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12 예레미야 52장 강해 The 78 Detailed Answ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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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한 장] 예레미야52장_바벨론왕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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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2장 강해설교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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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레미야 52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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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예레미야 52장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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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31/(토) \”예레미야 52:1-34\”/ 작성: 박창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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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타운 한인 침례교회 사랑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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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예레미야 5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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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어 예레미야 52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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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큐티설교(예레미야 52:1-11) 신앙의 본이 되는 삶 – 충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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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2일 큐티설교(예레미야 52:1-11)  신앙의 본이 되는 삶 - 충일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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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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µÎ¶õ³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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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5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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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경 : 예레미야 5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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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52장 강해설교

예레미야 52장

긴 예레미야의 말씀에서 52장은 마지막 장이다. 이 마지막은 결론 부분에 해당하기에 과연 어떤 결론으로 예레미야의 말씀이 끝날까 기대하며 펼치지만 유감스럽게도 새로운 내용이 전개되지 않고 39장의 내용이 반복되고 있다(단, 31-34절은 24장의 성취다). 자구 전부가 같은 것은 아니지만 그 중심 내용은 분명 반복되고 있음이 틀림없다. 이미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패하는 사건이 언급되었는데 왜 또 마지막에 그 사건을 반복하는 것인가?

예레미야는 여호와께 받은 말씀을 근 40여 년 동안 계속 예언해 왔다. 이제 그의 사명을 마무리 하면서 그가 남기고 싶은 결말은 다름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예언하신 말씀이 어김없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결국 예언의 성취라는 관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결론에 해당하는 마지막부분에서 다시 같은 사건을 반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도 가장 큰 사건을 뽑아서.

성도라면 여호와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살기 마련이다. 예언의 말씀이 성취됨을 보면서 감사와 찬양이 터져 나온다. ‘과연 우리 하나님은 언약대로 모든 것을 이루어 가시는 분이구나. 그분의 말씀에는 한 치의 오차도 없어. 남은 일들 또한 약속하신 대로 이루실거야. 그 말씀만 바라보며 살자!’ 이런 생각이 들게 하신다.

시드기야는 유다의 마지막 왕이었다. 그는 젊어서 왕위에 올라 혈기와 사명감으로 뭉쳐있었다. 일국의 왕으로서 백성들에게 추앙과 신임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여론을 살피며 나라의 안정과 평안을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왜 시드기야 왕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했다는 평가를 받아야만 했는가? 그가 왕의 자리에서 게으름을 피웠다거나 국정에 소홀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렇다고 외교적 지혜가 모자라서도 아니다. 단 한 가지 왕으로서의 잘못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선지자의 예언의 말씀을 외면했다는 것이다. 이점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했고 그 결과 나라는 패망하고 왕 본인 또한 처참한 환경을 맞이한다.

사람이면 누구나 남을 의식하면서 산다.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늘 염두에 두고 행동한다는 말이다. 학생이면 선생님의 평가를 의식하고, 직장에서는 다른 직원들의 눈을 의식한다. 그 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는 나 아닌 상대를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의식하는 것 보다 먼저 생각해야 할 분이 있다.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다. 그분은 모든 인생의 주관자이시며, 자기 뜻에 따라 천하 만물을 다스리신다. 이런 주인되시는 분을 외면한 채 눈에 보이는 사람들만 생각하면서 살아간다면 시드기야 왕처럼 어리석은 삶을 살게 된다.

유다 백성들은 시드기야 왕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성경에는 그 기록이 나타나 있지 않다. 이것은 하나님의 큰 관심사가 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시기에 시드기야는 낙제점을 받았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이다. 이런 말씀을 보면서 ‘우리의 삶은 과연 여호와 보시기에 어떠한가?’라는 물음이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여호와의 평가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의 평가가 전부이기에 거기에 관심기울이며 살아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불꽃같은 눈으로 살피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야 한다. 만약 이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 불쌍하고 비참한 생애는 없다.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제 마음대로 살아가는 인생을 향해 진노하시는 분이 여호와시다. 그분의 분노는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도, 피할 수도 없다.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끝까지 버티려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내리신 형벌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자식을 삶아 먹어야 하는 처지에 이른 것이다. 시드기야 왕이 겪은 심판 또한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일이었다. 자식들이 살해당하는 모습을 목도해야했고, 왕 자신도 두 눈이 뽑힌 채 쇠사슬에 결박되어 포로로 끌려갔다.

