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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일서 1장 주석 – 요한서신 – 예사랑 성경 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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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라어 요한일서 1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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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1장 주석 서론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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ìíì¼ì ê°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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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ìíì¼ì ê°í´ 성도는 각자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성경을 읽어야 하고, 성경주석과 강해는 오직 참고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다. 제목 차례. 1장: 신자의 삶은 빛의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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¼º°æ/»çÀü/ÁÖ¼® – µÎ¶õ³ë´åÄ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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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¼º°æ/»çÀü/ÁÖ¼® – µÎ¶õ³ë´åÄÄ 1. 서신의 첫 부분인 요한일서 1장 1~4절은 요한복음이 시작하는 구절들을 독자들에게 기억나게 한다. ‘태초’, ‘생명’, ‘말씀’, ‘나타내셨다’, ‘아버지(하나님)와 함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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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일서 1장 강해 설교문] 빛 되신 하나님과의 사귐(요일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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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mmary of article content: Articles about [요한 일서 1장 강해 설교문] 빛 되신 하나님과의 사귐(요일 1:5-7) 요한복음 1장 4-5절에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였고 요한복음 14장 … …
-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요한 일서 1장 강해 설교문] 빛 되신 하나님과의 사귐(요일 1:5-7) 요한복음 1장 4-5절에 보면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였고 요한복음 14장 … 안녕하세요. 오늘도 알쓸잡에 오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요한 일서 1장 강해 설교문 중에서 빛 되신 하나님과의 사귐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제 목: 빛 되신 하나님과의 사귐 성 경: 요일 1:5-7 사도 요..알아두면 쓸데 있는 신학과 설교와 상담 자료를 모아 둔 곳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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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1장 주일설교말씀] 보혈의 능력으로(요일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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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요한일서 1장 주일설교말씀] 보혈의 능력으로(요일 1:1-10)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일서 1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보혈의 능력으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죽음에서 살아난 것은 … 안녕하세요. 오늘은 요한일서 1장 주일설교말씀 중에서 보혈의 능력으로라는 하나님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죽음에서 살아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에서 피를 흘려..베데스다는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께 치료받았던 장소입니다. 치료의 기적이 나타난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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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보혈의 능력으로 (In the power of Blood)!
[설교] 우리와 교제하시는 하나님(요일 1:1-4) – 요한일서 1 John – 로빈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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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Bible
62 요한일서 내용 요약 설교 자료 주석 묵상 가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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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ost searched keywords: Whether you are looking for 62 요한일서 내용 요약 설교 자료 주석 묵상 가이드 요한은 편지 수신인들에게 명백함과 소망, 기쁨을 주기 위해 믿음의 기초가 되는 생명의 말씀으로(1:1) 되돌아가야 한다고 적고 있다. 생명의 말씀은 … 요한은 비록 교회가 갈등을 겪고 있을지라도,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의 빛을 받아들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첫 번째 편지를 썼다. 교회 내에 분열이 생기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것이 중요한..성서유니온,매일성경큐티,말씀묵상,새벽예배설교,새벽예배짧은설교,새벽예배10분설교,구약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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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일서 1장 주석
요한일서 제 1장
=====1:1
태초부터 있는. – 이것은 1:1과 병행된 표현으로 생명의 말씀이 영원 전에 선재하
였음을 암시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하나로 영원전부터 선재하셨으며(요
10:30; 13:3) 복음이 하나님께 속하여 태초부터 존재하였음을 시사한다(Smalley,
Barker).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 헬라어 본문상 본절은 주절이 문장의 맨 끝에 오는 일
종의 도치문으로 네 개의 관계절, 즉 ‘태초부터 있던 것’, ‘우리가 들었던 것’, ‘우리
가 눈으로 보았던 것’, ‘우리가 주목하고 손으로 만진 것’이 ‘생명의 말씀’을 수식하
고 있다. 요한은 이러한 매우 복잡한 표현을 통하여 자신의 격렬한 감정을 적절히 언
어화시키고 있다(Barker). 본문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는 ‘생명의 말씀’은 두 가
지로 해석된다(Stott, Smalley, Westcott, Dodd). 첫째로, 영원하시고 인격적이신 예
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현현을 의미한다. 즉 성육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요 1:1).
둘째로, 복음을 의미한다. ‘생명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조에스'( )는 ‘말씀
의 내용'(행 5:20 ; 빌 2:16)을 의미하기도 하고, ‘생명을 얻게 하는 것'(요 8:12 ;
6:35, 48 : 4:10, 11 ; 계 21:6 ; 22:1)을 가리킨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는 서로 대
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신 예수에 대
한 본질적인 선포이기 때문이다(Smalley, Houlden, Westcott, Marshall).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 ‘들은 바요’
( ,아케코아멘)와 ‘본 바요'( ,헤오라카멘)는 완료시제이다.
이것은 생명의 말씀이 예수 안에서 마침내 실현되었으며 그것을 사도들이 예수께서 설
교하셨을 때 듣고, 예수께서 사역하셨을 때 눈으로 보고 확인하였음을 의미한다(히
1:1, 2). 이 ‘듣고’와 ‘본’은 요한복음에서 ‘믿음’과 연결된다(요 10:27 ; 20:29). 한
편 ‘만진 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여살라페산'( )은 부정과거
시제로 과거 한때 직접 만져서 느낀 것을 가리킨다. 요한은 이러한 관계절, 즉 ‘들은
바요’. ‘본 바요’, ‘만진 바라’는 표현을 통해서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육
신하셔서 역사 속에 현현하신 하나님을 드러내셨으며 그의 사역과 설교를 통해 자신
안에 실현될 복음을 전파하셨음을 강조한다(Stott, Smalley).
