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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려주일 지도로 보는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 예루살렘 입성부터 부활사건까지 / 종려주일 고난주간 부활사건 총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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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예루살렘 입성에서 부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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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요일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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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요일별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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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묵상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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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원서/번역서: [해외]The Final Days of Jesus (Paperback)) | 안드레아스 J. 쾨스텐버거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교보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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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원서번역서 [해외]The Final Days of Jesus (Paper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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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일주일(고난 주간)의 행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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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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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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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신학자가 복원한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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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예루살렘 입성에서 부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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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일주일의 행적, 예루살렘 입성에서 부활까지

해년마다 돌아오는 고난주간은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하기에 최적의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생애 전체가 묵상의 대상이기도하지만 특별한 고난주간, 즉 공생애의 마지막 일주일은 우리가 깊이 고민하며 읽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은 고난 주간이 아니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묵상해야할 주제입니다. 말씀이신 주님은 모든 사역을 마무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입성하셨고, 일주일 동안에 예루살렘을 떠나지 아니하시고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친히 가르치셨습니다. 때로는 논쟁하시고, 때로는 비유를 통해 진리를 드러내시고, 때로는 이적으로 하나님 되심을 보이셨습니다. 제자들과 함께 감람산에 올라가 기도하심으로 철저히 하나님을 의존하심을 삶으로 보이셨습니다.

마지막 일주일의 행적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은 사순절으로 끝자락으로 고난주간으로 보냅니다. 사순절을 지키지 않는 대부분의 개신교에서도 고난주간은 대체로 지키는 편입니다. 고난주간을 보내면서 한 번쯤은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일주일은 어떻게 보냈을까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은 그 궁금증을 다소 해소하고, 어떤 여정을 통해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는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1일차 일요일

첫날은 논란의 여지는 없어 보입니다. 사복음서 모두 예루살렘 입성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벧바게에 이르러 한 번도 사람을 태워보지 않은 나귀새끼를 풀어 오라고 하신 다음 예루살렘으로 입성으로 하십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호산나’를 부르며 예수님을 환영합니다. 제자들에게 자신의 죽음을 예언하고, 다시 성전을 찾아갑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의 성전청결 사건을 입성과 더불어 설명하지만 마가복음은 성전에 첫날과 그 다음날 두 번에 걸쳐 들어간 것으로 보고합니다.

① 예루살렘 입성(마 21:1-11, 막 11:1-10, 눅 19:29-44, 요 12:12-19)

② 예수님의 죽음 예언(요 12:20-36)

③ 성전방문(마 21:14-17, 막 11:11)

스가랴 9:9

군중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꺽어 예수님께 흔들며 호산나를 외쳤습니다. 예루살렘에 입성 하신 후 세세한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다시 동쪽으로 약 3km정도 떨어진 베다니로 가셔서 밤을 보냅니다. 베다니는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와 여동생들인 마리아와 마르다가 있는 곳입니다.

2일차 월요일

다음날 아침 주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십니다. 배고 고프셨던 주님은 길을 가다 길가에 있던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무엇을 얻을까 싶어 걸어가시지만 아무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리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제자들이 그 모습을 보고 이상히 여겨 ‘어떻게 무화가 나무가 말랐습니까?’라고 묻습니다. 뜻밖에도 주님은 기도에 관한 교훈을 주시면서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성전으로 들어가셔서 성전에서 돈을 바꾸는 사람들을 쫓아내십니다. 그런데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은 성전청결 사건과 무화과나무의 저주 사건이 뒤바뀌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은 먼저 성전청결을 하신 후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마가복음은 반대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후 성전을 청결하게 하십니다.

① 무화과나무 저주하심(마 21:18-19, 막 11:12-14)

② 성전정화(마 21;12-13, 막 11:15-18, 눅 19:45-48)

3일차 화요일

화요일은 많은 논쟁이 있었던 날입니다. 화요일은 크게 세 가지 사건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무화과나무에 관련된 교훈이 주어집니다. 두 번째 사건은 성전에서의 가르침과 논쟁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는 종말에 관한 강론으로 이어집니다.

① 무화과나무에 대한 교훈(마 21;20-22, 막 11:20-26)

② 성전에서의 논쟁(마 21:23-23:39, 막 11:27-12:44, 눅 20:1-21:4)

③ 종말에 대한 강론(마 24:25, 막 13:1-37, 눅 21:5-36)

4일차 수요일

수요일은 참으로 묘한 날입니다. 사실 두 가지 사건을 추측해 볼 수 있지만 엄밀하게 수요일에 일어난 것은지는 확신하기 힘듭니다. 왜 수요일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수요일에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은 사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산헤드린이 에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미는 것입니다.