이제 예레미야의 말씀을 정리해 보자. 과연 하나님은 자기 언약대로 모든 것을 성취하시는 분이다. 성도는 그분의 뜻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짐을 믿고 기다려야 한다. 인간들이 원치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취소되는 법은 없다. 결국은 그분의 약속대로 되어간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 외에 다른 것에 기대와 희망을 걸 수는 없다. 선지자를 통해 자기 뜻을 나타내 보여주신 그분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겸손하게 그 말씀에 의지하며 살아가자.

[스크랩] 예레미야 52장 주석

예레미야 52장 주석

=====52:1

시드기야가…나이 이십 일 세라 – 시드기야란 이름은 그의 왕명이었으며, 왕위에

오르기 전의 원래 이름은 맛다니야였다(왕하 24:17 참조). 그는 조카인 여호야긴이

폐위되고 난후 느부갓네살에 의해서 유다의 통치자로 임명 되었다(B.C. 597년).

=====52:2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 이것은 시드기야 통치의 결산에 해당되는 말이

다. 아울러 이는 유다의 패망에 대한 주요 원인을 암시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52:3

여호와께서…쫓아내시기까지에 이르렀더라 – 유다에서 일어난 일들은 여호와의 진

노를 불러일으킬 만한 것이었으며, 결국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을 배반함으로써 그들이

유다 땅에서 쫓겨나는 여호와의 진노가 성취되었던 것이다(왕하 24:20 참조). 한편,

본절을 문자적으로 직역하며, ‘실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자신의 눈앞에서 쫓아낼 때까

지 그것이(죄악이) 여호와의 진노에 대해 유다와 예루살렘 안에 있었도다’이다. 한

편, 일반 역사가들은 유다의 멸망이 주변 상황에 따른 것이지 여호와의 진노로 인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이 여호와이시고 또 유다 멸망의

변수를 만드신 분이 여호와이시란 것이 신앙인의 역사에 대한 관점일 것이다(Bright).

=====52:4

시드기야 구 년은 현대력으로 B.C. 588년에 해당된다. 그리고 히브리 종교력

시 월은 바벨론식으로 데벱월(에 2:16)에 해당하며, 양력으로는 12-1월에 해당한

다. 바벨론 군대는 겨울의 혹한을 이용하여 기습적 공격을 감행했던 것 같다.

=====52:5

십 일 년까지 에워싸였더니 – 앗수르 고분 부조를 연구해 보면,예루살렘 성의 포위

공격의 형태가 어떠했을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전투 양상은 바벨론이나 앗수르나

큰 차이가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성을 포위하여 진을치고, 그리고 성벽 파괴

용 무기들을 가동했으며, 또한 임시 망루를 만들어 그 위에 올라가 불화살이나 돌 따

위를 성안으로 던지는 그런 전략이 진행되었다. 그리고 포위 공격은 시드기야 제 11

년 넷째 달(6절) 즉, 현대력으로 B.C. 586년 6-7월경까지 계속되었다. 넷째 달이라고

하는 언급은 70인역(LXX)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포위 공격은 약 18개월

동안 계속되었던 셈이다.

=====52:6

성중에 기근이 심하여 – 성중의 기근에 대해서 39장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여

기서와 애 4:1-10에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언급되고 있다(Nicholson). ‘심하여’의 히

브리어 ‘하자크'(* )는 ‘달라붙다’, ‘지속되다’는 뜻으로, 오랜 기간 동안 포

위당함으로 인해 기근의 상태가 극에 달했음을 나타낸다.

=====52:7

왕의 동산 곁문 길로 도망하여 – 본절의 내용은 39:4에도 언급되고 있다. 시드기

야와 그의 근신들은 삼엄한 바벨론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간신히 달아났을 것이다.

한편, 한글 개역 성경에서와 같이 맛소라 사본은 시드기야의 탈주에 대한 언급을 생략

하고 있으나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서, 그리고 39장에 언급된 사실로 보아서도 왕의

탈주는 분명하다(Bright).

아라바는 사해(死海) 남쪽에서 아카바 만에 이르는 넓은 광야 지역이다.