=====1:2
본절은 일종의 삽입어구로 앞절의 내용을 확대시킨 것이다. 헬라어 본절 처음에 나
타나는 접소사 ‘카이'( , )는 이어지는 3, 4절을 소개하는 데에 사용
되고 있으며, 본서 내에 자주 나타나는 표현 방법이다(2:27 ; 3:19-24, Smalley).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 ‘생명’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헤 조에'(
)는 1절에서처럼 예수 자신의 존재와 그의 복음을 가리킨다(Westcott). 한편 ‘나타내
신 바’는 예수위 지상 사역을 의미한다. 즉 그의 성육신과 십자가산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킨다. 이는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이 역사적으로 예수 안에서 계
시되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하시지 않는한 인간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Stott, Smalley).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고 너희에게 전하노니. – 본문은 세동사,
즉 ‘보았고’, ‘증거하고’, ‘전하노니’를 통하여 경험의 세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
(CSmalley). ‘보았고’의 헬라어 ‘헤오라카멘'( )은 그 진의와 중요성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살펴본다’는 의미로서 요한의 개인적 경험을 시사하며, ‘증거
하여’는 요한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개인적으로 전할 뿐만 아니라 사도로서 공적으로
선포하였음을 나타낸다(Law, Brooke).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 헬라어 본문에는
바로 앞에 ‘영원한 생명'( ,텐 조엔 텐 아이오니온)
이 자리잡고 있어서 본절 처음에 나타난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와 같은 의미의
반복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보다 발전된 표현으로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부각시키고 동시에 생명의 결정적인 근원으로 ‘아버지와 함께’를
제시한다(Smalley). 이러한 사실로 보아 ‘영원한 생명’은 생명의 길이가 영원함을 뜻
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생명이 갖고 있는 신적인 성격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
다(Barker, Wilder).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가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
니. – 본절에서 요한은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사귐’이다(Stott, Barker, Smalley, Wilder). 요한이 본절에서 ‘사귐’
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행위로써 표현되어야 한다는 자
신의 사상과 연결된다(2:3). ‘사귐’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코이노니아'(
)는 문자적으로 ‘공동 소유’, ‘협동’을 뜻하나 본절에서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그리
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공동자금을 모금한 ‘서로 나눔’의 의미
(롬 15:27 ; 고전 9:23 ; 고후 13:13) 둘 다를 함축한다(Smalley, Barker).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 본문은 1절 전반
부부터 암시되어 온 예수의 이름을 명백하게 소개하고 있다. 요한은 본문에서 그리스
도인의 ‘사귐’의 본질이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임을 분명
히 제시함으로 그 사귐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즉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고 영원한
생명이시며 동시에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이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하는 것임을
시사한다(2:1 ; 3:23 ; 4:2 ; 5:6, 20, Smalley, Wilder).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강조는 수신자들 사이에 퍼져 있었던 예수의 인성이나 신성을 경시하는 이단적인
가르침에 대한 경고를 내포한다(고전 1:9, Smalley, Stott).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다. – 본문은 요 15:11을 반
영한다. ‘기쁨’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
께 하는 사귐의 결과이며 동시에 성령의 열매이다(갈 5:22, Smalley, Stott). 이러한
기쁨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현재에는 하나님과 그리스
도와의 불완전하므로 기쁨 또한 불완전하다. 그러나 불완전한 사귐 가운데 누리는 완
전치 못한 기쁨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궁극적인 사귐과 기쁨의 표징이며 보증이다. 그
러기에 이 기쁨의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헌신적인 사귐 가운데 기쁨을 누
려야만 하는 것이다.
=====1:5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 요한이 염두에 둔 영지주의자들의 그
릇된 주장이 6, 8절에 이어 세번째로 소개된다. 본절에서 요한은 보다 보편적인 진리
를 통해 도전적으로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공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
경을 통해 인간 전체가 범죄하였으며 죄에 신음하고 있음을 선언하셨다( 시 14:3 ; 사
53:6 ; 요 2:24, 25 ; 룸 3:22-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언을 무시하며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는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전체를 부인하는 것이며(렘 31:34 ; 엡
4:32)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다(요 16:8 ; 롬 8:1, Smalley). 한편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는 말은 선포된 말씀과 구약성경의 모든 증거가 이
들 이단적 경향을 가진 자들에게 수용될 여지가 없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죄를 부인하
는 것은 구원과 멀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말씀과 빛 가운데 살 수 없게 하며 하나님께
서 베푸시는 사죄의 은혜를 바랄 수 없게 함을 시사한다(Barker).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
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 ‘소식’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앙겔리아'(
)는 신약 성경에서 본절에만 사용된것으로 2, 3절에서 언급된 사도들이 선포한 생명의
말씀을 가리킨다. 요한은 이 소식에 대해 ‘저에게서 듣고’라고 표현함으로 생명의 말
씀이 역사적인 예수의 생과 가르침 가운데 들려진 복음임을 강조한다(Smalley). 이 소
식의 내용이요 주제는 바로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빛’은 진
리와 의로움울 상징하는 것으로(시 27:1 ; 36:9 ; 119:130 ; 사 5:20 ; 미 7:8b ; 말
4:2). 하나님은 영이시고(요 4:24), 사랑이시라(요일 4:8)는 표현과 함께 하나님의 본
성을 나타낸다. 요한은 자주 ‘빛과 어둠’을 대조시켜서(요 1:4 ; 8:12 ; 9:5 ; 12:35,
36) 하나님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본성에
합당한 생활, 즉 빛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살도록 도덕적인 요청을 하고 있다(6, 8, 10
절 ; 2:4, 6, 9 ; 눅 16:8; 요 8:12 ; 엡 5:8-14, Houlden, Wilder, Barker).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
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 요한은 본절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5절)는 말씀을 전제
로 하여 영지주의자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공격하고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적 사
상에 빠져 물질 세계를 악한것으로 배척함으로써 죄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로
인해 그들의 행위는 방종을 면치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하나님과 영적인 사귐
이 있다는, 하나님의 본성과 선하심에 모순되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헌
주장은 하나님의 본성을 닮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빛 가운데 행해야 함을 강조하는
진리인 ‘하나님은 빛이시라’를 그릇되게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Smalley). 그리스고 안
에서 생명을 부여하며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빛 가운데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
하시는 하나님과의 사귐은 죄된 삶을 상징하는 어둠과 분리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둠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근거하는 하나님과의 사귐에 절대적인 장애가 되기 때
문이다(Smalley, Stott). 한편 ‘행하면’의 헬라어 ‘페리파토멘'( )
은 문자적으로 ‘동행한다’라는 의미로 구약 성경에서 유래된 표현이다(2:6, 11 ; 창
17:1 ; 왕상 2:4 ; 왕하 20:3 ; 요 8:12 ; 요이 1:4). 이것은 ‘말하는 것’과 깊은 연
관성을 가지는바, ‘진리를 말하는 것’은 ‘진리를 행하는 것’의 일부이며, 계속해서 최
상의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함을 내포한다(Barker). 그러기에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할때는 진리 안에서 행함이 뒤따라야 하며 빛 가운데의 삶을 동반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귐과 전혀 관계없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 요한은 계속해서 빛과
어두움위 이미지를 대조하고 있다. 어두움이 결과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차단해 버
리기 때문에 ‘빛 안에 거함’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위한 필수 요건이 된다. 그런데 그
