딱하다. 빨리 회복되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아니었습니다. 그를 이용해서 예수님을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평소 예수님의 성향으로 보아 고쳐줄 것이 뻔하고 그러면 안식일에 의료 행위를 했다는 죄목으로 예수님을 걸고 넘어질 심산이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반문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한 가난한 사람의 전 재산인 양 한 마리가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다면 어떻게 할까요? 그냥 두면 죽게 생겼으니 당연히 건져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합니까? 아무리 안식일에 일을 하면 안 된다고 해서 선한 일을 행하는 것까지 금지해야 옳습니까? 손 마른 문제로 오래 동안 안식을 누리지 못한 이 한 사람을 치유하여 안식을 누리게 하는 것, 이런 선행이야말로 안식일을 가장 안식일 답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바리새인들의 입을 막으신 예수님은 무엇을 하셨습니까? 13절을 보십시오.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 손을 내밀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한 손 마른 사람이 순종하기 쉽지 않은 명령이었습니다. 치유를 확인하고 손을 펴는 것이 아니라 대뜸 손부터 먼저 펴라고 하시니 당황스러웠습니다. 게다가 말라 비틀어진 손을 내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그러나 그는 담대하게 손을 내밀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오그라졌던 손이 쫙 펴졌습니다. 이제 그도 드디어 가위바위보 할 때 보를 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예수님은 다윗보다 크시고 성전보다 크신 안식일의 주인임을 증명하셨습니다.
누구에게나 다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도록 마음 깊은 곳에 감추어둔 치부가 있을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각자 한쪽 마른 손이 있습니다. 열등감일수도 있고 마음의 상처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꼭꼭 감추고 있는 한 고침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시간이 흐른다 해도 저절로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이 한쪽 마른 손 때문에 계속 고통을 받습니다. 이 문제를 묻어 두고 있는 한 마음에 평안과 안식을 온전히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내밀라” 우리는 믿음으로 주님 앞에 병든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내밀면 죽을 것 같지만 그래도 내밀어야 합니다. 내민다고 뭐가 달라질까 하는 회의가 들지만 그대로 내밀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깨끗하게 고쳐 주실 것입니다. 건강한 새 인생을 살게 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 앞에 병든 손을 내밀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치유와 회복의 은혜를 체험하고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셋째로,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참된 안식을 얻습니다. 안식일을 둘러싼 두 번의 대결에서 번번히 패배한 바리새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우리가 졌으니 예수님을 인정합시다.’ 했을까요? 14절을 보십시오. 바리새인들은 나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죽일까 의논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제일 바쁜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들입니다. 제자들을 감시해야지, 재판에 넘길 함정을 파야지, 살해 모의를 해야지, 너무 바쁩니다. 안식일을 지키겠다고 나선 그들이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의 안식을 방해하고 스스로도 안식하지 못했습니다. 그들과 논쟁은 더 이상 의미 없다 판단하신 예수님은 본업으로 돌아가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습니다. 동시에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마태의 마음 속에 선지자 이사야의 한 예언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예언입니까? 18절을 보십시오.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신성을 모독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택한 종이고 기뻐하시고 사랑하는 분이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사탄의 힘을 빌려 기적을 일으키고 있다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으로 기름 부음을 받아 성령충만하신 분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법을 무시한다고 고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실상 예수님은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을 이방에까지 전파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스타일이 어떻습니까? 19절과 20절을 보십시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첫째 예수님은 다투지도 들레지도 않으십니다. 일할 때 사람을 감정과 혈기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자기 광을 내려 하거나 뽐내지 않으셨습니다. 선한 일을 하시되 묵묵히 조용하게 하셨습니다. 다만 모든 영광을 하나님 아버지께 돌리고자 하셨습니다. 둘째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십니다. 갈대는 약함의 대명사입니다. 상한 갈대는 오죽하겠습니까? 가만 두어도 꺾일 갈대를 사람들은 재미삼아 꺾어 버립니다. 꺼져 가는 심지는 연기와 그을음을 심하게 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손으로 지긋이 눌러 꺼트려 버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십니다. 상한 갈대, 꺼져가는 심지는 누구입니까? 죄로 병든 사람, 연약한 사람, 도저히 소망 둘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을 품고 감당해 주십니다. 상한 갈대에 지지대를 붙여 주시고 양분을 공급해 주십니다. 꺼져 가는 심지에 기름을 계속 부어 주시고 바람을 막아 주십니다. 튼튼한 갈대가 되고 활활 타오르는 등불이 될 때까지 그렇게 하십니다. 마태가 그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이기심과 탐욕에 깊이 병든 마태를 사람들은 외면하고 멀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그를 제자로 삼아 아예 곁에 두고 섬겨 주셨습니다. 그 결과 마태는 천국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 마태, 성 마태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 안에서는 누구나 다 소망이 있습니다. 어떤 연약한 사람, 죄로 병든 사람도 예수님 안에서 참된 안식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일을 할 때 다투면서 일을 합니다. 자기를 지키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이익을 챙기기 위해 다툽니다. 여기서 밀리지 않으려면 나도 맞서 싸워야 합니다. 그래서 피곤합니다. 사람들은 아직 작은 일을 하고 나서도 여기저기 광고를 합니다. 자기 PR 시대에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앞다투어 관심을 끌려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는 지쳐갑니다. 또 이 사회는 약한 자에게 냉혹하지 그지없습니다. 약점을 보이면 집요한 공격을 받습니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한 번 뒤쳐지면 다시는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속에서 우리는 늘 긴장하고 약해도 강한 척, 없어도 있는 척하며 사느라 쉴 틈이 없습니다. 도대체 우리는 어디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다투지도 들레지도 않으시는 예수님, 상한 갈대를 꺽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로 나아가면 됩니다. 이 예수님 말고 어디에서 우리가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겠습니까?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 안에서는 우리는 쉼을 얻습니다. 우리를 품어 주시고 묵묵히 감당해 주시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평안을 얻습니다. 더 나아가 우리도 예수님 스타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작은 이익 때문에 서로 다투지 말고 양보해야 하겠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자기를 자랑하거나 과시하지 말아야하겠습니다. 연약한 사람, 죄로 병든 사람을 품고 섬기고 감당해 주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오더라도 우리 안에서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공동체를 함께 이루어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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