=====52:8

왕의 모든 군대가 그를 떠나 흩어진지라 – 왕의 호위대가 왕을 혼자 내버려두고 흩

어지게 된 상황이 언급되는데, 어쩌면 어둠 속이었기 때문에 일사 불란하게 왕을 호위

하지 못했을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것보다는 갈대아인들이 왕을 목표로 해서 추적해

왔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 39:1-10에는 이같은 내용이 언급되고 있

지 않다. 이 사건은 애 4:19, 20에 반영되고 있다.

=====52:9

하맛 땅 립나에 있는 바벨론 왕에게로 – 시드기야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그의 신

하들에 관한 내용은 39:5-7과 왕하 25:5-7에 기록되어 있다. ‘하맛 땅 립나’는 오론

테스 강가에 있는 가데스 남쪽 고대 수리아의 한 도시였는데, 느부갓네살은 여기서 원

정군의 전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 립나는 또한 애굽과 메소포타미아의 여러

군사 도로가 마주치는 전략적인 요충지이기도 하였으며, 느부갓네살의 임시 본부가 위

치해 있던 곳이었다(Thompson).

=====52:10

시드기야는 바벨론에 투항하라는 예레미야의 권면을 끝내 거부함으로써, 그 목전에

서 자녀가 살해되는 것을 보아야 하는 처절한 아픔을 자초하고 말았다. 이곳의

모든 방백이란 립나에 죄수로 수용되어 있던 유다 방백들을 말한다. 왕하 25장에

는 이러한 내용이 언급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서 이송되었던 것이 분명하

며, 이들에 대한 처형은 예루살렘 함락 후 몇 주가 지나서 행하여졌을 것이다.

=====52:11

그 죽는 날까지 옥에 두었더라 – 겔 12:13의 성취이다.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옮

겨져 거기서 죽을 때까지 감옥 생활을 하게 되었다고 하는 상세한 설명은 39:7에는 언

급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그가 예루살렘 성의 함락 전후에 겪었던 그 쓰라린 육체

적, 정신적 고초를 감내하면서 그 이후 그가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살 수 있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짐작컨대, 아마 그는 그 이후 오래 살지 못했을 것이다. 한편,

옥에 해당하는 ‘베트 하페쿠드트'(* )는, ‘감옥’이란 뜻으로

본서에 자주 언급되는 ‘마타라'(* )와 비교된다(32:2, 8, 12; 33:1; 37:21

등). 문자적으로 ‘징계의 집’으로도 번역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하여, 혹자는 시드기

야가 삼손처럼 맷돌을 돌려야 했다고 해석하나(Hitzing) 확실한 근거는 없다.

=====52:12

본절의 내용은 39:1-10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한편 ‘오 월’은 현재의 7-8월에

해당되며, ‘십 일’은 왕하 25:8에서는 7일로 나타나 있다. 아무튼 느부사라단이 예루

살렘에 도착한 것은 예루살렘 함락 이후 약 한 달이 지난 때였다(Bright). 한편 그의

도착 연대로 언급되고 있는 느부갓네살 십 구 년은 B.C. 586년에 해당된다. 그것은

느부갓네살이 실제적으로 왕위에 등극한 때가 B.C. 605년이었다는 연대 계산에서 나온

것이다.

=====52:13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의 주요 건물들을 불사르

는 장면이 언급되는데, 그 불길은 전도시를 휩쓸었을 것이다(Thompson). 한편 어떤

이는 ‘귀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가돌'(* )을 그다랴라고 번역하였는

데, 이는 음가가 다소 비슷하기 때문이나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52:14

예루살렘 사면 성벽을 헐었으며 – 고대 유적지에 대한 발굴 중에 기드론 계곡이 탐

사된 적이 있는데, 거기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황폐가 극심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헐다'(* , 나타츠)라고 하는 말은 본서에서 빈번하게 쓰였다. 여호와는 예

레미야에게 열방을 헐어내리는 임무를 맡기셨으며(1:10), 또한 여호와 자신이 한 나라

를 헐어내리실 것이라고도 말씀했다(18:7), 그리고 여호와는 이스라엘을 이미 헐어내

리셨던 것이다(31:28).

=====52:15

본절은 느부사라단이 유다 백성을 포로로 잡아간 사실을 언급한다.