‘빛’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사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시다
(Smalley, Wilder). 요한은 본절에서 하나님이 당신과의 사귐을 가능케 하심으로 이루
어지는 결과에 대해 두 가지로 진술하고 있다.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 하나님이 빛이시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빛 가운데 거하
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사귐은 단순히 그 차원에 머
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진보하여 그리스도인 사이의 사귐을 성취한다. 이것은 그
리스도인 상호간의 사귐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전제로 함을 암시한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피’는 십자가
에서 죽으신 예수위 대속의 사역을 가리킨다. 또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는 단순히
죄를 용서하는 것뿐만 아니라 타락된 성품까지 깨끗하게 하심을 의미한다(Barker,
Stott, Smalley). 이러한 두 가지 결과는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비롯된 것이다
(Smalley).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
요. – 요한이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어두움 가운데 행하면서도 하나님과의 사귐
이 있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이다. ‘죄없다 하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하마르티안
우크 에코멘'( )은 죄가 자신들
에게 지속적인 힘을 가지고 실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부인하는 것을 암시한다(Low,
Brooke, Barker, Smalley). 죄가 부재함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스스로를
기만하며 속이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에게는 진리가 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리이신 예수께서 거할 때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였기 때문이다. 죄인임을
고백하고 자신의 죄에 대해 혐오감을 느껴 거부할때 빛 가운데 거하게 되며 하나님과
사귐이 있게 된다.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우리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
실것이요. – ‘죄’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마르티아스'( )는 복
수로 구체적이고도 상세한 ‘죄들’을 가리키며, ‘자백’은 구체적으로 죄를 깊이 생각하
고 뉘우치며 진실하게 고백함으로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시 32:1-5 ; 잠 28:13,
Stott). 한편 ‘시하시며’의 헬라어 ‘아페'( )는 빛의 탕감이나 ‘허물의 제
거’, ‘책임의 해제’ 등과 같은 의미이며 ‘깨끗하게 하실’로 번역된 헬라어 ‘카다리세’
( )는 죄로 오염된 상태를 정화 시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
한 묘사는 사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이며, 사죄의 권한이 하나님께 있
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해 은혜로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구별되고 빛 가운데 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신다(Stott, Smalley).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 본문은 하나님께서 죄를 자백한 자들의 죄를 용서해 주
시는 근거를 나타낸다. ‘미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토스'(
)는 약속을 잘 지키시는 ‘신설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죄사함을 약속하셨으며(렘
32:34 ; 미 7:19, 20) 그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시는 신설한 분이다(시 89편 ; 롬 3:25
; 고전 10:13; 딤후 2:13 ; 히 10:23 ; 11 : 11). 그러므로 미쁘신 당신의 성품대로
죄를 사하시겠다는 약속을 철저하게 지카셔서 죄를 자백한 자들을 용서하신다. 한편
‘의로우사’로 번역된 헬라어 ‘디카이오스'( )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 혹자는 십자가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tott, Ross). (2) 혹자는 언
약 혹은 약속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ooke). (3) 혹자는 하나님의 본성을 의미한다
고 주장한다(Dodd). (4) 혹자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통치와 지배를 가리킨다고 주장한
다(Bultmann). 이러한 네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로움에 근거하여 고백한 죄인들을 사죄하신다(Barker).
헬라어 요한일서 1장 원어 성경 주석 강해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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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엔 앞 아르케스 호 아케코아멘 호 헤오라카멘 토이스 옾달모이스 헤몬 호 아데아사메다 카이 하이 케이레스 헤몬 엪셀라페산 페리 투 로구 테스 조에스
개역개정,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새번역,1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이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계신 것이요, 우리가 들은 것이요, 우리가 눈으로 본 것이요, 우리가 지켜본 것이요, 우리가 손으로 만져본 것입니다. –
우리말성경,1 이 글은 생명의 말씀에 관한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은 태초부터 있었고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으며 우리가 주목했고 손으로 만져 본 것입니다.
가톨릭성경,1 처음부터 있어 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영어NIV,1 That which was from the beginning, which we have heard, which we have seen with our eyes, which we have looked at and our hands have touched–this we proclaim concerning the Word of life.
영어NASB,1 What was from the beginning, what we have heard, what we have seen with our eyes, what we beheld and our hands handled, concerning the Word of Life–
영어MSG,1 From the very first day, we were there, taking it all in–we heard it with our own ears, saw it with our own eyes, verified it with our own hands.
영어NRSV,1 We declare to you what was from the beginning, what we have heard, what we have seen with our eyes, what we have looked at and touched with our hands, concerning the word of life–
헬라어신약Stephanos,1 ο ην απ αρχης ο ακηκοαμεν ο εωρακαμεν τοις οφθαλμοις ημων ο εθεασαμεθα και αι χειρες ημων εψηλαφησαν περι του λογου της ζωης
라틴어Vulgate,1 quod fuit ab initio quod audivimus quod vidimus oculis nostris quod perspeximus et manus nostrae temptaverunt de verbo vitae
히브리어Modern,1 את אשר היה מראש אשר שמענו ובעינינו ראינו אשר הבטנו ואשר מששו ידינו על דבר החיים׃
성 경: [요일1:1]
주제1: [빛이신 하나님과의 교제]
주제2: [생명의 말씀]
태초부터 있는. – 이것은 1:1과 병행된 표현으로 생명의 말씀이 영원 전에 선재하였음을 암시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하나로 영원전부터 선재하셨으며(요 10:30; 13:3) 복음이 하나님께 속하여 태초부터 존재하였음을 시사한다(Smalley, Barker).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 헬라어 본문상 본절은 주절이 문장의 맨 끝에 오는 일종의 도치문으로 네 개의 관계절, 즉 ‘태초부터 있던 것’, ‘우리가 들었던 것’, ‘우리가 눈으로 보았던 것’, ‘우리가 주목하고 손으로 만진 것’이 ‘생명의 말씀’을 수식하고 있다. 요한은 이러한 매우 복잡한 표현을 통하여 자신의 격렬한 감정을 적절히 언어화시키고 있다(Barker). 본문에서 가장 핵심을 이루고 있는 ‘생명의 말씀’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Stott, Smalley, Westcott, Dodd). 첫째로, 영원하시고 인격적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현현을 의미한다. 즉 성육하신 그리스도를 가리킨다(요 1:1). 둘째로, 복음을 의미한다. ‘생명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조에스'(*)는 ‘말씀의 내용'(행 5:20; 빌 2:16)을 의미하기도 하고, ‘생명을 얻게 하는 것'(요 8:12; 6:35, 48:4:10, 11; 계 21:6; 22:1)을 가리킨다. 이러한 두 가지 의미는 서로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살아 있는 말씀이신 예수에 대한 본질적인 선포이기 때문이다(Smalley, Houlden, Westcott, Marshall).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 ‘들은 바요'(*, 아케코아멘)와 ‘본 바요'(*, 헤오라카멘)는 완료시제이다. 이것은 생명의 말씀이 예수 안에서 마침내 실현되었으며 그것을 사도들이 예수께서 설교하셨을 때 듣고, 예수께서 사역하셨을 때 눈으로 보고 확인하였음을 의미한다(히 1:1,2). 이 ‘듣고’와 ‘본’은 요한복음에서 ‘믿음’과 연결된다(요 10:27; 20:29). 한편 ‘만진 바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여살라페산'(*)은 부정과거 시제로 과거 한때 직접 만져서 느낀 것을 가리킨다. 요한은 이러한 관계절, 즉 ‘들은 바요’. ‘본 바요’, ‘만진 바라’는 표현을 통해서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육신하셔서 역사 속에 현현하신 하나님을 드러내셨으며 그의 사역과 설교를 통해 자신 안에 실현될 복음을 전파하셨음을 강조한다(Stott, Smalley).