① 성전구역에서 가르치심(눅 21:37-3)

② 산헤드린이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꿈밈(마 26:3-5, 막 14:1-2, 눅 22:1-2)

5일차 목요일

목요일은 마지막 생애 중에서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금요일은 예수님의 사역이기 보다는 재판과 죽음과 집중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자의적으로 활동하신 날은 목요일이 마지막입니다. 그래서인지 복음서에 목요일의 기록이 가장 많습니다. 목요일은 대체로 6가지 사건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① 유월절을 준비하라고 지시함(마 26:17-19, 막 14:12-16, 눅 22:7-13)

② 유월절 음식을 함께 하심(마 26:20-29, 막 14:17-23, 눅 22:14-30)

③ 세족식과 다락방 강화(요 13:1-17:26)

④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가심(마 26:30, 막 14:26, 눅 22:39)

⑤ 베드로의 부인 예언(막 26:31- 막 14:27-31, 눅 22:31-34)

⑥ 겟세마네에서의 기도(마 26:36-46, 막 14:32-42, 눅 22:40-46)

6일차 금요일

금요일은 주님께서 체포되시고 제사장들에게 심문 받고 다시 빌라도에게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십자가의 길을 걷고 십자가에서 7가지 말씀을 남기시고 운명하십니다.

① 유다의 배반과 체포(마 26:47-56, 막 14:43-52, 눅 22:47-53, 요 18:2-12)

② 대제사장 안나스에게 심문 받음(마 26:57, 59-68, 막 14:53, 55-65,눅 22:63-71)

③ 베드로의 부인과 닭의 울음(마 26:58, 69-75, 막 14:54, 66-72 눅 22:54-62, 요 18:15-18)

④ 산헤드린의 심문(마 27:1-2, 막 15:1)

⑤ 유다의 자살(마 27:3-10)

⑥ 빌라도의 1차 심문과 헤롯의 심문(마 27:11-14, 막 15:2-5, 눅 23:1-7, 요 18:28-38)

⑦ 빌라도의 2차 심문과 사형언도(마 27:15-26, 막 15:6-15, 눅 23:13-25, 요 18:38-19:16)

⑧ 조롱과 십자가의 길(마 27:27-34, 막 15:16-23, 눅 23;26-49, 요 19:18-27)

⑨ 십자가에 못막힘(마 27:35-34, 막 15:24-32, 눅 23:33-43, 요 19:18-27)

⑩ 죽으시고 장사되심(마 27:45-61, 막 15:33-47, 눅 23:44-56, 요 19:28-42)

7일차 토요일

토요일은 복음서에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유대인들이 빌라도를 찾아와 군사들이 무덤을 지키도록 하자고 요청하는 장면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 군사들이 무덤을 지킴(마 27:62-66)

8일차 일요일

①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마 28:1-10, 막 16:1-7, 눅 24:1-11, 요 20:1-2)

② 베드로가 무덤을 찾아감(눅 24:12, 요 20:3-10)

③ 예수님을 만난 막달라 마리아(요 20:11-18)

④ 엠마오 도상의 예수님과 제자(눅 24:13-35)

⑤ 제자들을 찾아감(눅 24:36-43, 요 20:1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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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주간,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요일별 정리

예수의 지상에서의 마지막 한주간

인류의 죄를 구속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의 마지막한 주간은 하나님의 뜻을 완성하기 위한 수난의 한 주간이었으며 부활하여 죄와 사망을이기신 승리의 시간이었다. 그 하루하루를 살펴보자.

주일 : 예수는 아직 아무도 태워본적이 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겸손하신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정치적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메시야로 믿어 “호산나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라고 찬송하며 그를 영접한다. 그러나 예수는 장차 심판으로 무너질 성전을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다. (마21:1-11, 요12:12-19)

월요일 : 예수님은 성전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아 성전을 정결케 하시고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고쳐 주셨다. 그리고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 모의하기 시작한다. (마21:12-13.눅19:45-46)

화,수요일 : 성전에서 백성들을 가르치시며 서기관과 대제사장, 바리새인들의 간교한 질문들에 답변하시며 성전의 파괴와 대환란,종말의 징조들,제자들의 박해받을 일과 재림등을 예언하시며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으라”고 당부하신다. 가룟유다가 유대인에게 예수님을 팔기로 결심한다. (마26:1-5, 막14:1-11)

목요일 : 유월절 저녁이다. 예수는 어느 가정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신다. 서로 누가 터 크냐는 논쟁을 하는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며 서로 섬겨야 할 것을 친히 보여주셨고 배반자 유다를 지적하시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베드로가 세번 예수를 부인할 것을 말씀하신다. 그 날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방울이 피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시고 모든 인류의 죄의 잔을 받으신다. 유다가 무리와함께 올라와 예수를 체포, 대제사장에게 넘긴다. (마26:47-56, 요18:3-13)

금요일 : 빌라도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는다. 유대인들의 요구로 바라바는 놓임을 받고 대신 예수는 사형선고를 받아 그날로 십자가에 달려 장사되신다. (마27:1-2, 요18:28-38)

