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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요한복음 13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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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장 주석 – 요한복음 – 예사랑 성경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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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장 주석 강해 성경말씀] 새 계명을 주심(요 13: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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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계명을 주심(요 131-38)
HANGL NOCR – 메튜 헨리 주석, 요한복음 1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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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0(ì) âìíë³µì 13:1-20â / ìì±: ìµì 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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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2.요한복음 13장 1-20절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아니하면”(요한복음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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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요한복음 13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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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 데 테스 헤오르테스 투 파스카 에이도스 호 예수스 호티 엘덴 아우투 헤 호라 히나 메타베 에크 투 코스무 투투 프로스 톤 파테라 아가페사스투스 이디우스 투스 엔 토 코스모 에이스텔로스 아가페센 아우투스
개역개정,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새번역,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자기가 이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께로 가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
우리말성경,1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됐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있는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가톨릭성경,1 과월절이 시작되기 전,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아버지께로 건너가실 때가 온 것을 아셨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있는 당신의 사람들을 사랑하신 그분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
영어NIV,1 It was just before the Passover Feast. Jesus knew that the time had come for him to leave this world and go to the Father. Having loved his own who were in the world, he now showed them the full extent of his love.
영어NASB,1 Now before the Feast of the Passover, Jesus knowing that His hour had come that He would depart out of this world to the Father, having loved His own who were in the world, He loved them to the end.
영어MSG,1 Just before the Passover Feast, Jesus knew that the time had come to leave this world to go to the Father. Having loved his dear companions, he continued to love them right to the end.
영어NRSV,1 Now before the festival of the Passover, Jesus knew that his hour had come to depart from this world and go to the Father. Having loved his own who were in the world, he loved them to the end.
헬라어신약Stephanos,1 προ δε της εορτης του πασχα ειδως ο ιησους οτι εληλυθεν αυτου η ωρα ινα μεταβη εκ του κοσμου τουτου προς τον πατερα αγαπησας τους ιδιους τους εν τω κοσμω εις τελος ηγαπησεν αυτους
라틴어Vulgate,1 ante diem autem festum paschae sciens Iesus quia venit eius hora ut transeat ex hoc mundo ad Patrem cum dilexisset suos qui erant in mundo in finem dilexit eos
히브리어Modern,1 ולפני חג הפסח כשידע ישוע כי באה שעתו לעבר מן העולם הזה אל אביו כאשר אהב את בחיריו אשר בעולם כן אהבם עד הקץ׃
성 경: [요13:1-3]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 하시니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 이 귀절들에는 예수님의 사랑의 동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는, 세가지 동기로써 제자들에게 사랑의 일, 곧, 발 씻는 일을 행하셨다. (1)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1 절), 이 일을 행하셨음. 이것은 제자들을 떠나신다는 그의 인성(人性)편의 무거운 느낌에서 행하신 것. (2) “마귀가…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은 줄 아시고(2 절), 이 일을 행하셨음. 이것은 가장 마음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선생으로서 제자에게 팔리운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장면이고, 낙심될 일이다. 그런데, 그가 계속하여 제자들을 극진히 사랑하심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는, 가장 검은 미움의 활동이 일어난 곳에 가장 부드러운 사랑으로 대하셨다. (3)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3 절), 이 일을 행하셨음. 이것은, 그가 자기의 영광 받으실 사실을 아셨다는 뜻이다(마 28:18). 그는 저렇게 영광 받으실 것을 내다보시면서, 사람이 천국에서 진정으로 위대해지는 비결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다. 그것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으로 나타난 그의 겸손이다. “저녁 먹는 중.” 이것이 유월절 만찬을 가리킨 것일까? 혹은 다른 때의 저녁 식사를 의미한 것일까?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유월절 하루 전(니산월 13 일 저녁)의 식사를 가리킨 것이라고 한다(Meyer). 그러나 21-30절의 내용을 보니, 유다가 예수님을 잡아 줄 자로 지적된 저녁인 것이 드러난다. 그 저녁은 유월절 만찬 저녁이다. 공관 복음은 그렇게 말한다(마 26:17-25; 막 14:17-21).
카이 데잎누 기노메누 투 디아볼루 에데 베블레코토스 에이스 텐 카르디안 히나 파라도이 아우톤 유다스 시모노스 이스카리오투
개역개정,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새번역,2 저녁을 먹을 때에, 악마가 이미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를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우리말성경,2 저녁 식사를 하는 동안 마귀는 이미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배반할 생각을 넣었습니다.
가톨릭성경,2 만찬 때의 일이다. 악마가 이미 시몬 이스가리옷의 아들 유다의 마음 속에 예수님을 팔아 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영어NIV,2 The evening meal was being served, and the devil had already prompted Judas Iscariot, son of Simon, to betray Jesus.
영어NASB,2 During supper, the devil having already put into the heart of Judas Iscariot, the son of Simon, to betray Him,
영어MSG,2 It was suppertime. The Devil by now had Judas, son of Simon the Iscariot, firmly in his grip, all set for the betrayal.
영어NRSV,2 The devil had already put it into the heart of Judas son of Simon Iscariot to betray him. And during supper
헬라어신약Stephanos,2 και δειπνου γενομενου του διαβολου ηδη βεβληκοτος εις την καρδιαν ιουδα σιμωνος ισκαριωτου ινα αυτον παραδω
라틴어Vulgate,2 et cena facta cum diabolus iam misisset in corde ut traderet eum Iudas Simonis Scariotis
히브리어Modern,2 ויהי אחרי החל הסעודה והשטן נתן בלב יהודה בן שמעון איש קריות למסרו׃
에이도스 호티 판타 에도켄 아우토 호 파테르 에이스 타스 케이라스 카이 호티 아포 데우 엨셀덴 카이 프로스 톤 데온 휘파게이
개역개정,3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새번역,3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우리말성경,3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주셨으며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것을 아시고는
가톨릭성경,3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내주셨다는 것을, 또 당신이 하느님에게서 나왔다가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을 아시고,
영어NIV,3 Jesus knew that the Father had put all things under his power, and that he had come from God and was returning to God;
영어NASB,3 Jesus, knowing that the Father had given all things into His hands, and that He had come forth from God and was going back to God,
영어MSG,3 Jesus knew that the Father had put him in complete charge of everything, that he came from God and was on his way back to God.
영어NRSV,3 Jesus, knowing that the Father had given all things into his hands, and that he had come from God and was going to God,
헬라어신약Stephanos,3 ειδως ο ιησους οτι παντα δεδωκεν αυτω ο πατηρ εις τας χειρας και οτι απο θεου εξηλθεν και προς τον θεον υπαγει
라틴어Vulgate,3 sciens quia omnia dedit ei Pater in manus et quia a Deo exivit et ad Deum vadit
히브리어Modern,3 וידע ישוע כי נתן אביו את הכל בידו וכי מאלהים בא ואל אלהים ישוב׃
에게이레타이 에크 투 데잎누 카이 티데신 타 히마티아 카이 라본 렌티온 디에조센 헤아우톤
개역개정,4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새번역,4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서,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우리말성경,4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셨습니다.
가톨릭성경,4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영어NIV,4 so he got up from the meal, took off his outer clothing, and wrapped a towel around his waist.
영어NASB,4 got up from supper, and laid aside His garments; and taking a towel, He girded Himself.
영어MSG,4 So he got up from the supper table, set aside his robe, and put on an apron.
영어NRSV,4 got up from the table, took off his outer robe, and tied a towel around himself.
헬라어신약Stephanos,4 εγειρεται εκ του δειπνου και τιθησιν τα ιματια και λαβων λεντιον διεζωσεν εαυτον
라틴어Vulgate,4 surgit a cena et ponit vestimenta sua et cum accepisset linteum praecinxit se
히브리어Modern,4 ויקם מעל השלחן ויפשט את בגדיו ויקח מטפחת ויחגרה׃
성 경: [요13:4,5]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 유대인의 풍속에는 보통 식사 전에 손님의 발을 씻어 주는 법인데, 이 때에는 식사 도중에 그 일을 행하셨다. 그것은, 아마도 그 때에 이 일을 할 종이 없어서 그렇게 된 듯하다. “겉옷”은 저고리를 말함이 아니고 그 위에 입는 옷을 가리킨다. “수건을 허리에 두르시고” 이러한 차림은 종이 취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종의 자리로 내려가셔서 일할 준비를 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의 겸손의 극치(極致)이다. 그가 최종의 행동 교훈으로 식사 도중에 이런 일을 하신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그의 별세 후에 제자들이 언제나 지켜야 할 겸덕을 고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은, 저렇게 계급을 초월하시고 영광의 주님을 사랑의 발 씻는 종으로 삼으셨다. 고데이(F. Godet)는 추측하기를, 이 발 씻는 일이 아마도 제자들의 서로 다툰 사건(눅 22:24-27)을 동기로 하고 있은 듯하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이와 같은 봉사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1)이것으로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시고 서로 낮아지기를 힘써야 한다고 설교하신 셈이다(12-16). 실행으로 본을 보이는 설교자는 그 설교로써 사람들의 심령을 아주 점령해 버린다. (2)이것은, 그가 그의 백성을 사랑하셔서 속죄하시는 중보(中保)의 역사를 비유로 가르치시는 지극히 크신 사랑의 행동이시다. 그가 피를 흘려서 그의 백성의 죄를 씻으신 일도 지극한 사랑이면서 역시 지극한 겸손을 나타낸다. 유명한 변증 학자 스킬더(Schilder)는, 주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기 위하여 물을 휘저으신 주님의 손은 죄에 속한 자에게 이해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그의 못 박히신 손에서 흐르는 피가 죄에 속한 자에게 이해되지 못함과 같다”라고 하였으며, 그는 또 말하기를, “주님께서 그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뜻은, 그의 몇 제자들에게만 그의 친절과 겸손의 모본을 보이시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행위로써 온 세계를 찾으시는 그의 속죄의 역사를 비유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에이타 발레이 휘도르 에이스 톤 닢테라 카이 에릌사토 뉲테인 투스 포다스 톤 마데톤 카이 에크마쎄인 토 렌티오 호 엔 디에조스메노스
개역개정,5 이에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를 시작하여
새번역,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우리말성경,5 그러고 나서 대야에 물을 담아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허리에 두른 수건으로 닦아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5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으시어, 제자들의 발을 씻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
영어NIV,5 After that, he poured water into a basin and began to wash his disciples’ feet, drying them with the towel that was wrapped around him.
영어NASB,5 Then He poured water into the basin, and began to wash the disciples’ feet and to wipe them with the towel with which He was girded.
영어MSG,5 Then he poured water into a basin and began to wash the feet of the disciples, drying them with his apron.
영어NRSV,5 Then he poured water into a basin and began to wash the disciples’ feet and to wipe them with the towel that was tied around him.
헬라어신약Stephanos,5 ειτα βαλλει υδωρ εις τον νιπτηρα και ηρξατο νιπτειν τους ποδας των μαθητων και εκμασσειν τω λεντιω ω ην διεζωσμενος
라틴어Vulgate,5 deinde mittit aquam in pelvem et coepit lavare pedes discipulorum et extergere linteo quo erat praecinctus
히브리어Modern,5 ואחר יצק מים בכיור ויחל לרחץ את רגלי תלמידיו ולנגב במטפחת אשר הוא חגור בה׃
에르케타이 운 프로스 시모나 페트론 레게이 아우토 퀴리에 쉬 모 닢테이스 투스 포다스
개역개정,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으시나이까
새번역,6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었다. 이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주님께서 내 발을 씻기시렵니까?”
우리말성경,6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다가가셨습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주여, 제 발도 씻겨 주려 하십니까?” 하고 말했습니다.
가톨릭성경,6 그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자 베드로가, “주님, 주님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영어NIV,6 He came to Simon Peter, who said to him, “Lord, are you going to wash my feet?”
영어NASB,6 So He came to Simon Peter. He said to Him, “Lord, do You wash my feet?”
영어MSG,6 When he got to Simon Peter, Peter said, “Master, you wash my feet?”
영어NRSV,6 He came to Simon Peter, who said to him, “Lord, are you going to wash my feet?”
헬라어신약Stephanos,6 ερχεται ουν προς σιμωνα πετρον και λεγει αυτω εκεινος κυριε συ μου νιπτεις τους ποδας
라틴어Vulgate,6 venit ergo ad Simonem Petrum et dicit ei Petrus Domine tu mihi lavas pedes
히브리어Modern,6 ויקרב אל שמעון פטרוס והוא אמר אליו אדני האתה תרחץ את רגלי׃
성 경: [요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 이것은 베드로가 너무 황송한 중에 한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은, 그가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하여 고기를 많이 잡은 때에도 하였으니, 그 때에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라고 하였다(눅 5:8). 베드로는,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이렇게 인간적으로만 취급하면서 그것을 황송하게 여겨 사양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의 수난하실 일에 대하여 들었을 때에도 역시 “그리 마옵소서”라고 하였다(마 16:22). 저렇게 베드로는, 예수님의 구속 사업 관계의 행위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해석으로 잘못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겸손과 희생에 대하여, 인간으로서 황송(惶悚)하게 생각함은 좋으나 그 행하심이 구원의 행위인 것인 만큼, 그것을 감격하여 받아야 된다. 그것을 받지 않겠다고 사랑하는 것은, 병자가 의사의 진료를 받지 않겠다는 것과 같은 일이다.
아페크리데 예수스 카이 에이펜 아우토 호 에고 포이오 쉬 우크 오이다스 아르티 그노세 데 메타 타우타
개역개정,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하는 것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새번역,7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하는 일을 지금은 네가 알지 못하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7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는 내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그러나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7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는 일을 네가 지금은 알지 못하지만 나중에는 깨닫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영어NIV,7 Jesus replied, “You do not realize now what I am doing, but later you will understand.”
영어NASB,7 Jesus answered and said to him, “What I do you do not realize now, but you will understand hereafter.”
영어MSG,7 Jesus answered, “You don’t understand now what I’m doing, but it will be clear enough to you later.”
영어NRSV,7 Jesus answered, “You do not know now what I am doing, but later you will understand.”
헬라어신약Stephanos,7 απεκριθη ιησους και ειπεν αυτω ο εγω ποιω συ ουκ οιδας αρτι γνωση δε μετα ταυτα
라틴어Vulgate,7 respondit Iesus et dicit ei quod ego facio tu nescis modo scies autem postea
히브리어Modern,7 ויען ישוע ויאמר אליו את אשר אני עשה אינך ידע כעת ואחרי כן תדע׃
성 경: [요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 이것은, 그 현재에 베드로가 죄로 인하여 어두워서 깨닫지 못하나, 후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을 날이 있을 것을 가리킨다. 주님께서 발을 씻기심은, 그의 속죄의 고난으로 신자들의 죄 씻을 것을 비유한 것이다(11절). 베드로는, 예수님의 속죄의 죽음을 본 뒤에야 그의 발 씻기신 뜻을 깨닫게 될 것이었다.
레게이 아우토 페트로스 우 메 닢세스 무 투스 포다스 에이스 톤 아이오나 아페크리데 예수스 아우토 에안 메 닢소 세 우크 에케이스 메로스 멭 에무
개역개정,8 베드로가 이르되 내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시리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새번역,8 베드로가 다시 예수께 말하였다. “아닙니다. 내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다.”
우리말성경,8 베드로가 말했습니다. “제 발은 절대로 씻기지 못하십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씻겨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아무 상관이 없다.”
가톨릭성경,8 그래도 베드로가 예수님께 “제 발을 절대로 씻지 못하십니다.” 하니,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않으면 너는 나와 함께 아무런 몫도 나누어 받지 못한다.”
영어NIV,8 “No,” said Peter, “you shall never wash my feet.” Jesus answered, “Unless I wash you, you have no part with me.”