카이 헤 조에 에파네로데 카이 헤오라카멘 카이 마르튀루멘 카이 아팡겔로멘 휘민 테 조엔 텐 아이오니온 헤티스 엔 프로스 톤 파테라 카이 에파네로데 헤민
개역개정,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이시니라
새번역,2 이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원한 생명을 여러분에게 증언하고 선포합니다. 이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셨는데,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말성경,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 앞에 나타나신 그 영원한 생명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러분에게 영원한 생명을 증거하고 전파합니다.
가톨릭성경,2 그 생명이 나타나셨습니다. 우리가 그 생명을 보고 증언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그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영어NIV,2 The life appeared; we have seen it and testify to it, and we proclaim to you the eternal life, which was with the Father and has appeared to us.
영어NASB,2 and the life was manifested, and we have seen and bear witness and proclaim to you the eternal life, which was with the Father and was manifested to us–
영어MSG,2 The Word of Life appeared right before our eyes; we saw it happen! And now we’re telling you in most sober prose that what we witnessed was, incredibly, this: The infinite Life of God himself took shape before us.
영어NRSV,2 this life was revealed, and we have seen it and testify to it, and declare to you the eternal life that was with the Father and was revealed to us–
헬라어신약Stephanos,2 και η ζωη εφανερωθη και εωρακαμεν και μαρτυρουμεν και απαγγελλομεν υμιν την ζωην την αιωνιον ητις ην προς τον πατερα και εφανερωθη ημιν
라틴어Vulgate,2 et vita manifestata est et vidimus et testamur et adnuntiamus vobis vitam aeternam quae erat apud Patrem et apparuit nobis
히브리어Modern,2 והחיים נגלו ונרא ומעידים אנחנו ומודיעים לכם את חיי העולם אשר היו עם האב ונגלו לנו׃
성 경: [요일1:2]
주제1: [빛이신 하나님과의 교제]
주제2: [생명의 말씀]
본절은 일종의 삽입어구로 앞절의 내용을 확대시킨 것이다. 헬라어 본절 처음에 나타나는 접소사 ‘카이'(*, 그리고)는 이어지는 3, 4절을 소개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으며, 본서 내에 자주 나타나는 표현 방법이다(2:27; 3:19-24, Smalley).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 ‘생명’으로 번역되는 헬라어 ‘헤 조에'(*)는 1절에서처럼 예수 자신의 존재와 그의 복음을 가리킨다(Westcott). 한편 ‘나타내신 바’는 예수위 지상 사역을 의미한다. 즉 그의 성육신과 십자가산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킨다. 이는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이 역사적으로 예수 안에서 계시되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계시하시지 않는한 인간이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음을 암시하고 있다(Stott, Smalley).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고 너희에게 전하노니. – 본문은 세동사, 즉 ‘보았고’, ‘증거하고’, ‘전하노니’를 통하여 경험의 세 측면을 부각시키고 있다(CSmalley). ‘보았고’의 헬라어 ‘헤오라카멘'(*)은 그 진의와 중요성 정도를 파악하기 위해 ‘살펴본다’는 의미로서 요한의 개인적 경험을 시사하며, ‘증거하여’는 요한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개인적으로 전할 뿐만 아니라 사도로서 공적으로 선포하였음을 나타낸다(Law, Brooke).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 헬라어 본문에는 바로 앞에 ‘영원한 생명'(*, 텐 조엔 텐 아이오니온)이 자리잡고 있어서 본절 처음에 나타난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와 같은 의미의 반복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보다 발전된 표현으로 ‘생명’을 ‘영원한 생명’으로 부각시키고 동시에 생명의 결정적인 근원으로 ‘아버지와 함께’를 제시한다(Smalley). 이러한 사실로 보아 ‘영원한 생명’은 생명의 길이가 영원함을 뜻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그 생명이 갖고 있는 신적인 성격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Barker, Wilder).
호 헤오라카멘 카이 아케코아멘 아팡겔로멘 카이 휘민 히나 카이 휘메이스 코이노니안 에케테 멛 헤몬 카이 헤 코이노니아 데 헤 헤메테라 메타 투 파트로스 카이 메타 투 휘우 아우투 예수 크리스투
개역개정,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새번역,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우리는 여러분도 우리와 서로 사귐을 가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또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입니다.
우리말성경,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파합니다. 이는 여러분과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사귐입니다.
가톨릭성경,3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영어NIV,3 We proclaim to you what we have seen and heard, so that you also may have fellowship with us. And our fellowship is with the Father and with his Son, Jesus Christ.
영어NASB,3 what we have seen and heard we proclaim to you also, that you also may have fellowship with us; and indeed our fellowship is with the Father, and with His Son Jesus Christ.
영어MSG,3 We saw it, we heard it, and now we’re telling you so you can experience it along with us, this experience of communion with the Father and his Son, Jesus Christ.
영어NRSV,3 we declare to you what we have seen and heard so that you also may have fellowship with us; and truly our fellowship is with the Father and with his Son Jesus Christ.
헬라어신약Stephanos,3 ο εωρακαμεν και ακηκοαμεν απαγγελλομεν υμιν ινα και υμεις κοινωνιαν εχητε μεθ ημων και η κοινωνια δε η ημετερα μετα του πατρος και μετα του υιου αυτου ιησου χριστου
라틴어Vulgate,3 quod vidimus et audivimus adnuntiamus et vobis ut et vos societatem habeatis nobiscum et societas nostra sit cum Patre et cum Filio eius Iesu Christo
히브리어Modern,3 את אשר ראינו ושמענו נודיעה לכם למען תתחברו לנו גם אתם והתחברותנו היא עם האב ועם בנו ישוע המשיח׃
성 경: [요일1:3]
주제1: [빛이신 하나님과의 교제]
주제2: [생명의 말씀]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가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 본절에서 요한은 생명의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궁극적인 목적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사귐’이다(Stott, Barker, Smalley, Wilder). 요한이 본절에서 ‘사귐’을 목적으로 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 행위로써 표현되어야 한다는 자신의 사상과 연결된다(2:3). ‘사귐’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코이노니아'(*)는 문자적으로 ‘공동 소유’, ‘협동’을 뜻하나 본절에서는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공동자금을 모금한 ‘서로 나눔’의 의미(롬 15:27; 고전 9:23; 고후 13:13) 둘 다를 함축한다(Smalley, Barker).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 본문은 1절 전반부부터 암시되어 온 예수의 이름을 명백하게 소개하고 있다. 요한은 본문에서 그리스도인의 ‘사귐’의 본질이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것’임을 분명히 제시함으로 그 사귐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즉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고 영원한 생명이시며 동시에 온전히 하나님과 하나이신 ‘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하는 것임을 시사한다(2:1; 3:23; 4:2; 5:6, 20, Smalley, Wilder).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강조는 수신자들 사이에 퍼져 있었던 예수의 인성이나 신성을 경시하는 이단적인 가르침에 대한 경고를 내포한다(고전 1:9, Smalley, Stott).