백성 중 빈한한 자에 대한 언급이 왕하 25:11; 렘 39:9에서는 나오지 않지만, 맛소

라 사본을 위시하여 대부분의 사본에는 수록되어 있다. 본절의 ‘빈한한 자’나 16절의

‘빈천한 국민’은 히브리어로는 모두 ‘달로트'(* )이다. 결국 느부사라단은

유다의 지도층뿐만 아니라 빈부 귀천을 막론한 일반 백성들까지 상당수를 잡아갔던 셈

이다.

무리로 번역된 히브리어 ‘아몬'(* )은 ‘하몬'(* )의 어미 변

화로 보고 ‘군중’, ‘무리’로도 번역되나, ‘공교한 기술자’로 번역될 수도 있다.

=====52:16

빈천한 국민을 남겨 두어 – 정치적으로 비중이 없는 자들은 남아서 포도원을 가꾸

는 농부가 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힘이 없고 빈천한 자들이었다. 갈대아인들은 유다

를 정치적으로 무력화시킬 만한 충분한 포로들을 확보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의 사람들

이 필요없었을 것이다. 한편, 40-41장의 내용을 보면, 미스바 지역 공동체는 상당한

세력을 형성한 듯이 보인다. 아마 그들은 바벨론 군대를 용케 피했던 자들에 의해 인

도된 집단이었으리라 짐작된다.

=====52:17

두 놋기둥과 받침들과…놋바다 – 본절에 언급되어 있는 성전 기구들은 왕상

7:15-39에 나온다. 이 ‘두 놋기둥’에는 기둥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하나는 야긴이

었고 좌편에 세워진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였다. 그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었

다. 상세한 설명은 왕상 7:15-22을 참조하라. ‘놋바다’는 왕상 7:23-26에, 그리고

‘받침’에 대해서는 왕상 7:27-39에 언급되고 있다. 이 기둥의 용도가 어떠한 것이었

는지 분명하지 않지만, 아마도 제단의 불이나 화롯불을 담아두었던 것 같다. 이러한

기둥들은 수리아 신전 벽화를 보건대 B.C. 10세기경에 대단히 유행했던 것 같다.

=====52:18

가마들과 부삽들과 불집게들… – ‘가마’는 조그마한 물건들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기는 데 사용되었다. 아무튼 이곳에 언급되고 있는 여러 기구들은 크기가 상당했을

것으로 보인다. 놋바다의 직경은 약 456cm 정도되었다. 이런 기구들은 모두 놋으로

만들어졌는데, 당시에는 바벨론으로 옮겨갈 만큼 귀중한 것이었다(Thompson).

=====52:19

금물의 금과 은물의 은을 가져 갔는데 – 이를 직역하면, ‘금이었던 것 – 금, 은이

었던 것 – 은’이다. 아마도 이 말은 본절의 잔들, 화로들, 주발들, 솥들 등이 모두

금이나 은으로 만들어져 있었음을 가리키는 듯하다. 금으로 만들어진 제기들이 출

25:29 이하에 언급되고 있고, 왕상 7:49 이하에는 이들 항목 중 대부분이 언급되고 있

다.

=====52:20

열 두 놋소 곧…놋 중수를 – 왕하 25:16에는 본절에 언급된 항목들이 나오지 않는

다. 어떤 학자들은 놋으로 만들어진 열 두 소들이 한세기 반 전에 이미 앗수르의 공

물로 보내졌기 때문에 본절이 첨가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설령 앗수르로 보내진 것

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것들은 그 이후에 다시 되돌려졌을 수도 있고 아니면 새로이

만들어졌을 수도 있다(Bright).

=====52:21

한 기둥의 고가 십 팔 규빗이요 – 70인역(LXX)은 대하 3:15과 같이 기둥의 높이를

35규빗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왕상 7:15 주석을 참조하라.

=====52:22

그물과 석류가 다 놋이며 – 기둥의 장식이나 조가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왕상

7:16-20에 언급되어 있다. 이런 류의 장식은 대제사장의 의복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출 28:33). 한편 라스 삼라(Ras Shamra)에서 발견된 용기에서 보아 알 수 있듯이 이

런 장식은 이스라엘 내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그 주변 나라에서도 알려져 있었다.