영어NASB,8 Peter said to Him, “Never shall You wash my feet!” Jesus answered him, “If I do not wash you, you have no part with Me.”
영어MSG,8 Peter persisted, “You’re not going to wash my feet–ever!” Jesus said, “If I don’t wash you, you can’t be part of what I’m doing.”
영어NRSV,8 Peter said to him, “You will never wash my feet.” Jesus answered, “Unless I wash you, you have no share with me.”
헬라어신약Stephanos,8 λεγει αυτω πετρος ου μη νιψης τους ποδας μου εις τον αιωνα απεκριθη αυτω ο ιησους εαν μη νιψω σε ουκ εχεις μερος μετ εμου
라틴어Vulgate,8 dicit ei Petrus non lavabis mihi pedes in aeternum respondit Iesus ei si non lavero te non habes partem mecum
히브리어Modern,8 ויאמר אליו פטרוס לעולם לא תרחץ את רגלי ויען ישוע אם לא ארחץ אתך אין לך חלק עמי׃
성 경: [요13:8]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 베드로가 발 씻기시는 예수님의 봉사를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적 의미로 생각해 볼 때에 예수님의 구원 은총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가 예수님의 받으실 영광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만다.
레게이 아우토 시몬 페트로스 퀴리에 메 투스 포다스 무 모논 알라 카이 타스 케이라스 카이 텐 케팔렌
개역개정,9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옵소서
새번역,9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예수께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 내 발뿐만이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겨 주십시오.”
우리말성경,9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주여, 제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십시오.”
가톨릭성경,9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영어NIV,9 “Then, Lord,” Simon Peter replied, “not just my feet but my hands and my head as well!”
영어NASB,9 Simon Peter said to Him, “Lord, then wash not only my feet, but also my hands and my head.”
영어MSG,9 “Master!” said Peter. “Not only my feet, then. Wash my hands! Wash my head!”
영어NRSV,9 Simon Peter said to him, “Lord, not my feet only but also my hands and my head!”
헬라어신약Stephanos,9 λεγει αυτω σιμων πετρος κυριε μη τους ποδας μου μονον αλλα και τας χειρας και την κεφαλην
라틴어Vulgate,9 dicit ei Simon Petrus Domine non tantum pedes meos sed et manus et caput
히브리어Modern,9 ויאמר אליו שמעון פטרוס אדני לא לבד את רגלי כי אם גם את ידי ואת ראשי׃
성 경: [요13: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 베드로는 여기서 새로운 깨달음을 가지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도 또 실수함을 면치 못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발을 씻기심이, 구속의 사랑에 대하여는 상징하는 정도 뿐인 사실을 베드로는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이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일의 실제인 줄 오해하고 욕심을 부렸다.
레게이 아우토 호 예수스 호 렐루메노스 우크 에케이 크레이안 에이 메 투스 포다스 닢사스다이 알 에스틴 카다로스 홀로스 카이 휘메이스 카다로이 에스테 알 우키 판테스
개역개정,10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하시니
새번역,10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 몸이 깨끗하니, ㉠발 밖에는 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런 것은 아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발 밖에는’이 없음
우리말성경,10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기 때문에 발밖에는 씻을 필요가 없다. 너희는 깨끗하지만 너희 모두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가톨릭성경,10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 몸이 깨끗하여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영어NIV,10 Jesus answered, “A person who has had a bath needs only to wash his feet; his whole body is clean. And you are clean, though not every one of you.”
영어NASB,10 Jesus said to him, “He who has bathed needs only to wash his feet, but is completely clean; and you are clean, but not all of you.”
영어MSG,10 Jesus said, “If you’ve had a bath in the morning, you only need your feet washed now and you’re clean from head to toe. My concern, you understand, is holiness, not hygiene. So now you’re clean. But not every one of you.”
영어NRSV,10 Jesus said to him, “One who has bathed does not need to wash, except for the feet, but is entirely clean. And you are clean, though not all of you.”
헬라어신약Stephanos,10 λεγει αυτω ο ιησους ο λελουμενος ου χρειαν εχει η τους ποδας νιψασθαι αλλ εστιν καθαρος ολος και υμεις καθαροι εστε αλλ ουχι παντες
라틴어Vulgate,10 dicit ei Iesus qui lotus est non indiget ut lavet sed est mundus totus et vos mundi estis sed non omnes
히브리어Modern,10 ויאמר אליו ישוע המרחץ אין לו לרחץ עוד כי אם את הרגלים כי כלו טהור הוא ואתם טהורים אך לא כלכם׃
성 경: [요13:10]
이미 목욕하는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 예수님의 제자들은, 속죄를 받은 자들이라고 간주된 때 벌써 온 몸이 깨끗해진 셈이다(15:3). 그러나 그들도 매일 세상과 접촉하여 허물과 죄로 더러워진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매일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에 의하여 사죄를 받아야 할 것이었다. 그것은 발 씻는 일로 비유된 것이다.
에데이 가르 톤 파라디돈타 아우톤 디아 투토 에이펜 호티 우키 판테스 카다로이 에스테
개역개정,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하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새번역,11 예수께서는 자기를 팔아 넘길 사람을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말성경,11 예수께서는 누가 자신을 배반할지 알고 계셨기 때문에 ‘너희 모두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1 예수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 넘길 자를 알고 계셨다. 그래서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신 것이다.
영어NIV,11 For he knew who was going to betray him, and that was why he said not every one was clean.
영어NASB,11 For He knew the one who was betraying Him; for this reason He said, “Not all of you are clean.”
영어MSG,11 (He knew who was betraying him. That’s why he said, “Not every one of you.”)
영어NRSV,11 For he knew who was to betray him; for this reason he said, “Not all of you are clean.”
헬라어신약Stephanos,11 ηδει γαρ τον παραδιδοντα αυτον δια τουτο ειπεν ουχι παντες καθαροι εστε
라틴어Vulgate,11 sciebat enim quisnam esset qui traderet eum propterea dixit non estis mundi omnes
히브리어Modern,11 כי ידע מי ימסרהו על כן אמר לא כלכם טהורים׃
성 경: [요13: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 단순히 겸손의 덕을 나타내신 것만이 아니고, 그의 백성을 속죄하여 깨끗하게 해 주실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예수님을 파는 자는 천하에 가장 더러운 죄를 범하는 자이다. 예수님께서 만민을 구속하여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시지만, 그를 파는 유다는 깨끗지 못한 자들 중 하나이다.
호테 운 에닢센 투스 포다스 아우톤 카이 엘라벤 타 히마티아 아우투 카이 아네페센 팔린 에이펜 아우토이스 기노스케테 티 페포이에카 휘민
개역개정,12 그들의 발을 씻으신 후에 옷을 입으시고 다시 앉아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을 너희가 아느냐
새번역,12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신 뒤에, 옷을 입으시고 식탁에 다시 앉으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우리말성경,12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모두 씻겨 주신 후 다시 겉옷을 걸치시고 자리에 돌아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알겠느냐?
가톨릭성경,12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으신 다음, 겉옷을 입으시고 다시 식탁에 앉으셔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깨닫겠느냐?
영어NIV,12 When he had finished washing their feet, he put on his clothes and returned to his place. “Do you understand what I have done for you?” he asked them.
영어NASB,12 So when He had washed their feet, and taken His garments and reclined at the table again, He said to them, “Do you know what I have done to you?
영어MSG,12 After he had finished washing their feet, he took his robe, put it back on, and went back to his place at the table. Then he said, “Do you understand what I have done to you?
영어NRSV,12 After he had washed their feet, had put on his robe, and had returned to the table, he said to them, “Do you know what I have done to you?
헬라어신약Stephanos,12 οτε ουν ενιψεν τους ποδας αυτων και ελαβεν τα ιματια αυτου αναπεσων παλιν ειπεν αυτοις γινωσκετε τι πεποιηκα υμιν
라틴어Vulgate,12 postquam ergo lavit pedes eorum et accepit vestimenta sua cum recubuisset iterum dixit eis scitis quid fecerim vobis
히브리어Modern,12 ויהי אחרי אשר רחץ את רגלים וילבש את בגדיו וישב להסב ויאמר אליהם הידעתם מה הדבר אשר עשיתי לכם׃
성 경: [요13:12-15]
이 귀절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 겸손한 봉사의 표본인 사실을 보여 준다. 이 일로써 예수님이 나타내신 것은, 위 사람으로서 아랫 사람을 겸손히 봉사하신 고상한 정신이다. 아랫 사람으로서 윗 사람에게 대하여 겸손하기는 쉬우나, 윗 사람으로 아랫 사람에게 대하여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이 말씀에 기준하여, 톨레도(Toledo)회의에서 발 씻는 것을 하나의 교회 의식으로 세웠다(694 A.D.).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이 그것을 폐지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라”고 부탁하신 것은, 다만 제자들더러 서로 겸손하게 봉사하라는 것 뿐이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이것은, 예수님을 본받아 자진하여 형제를 겸손히 봉사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 크게 간주될 것을 가리킨다(마 18:4).
휘메이스 포네이테 메 호 디다스칼로스 카이 호 뮈리오스 카이 칼로스 레게테 에이미 가르
개역개정,13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새번역,13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님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사실로 그러하다.
우리말성경,13 너희가 나를 ‘선생님’ 또는 ‘주’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옳은 말이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가톨릭성경,13 너희가 나를 ‘스승님’, 또 ‘주님’ 하고 부르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옳다. 내가 사실 그러하다.
영어NIV,13 “You call me ‘Teacher’ and ‘Lord,’ and rightly so, for that is what I am.
영어NASB,13 “You call Me Teacher and Lord; and you are right, for so I am.
영어MSG,13 You address me as ‘Teacher’ and ‘Master,’ and rightly so. That is what I am.
영어NRSV,13 You call me Teacher and Lord–and you are right, for that is what I am.
헬라어신약Stephanos,13 υμεις φωνειτε με ο διδασκαλος και ο κυριος και καλως λεγετε ειμι γαρ
라틴어Vulgate,13 vos vocatis me magister et Domine et bene dicitis sum etenim
히브리어Modern,13 אתם קראים לי רב ואדון והיטבתם אשר דברתם כי אני הוא׃
에이 운 에고 에닢사 휘몬 투스 포다스 호 퀴리오스 카이 호 디다스칼로스 카이 휘메이스 오페일레테 알렐론 닢테인 투스 포다스
개역개정,14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새번역,14 주이며 선생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우리말성경,14 주이며 선생님인 내가 너희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
가톨릭성경,14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영어NIV,14 Now that I, your Lord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also should wash one another’s feet.
영어NASB,14 “If I then, the Lord and the Teacher, washed your feet, you also ought to wash one another’s feet.
영어MSG,14 So if I, the Master and Teacher, washed your feet, you must now wash each other’s feet.
영어NRSV,14 So if I, your Lord and Teacher, have washed your feet, you also ought to wash one another’s feet.
헬라어신약Stephanos,14 ει ουν εγω ενιψα υμων τους ποδας ο κυριος και ο διδασκαλος και υμεις οφειλετε αλληλων νιπτειν τους ποδας
라틴어Vulgate,14 si ergo ego lavi vestros pedes Dominus et magister et vos debetis alter alterius lavare pedes
히브리어Modern,14 לכן אם אני המורה והאדון רחצתי את רגליכם גם אתם חיבים לרחץ איש את רגלי אחיו׃
휘포데이그마 가르 에도카 휘민 히나 카도스 에고 에포이에사 휘민 카이 휘메이스 포이에테
개역개정,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새번역,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과 같이, 너희도 이렇게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우리말성경,15 내가 너희에게 행한 대로 너희도 행하게 하기 위해 내가 본을 보여 주었다.
가톨릭성경,15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 준 것이다.
영어NIV,15 I have set you an example that you should do as I have done for you.
영어NASB,15 “For I gave you an example that you also should do as I did to you.
영어MSG,15 I’ve laid down a pattern for you. What I’ve done, you do.
영어NRSV,15 For I have set you an example, that you also should do as I have done to you.
헬라어신약Stephanos,15 υποδειγμα γαρ εδωκα υμιν ινα καθως εγω εποιησα υμιν και υμεις ποιητε
라틴어Vulgate,15 exemplum enim dedi vobis ut quemadmodum ego feci vobis ita et vos faciatis
히브리어Modern,15 כי מופת נתתי לכם למען תעשו גם אתם כאשר עשיתי לכם׃
아멘 아멘 레고 휘민 우크 에스틴 둘로스 메이존 투 퀴리우 아우투 우데 아포스톨로스 메이존 투 펨프산토스 아우톤
개역개정,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새번역,16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으며,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낸 사람보다 높지 않다.
우리말성경,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이 주인보다 높지 않고 보냄을 받은 사람이 보내신 분보다 높지 않다.
가톨릭성경,16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고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
영어NIV,16 I tell you the truth, no servant is greater than his master, nor is a messenger greater than the one who sent him.
영어NASB,16 “Truly, truly, I say to you, a slave is not greater than his master, nor is one who is sent greater than the one who sent him.
영어MSG,16 I’m only pointing out the obvious. A servant is not ranked above his master; an employee doesn’t give orders to the employer.
영어NRSV,16 Very truly, I tell you, servants are not greater than their master, nor are messengers greater than the one who sent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6 αμην αμην λεγω υμιν ουκ εστιν δουλος μειζων του κυριου αυτου ουδε αποστολος μειζων του πεμψαντος αυτον
라틴어Vulgate,16 amen amen dico vobis non est servus maior domino suo neque apostolus maior eo qui misit illum
히브리어Modern,16 אמן אמן אני אמר לכם כי העבד איננו גדול מאדניו והשלוח איננו גדול משלחו׃
에이 타우타 오이다테 마카리오이 에스테 에안 포이에테 아우타
개역개정,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새번역,17 너희가 이것을 알고 그대로 하면, 복이 있다.
우리말성경,17 너희가 이것들을 알고 그대로 행하면 복이 있을 것이다.
가톨릭성경,17 이것을 알고 그대로 실천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영어NIV,17 Now that you know these things, you will be blessed if you do them.
영어NASB,17 “If you know these things, you are blessed if you do them.
영어MSG,17 If you understand what I’m telling you, act like it–and live a blessed life.
영어NRSV,17 If you know these things, you are blessed if you do them.
헬라어신약Stephanos,17 ει ταυτα οιδατε μακαριοι εστε εαν ποιητε αυτα
라틴어Vulgate,17 si haec scitis beati eritis si feceritis ea
히브리어Modern,17 אם ידעתם זאת אשריכם אם כן תעשו׃
우 페리 판톤 휘몬 레고 에고 오이다 티나스 엨셀렠사멘 알 히나 헤 그라페 플레로데 호 트로곤 무 톤 아르톤 에페렌 엪 에메 텐 프테르난 아우투
개역개정,18 내가 너희 모두를 가리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나는 내가 택한 자들이 누구인지 앎이라 그러나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새번역,18 나는 너희 모두를 가리켜서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택한 사람들을 안다. 그러나 ‘㉡내 빵을 먹는 자가 나를 배반하였다’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나와 함께 빵을 먹은 자가’. 시 35:19; 69:4
우리말성경,18 내가 너희 모두를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가 택한 사람들을 알고 있다. 그러나 ‘내 빵을 함께 먹는 사람이 나를 배반했다’고 한 성경 말씀이 이루어질 것이다. 시35:19;시41:9;시69:4
가톨릭성경,18 내가 너희를 모두 가리켜 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뽑은 이들을 나는 안다. 그러나 ‘제 빵을 먹던 그가 발꿈치를 치켜들며 저에게 대들었습니다.’라는 성서 말씀이 이루어져야 한다.
영어NIV,18 “I am not referring to all of you; I know those I have chosen. But this is to fulfill the scripture: ‘He who shares my bread has lifted up his heel against me.’