카이 타우타 그라포멘 헤메이스 히나 헤 카라 헤몬 에 페플레로메네
개역개정,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새번역,4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 ㉠다른 고대 사본들에는 ‘여러분의’
우리말성경,4 우리가 이 글을 쓰는 것은 우리 서로의 기쁨이 가득 차고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톨릭성경,4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영어NIV,4 We write this to make our joy complete.
영어NASB,4 And these things we write, so that our joy may be made complete.
영어MSG,4 Our motive for writing is simply this: We want you to enjoy this, too. Your joy will double our joy!
영어NRSV,4 We are writing these things so that our joy may be complete.
헬라어신약Stephanos,4 και ταυτα γραφομεν υμιν ινα η χαρα ημων η πεπληρωμενη
라틴어Vulgate,4 et haec scribimus vobis ut gaudium nostrum sit plenum
히브리어Modern,4 ואת זאת כתבים אנחנו לכם למען תהיה שמחתכם שלמה׃
성 경: [요일1:4]
주제1: [빛이신 하나님과의 교제]
주제2: [생명의 말씀]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다. – 본문은 요 15:11을 반영한다. ‘기쁨’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귐’, 또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하는 사귐의 결과이며 동시에 성령의 열매이다(갈 5:22, Smalley, Stott). 이러한 기쁨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현재에는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불완전하므로 기쁨 또한 불완전하다. 그러나 불완전한 사귐 가운데 누리는 완전치 못한 기쁨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궁극적인 사귐과 기쁨의 표징이며 보증이다. 그러기에 이 기쁨의 소망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헌신적인 사귐 가운데 기쁨을 누려야만 하는 것이다.
카이 에스틴 하우테 헤 앙겔리아 헨 아케코아멘 앞 아우투 카이 아낭겔로멘 휘민 호티 호 데오스 포스 에스틴 카이 스코티아 엔 아우토 우크 에스틴 우데미아
개역개정,5 우리가 그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는 것이니라
새번역,5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들어서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요,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5 우리가 그리스도에게서 듣고 여러분에게 전하는 소식은 이것입니다. 곧 하나님은 빛이시니 하나님 안에는 어둠이 전혀 없습니다.
가톨릭성경,5 우리가 그분에게서 듣고 이제 여러분에게 전하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하느님은 빛이시며 그분께는 어둠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영어NIV,5 This is the message we have heard from him and declare to you: God is light; in him there is no darkness at all.
영어NASB,5 And this is the message we have heard from Him and announce to you, that God is light, and in Him there is no darkness at all.
영어MSG,5 This, in essence, is the message we heard from Christ and are passing on to you: God is light, pure light; there’s not a trace of darkness in him.
영어NRSV,5 This is the message we have heard from him and proclaim to you, that God is light and in him there is no darkness at all.
헬라어신약Stephanos,5 και αυτη εστιν η επαγγελια ην ακηκοαμεν απ αυτου και αναγγελλομεν υμιν οτι ο θεος φως εστιν και σκοτια εν αυτω ουκ εστιν ουδεμια
라틴어Vulgate,5 et haec est adnuntiatio quam audivimus ab eo et adnuntiamus vobis quoniam Deus lux est et tenebrae in eo non sunt ullae
히브리어Modern,5 וזאת היא השמועה אשר שמענו ממנו ונגד לכם כי האלהים אור הוא וכל חשך אין בו׃
성 경: [요일1:5]
주제1: [빛이신 하나님과의 교제]
주제2: [빛이신 하나님]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 ‘소식’에 해당하는 헬라어 ‘헤 앙겔리아'(*)는 신약 성경에서 본절에만 사용된 것으로 2, 3절에서 언급된 사도들이 선포한 생명의 말씀을 가리킨다. 요한은 이 소식에 대해 ‘저에게서 듣고’라고 표현함으로 생명의 말씀이 역사적인 예수의 생과 가르침 가운데 들려진 복음임을 강조한다(Smalley). 이 소식의 내용이요 주제는 바로 ‘하나님은 빛이시라’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빛’은 진리와 의로움울 상징하는 것으로(시 27:1; 36:9; 119:130; 사 5:20; 미 7:8b; 말 4:2). 하나님은 영이시고(요 4:24), 사랑이시라(요일 4:8)는 표현과 함께 하나님의 본성을 나타낸다. 요한은 자주 ‘빛과 어둠’을 대조시켜서(요 1:4; 8:12; 9:5; 12:35, 36) 하나님을 묘사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안에 거하는 모든 백성들이 하나님의 본성에 합당한 생활, 즉 빛 가운데 행하는 삶을 살도록 도덕적인 요청을 하고 있다(6,8,10절; 2:4,6,9;눅16:8; 요 8:12; 엡 5:8-14, Houlden, Wilder, Barker).
에안 에이포멘 호티 코이노니안 에코멘 멭 아우투 카이 엔 토 스코테이 페리파토멘 프슈도메다 카이 우 포이우멘 텐 알레데이안
개역개정,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새번역,6 우리가 하나님과 사귀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대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요, 진리를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하면서 여전히 어둠 가운데 행한다면 우리는 거짓말하는 것이며 진리를 따라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가톨릭성경,6 만일 우리가 하느님과 친교를 나눈다고 말하면서 어둠 속에서 살아간다면, 우리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입니다.
영어NIV,6 If we claim to have fellowship with him yet walk in the darkness, we lie and do not live by the truth.
영어NASB,6 If we say that we have fellowship with Him and yet walk in the darkness, we lie and do not practice the truth;
영어MSG,6 If we claim that we experience a shared life with him and continue to stumble around in the dark, we’re obviously lying through our teeth–we’re not living what we claim.