=====52:23

그 사면에 있는 석류는 구십 륙이요 – 몇몇 세부적인 사항들은 왕상 7장의 내용과

다르게 표현되고 있는데, 아마 여기서는 예루살렘 함락 당시 바벨론으로 약탈되어간

성전 기물들에 대한 대략적인 요약 진술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본장의

기록 목적도 세부적인 사실 전달에 있었던 것이 아니며 아름답고 귀중한 것들이 약탈

당하고 파괴되었다고 하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이다(Thompson).

=====52:24

여기서 다시 느부사라단이 등장한다. ‘스라야’는 요시야 시대의 대제사장이었던

힐기야의 손자였다(대상 6:13-15). 스라야의 아들은 여호사닥으로서, 포로기 이후 성

전 재건을 주도하였던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부친이었다(스 5:2; 학 1:1 등 참조). 그

리고 ‘부제사장 스바냐’는 29:24-32과 37:3에 언급되었던 스바냐와 동일 인물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세 명의 문지기는 성전을 관리했던 것으로 보이는 높은 직책의 제사

장들이었다.

=====52:25

군사를 거느린 장관 하나와…왕의 시종 – ‘장관’으로 번역된 ‘사리스’

(* )는 ‘거세하다’는 뜻의 사용하지 않는 어근에서 유래한 말로 환관을 의

미한다. 본서 중반부에서도 언급했다시피 이 환관이란 직책은 처음에는 왕의 내실을

관리했던 직책이나, 그 이후 보직(補職)의 범위가 확장되어갔던 것으로 짐작된다. 브

라이트(Bright)는 이 사람이 군대 장관이 아니라 대민 관계를 맡았떤 공직자였던 것으

로 설명한다. 그러나 어쩌면 군대와 관계가 있다고 하더라도 야전에서 전투를 하던

사람이 아니라 국방 장관 정도 되는 직책이었을 수도 있다. 그리고 ‘왕의 시종’

(* , 로에 페네 하멜레크)에 대한 문자적 번역은 ‘왕의 얼굴

을 보았던 사람들’이다. 아마도 이들은 왕을 개인적으로 만날 수 있을 정도로 신임을

받고 있어 빈번하게 왕과 접촉했던 그런 사람이었을 것이다. 한편, 이들의 숫자가 본

절에서는 칠 인으로 되어 있으나 왕하 25:19에는 다섯 사람으로 나타나 있다. 또한

‘군대 장관의 서기관’이란 것은 부사령관이나 부관 정도 되는 그런 위치였을 것이다.

‘국민'(* , 메암 하아레츠)의 문자적 번역은 ‘그 땅의 백성’으로서

일반 서민을 가리킨다(Bright).

=====52:26

립나 바벨론 왕에게 나아가매 – 시드기야가 압송되어 갔던 립나로 이들 선발된 무

리들 역시 이송되었다. 아마도 이들은 그곳에서 처형 당하기 위해서 붙잡혀 갔을 것

이다(27절).

=====52:27

유다가 사로잡혀 본토에서 떠났더라 –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미래가 바벨론으로

붙잡혀 간 이들 포로들에게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예언한 바 있으며(50:17-20;

51:45-49 등) 이런 내용은 이사야서와 에스겔서에서도 나타난다(사 52:1-12; 겔 37장

등). 반면에 바벨론에 투항하기를 거부하는 자들이나 애굽으로 달아난 자들에게는 미

래의 희망이 없다는 사실은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52:28

제 칠 년에 유다인이 삼천 이십 삼이요 – 바벨론 연대 계산법에 따르면 여기서의

제 칠년은 B.C. 597년이다. 이것은 느부갓네살 등극 년도인 B.C. 605년부터 계수한

것이 아니라 이듬해인 B.C. 604년부터 그의 즉위 년도를 계수한 방법이다. 열왕기하

도 이와 같은 연대 계산법을 따르고 있다. 그리고 이때 잡혀간 유다인 삼천 이십 삼

인은 유다 전역에서 사로잡혀 갔던 자들의 숫자이다. 그러나 이것이 왕하 24:14, 16

에 언급된 포로들의 숫자와는 틀리는데, 아마 열왕기하에서는 이미 국외로 추방당해

있던 사람들의 숫자를 모두 합하였던 것 같다. 혹은 본절의 숫자는 성인 남자만을 센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52:29

느부갓네살의 십 팔 년에 – 바벨론 연대 계산법에 따르면 B.C. 586년에 해당되며,

열왕기에 따르면 그의 즉위 19년에 해당된다.