주일 : 새벽, 부활하시다! 막달라 마리아와 베드로와 엠마오 도상의 두 제자에게, 또 갈릴리 바다 등에서 여러 제자에게 나타나 예언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셨음을 보이시고 증인의 사명을 주신후 승천하신다. (마28:1-7, 요22:11-17)

by 코이네자료실

예수님의 마지막 일주일 묵상

<마지막주 월요일>

한글본문(개역성경 마가복음 11:12-17)

12 이튿날 저희가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5 저희가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치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바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고난주간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받으신 그 고난의 때를 찾아가 보려고 합니다. 이 땅에서 마지막 고난을 받으시는 그 한 주를 요일별로 따라가며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는 고난주간에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런데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예수님의 그 고난에 슬퍼하거나 우리가 고난을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난에 동참하는 것은 고난 받으신 그 분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자식을 위해 회사에서 무시를 받으면서도 참는 것을 안 자식은 어떻게 해야합니까? 자식도 똑같이 그렇게 무시받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자식이 할 일은 부모의 뜻을 마음에 새겨 더 열심히 공부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님은 마지막 월요일에 무엇을 하셨습니까? 이 땅에서의 마지막 월요일에 주님은 두가지 일을 하셨습니다. 첫째는 무화과 나무사건입니다. 마지막 주일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가 저녁이 되어 밖(베다니)으로 나가 주무시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들어오시면서 시장하신 예수님이 무화과 나무를 보시고 가까이 가셔서 열매를 찾아 보지만 열매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열매를 찾으시다가 열매가 없자 그 순간 그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 없는 이스라엘 백성이 오버랩된 것 같습니다. 그 열매없는 나무는 마치 열매없는 이스라엘의 백성과 같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나무를 심하게 책망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이 이 땅의 백성들을 위해 모든 상상을 초월하는 고난을 이미 받으셨고, 이제 마지막 몇일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그 역사적 순간이 며칠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사람들은 열매 없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멀리서 왔습니다. 그 곳에서 지나가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열매없이 겉으로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며칠 지나지 않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지를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필요를 전혀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을 전혀 고려하지도 않은채 그렇게 제멋대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것이 슬프고 화가 나는 것입니다.

믿음은 때가 있습니다. 믿음은 인격의 만남이요 인격은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효도할 수 없습니다. 고무신 거꾸로 신은 애인을 아무리 사랑한다 하여도 돌이킬 수가 없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를 놓치고 나면 그 이후로 사랑한다 말할 때가 영영히 없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무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먹지 못하리라 하시니”(14절). 이 나무의 운명처럼 오늘 믿음을 놓친 사람들은 영원토록 다시는 기회가 없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주님이 고난받으시면서 우리를 구하시고자 하실 때 그 고난의 손길을 붙잡아야합니다. 그 손길을 놓치면 우리는 영원히 붙잡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두 번째 사건은 성전청결사건입니다. 예루살렘에 들어오셔서 성전을 사랑하시는 그 분이 성전에 가셨을 때 성전이 더러워진 것을 보고 가슴아파하셨습니다. 성전이 어떻게 더러워졌습니까? 성전에서 사람들이 장사를 하였습니다. 어떻게 성전에서 장사를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 성전이라는 곳이 이방인의 뜰이었기 때문입니다. 성전의 권세자들(대제사장과 제사장들)은 성전 중 이방인의 뜰을 가벼이 여겼습니다. 그래서 제사를 드리는 사람들의 편의를 봐준다는 미명하에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를 하도록 허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성전에서는 대제사장이나 이방인이나 동일합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드리는 장소는 거룩하고 조용하면서, 힘없는 이방인들이 있는 곳은 이렇게 시끄럽고 추악해도 된다는 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그 이방인들이 누구입니까? 이방인이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참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차별속에서도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멀리서 이 유월절 제사를 위해 온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성전은 오늘날로는 교회입니다. 예배당이 아니라 교회(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날 월요일 주님이 애타하셨던 그것이 오늘 고난주간 월요일 우리들에게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며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우리의 이방인이 누구입니까? 교회에서 작은자입니다. 교회에서 지식이 없고, 재산이 없으며, 세상적으로 별볼일 없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작은 자는 교회에서 믿음이 약한 자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교회안에 그 이방인들을 위하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는 믿음이 약한 사람을 위한 배려와 사랑이 있습니까? 아니면 아는 사람이, 잘하는 사람이 안아무인격으로 높아지고만 있습니까?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들었도다” 성전이 강도의 굴혈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강도의 속성이 무엇입니까? 나를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것입니다. 내것을 위해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는 것입니다. 아주 못된 ‘자아중심주의’입니다. 강도의 굴혈이 되지 않도록 우리는 교회안에서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사람이 되야합니다. 교회안에 나중심주의인 사람이 많을수록 교회는 강도의 굴혈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인 교회는 가장 따스해야합니다. 가장 진리이어야합니다. 어머니의 손길 같아야하고, 아버지의 품 같아야합니다. 우리는 그런 교회를 만들어가야합니다. 그런 교회가 아니라면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강도의 굴혈이 아니라 누구나 와서 편안히 예배하며 편안히 하나님을 만나는 그런 교회가 되야합니다.