영어NRSV,6 If we say that we have fellowship with him while we are walking in darkness, we lie and do not do what is true;
헬라어신약Stephanos,6 εαν ειπωμεν οτι κοινωνιαν εχομεν μετ αυτου και εν τω σκοτει περιπατωμεν ψευδομεθα και ου ποιουμεν την αληθειαν
라틴어Vulgate,6 si dixerimus quoniam societatem habemus cum eo et in tenebris ambulamus mentimur et non facimus veritatem
히브리어Modern,6 אם נאמר כי יש לנו התחברות עמו ונתהלך בחשך הננו כזבים ופעלתנו איננה אמת׃
성 경: [요일1:6]
주제1: [빛이신 하나님과의 교제]
주제2: [빛이신 하나님]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 요한은 본절에서 ‘하나님은 빛이시라'(5절)는 말씀을 전제로 하여 영지주의자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공격하고 있다. 영지주의자들은 이원론적 사상에 빠져 물질 세계를 악한 것으로 배척함으로써 죄로부터의 자유를 강조했다. 그로 인해 그들의 행위는 방종을 면치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하나님과 영적인 사귐이 있다는, 하나님의 본성과 선하심에 모순되는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이들의 이러헌 주장은 하나님의 본성을 닮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빛 가운데 행해야 함을 강조하는 진리인 ‘하나님은 빛이시라’를 그릇되게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Smalley). 그리스고 안에서 생명을 부여하며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빛 가운데 행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여하시는 하나님과의 사귐은 죄된 삶을 상징하는 어둠과 분리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어둠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을 근거하는 하나님과의 사귐에 절대적인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Smalley, Stott). 한편 ‘행하면’의 헬라어 ‘페리파토멘'(*)은 문자적으로 ‘동행한다’라는 의미로 구약 성경에서 유래된 표현이다(2:6, 11; 창 17:1; 왕상 2:4; 왕하 20:3; 요 8:12; 요이 1:4). 이것은 ‘말하는 것’과 깊은 연관성을 가지는바, ‘진리를 말하는 것’은 ‘진리를 행하는 것’의 일부이며, 계속해서 최상의 삶을 영위해 나가야 함을 내포한다(Barker). 그러기에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할때는 진리 안에서 행함이 뒤따라야 하며 빛 가운데의 삶을 동반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사귐과 전혀 관계없는 거짓말에 불과하다.
에안 데 엔 토 포티 페리파토멘 호스 아우토스 에스틴 엔 토 포티 코이노니안 에코멘 멭 알렐론 카이 토 하이마 예수 투 휘우 아우투 카다리제이 헤마스 아포 파세스 하마르티아스
개역개정,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새번역,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과 같이, 우리가 빛 가운데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사귐을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십니다.
우리말성경,7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에게는 서로 사귐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가톨릭성경,7 그러나 그분께서 빛 속에 계신 것처럼 우리도 빛 속에서 살아가면, 우리는 서로 친교를 나누게 되고, 그분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 줍니다.
영어NIV,7 But if we walk in the light, as he is in the light, we have fellowship with one another, and the blood of Jesus, his Son, purifies us from all sin.
영어NASB,7 but if we walk in the light as He Himself is in the light, we have fellowship with one another, and the blood of Jesus His Son cleanses us from all sin.
영어MSG,7 But if we walk in the light, God himself being the light, we also experience a shared life with one another, as the sacrificed blood of Jesus, God’s Son, purges all our sin.
영어NRSV,7 but if we walk in the light as he himself is in the light, we have fellowship with one another, and the blood of Jesus his Son cleanses us from all sin.
헬라어신약Stephanos,7 εαν δε εν τω φωτι περιπατωμεν ως αυτος εστιν εν τω φωτι κοινωνιαν εχομεν μετ αλληλων και το αιμα ιησου χριστου του υιου αυτου καθαριζει ημας απο πασης αμαρτιας
라틴어Vulgate,7 si autem in luce ambulemus sicut et ipse est in luce societatem habemus ad invicem et sanguis Iesu Filii eius mundat nos ab omni peccato
히브리어Modern,7 אך אם באור נלך כאשר הוא באור הנה נתחברנו יחד ודם ישוע המשיח בנו יטהרנו מכל חטא׃
성 경: [요일1:7]
주제1: [빛이신 하나님과의 교제]
주제2: [빛이신 하나님]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 요한은 계속해서 빛과 어두움위 이미지를 대조하고 있다. 어두움이 결과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를 차단해 버리기 때문에 ‘빛 안에 거함’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위한 필수 요건이 된다. 그런데 그 ‘빛’은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 사귐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시다(Smalley, Wilder). 요한은 본절에서 하나님이 당신과의 사귐을 가능케 하심으로 이루어지는 결과에 대해 두 가지로 진술하고 있다.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 하나님이 빛이시므로 그리스도인들이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의미한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사귐은 단순히 그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진보하여 그리스도인 사이의 사귐을 성취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 상호간의 사귐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와의 사귐을 전제로 함을 암시한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피’는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위 대속의 사역을 가리킨다. 또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는 단순히 죄를 용서하는 것뿐만 아니라 타락된 성품까지 깨끗하게 하심을 의미한다(Barker, Stott, Smalley). 이러한 두 가지 결과는 하나님과의 사귐에서 비롯된 것이다(Smalley).
에안 에이포멘 호티 하마르티안 우크 에코멘 헤아우투스 플라노멘 카이 헤 알레데이아 우크 에스틴 엔 헤민
개역개정,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새번역,8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자기를 속이는 것이요, 진리가 우리 속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말성경,8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며 진리가 우리 안에 없습니다.
가톨릭성경,8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 우리 안에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영어NIV,8 If we claim to be without sin, we deceive ourselves and the truth is not in us.
영어NASB,8 If we say that we have no sin, we are deceiving ourselves, and the truth is not in us.
영어MSG,8 If we claim that we’re free of sin, we’re only fooling ourselves. A claim like that is errant nonsense.
영어NRSV,8 If we say that we have no sin, we deceive ourselves, and the truth is not in us.
헬라어신약Stephanos,8 εαν ειπωμεν οτι αμαρτιαν ουκ εχομεν εαυτους πλανωμεν και η αληθεια ουκ εστιν εν ημιν
라틴어Vulgate,8 si dixerimus quoniam peccatum non habemus ipsi nos seducimus et veritas in nobis non est
히브리어Modern,8 אם נאמר כי אין בנו חטא הננו מתעים את נפשתינו והאמת אין בנו׃
성 경: [요일1:8]
주제1: [빛이신 하나님과의 교제]
주제2: [빛이신 하나님]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 요한이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들은 어두움 가운데 행하면서도 하나님과의 사귐이 있다고 주장하는 영지주의자들이다. ‘죄없다 하면’으로 번역된 헬라어 ‘하마르티안우크 에코멘'(*)은 죄가 자신들에게 지속적인 힘을 가지고 실재한다는 사실에 대해 부인하는 것을 암시한다(Low, Brooke, Barker, Smalley). 죄가 부재함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스스로를 기만하며 속이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주장을 하는 자들에게는 진리가 거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리이신 예수께서 거할 때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였기 때문이다. 죄인임을 고백하고 자신의 죄에 대해 혐오감을 느껴 거부할때 빛 가운데 거하게 되며 하나님과 사귐이 있게 된다.