영어NASB,18 “I do not speak of all of you. I know the ones I have chosen; but it is that the Scripture may be fulfilled, ‘HE WHO EATS MY BREAD HAS LIFTED UP HIS HEEL AGAINST ME.’
영어MSG,18 “I’m not including all of you in this. I know precisely whom I’ve selected, so as not to interfere with the fulfillment of this Scripture: The one who ate bread at my table Turned on his heel against me.
영어NRSV,18 I am not speaking of all of you; I know whom I have chosen. But it is to fulfill the scripture, ‘The one who ate my bread has lifted his heel against me.’
헬라어신약Stephanos,18 ου περι παντων υμων λεγω εγω οιδα ους εξελεξαμην αλλ ινα η γραφη πληρωθη ο τρωγων μετ εμου τον αρτον επηρεν επ εμε την πτερναν αυτου
라틴어Vulgate,18 non de omnibus vobis dico ego scio quos elegerim sed ut impleatur scriptura qui manducat mecum panem levavit contra me calcaneum suum
히브리어Modern,18 לא על כלכם דברתי יודע אני את אשר בחרתי בהם אך למען ימלא הכתוב אוכל לחמי הגדיל עלי עקב׃
성 경: [요13:18]
이 귀절부터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의 상징적 의미, 곧, 구속에 관하여 말한다. 예수님께서 구속 사업을 이루시지만, 그 은혜에 참여할 자들은 오직 택함을 받은 자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다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곧, 그의 제자들이 모두 다 “복이 있을”것(17절)이 아니라, 오직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만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18절).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 이것은, 매우 친근하던 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큰 손해를 본 다윗의 경험을 들어 말씀하심이다(시 41:9).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다윗의 당한 일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일의 예표였던 것이다.
앞 아르티 레고 휘민 프로 투 게네스다이 히나 피스튜세테 호탄 게네타이 호티 에고 에이미
개역개정,19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 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
새번역,19 내가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로 하여금 ‘내가 곧 나’임을 믿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말성경,19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지금 너희에게 미리 말해 두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나면 내가 그라는 것을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다.
가톨릭성경,19 일이 일어나기 전에 내가 미리 너희에게 말해 둔다.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나임을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영어NIV,19 “I am telling you now before it happens, so that when it does happen you will believe that I am He.
영어NASB,19 “From now on I am telling you before it comes to pass, so that when it does occur, you may believe that I am He.
영어MSG,19 “I’m telling you all this ahead of time so that when it happens you will believe that I am who I say I am.
영어NRSV,19 I tell you this now, before it occurs, so that when it does occur, you may believe that I am he.
헬라어신약Stephanos,19 απ αρτι λεγω υμιν προ του γενεσθαι ινα οταν γενηται πιστευσητε οτι εγω ειμι
라틴어Vulgate,19 amodo dico vobis priusquam fiat ut credatis cum factum fuerit quia ego sum
히브리어Modern,19 מעתה אני אמר לכם בטרם היותה למען בבואה תאמינו כי אני הוא׃
성 경: [요13:19]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를 때에 내가 그 인줄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 예언이란 것은, 언제나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하여 주어진다. 그것이 성취될 때에, (1) 그 예언을 주신 이의 진실성과 권위를 믿게 되며, (2) 그 성취된 사건 자체를 믿게 되며, (3) 그 예언 성취가 지향한 장래 행복의 활실성도 믿어진다. “내가 그 인줄”(*)이란 말은, “나 곧 나만 중재자요 보내심을 받은 자요 메시야라”는 뜻이다(Grosheide).
아멘 아멘 레고 휘민 호 람바논 안 티나 펨프소 에메 람바네이 호 데 에메 람바논 람바네이 톤 펨프산타 메
개역개정,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새번역,20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사람을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이요,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사람이다.”
우리말성경,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내가 보내는 사람을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영접하는 사람이요, 나를 영접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영접하는 사람이다.”
가톨릭성경,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내가 보내는 이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맞아들이는 것이고, 나를 맞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맞아들이는 것이다.”
영어NIV,20 I tell you the truth, whoever accepts anyone I send accepts me; and whoever accepts me accepts the one who sent me.”
영어NASB,20 “Truly, truly, I say to you, he who receives whomever I send receives Me; and he who receives Me receives Him who sent Me.”
영어MSG,20 Make sure you get this right: Receiving someone I send is the same as receiving me, just as receiving me is the same as receiving the One who sent me.”
영어NRSV,20 Very truly, I tell you, whoever receives one whom I send receives me; and whoever receives me receives him who sent me.”
헬라어신약Stephanos,20 αμην αμην λεγω υμιν ο λαμβανων εαν τινα πεμψω εμε λαμβανει ο δε εμε λαμβανων λαμβανει τον πεμψαντα με
라틴어Vulgate,20 amen amen dico vobis qui accipit si quem misero me accipit qui autem me accipit accipit eum qui me misit
히브리어Modern,20 אמן אמן אני אמר לכם כי כל המקבל את אשר אשלחהו אתי הוא מקבל והמקבל אתי הוא מקבל את שלחי׃
성 경: [요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 이 말씀의 목적한 바는 이렇다. 곧, 비록 유다와 같은 배신자가 있다 할지라도 다른 사도들의 권위는 손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보낸자”. 곧,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사도들을 영접하는 자는 결국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같다. 그 만큼 사도들의 권위는 높은 것이다.
타우타 에이폰 호 예수스 에타라크데 토 프뉴마티 카이 에마르튀레센 카이 에이펜 아멘 아멘 레고 휘민 호티 헤이스 엨스 휘몬 파라도세이 메
개역개정,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새번역,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마음이 괴로우셔서, 환히 드러내어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
우리말성경,21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심령으로 몹시 괴로워하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중 하나가 나를 배반할 것이다.”
가톨릭성경,21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마음이 산란하시어 드러내 놓고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 넘길 것이다.”
영어NIV,21 After he had said this, Jesus was troubled in spirit and testified, “I tell you the truth, one of you is going to betray me.”
영어NASB,21 When Jesus had said this, He became troubled in spirit, and testified and said, “Truly, truly, I say to you, that one of you will betray Me.”
영어MSG,21 After he said these things, Jesus became visibly upset, and then he told them why. “One of you is going to betray me.”
영어NRSV,21 After saying this Jesus was troubled in spirit, and declared, “Very truly, I tell you, one of you will betray me.”
헬라어신약Stephanos,21 ταυτα ειπων ο ιησους εταραχθη τω πνευματι και εμαρτυρησεν και ειπεν αμην αμην λεγω υμιν οτι εις εξ υμων παραδωσει με
라틴어Vulgate,21 cum haec dixisset Iesus turbatus est spiritu et protestatus est et dixit amen amen dico vobis quia unus ex vobis tradet me
히브리어Modern,21 ויהי ככלות ישוע לדבר הדברים האלה ויבהל ברוחו ויעד ויאמר אמן אמן אני אמר לכם כי אחד מכם ימסרני׃
성 경: [요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 예수님께서 그의 심령에 민망하시게 된 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특별히 생각되는 것은, (1) 그의 제자가 그를 팔아 먹는 일이 너무도 그에게는 고통이 된다는 것과, (2) 그런 일에 대하여 이제 공적으로 지적하여 말하기가 역시 괴로운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제 이 일을 지적하여 말씀하시지 않으면 안될 단계였다. 그것은 너무도 확실한 일이기 때문에, 그는 엄격한 법정 선언과 같이 “증거하여” 말씀하셨다. 여기 “증거”란 말이 법정 용어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는 것이, 일반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에블레폰 에이스 알렐루스 호이 마데타이 아포루메노이 페리 티노스 레게이
개역개정,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누구에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새번역,22 제자들은 예수께서,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서, 서로 바라다보았다.
우리말성경,22 제자들은 자기들 중 누구를 말씀하시는지 몰라 당황해 하며 서로 쳐다보았습니다.
가톨릭성경,22 제자들은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몰라 어리둥절하여 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영어NIV,22 His disciples stared at one another, at a loss to know which of them he meant.
영어NASB,22 The disciples began looking at one another, at a loss to know of which one He was speaking.
영어MSG,22 The disciples looked around at one another, wondering who on earth he was talking about.
영어NRSV,22 The disciples looked at one another, uncertain of whom he was speaking.
헬라어신약Stephanos,22 εβλεπον ουν εις αλληλους οι μαθηται απορουμενοι περι τινος λεγει
라틴어Vulgate,22 aspiciebant ergo ad invicem discipuli haesitantes de quo diceret
히브리어Modern,22 ויתראו תלמידיו ויתמהו איש אל רעהו לדעת על מי דבר׃
성 경: [요13: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 이것은, 제자들이(유다를 제외하고는)강퍅하지 않은 증표이다.
엔 아나케이메노스 헤이스 에크 톤 마데톤 아우투 엔 토 콜포 투 예수 혼 에가파 호 예수스
개역개정,23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새번역,23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 곧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바로 예수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우리말성경,23 제자들 중 하나인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예수 곁에 기대어 앉아 있었습니다.
가톨릭성경,23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바로 곁에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
영어NIV,23 One of them, the disciple whom Jesus loved, was reclining next to him.
영어NASB,23 There was reclining on Jesus’ bosom one of His disciples, whom Jesus loved.
영어MSG,23 One of the disciples, the one Jesus loved dearly, was reclining against him, his head on his shoulder.
영어NRSV,23 One of his disciples–the one whom Jesus loved–was reclining next to him;
헬라어신약Stephanos,23 ην δε ανακειμενος εις των μαθητων αυτου εν τω κολπω του ιησου ον ηγαπα ο ιησους
라틴어Vulgate,23 erat ergo recumbens unus ex discipulis eius in sinu Iesu quem diligebat Iesus
히브리어Modern,23 ואחד מתלמידיו מסב על חיק ישוע אשר ישוע אהבו׃
성 경: [요13:23]
“그의 사랑하시는 자”는 사도 요한일 것이다.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 이것은, 유대인들의 식사할 때 취하는 자세를 말함이다. 요한은 예수님에게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저런 위치에 놓였을 것이다. 그 때 풍속은, 사람들이 식탁에 앉지 않고 왼 팔에 의지하여 옆으로 누워서 먹었다고 한다(Westcott).
뉴에이 운 투토 시몬 페트로스 퓌데스다이 티스 안 에이에 페리 후 레게이
개역개정,24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하니
새번역,24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여쭈어 보라고 하였다.
우리말성경,24 시몬 베드로가 그 제자에게 손짓하며 누구를 두고 하시는 말씀인지 여쭤 보라고 했습니다.
가톨릭성경,24 그래서 시몬 베드로가 그에게 고갯짓을 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람이 누구인지 여쭈어 보라고 하였다.
영어NIV,24 Simon Peter motioned to this disciple and said, “Ask him which one he means.”
영어NASB,24 So Simon Peter gestured to him, and said to him, “Tell us who it is of whom He is speaking.”
영어MSG,24 Peter motioned to him to ask who Jesus might be talking about.
영어NRSV,24 Simon Peter therefore motioned to him to ask Jesus of whom he was speaking.
헬라어신약Stephanos,24 νευει ουν τουτω σιμων πετρος πυθεσθαι τις αν ειη περι ου λεγει
라틴어Vulgate,24 innuit ergo huic Simon Petrus et dicit ei quis est de quo dicit
히브리어Modern,24 וירמז לו שמעון פטרוס לדרש מי הוא זה אשר דבר עליו׃
성 경: [요13:24,25]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 윗절에 말한바, “그의 사랑하시는 자”는 사도 요한을 가리킨 것인데, 이제 베드로가 그더러 주님을 팔 자가 누구인지 알려 달라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 사도 요한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생각을 알 수 있게 되는 측근자였던 것이 확실하다.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이것은, 유대인들이 음식 먹을 때에 원형으로 팔꿈치를 의지해서 서로끼리 가슴에 기대다시피 연접하여 누워서 먹는 풍속이 있었음을 말한다.
아나페손 운 에케이노스 후토스 에피 토 스테도스 투 예수 레게이 아우토 퀴리에 티스 에스틴
개역개정,25 그가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니이까
새번역,25 그 제자가 예수의 가슴에 바싹 기대어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우리말성경,25 그는 예수의 품에 기대어 물었습니다. “주여, 그가 누구입니까?”
가톨릭성경,25 그 제자가 예수님께 더 다가가, “주님, 그가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다.
영어NIV,25 Leaning back against Jesus, he asked him, “Lord, who is it?”
영어NASB,25 He, leaning back thus on Jesus’ bosom, said to Him, “Lord, who is it?”
영어MSG,25 So, being the closest, he said, “Master, who?”
영어NRSV,25 So while reclining next to Jesus, he asked him, “Lord, who is it?”
헬라어신약Stephanos,25 επιπεσων δε εκεινος επι το στηθος του ιησου λεγει αυτω κυριε τις εστιν
라틴어Vulgate,25 itaque cum recubuisset ille supra pectus Iesu dicit ei Domine quis est
히브리어Modern,25 ויפל על לב ישוע ויאמר אליו אדני מי הוא׃
아포크리네타이 호 예수스 에케이노스 에스틴 호 에고 밮소 토 프소미온 카이 도소 아우토 밮사스 운 토 프소미온 람바네이 카이 디도신 유다 시모노스 이스카리오투
개역개정,2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 하시고 곧 한 조각을 적셔서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
새번역,26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이 빵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고 그 빵조각을 적셔서 ㉢시몬 가룟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시몬의 아들 유다 가룟’ 또는 ‘가룟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
우리말성경,26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이 빵 한 조각을 적셔서 주는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빵 한 조각을 적셔서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가톨릭성경,26 예수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주는 자가 바로 그 사람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리고 빵을 적신 다음 그것을 들어 시몬 이스가리옷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영어NIV,26 Jesus answered, “It is the one to whom I will give this piece of bread when I have dipped it in the dish.” Then, dipping the piece of bread, he gave it to Judas Iscariot, son of Simon.
영어NASB,26 Jesus then answered, “That is the one for whom I shall dip the morsel and give it to him.” So when He had dipped the morsel, He took and gave it to Judas, the son of Simon Iscariot.
영어MSG,26 Jesus said, “The one to whom I give this crust of bread after I’ve dipped it.” Then he dipped the crust and gave it to Judas, son of Simon the Iscariot.
영어NRSV,26 Jesus answered, “It is the one to whom I give this piece of bread when I have dipped it in the dish.” So when he had dipped the piece of bread, he gave it to Judas son of Simon Iscariot.
헬라어신약Stephanos,26 αποκρινεται ο ιησους εκεινος εστιν ω εγω βαψας το ψωμιον επιδωσω και εμβαψας το ψωμιον διδωσιν ιουδα σιμωνος ισκαριωτη
라틴어Vulgate,26 respondit Iesus ille est cui ego intinctum panem porrexero et cum intinxisset panem dedit Iudae Simonis Scariotis
히브리어Modern,26 ויען ישוע הנה זה הוא אשר אטבל פתי לתתו לו ויטבל את פתו ויתן אל יהודה בן שמעון איש קריות׃
성 경: [요13:26,27]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유다를 주시니 – 그 당시에 연회 주인이 떡 조각을 찍어서 손님에게 주는 것은 친절한 대접이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취하신 이 행동은 가룟 유다의 회개를 독촉하신 사랑이다.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 사단이 유다의 마음에 들어간 이유는, 그가 끝까지 회개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눅 22:3-6; 요 13:2 참조
카이 메타 토 프소미온 토테 에이셀덴 에이스 에케이논 호 사타나스 레게이 운 아우토 호 예수스 호 포이에이스 포이에손 타키온
개역개정,27 조각을 받은 후 곧 사탄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이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이르시되 네가 하는 일을 속히 하라 하시니
새번역,27 ㉣그가 빵조각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 때에 예수께서 유다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할 일을 어서 하여라.” / ㉣그, ‘빵조각 뒤에’ 또는 ‘한 입 먹은 뒤에’
우리말성경,27 유다가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습니다. 예수께서 가룟 유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가톨릭성경,27 유다가 그 빵을 받자 사탄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네가 하려는 일을 어서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영어NIV,27 As soon as Judas took the bread, Satan entered into him. “What you are about to do, do quickly,” Jesus told him,
영어NASB,27 After the morsel, Satan then entered into him. Therefore Jesus said to him, “What you do, do quickly.”