<마지막주 화요일>

한글본문(개역성경 마가복음 11:20-14:11)

13:28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29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앞에 이른 줄을 알라

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2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에 있는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34 가령 사람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에 그 종들에게 권한을 주어 각각 사무를 맡기며 문지기에게 깨어 있으라 명함과 같으니

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36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37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14:1 이틀을 지나면 유월절과 무교절이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궤계로 잡아 죽일 방책을 구하며

2 가로되 민요가 날까 하노니 명절에는 말자 하더라

3 예수께서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에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지고 와서 그 옥합을 깨뜨리고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

4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5 이 향유를 삼백 데나리온 이상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줄 수 있었겠도다 하며 그 여자를 책망하는지라

6 예수께서 가라사대 가만 두어라 너희가 어찌하여 저를 괴롭게 하느냐 저가 내게 좋은 일을 하였느니라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거니와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8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느니라

9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10 열 둘 중에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넘겨 주려고 대제사장들에게 가매

11 저희가 듣고 기뻐하여 돈을 주기로 약속하니 유다가 예수를 어떻게 넘겨 줄 기회를 찾더라

예수님의 마지막주 화요일은 아침에 베다니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며서 시작되어집니다. 예루살렘은 유월절을 지키려는 많은 인파로 숙소를 구하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전날 저녁 성밖으로 나가셨다가 아침 일찍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셨습니다.

화요일의 예수님의 행적은 마가복음에서 3장으로 구성될 정도로 많은 양이 기록되어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전날 책망하신 무화과 나무가 매말라 있는 것으로 제자들에게 교훈을 하셨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제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엄청난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23절). 믿음의 파워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땅에서 믿음의 유무와, 믿음의 크고 작음, 믿음의 열매의 유무가 그리 크게 보이지 않고 작아보일지 모르나 실재로는 그 믿음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 같아보이지요. 아닙니다. 믿음의 크고 작음에 따라 실재로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믿음을 더욱 소중히 여기고 우리안의 믿음을 더욱 열심히 키워야합니다. 그것이 큰 복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사람들은 어제 예수님의 성전청결 사건을 기억하였습니다. 그 성전 청결사건은 아주 큰 반향을 일으킨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가 예수님을 만나자 물었습니다.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를 하도록 허락한 것은 성전을 맡은 자들의 권위로 그렇게 한 것인데 너는 무슨 권세로 장사를 하지 못하게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묻고는 있지만 그들도 무엇이 진리인는 속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힘없는 예수님의 행동조차도 제지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분명히 지금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따지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안에 있는 진리를 보시고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악한 포도원 종의 비유와, 세금의 문제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부활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큰 계명에 대한 답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문제에 대해 답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부활문제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사이에 엄청난 논쟁거리였습니다. 해답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주 간략하고 명쾌하게 답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세금의 문제는 어떤 것을 답이라 하여도 문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답 자체가 함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문제에 대해서도 아주 지혜로운 답을 주셨습니다. 세상에는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것은 신앙으로 풀 문제가 아니야’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앙을 잘 알기만 한다면 신앙으로 풀지 못할 답은 없습니다. 예수님께로 갈 때 그 분은 가장 정답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가장 지혜로운 답을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13장에서 예수님은 AD 70년(곧 그 당시로부터 약40년 후)에 있는 예루살렘의 멸망과 인류의 멸망의 때를 서로 겹치게 그려놓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미래를 준비해야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1절)는 말씀을 기억해야합니다. 지금 화려하게 보이는 예루살렘 성과 성전은 완전히 무너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산 삶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어떤 화려한 삶도 없어집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산 삶은 말씀이 영원한 것처럼 그 삶도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사람은 말씀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마지막 주 화요일은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식사를 하시면서 마치고 계십니다. 이 식사에서 두 사람이 비교되고 있습니다. 한 명은 독똑한 제자 가룟유다와, 그 당시로는 여전히 가벼이 여기던 한 여인입니다. 그러나 그 똑똑한 남자는 예수님을 팔 궁리를 하고 있었고, 천대받던 한 여인은 복음사에 영원히 기억될 향유옥합 헌신을 하게 됩니다. 이 비교는 실은 이날 오후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똑똑하고 인정받는 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의 부류를 조심하라고 말슴하셨습니다. 그리고 두 렙돈 곧 800원을 헌금하던 한 과부를 아주 크게 칭찬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보기와는 전혀 다르게 보시며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생각에 우리의 생각을 맞추어야 합니까?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며, 주님의 마지막 주 행적을 따라가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주님의 명령이 무엇인지를 우리는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오늘날 교회에서 예수님의 마음을 느끼고 헌신을 하는 마리아가 되어야 합니다. 800원을 헌금하는 과부처럼 아주 작은 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것을 가지고 기뻐하며 헌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수요일>