=====52:30

유다인이 칠백 사십 오 인이니 – 28절에서부터 본절까지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무리가 세 그룹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B.C. 597년, 두 번째

는 B.C. 586년, 그리고 세 번째는 B.C. 581년의 사건이다. 본 절에는 세 번째로 끌려

간 무리들의 숫자가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 사건 이후에 발생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여러 차례에 걸친 패배와 예루살렘 함락 이후에도 또

다른 반역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면 그다랴를 암살한 범죄에

대한 처벌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포로로 끌려간 전체 숫자가 4600명

으로 언급되고 있는데, 아마 부녀자와 아이들을 포함하면, 15,000명에서 20,000명 정

도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바벨론으로 가던 중에 죽었을 수도 있다.

비록 적은 숫자로 보이긴 하지만 앞으로 이스라엘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자들이 바

로 이들 중에 있었다(Thompson).

=====52:31

에윌므로닥의 즉위 원년 십 이 월 이 십 오일 – 에윌므로닥은 느부갓네살의 아들로

서 B.C. 561-560년까지 왕위에 있었다. 그의 원 이름은 ‘아멜-마르둑’으로서 ‘마르둑

의 사람’이란 뜻이다. 반면에 에윌므로닥은 ‘어리석은 므로닥’이란 뜻이다. 아마도

의도적으로 그의 이름을 변경시켰던 것으로 보인다(Bright). 그리고 ‘이십 오일’이란

말은 70인역(LXX)에서는 24일로, 그리고 왕하 25:27에는 27일로 표현되어 있다. 날짜

가 이렇게 일치하지 않는 것은 어떤 세부적인 관점의 차이에서 연유하였을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는 시드기야 이전에 잠시 왕위에 있었던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석방되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당시 유다에서는 시드기야보다 여호야긴을 합법적인

통치자로 보는 경향이 있었으며 사람들은 여호야긴이 돌아오게 될것으로도 믿고 있었

다(28:1-4). 바벨론의 고고학 발굴에 나타난 그 당시의 기름 영수증에는 그가 ‘유다

의 왕’으로 알려져 있었다는 사실이 언급된다.

머리를 들게 하고(* , 나사로쉬)는 창 40:13, 20에 처음 나타나는

표현인데, 여기서처럼 ‘석방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Feinberg). 특히 ‘나사’

(* )는 ‘높이다’, ‘명예롭게 하다’의 뜻을 내포하므로, 여호야긴이 석방된 뒤

에 후한 대접을 받았음을 암시한다.

=====52:32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위보다 높이고 – ‘바벨론에 있는 왕들’이란 말은 여호

야긴처럼 볼모로 잡혀온 피정복국의 왕들을 가리킨다. 이것은 그를 단순히 포로로서

잘 대우해 주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나아가 바벨론 왕실에서 특권을 지니고 생활

하도록 배려하였음을 뜻한다고 봄이 좋을 것 같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에윌므로닥

은 어떤 연유로 인해 선왕(先王)인 느부갓네살에 의해 투옥되었으며 이때 여호야긴과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52:33

그에게 특별한 혜택이 주어졌음을 시사한다. 특히 왕의 면전에서 함께 식사했다는

사실은 왕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음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이다. 여호야긴은 적

어도 5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 사실은 앞에 언급된 기름 영수증에도 나타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은택은 그의 평생 동안이었다고 지적되고 있는데, 이는 그가 에윌므로닥

을 몰아내고 그 후 왕위에 올랐던 네리글리살 때에도 그런 특권을 계속 누렸음을 짐작

케 한다(Thompson).

=====52:34

본장의 마지막 네 구절(31-34절)은 신학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여호야긴이 포로로 잡혀간 이후에 오랫동안 살았으며 마침내 감옥에서 풀려났다고 하

는 사실은 회복의 때를 예언한 예레미야의 약속이 성취되는 하나의 징후였었다. 또한

이스라엘의 미래가 유다에 남아 있던 자들이나 애굽으로 달아난 자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포로로 잡혀간 자들에게 있다는 예언의 성취에 관한 전조(前兆)이기도 하였던

것이다(Thompson).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 대우인력 김진규

메모 :

2014/05/31/(토) \”예레미야 52:1-34\”/ 작성: 박창용

예례미야 52:1-34

찬송가 488 이몸의 소망 무언가 박창용목사

예례미야 52장은 시드기야 통치의 최후와 예루살렘의 파괴를 기록하면서 예례미야서의 결론을 맺습니다.