영어MSG,27 As soon as the bread was in his hand, Satan entered him. “What you must do,” said Jesus, “do. Do it and get it over with.”
영어NRSV,27 After he received the piece of bread, Satan entered into him. Jesus said to him, “Do quickly what you are going to do.”
헬라어신약Stephanos,27 και μετα το ψωμιον τοτε εισηλθεν εις εκεινον ο σατανας λεγει ουν αυτω ο ιησους ο ποιεις ποιησον ταχιον
라틴어Vulgate,27 et post buccellam tunc introivit in illum Satanas dicit ei Iesus quod facis fac citius
히브리어Modern,27 ואחרי בלעו בא השטן אל קרבו ויאמר אליו ישוע את אשר תעשה עשה מהרה׃
투토 데 우데이스 에그노 톤 아나케이메논 프로스 티 에이펜 아우토
개역개정,28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그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고
새번역,28 그러나 거기 앉아 있는 사람들 가운데서 아무도, 예수께서 그에게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를 알지 못하였다.
우리말성경,28 그러나 자리를 함께한 사람들 중 아무도 예수께서 그에게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가톨릭성경,28 식탁에 함께 앉은 이들은 예수님께서 그에게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아무도 몰랐다.
영어NIV,28 but no one at the meal understood why Jesus said this to him.
영어NASB,28 Now no one of those reclining at the table knew for what purpose He had said this to him.
영어MSG,28 No one around the supper table knew why he said this to him.
영어NRSV,28 Now no one at the table knew why he said this to him.
헬라어신약Stephanos,28 τουτο δε ουδεις εγνω των ανακειμενων προς τι ειπεν αυτω
라틴어Vulgate,28 hoc autem nemo scivit discumbentium ad quid dixerit ei
히브리어Modern,28 ומן המסבים לא ידע איש על מה דבר אליו כזאת׃
성 경: [요13:28,29]
이 부분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유다의 행할 악의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
티네스 가르 에도쿤 에페이 토 글로쏘코몬 에이켄 유다스 호티 레게이 아우토 호 예수스 아고라손 혼 크레이안 에코멘 에이스 텐 헤오르텐 에 토이스 프토코이스 히나 티 도
개역개정,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궤를 맡았으므로 명절에 우리가 쓸 물건을 사라 하시는지 혹은 가난한 자들에게 무엇을 주라 하시는 줄로 생각하더라
새번역,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자루를 맡고 있으므로, 예수께서 그에게 명절에 그 일행이 쓸 물건을 사라고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하였다.
우리말성경,29 어떤 사람들은 유다가 돈을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그에게 명절에 필요한 것을 사 오라거나 가난한 사람들에게 뭔가 나눠 주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가톨릭성경,29 어떤 이들은 유다가 돈주머니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예수님께서 그에게 “우리가 축제에 필요한 것을 사거라.” 하셨거나, 또는 가난한 이들에게 무엇을 주라고 말씀하신 것이려니 생각하였다.
영어NIV,29 Since Judas had charge of the money, some thought Jesus was telling him to buy what was needed for the Feast, or to give something to the poor.
영어NASB,29 For some were supposing, because Judas had the money box, that Jesus was saying to him, “Buy the things we have need of for the feast”; or else, that he should give something to the poor.
영어MSG,29 Some thought that since Judas was their treasurer, Jesus was telling him to buy what they needed for the Feast, or that he should give something to the poor.
영어NRSV,29 Some thought that, because Judas had the common purse, Jesus was telling him, “Buy what we need for the festival”; or, that he should give something to the poor.
헬라어신약Stephanos,29 τινες γαρ εδοκουν επει το γλωσσοκομον ειχεν ο ιουδας οτι λεγει αυτω ο ιησους αγορασον ων χρειαν εχομεν εις την εορτην η τοις πτωχοις ινα τι δω
라틴어Vulgate,29 quidam enim putabant quia loculos habebat Iudas quia dicit ei Iesus eme ea quae opus sunt nobis ad diem festum aut egenis ut aliquid daret
히브리어Modern,29 כי יש אשר חשבו כי אמר אליו ישוע קנה לנו צרכי החג או לתת לאביונים יען אשר כיס הכסף תחת יד יהודה׃
라본 운 토 프소미온 에케이노스 엨셀덴 유뒤스 엔 데 뉰스
개역개정,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새번역,30 유다는 그 빵조각을 받고 나서, 곧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우리말성경,30 유다는 빵 조각을 받은 후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그때는 밤이었습니다.
가톨릭성경,30 유다는 빵을 받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때는 밤이었다.
영어NIV,30 As soon as Judas had taken the bread, he went out. And it was night.
영어NASB,30 So after receiving the morsel he went out immediately; and it was night.
영어MSG,30 Judas, with the piece of bread, left. It was night.
영어NRSV,30 So, after receiving the piece of bread, he immediately went out. And it was night.
헬라어신약Stephanos,30 λαβων ουν το ψωμιον εκεινος ευθεως εξηλθεν ην δε νυξ
라틴어Vulgate,30 cum ergo accepisset ille buccellam exivit continuo erat autem nox
히브리어Modern,30 והוא בקחתו את פת הלחם מהר לצאת החוצה ויהי לילה׃
성 경: [요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 유다는 주님을 팔 자로 지적된 때에, 회기하지 않고 그냥 그 악한 계획을 실행하려고 그 좌석에서 떠나 나갔다. “때가 밤이러라”고 한 것은, 영적 의미도 가진다. 곧, 회개하지 않는 그의 마음도 밤과 같이 캄캄하다는 의미인 동시에, 그의 앞길도 영원히 캄캄할 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호테 운 엨셀덴 레게이 예수스 뉜 에돜사스데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카이 호 데오스 에돜사스데 엔 아우토
개역개정,31 그가 나간 후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도다
새번역,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
우리말성경,31 유다가 나간 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인자가 영광을 받게 됐고 하나님께서도 인자로 인해 영광을 받게 되셨다.
가톨릭성경,31 유다가 나간 뒤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하느님께서도 영광스럽게 되셨다.
영어NIV,31 When he was gone, Jesus said, “Now is the Son of Man glorified and God is glorified in him.
영어NASB,31 Therefore when he had gone out, Jesus said, “Now is the Son of Man glorified, and God is glorified in Him;
영어MSG,31 When he had left, Jesus said, “Now the Son of Man is seen for who he is, and God seen for who he is in him. The moment God is seen in him,
영어NRSV,31 When he had gone out, Jesus said, “Now the Son of Man has been glorified, and God has been glorified in him.
헬라어신약Stephanos,31 οτε εξηλθεν λεγει ο ιησους νυν εδοξασθη ο υιος του ανθρωπου και ο θεος εδοξασθη εν αυτω
라틴어Vulgate,31 cum ergo exisset dicit Iesus nunc clarificatus est Filius hominis et Deus clarificatus est in eo
히브리어Modern,31 הוא יצא וישוע אמר עתה נתפאר בן האדם והאלהים נתפאר בו׃
성 경: [요13:31]
지금 인자가 영광을얻었고 여기서 “인자”란 말(* )은, 메시야를 가리킨다. “영광을 얻었다”는 말씀은, 그의 부활 승천을 의미한다는 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저가(유다가)나간 후에, 곧 이어서 예수님의 이 말씀이 있는 것을 보아서,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가리킨다. 유다가 나간 것은, 예수님에게 고난이 닥칠 것을 알게 한 사건이다. 그 뿐 아니라, 다음 절에, “영광을 주시리니”(* )라고 미래사(未來詞)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신 후의 일(부활, 승천)을 의미한 것을 보아서도, 이 귀절의 “영광을 얻었고”란 과거사는 그리스도의 죽으실 고난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그의 받으실 고난을 영광으로 보셨다.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 “인자를 인하여”란 말은 “인자 안에서”란 뜻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과 일체이심으로, 아들이 영광을 얻으심에 따라서 그 자신도 영광을 얻으신다.
에이 호 데오스 에돜사스데 엔 아우토 카이 호 데오스 돜사세이 아우톤 엔 아우토 카이 유뒤스 돜사세이 아우톤
개역개정,32 만일 하나님이 그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도 자기로 말미암아 그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곧 주시리라
새번역,32 [하나님께서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으면,] 하나님께서도 몸소 인자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렇게 하실 것이다.
우리말성경,32 하나님께서 인자로 인해 영광을 받으시면 하나님께서도 몸소 인자를 영광되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렇게 하실 것이다.
가톨릭성경,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셨으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이제 곧 그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영어NIV,32 If God is glorified in him, God will glorify the Son in himself, and will glorify him at once.
영어NASB,32 if God is glorified in Him, God will also glorify Him in Himself, and will glorify Him immediately.
영어MSG,32 God’s glory will be on display. In glorifying him, he himself is glorified–glory all around!
영어NRSV,32 If God has been glorified in him, God will also glorify him in himself and will glorify him at once.
헬라어신약Stephanos,32 ει ο θεος εδοξασθη εν αυτω και ο θεος δοξασει αυτον εν εαυτω και ευθυς δοξασει αυτον
라틴어Vulgate,32 si Deus clarificatus est in eo et Deus clarificabit eum in semet ipso et continuo clarificabit eum
히브리어Modern,32 אם האלהים נתפאר בו גם האלהים הוא יפארהו בעצמו ובמהרה יפארהו׃
성 경: [요13:32]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 여기 “자기로 인하여”란 말(* )은, 하나님 계신 곳을 가리킨다. 17:5에서는, 이 뜻이 “아버지와 함께”(* )란 말로 표현되었다. 그러면, 이 귀절의 뜻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 층천케 하셔서 자기의 계신 곳에 함께 계시도록 하심을 가리킨다(6:62, 17:5, 20:17; 빌 2:9-11).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영광스러운 곳에 가시게 되므로 그 제자들과는 당분간 나누이게 된다. 다음의 33절 말씀이 그 뜻이다.
테크니아 에티 미크론 멛 휘몬 에이미 제테세테 메 카이 카도스 에이폰 토이스 유다이오이스 호티 호푸 에고 휘파고 휘메이스 우 뒤나스데 엘데인 카이 휘민 레고 아르티
개역개정,33 작은 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나 일찍이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내가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새번역,33 어린 자녀들아, 아직 잠시 동안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일찍이 유대 사람들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하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나는 너희에게도 말하여 둔다.
우리말성경,33 자녀들아, 이제 잠시 동안은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가 나를 찾을 것이다. 내가 전에 유대 사람들에게 말한 대로 너희에게도 말하는데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가톨릭성경,33 얘들아, 내가 너희와 함께 있는 것도 잠시뿐이다. 너희는 나를 찾을 터인데, 내가 유다인들에게 말한 것처럼 이제 너희에게도 말한다.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영어NIV,33 “My children, I will be with you only a little longer. You will look for me, and just as I told the Jews, so I tell you now: Where I am going, you cannot come.
영어NASB,33 “Little children, I am with you a little while longer. You will seek Me; and as I said to the Jews, now I also say to you, ‘Where I am going, you cannot come.’
영어MSG,33 “Children, I am with you for only a short time longer. You are going to look high and low for me. But just as I told the Jews, I’m telling you: ‘Where I go, you are not able to come.’
영어NRSV,33 Little children, I am with you only a little longer. You will look for me; and as I said to the Jews so now I say to you, ‘Where I am going, you cannot come.’
헬라어신약Stephanos,33 τεκνια ετι μικρον μεθ υμων ειμι ζητησετε με και καθως ειπον τοις ιουδαιοις οτι οπου υπαγω εγω υμεις ου δυνασθε ελθειν και υμιν λεγω αρτι
라틴어Vulgate,33 filioli adhuc modicum vobiscum sum quaeretis me et sicut dixi Iudaeis quo ego vado vos non potestis venire et vobis dico modo
히브리어Modern,33 בני עוד מעט מזער אהיה עמכם אתם תבקשוני וכאשר אמרתי אל היהודים כי אל אשר אני הולך לא תוכלו לבוא שמה כן אליכם אמר אני עתה׃
성 경: [요13:33]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 이 말씀이 윗절(32 절)과 무슨 연락을 가지는가? 그 연락은 이렇다.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주신 결과(32절 하반)로 그는 아버지의 계신 곳으로 가시게 된다. 그의 제자들은 당분간 그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36절 참조.
엔톨렌 카이넨 디도미 휘민 히나 아가파테 알렐루스 카도스 에가페사 휘마스 히나 카이 휘메이스 아가파테 알렐루스
개역개정,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새번역,34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우리말성경,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가톨릭성경,34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영어NIV,34 “A new command I give you: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영어NASB,34 “A new commandment I give to you, that you love one another, even as I have loved you, that you also love one another.
영어MSG,34 “Let me give you a new command: Love one another. In the same way I loved you, you love one another.
영어NRSV,34 I give you a new commandment, that you love one another. Just as I have loved you, you also should love one another.