한글본문(개역성경 요한복음 12:44-50)

44 예수께서 외쳐 가라사대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두움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저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나의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이르노라 하시니라

이상하리만큼 마지막 주 수요일에 예수님이 행하신 행적이나 말씀이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혹 그 가능성이 있다면 오늘 말씀이 수요일에 말씀하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언제 하신 말씀인지 그 정황을 요한이 기록하지 않아서 그 때를 알 수 없습니다. 단지 수요일에 하셨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은 이 말씀 다음이 목요일 일이고, 다른 복음서에서 화요일에 오늘 말씀을 하신 것으로 기록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오늘 본문이 예수님이 마지막 수요일 날 말씀하셨을 가능성이 있다는 정도입니다. 이 말씀을 수요일에 하셨다면 예수님은 예수님의 목적이 심판이 아니라 구원이라는 분명한 사실을 주지시키시고 그 목적을 스스로 묵상하시며 침묵하셨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말씀이 수요일에 하신 말씀이든 그렇지 않든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수요일에 침묵하셨다는 것입니다. 화요일이나 목요일에는 그 행적이나 하신 말씀이 많이 기록되어 있는데 유독 그 사이에 샌드위치처럼 끼인 수요일에는 거의 어떤 특별한 행동을 하지 않으시고 가르침도 많이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 이 땅에서의 삶이 3일 밖에 남지 않으셨는데, 그것도 금요일에는 자유의 몸이 아니셨기 때문에 자유롭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것은 2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예수님이 이렇게 침묵하시고 계신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하실 말씀이 없어서입니까? 아니면 너무 많아서입니까?

수요일은 폭풍 전야와 같습니다. 큰 일이 있기 전 아주 조용한 하루와 같습니다. 백성들에게 깨어 있으라 말씀하신 후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예수님은 침묵으로 많은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침묵은 때로 말하는 것 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전합니다. 침묵은 그 어떤 행동보다 더 중요한 행동중의 하나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침묵하심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심이 아닙니다. 그 침묵은 스스로를 돌아보시는 가장 중요한 작업입니다. 그 침묵은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외부와의 단절입니다. 여전히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다니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속에서 침묵하시며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침묵은 목요일의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힘을 제공하였을 것입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침묵하셨습니다. 왜 중요한 시기에 침묵하셨느냐가 아니라 우리는 중요한 시기이기에 침묵하셨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가능하게 하는 이 침묵이 있었기에 예수님은 이 후로 그 고통스러운 모든 일을 감당하시는 것입니다.

침묵하시며 고통스럽게 악과 싸우고 계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십시요. 침묵하시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가지시며 하나님의 위로를 얻는 주님을 보십시요. 우리도 이러한 침묵이 필요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하루의 삶속에 주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를 소망하며 침묵의 시간 곧 말씀을 묵상하고 나의 삶을 돌아보는 침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땅의 시련이 너무 강하여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이 땅의 성공이 너무 커서 교만하기 쉬울 때, 삶이 무미건조할 때 우리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위해 침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이런 만남이 없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넘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이런 시간을 가지십시요. 하나님과 나만의 만남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지십시요. 저는 고등학생시절 참 힘들던 그 때 저를 지탱해준 것이 주일 저녁예배가 끝나고 혼자 남아서 기도하던 30분간의 시간이었습니다. 기도실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모임이 있어 그 장소에 사람들이 있으면 교회 뒤뜰에 가서라도 30분간 기도했습니다. 그 기도는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가지게 하였고 월요일부터 시작되는 공부와의 전쟁에서 인내하게 하였습니다.

고난의 절정에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위해 침묵하시는 주님의 마지막 주 수요일의 모습을 보며, 우리의 삶속에서도 이러한 만남을 만들어 이 세상을 이기는 우리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주 목요일>

한글본문(개역성경 마가복음14:12-72)

12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 잡는 날에 제자들이 예수께 여짜오되 우리가 어디로 가서 선생님으로 유월절을 잡수시게 예비하기를 원하시나이까 하매

13 예수께서 제자 중에 둘을 보내시며 가라사대 성내로 들어가라 그리하면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리니 그를 따라가서

14 어디든지 그의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 있느뇨 하시더라 하라

15 그리하면 자리를 베풀고 예비된 큰 다락방을 보이리니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라 하신대

16 제자들이 나가 성내로 들어가서 예수의 하시던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예비하니라

17 저물매 그 열 둘을 데리시고 와서

18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

19 저희가 근심하여 하나씩 하나씩 여짜오되 내니이까

20 이르시되 열 둘 중 하나 곧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니라

21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시니라

22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받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3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24 가라사대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5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26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가니라

27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이는 기록된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