에안 호몰로고멘 타스 하마르티아스 헤몬 피스토스 에스틴 카이 디카이오스 히나 아페 헤민 타스 하마르티아스 카이 카다리세 헤마스 아포 파세스 아디키아스
개역개정,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새번역,9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셔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우리말성경,9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신실하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가톨릭성경,9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그분은 성실하시고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영어NIV,9 If we confess our sins, he is faithful and just and will forgive us our sins and purify us from all unrighteousness.
영어NASB,9 If we confess our sins, He is faithful and righteous to forgive us our sins and to cleanse us from all unrighteousness.
영어MSG,9 On the other hand, if we admit our sins–make a clean breast of them–he won’t let us down; he’ll be true to himself. He’ll forgive our sins and purge us of all wrongdoing.
영어NRSV,9 If we confess our sins, he who is faithful and just will forgive us our sins and cleanse us from all unrighteousness.
헬라어신약Stephanos,9 εαν ομολογωμεν τας αμαρτιας ημων πιστος εστιν και δικαιος ινα αφη ημιν τας αμαρτιας και καθαριση ημας απο πασης αδικιας
라틴어Vulgate,9 si confiteamur peccata nostra fidelis est et iustus ut remittat nobis peccata et emundet nos ab omni iniquitate
히브리어Modern,9 ואם נתודה את חטאתינו נאמן הוא וצדיק לסלח לנו את חטאתינו ולטהרנו מכל עון׃
성 경: [요일1:9]
주제1: [빛이신 하나님과의 교제]
주제2: [빛이신 하나님]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우리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 ‘죄’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마르티아스'(*)는 복수로 구체적이고도 상세한 ‘죄들’을 가리키며, ‘자백’은 구체적으로 죄를 깊이 생각하고 뉘우치며 진실하게 고백함으로 버리는 것을 가리킨다(시 32:1-5; 잠 28:13, Stott). 한편 ‘시하시며’의 헬라어 ‘아페'(*)는 빛의 탕감이나 ‘허물의 제거’, ‘책임의 해제’ 등과 같은 의미이며 ‘깨끗하게 하실’로 번역된 헬라어 ‘카다리세'(*)는 죄로 오염된 상태를 정화 시키는 것을 나타낸다. 이러한 묘사는 사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이며, 사죄의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을 암시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통해 은혜로 죄를 사하여 주심으로 그들로 하여금 구별되고 빛 가운데 사는 삶을 살 수 있도록 하신다(Stott, Smalley).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 본문은 하나님께서 죄를 자백한 자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는 근거를 나타낸다. ‘미쁘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피스토스'(*)는 약속을 잘 지키시는 ‘신설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죄사함을 약속하셨으며(렘 32:34; 미 7:19, 20) 그 약속을 충실히 이행하시는 신설한 분이다(시 89편; 롬 3:25; 고전 10:13; 딤후 2:13; 히 10:23; 11:11). 그러므로 미쁘신 당신의 성품대로 죄를 사하시겠다는 약속을 철저하게 지카셔서 죄를 자백한 자들을 용서하신다. 한편 ‘의로우사’로 번역된 헬라어 ‘디카이오스'(*)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1) 혹자는 십자가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tott, Ross). (2) 혹자는 언약 혹은 약속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ooke). (3) 혹자는 하나님의 본성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Dodd). (4) 혹자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통치와 지배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ultmann). 이러한 네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하나님은 자신의 의로움에 근거하여 고백한 죄인들을 사죄하신다(Barker).
에안 에이포멘 호티 우크 헤마르테카멘 프슈스텐 포이우멘 아우톤 카이 호 로고스 아우투 우크 에스틴 엔 헤민
개역개정,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새번역,10 우리가 죄를 지은 일이 없다고 말하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합니다.
우리말성경,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있지 않습니다.
가톨릭성경,10 만일 우리가 죄를 짓지 않았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분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고 우리 안에 그분의 말씀이 없는 것입니다.
영어NIV,10 If we claim we have not sinned, we make him out to be a liar and his word has no place in our lives.
영어NASB,10 If we say that we have not sinned, we make Him a liar, and His word is not in us.
영어MSG,10 If we claim that we’ve never sinned, we out-and-out contradict God–make a liar out of him. A claim like that only shows off our ignorance of God.
영어NRSV,10 If we say that we have not sinned, we make him a liar, and his word is not in us.
헬라어신약Stephanos,10 εαν ειπωμεν οτι ουχ ημαρτηκαμεν ψευστην ποιουμεν αυτον και ο λογος αυτου ουκ εστιν εν ημιν
라틴어Vulgate,10 si dixerimus quoniam non peccavimus mendacem facimus eum et verbum eius non est in nobis
히브리어Modern,10 ואם נאמר כי לא חטאנו לכזב נשימנו ודברו אין בנו׃
성 경: [요일1:10]
주제1: [빛이신 하나님과의 교제]
주제2: [빛이신 하나님]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 요한이 염두에 둔 영지주의자들의 그릇된 주장이 6, 8절에 이어 세번째로 소개된다. 본절에서 요한은 보다 보편적인 진리를 통해 도전적으로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공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인간 전체가 범죄하였으며 죄에 신음하고 있음을 선언하셨다( 시 14:3; 사 53:6; 요 2:24, 25; 룸 3:22-24).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죄하지 않았다고 부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선언을 무시하며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행위이다. 이러한 행위는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총 전체를 부인하는 것이며(렘 31:34; 엡 4:32) 심판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도전이다(요 16:8; 롬 8:1, Smalley). 한편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는 말은 선포된 말씀과 구약성경의 모든 증거가 이들 이단적 경향을 가진 자들에게 수용될 여지가 없음을 시사하는 것으로 죄를 부인하는 것은 구원과 멀어지게 할 뿐만 아니라 말씀과 빛 가운데 살 수 없게 하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죄의 은혜를 바랄 수 없게 함을 시사한다(Bar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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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1장 주석 서론
요한일서 서론
요한일서는 저자와 수신자에 대한 어떤 언급도 없다. 이것은 이 서신의 저자가 교회 가운데 잘 알려진 지도적 위치에 있는 자로서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더라도 편지를 읽는 사람들이 그 편지가 누구로부터 온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는 의미다. 이런 위치에 있는 자로서 유력한 사람은 사도 요한일 것이다. 교회 전통은 이 편지의 저자를 요한이라고 말하고 있으며, 또한 이 편지의 문체(文體)도 요한을 저자로 강력하게 지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본서와 요한복음이 동일한 저자에 의하여 기록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어디에서 누구에게 보내어졌을까? 이레네우스에 의하면 주후70년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인하여 교회가 흩어질 때, 요한은 에베소에 이르러 그 곳에서 소아시아에 있던 여러 교회들을 돌보며 생을 마쳤다고 한다. 따라서 이 편지는 요한이 에베소에 머물고 있을 때 소아시아에 있는 여러 교회들을 위하여 쓴 것으로 추측된다.