헬라어신약Stephanos,34 εντολην καινην διδωμι υμιν ινα αγαπατε αλληλους καθως ηγαπησα υμας ινα και υμεις αγαπατε αλληλους
라틴어Vulgate,34 mandatum novum do vobis ut diligatis invicem sicut dilexi vos ut et vos diligatis invicem
히브리어Modern,34 מצוה חדשה אני נתן לכם כי תאהבו איש את אחיו כאשר אהבתי אתכם כן גם אתם איש את אחיו תאהבון׃
성 경: [요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여기 “새 계명”이란 말에 대하여 우리가 몇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1) “새 계명”이란 명칭의 이유, 창조 질서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천하만민을 한 혈맥으로 지으셨다고 하였는데(행 17:26),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남들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될 근거를 성립시켰다. 그러므로 구약에도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계명이 있다(레 19:18). 구약의 계명도 사랑 중심의 것이다(롬 13:8-10).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독특한 동기들을 제공한다. 종말관적 동기. 그것은, “사랑하라”는 계명이면서도 구약의 예언적인 것이 성취된 종류이다. 그것이야말로 종말관적인 것이다(요일 2:8). 예수님의 보혈로 이루신 속죄를 믿는 자들은, 그가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34절 하반), 다른 신자들을 위하여 희생하며, 필요하면 그들을 위하여 죽을 처지에 있다. 영원한 기업의 동기. 같은 혈맥에 속한 자들 중에서(행 17:26)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마침내 영원히 나누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하여 구원 받은 형제들은 영원히 나누이지 않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 한 자리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서로끼리 위하여 희생할 처지에 있다. (2) 새 계명을 지키는 방법. 그것은 물론 위에 관설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34절 하반에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그는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시는 것으로써 사랑을 보여 주셨다. 그것이 바로 13장의 제목이 되어 있으니, 곧바로 그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실이다. 그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 지극한 사랑이라고, 1절은 말하고 있다. 그가 그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겸손이지만(겸손도 사랑임-고전 13:4), 그가 그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10-11). 그는, 희생의 정신으로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대속의 희생은 될 수 없으나, 남들의 짐을 자신이 걸머지게 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그것은 큰 사랑이다(갈 6:2). 우리가 이 진리를 이론으로 배유면서도 실제로 남들을 위해 희생할 줄은 모른다. 우리가 남들에게 대하여 이렇게 무관심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내가 계명을 지켜야만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 나 자신이 머물게 됨을 모르기 때문임. 요 15:10에 말하기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안에 거하리라”고 하였다. 내가 남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일을 해 보지 않기 때문임. 자식을 기르노라고 온갖 희생을 한 어머니는, 그 기른 자식을 잊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그 자식을 위하여 희생한다. 그러나 어머니를 위하여 희생해 본 일이 없는 그 자식은, 어머니를 쉽게 잊어 버린다. 그러므로 내가 남을 사랑하려면 먼저 그를 위한 희생으로 시작해야 된다. 천국 운동의 필요성을 뜨겁게 느끼지 못한 까닭임. 신자들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마치, 양 몇 마리가 많은 이리들 가운데 있음과 같고, 몇 백만 군대에게 포위된 것과도 같다. 이 세상엔 불신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가? 우리는 그 세력을 복음으로 이겨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서로 시기하거나 험담하지 말고 서로 아끼고 도와 주어야 된다. 신자가 영원한 나라를 기억하지 못한 까닭. 그리스도께서도 그 백성을 그렇게 사랑하시게 된 동기가 그의 가실 영광의 나라를 생각하심에 있었다(1,3). 32-34절의 문맥도 이 내용을 보여준다. 곧, 그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영광(내세에 들어가심)을 받으시게 될 것을 염두에 두시고(32 절) 이 새 계명을 주셨다. 내세에 대한 확신을 가지는 자는, 이 세상의 것은 그 무엇이든지 초개와 같이 생각하고 희생한다. 한 번은, 구세군 사관들 109명이 아일란드의 황후(Empress of Ireland)란 배를 타고 가다가 파선되어 다 물에 빠졌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함께 빠진 자들의 구명대(救命袋) 없음을 보고 자기들의 것을 벗어 주면서, “나는 당신보다 잘 죽을 수 있다”라고 하면서 희생하였다. 그들은 내세를 확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죽기까지 사랑을 베풀었다. 내가 남을 위하여 희생할 의용이 끝까지 생기지 않으면, 한 가지는 해야 됨. 그것은, 내가 남들을 위하여 죽기까지라도 희생할 책임감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임감을 가진 자는 그대로 행치 못한 처지에도 극도의 겸손을 소유하게 된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 4:6) (3)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주신 목적. 예수님의 새 계명은 모세의 10계명을 폐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와 그의 사도들은, 모세의 10계명을 그대로 세워 나가셨다(마 22:37-40; 롬 13:8-10). 그는 진리이시니,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계시된 구약의 계명들을 폐지하실 리가 없다. 하나님의 계명은 선(善) 자체이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곧, 선은 피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본질적 의지이다. 종교와 도덕(선과 관련된 것)은, 서로 달라도 서로 독립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함께, 우리가 하나님과 관계된 방면이다. 하나님의 의지 자체인 선의 표현 곧, 계명은 어느 시대으 것이든지 페지되지 않는다. 모세의 율법 중 유대인들만을 위한 제도들은 신약 시대에 폐지되었다. 그러나 인류 전체를 위한 도덕적인 십계명은 폐지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십계명 중 제 4 계명에, 쉬라고 한 것은 보편적 도덕 요소이다. 쉬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을 위한 것이며, 또한 사람과 집승의 피곤과 쇠약을 막는 자비를 위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 계명은 창조 질서에 속한 선한 제도이다. 곧, 이것은 모세 이전에 온 인류를 위하여 제정된 것이었다. 다만 안식일을 지키는데 관계된 벌칠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므로 변동되었다. 구약 시대에 안식일을 범한 자를 죽인 것은, 신정 국가(神政國家)의 시대, 곧, 정교 일체(政敎一體) 새대에 속한 것이었다. 안식일과 날자 순서도 본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신약 시대에 그 날자가 변한 것으로 보아서 알 수 있다. 구약 시대에는 제 7일(토요일)이었던 것이, 신약 시대에는 7일 중 첫날(주일)로 변경되었다. 그것이 그렇게 된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창조(創造)를 기념했으나, 기독자는 그리스도의 부활(復活)을 기념하기 때문이다.
엔 투토 그노손타이 판테스 호티 에모이 마데타이 에스테 에안 아가펜 에케테 엔 알렐로이스
개역개정,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새번역,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말성경,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영어NIV,35 By this all men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love one another.”
영어NASB,35 “By this all men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have love for one another.”
영어MSG,35 This is how everyone will recognize that you are my disciples–when they see the love you have for each other.”
영어NRSV,35 By this everyone will know that you are my disciples, if you have love for one another.”
헬라어신약Stephanos,35 εν τουτω γνωσονται παντες οτι εμοι μαθηται εστε εαν αγαπην εχητε εν αλληλοις
라틴어Vulgate,35 in hoc cognoscent omnes quia mei discipuli estis si dilectionem habueritis ad invicem
히브리어Modern,35 בזאת ידעו כלם כי תלמידי אתם בהיות אהבה ביניכם׃
성 경: [요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여기 이른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인도주의(人道主義)에 속하는 사랑이 아니고 주님을 믿으며 사랑하는 일의 열매이다. 모든 사람들(세상)이 이 사랑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를 실별한다는 것은, 두 가지 내용을 포함한 말씀이다. 이것은, (1) 예수님의 제자된 표가 사랑이라는 말과 같고, (2) 또한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불신자들을 주님께로 인도하게 된다는 뜻도 있다. 17:21-23 참조
레게이 아우토 시몬 페트로스 퀴리에 푸 휘파게이스 아페크리데 아우토 예수스 호푸 휘파고 우 뒤나사이 모이 뉜 아콜루데사이 아콜루데세이스 데 휘스테론
개역개정,36 시몬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새번역,36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물었다.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나중에는 따라올 수 있을 것이다.”
우리말성경,36 시몬 베드로가 예수께 물었습니다. “주여, 어디로 가십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가는 곳으로 네가 지금은 올 수 없지만 나중에는 오게 될 것이다.”
가톨릭성경,36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어디로 가십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영어NIV,36 Simon Peter asked him, “Lord, where are you going?” Jesus replied, “Where I am going, you cannot follow now, but you will follow later.”
영어NASB,36 Simon Peter said to Him, “Lord, where are You going?” Jesus answered, ” Where I go, you cannot follow Me now; but you will follow later.”
영어MSG,36 Simon Peter asked, “Master, just where are you going?” Jesus answered, “You can’t now follow me where I’m going. You will follow later.”
영어NRSV,36 Simon Peter said to him, “Lord, where are you going?” Jesus answered, “Where I am going, you cannot follow me now; but you will follow afterward.”
헬라어신약Stephanos,36 λεγει αυτω σιμων πετρος κυριε που υπαγεις απεκριθη αυτω ο ιησους οπου υπαγω ου δυνασαι μοι νυν ακολουθησαι υστερον δε ακολουθησεις μοι
라틴어Vulgate,36 dicit ei Simon Petrus Domine quo vadis respondit Iesus quo ego vado non potes me modo sequi sequeris autem postea
히브리어Modern,36 ויאמר אליו פטרוס אדני אנה תלך ויען אתו ישוע אל אשר אני הולך שמה לא תוכל עתה ללכת אחרי אך אחרי כן תלך אחרי׃
성 경: [요13:36-38]
이 부분의 말씀은, 베드로의 결심과 예수님의 예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신다”는 것(33 절), 그가 죽어서 하나님 계신 하늘 나라에 가실 것을 가리킨 것이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을 오해하고 질문하기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하였다(36 절).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가시는 곳에 목숨을 버리기까지 따르겠다고 맹세하였다. 그것은, 진리대로 움직인 신앙의 용기가 아니고 하나의 유적인 용기였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육적인 용기를 꺾어 겸손하게 하시려고 예언의 말씀으로 경고하셨으니, 곧,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다(38 절). 그가 이렇게 경고하신 이유는, 육적 용기는 도리어 주님께 대한 신앙과 충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레게이 아우토 호 페트로스 퀴리에 디아 티 우 뒤나마이 소이 아콜루데사이 아르티 텐 프쉬켄 무 휘페르 수 데소
개역개정,37 베드로가 이르되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라갈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
새번역,37 베드로가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왜 지금은 내가 따라갈 수 없습니까? 나는 주님을 위하여서는 내 목숨이라도 바치겠습니다.”
우리말성경,37 베드로가 물었습니다. “주여, 어째서 제가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를 위해서라면 제 목숨도 바치겠습니다.”
가톨릭성경,37 베드로가 다시 “주님, 어찌하여 지금은 주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까? 주님을 위해서라면 제 목숨까지 내놓겠습니다.” 하자,
영어NIV,37 Peter asked, “Lord, why can’t I follow you now? I will lay down my life for you.”
영어NASB,37 Peter said to Him, “Lord, why can I not follow You right now? I will lay down my life for You.”
영어MSG,37 “Master,” said Peter, “why can’t I follow now? I’ll lay down my life for you!”
영어NRSV,37 Peter said to him, “Lord, why can I not follow you now? I will lay down my life for you.”
헬라어신약Stephanos,37 λεγει αυτω ο πετρος κυριε διατι ου δυναμαι σοι ακολουθησαι αρτι την ψυχην μου υπερ σου θησω
라틴어Vulgate,37 dicit ei Petrus quare non possum sequi te modo animam meam pro te ponam
히브리어Modern,37 ויאמר אליו פטרוס מדוע לא אוכל עתה ללכת אחריך הן נפשי בעד נפשך אתן׃
아포크리네타이 예수스 텐 프쉬켄 수 휘페르 에무 데세이스 아멘 아멘 레고 소이 우 메 알렠토르 포네세 헤오스 후 아르네세 메 트리스
개역개정,38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을 버리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새번역,38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네가 나를 위하여 네 목숨이라도 바치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우리말성경,38 그러자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네가 정말 나를 위해 네 목숨이라도 바치겠느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할 것이다.”
가톨릭성경,38 예수님께서 대답하셨다. “나를 위하여 목숨을 내놓겠다는 말이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닭이 울기 전에 너는 세 번이나 나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영어NIV,38 Then Jesus answered, “Will you really lay down your life for me? I tell you the truth, before the rooster crows, you will disown me three times!
영어NASB,38 Jesus answered, “Will you lay down your life for Me? Truly, truly, I say to you, a rooster will not crow until you deny Me three times.
영어MSG,38 “Really? You’ll lay down your life for me? The truth is that before the rooster crows, you’ll deny me three times.”
영어NRSV,38 Jesus answered, “Will you lay down your life for me? Very truly, I tell you, before the cock crows, you will have denied me three times.
헬라어신약Stephanos,38 απεκριθη αυτω ο ιησους την ψυχην σου υπερ εμου θησεις αμην αμην λεγω σοι ου μη αλεκτωρ φωνησει εως ου απαρνηση με τρις
라틴어Vulgate,38 respondit Iesus animam tuam pro me ponis amen amen dico tibi non cantabit gallus donec me ter neges
히브리어Modern,38 ויען אתו ישוע הכי תתן נפשך בעד נפשי אמן אמן אני אמר לך בטרם יקרא התרנגל תכחש בי שלש פעמי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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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3장은 후반부를 여는 장이다. 요한복음은 13장을 중심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뉘는데, 전반부를 ‘표적의 책’이라고 하며, 후반부를 ‘영광의 책’이라고 부른다. 후반부의 핵심은 가장 위대한 표적인 십자가를 통한 계시인데, 이는 전반부에 기록된 보통의 표적을 보고 반응한 제자들을 확실히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은 고별설교를 통해서도 제자들을 양육한다. 제자 양육은 후반부에 흐르는 예수님의 중요한 과제이다. 따라서 요한복음 후반부를 제자들을 위한 계시라고 볼 수 있다.
요한복음 13장은 후반부 전체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 시간적으로는 유월절기이며, 영적으로는 이제 그만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야 할 때”이다. 제자들과의 작별을 위한 고별 만찬을 하셨는데, 이 만찬동안 제자들의 발을 씻고(4~20절),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며(21~30절), 사랑에 대해 가르치고(31~35절), 베드로가 부인(否認)할 것을 예언하셨다(36~38절).
13장의 첫 절은 예수님이 세상에서 마지막 시간을 “끝까지의 사랑”1이라고 규정함으로 13장의 모든 내용이 예수님이 보여주신 “끝까지의 사랑”과 연관되어 있음을 암시해 준다. 또한 “끝까지의 사랑”은 14장에서 시작되어 17장까지 계속되는 예수님의 고별설교의 주제이기도 하며, 18장부터 계속되는 수난과 부활, 그리고 제자들의 회복 이야기의 주제이다. 마지막으로 베드로에게 다가오신 예수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심으로 13장 말미에서 예고된 실패를 경험한 그를 회복하신다.
요한복음 13장은 ‘사랑 이야기’와 ‘실패 이야기’가 짝을 이루며, 반복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세족식을 통한 예수님의 겸손한 사랑 이야기(4~20절)는 유다의 배신예고(21~30절)와 짝을 이루며, 영광의 때가 올 것과 사랑에 대한 계명(31~35절)은 베드로의 부인(否認) 예고의 첨가로 긴장을 더한다(36~38절). 사랑 이야기들을 뒤따르는 유다와 베드로의 배신과 부인 이야기는 예수님 사랑의 강도를 더욱 진하게 보여준다.2
세족을 통해 선생이 제자를 섬기는 겸손한 사랑을 친히 보여주셨지만, 가장 사랑받았던 제자 중 하나인 유다는 자기의 선생이신 예수님을 판다. 예수님은 식사를 하시면서 당신이 이룰 하나님의 영광을 말씀하시고 제자들이 마땅히 서로 사랑하여야 할 것을 가르치셨지만, 가장 앞섰다고 생각되던 베드로가 실패할 것도 예고하신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근본적인 무지 때문에 실패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실패한 베드로도 사랑하셨다. 유다의 배신 이야기와 베드로의 실패 이야기는 결국 예수님의 “끝까지의 사랑” 이야기 속으로 용해되고 있다.
요한복음의 때(13:1~3)
요한복음 13장은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는 유명한 사건으로 시작된다. 이 때가 유월절 직전이었는데, 요한복음은 이 때를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라고 한다. 요한복음 후반부를 ‘영광의 책’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수님의 죽음을 아버지께로 의연하게 돌아가시는 것(return)으로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처음 이 땅에 오신 것과도 연결된다. 공관복음은 예수님의 탄생을 오시기로 예언된 하나님이 아들이 정한 때에 이 땅에 오신 것으로 설명하지만, 요한복음은 하늘에 처음부터 계시던 아들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내려오신 것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것이며,3 따라서 예수님의 죽음은 ‘수난’이라기보다는 아버지의 뜻을 이 땅에 명백히 드러내는 영광의 과정이다(요 13:31~32).
1절의 “때”는 공관복음의 “때”와 차이가 있다. 공관복음의 때는 구약에 예언된 구속이 도래한 것을 의미하고, 이는 예수님의 사역 전체를 가리키는데, 요한복음의 때는 아버지께로 돌아가시는 순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때는 고난의 때가 아니라 영광의 순간이다.4 요한복음 후반부 영광의 책은 숙연하기보다는 풍요롭게 시작된다.5
유월절 만찬인가 최후의 만찬인가
본문은 유월절기에 관련된 저녁식사 시간에 생긴 일이다. 학자들은 이 만찬을 공관복음의 유월절 만찬과 같은 것으로 보지만, 여기에는 풀어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있다. 공관복음에서는 예수님이 유월절 만찬을 드시고 십자가에서 처형되지만, 요한복음에서는 유대인들이 예수님의 사형 집행을 모두 마치고 유월절 만찬을 먹었다(요 18:28). 유월절 만찬 시간 전에 모든 처형이 끝난 것이다. 이런 불일치에 대하여 크게 세 가지 가능한 설명이 있지만, 모두 약점을 가지고 있어 어느 견해가 옳은 지 확정하기는 힘들다.