28 그러나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

30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이 밤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32 저희가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나의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았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가라사대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37 돌아오사 제자들의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시 동안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오사 보신즉 저희가 자니 이는 저희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저희가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 세번째 오사 저희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이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43 말씀하실 때에 곧 열 둘 중의 하나인 유다가 왔는데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에게서 파송된 무리가 검과 몽치를 가지고 그와 함께 하였더라

44 예수를 파는 자가 이미 그들과 군호를 짜 가로되 내가 입맞추는 자가 그이니 그를 잡아 단단히 끌어가라 하였는지라

45 이에 와서 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하고 입을 맞추니

46 저희가 예수께 손을 대어 잡거늘

47 곁에 섰는 자 중에 한 사람이 검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라

48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같이 검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50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51 한 청년이 벗은 몸에 베 홑이불을 두르고 예수를 따라오다가 무리에게 잡히매

52 베 홑이불을 버리고 벗은 몸으로 도망하니라

53 저희가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좇아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하속들과 함께 앉아 불을 쬐더라

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거가 서로 합하지 못함이라

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거하여 가로되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 오히려 그 증거도 서로 합하지 않더라

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가로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의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1 잠잠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가로되 네가 찬송 받을 자의 아들 그리스도냐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가로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64 그 참람한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뇨 하니 저희가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 혹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우고 주먹으로 치며 가로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속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66 베드로는 아래 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비자 하나가 와서

67 베드로의 불 쬠을 보고 주목하여 가로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 베드로가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

69 비자가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당이라 하되

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는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당이니라

71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의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 닭이 곧 두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번 울기 전에 네가 세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생각하고 울었더라

예수님의 마지막 주 목요일은 유대인의 유월절 전날(14일)이었습니다. 당시에 유월절 식사를 전날이나 유월절에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과 식사를 하기 원하셨습니다. 그 때 예루살렘에 사는 어떤 유복한 사람이 다락방을 그 장소로 제공합니다. 예수님은 가난한 사람만을 사랑하는 것도 부자만을 사랑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예수님이 필요하실 때 큰 다락방을 사용하실 수 있도록 드린 그 헌신도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우리는 있는 자리에서 내게 주어진 달란트대로 헌신을 해야합니다.

“다 앉아 먹을 때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한 사람 곧 나와 함께 먹는 자가 나를 팔리라 하신대”(18절) 이 말씀을 하셨을 때 가룟유다의 가슴은 아주 크게 쿵쾅거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쿵쾅거림이 회개로 이어지지 못하고 단지 발각될까 두려워하는 것으로 끝났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말씀을 하시고 계실까요? 배반자를 잡기 위해서입니까? 아닙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도 못내 가룟유다를 안타까워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가룟유다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시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특별히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예수님의 죽으심은 제자들에게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시는 것임을 설명하셨습니다. 자신의 온 몸을 주신 것입니다. 가룟유다는 이 성찬식에 참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오늘 본문에는 똑같이 연약한 또 다른 한 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결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하였지만 예수님을 세번이나 부인한 베드로입니다. 그도 예수님을 부인하고 너무나 큰 죄책감에 사로잡혔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울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울었습니다. 그는 회개하였습니다. 오히려 그의 이 회개는 그를 위대한 사도로 만들었습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주 목요일의 삶에서 우리가 회개를 배우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가룟유다조차도 회개하기를 원하셨습니다. 회개는 우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연약하여 자주 넘어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회개입니다. 회개하고, 또 회개할 때 우리는 반복되는 죄로 인하여 염치가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 때 우리의 회개를 그칠 것이 아니라 그 죄를 범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해야합니다. 우리가 죄를 느낄 때 회개하는 것은 다음번에는 죄를 범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완전히 보장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회개는 그 때 당시의 진실한 마음으로 충분합니다. 진실하면 그 회개는 유효하며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 때 회개 자체가 아름다운 것입니다.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그 분의 살과 피를 주셨습니다. 그러기에 용서받지 못할 죄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죄라도 하나님께 나감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주님께 나가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저녁 늦게 잡히시기 전 주님이 마지막으로 하신 일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이제 이 세상의 모든 일을 기도하심으로 정리하시고 계십니다. 그 분이 자유로운 몸으로 하시는 마지막 일이 기도였다는 것을 기억해아합니다. 예수님은 기도하시며 자신에게 당한 고난을 이길 힘을 위해 최종적으로 기도하시고 계십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운 그 고난을 이기도록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같은 내용을 반복하여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를 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잡히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앞에서는 나약하게 울부짖으셨습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 앞에서는 잡히시면서도 아주 당당하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베드로가 칼로 친 대제사장의 종의 귀를 치료하시고, 당당하게 잡히셨으며, 대제사장 앞에서도 당당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신앙인은 하나님 앞에서는 당당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나약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 앞에서는 나약하고 사람들 앞에서는 강한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우리 죄인들이 당해야하는 모든 부끄러움과 조롱과 매질을 당하시기 시작하십니다. 그 분은 우리의 믿음과 회개를 통한 구원의 순간을 위해 이 모든 것을 참으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사람들의 죄를 위해 모든 고난을 받으셨건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고 받아들이지 않음으로 죄 사함을 얻지 못하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입니다. 예수님은 그 모든 고난을 우리의 구원을 위해, 우리가 구원받는 날의 기쁨을 생각하시며 참으셨습니다. 그 고난의 사랑이 우리안에서 헛되이 버려지지 아니하고 열매 맺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 주 금요일>