1-11절에 시드기야의 인생을 간략하게 묘사합니다. 21세에 왕이 되어서 11년 동안 다스렸고, 그의 어머니 이름은 하무달, 립나인 예레미야의 딸이었습니다. 시드기야 란 이름은 부모가 지어준 이름이 아닙니다. 그의 원래 이름은 맛다냐 , ‘여호와의 선물’ 이란 뜻이였습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에게 멸망한 후에 느부갓네살이 왕위에 올리면서 그의 이름을 지어 준 것입니다. 그 뜻은 ‘여호와는 의로우시다’입니다.

2절과 3절을 보면 그의 삶을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한지라”

둘째, “바벨론 왕을 배반하니라”

예레미야가 선포한 말씀의 핵심사상을 발견할 수 있는 문장들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신들을 섬긴 것과 윤리적 도덕적인 죄가 개인적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끔찍한 상황임을 선포했습니다. 동시에, 예레미야는 반복해서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필연적이며, 친애굽정책을 통해 반바벨론 정책을 펼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결국 4절에서부터 11절까지 보면, 불순종한 시드기야의 결말이 얼마나 처참한지 보게 됩니다. 성벽을 쌓았으나 결국 백성의 양식도 떨어지고, 성벽은 파괴되었습니다. 시드기야는 여리고 평지로 도망갑니다. 그곳에서 그는 붙잡혀 심문당합니다. 자기 자신의 아들들 모두 자기 눈앞에서 처참히 죽임을 당하고 자신의 모든 고관들도 쳐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봅니다. 뿐만 아니라, 자신도 두 눈이 뽑히는 끔찍한 처벌을 당하고, 놋사슬에 결박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갇혀야 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이후 지어준 이름입니다. 시드기야,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즉, 불순종의 결말은 심판이고, 그 심판주이신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심판하십니다. 불순종의 결말은 뽑힘이며, 파괴이며, 파멸이며 그리고 넘어뜨려짐입니다.

12-30절에서는 예루살렘이 파괴되는 장면이 묘사됩니다. 12절에 보면 느부갓네살 왕의 어전 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여 크게 두 가지 일을 합니다.

첫째, 성전과 왕궁을 불사르고 성벽도 헐어버립니다.

둘째, 바벨론으로 데려갈 쓸고 있는 사람들은 데려가고 물건들을 분류하여 가져갑니다.

총 세 차례에 걸쳐서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으로 사로 잡혀 가는데, 597년에 3,023명, 586년에 832명, 그리고 582년에 745명 총 4600명을 끌고 간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본문에 언급된 강제 이송된 숫자는 기대보다 적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인원은 남자들만을 기록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열왕기하 24장 14-16절에 보면 597년에 끌려간 숫자는 18,000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는 여자들과 자녀들도 포함한 인원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분명 처형당했을 것이고, 그 외에 많은 사람들은 버려져 유다땅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의 이름의 뜻은 The City of Peace 입니다. 평화의 도시 입니다. 그곳에서 아브라함은 처음 여호와이레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세웠고, 솔로몬은 그곳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설했습니다. 예루살렘은 정치, 종교, 군사 모두를 하나로 모은 명실상부 하나님의 성이였습니다.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난공불락의 성 예루살렘이 결국 무너졌습니다. 무너진 것 뿐 아니라, 완전 파괴되었고, 오랜 세월 애지중지 하던 거룩한 물건들 금은보화 모두 빼앗겼으며, 수많은 사람들은 버려지고, 죽임당하고, 끌려갔습니다. 예루살렘, 그 평화의 도시는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파괴되고, 파멸되어 넘어져 버렸습니다. 앞으로 약 140년간 폐허로 버려져있게 됩니다.

31절부터 34절에 보면 예레미야서의 마지막을 3개월 만에 폐위된 여호야긴이 등장합니다. 그는 폐위된 이후 바벨론으로 끌려갔었습니다. 18살에 왕이 된 이후 37년만에 감옥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렇다면 당시 나이는 약 55세쯤 되었을 것입니다. 그의 20대도, 30대도 그리고 40대도 모두 감옥에서 보내야 했습니다. 왕이 였던 그는 타국으로 끌려간 죄수였습니다. 그의 젊음도 열정도 모두 바벨론 포로로 끌려감과 동시에 사라져 버렸습니다.