첫째 견해는 공식적인 유월절 만찬 전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미 식사를 했고, 이 식사는 유월절 만찬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 견해에 의하면 요한복음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에 맞고, 공관복음의 기록에는 약간의 하자가 있다고 한다.6
유월절 만찬이 공식적으로 시작되기 하루 전에 예수님과 제자들은 이미 식사를 했고 그날 밤에 체포되어 다음 날 낮, 곧 유월절 양을 잡는 그 시간에 운명하셨다고 이해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죽음을 어린양의 죽음과 단단히 연관시키지만 문제는 성전에서 공식적으로 양을 성전에서 하루 전에 잡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예수님이 드신 만찬은 최후의 만찬일 뿐, 유월절 만찬이 될 수 없다. 또한 공관 복음이 유월절 만찬을 드셨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공관복음 저자의 부주의로 인한 작은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7
둘째 견해는 공관복음의 기록이 역사적으로 맞고, 또한 요한복음에도 오류가 없다고 주장한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공관복음에서 제시하듯 유월절 만찬을 정식으로 드신 후 체포되어 그 날 밤에 심문 받고 유월절 낮에 처형되셨다는 것이다.8 “이날이 유월절 예비일”(요 19:14)이라는 표현은 유월절기의 한 주간 중에 맞이하는 안식일의 예비일이지, 문자 그대로 유월절 당일의 예비일이 아니라는 것이다.9
실제로 구약에서 ‘예비일’은 안식일의 예배일을 뜻하지, 절기의 예비일을 뜻하는 예가 없기 때문에 이 주장에는 약간의 설득력이 있다. 이 견해를 요약하면, 예수님이 처형된 날이 바로 유월절이며, 동시에 안식을 예비하는 금요일 낮이었다. 예수님은 공관복음이 제시하는 대로 공식적으로 유월절 만찬을 드셨지만, 유월절기 중에 맞이하는 안식일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유대인들에 의해 서둘러 안식일의 예비일, 곧 금요일/유월절날에 처형된 것이다.
그러나 유월절 날 예수님을 체포하였고, 제사장들이 유월절 날 한밤중부터 모여 꼭두새벽까지 예수님을 심문하고, 빌라도가 명절인 유월절 날 이른 아침부터 예수님을 심판했다는 결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요한복음 18장 28절은 유대인들의 마음에 명절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의도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 안식일과 무교절기를 더럽히지 않으려 했다면, 유월절도 마찬가지였어야 한다.
셋째, 예수님은 음력을 사용하던 당시 유대 지도들과는 달리 양력을 사용하셔서 유월절을 지키셨다는 것이다. 그해 양력에는 유월절이 화요일 저녁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에 공관복음은 예수님이 양력을 따라 유월절 식사를 하신 후 처형을 당하셨다고 기록한다. 하지만 음력으로는 아직 유월절 식사의 때가 시작되지 않았고,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처형이 음력에 따라 지켜지는 공식적인 유월절의 식사 시간 전에 끝났음을 기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10 유대인 문서인 쥬빌리서와 쿰란 문서에는 당시의 권력자를 따르지 않는 일부 보수 유대인들이 양력을 사용했다는 근거가 있다고 한다.
문제는 이 견해 역시 예수님께서 드신 만찬은 공식적인 유월절 만찬이 될 수 없음을 인정해야만 한다는 점이다. 유월절 만찬이 아니라, 최후의 만찬인 셈이다. 예수님의 만찬에 사용한 양은 공식적으로 성전에서 잡은 양일 수 없다. 만약 예수님께서 양력을 따라 유월절을 지키심으로 성전을 중심으로 한 당시 권세자들의 유월절을 인정하지 않았다면, 최후 만찬에 사용한 양은 성전에서 잡지 않은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비록 성전에서 잡은 양을 사용하지 않았어도,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마지막 식사는 분명히 유월절 만찬이었다. 아마도 예수님과 제자들은 줄곧 양력을 사용하여 유월절을 지켜왔을 것이다.
세족식을 통해 가르쳐 주신 사랑의 교훈
(13:4~20)
세족식의 의미는 언뜻 보아도 겸손한 행위의 중요성을 가르친다(14~17절). 이런 겸손의 행위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끝까지의 사랑’의 한 모습이다. 그러나 세족식이 주는 교훈이 겸손한 행위를 가르치기 위한 것 뿐 이라면, 세족식 중에 있었던 베드로와의 대화(6~11절)는 무의미 한 것이다. 세족에는 단순한 ‘겸손’ 이상의 상징적 의미가 있다. 어떤 학자들은 이를 세례라고 본다.11
그러나 이를 증명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문맥에서 확실히 말하는 세족의 목적은 이를 통해 예수님과 상관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8절), 한번 씻은 자는 다시 씻을 필요가 없다. 세족은 반복이 필요 없는 단회로 충분한 은혜의 사건을 상징한다(10절).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세족이 예수님의 죽음을 의미한다고 본다.12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예수를 믿는 자들과 예수님은 상관있게 되며, 이는 단회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나와 상관이 없다’의 원어를 직역하면, ‘나와 함께 부분을 공유하지 못 한다’인데, 이 표현에는 예수님의 마음이 담겨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와 ‘상관’있게 하려는 애타는 마음이다. 제자들의 발을 씻는 세족식은 단순히 겸손한 행동을 통해 감동을 주려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음으로 제자들과 ‘상관’있게 하려는 깊은 사랑의 배려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상관있게 됨으로 늘 그들과 함께 하신다.13 그러나 제자들은 이런 상징적 의미를 정한 때가 올 때까지 깨닫지 못했다(7절).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장면을 보라(4절). 유대에서 수건을 허리에 두르는 것은 ‘일하고 있음’을 상징한다(벧전 1:13). 요한계시록 1장 13절은 영광 받으신 예수님의 모습을 묘사하는데, ‘가슴에 금띠를 띤’ 모습이 나온다. 예수님은 지상에 계시는 동안 끊임없이 일하셨다. 수건을 허리에 두르셨지, 금띠를 가슴에 띠지 않으셨다. 지상에 있는 동안 모든 제자는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주님의 일을 하여야 한다. 그러면 영광 받는 날에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금띠를 띠어 주실 것이다. 예수께서 보여준 ‘끝까지의 사랑’은 쉼 없이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일하는 것을 포함한다. 사랑은 행위인 것이다.14 세족에 담긴 상징적 의미는 베드로의 무지를 통해 더욱 분명히 드러난다. 8절과 9절은 베드로의 무지를 보이며, 결국 이 무지는 36~38절에서 예수님에 대한 ‘부인(否認)’이라는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된다. 8절에도 이미 가벼운 ‘부인’이 있다(“내 발을 절대로 씻기지 못 하리이다”). 예수님의 세족을 거부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내려놓기까지 하며 주시는 사랑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베드로의 자기 열심이 예수님의 사랑을 거부하는 무지를 낳고 있다.
10절은 해석상 난제를 포함한다. 앞서 가르치신 단회적 효과로서의 세족과 다른 가르침을 포함하는 듯하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다’는 말씀은 곧 발은 계속 씻어야 한다는 의미로 들리기 때문이다. 사본학적으로 보면 “발 밖에”는 원문에 없을 가능성이 더 많다.15 그렇다면, “이미 목욕한 자는 다시 씻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 되는데, 이것은 앞선 가르침과 온전한 조화를 이룬다. 여기서 ‘목욕’과 ‘씻음’은 동의어이며, 반복을 피하기 위해 다른 단어를 사용한 것이다.
만약 “발 밖에”가 원문의 일부라면, 예수님은 세족의 파생적 의미를 하나 더 부여하고 계신 것이 된다. ‘목욕’이 세족, 곧 예수님의 죽으심을 의미하며, 예수님의 죽으심을 통해 죄를 씻음 받았어도, ‘발을 계속 씻음으로’ 이후 삶의 여정에서 범하는 죄를 계속 씻어야 함을 가르쳐 주신다. 10절에서 ‘발씻음’은 앞에서 의미하는 세족과 다르게 이해해야 한다.16
세족식의 상징적 의미, 곧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제자들의 죄가 근본적으로 씻겼음을 아는 것은 12절 이하에서 계속되는 겸손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예수님의 가르쳐주신 겸손은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제자들이 가져야 할 근본적인 성품이었다. 겸손한 행동의 중요성과 절대성에 대한 바른 지식을 알고 이것을 행하는 것이 참 제자들에게 요구된다. 이것은 31절 이하에서 가르치는 새 계명으로서의 사랑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바른 이해에 근거한다. 제자들의 죄가 근본적으로 씻겼고 예수님과 관계가 맺어졌다면, 그런 제자들은 예수님처럼 겸손을 행하게 된다는 것이다.
15절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세족이 제자들도 따라서 행할 모본임을 분명히 한다. ‘모본’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휘포데이그마’인데 신약성경에서 빈번히 사용되는 단어가 아니다. 신약 성경 밖에서 이 단어는 ‘모범적 죽음’을 의미하는 데 사용되었다.17 이 단어를 근거로 학자들은 요한의 공동체가 세족식을 예배의 한 부분으로 정례화하여 시행하였을 것이라고 추정한다.18
17절은 “알고 행하는 자의 복”을 소개한다. 이 복은 예수께서 직접 가르쳐주신 복으로 마태복음 5장의 8복과 연관지을 수 있다. 사도행전의 20장 35절에 소개된 ‘주는 자의 복’을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9복이라고 한다면, 이 복은 열 번 째 복이라고 볼 수 있다.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 보다 크지 못함을 알고 행하는 것”이 복이라는 것이다.
곧 겸손한 섬김이 복이란 뜻이다. 복이 되는 겸손은 단순한 태도가 아니다. 높은 위치에서도 낮은 자를 진정으로 섬길 수 있는 행위인데, 이것은 예수님에게서 비롯된다. 바로 예수님의 죽으심이란 사랑이 제자들의 마음에 담겨 여기에서 우러나는 겸손한 행위이기 때문에 복이 된다. 세족식은 단순한 겸손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의 대속적 죽음의 힘에서 비롯되는 겸손한 섬김을 가르쳐 준다. 자기의 잘못을 꾸준히 돌아보지 않을 때 겸손은 나에게서 멀어진다. 겸손한 행위를 통해 계속적으로 자신을 씻을 때, 제자들은 제자답게 된다.
유다의 배반 예고에 담긴 예수님의 사랑(13:21~30)
세족식이 끝난 후 만찬이 시작된다. 그러나 공관복음과는 달리 음식을 축사하시는 장면은 없고 장차 배반할 한 제자에 대한 예고가 중심을 이룬다. 가룟 유다에 대한 긴 기록은 유다의 배신을 예수께서 미리 알고 계셨음을 밝히는 데 있다.19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셨고, 의연하게 정해진 길을 가신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배반으로 가슴 아파하며, 그에게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보낸다.
2절과 11절은 유다에 대하여 냉소적이다. 그러나 26절(“한 조각을 찍으셔다가 가룟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시니”)은 예수님께서 ‘끝까지의 사랑’을 보여 주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20 21절에 보면, 예수님의 심령이 “민망하였다”고 한다. 예수께서는 11장 33절에서도 “민망히 여기셨다”. 이 표현 속에서 예수님은 가룟 유다에 대한 인간으로서 느끼는 배신감과 연민의 정을 모두 드러내고 계신다.
가룟유다의 배반을 예고하는 대목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이다(23절).21 전통적으로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는 이 복음서의 저자인 요한이라고 이해한다. 그는 분명히 12제자 중에 하나였고, 베드로와 특별한 관계가 있었으며, 예수님과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신의 이름을 익명으로 한 것은 보다 객관적으로 모델이 되는 제자 하나를 소개하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사랑하는 제자”는 예수님의 품에 있었다. 요한복음에는 ‘품’이란 단어가 한 번 더 나온다. 1장 18절에서 독생자 예수님이 하나님의 품에 계셨다. 요한복음에서 ‘품’은 아주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단어이다. 그곳에서 예수님과 친밀한 교제가 이루어지며, 예수님의 참 뜻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에 품에 안겨 있는 것은 아들이 아버지 품에 안겨 있던 것을 연상케한다. 참 제자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22 예수님의 품에 있던 “사랑하는 제자”의 위치를 중심으로 당시 최후의 만찬을 하던 식탁을 재구성해 볼 수 있다.23 로마의 만찬에서 식탁은 말굽형으로 배치되었다. 예수님을 포함하여 13명이 만찬을 먹었기 때문에 헤드 테이블이 중앙에 그리고 그 좌우에 식탁이 각각 있었을 것이다. 좌우 테이블에 각각 5명씩의 제자들이 앉았고, 중앙 테이블에는 세 명이 앉았을 가능성이 크다. 헤드 테이블의 가운데 자리에 주빈인 예수님이 앉으셨고, “사랑하는 제자”는 예수님의 오른쪽에 앉았었다. 그래서 그는 쉽게 예수님의 품에 안길 수 있었다.
주빈을 제외한 가장 중요한 자리는 주빈의 왼쪽 자리다. 놀랍게도 이 자리에 가룟 유다가 앉아 있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한 조각을 찍어 당신의 왼쪽에 있는 유다에게 손을 뻗어 쉽게 그에게 주실 수 있었다. 당시의 식사법은 왼손을 머리에 기대고 비스듬이 누워 오른 손으로 음식을 먹었다.
베드로의 위치는 중앙 테이블의 오른쪽 테이블 끝이었던 것 같다. 그는 “사랑하는 제자”와 멀리 있었기 때문에 머리짓으로 의사를 전달하였다(24절). 베드로의 위치는 그가 열두 제자 중 가장 늦게 세족을 한 것과 잘 조화를 이룬다.24
요한복음 13장에는 예수님의 행동이 둘 기록되어 있다. 하나는 발을 씻기시는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한 조각의 떡을 찍어(포도주에 적셔) 주심이다. 둘 다 예수님의 사랑이 담겨있는 행동으로 봄이 자연스럽다.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제공한 포도주에 적신 한 조각의 떡은 예수께서 흘리실 피와 찢기실 살을 상징한다. 예수님은 유다에게도 다른 제자들과 같은 “끝까지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제공하였다. 그러나, 유다는 결국 예수님이 주신 “한 조각”을 받았지만 먹지는 않았다. 그는 받아들고 나갔다(30절). 30절의 밤은 유다의 영적 상태를 상징하기도 한다.25 요한복음에서 사탄에 대한 언급은 이곳에만 나온다. 어둠은 이해하지 못한 상태를 상징한다(9:4; 11:10; 3:19).
우리가 스스로 어둠을 택하려 할 때도 주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피와 살을 제공하신다. 예수님이 주시는 “끝까지의 사랑”은 받아 누려야 한다. 그러나 유다는 이를 받아들고 어둠 속으로 내 달렸다. 배반의 길로!
사랑의 새 계명(13:31~38)
학자들은 고별설교가 13장 31절에서 시작된다고 본다. 잠시 따라올 수 없는 길이 있으며, 따라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야 하는 기간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기간동안 제자들이 힘써 행할 것이 사랑이라고 한다. 이런 사랑을 통해 제자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음을 세상에 증명할 수 있다고 가르쳐 주신다.
사랑에 관한 계명은 사실 예수님이 이곳에서 처음으로 주신 것이 아니다(참고 요일 2:7~8). 요한복음이 제안하는 사랑이 산상설교에서 가르쳐주는 사랑에 비해 저급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26 산상설교에서 보여주는 박애적인 면, 즉 원수에 대한 사랑이 요한복음에는 없고, 오히려 믿는 제자들끼리의 공동체 안에서 사랑으로 축소되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요한복음은 사랑의 범위가 아니라 사랑의 근원과 본질을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을 알면, 요한복음이 제시하는 사랑이 산상설교의 사랑보다 저급하다고 폄하할 수 없다. 요한복음은 제자의 사랑이 예수님과의 연합을 통해 우러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모든 사랑의 모델은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의 사랑이다. 제자들의 사랑은 이런 아버지와 아들 예수님의 사랑을 본삼아, 이를 투영하는 것이어야 한다. 예수님의 사랑은 제자들의 사랑에 영향을 줄 뿐 아니라, 제자들을 바로 사랑하도록 만든다. 사랑은 제자들에게 반드시 나타나야 하는 표지이다.