한글본문(개역성경 마가복음15:1-47)

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로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주니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 대제사장들이 여러가지로 고소하는지라

4 빌라도가 또 물어 가로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저희가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소하는가 보라 하되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기이히 여기더라

(이하생략)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박히게 넘겨주니라”(15절). 예수님의 마지막 주 금요일은 새벽에 제사장들이 빌라도에게 끌고 가면서 시작되어집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며 오해하는 것처럼 빌라도가 그토록 죄인은 아니지만(단지 빌라도 때에 고난을 받으셨다는 의미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라도가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은 죄인인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가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의 폭동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는 총독이기에 법을 바르게 지킬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법을 지키기 보다는 자신의 안위를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그는 총독이기에 그가 굳은 의지만 있다면 유대인들이 결코 폭동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일으켜도 순식간에 진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번에 유대인들에게 예수를 넘겨주는 인심을 베품으로 다음에 무엇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보기에도 예수를 사형에 처하는 것이 잘못인지를 알았지만 대중이 원하자 자신의 안위와 편함과 이익을 위해 예수를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진리를 사랑합니까? 아니면 편한 길을 사랑합니까? 오늘 우리가 용기가 없어 진리를 행하지 못하고 거짓을 행한다면 우리는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빌라도가 되는 것임을 기억해야합니다. 빌라도가 결과론적으로는 메시야를 죽게 내버려둔 사람이지만 실재로는 그는 메시야가 아니라 한 사람을 죽게 한 사람입니다. 그것처럼 오늘날 우리가 누군가를(진리를) 우리의 안위와 편의 때문에 지나쳐 버린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이 됩니다. 단지 그 시대와 그 위치가 아닐 뿐 우리도 똑같은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예수님을 고난에서 구원하는 마음으로 진리를 사랑하고 진리를 선택하는 사람이 되야합니다. 진리를 선택하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어야합니다.

“빌라도가 대답하여 가로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9절). 빌라도가 유월절 전례에 따라 죄수 중 한 사람을 놓아주고자 하였을 때 사람들은 바라바를 선택합니다. 어찌 예수님과 바라바가 비교라도 되겠는지요? 오늘날 믿음의 사람인 우리가 보는 관점이 아니라 그 당시의 사람이 볼 때도 예수님과 바라바는 비교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 때문에 그들은 바라바를 선택하였습니다. 시기와 질투는 이렇게 큰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토록 사실을 왜곡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엄청난 판단착오를 하게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에게 혹 있을지 모르는 질투와 시기를 조심해야합니다. 시기와 질투는 진리를 받아들일 용기가 없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이 때 대중속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사람들속에는 분명히 예수님의 떡을 먹은 사람이 다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용기가 없었습니다. 진리를 말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대중심리를 이길 용기가 없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용기있게 모든 고난을 받으시고 계십니다. 마지막 심문에서도, 빌라도 앞에서도 예수님은 목숨을 구걸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고난받으시기로 작정하셨기에 당당하게 진리를 선포하고 계십니다.

채찍에 맞으신 예수님을 로마병사들이 조롱하였습니다. 채찍에 맞아 살점이 너덜너덜 한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 옷을 입히고 벗기는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 과정에 얼마나 또 쓰라리셨을까요? 그들은 침을 뱉으면서, 뺨을 때리면서 조롱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이 예수님과 무슨 원한관계가 있다고? 그들은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들도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었겠지요. 어쩌면 본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들 안에서 들려지는 진리에 대한 목소리를 들을 용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조롱함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지요.