예레미야서 마지막장을 보며 한 가지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예레미야서의 마지막이 여호야긴으로 마쳐진 것일까요? 그는 분명 소망 없이 살아왔을 것입니다. 왕이었다는 사실 조차 잊어 버렸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 사실이 그에게 부끄러움 이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인생을 마감할 줄 알았던 그에게 광명의 빛이 비추어졌습니다.

32절입니다. “그에게 친절하게 말하고 그의 자리를 그와 함께 바벨론에 있는 왕들의 자리보다 높이고”

자신도 잊어버린 왕위를 되찾은 것입니다. 누가 과연 감옥에서 친절하게 말해 주는 사람이 있었겠습니까? 누가 그를 왕처럼 여겨 줬었겠습니까? 그러나 지금 여호야긴은 의복을 갈아입고, 왕과 함께 식사를 하는 존재로 변화되었습니다. ‘여호야긴’ 의 이름의 뜻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강하게 하신다’ 입니다.

예레미야가 처음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나는 아이라 말할 줄 모릅니다” 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강하게 명령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장 7절부터 10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말하지 말고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너는 그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원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고

여호와께서 그의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나라와 여러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레미야는 40년간 이스라엘의 선지자로 살았습니다. 5명의 왕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해 경고하며 선포했습니다. 자신도 수차례 매질을 당하고 강금당하고 예루살렘이 함락된 이후 하층민들과 간신히 유다 땅에서 살게 될 줄 알았으나 총독 그다랴가 살해되어 강제로 애굽으로 끌려가 결국 그곳에서 죽고 맙니다.

예레미야란 이름의 뜻은 ‘하나님만 높입니다’ 입니다. 그의 별명은 ‘눈물의 선지자’ 입니다. 모세가 죄와 사망의 권세속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며 40년을 보냈다면, 예레미야는 눈물 뿌리며 샬롬의 땅 이스라엘에서 바벨론포로로 끌려가기까지 40년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의 이름의 뜻처럼 하나님만 높였습니다. 눈물 뿌리며 하나님만 높였습니다.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은 의로우신 분임을 확신했으며, 하나님 없는 예루살렘 성에 참된 평화가 있을 수 없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불순종에 대해서 심판하시기 위해 뽑고, 파괴하고 파멸하며 넘어뜨리시지만, 반드시 새롭게 건설하시고 새롭게 예루살렘성, 평화의 도시를 심으실 것을 믿고 선포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기 자신도 애굽 어딘가에 처참하게 버려져 죽음을 당했지만, 그의 서신서의 마지막은 여호야긴에게 다시금 살 소망을 주고 새옷을 입고 새신을 신고 왕의 식탁에서 함께 식사하는 모습으로 마칩니다.

마치, 허랑방탕한 삶을 살고 아버지 집으로 돌아온 탕자에게 새옷을 입혀주시고, 새신을 신겨주시고 큰 파티를 열어주신 아버지의 모습이 연상되는 장면입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우리 자신을 가득 채우고 있는 우상들로 인해 하나님과 멀어지기도 하고 마땅히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나 자신이 번듯이 앉아 왕노릇하기도 했습니다. 때론 원치않은 절망과 슬픔의 시간으로 인해 하나님을 원망하며 소리질러 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한 것이죠” 자신에게 닥친 불행과 고난을 인과응보로 이해하고 고통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아가며 자악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 없는 어떤 난공불락의 성도 반드시 무너진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없는 어떤 화려한 성도 그곳은 영원한 샬롬의 땅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샬롬이십니다. 그 샬롬의 하나님께서 우리가 좋고 기쁠때나 슬프고 아플때도 함께 함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좋고 기쁠때도 슬프고 아플때도 하나님만을 높이는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만 높였던 예레미야로 살아가십시다. 그리하여 비록 우리때에 샬롬의 땅 예루살렘성이 회복되고 재건되는 것을 보지 못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새롭게 건설하시고 심으실 것을 영원의 눈으로 보며 오늘 어떤 상황속에서도 하나님 만을 높이기를 결심하고 살아가는 100주년기념교회 모든 교우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믿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만 높이게 하시어, 이시대를 밝히는 예레미야로 오늘 한날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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