베드로의 부인(否認) 예고에 담긴 예수님의 사랑(13:36~38)
예수님의 죽으심과 사랑에 대해 무지한 것은 유다만이 아니었다. 베드로도 한가지였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드릴 수 있다고 큰소리 쳤지만, 막상 그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신 후에 베드로 또한 약속한 길을 갈 수 있었다(요 21:19). 제자들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제자로서의 길을 갈 수 있음을 배워야 한다. 이곳에서 예고된 베드로의 실패 이야기는 요한복음 후반부를 엮어가는 중요한 맥이 된다. 베드로의 실패는 요한복음이 기록한 수난이야기 중에 특별한 위치에 있다. 마가복음이 기록한 가야바의 법정은 거짓 증거자의 발호가 초점이며, 베드로의 부인(否認)은 딸린 스토리 정도지만, 요한복음은 가야바 법정을 기록하면서, 오직 베드로의 실패만을 이야기한다.27
그의 실패는 결국 마지막 장의 디베랴 바닷가에서의 회복(21:15~19)을 통해 반전(反轉)된다. 베드로는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예수님의 사랑에로의 초청에 응한 것이다. 베드로의 실패이야기는 “끝까지의 사랑”의 중요한 정점을 이룬다.28
설교를 위한 제안
요한복음 13장 전체를 한 번에 설교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만약 한 번에 전체를 설교하려면, 세족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 같다. 세족의 의미를 예수님의 죽으심, 겸손한 행위, 그리고 새 계명으로서의 사랑으로 발전시키면 되는데, 이렇게 하면 자칫 교리적 설교가 될 수 있다. 다른 방법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끝까지의 사랑”을 소개하면서 요한복음 13장을 폭넓게 강해해도 된다. 구체적 내용으로(1) 겸손한 행위로 나타난 섬김,(2) 유다에 대한 연민,(3) 베드로에 대한 사랑이야기 등으로 채워가면 된다.
요한복음 13장은 여러 주제를 설교할 때, 그 주제를 드러내기 위하여 다양하게 사용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쉬지 않고 선을 행할 것을 권면할 때, 수건을 허리에 두른 예수님의 모습을 인용할 수 있고, 예수님이 직접 가르쳐 주신 복을 설교하면서 산상수훈에서의 8복, 사도행전 20장 35절과 함께 겸손히 섬기는 자의 복으로 요한복음 13장 17절을 강해하면 적절할 듯 싶다. 또한 예수님이 사랑하는 제자의 모습을 설교할 때, ‘예수님의 품’에 있던 제자의 모습은 의미하는 바가 클 것이다.
주(註)
1. NIV 영어번역은 ‘끝까지’를 부사로 보고, 의역하여, ‘full extent’(최대로 늘린)이라고 했는데, 예수님의 ‘온전한 자기 드림’(total self donation)을 보여준다. “끝까지”를 시간의 개념으로 보아 죽으시는 순간까지 사랑하셨다고 이해해도 내용에는 별 차이가 없다.
2. 요한복음의 예수님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틀 중에 하나가 ‘믿음(belief)’과 ‘불신(unbelief)’인데, 이 둘의 구별은 예수님에 대해 바르게 알고 있는가(knowledge/ understanding) 여부로 결정된다. ‘믿음’과 ‘불신’의 대립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중심으로 요한복음을 이해한 대표적인 주석가는 비교적 오래된 Merill C. Tenny(Tenny, Merill C. & Richard N. Longenecker.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John and Acts. vol.9, Grand Rapids: Zondervan, 1981)와 최근에 권위자로 떠오른 Alan Culpepper(The Gospel and Letters of John. Nashville: Abingdon Press, 1998)이다. 요한복음 13장은 예수님이 앞으로 전개될 모든 일에 대한 지식이 있음을 보여 준다(13:1~3). ‘믿음’은 이런 예수님에 대한 바른 깨달음에 근거하며, ‘불신’을 바른 지식이 없기 때문에 생긴다. 제자로서의 삶은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하는 것이다(요 13:35; 비교 13:12 “너희가 아느냐?”).
3. 요한복음 전반부에서는 아직 때가 이르지 않았음을 반복적으로 말하다가 후반부에 오면서 때가 이름을 선언한다.
4. 비록 사탄이 등장하지만, 예수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전지한 분이기 때문에 위협 거리가 되지 못한다.
5. Brown, 주석, 556쪽; R. T. France, “Chronological Aspects of ‘Gospel Harmony’,” VE 16(1986) 50~54; Culpepper, 201쪽.
6. Brown, 주석, 556쪽.
7. Carson, 주석. 457쪽
8. Carson, 주석, 589, 604쪽.
9. A. Jaubert, The Date of the Last Supper(Stein Island, N.Y.:Alba, 1965); E. Ruckstuhl, Chronology of the Last Supper(New York: Desclee, 1965); Bruce, 주석, 279쪽.
10. 고전적인 주장은 터툴리안, 시프리안, 아프라테스, 알렉산드리아의 씨릴의 주장에서 나오며, 최근에는 O. Cullmann이 발전시켰다. 자세한 내용은 Brown의 주석 567쪽을 참고하라.
11. Brown, 562쪽; Bruce, 283쪽; Carson, 466쪽.
12. 예수님은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한 사람들과 항상 함께 하신다. 이것이 예수님과 상관있는 영혼이 누리는 축복이다(참고, 눅 23:43).
13. 한규삼, 「요한복음 다시보기」(아가페 출판사, 2002) 148쪽.
14. 본문비평은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 낯선 것임으로 상술을 피하기로 한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발 밖에”가 원문에 없을 것으로 추정한다(Brown, 566~67; Carson, 464~65).
15. 참고 “너희는 내가 일러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요 15:3). 요한복음은 제자를 씻는 것으로 말씀과 세족을 통해 상징적으로 표현되는 겸손한 성품/행위임을 밝힌다.
16. 마카비 2서 6:27~28, 31; 마카비 4서 17:22~25; 시락 44:16.
17. Culpepper, 206쪽. 요 13:14~16과 눅 22:47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를 근거로 요 13:17은 유월절 만찬(혹은 최후의 만찬)에서 말씀하신 눅 22:19과 같은 내용을 포함한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는 투토 포이에이테(눅 22:19)인데 요한복음 13:17의 “이것을 … 행하라”도 “타우타 포이에이테”이다. “타우타”는 “투토”의 복수형이다.
18. 이런 경향은 요한복음 6:70~71에서부터 시작된다.
19. Carson, 주석, 474쪽.
20. 이 표현은 요한복음 후반부에만 나온다(19:26~27; 20:2~9; 21:1, 20~25). 영광의 책은 제자들을 위한 책이기 때문이다.
21. 한규삼, 17~22쪽.
22. 이 시도는 오래전 F. Prat에 의해 제안되었는데. 최근 연구가 그의 제안을 뒷받침해 준다(RSR 15 [1925] 512~22).
23. 베드로가 가장 늦게 세족을 하였다고 주장한 초기의 학자는 오리겐이었다(Brown, 주석, 552쪽).
24. 누가복음 22:53과 연결하여 보라. “그러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로다 하시더라.” 요한복음에서 사탄에 대한 언급은 이곳에만 나온다. 어둠은 이해하지 못한 상태를 상징한다(9:4; 11:10; 3:19).
25. J. C. Fenton, The Gospel According to John(Clarendon, 1970) 27.
26. 한규삼, 177~80쪽.
27. 한규삼, 217쪽.
요한복음 13장 주석
요한복음 제 13장
====13:1-3
<마가의 다락방>
유월절 전에 예수께서 자기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
고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 하시니라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니 저녁 먹는 중 예수는 아버지
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
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 – 이 귀절들에는 예수님의 사랑의 동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
는, 세가지 동기로써 제자들에게 사랑의 일, 곧, 발 씻는 일을 행하셨다. (1) “아버지
께로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아시고”(1 절), 이 일을 행하셨음. 이것은 제자들을 떠나
신다는 그의 인성(人性)편의 무거운 느낌에서 행하신 것. (2) “마귀가…유다의 마음
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은 줄 아시고(2 절), 이 일을 행하셨음. 이것은 가장 마
음 아픈 일이었을 것이다. 선생으로서 제자에게 팔리운다는 것은, 인간으로서는 견딜
수 없는 장면이고, 낙심될 일이다. 그런데, 그가 계속하여 제자들을 극진히 사랑하심
은 하나님의 성품이다. 그는, 가장 검은 미움의 활동이 일어난 곳에 가장 부드러운 사
랑으로 대하셨다. (3)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자기 손에 맡기신 것과 또 자기가 하나
님께로부터 오셨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실 것을 아시고”(3 절), 이 일을 행하셨음. 이
것은, 그가 자기의 영광 받으실 사실을 아셨다는 뜻이다(마 28:18). 그는 저렇게 영광
받으실 것을 내다보시면서, 사람이 천국에서 진정으로 위대해지는 비결을 제자들에게
보여 주셨다. 그것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것으로 나타난 그의 겸손이다.
“저녁 먹는 중.” 이것이 유월절 만찬을 가리킨 것일까? 혹은 다른 때의 저녁 식사
를 의미한 것일까?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유월절 하루 전(니산월 13 일 저녁)의 식사
를 가리킨 것이라고 한다(Meyer). 그러나 21-30절의 내용을 보니, 유다가 예수님을 잡
아 줄 자로 지적된 저녁인 것이 드러난다. 그 저녁은 유월절 만찬 저녁이다. 공관 복
음은 그렇게 말한다(마 26:17-25; 막 14:17-21).
=====13:4,5
저녁 잡수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시고 이
에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르신 수건으로 씻기기를 시작하여
– 유대인의 풍속에는 보통 식사 전에 손님의 발을 씻어 주는 법인데, 이 때에는 식사
도중에 그 일을 행하셨다. 그것은, 아마도 그 때에 이 일을 할 종이 없어서 그렇게 된
듯하다.
“겉옷”은 저고리를 말함이 아니고 그 위에 입는 옷을 가리킨다. “수건을 허리에 두
르시고” 이러한 차림은 종이 취하는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종의 자리로 내려가셔서
일할 준비를 하신 것이다. 이것은, 그의 겸손의 극치(極致)이다. 그가 최종의 행동 교
훈으로 식사 도중에 이런 일을 하신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그의 별세 후에 제
자들이 언제나 지켜야 할 겸덕을 고조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은, 저렇게
계급을 초월하시고 영광의 주님을 사랑의 발 씻는 종으로 삼으셨다.
고데이(F. Godet)는 추측하기를, 이 발 씻는 일이 아마도 제자들의 서로 다툰 사건
(눅 22:24-27)을 동기로 하고 있은 듯하다고 하였다.
예수님의 이와 같은 봉사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1)이것으로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시고 서로 낮아지기를 힘써야 한다고 설교하신 셈이다(12-16). 실행으로 본을 보
이는 설교자는 그 설교로써 사람들의 심령을 아주 점령해 버린다. (2)이것은, 그가 그
의 백성을 사랑하셔서 속죄하시는 중보(中保)의 역사를 비유로 가르치시는 지극히 크
신 사랑의 행동이시다. 그가 피를 흘려서 그의 백성의 죄를 씻으신 일도 지극한 사랑
이면서 역시 지극한 겸손을 나타낸다. 유명한 변증 학자 스킬더(Schilder)는, 주님께
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곧, “제자들의 발을 씻
기시기 위하여 물을 휘저으신 주님의 손은 죄에 속한 자에게 이해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그의 못 박히신 손에서 흐르는 피가 죄에 속한 자에게 이해되지 못함과 같다”라
고 하였으며, 그는 또 말하기를, “주님께서 그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뜻은, 그의 몇
제자들에게만 그의 친절과 겸손의 모본을 보이시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이 행위로
써 온 세계를 찾으시는 그의 속죄의 역사를 비유하신 것이다”라고 하였다.
=====13:6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니 가로되 주여 주께서 내 발을 씻기시나이까 – 이것은 베
드로가 너무 황송한 중에 한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말은, 그가 주님의 명령대로 순종하
여 고기를 많이 잡은 때에도 하였으니, 그 때에는 “주여 나를 떠나소서”라고 하였다
(눅 5:8). 베드로는, 예수님의 하시는 일을 이렇게 인간적으로만 취급하면서 그것을
황송하게 여겨 사양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가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수님의 수난하
실 일에 대하여 들었을 때에도 역시 “그리 마옵소서”라고 하였다(마 16:22). 저렇게
베드로는, 예수님의 구속 사업 관계의 행위에 대하여 이해하지 못하고 인간적인 해석
으로 잘못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겸손과 희생에 대하여, 인간으로서 황송(惶
悚)하게 생각함은 좋으나 그 행하심이 구원의 행위인 것인 만큼, 그것을 감격하여 받
아야 된다. 그것을 받지 않겠다고 사랑하는 것은, 병자가 의사의 진료를 받지 않겠다
는 것과 같은 일이다.
=====13:7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나의 하는 것을 네가 이제는 알지 못하나 이 후에는
알리라 – 이것은, 그 현재에 베드로가 죄로 인하여 어두워서 깨닫지 못하나, 후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깨달을 날이 있을 것을 가리킨다. 주님께서 발을 씻기심은, 그의 속
죄의 고난으로 신자들의 죄 씻을 것을 비유한 것이다(11절). 베드로는, 예수님의 속죄
의 죽음을 본 뒤에야 그의 발 씻기신 뜻을 깨닫게 될 것이었다.
=====13:8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네가 나와 상관이 없느니라 – 베드로가 발 씻기시는 예
수님의 봉사를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영적 의미로 생각해 볼 때에 예수님의 구원 은
총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그가 예수님의 받으실 영광에 참여하지
못하는 것이 되고 만다.
=====13:9
시몬 베드로가 가로되 주여 내 발 뿐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겨 주옵소서 – 베드로
는 여기서 새로운 깨달음을 가지고 말한다. 그러나 그는 여기서도 또 실수함을 면치
못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발을 씻기심이, 구속의 사랑에 대하여는 상징하는 정도 뿐
인 사실을 베드로는 몰랐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이 죄를 깨끗하게 하시는 일의 실제
인 줄 오해하고 욕심을 부렸다.
=====13:10
이미 목욕하는 자는 발 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 예수님의
제자들은, 속죄를 받은 자들이라고 간주된 때 벌써 온 몸이 깨끗해진 셈이다(15:3).
그러나 그들도 매일 세상과 접촉하여 허물과 죄로 더러워진 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
므로 그들은, 매일 그리스도의 공로와 성령에 의하여 사죄를 받아야 할 것이었다. 그
것은 발 씻는 일로 비유된 것이다.
=====13:11
이는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심이라 그러므로 다는 깨끗지 아니하다 하시니라
– 이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 단순히 겸손의 덕을 나타
내신 것만이 아니고, 그의 백성을 속죄하여 깨끗하게 해 주실 것을 상징하기도 한다.
예수님을 파는 자는 천하에 가장 더러운 죄를 범하는 자이다. 예수님께서 만민을 구속
하여 깨끗하게 하는 일을 하시지만, 그를 파는 유다는 깨끗지 못한 자들 중 하나이다.