용기 없는 자들의 일련의 행동으로 인해 예수님은 더욱더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그런데 숨을 거두신 예수님의 시신을 용기있게 찾으러 간 사람이 나왔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사람에게 참 감사합니다(향유옥합 사건의 마리아에게와 함께). 예수님의 시신을 동물들의 먹이로 남겨두지 않고 무덤에 안치할 수 있었기에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그 처절한 사랑에 못되게만 반응한 우리 인간들의 큰 죄를 떠나서 아주 미묘하나마 조금은 인간적인 일을 했다고 할까요? 자신의 모든 신분의 박탈을 각오하고 예수님의 시신을 자신의 묘에 장사한 이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참 아름다운 사람입니다. 그가 그렇게 함으로 이사야서에서 예언한 ‘부자와 함께 장사지내게 되었다’는 말씀을 이루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저의 기억에 오랫동안 남는 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미국의 한 해변가에서 기러기에게 매일 새우를 주는 한 할아버지 이야기입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갈매기들에게 새우를 줬습니다. 새우가 비쌀 때도 예외없이 그 할아버지는 한 박게스로 새우를 가져다가 갈매기들에게 나누어주었습니다. 왜 그럴까? 사람들은 의아해하였고, 미쳤다는 소문까지 났습니다. 그러나 후에 사람들은 그 할아버지의 사연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그 할아버지를 이상하다고 하는 사람이 없게 되었습니다. 그 사연은 그 할아버지가 청년이던 시절로 돌아갑니다. 그 할아버지가 청년의 시절 바다에 나갔다가 배가 파산이 되서 통나무에 의지한채 바다에 떠다니게 되었습니다. 통나무에서 굶주리며 거의 죽을 지경이 되어 삶을 포기하고 있을 때 한 갈매기가 와서 그에게 먹을 것을 줬습니다. 그 이후로도 그 갈매기는 계속 먹을 것을 할아버지에게 갔다 주었고 그 덕에 힘을 얻어서 버틸 수가 있었고 후에 그 할아버지는 구조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 일 이후 할아버지는 그 갈매기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갈매기들에게 새우를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때의 갈매기가 어떤 갈매기인지 모르지만 혹 그 갈매기가 와서 새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하루도 빠짐없이 그 일을 하게 된 것이지요. 그 할아버지는 은혜를 알았던 것입니다.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그 일을 하였던 것이지요.

오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압니다. 그 은혜로, 그 처절한 사랑으로 우리가 구원받았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새우를 주고 있는지요? 오늘 우리는 그 사실을 잃어 버리고 있지는 않은지요? 매일 새우를 주던 그 할아버지와 같아야 하는 것 아닌지요? 그 할아버지는 그 갈매기가 먹는다는 환신도 없으면서 매일 새우를 줬는데,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진리를 행하기 위해 용기를 가지고 살고 있는지요? 사랑하기 위해서는 수고해야합니다. 사랑하기 위해서는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그 처절한 사랑을 알기를 원합니다.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매일 그 은혜를 기억하며 삽시다. 그 은혜 때문에 우리가 어떤 일을 행하면, 그것은 단지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또 자신에게 더 큰 은혜로 돌아오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는 그 은혜를 너무 무시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요?

예수님의 마지막주 금요일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그 사랑을 마음으로 깨닫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음으로 깨달은 자가 되어 예수님의 사랑과 진리를 위해 용기있게 하루하루를 사는 아름다운 백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주 토요일>

한글본문(개역성경 마태복음 27:62-66)

62 그 이튿날은 예비일 다음 날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가로되

63 주여 저 유혹하던 자가 살았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64 그러므로 분부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적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유혹이 전보다 더 될까하나이다 하니

65 빌라도가 가로되 너희에게 파숫군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하라 하거늘

66 저희가 파숫군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하니라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생을 마치시고 예수님의 시신은 무덤에 장사지낸바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주 토요일 예수님의 시신은 그렇게 무덤에서 보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일을 다하셨습니다. 그 분은 그 자신이 직접 무덤까지 가셨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 분은 죽음의 권세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외아들이신 그 분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인 인간이 되신 것은 참으로 낮아지심입니다. 그런데 그 분이 이제 죽음의 권세 아래까지 가셨습니다. 더욱더 낮아지신 것입니다. 낮아져도 어찌 그 곳까지 내려가실 수 있나 싶을 정도로 낮아지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지극히 낮아지신 그 분을 우리는 마음속 깊이 느껴야합니다. 알아야합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은 낮아지는 사람입니다. 저는 감히 사람들은 예수님의 사랑을 아는 만큼 낮아진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의 마지막주 토요일, 모든 것이 종료된 것 같은 조용한 시간 우리는 주님의 지극히 낮아지심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극히 낮아지셔서 죽음의 권세 아래 놓여 묵묵히 무덤 가운데 있는 주님을 생각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땅의 삶을 예수님의 토요일처럼 살아야합니다. 묵묵히 이 땅에서 침묵하며 낮아지는 연습을 해야합니다. 낮아지는 연습! 참 고약한 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루어 가야할 최상의 것입니다. 그 연습은 우리를 참으로 예수님을 닮게 할 것입니다. 그 분을 사랑하는, 닮아가는 최상의 길입니다.

무덤이 있어야 부활이 있습니다. 무덤은 그 자체로는 참으로 고행길이지만 부활과 함께 있어 가장 아름다운 길이 될 것입니다. 부활의 때에 그 무덤은 가장 영광스러운 경험이 될 것입니다.

오늘 묵묵히 낮아집시다. 오늘 낮아짐을 기뻐하며 그 길을 갑시다. 오늘 낮아짐의 자리가 내 길임을 알고, 영광의 길임을 알아 감사하며 갑시다. 낮아짐! 너무나 귀하고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의 아름다운 평생의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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