이 편지는 성도들을 이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당시 교회를 위협하고 있던 이단 사상은 영지주의였다. 그들은 영은 선하고 물질은 악하다는 이원론을 주장함으로 주님의 완전한 인성과 신성의 연합을 부인했다. 이로서 그들은 주님의 성육신을 전적으로 부인하였다. 이것은 곧 성육신에 기초하여 세워진 교회 존립 자체를 위협하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성육신 교리는 하나님께서 부패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취하신 유일한 방법이었으며 또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사랑을 계시하시는 유일한 은혜의 수단이었다. 그러므로 성육신 교리가 부정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준비 해 주신 구원의 길도 그리고 성육신을 통하여 계시하신 하나님의 사랑도 모두 허구가 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된다면 우리가 경건의 삶을 살아야 할 이유도 상실하게 된다.
실제로 영지주의에 따랐던 사람들 가운데는 우리가 우려했던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했다. 그들은 성육신을 부인했다. 따라서 그들에게 인간 예수와 메시야이신 그리스도는 서로 다른 존재가 되었다. 그들은 성육신 사건에 대하여 인간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의 영이 그에게 들어가 거하였고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되었을 때 그리스도의 영은 그로부터 떠났다고 말했다. 그들의 이단 사상을 우리는 가현설이고 한다. 그들의 이단 사상 속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하여 베푸신 어떤 사랑도 찾을 수 없고 구속의 은혜도 찾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성육신을 부정하고서는 그리스도교가 성립 될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의 경건한 삶은 바른 교리적 기초 위에 있을 때 이루어지는 삶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또한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들이 교리적 오류에 빠졌을 때 교회가 무너졌고 그리고 도덕적 부패가 따라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잘못 된 교리에 기초한 영지주의는 사람들을 경건의 삶으로부터 떠나게 했고, 또한 도덕적으로 부패하게 했다. 그들은 육체는 악한 것이고 영은 선한 것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육신의 생활과는 관계없이 그들이 알고 있는 비전(秘傳)을 통하여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육체적으로는 방종에 빠질 수밖에 없었고 영적으로는 기만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이 편지를 통하여 교회를 영지주의 이단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하여 성육신에 대한 바른 교리를 교훈 했고 또한 이 교리를 믿는 사람들 속에 나타나는 경건한 삶의 모습을 말해 줌으로 연약한 자들로 하여금 거짓 신앙과 참된 신앙을 분별하여 참된 신앙에 굳게 서도록 하였다.
요한 일서의 기록 연대는 대략 AD85-90년으로 추측한다. 이것은 예루살렘 멸망 후 교회가 회당으로부터 분리되어 독립된 기관으로 존재하게 된 시기이며 또한 요한복음이 기록된 조금 뒤의 시기이다.
요한일서는 인도자가 성도들에게 주는 권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본서는 특별한 주제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서술된 편지가 아니고 사도가 성도들에게 주기 원하는 교훈들을 순서 없이 쓴 편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본서는 각 장을 순서적으로 개괄하기보다는 서신 전체에 흩어져 있는 주제에 따라 개괄하는 것이 유익할 것이다. 특별히 본 서신은 교회를 영지 주의 이단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기록한 것이므로 영지주의의 거짓 주장에 대한 반박이 편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본서의 중요한 주제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특성, 그리스도인들의 경건한 삶 등이다.
첫째, 요한일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성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생명의 말씀으로서 태초부터 존재해 오셨고 성육신을 통하여 인간의 역사에 참여하셨다. 요한은 본서를 통하여 자신이 직접 들었고, 눈으로 보았고, 손으로 만진바 된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임을 말하고 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함으로 그리스도의 비역사성을 말하고 있는 이단을 반박했다. 그리스도교는 공상적인 종교가 아니라 사실에 기초한 종교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계시된 하나님의 속성, 위엄, 은혜, 사랑 등이 모두 역사 가운데 실재한다. 따라서 이런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은 그리스도인도 아니며 또한 그리스도교와도 상관없는 자들이다.
둘째, 요한 일서는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특성을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는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진 공동체로서 사랑과 거룩함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이 공동체의 중심은 빛 되신 하나님이심으로 이 공동체는 어둠이 함께 할 수 없다. 여기 요한은 “빛”이라는 말을 “어둠”과 대조하여 사용하고 있다. 어둠이 미움이라면 빛은 사랑이고 어둠이 더러움이라면 빛은 거룩함이다. 그러므로 빛 되신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진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는 사랑과 거룩함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와 구성원들 모두는 하나님과 사귐을 통하여 세상과 구별된 공동체와 개인으로 계속 성장 해 간다. 이런 의미에서 하나님과 사귐은 공동체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과 사귐을 결여하고 있는 공동체는 세상에서 구별된 공동체로서 성장할 수 있는 생명력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셋째, 요한일서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나타나는 특성을 말한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움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1:5,6)” 요한이 서신 전체를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참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면 어둠 가운데 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속한 자는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빛 가운데 거해야 한다. 이것으로서 한 사람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인 인지 아닌지를 시험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빛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완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거듭난 그리스도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연약함 가운데 있기 세상에 사는 동안 언제나 죄의 유혹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거듭나지 않은 자와 구별되는 것은 우리 속에 거룩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연약하여 죄를 범할지라도 결코 죄를 즐길 수는 없다. 죄 가운데 있을 때 우리는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거룩한 속성을 지니고 사는 것을 요한은 빛 가운데 거하는 삶이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스스로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자들로부터 빛 가운데 거하고 있는 자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면 우리는 그를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인정할 수 없다. 여기 빛 가운데 거하는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나타나는 특성은 소극적으로는 죄를 미워하는 마음이고 적극적으로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거룩한 소원이다. 따라서 참된 그리스도인은 죄를 지었을 때는 자백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할 때는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이웃을 사랑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거짓 그리스도인은 죄 가운데 거할지라도 양심에 어떠한 가책도 받지 않음으로 더욱 세상을 사랑하게 되고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면 거리낌 없이 거짓 영을 따르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특성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과 거짓 그리스도인들을 분별하는 시금석이 된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요한일서를 통하여 교리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마치 교리는 집의 기초와도 같아서 어느 교리 위에 믿음의 집을 세우느냐에 따라 바른 믿음이 될 수도 있고 거짓 믿음이 될 수도 있으며 또한 믿음이 견고해 지기도 하며 연약해 지기도 한다. 사도요한은 교리의 중요함에 대하여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며 세상이 저희 말을 듣느니라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4:5-6)” 요한은 이 편지를 씀으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자신을 분별하며 살도록 했다. 특별히 요한복음이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함으로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며 요한일서는 그리스도를 믿고 있는 자들이 바른 교리에 기초하여 확신 가운데 살도록 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다.
2021. 5. 14. 서신교회 목사 양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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