=====13:12-15
이 귀절들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 겸손한 봉사의 표본인 사실을
보여 준다. 이 일로써 예수님이 나타내신 것은, 위 사람으로서 아랫 사람을 겸손히 봉
사하신 고상한 정신이다. 아랫 사람으로서 윗 사람에게 대하여 겸손하기는 쉬우나, 윗
사람으로 아랫 사람에게 대하여 그렇게 하기는 어렵다.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이 말씀에 기준하여, 톨레도(Toledo)회
의에서 발 씻는 것을 하나의 교회 의식으로 세웠다(694 A.D.). 그러나 종교 개혁자들
이 그것을 폐지하였다. 예수님께서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라”고 부탁하신 것은, 다만
제자들더러 서로 겸손하게 봉사하라는 것 뿐이었다. “너희가 이것을 알고 행하면 복이
있으리라.” 이것은, 예수님을 본받아 자진하여 형제를 겸손히 봉사하는 자가 하나님
앞에 크게 간주될 것을 가리킨다(마 18:4).
=====13:18
이 귀절부터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일의 상징적 의미, 곧, 구속에
관하여 말한다. 예수님께서 구속 사업을 이루시지만, 그 은혜에 참여할 자들은 오직
택함을 받은 자들이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다 가리
켜 말한 것이 아니라”고 하셨다. 곧, 그의 제자들이 모두 다 “복이 있을”것(17절)이
아니라, 오직 택함을 받은 자들에게만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셨다(18절).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 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니라 – 이
것은, 매우 친근하던 자에게 배신을 당하고 큰 손해를 본 다윗의 경험을 들어 말씀하
심이다(시 41:9).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던 다윗의 당한 일은, 그리스도께서 당하실 일
의 예표였던 것이다.
=====13:19
지금부터 일이 이루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이름은 일이 이를 때에 내가 그 인줄 너
희로 믿게 하려 함이로라 – 예언이란 것은, 언제나 우리의 신앙을 강화하기 위하여 주
어진다. 그것이 성취될 때에, (1) 그 예언을 주신 이의 진실성과 권위를 믿게 되며,
(2) 그 성취된 사건 자체를 믿게 되며, (3) 그 예언 성취가 지향한 장래 행복의 활실
성도 믿어진다.
“내가 그 인줄”(* )이란 말은, “나 곧 나만 좆재자요 보내심을
받은 자요 메시야라”는 뜻이다(Grosheide).
====13: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의 보낸 자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영접하
는 것이요 나를 영접하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하는 것이니라 – 이 말씀의 목적
한 바는 이렇다. 곧, 비록 유다와 같은 배신자가 있다 할지라도 다른 사도들의 권위는
손상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보낸자”. 곧,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사도들을 영접하
는 자는 결국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과 같다. 그 만큼 사도들의 권위는 높은 것이다.
======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에 민망하여 증거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
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 예수님께서 그의 심령에
민망하시게 된 것은,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특별히 생각되는 것은,
(1) 그의 제자가 그를 팔아 먹는 일이 너무도 그에게는 고통이 된다는 것과, (2) 그런
일에 대하여 이제 공적으로 지적하여 말하기가 역시 괴로운 사실이라는 것이다. 그러
나 그는, 이제 이 일을 지적하여 말씀하시지 않으면 안될 단계였다. 그것은 너무도 확
실한 일이기 때문에, 그는 엄격한 법정 선언과 같이 “증거하여” 말씀하셨다. 여기 “증
거”란 말이 법정 용어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는 것이, 일반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13:22
제자들이 서로 보며 뉘게 대하여 말씀하시는지 의심하더라 – 이것은, 제자들이(유
다를 제외하고는)강퍅하지 않은 증표이다.
=====13:23
“그의 사랑하시는 자”는 사도 요한일 것이다.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 –
이것은, 유대인들의 식사할 때 취하는 자세를 말함이다. 요한은 예수님에게 가장 가까
이 있었기 때문에 저런 위치에 놓였을 것이다. 그 때 풍속은, 사람들이 식탁에 앉지
않고 왼 팔에 의지하여 옆으로 누워서 먹었다고 한다(Westcott).
=====13:24,25
시몬 베드로가 머릿짓을 하여 말하되 말씀하신 자가 누구인지 말하라 한대 그가 예
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말하되 주여 누구오니이까 – 윗절에 말한바, “그의 사랑
하시는 자”는 사도 요한을 가리킨 것인데, 이제 베드로가 그더러 주님을 팔 자가 누구
인지 알려 달라는 것이다. 그것을 보면, 사도 요한은 누구보다도 예수님의 생각을 알
수 있게 되는 측근자였던 것이 확실하다.
“예수의 가슴에 그대로 의지하여.” 이것은, 유대인들이 음식 먹을 때에 원형으로
팔꿈치를 의지해서 서로끼리 가슴에 기대다시피 연접하여 누워서 먹는 풍속이 있었음
을 말한다.
=====13:26,27
한 조각을 찍으셔다가…유다를 주시니 – 그 당시에 연회 주인이 떡 조각을 찍어서
손님에게 주는 것은 친절한 대접이었다고 한다. 예수님께서 취하신 이 행동은 가룟 유
다의 회개를 독촉하신 사랑이다.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간지라 – 사단이 유다의 마음에 들어간 이유는, 그가 끝까지
회기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눅 22:3-6; 요 13:2 참조
=====13:28,29
이 부분 말씀을 보면, 제자들이 유다의 행할 악의 내용을 자세히 알지 못하였다.
====13:30
유다가 그 조각을 받고 곧 나가니 밤이러라 – 유다는 주님을 팔 자로 지적된 때에,
회기하지 않고 그냥 그 악한 계획을 실행하려고 그 좌석에서 떠나 나갔다. “때가 밤이
러라”고 한 것은, 영적 의미도 가진다. 곧, 회개하지 않는 그의 마음도 밤과 같이 캄
캄하다는 의미인 동시에, 그의 앞길도 영원히 캄캄할 뿐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13:31
지금 인자가 영광을얻었고 여기서 “인자”란 말(*
)은, 메시야를 가리킨다. “영광을 얻었다”는 말씀은, 그의 부활 승천을 의미한다는 학
자들이 있다. 그러나 저가(유다가)나간 후에, 곧 이어서 예수님의 이 말씀이 있는 것
을 보아서, 이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을 가리킨다. 유다가 나간 것은, 예수님에게 고난
이 닥칠 것을 알게 한 사건이다. 그 뿐 아니라, 다음 절에, “영광을 주시리니”(*
)라고 미래사(未來詞)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신 후의 일(부활, 승천)을 의미한 것을 보
아서도, 이 귀절의 “영광을 얻었고”란 과거사는 그리스도의 죽으실 고난을 가리킨다.
예수님은 그의 받으실 고난을 영광으로 보셨다.
하나님도 인자를 인하여 영광을 얻으셨도다 – “인자를 인하여”란 말은 “인자 안에
서”란 뜻이다. 하나님 아버지는 아들과 일체이심으로, 아들이 영광을 얻으심에 따라서
그 자신도 영광을 얻으신다.
=====13:32
하나님도 자기로 인하여 저에게 영광을 주시리니 – 여기 “자기로 인하여”란 말(*
)은, 하나님 계신 곳을 가리킨다. 17:5에서는, 이 뜻이 “아버지와 함께”(*
)란 말로 표현되었다. 그러면, 이 귀절의 뜻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부활 층천케
하셔서 자기의 계신 곳에 함께 계시도록 하심을 가리킨다(6:62, 17:5, 20:17; 빌
2:9-11).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영광스러운 곳에 가시게 되므로 그 제자들과는 당분간
나누이게 된다. 다음의 33절 말씀이 그 뜻이다.
=====13:33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
도 이르노라 – 이 말씀이 윗절(32 절)과 무슨 연락을 가지는가? 그 연락은 이렇다.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에게 영광을 주신 결과(32절 하반)로 그는 아버지의
계신 곳으로 가시게 된다. 그의 제자들은 당분간 그와 함께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36절 참조.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
로 사랑하라 – 여기 “새 계명”이란 말에 대하여 우리가 몇 가지 생각할 것이 있다.
(1) “새 계명”이란 명칭의 이유, 창조 질서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천하만민을 한
혈맥으로 지으셨다고 하였는데(행 17:26),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남들을 자기 자신
과 같이 사랑해야 될 근거를 성립시켰다. 그러므로 구약에도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
과 같이 하라”는 계명이 있다(레 19:18). 구약의 계명도 사랑 중심의 것이다(롬
13:8-10). 그러나 예수님이 주신 새 계명은 독특한 동기들을 제공한다. 종말관적
동기. 그것은, “사랑하라”는 계명이면서도 구약의 예언적인 것이 성취된 종류이다. 그
것이야말로 종말관적인 것이다(요일 2:8). 예숯님의 보혈로 이루신 속죄를 믿는 자들
은, 그가 우리를 사랑하심 같이(34절 하반), 다른 신자들을 위하여 희생하며, 필요하
면 그들을 위하여 죽을 처지에 있다. 영원한 기업의 동기. 같은 혈맥에 속한 자들
중에서(행 17:26)도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마침내 영원히 나
누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하여 구원 받은 형제들은 영원히 나누이지 않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 한 자리에서 영원히 함께 살게 된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서로끼리
위하여 희생할 처지에 있다.
(2) 새 계명을 지키는 방법. 그것은 물론 위에 관설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
리를 사랑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34절 하반에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우리
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 그는 우리를 위하여 희생하시는 것으로써 사랑을 보여 주셨
다. 그것이 바로 13장의 제목이 되어 있으니, 곧바로 그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사실
이다. 그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이 지극한 사랑이라고, 1절은 말하고 있다. 그가
그들의 발을 씻기신 것은 겸손이지만(겸손도 사랑임-고전 13:4), 그가 그들의 죄를 씻
기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것을 비유하기도 한다(10-11). 그는,
희생의 정신으로 세상 사람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대속의 희
생은 될 수 없으나, 남들의 짐을 자신이 걸머지게 되는 경우는 있을 수 있다. 그것은
큰 사랑이다(갈 6:2). 우리가 이 진리를 이론으로 배유면서도 실제로 남들을 위해 희
생할 줄은 모른다. 우리가 남들에게 대하여 이렇게 무관심하게 되는 원인이 무엇인가?
내가 계명을 지켜야만 그리스도의 사랑 속에 나 자신이 머물게 됨을 모르기 때문
임. 요 15:10에 말하기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안에 거하리라”고 하였
다. 내가 남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일을 해 보지 않기 때문임. 자식을 기르노라고
온갖 희생을 한 어머니는, 그 기른 자식을 잊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그 자식을 위하여
희생한다. 그러나 어머니를 위하여 희생해 본 일이 없는 그 자식은, 어머니를 쉽게 잊
어 버린다. 그러므로 내가 남을 사랑하려면 먼저 그를 위한 희생으로 시작해야 된다.
천국 운동의 필요성을 뜨겁게 느끼지 못한 까닭임. 신자들이 이 세상에 있는 것은
마치, 양 몇 마리가 많은 이리들 가운데 있음과 같고, 몇 백만 군대에게 포위된 것과
도 같다. 이 세상엔 불신의 세력이 얼마나 강한가? 우리는 그 세력을 복음으로 이겨야
되지 않겠는가? 우리는 서로 시기하거나 험담하지 말고 서로 아끼고 도와 주어야 된
다. 신자가 영원한 나라를 기억하지 못한 까닥. 그리스도께서도 그 백성을 그렇게
사랑하시게 된 동기가 그의 가실 영광의 나라를 생각하심에 있었다(1,3). 32-34절의
문맥도 이 내용을 보여준다. 곧, 그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영광(내세에 들어가심)을
받으시게 될 것을 염두에 두시고(32 절) 이 새 계명을 주셨다. 내세에 대한 확신을 가
지는 자는, 이 세상의 것은 그 무엇이든지 초개와 같이 생각하고 희생한다. 한 번은,
구세군 사관들 109명이 아일란드의 황후(Empress of Ireland)란 배를 타고 가다가 파
선되어 다 물에 빠졌다.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함께 빠진 자들의 구명대(救命袋) 없
음을 보고 자기들의 것을 벗어 주면서, “나는 당신보다 잘 죽을 수 있다”라고 하면서
희생하였다. 그들은 내세를 확신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죽기까지 사랑을 베풀었다.
내가 남을 위하여 희생할 의용이 끝까지 생기지 않으면, 한 가지는 해야 됨. 그것은,
내가 남들을 위하여 죽기까지라도 희생할 책임감은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임감
을 가진 자는 그대로 행치 못한 처지에도 극도의 겸손을 소유하게 된다. 하나님은 겸
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약 4:6)
(3) 예수님께서 새 계명을 주신 목적. 예수님의 새 계명은 모세의 10계명을 폐지하
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와 그의 사도들은, 모세의 10계명을 그대로 세워 나가셨다(마
22:37-40; 롬 13:8-10). 그는 진리이시니,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계시된 구약의 계
명들을 폐지하실 리가 없다. 하나님의 계명은 선(善) 자체이다. 이 사실은 다음과 같
이 설명된다. 곧, 선은 피조물이 아니고 하나님의 본질적 의지이다. 종교와 도덕(선과
관련된 것)은, 서로 달라도 서로 독립된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함께, 우리가 하나님
과 관계된 방면이다. 하나님의 의지 자체인 선의 표현 곧, 계명은 어느 시대으 것이든
지 페지되지 않는다. 모세의 율법 중 유대인들만을 위한 제도들은 신약 시대에 폐지되
었다. 그러나 인류 전체를 위한 도덕적인 십계명은 폐지되지 않는다. 예를 들면, 십계
명 중 제 4 계명에, 쉬라고 한 것은 보편적 도덕 요소이다. 쉬라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경건을 위한 것이며, 또한 사람과 집승의 피곤과 쇠약을 막는 자비를
위한 것이다. 그 뿐 아니라, 그 계명은 창조 질서에 속한 선한 제도이다. 곧, 이것
은 모세 이전에 온 인류를 위하여 제정된 것이었다. 다만 안식일을 지키는데 관계된
벌칠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므로 변동되었다. 구약 시대에 안식일을 범한 자를 죽인 것
은, 신정 국가(神政國家)의 시대, 곧, 정교 일체(政敎一體) 새대에 속한 것이었다. 안
식일과 날자 순서도 본질적인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신약 시대에 그 날자가 변한 것
으로 보아서 알 수 있다. 구약 시대에는 제 7일(토요일)이었던 것이, 신약 시대에는 7
일 중 첫날(주일)로 변경되었다. 그것이 그렇게 된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창조(創造)를 기념했으나, 기독자는 그리스도의 부활(復活)을 기념하기 때문이다.
=====13: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여기 이
른바, “서로 사랑”한다는 것은, 인도주의(人道主義)에 속하는 사랑이 아니고 주님을
믿으며 사랑하는 일의 열매이다. 모든 사람들(세상)이 이 사랑을 보고 예수님의 제자
를 실별한다는 것은, 두 가지 내용을 포함한 말씀이다. 이것은, (1) 예수님의 제자된
표가 사랑이라는 말과 같고, (2) 또한 이 사랑으로 말미암아 불신자들을 주님께로 인
도하게 된다는 뜻도 있다. 17:21-23 참조
=====13:36-38
이 부분의 말씀은, 베드로의 결심과 예수님의 예언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가신다”는 것(33 절), 그가 죽어서 하나님 계신 하늘 나라에 가실 것을 가리킨 것이
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을 오해하고 질문하기를, “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라고 하
였다(36 절). 그리고 그는, 예수님의 가시는 곳에 목숨을 버리기까지 따르겠다고 맹세
하였다. 그것은, 진리대로 움직인 신앙의 용기가 아니고 하나의 유적인 용기였다. 예
수님은, 베드로의 육적인 용기를 꺾어 겸손하게 하시려고 예언의 말씀으로 경고하셨으
니, 곧,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다(38 절). 그가 이렇게
경고하신 이유는, 육적 용기는 도리어 주님께 대한 신앙과 충성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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